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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지역 민간인 학살 집단매장지 최초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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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지역 민간인 학살 집단매장지 최초로 확인됐다

익명 (미확인) | 토, 2018/02/0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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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주간경향> 취재팀을 만난 원용범 할아버지가 우이동 계곡에서 자신의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던 주 선생 가족의 학살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우이동서…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최소 8구 이상 매립 확인돼

서울지역에서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집단매장지가 최초로 확인됐다. 그동안 한강 이남 지역에서 보도연맹 등 민간인 학살이 확인되고 집단매장지 발굴이 이뤄졌지만 서울지역 존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희생자로 유력한 일가족의 신상에 관련한 증언도 나왔다. 행정안전부 등은 조사가 마무리되고 유해 안치작업이 끝나는 대로 기자회견을 통해 관련 사실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에 확인된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서울 우이동 우이동신설선 북한산우이역 인근 등산로 입구다. 이 지역의 집단매장 소문은 간간이 있었다.(박스 참조) 확인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지난해 11월 16일, 하천 노후옹벽 정비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옹벽 패널을 빼니 옆 흙에 묻혀 있던 사람 뼈가 우연히 발견됐다. 공사인부들이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이창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조직발전특별위원장의 말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시신상태 등을 검토해보니 ‘최근 사건이 아니라 한국전쟁 때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조사 나왔다.”

국방부 감식단의 육안감식 결과 수습된 유해는 최소 6명이고, 아직 현장에서 발굴·수습되지 않은 유해도 최소 2구 이상으로 판단됐다. 총 8구 이상의 존재가 최초 확인된 것이다. 유해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었다. 6세에서 60세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나왔다. 유류품에서도 은비녀, 틀니 등 군인과 무관한 물건들이 나왔다.

■ 비녀, 틀니… 학살 민간인 유해로 결론

<주간경향>이 단독으로 입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감식보고서에 따르면 시신들 중 일부는 철사로 손목부위를 결박한 상태로 누워 있었고, 매장 방향과 자세가 비정형적이며, 허리부분에 고무줄을 착용한 유해가 다수 확인됐다. 고무신 착용 유해가 다수였다는 점도 특징이었다. 현장에서는 틀니나 은비녀 같은 ‘특이 유품’ 이외에 탄피와 탄두도 발견됐는데, M1·칼빈·45구경 권총 등이었다. 감식보고서에는 “아군 탄약류만 출토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적혀 있다. 즉 이번에 발견된 유해들은 종전 민간인 희생자 매장지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사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더 특이한 부분은 이 유해들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유력한 증언도 나왔다는 점이다. 당시 숭인국민학교 우이분교에 금무하던 음악교사 가족이라는 증언이다. 이 증언을 내놓은 이는 우이동 토박이로, 현재도 별장관리인으로 우이동에 거주하는 원용범씨(83)다. 2월 1일 <주간경향>을 만난 원씨는 학살사건이 벌어질 당시의 ‘목격담’을 증언했다. “9·28 서울 수복이 된 뒤 10월 어느 날이었다. 한옥에 숨어서 먼발치에서 봤다. 지금은 경전철을 지으면서 축대를 쌓아 개울이 깊어졌는데, 당시는 얕은 개울이었고 개울 옆에 고운 모래가 쌓인 곳이었다. 군인 복장의 사람들이 트럭에서 일가족을 끌고 내려와 총으로 쐈다. 어른이 죽어 푹 꺼꾸러지니 아이들이 방방 뛰었는데 그 아이들까지 죽여버렸다.”

