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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식 신임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은 민주주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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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식 신임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은 민주주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익명 (미확인) | 금, 2018/01/26- 17:16

“독립기념관은 시민의 것…시민들에게 계속 다가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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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신임 독립기념관장ⓒ민중의소리

내년이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그 사이 해방을 맞이하고도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건국 시점과 친일 등 근대사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중국 방문 중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고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라고 말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보수 진영에서 “1948년 정부수립이 건국”이라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반발하면서 박근혜 정부 시절 있었던 ‘건국절’ 논란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이처럼 역사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2월 제11대 독립기념관장에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 이준식 신임 관장이 취임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과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이 관장은 “독립운동의 역사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고 미래와 직결돼 있다”고 말한다.

이 관장은 16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진행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 중 하나는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며 “또 다른 하나는 해방된 다음 새로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구상이 해방에 담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이어 “임시정부가 만든 임시헌장 서문에 보면 ‘자유, 평등 및 진보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대한민국’으로 규정했지만, 오랫동안 독립운동가들의 이런 구상이 실현되지 못했다”면서 “그래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바가 독립운동 역사에 담겨있다는 점에서 독립된 지 70년도 더 지난 시점이지만 아직도 독립운동 역사는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역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그냥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건 기본적인 거고 그 이상이 있다”면서 “독립운동가들의 피가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 관장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잘 녹여내서 보는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게 중요한 문제”라며 “독립운동이 지금 우리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형태로 전시를 더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질문: 독립기념관은 건립 30년을 넘겼다. 독립된 지도 70년이 훌쩍 넘었는데 젊은이들이 이를 되새기는 것이 왜 중요할까?

답변: 1945년 8월 15일 우리가 해방됐다고 말한다. 지금은 해방보다 독립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해방이라고 더 많이 표현했다. 해방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다음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 때 어떤 나라를 만들까에 대한 구상이 해방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1944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헌법을 개정한다. 대한민국 임시 헌장이라고 하는데 서문에 보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바를 ‘자유, 평등 및 진보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대한민국’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실제 해방 뒤 이런 구상이 제대로 실현 안 됐다. 일단 일제 식민지배 이후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려고 했는데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38선이 그어져서 민족이 분단됐다. 완전한 자주 독립하고 거리가 멀다.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오랫동안 실현 못 됐다. 현재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바가 과거 역사,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 역사에 담겨있다는 점에서 독립된 지 70년도 더 지난 시점이지만 아직도 독립운동 역사는 살아있다. 독립운동역사는 과거에 흘러간 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고 앞으로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질문: 독립기념관을 과학전시관과 비교한다면 좀 어렵고 오래된 이야기라는 느낌도 든다. 영상과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층과 어린이 세대를 위한 시설이나 행사는 어떤 것이 있나?

답변: 몇 해 전부터 독립 기념관에서 어린친구들을 위함 체험학습관을 꾸준히 운영해 왔고 교육프로그램 중에서도 어린이들이 흥미를 이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노력해왔다.

겨레의 집을 리모델링 중인데 그 중 일부는 ‘펀(Fun)체험관’이라고 해서 특히 어린 관람객이 뛰어 놀면서 독립운동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미려고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독립운동 역사를 공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놀이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강화하려고 한다.

질문: 눈썰매장이나 캠핑장 등 가족들을 위한 시설이나 시기별 행사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데 소개를 한다면?

답변: 독립기념관이 가진 강점 중 하나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의 전시관은 역사지만 동시에 독립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는 좋은 자연이 있다. 점점 가족단위 관람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자연과 접하면서 레크레이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립기념관 전시관을 방문하거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독립운동사를 배우고 역사를 접하는 좋은 기회를 독립기념관이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도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천안 지역사회와도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올해 1월1일에 해맞이 행사를 했는데 7~8천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독립기념관을 생활 속의 일부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아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시민에게 다가가겠다. 천안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지역사회 주민과 계속 호흡을 해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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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여름 야영장ⓒ독립기념관 제공

질문: 그간 많은 전시, 행사, 교육을 수행했지만 이를 이용할 시민들에게는 좀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직전에 강북구청 근현대사기념관장도 역임했는데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문제에 대해 구상하고 있다면?

