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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떠나던 날, 청파에서 가꿀 새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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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떠나던 날, 청파에서 가꿀 새 꿈을 꾸다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7:15

기고

청량리 떠나던 날, 청파에서 가꿀 새 꿈을 꾸다

김승은 자료실장

연구소가 드디어 청량리에서 청파동으로 이전을 마무리했다. 2000년 3월부터 청량리 떡전교 사거리 금은빌딩에 터를 잡았으니 거의 18년 만에 새 둥지로의 이사였다. 그 사이 10명에 불과했던 상근자가 4배 가까이 늘었고, 3층 한켠만 겨우 차지하던 살림살이는 5층과 지하, 2층 일부까지 다 채울 정도로 커졌으니 이번 이사에 만만치 않은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사무실 이사 전문 업체를 선정하고 체계적인 이사 계획을 세우는 한편, 이전해 갈 서현빌딩의 안전진단과 시설점검을 진행했다. 2006년에 준공한 건물치고는 관리가 비교적 잘 된 편이었지만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꼼꼼한 건물 점검과 필요한 보수공사는 최규필 회원이 전적으로 맡아 도와주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이나 청파동에 찾아가 건물을 둘러보고 관리 상태를 돌아보는가 하면, 공사이력을 알아내고 가장 저렴하게 보수공사를 할 수 있도록 주변 지인들을 총동원해 주었다. 그 사이 곳곳에 쌓여 있던 묵은 짐을 정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수장고에 보관했던 유물과 고도서들은 직접 확인하고 포장해야 해서 이사 두 달 전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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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유물과 고도서를 포장하는 상근자들 3 포장된 유물상자로 가득 찬 청량리 사무실 임시전시실

상근자들은 보관・활용할 사무집기와 폐기물품을 점검하고, 이전하는 새 공간의 활용과 공간 배치 등 모든 이전 업무에 각자의 힘과 지혜를 모았다. 사무실 집기들을 점검하다 보니 갖가지 모양의 책상과 책장, 의자들이 수두룩했다. 문 닫는 사무실만 생기면 가서 주어다 모았기 때문에 통일감이란 ‘1’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짝 안 맞는 낡은 집기들이 우리 연구소가 걸어온 땀과 눈물의 험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손때 묻은 책장과 책상들을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거의 다 짊어지고 왔다. 서현빌딩에도 이전 건물주가 사용하던 붙박이장과 수납장이 많았지만, 예전 책장과 사무집기들은 우리가 새로 쓸모를 찾기도 하고, 필요한 단체가 있으면 기증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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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체 이사 계획과 일정을 점검하는 상근자회의 2사무집기 점검과 배치를 담당했던 ‘떡전용역팀’ 회의

 

서현빌딩에서도 새 살림살이가 들어갈 공간 정비가 진행되었다. 이례적인 한파가 시작된 12월 1일부터 5층 내부 공사, 옥상 철거와 보수공사를 시작했다. 4층에는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동식 서가(모빌랙)를 설치했다. 각 층 전구는 모두 LED로 교체했다. 신용준 회원이 통 크게 후원해 주었고, 직접 시공까지 맡았다.
이삿날이 가까워 올수록 기온은 더 내려갔다. 이사 전에 여기저기 보수공사를 해야 했지만, 날씨 때문에 제대로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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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의실 공사를 맡아 준 디자인 쏨니엄 관계자들과 회의 4옥상에 방치된 시설물 철거 공사 5강의실 내부 공사 6새로 설치된 이동식 서가 7신용준 회원이 건물 전체 조명을 LED로 교체하고 시공까지 맡아주었다.

 

쏜살같이 이삿날은 다가왔고 아직도 정리가 덜 된 짐이 산더미였다. 이사를 하루를 앞두고 4일간 이어질 이사 일정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고 마지막 점검을 했다.