원씨는 학살된 가족이 한국전쟁 전 자신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교사 가족이라고 했다. 당초 국방부 등의 증언 청취과정에서는 교사의 성씨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1월 말 <주간경향>의 탐문과정에서는 “붉은 주(朱)인지 두루 주(周)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주씨 성을 가진 교사였으며, 함경도 함흥 출신으로 해방 후 월남해 우이분교 교사로 있던 분”이라며 “바이올린을 잘 켰으며 학교 다닐 때 ‘나의 살던 고향은’ ‘반달’ 등의 노래를 가르쳐주던 것이 기억난다”며 더 구체적인 기억을 내놨다. 주 교사는 골짜기 위쪽 일본 적산가옥에 장모와 처, 그리고 6∼7살가량의 남자아이들 둘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처형당하는 걸 먼발치에서 봐서 처음에는 주씨 가족인 줄 몰랐다. 트럭 뒤칸에 실려 가족들이 끌려왔으니 다른 데 있다가 잡혀온 것은 틀림없었다. 처형 뒤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당시는 몰랐다.” 2월 1일 <주간경향>을 만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인민군 점령 기간 동안 그 교사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나, 일단 북이 싫어서 내려온 사람인데 자의적으로 좌익활동을 했겠는가. 설령 아버지가 좌익활동을 했더라도 어린아이들, 그리고 장모는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죽였던 건지….” 0203-6

■ “월남 음악교사 가족이다” 증언

이번에 발굴된 유해들은 주 교사 가족일까. 실제 <주간경향> 취재팀과 동행한 원씨가 지목한 장소는 하천과 작은 개울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이번에 시신이 발굴된 장소에서 약 25m 떨어진 장소다. “원씨가 증언한 주 교사 가족과 별도로 또 다른 학살자 가족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창수 위원장의 말이다. 학살자 매몰의 일반적인 패턴은 보통 10여명의 ‘부역자’들을 한 구덩이에 묻고, 바로 인근에 또 구덩이를 파서 그렇게 매몰하는 식인데, 실제 이번 매몰지가 공사 중 우연히 발굴됐으므로 바로 인근에 또 다른 매장지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원씨와 동네 노인들은 또 다른 학살 매몰 장소도 증언했다. 발굴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장소다. “당시 계곡을 중심으로 웃골과 아랫골로 나뉘었는데, 아랫골 쪽에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을 죽여 묻었다. 한참 지나고 번동에 살던 유가족들이 수소문해서 유해를 찾으러 왔었는데, 총 여섯 구의 시신을 파낼 때까지 가족 시신이 안 나오다가 맨밑의 일곱 번째에서 가족을 찾아 수습해 간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처형당한 것이다. 끄집어낸 여섯 구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구덩이에 다시 묻었을 것이다.” 원씨는 시신 매장 장소를 정확히 지적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1950∼70년대에 공사용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축대를 쌓고 성토한 구간이었다. 앞의 유해발굴지와 다르게 이곳은 현재는 작고한 두 사람 소유의 땅이었고, 원씨네 가족은 그 자리 인근에서 소작해 감자를 키웠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굴된 시신들을 학살한 이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원씨는 주씨 가족을 죽인 사람들은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고 증언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와 탄두를 보면 통상적으로 M1은 군인이, 칼빈은 경찰이, 45구경 권총은 장교가 사용하던 것이다.

“6·25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당시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진 ‘비상사태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라는 것이 소위 부역자 처벌의 근거였다. 1952년 위헌 판결을 받을 때까지 대통령령에 근거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검거와 체포·학살이 벌어졌다.” 진실화해조사위원회 조사관을 역임한 김상숙 단국대 강사의 말이다. 김 전 조사관에 따르면 ‘부역자’나 ‘보도연맹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는 우익청년단체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치안대가 주도했다. 그는 “당시 치안대 사무실이 보통 경찰서나 국민학교 교실, 양곡창고에 있었는데 여기에 연행해 구금·조사하다가 경찰이 인솔해 국군이 사살하는 것이 통상적인 패턴”이라며 “이번 우이동 사건의 경우 유해에 골절이 다수 발굴되었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국방부 감식보고서를 보면 유골들은 대퇴골(다리뼈), 두개골, 상완골(어깨뼈)이 골절되어 있었다. 감식보고서에는 “사망 무렵 골절이 관찰”이라고 적혀 있다. 척추부위에 탄두가 박힌 유해도 식별되었다. 김 전 조사관은 “다른 부역혐의자 학살지의 경우를 보면 총알을 아끼기 위해 때려 죽이거나, 부역자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해놓고 굴비처럼 묶어 앞의 사람에게 총을 쏴 줄줄이 꼬꾸라지면 생매장한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해감식을 맡고 있는 박선주 전 충북대 명예교수는 “골절이 살아있을 때 맞아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사후에 위에 흙 등이 쌓이면서 압력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약품처리가 끝나면 법의학적으로 엄밀히 검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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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이동 민간인 학살자 집단매장지에서 지난 1월 5일 희생자 원혼을 기리는 복토 추모제가 약식으로 열렸다. 발견 현장에는 아직도 미수습 유골(사진)이 남아있다. / 법인권사회연구소 남인우 연구위원 제공