답변: 근현대사기념관을 운영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기념관이든 박물관이든 근현대사를 다루는 시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시민들과 결합하는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기념관은 아마 죽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한 가지 도움이 된 것은 시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기념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 욕구가 뭔지 잘 파악하게 된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상대적으로 규모도 크고 대규모 전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현대사기념관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는 묘역 같은 현장감 있는 공간이 독립기념관에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질문: 최근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대중서도 발간했는데 어떤 내용의 책자이고, 발간한 이유는 무엇인가?

답변: 식민지근대화론이 처음 등장한 거는 벌써 20년 정도 된다. 우리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이어서 오랫동안 학계에서 밀려있었는데 10여년 전부터 식민지근대화론이 힘을 얻어서 이를 바탕에 깔고 있는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논란이 됐다.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논조를 펴기도 하고, 일부인사들이 주장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직도 식민지근대화론은 살아있다.

독립기념관의 기본적인 입장은 독립운동 때문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인데 독립운동에 반대되는 식민지 지배 때문에 오늘날이 가능했다고 하는 설명은 독립기념관의 설립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그래서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실제로 쉽게 풀어 쓴 책이 나왔다.

경제사학계에서 오랫동안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에 앞장섰던 충남대 허수열 명예교수가 집필했다. 허수열 교수가 경제사를 전공하셔서 경제사학회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의 맹점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 국정 역사교과서 같은 역사 논란이 다시 불거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답변: 일제 강점기에 벌어졌던 독립운동 역사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독립기념관의 역할이 있다.

독립 운동가들이 목숨까지 바치면서 이루려는 독립에는 나라의 독립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지금 자라나는 학생들, 젊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립 운동이 민주주의 문제와도 연결돼 있고 독립운동이 지금 민족의 숙원인 평화 통일하고도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일문제 관련해서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이후 분단이 됐을 때 분단이 곧 민족상잔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분단만은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정신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독립운동가들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희생한 측면도 있는데 그런 면을 강조함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의 피가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와 직결돼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 중국을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충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관람을 마치고 독립유공자 후손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7.12.16ⓒ제공 : 뉴시스

질문: 내년에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경 임시정부 청사 방문이나 건국 100주년이라고 국립현충원 방명록에 적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답변: 역사적으로 이야기하면 1919년 3월 1일 3.1운동이 일어났고 3.1운동의 과정이자 결과로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가 출범했다. 당시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라는 임시헌법을 재정한다. 임시헌법 제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규정이다. 그 규정이 현재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출범과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에서 공표한 제헌헌법 전문에 보면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돼 있다. 그리고 ‘이 헌법을 제정함으로서 민주공화국가를 제건한다’고 돼 있다. 재건의 핵심적인 과정은 임시정부 대신 정식 정부를 세우는 거다. 그래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데도 거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다. 저는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 자료가 보여주는 바대로 해석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앞으로 이런 논란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문: 독립기념관도 건국 100주년을 앞두고 올해 준비할 일도 많을 듯하다. 어떤 점을 중요하게 준비해나갈 것인가?

답변: 문재인 대통령이 한 명의 독립 운동가라도 찾아내서 포상을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2019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발굴이 중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향후 몇 년 동안 새로운 독립 유공자를 발굴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올해 범정부차원으로 100주년 기념 민간 사업회가 출범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독립기념관도 그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또 독립기념관의 주요사업 중 하나가 독립운동가 인명사전을 내는 것인데 중간보고 겸 100주년인 2019년에는 독립운동가 인명사전 특별편을 내려고 한다. 특별판은 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분들을 대상으로 해서 100명 남짓의 독립운동가를 대상으로 할 것 같다. 그것과 병행해서 독립운동가 1000명 정도로 웹 전시관도 내려고 한다.

독립운동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있는 문제,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것을 사업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려고 한다.

질문: 박근혜 정부 당시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부가 잘못됐다는 점을 사과하고 후속조치를 마련 중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강하게 반발해 난항이 예상된다. 독립기념관장인 동시에 근현대사를 연구한 학자로서 어떻게 보는가?

