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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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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6:54

인터뷰

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 2017년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임국희 선생 자제 임병욱 회원

정리 : 이명숙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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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광복절 즈음이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말이 있다. ‘친일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언급하며 이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다. 나라와 민족을 우선했던 애국지사, 해방이 되고도 합당한 예우를 하지 않았던 국가, 오히려 친일파가 득세했던 세상이 있었다. 그 사이 애국지사의 가족 대부분은 3대가 망한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 호 인터뷰 주인공은 광주지부 임병욱 회원이다. 그가 들려주는 선대 이야기와 자신의 삶에는 동학농민운동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근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와 불의에 저항했던 선대가 남긴 건 가난이었지만 선대의 명예를 되찾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 2017년에 아버지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문 : 고 임국희 선생께 지난해 11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셨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먼저 묻힐 뻔 했던 아버님의 독립운동 공적을 국가가 인정해준 것이어서 정말 기쁘고, 아버님의 힘들고 어려웠던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아버님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문 :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답 : 아버님이 1901년생이십니다. 제가 1960년생이니까 저희 아버님이 60세에 저를 낳으셨구요. 저는 집안의 막내입니다. 누나 다섯 분, 형님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현재 누이 두 분과 저만 남았습니다. 제가 8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당연히 아버님의 과거사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11년 전 보훈처 홈페이지에 아버님 함자를 넣어보니 독립운동가 번호가 있더라구요. 그때서부터 아버님의 흔적을 찾아다녔죠. 전국을 다 다녔습니다. 지금처럼 독립운동 자료들이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일 때 누나들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아버지는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에서 사회주의운동가 즉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고, 그러다가 저까지 잡혀간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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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선생의 사회활동과 예비검속 사실을 보도한 1930년대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

 

문 : 임국희 선생님이 어떤 독립운동을 하셨는지 알려주세요

답 : 저희 아버님은 부산에서 신간회의 청년부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부산 지역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당시의 한국 실정을 외신기자들에게 영어와 러시아로 설명하셨구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청년계몽운동을 하셨다고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12[기록으로 전해지는 임국희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 부산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하였고, 주로 부산청년동맹에서 활약했다. 부산청년동맹은 조선청년총동맹 산하 단체로 부산에서 결성된 항일청년단체로 1927년 12월 창립 이후 부산지역의 청년운동 및 각종 사회운동을 지도하며 일제의 지배정책에 저항했다. 주요 활동은 당시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기반한 노동운동이었으며, 각종 강연회와 음악회·운동회 등을 열어 대중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임국희 선생은 부산청년동맹 집행위원 및 조사・연구부 부원, 부산청년동맹 서부지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신간회·근우회 등 부산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와 연설회에서 연사로 활약하였다. 같은해 부산조선방직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노동자파업을 지지·후원했던 일본인 사회주의자 쓰지(辻登喜吏)와 나카무라(中村忠)와 협력하여 파업 전말을 알리기 위한 격문 수백 매를 인쇄하여 조선과 일본 각지로 우송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구금되었다. 석방 후에도 꾸준히 부산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1931~1932년 일제에 의해 수차례 예비 검속당했다.]

문 : 주로 청년동맹에서 활동하셨는데, 기록으로 드러난 사실 외에 직접 전해 들으신 독립운동 내용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답 : 직접 들은 이야기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주위 친척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누나들에게 들은 후문으로는 가정은 잘 돌보지 않고 주로 외부활동만 많이 해서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고들 하셨습니다.

문 : 임국희 선생이 러시아어를 하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해외에서 활동하셨던 건가요?

답 :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공부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이 충청도에서 대대로 대농을 하며 잘 사는 집이었답니다. 큰누이가 살아계시면 지금 아흔 살이 되는데, 소학교를 다닐 때 머슴을 두고 가마를 타고 다녔다고 하니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 있는 집이었을 것 같습니다. 유학파인 아버님은 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러시아어까지 4개 국어를 하셨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정치경제학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신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아버님의 귀국 후 활동 중 외신기자들에게 우리나라 주변의 국제정세를 영어와 러시아어로 설명하시다가 체포되신 게 많더라구요.

문 : 원래 충청도 출신이신데, 활동은 주로 부산에서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답 : 물론 있지요. 제 증조부께서 동학혁명 가담자로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총살을 당하셨습니다. 그 울분을 못 참으신 할아버지께서 일본과 가까운 부산으로 가셔서 아버지를 유학 보내셨습니다. 배워야 한다구요. 당시 아버지는 꽤나 영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집이 부농이라는 것을 숨기고 가족 전부가 부산으로 이사했구요. 할아버지는 농사지으며 아버지 유학비를 대셨고, 귀국 후 각종 사건으로 아버지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돈으로 빼내셨다 하더라구요. 만약 아버지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안 하셨으면 아마 지금 저도 잘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저희 누나들은 그런 점에 있어 아버지를 살짝 원망하기도 하더라구요.

문 : 지난해 서훈 신청이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간 어떤 과정을 겪으셨나요?