■ 누가 이들을 학살했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동안 서울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자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한국전 개전 직후 벌어진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경우 대부분 한강 남쪽에서 보고·발굴된다.(표 참조) 서울시의 경우 북의 기습남침으로 점령돼 그대로 북한 치하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9·28 수복 후에 벌어진 부역자 처벌 및 처형은 다르다. 상당수가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넘어갔지만 점령기간 중 피난을 못가고 남아 어쩔 수 없이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얼마나 연행조사를 받았고, 그들 중 얼마나 처형되었는지에 대한 공식기록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도시화 개발로 원형보존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민간사유지에서 건물을 올리려고 땅을 파면 유골이 발굴되는 경우가 있는데,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는 사례도 없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신을 발굴하고 수습하려면 땅주인과 협상해야 하는데 그게 굉장히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인 점도 일조한다. 발굴지 대부분이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도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은 오지이거나, 개발이 안된 계곡들이었다. 여기에 농촌의 경우 보통 집성촌으로 그 지역 토박이 노인들이 생존해 증언할 사람이 있는 데 비해,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익명의 공간인 것도 일조한다. 김 전 조사관은 “과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보접수를 받을 때도 신고된 건수도 많지 않았고 서울지역 확인은 엄두도 못냈다”며 “서대문형무소 뒤쪽 일대, 한강변이나 서울 바깥으로 나가는 길목, 강나루터 등이 학살매장지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이번 우이동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우이동 매장지의 경우, 감식보고서에 따르면 유골들과 유해는 ‘황갈색 가는 모래층’에서 출토되었고, 그 위에는 1차와 2차에 걸쳐 생활쓰레기로 성토돼 있었다. 사살된 시신을 따로 묻은 것이 아니라 위로 흙을 덮어둔 채로 방치돼, 이후 유입된 계곡산장 등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발굴된 6구와 유해개체 수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국방부 유해감식단이 청취한 구술증언과 많이 일치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주 교사 가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전부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보존조치를 취한 것은 관련해 법적 권한이나 발굴예산 같은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차제에 지난 2005년 한시적 기구로 만들어 2010년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법을 개정해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을 국가가 책임을 지고 계속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회 행안위에 여러 진실화해위원회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지만, 법이 통과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창수 특별위원장은 “이념을 놓고 말하게 되면 학살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가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며 “이제는 이념이 아닌 인권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제는 국가가 과거의 불행한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해결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 학살당한 주 교사 가족, 신원 확인할 수 있을까

‘우이동 그린파크 계곡 학살’에 대한 증언이 없지 않다. 지난 2012년, KBS는 6·25전쟁을 다룬 특별기획 10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다큐 7부 ‘전쟁의 그늘(상)’편에 출연한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차승현씨는 이렇게 말한다. “국군이 진주해가지고 그 다음엔 경찰들이… 부역자라고 그랬지. 빨갱이 하던 사람들을 불러다가 때리고… 지금의 우이동 그린파크 옆에 가면 골짜기가 있어요. 거기다가 트럭으로 실어다가 죽이고… 그런 비극이 있었죠.” 차씨는 이번에 <주간경향>이 접촉한 우이동 거주자들과 함께 유력한 증언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당시 서울 거주’ 이외에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차씨는 우이동 학살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의문은 의외의 방향에서 풀렸다.