답변: 전제는 ‘일본군 위안부’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일본이 국가의 이름으로 사죄를 하는 게 마땅한데 그걸 오랫동안 안하고 미뤄오다 1965년 한일 협정 체결하면서 더 이상 과거 일을 묻지 않는다는 조항으로 다 끝냈다고 그동안 주장했고, 이게 한일 관계를 정상화 하는 데 장애가 되니까 납득하기 힘든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국민 정서상 잘못된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참고로 이야기하면 독립운동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정 재정 당시 제9조를 보면 사형제 폐지, 공창제 폐지가 명시돼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데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독립운동단체 강령 가운데서도 남녀평등 조항이 빠진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본다면 일본군 위안부도 식민지 공창제의 연장선상이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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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전시관ⓒ독립기념관 제공

질문: 단절됐던 남북 간 대화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빙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독립운동은 남과 북이 공유하는 민족사이고, 그 완결점인 통일국가 건설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교류협력이 진전되면 남북의 독립운동 유적이나 기념이 교류 등이 가능할까?

답변: 여건이 허락한다면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는 북한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역사학계 차원의 교류도 있었다. 특히 독립운동이나 일본에 강제동원과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서로 공유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실제로 일정부분 성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경색이 되면서 오랫동안 진행된 이런 사업이 중단됐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해빙된다면 다시 한번 이런 사업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굉장히 아쉬운 것은 내년에 3.1운동 100주년인데 3.1만세 시기는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북한 지역에서도 굉장히 많은 시위가 일어났는데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한 자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그래서 100주년을 맞이하기 전에 북한 자료도 입수해서 남북 간 공동사업도 할 수 있을텐데 앞으로 남은 시간에 가능할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질문: 이번에 취임 소식과 함께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라는 점이 다시 한번 알려졌다. 성장과정에서 집안의 내력이 영향을 끼친 점이 있나?

답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중‧고등학교때 무조건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독립운동사를 주제로 선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들은 독립운동이야기가 많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얼마 전까지 주위에 누구 외손자라는 이야기를 안했다. 어렸을 때부터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독립운동은 살기위해서 삼시세끼 밥 먹는 일이나 숨 쉬는 것이나 같은 일이지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예전 수유리 애국지사 묘역에 있던 외할아버지 묘소를 가거나, 외삼촌이 계시는 현충원을 가면 어머니에게 ‘여기에 계신 분들은 이름 석자를 남겨서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고, 현충원이라는 좋은 데서 쉬고 계시지만 독립운동 과정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희생당한 분들이 훨씬 많다. 그런 분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서 이름을 남기신 분들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높은 뜻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리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제가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있으면서 가진 개인적인 꿈은 아주 번듯한 무명 독립투사 기념시설물을 하주 좋은 곳에 만드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동상 같이 길을 가면서도 들릴 수 있는 그런 곳에 무명의 독립투사들을 기리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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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신임 독립기념관장ⓒ민중의소리

질문: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면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신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독립기념관장이 되면서 시민단체 활동이 도움 되는 점과 또 달라지는 점이 있을 것 같다.

답변: 저에게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것은 굉장히 득이 됐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성경처럼 읊조리는 말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라는 이야기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게 역사라고 이야기 많이 하는데, 그야말로 책에서나 듣는 이야기지 실제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 치열한 문제 인식이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부족한 게 많다.

다행스럽게도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그게 누가 써놓은 멋있는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역사 연구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것을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친일파 청산도 관여했고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등 현안에 대해서도 관여했다. 시민단체에서 얻은 경험, 시민들의 역사 인식을 독립기념관을 운영하는데 최대한 반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마 독립기념관 관장이라는 공직을 맡아서 과거와 같이 자유롭게 시민단체 활동을 할 수 없겠지만 시민단체에서 활동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겠다.

질문: 젊은 학생들에게 강의도 꽤 많이 하셨는데,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젊은이들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교훈이나 정신은 무엇인가?

답변: 지금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관심 갖는 게 일자리라고 한다. 청년 실업문제가 심각하니까 ‘살기 팍팍하다’, ‘기성세대에 비해 우리가 많이 힘든 것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돌이켜보면 내가 젊은 때도 그런 것 같다. 아버지 세대보다 우리세대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고 우리 자식 세대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역사를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나라를 잃었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기록을 봤더니 일제 강점기에 이 땅에 살고 있던 사람 가운데 10~20% 사람들이 해외로 나갔다. 그렇다고 번듯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일본에 가서 노동자로, 만주에 가서 소작농하면서 힘들게 살줄 뻔히 알면서도 해외로 나갈 정도로 일제강점기 상황이 나빴다.