21스프레이 테러로 불그스름하게 물든 연구소 현판도 챙기고, 먼지 쌓인 연구소의 옛 추억들도 차곡차곡 상자에 담았다. 책이 예상보다 너무 많았는지 이사업체는 지하서고에 자동 밴딩 기계까지 설치하고 이틀 전부터 포장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무실은 일상 업무를 진행해야 해서 이사 전날 새벽까지 개인 짐을 싸는 상근자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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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사 이틀 전부터 책 포장에 들어간 지하서고 2연구소 소장자료 이전 준비를 마치고 이사 전날 늦게까지 개인 짐을 싸는 자료실 상근자 3통합 재단 운영 방침을 둘러싸고 새벽1시를 넘겨 이어진 실무회의. 왼쪽은 내일을여는역사재단 신용옥 상임이사, 맞은 편은 조세열 사무총장

 

드디어 12월 15일. 본격적인 이사를 시작했다. 하필 이사 첫날은 71년 만에 가장 빨리 한강이 얼었다는 바로 그날이었다. 추위도 큰 난관이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지하 서고였다. 꺼내고 꺼내어도 책은 여전히 서가에 가득했다. 다른 층 이전이 줄줄이 늦어졌다. 3층에 쌓인 짐을 건물 밖으로 실어내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금은빌딩에서 완전히 짐을 비우는 데만 꼬박 5일이 걸렸다. 게다가 이사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18일에는 대설경보가 나올 정도로 폭설이 내렸다. 이사는 또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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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월 12일, 박물관 건립 모금에 초석을 놓아 주신 송기인 신부님 등 과거사 관련 위원회 전 위원장님들이 서현빌딩을 방문해 격려해 주셨다. 53층 사무실 이전을 돕는 이용창 편찬실장과 유은호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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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금은빌딩 옛 사무실과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꽉 찬 새 사무실 2한 달 가까이 이어진 이사에 지친 신다희 사무국원 3서현빌딩에서 다시 시작된 책 정리 4연구소에서 무슨 일이든 팔 걷고 나서는 김병구 회원팀장

 

장장 일주일이 넘게 걸린 이사는 12월 20일에야 마무리되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산실이자, 민족문제연구소가 회원들과 가장 많이 만났던 3층 연구편찬실과 사무국, 친일독재미화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교과서 폐기 운동의 본부 역할을 했던 2층 교육홍보실,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꿈을 품고 도전했던 5층 역사자료관과 연구소 숨은 보물창고인 지하 서고까지 깨끗이 비웠다. 상근자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신 주변 음식점 사장님들, 배달원 분들, 늘 급하게 주문해도 신속히 작업해 주시던 복사집, 인쇄소 분들께도 일일이 작별을 고하고 청량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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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탁구대 설치를 고민할 정도로 넓게만 느껴졌다던 금은빌딩 3층 6국정교과서 폐기 운동의 산실 2층 교육홍보실 7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시범 공간이었던 5층 임시전시실

 

사무실 이전 와중에도 워싱턴·뉴욕·LA 등 미주지부 창립을 위한 순회 강연집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와 음악회,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 집회, 친일문학상 반대 집회, 서울시민대학 강좌,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아산 유해 발굴 시굴조사, 팟캐스트 시즌2 녹화 등 다양한 사업을 이어갔다. 덕분에 상근자들이 돌아가며 몸살과 독감에 시달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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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부 철거공사 후 마지막 짐을 내리는 금은빌딩 2듬직한 어깨, 친절한 미소로 이사를 기분 좋게 마무리 해 주신 ‘일사천리’ 직원분들 310년 넘게 야스쿠니재판을 지원해 온 일본 변호인들이 금은빌딩의 마지막 추억을 남겼다.

 

새 건물로 이사를 가니 챙길 일도 참 많았다. 고장난 문고리나 전선 공사는 물론 변기 커버도 직접 갈고 쓰레기 분리수거, 출입문 보안까지 모든 것을 점검하고 챙겨야 한다. 동파에 터진 수도 배관을 보며 속 태우는 사무국이나, 자동 개폐식 출입문에 아직 적응 못하는 상근자들, 꽂고 꽂아도 산적한 책들에 허리가 휘는 자료실 인턴들, 1, 2층이 아직 공실이라 고스란히 올라오는 냉기에 발을 동동거리는 3층 연구원들 모두가 아직은 이 공간이 낯설고 서툴기만 하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한결같은 회원들의 성원과 지지로 만들어진 새 둥지이니 그 안에서 새로 품은 꿈만큼은 창대하다. 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비상식・부정의와 싸워 온 지난 25년을 발판삼아 상식과 정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역사운동의 든든한 터전을 이곳 용산 청파동에서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내일의 역사를 여는 새로운 길에 회원 여러분들이 늘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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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뭉치면 산다

강인수

편집자주 – 지난 7월 하순에 일제강점기 형평사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강상호 지사의 아드님인 강인수 선생(대구 거주)이 북미교섭과 일본의 경제보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못마땅해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행태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우국시를 보내왔다.