‘혹시 6년 전 증언한 차승현씨를 아느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원용범씨는 “우이동 계곡에 올라가면 ‘○○집’이라는 음식점이 나오는데 거기 주인이었다”고 말했다. 방송에 출연해 증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원씨에 따르면 차씨는 암으로 오래 투병하다가 작년인가 재작년에 사망했다.

주 교사 가족 학살사건을 증언해줄 다른 사람은 없을까. 6·25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원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일단 원씨와 같이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들을 문의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 현재의 153번 종점 자리에 직사각형 기와집이 있었는데 당시 숭인국민학교 우이분교였다. 거기서 4학년 과정까지 운영되고 5학년부터는 좀 더 떨어져 있는 숭인국민학교를 다녔다. 주 교사는 분교 교사였다. 원씨는 말한다. “장인 어른은 안 계시고, 장모를 모시고 살던 것이 기억난다. 부인은 키가 자그마한데 참 예뻤던 것이 기억난다. 아이들도 귀여웠고…. 세상에, 그 아들들까지 죽일 수 있느냐. 그 어린 아이들이 뭐를 안다고.”

주 교사의 인적사항을 학교 근무 교사명단을 통해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 <주간경향>의 확인 요청에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실은 “일단 우이초등학교 교사 근무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1954년부터인데, 그 이전 기록은 멸실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남아있는 기록에도 주씨 성을 가진 교사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원씨를 만나 주 교사에 대한 자그마한 단서라도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원씨는 주 교사 가족이 살던 일본 적산가옥 위치를 알고 있었다. 현재 이 가옥은 헐려 터만 남아있다. 원씨의 기억에 따르면 1950년대에 집은 헐렸고, 그 뒤 절이 자리하다가 1962년께에 역시 헐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폐쇄등기부등본이나 호적 등에서 확인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앞으로 추가취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서울지역 민간인 학살 집단매장지 최초로 확인됐다

<2018-02-03>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서울지역 민간인 학살 집단매장지 최초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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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病中牧師卽事

 

誰言天路遠(수언천로원)

屈指待君來(굴지대군래)

速死眞良策(속사진양책)

如何擧祝杯(여하거축배)

 

病中의 목사를 찾아 즉흥시를 읊다

 

천당 길이 멀다고 누가 말하는가

그대 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소

급하게 죽음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것은 어떻겠소.

 

<時調로 改譯>

 

天路 멀다 뉘 말하나 그대를 기다리오

급하게 죽어 버림은 참으로 좋은 계책

축하의 잔을 드는 건 또한 어떠하겠소.

 

*病中:  병을  앓고  있는  동안  *天路:  천당으로  가는    *屈指:  무엇을    때,

손가락을 꼽음 *速死: 즉사(卽死). 직사(直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良策:

좋은  계책이나  뛰어난  책략.  고유(高猷)ㆍ양계(良計)ㆍ양모(良謀)  *祝杯:

축하하는 뜻으로 마시는 술. 또는 그런 술잔.

 

<2017.7.16, 이우식 지음>

일, 2017/07/1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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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는 조작된 영상이 올라오는게많아서 민족문제홈피에  영상이 있나 찾아 봤는데 없네요 원본영상 볼수 있는곳이 없나요?

토, 2017/07/15- 11:24
288
0

초복날사진은 경남민언련에…

시인소설가수필가경관

그리고

나무수좌모도

나무수우모도

인력노동일기

 

낙동강물요일의

천구백십구년시간…

구형은팔순짬치….