그런데 그렇게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나간 동포도 다 독립과 해방의 꿈을 잃지 않고 노력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도 만주에서 힘들게 젊은 시절을 보냈다. 돌아가시기 전에 회고록을 남기셨는데 그중에 인상 깊은 것은 어린 시절 해마다 8월 29일 국치일이 돌아오면 만주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하루 세끼를 굶었다고 한다. 단순히 나라 잃은 설움 때문만은 아니라 설움을 승화시켜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려고 한 것이다. 그런 의지들이 모여서 결국은 독립을 이뤘다.

젊은 세대들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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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전경ⓒ독립기념관 제공

질문: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청산’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친일이 가장 큰 적폐’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친일청산 작업을 했던 분으로서 친일청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변: 저는 개인적으로 적폐의 출발점은 친일청산을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다른 민족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에서 해방 뒤에 반민족행위자를 처벌하지 않은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 그러니까 반민족 행위라는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청산되지 않는데 웬만한 잘못은 그냥 청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풍조가 만들어 진거다. 그래서 친일청산을 실패한 게 그 이후 쌓인 여러 적폐의 출발이라 생각한다.

질문: 젊은 층에게는 친일 청산 이야기가 그저 과거 이야기일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 배우의 할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어 젊은 층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답변: 친일청산도 민주주의의 원리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연좌제를 금지하는 것이다. 친일파 후손이라고 낙인을 찍고 멍에를 씌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할 때도 친일파 후손을 공개하는 것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대신 반성하고 속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마치 정당했던 것처럼, 그래서 친일청산이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할 때는 후손 이름을 공개하면서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친일 이야기가 나오면 젊은 사람들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아니냐’, ‘뭐하려고 다시 꺼내냐’라고 하는데 지금의 잘못된 역사는 친일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서 친일은 잘못된 일이었고 독립운동은 우리가 제대로 기려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질문: 끝으로 독립기념관 관장으로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답변: 독립기념관은 시민의 것이다. 시민들이 찾아와서 편안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 시작도 시민들이 낸 성금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시민들의 관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 때문에 딱딱하게 느낄 수 있는데 독립기념관은 단순히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도 있다는 것에 많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자연과 역사를 아울러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김백겸 기자 [email protected]

<2018-01-21>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인터뷰] 이준식 신임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은 민주주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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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낯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산시 조 아무개 시의원의 소개로 전화하게 됐다며 자신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아산 유족회장이라고 밝힌 뒤 유해발굴의 어려움을 말하며 아산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용을 알기에 도와드리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산지회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을 공동체에서 상영한 것,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충남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것, 홍성유해발굴에 몇 번 참석, 한국전쟁기 아산지역 학살지를 유족과 증언해 주실 분을 모셔다 다시 확인하고 증언들을 추가로 수집한 것 등이 전부다.
그러던 중 아산지역 유해발굴에 필요한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성, 진주에 이어서 마침내 이곳 아산에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의 예산을 지원 받아 배방읍 폐금광 학살지를 발굴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발굴공동조사단으로부터 유해발굴계획을 듣고 아산대책위를 별도로 구성하고 우리 연구소 아산지회가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유해발굴작업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16일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제를 올린 뒤 시굴의 첫 삽을 떴다. 첫 삽을 뜬 이곳은 그때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학살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리라고 증언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유해가 나오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노인의 무덤이었다. 당시를 증언해주시던 분들은 그때 너무 어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을 틀렸을지 모른다는 말씀이 전부였다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불안해하며 여기저기 산을 파고 뒤지다가 3일을 모두 보내고 말았다. 논의 끝에 하루를 더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해를 찾지 못하던 우리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작해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였다.
시굴 마지막 날이다. 오후 들어 마지막 한 군데만 더 파보고 없으면 철수하기로 하고 굴삭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던 중 ‘중지’라는 외침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검은 흙이 보이고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살피다가 누군가 “사람 뼈예요” “유해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 우연일까? 하늘에서 하얀 꽃가루 같은 눈이 하얗게 내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가. 68년의 어둠이 빛을 만나는 이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도 없이 하얀 눈이 한참을 내렸다. 이렇듯 어렵사리 학살당한 피해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2018년 2월 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유해들이 어둠속에서 밖으로 한 구 두 구 나오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 얽히고 일그러진 불탄 유해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열 살도 안 된 코흘리개가 어떻게 인민군에 부역을 했단 말인가. 어미의 등에 업힌 젖도 못 뗀 갓난아기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치아가 모두 닳아버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어떻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두 눈으로, 두 손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늘 이곳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바로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월 31일 40여 일을 발굴한 끝에 바닥에 맨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발굴 종료를 선언했다. 마지막 유해를 수습한 뒤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유족이 함께한 가운데 제를 올렸다. 어느 유족이 술을 따르다 마침내 오열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왜… 왜 여기에 계신 거예요. 무엇 때문에… 아버지.” 제를 지내던 발굴터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버지를 68년 동안이나 참혹한 어둠 속에 있게 한 것도 모자라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자식에게조차 숨긴 채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오다 이렇게 처참하고도 허망한 유골로 만났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설화산 산기슭 골짜기에 천년을 두고 울어줄 한맺힌 절규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유족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내서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 열일 제쳐놓고 발굴에 매달린 발굴공동조사단, 산으로 점심을 준비해 날라주던 아산대책위, 발굴이 끝날 쯤 발굴장비 철수와 감식장으로 유해를 옮기는 힘든 순간에 기꺼이 달려왔던 연구소 천안지회 회원들과 멀리 부천지회 회원들, 본부 상근자들, 심지어 카메라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영상팀과 기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40여 일을 함께했기에 유해발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아산에는 학살지가 여러 곳이 더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산의 모든 학살지가 발굴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발굴이 마무리되면 추모관을 건립하여 아산의 아픈 흑역사를 잊지 않도록 알리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이 아니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전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진달래 피는 봄이 남녘과 북녘에 함께 왔다. 그토록 그리던 봄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이 우리를 옥죄던 이념의 깊디깊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함께 치유하는 시작점이 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를 손 모아 기다린다.