 

대통령이
6. 25 민족상잔을 겪은 우리 민족이
또 다시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유럽으로 아세아로 아메리카로
온 세계로 동분서주
평화를 애걸복걸 절규하고 다니는데
왜 대통령을
좌파독재자라고 사정없이 몰아세울까
우리 동포가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오순도순 잘 살자 하는 것이
어찌 좌파독재가 되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일제강점에서 해방한지
벌써 일 갑자년(甲子年)이 쑥 넘어섰는데도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다시 군국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
우리나라가 망하라고
경제보복으로 재침을 시작하였으니
아!
힘을 합하여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국민이 국론통일로 단결하여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데

우리 대통령이 아무 일도 못하게
무능한 대통령이니…….
온갖 막말을 주저 없이 내뱉으며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반대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좌파독재자라면
대통령이 우리의 국적(國敵)이란 말인가
분하게도
일본 정치인이 무례(無禮)하게
감히 우리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내정간섭을 하고
일부 우리 언론인마저 대(對)일본 기사에서
한국인이 무슨 낯짝으로
일본을 대할 것인가라며 맞장구를 치고
어느 야 정당(政黨)도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판결이 잘못된 것처럼
아베에게 특사를 파견하여
무조건 항복하고 용서를 빌라 하니
아! 이 일을

일제강점은 한국을 개화한 통치가 되고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로 전락되며
강제징용은 한국 실업자를 구제한
대일본제국의 선행(善行)이 되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자존심은 사라지고
친일정서(親日情緖)에 어울리게
손발이 착착 잘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권력다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을 정적(政敵)으로 망하기만을 원한
다면

동학란 이후 대한제국이 망한 것처럼
또 망할 것이다.
좌파독재니 빨갱이니 하는 이 지긋지긋한
욕설(辱說)은 듣기만 하여도
예나 지금이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두려움이다
우리의 참 적은 외부의 적이 아니고
내부의 우리 동포간의 분열이기 때문이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말하였다.

금, 2019/09/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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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식민지역사박물관 가을역사강좌 ‘사료를 읽다, 근대 역사와 만나다’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진행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연세대근대한국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가을역사강좌가 9월 5일부터 시작하여 10월 22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일 시         강 사   주 제
9.5 .  (목) 서민교 진중일지에 기록된 의병학살
9.10  (화) 권보드래 매일신보로 본 3•1의 밤
9.17.  (화) 예지숙 회고록으로 본 친일여성들의 기억과 망각
9.19.  (목) 이태훈 시사평론을 통해 본 친일의 논리
9.24.  (화) 이임하 전쟁미망인 구술로 본 한국전쟁
9.26.  (목) 이형식 일기와 서한으로 읽는 식민지 조선의 침략자들
10.1.  (화) 이순우 항공사진으로 본 식민지 경성의 공간
10.8.  (화) 최우석 한일관계사료집으로 읽는 독립운동사
10.10.(목) 김민철 일기로 본 일제말기 전시수탈과 강제동원
10.15.(화) 송병권 GHQ문서에 담긴 해방 전후 한반도와 패전 일본
10.17.(목) 전명혁 일제강점기 형사사건과 형사기록물(치안유지법사건)
10.22.(화) 김승은 한일시민의 투쟁으로 공개된 한일회담 외교문서

 

사료를읽다,근대역사와만나다’를 주제로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화, 목요일 7~9시에 진행하는 강좌임에도, 매회 30여 명이 넘는 인원이 꾸준하게 참석하여 역사학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료를 통해 근현대사의 전개와 그 속에서 부단하게 움직인 한국인의 삶을 포착하고자 하는 강좌여서 내용이 쉽진 않다. 일기·서한집·사진 등 개인의 기록, 진중일지와 명부·신문(訊問)자료·외교문서 등 전시기 기록과 통치사료, 선언문·사료집 등 독립운동 관련 기록, 그 외에 신문·잡지 등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는 사료를 관련 전문연구자들의 해석을 통해 생생한 역사상을 수강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번 가을역사강좌를 통해 회원을 비롯한 일반시민들이 공식 역사 서술로부터 소외되었던 구술, 일기 등 생생한 원자료를 접함으로써 근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식민지 근대’의 모습을 추체험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근현대 한국의 역사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공부하고 역사의식을 함양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화, 2019/10/2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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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독립민주시민학교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특별강좌 진행