토, 2017/07/15- 08:23
234
0

贈善友(증선우)

 

同生同死約(동생동사약)

盡信固愚痴(진신고우치)

四處盈奸黨(사처영간당)

君余被誕欺(군여피탄기)

 

착하고 어진 벗에게 지어 주다

 

함께 살다 같이 죽자 약속했음을

다 믿으니 정말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간사한 무리 가득한지라

그대도 또 나도 속임을 당하였소.

 

<時調로 改譯>

 

함께 살다 같이 죽자 그리 약속했음을

그대로 다 믿으니 참 어리석고 못났소

온 사방 奸黨인지라 둘 다 속임당했소.

 

*善友: 착하고  또 어진 벗  *同生: 함께 삶.  함께 남  *同死: 같이  죽음  *愚癡:

매우 어리석고  못남. ≒치욕(癡慾).  삼독(三毒)의 하나. 四相에 의혹되어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름 *四處: 사방(四方) *奸黨:

간사한 무리. ≒간도(奸徒) *誕欺: 속임. 거짓말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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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세월호'는 어떻게 기록될까?

참사를 둘러싼 역사 전쟁

 

박주민 변호사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학자 E. H. 카의 명언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단순한 사실(a mere fact)이 아니라 이것에 현재의 가치를 부여하여 역사적 사실(a fact of history)로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역사가 이렇게 가치 부여가 수반되는 것이기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역사 앞에 "하나의" 혹은 "올바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특히 국가가 그런 수식어를 붙인 '역사'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원래 안 되는 것이지만 만약 진실을 은폐하고 국민의 사고를 호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세력이 역사에 대해 단 하나의 가치관만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더욱 더 좌절되어야 한다. 그들의 목표는 애초부터 '올바른 역사'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호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집권 세력이 자국민의 정치적 선호를 바꾸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를 동원해 자국민을 상대로 한 '심리전(戰)'을 전개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또 세월호 참사 당시 정작 12명의 잠수부, 헬기 2대, 군함 2척, 특수보트 6대만이 동원되어 구조 작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00명의 잠수사와 121대의 헬기, 69척의 함정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온 국민이 믿게 했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현재의 집권 세력이 국민에게 진실을 드러내고, 국민의 비판을 수용하여 문제를 개선하는 민주주의적 선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고 정치적 비판과 그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두려워해 진실을 숨기고 국민의 여론을 호도하는 악순환을 추구하는 자들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 그들이 끊임없는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해왔다는 것은 앞으로도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한다.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 사람이 소위 '올바른 역사'란 것을 입에 담을 수는 없다.

 

카의 위의 말에 따르면 진실과 동떨어진 것을 역사로 만들려는 것을 막는 싸움은 2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사실을 확정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관련되어서'이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후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에 속하는 싸움이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만들기 위해 아니 믿게 만들기 위해 참사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진상 규명 작업 자체를 방해하는 세력과의 싸움이다.

 

이 세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여러 시도들을 벌여왔다. 우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충분한 권한이 부여된 조사 기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의 제정을 방해했다. 이후 600만 명이 넘는 국민과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지도 못한 채 풍찬노숙을 견뎌냈던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의 열망의 일부가 담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진상규명특별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법의 취지를 몰각시키는 시행령을 만들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하기까지 하였으나 이에 대해서도 거부권이라는 비상한 방법으로 막아서기도 했다.

 

또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가 요청한 조사 예산에 턱없이 부족한 예산만 집행하였고, 내년 예산도 세월호 특조위가 요청한 예산액 중 31%만 배정하려 하고 있다. 파견하기로 했던 공무원들도 제때 파견하지 않았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 시한을 연장하기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를 하였건만 이제는 말을 바꾸어 연장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사사건건 가로막고 있는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만한 사실관계 자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만히 둘 수는 없다. 1863년 영국에서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전 세계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지하철 사고는 단 3건인데 이 중 2건이 우리나라 그것도 대구에서 발생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참사가 밥 먹듯이 아니 황당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은 참사 때마다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현장 실무 책임자만이 책임을 지는 소위 '꼬리 자르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도적 개선과 그를 통한 참사의 재발 방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참사가 단순한 사고로만 역사적으로 기록되도록 만들어 왔던 것이 참사가 재발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리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고, 세월호 참사의 의미가 제대로 기록되게 만들어야 한다.