금, 2018/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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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김판수회원

 

망국의 수난 그 피해자 안점순님 이승을 떠나시다

북상한다는 벚꽃은 오는 길이 더디지만
그래도 개나리는 노랑 치맛자락으로 기찻길 치렁치렁 치장하였네
아직은 이른 봄날 3월 30일
서둘러 떠나시는 님 붙잡지 못하는 우리 서러운 봄날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짐이 필연이라지만
끝까지 풀지 못한 매듭이 있어
떠나고 보냄은 너무 아쉬운 작별입니다.
“가해자 전범국 일본은 나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이승을 지키는 우리가 님을 기억하고 풀겠습니다.
편하게 가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일본제국 침략전쟁범죄 일본군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나라 없는 백성이라
납치와 강제연행, 감금과 폭행으로 목숨보다 소중한 정절을 짓밟히어
여성의 순결을 상실하고 인간의 존엄까지 박살났네
망국의 수난사를 온몸에다 새기고 천신만고 찾아오니
그리던 살붙이도 손사래치고 정다운 이웃들도 외면했네
전사는 죽어도 훈장이라도 남지만
살아 돌아온 ‘위안부’는 손가락질 따돌림이라
끌려가고 짓밟히고 버려지고 외면해도
죽지 못해 사는 질긴 목숨은 웬수보다 더 미운 네 팔자였네
아―! 누가 나보다 더 서러운 사람 있겠는가!
그토록 힘든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신 안점순 님의 숭고한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이승을 지키는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정직한 과거청산 정의로운 역사화해를 위하여

한일양국은 뗄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다. 한일양국의 선린우호는 서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일본제국이 멀지 않은 과거에 불의한 침략전쟁을 벌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주었던 전범국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범국 일본은 피침략국이 당한 수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 수모와 치욕을 함께 기억하고 선린우호가 회복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악한 착상으로 피식민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연행하여 감금 폭행한 반인륜적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국가가 주도하여 실행하였다.
패전 70년 만에 분명하고 성의있는 사죄도 없이 20만 피해자 1인당 5만원 정도 되는 10억 엔이란 돈을 내놓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우기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야만적 전쟁범죄를 반성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슬그머니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시켜 놓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강행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과거 불법 침략이 전쟁범죄로 판명났음에도 아직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교과서로 차세대에게 왜곡된 역사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선린우호를 저해하고 분쟁을 야기하려는 오만무례한 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침략야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일 양국의 정직한 과거청산과 정의로운 역사화해로 평화공존의 길을 함께 가면서 소중한 동반자로 동행하기를 기대한다.