 

 

근현대사기념관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개최된 ‘백산무역과 경주최부자의 독립운동-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기획전시와 연계하여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라는 주제로 독립민주시민학교 특별강좌를 진행하였다. 최부자를 비롯한 한국 전통 명문가와 자산가의 청부(淸富) 정신과 일제시기 독립운동을 조명함으로써 지도층의 사회적 도덕적 책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고귀한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강좌는 9월 21일에서 10월 6일까지 매주 토, 일 오전 10시에 진행되었고, 매 강좌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특별강좌와 기획전시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 주었다.
첫 번째 강좌는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최창호 상임이사가 〈마지막 ‘경주 최부자’ 최준의 독립운동〉이란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였다. 기획전시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 이외에도 경주 최부자 고택에서 발견 된 많은 유물의 사진 자료들을 확인하고 최부자 댁의 ‘청부 정신’과 최준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 알 수 있는 강의였다. 2강 〈백산 안희제의 독립운동 방략〉에 대해서 국민대학교 김성민 교수가 강의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백산 안희제선생의 민족교육운동과 백산상회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강 경주 최부자 주손이신 최염 선생의 회고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고령의 연세임에도 할아버지 최준 선생에 대한 기억과 최부자 댁의 많은 일화를 들려주었고,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듯 한 추억과 함께 최준 선생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
간이었다.
그 외에도 4강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 5강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 석주 이상룡〉은 채영국 인천개항장연구소 수석연구원, 6강 〈이회영 형제들의 망명과 항일 역정(歷程)〉은 김명섭 단국대학교 연구교수의 강의로 진행되었다. 강의마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고, 5회 이상 출석률이 좋았던 13명의 참여자들에게 수료증과 기념품(도서)이 전달되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11월에도 하반기 독립민주시민학교 역사강좌를 계획하여 강북구 시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에게 양질의 역사교육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기대해 본다.

• 홍정희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원

화, 2019/10/2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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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 열려

10월 4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며, 서울시·강북구·식민지역사박물관이 후원한 ‘도쿄에서 함흥으로: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의 취지는 3·1운동 100주년을 정리하면서, 1919년 그때 우리 민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독립정신과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한 번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일본에서 새로 발굴된 〈2·8독립선언 서명자 취조기록〉과 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함흥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이시카와의 함경도 지역 3·1운동 관련자 기소 준비자료 〈대정8년 보안법사건〉을 처음으로 집중 분석하였다.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1부와 2부 주제 발표 및 3부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개회식에서 임헌영 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 그리고 한완상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의 격려사,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1부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서 최우석 독립기념관 연구원은 ‘2·8과 3·1 사이-3·1운동 준비과정을 중심으로’를 발제했다. 최 연구원은 3·1운동의 준비과정에서 2·8독립선언이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고 말하고 재일조선인유학생 송계백 고국 방문 시점의 분석과 민족대표들의 독립청원에서 독립선언으로 변화과정을 정리하여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였다. 이어서 미야모토 마사아키(宮本正明) 와세다대학 대학사자료센터 연구원이 ‘취조기록을 통해 본 2·8독립 선언으로의 도정’을 발제했다. 여기서의 취조기록은 2012년 일본에서 발굴된 「東京辯護會·第二東京辯護士會合同圖書館所藏刑事訴訟記錄」 속에 포함된 「출판법위반」 부책(簿冊)이다.
미야모토 연구원은 2·8 독립선언 서명자(최팔용, 김도연, 김철수, 백관수, 윤창석, 이종근, 송계백, 김상덕, 서춘)를 일본 경찰과 검찰이 출판법 위반 혐의로 취조한 내용과 이들의 공판기록 등을 통해 2·8 독립선언 과정을 재구성했다. 신문기록상에는 최팔용이 2·8독립선언의 중심인물이며 선언서 작성에 이광수뿐 아니라 다른 서명자들이 참여했음을 새로이 밝혀냈다.
2부의 주제는 이시카와 자료와 함경도 지역 3·1운동이다. 첫 번째로 민족문제연구소 권시용 연구원은 ‘3·1운동 참여자 처벌과 법 적용’을 발제했다. 이 발제를 통해 이시카와 검사가 115개 사건에서 총 943명을 조사해 보안법, 출판법, 형법의 소요죄와 상해죄, 훼기, 방화죄, 제령 제7호를 적용해 529명을 기소했고 이중 광범위하게 적용된 혐의는 보안법 제7조 치안방해(81건)였음을 밝혔다. 한편 이시카와 검사의 기소자들에 대한 2심 판결 검토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하거나 적용 법령의 일부를 취소하고, 기소자의 34.5%가 1심보다 감형되는 사례를 확인함으로써 재판부가 3·1운동을 강경하게 진압하고 최대한 중형을 내리려 한 총독부의 방침에 완전히 부응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조한성 연구원의 ‘함남 함흥의 지역 네트워크와 3·1운동’ 발제가 있었다. 조 연구원은 이사카와 자료를 적극 활용하여 함흥군의 지역적 특성과 기독교 학교의 실태를 확인하고 3·1운동 소식을 함흥군에 알렸던 이순영(원산), 강봉우(북간도)의 기독교적 배경과 역할을 살펴보고 함흥군에서 일어난 독립신문·격문 제작 배포운동과 조선인 관리 동맹사직운동의 전개양상을 추적하였다. 이를 통해 3·1운동과 관련해 함흥군의 다양한 지역 네트워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명숙 연구원은 ‘함남 이원 3·1운동의 내외적 전파와 전개’를 발제했다. 이 연구원은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이원군 3·1운동의 진행과정과 천도교를 중심으로 한 시위 조직과 주체를 이시카와 자료와 국사편찬위원회의 삼일운동DB를 활용해 면밀히 분석하였다. 아울러 이원군뿐 아니라 함경도 지역의 독립선언서 유입과 전파과정을 정리하고 각 군의 만세시위가 조직되어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밝혀놓았다.
3부 종합토론에서는 한상권 전 덕성여대 교수를 좌장으로 하고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윤소영 독립기념관 연구원, 장신 한국교원대 교수, 김승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허영란 울산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하여 열띤 논의를 벌였다.