 

세월호특조위의 활동시한 연장과 조사에 필요한 예산의 확보가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세월호특조위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수사권과 기소권은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제한 없이 청문회를 할 수 있고, 특검도 2번이나 요청할 수 있다. 과거의 다른 위원회에 비하면 훨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역사적 왜곡은 중단될 수 있을 것이고 참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당시 해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그를 통해 진상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그 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달라진 역사를 통해 후대와 현세가 배울 수 있는 교훈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느냐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현재 발생한 그리고 진행 중인 사건들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일도 역사를 둘러싼 전쟁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역사를 둘러싼 싸움이 한창인 이때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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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목, 2015/11/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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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人君南北對話

 

止爭尋活路(지쟁심활로)

南北本同民(남북본동민)

共滅何邦待(공멸하방대)

休誇美日親(휴과미일친)

 

나라님께 남북 대화를 권함

 

다툼을 멈추고서 살길을 찾으소서

남북은 본디부터 같은 백성입니다

共滅하기를 어떤 나라 기다릴까요

저 미국, 일본과 친함 자랑 마소서.

 

<時調로 改譯>

 

다툼 대신 살길 찾소 남북 同民입니다

함께 망해 버리길 어떤 나라 바랄까요

美日과 썩 친하다며 자랑 따위 마소서.

 

*人君: 나라님 *活路: 살아 나갈 수 있는 길 *共滅: 함께 사라지거나 멸망함.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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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老僧嘲大佛事

 

未識無爲道(미식무위도)

平生作苦勞(평생작고로)

虛心誰妄說(허심수망설)
佛恐放霜刀(불공방상도)

 

늙은 중을 만나 큰 佛事를 조롱하다

 

無爲의 道를 아직도 알지 못하니

평생 괴롬과 또 수고로움을 짓네

虛心하다 함은 그 누구 妄言인고

부처가 겁내니 시퍼런 칼 놓으라.

 

<時調로 改譯>

 

無爲之道를 모르니 평생 苦勞를 짓네

虛心하다고 함은 그 누구의 妄言인고

부처가 두려워하니 시퍼런 칼 놓으라.

 

*佛事: 부처가  중생을  교화하는 일. 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 ≒법사(法事).

법업(法業)  *未識:  미지(未知).  아직  알지  못함 *苦勞: 괴로움과  수고로움.

신로(辛勞) *虛心: 마음에 거리낌이 없음 *妄說: 망언(妄言).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않고  망령되게  말함. 또는 그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선 칼.

 

<2017.7.15, 이우식 지음>

토, 2017/07/1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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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

월, 2017/07/1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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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國巡廻說法僧

 

汝口終成佛(여구종성불)

全無所不知(전무소부지)

呼神能斥鬼(호신능척귀)

直答解衆疑(직답해중의)

 

전국을 돌며 설법하는 스님

 

그대의 입이 마침내 成佛을 하여

아시지 못하는 바가 전혀 없구나

神을 부르고 鬼도 능히 물리치며

즉시 답하여 뭇사람 의심도 푼다.

 

<時調로 改譯>

 

입으로 成佛을 하여 마침내 無所不知라

저 神을 막 불러 대고 鬼도 썩 물리치며

물음에 直答으로써 뭇사람 의심도 푼다.

 

*全無: 전혀 없음 *無所不知: 모르는 것이  없음  *直答: 즉답(卽答).  다른

사람을 거치지 아니하고서 직접 대답함 *衆疑: 여러 사람이 품은 의심.

 

<2017.7.14, 이우식 지음>

금, 2017/07/1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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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맞은 대전수요문화제


“굴욕적 한일합의 당장 무효화하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
“역사적폐 끝까지 청산하자!”