2018.3.31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 길’ 김판수 두손모음

금, 2018/04/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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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금, 2018/04/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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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ㅇ경씨와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최종승리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12일, 조희대 대법관을 재판장으로 한 대법관 4명의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방ㅇ경씨의 상고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내려진 “5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과 3심까지 모두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ㅇ경씨는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방ㅇ경씨의 트윗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ㅇ경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ㅇ경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전 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ㅇ경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이후 대법원에 보낸 상고이유서도 연구소에 대해 “대한민국에 적대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과 궤를 같이 하여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단체에 불과” 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라 방ㅇ경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은 현재 진행중이며 5월에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방ㅇ경씨는 얼마전 가수 겸 작곡가인 윤상씨를 비난하는 트위터를 날렸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방모씨는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라는 비난성 트위터를 날렸으나 윤상씨 본명이 이윤상 이란 것이 알려지며 역대급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금, 2018/04/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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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무국

일, 2018/04/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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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雩南李承晩崇仰輩

 

雩南臨政敵(우남임정적)

國父可當耶(국부가당야)

問罪過完用(문죄과완용)

多功或莫誇(다공혹막과)

 

雩南 이승만을 崇仰하는 무리에게 고함

 

이승만은 임시 정부 敵이었느니

國父라 일컬음이 可當키나 한가

罪를 물은즉 이완용보다 더하니

功이 많다, 或 자랑 따위는 말라.

 

<時調로 改譯>

 

臨政의 敵이었느니 國父 호칭 可當한가

그의 罪를 물은 바, 저 이완용도 넘으니

공적이 多大하다며 혹 자랑하지는 말라.

 

*雩南: 이승만의 號 *崇仰: 공경하여 우러러봄 *臨政: ‘임시 정부’를 줄여

이르는 말  *國父: 나라의 아버지란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

*可當: 대체로 사리에 맞음 *問罪: 죄(罪)를 캐내어 물음.

 

<2016.9.26, 이우식 지음>

월, 2018/04/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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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NK Goodbye My Love, North Korea 연출 김소영│2017│Documentary│89min 38sec│HD│Color│16:9│stereo 언어 : 러시아어/한국어|자막 : 한국어, 영어 배급: (주)시네마달 SYNOPSIS 8명의 북한 청년들이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김일성 체제 비판 후 유라시아로 망명해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 등으로 다른 세상과 만난다 8명의 북한 청년들이 ..
월, 2018/04/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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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10기운영위원회(위원장 이민우) 김순흥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 2017년 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 정관개정안 심의 이사회에 회부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개정 이유〉
1) 분기별(년 4회)로 열리는 운영위원회가 일상 업무를 심의 의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장과 운영위원장 사무총장 운영위부위원장 5인과 실국장 5인으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매월 개최하여 그 공백을 메우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해 결정한다는 취지이다. 이는 집행부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참여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담보하는 내용인 것이다.
2) 임원은 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 등이다. 그런데 ‘임원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는 운영위원회 조항을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이 마치 위원회의 배타적 독점적 권한인양 고집함에 따라 이사장 이사들의 임원추천권을 부인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는 상급 기구인 이사회의 재량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법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에 통례에 준해 임원은 이사장 이사 운영위 등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총회에서 인준하는 과정이 합리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3) 지부사업 중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 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지부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것으로 하였다. 지부총회의 주요안건은 예결산 및 사업계획 수립과 지부장 선출이다. 지부장은 운영위 인준과 이사장 임명을 거쳐야하므로 당연히 운영위원회 승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목적사업 외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유는 강세형 전 전남동부지부장의 사례와 같이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전혀 다른 정치적 사업에만 집착하여 지부를 형해화하고 회원들의 이탈을 조장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문을 구체화함으로써, 연구소 본연의 과제를 방기하거나 지지자 몇 사람으로 총회를 열고 그 결과를 회원의 총의로 분식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소결〉
정관개정은 2016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개정소위에서 마련한 초안을 여러 차례 운영위에서 논의를 하고 제출된 의견을 수렴하여 개정소위에서 재검토한 뒤 다시 운영위 심의를 거쳐(만장일치 통과)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정관 개정은 업무의 효율성 및 운영위와 집행부의 소통을 위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운영위원회가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논의해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여인철 전임위원장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외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개정 정관으로 인해 사무총장의 1인지배체제가 되었다는 소설에 가까운 망상은 동정이 갈 정도로 평가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여인철 씨는 정관 개정의 본의를 왜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해 둔다. 