• 편집부

화, 2019/10/29-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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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소개]

편집자 주–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료는 『자유신문』 1945년 10월 11일자 기사 「망명지사들 가족방문기(5)-김광서 장군편」이다. 자유신문사는 해방 직후 해외에서 독립을 위해 싸워온 망명지사들 가족을 방문하여 망명지사의 근황을 알아보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김광서 장군 편에서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연고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자료를 통해 해방 직후 망명지사들에 대한 관심과 성원이 대단히 컸음을 알 수 있다.


 

해외에 망명한 혁명지사 중 로서아로 망명하여 이래 26년 동안 그곳에 있다는 김광서(일명 金擎天) 씨의 가족을 방문코저 더듬더듬 알 만한 길을 통해 처음 얻은 소식은 이러하였다. 사직골 막바지 전 부기동 아래 무덕문 뒤로 찾으면 아직도 전에 그가 살던 구지(舊址)가 있으리라는 대단 명료치 못한 말이었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이것이 유일한 단서이었다. 무덕문 옛터라는 곳은 전에 일본인중학이던 경성중학 뒤 그리고 일인 관리들의 사택이 있는 동리이었다. 그러나 이러타 할 구지를 찾을 수 없어 그 동리에서 나아서 자라서 지금 70이 넘었다는 사직골 막바지의 고로(古老)를 찾으니 자기가 잘 아노라 하면서 들려준 이 얘기에서큰 광명을 발견하였다. 고로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저기 세집들이 많이 들어앉은 터가 바로 그 김대장댁 터이요. 지금 번지로 사직정 161번지(166번지의 오기-편집자)지요. 기미년 만세를 불렀던 바로 전 해(1918년) 가을에 김대장이 일본서 우리 동리에 나와 사시게 되었지요. 그때는 집 한가운데 연못이 있었고 연못가로 큰사랑, 작은 사랑이 이었는데 날마다같이 굉장히 손님들이 많이 오시더군요. 그때 식구는 김대장 내외분하고 나이 든 누이 한 분과 애기 둘 이렇게 단출합디다. 김대장은 아침저녁 용산군대에 나갈 적에 말을 타고 나가고 들어가는 □□ 우리와는 가까웁게 지내지 않았지만 드나드는 이 말로 보면 대단히 후한 이라고 합디다. 저 세집들이 □□ 수년 전까지도 돌기둥에 ‘김광서’라는 백자기 타원형 문패가 역력히 남아있더니 인제는 그도 저도 없어졌군요.
벌써 그 양반이 아라사로 가신 지도 스물여섯 해나 되니까 짧은 세월도 아니기는 하지요.