7월 12일, 20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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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저녁 7시, 대전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가 20차를 맞았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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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사람이 살면서 3가지 만남이 필요하다”며, 이 3가지 만남을 ‘자기 자신과 냉철한 만남’,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만남을 위해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고, 더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통일이라며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카이스트 내에 작은 소녀상 건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카이스트 소셜메이커의 정지윤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알이야 한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노예 범죄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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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회원과 조합원들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임재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피플큐브’의 최준호, 김관영 회원과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백장현, 김요진 조합원도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최준호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SNS를 타고 퍼지는데도 일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은 고개를 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장현씨는 “위안부 범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가혹한 일”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김관영씨도 “일본이 용서를 구하고, 국가에서 사과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요진씨는 ‘난 알아요’ 곡으로 노래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진 대표는 군함도로 대표되는 강제 징용의 사례를 들며,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사실과 끔찍했던 광경들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인 일본만 피하려고 한다”며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청년회에서는 군함도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피해 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직접 만들어 문화제 주변에 전시했고, 올해 11월에는 군함도를 직접 다녀와 강제징용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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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과 시민들. ⓒ 임재근

보릿고개에 입 하나 덜자고 나선 길이었다.
떨어져 살아도 고향 쪽 하늘 바라보면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겠지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한 줌 빛줄기 들지 않는 열차 속에서
겁먹은 표정의 앳된 얼굴의 마주 앉은 낯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이제 공장 가면 돈 많이 벌어
고향 집에 흰 눈처럼 소복한 솜옷 보내자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자기는 이불 보내고 싶어요
수줍게 웃었지…

양보규 대전지역 희망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땅 위에’란 제목의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는 독립영화 ‘우리 학교’ 삽입곡인 ‘우리’와 통일 노래인 ‘경의선 타고’를 부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통일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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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대전민중의힘 소속 단체 대표자들. 왼쪽부터 김원진 대전청년회 대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정선 공동대표,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최명진 대표,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민주노총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 대전민중의꿈 김창근 상임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수요문화제는 ‘평화나비대전행동’이 주최하는 데,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이 돌아가며 주관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 수요문화제는 대전민중의힘이 주관했고,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대전수요문화제는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다. 다음 수요문화제는 8월 9일에 개최된다.

임재근 기자

<2017-07-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모두 가혹하고 끔찍.. 일본은 사과하라”

목, 2017/07/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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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 8화 – 2부 「이게 실화냐?」 
“연구소 단독-이준열사 집터 발굴”

팟빵에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7/07/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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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이준 열사 집터 표석 제막식 자료집]

 

이준 열사 순국일에 집터 표석 제막식 거행

 

▲ (좌) 이준 집터’ 표석 (시안), (우) 이준 열사의 집터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안국동 152번지 구역의 현재 모습

헤이그특사사건 11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준 열사가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될 당시에 거주했던 곳에 그를 기리는 집터 표석이 설치된다. 그간 이준 열사가 생전에 안국동에 살았던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주소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각종 문헌자료를 조사해 최초로 지번(안국동 152번지)을 확인한 결과, 덕성학원 재단 건물인 해영회관이 헤이그특사로 파견될 당시 이준 열사가 거주했던 집터임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표석 설치를 신청하였고,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이번에 집터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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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면 위에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자료이다. (『경성부일필매 지형명세도』,1929)

표석 문안에는 이곳이 1907년 당시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점 이외에 1905년 이준의 부인 이일정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명기하였다.

표석 제막식은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가 되는 7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덕성학원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리며, 제막행사는 1시 40분에 해영회관 1층(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전면에서 거행된다. 이번 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준 열사 유족대표로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명예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이에 앞서 낮 12시 3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준 열사의 생애와 이준 집터에 관한 사료 소개와 전시해설이 있을 예정이다. (재)리준만국평화재단(이사장 이양재)에서 제공하는 전시유물에는 이준 열사의 유묵(遺墨) 2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목, 2017/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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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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