화, 2018/04/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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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4/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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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민문연에 가입한 새내기입니다.

친일청산과 이승만 박정희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용기 있게 발표한 민문연에 평소에 품고 있던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뒤늦게나마 후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보인 민문연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민족 자존의 대의를 위하여 일한다는 분들의 회의 진행 모습은 전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참가한 회원들 중 많은 분들도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총회에서 받은 충격과, 그리고 반대자들을 제명하겠다는 후속조치에 대단히 실망하였습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곳에서 저들과 똑같이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나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 회비 감축을 하고자 합니다. 최소 회비인 월 1만원으로 감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민문연이 촛불시민의 수준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때에, 타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다시 증액하고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민족의 등불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전 김영수

 

 

화, 2018/04/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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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4편; 임시정부의 활동과 좌절 그리고 이승만의 패악질’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구요
목요일은 ‘미리 가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화, 2018/04/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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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댓글 달기 기능은

일부러 뺀 것입니까?

일부러 뺐을 리는 없겠지요?

연구소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테니까요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1만여 회원들만의 연구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고 또 정말 어려울 때 3000원 5000원 후원했으며, 혹 금전적 후원을 못해도 마음으로 성원하고 사랑하며 지지한 많은 국민 또는 시민들의 연구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위한 열린게시판에서 게시된 사안과 의견에 대하여 당연히 읽은 이의 의견을 달거나 의문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홈페이지는 댓글 다는 기능이 없습니다.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입니까?

자칭? 완벽에 가깝다는 연구소가

어느 연구소보다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헌신적인 전문 상근 담당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면서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웃겠지요?

이 글을 읽는 즉시 빼야만 했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기능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1만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찾아와서

전 국민이 찾아와서

각자 연구소에 대한 칭찬도 격려도 비판도 생각도 말하고 공유하는 연구소가 되고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한시바삐 댓글달기 기능을 살려 주세요

수, 2018/04/2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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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賀全琫準將軍之銅像建立

 

腐邦東學起(부방동학기)

義血大男兒(의혈대남아)

亂政今綿歷(난정금면력)

民號立像碑(민호입상비)

 

전봉준 장군의 銅像 건립을 삼가 賀禮하며

 

푹 썩은 나라에 東學이 일어났으니

정의의 피를 흘리신 큰 男兒였도다

어지러운 정치 지금도 죽 이어지니

民은 부르짖으며 銅像과 碑 세운다.

 

*全琫準: 조선 후기  東學  농민 운동의 지도자(1855~1895).  初名ㆍ字는  명숙

(明叔). 號는 해몽(海夢). 고부 군수 趙秉甲의 수탈에 항거하여 농민 운동

일으켜 猛威를 떨쳤으나, 官軍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義血: 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 *亂政: 어지러운  정치 *綿歷: 쉬지  않고  계속됨.

 

<2018.4.24, 이우식 지음>

수, 2018/04/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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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김점구입니다

지난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개 회원인 제가 상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쌍방의 주장을 듣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판단은 보류하고 있습니다.
쌍방의 주장을 보면 
서로 극단에 서 있고, 서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동안 들리는 소문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 저를 탓하며, 회원으로서 현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극단적 상황이 2018년 3월 24일 총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몇 년에 걸친 대립과 갈등이 커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판단 보류입니다.

총회에 대한 소감은 이전에 밝혔으므로 생략하고
4월 24일 자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 건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관에서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크게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운영위원회가 게시한 글에 따르면 정관 개정 건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부터 논의되었습니다.
———
〈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제10기 제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여 이사회에 회부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은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가 이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인철  전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당시(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제안되거나 의견이 모아졌다면,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 또는 의혹제기는 터무니없고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인철 위원장 자신이 책임자로서 관여했던 규정개정소위를 부정하는 작태이고, 자신이 시작한 일을 남에게 탓을 돌리려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하여 제안 또는 논의가 없었다면 굳이 여인철 전 위원장을 개정 과정에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관 개정의 연혁을 소개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과정을 모르는 회원의 입장에서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소개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의도했다면 현 운영위원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8/04/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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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두차례 소위에 다 참여한 사람은 저밖에 없네요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한데 제가 대전 출장중이라

내일 정도에 간략하게라도 정리해 올리지요

수, 2018/04/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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