하며 노인은 1919년 3월 1일 만세소동이 있은 지 그 후 얼마 후에 과연 김대장의 자취가 사라지고 졸지에 헌병대와 경찰과 형사들이 그 집을 둘러싸서 이 동리 사람들까지 자유로 드나들지 못하였던 당시의 삼엄한 경계상황을 말하여 바깥과의 일체 연락이 끊긴 후 김대장의 가족들이 얼마나 갖은 위협과 곤란 중에 지내왔는가를 지금도 □□□□□□하는 태도로 한숨지었었다. 이같이 노인의 말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김경천 씨가 만세 후 로서아에 망명하였을 당시에 한 동리 사람으로 듣고 본 사실담에 한 토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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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다행히도 또 새로운 광명을 잡게 되었으니 위에서 들은 사직골 노인의 이야기가 김경천 씨에 대한 서화(序話)이라면 이것은 그 본실이며 후일담이다. 이 얘기를 들려준 분은 최근 소련으로부터 입국한 홍복린(洪福麟) 씨이다.

내가 김경천 선생을 처음 뵈옵기는 지금부터 25년 전 소련 연해주 따뷔이라는 조그만 어촌이었습니다. 20 당년의 나는 혈기에 날뛰는 한 젊은이였습니다. 말로는 큰 뜻을 품고 고국산천을 떠나 이곳에 나왔으나 아무런 계획도 아무런 경험도 없는 나로서는 사실 쓰라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때 나를 건져주시며 나를 용기있게 해 주신 분이 바로 김경천 선생님이십니다. 선생은 내가 연해주에 들어가던 바로 전 해 가을에 그곳에 오셨던 것입니다. 선생은 일본의 현역 기병대위로 혁명에 뜻을 품고 3.1운동 당시에 국내운동에 참가하다가 일본 관헌의 마수에서 벗어나 연해주로 망명하신 것이었습니다. 로서아에 입국하신 후 처음에는 그가 일본 군인이었던 관계로 조사 밀정이라는 혐의로 로서아 관헌의 박해를 당하여 적지 않은 고생을 하시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조선의 혁명가임을 확실히 알게 되자 그네들은 특별한 대우를 하게 되어 당시 10여 만이나 넘는 연해주의 조선인 통솔자로 임명하고 따뷔 어항의 어업조합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래 선생은 재주 조선인의 사도며 지도자로 활동하시는 한편 그분이 □□□ 뜻하였던 장차 조국의 완전 독립을 위하여 싸우고 또 조국이 완전 해방된 후 조국을 지킬 국군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중략) 선생이 이미 59세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까지 모발이 흴 때는 아닙니다마는 이역 고투 20여 년에 선생의 모발은 은발같이 하얗게 되시었습니다. 선생의 위업 조국 국군의 선봉이 될 중견군은 지금 크게 자라고 있습니다. 현역 예비역 후비역을 통합하면 선생의 정신을 계승한 조국 군인은 10만이나 됩니다. 이번 독소전쟁에 하리보우 싸움에서 위훈을 세워 조선 군인의 성가를 세계에 떨친 것도 선생 휘하의 조선 군인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네들은 반드시 조국을 위해서 큰일을 할 것입니다.
로서아와는 지금까지 너무 □□하고 너무 비밀을 엄수해온 □□이었던 관계로 그간에 정보를 알 길이 없고 따라서 김선생의 소식도 망명 혁명지사 중에서 알려졌던 사실이지요.

홍복린 씨의 얼굴은 흥분으로 홍조를 띄우고 그의 말은 열화를 품은 것 같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경천 씨와 다만 한 분의 육친인 손아래 누이 한 분이 현재 서울에 거주한다고 한다. 기자는 그분을 소개하기를 원하였더니 ‘너무 만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만 두셔도 좋지요’ 하였다. 기자는 김선생의 한 분 누님이 가까운 장래에 그리우시던 오빠를 만나시고 길이 행복하시라고 혁명지사 유가족에 대한 경의와 축복을 표하기로 하였다.

수, 2019/10/3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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