답 : 네, 딱 10년 걸렸네요.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던 해에 처음 서훈 신청을 했고, 1년 후에 연락이 오더라구요. 결과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3번 더 신청서를 넣었지만 마찬가지 결과만 돌아왔습니다. 왜 우리 아버님의 독립운동이 인정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혹시 연구소에 자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지요, 아버님의 공적을 확인해 주기를요.
그런데 연구소에서 저희 아버님의 공적에 대해 너무도 자세히 조사해주고, 잘 정리해주었습니다. 사실 그 양식 그대로 보훈처에 제출했는데 그로부터 2달 후 서훈이 결정되었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서훈 결정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보통 10년 이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연구소에서 조사해주신 공적내용이 보훈처에 제출하는 ‘독립유공자평생이력서’에 잘 들어맞게 정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연구소에 감사드립니다. 또 저와 같은 독립운동가 유족이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연구소가 힘써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 아버님이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기억에 남는 아버님과의 추억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 : 아버님은 늦게라도 아들 하나를 더 보시겠다고 저를 막내로 낳으셨어요. 남들에게는 구부정하신 할아버지였지만 저에게는 아버지였죠. 부산에 살고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어요. 그분들이 모두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동지들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은 제가 5살 때 부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셨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같이 3년을 살았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많이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가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숨어 사신 것 같아요. 부산에서는 항상 감시당하시고 조봉암 사건[1959년 이승만정권이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 이후로 숨어사시다시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늘 우울해 하시던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8살 되던 해에 서러움과 가난으로 자진하셨습니다.

문 : 해방 후에도 아버님께서 감시당하고 숨어사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또 조봉암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연관이 있었나요?

답 : 제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린 나이라 직접 듣거나 기억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로 주위 친척이나 누나들에게서 전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버님은 일제로부터 36년 만에 해방이 되었는데 또 다른 나라에 지배당할 수 없다고 하시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항상 ‘방첩대’의 감시 하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님과 같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시가 심했고, 6·25전쟁이 일어나자 더더욱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이후 조봉암 사건이 있은 후에도 감시가 심해 사실상 가택연금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여서 집 밖 외출도 어려우셨습니다.
[방첩대 :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감시, 북한정권의 대남간첩활동 조사, 대북 첩보·정보수집 등 반공·방첩·정보업무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사기구이다. 실제적으로는 이승만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사찰·탄압 등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49년 10월에 창설되어 1950년 10월까지 1년여 기간 동안 존재했지만, 이후 유사한 방첩업무를 담당했던 부대까지 통칭하여 ‘방첩대’라 불렀다.]

문 : 증조부 때부터 무려 4대에 걸친 가족사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후, 회원님의 삶도 순탄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생활은 어떠셨나요?

답 : 아버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처음으로 청운동 근처 산골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1968년 김신조 사건이 일어난 후 청와대 인근 산속 마을을 전원 소거하면서 우리 가족들은 봉천동의 습지대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천막 하나 내주며 살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 그 상황이 나쁜지 어쩐지도 잘 몰랐었죠. 그곳에서 큰누나와 막내누나, 저 셋이 살던 중 큰 물난리를 겪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홀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때가 고1 때였는데, 세검정에 자리를 잡고 구두닦이 등으로 품을 팔아 생활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려웠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죠.

문 : 서울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또 어떤 계기로 지금의 광주에 오시게 되었나요?

답 : 가난의 대물림이란 것이 정말 무섭더라구요. 그 와중에도 대학에 가고 싶어 음대를 지원했습니다. 다행이 합격해서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수십 년의 서울살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포에 계시는 장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가까운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오히려 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대통령표창을 받으신 아버지가 계서 너무나 자랑스러운데, 그간 어려운 생활들로 저는 제 자식에게 해준 게 없어서 많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문 : 연구소와는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답 : 저는 2012년 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 특히 ‘프레이저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이런 것을 제작해서 배포할까, 거긴 어딜까, 이런 궁금증으로 찾다보니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알게 되었구요. 연구소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런 단체라면 적은 돈이지만 후원해야 할 듯해서 회원이 되었습니다.

문 :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적폐청산 항일음악 토크콘서트’에서 광주지부 회원님, 상근자들을 처음 만나신 것으로 압니다.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답 : 마음 같아서는 항상 연구소 행사에 찾아가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통 못 가보다가 제가 있는 광주에서 그것도 항일음악콘서트를 한다고 하여 꼭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제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거든요. 처음 들어보는 ‘항일음악’이 어떤 것인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콘서트를 본 후 쇼크가 더 컸어요. 이런 항일음악은 중고등학교에서 알아서 자체적으로 교육하고 콘서트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이런 내용을 연구소가 전국을 찾아가서 하고 있다니. 더 나아가 현재의 음악교육에 친일음악, 친일음악인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교육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충격 속에서도 콘서트 자체는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길어 나이 먹은 사람은 오래 있기 좀 힘들었습니다. 무릎이 아프더라구요.

문 :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답 : 하루빨리 아버님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 전에 신청했고,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아버님의 업적을 찾을 수 있는 만큼 더 찾고, 동학혁명으로 돌아가신 증조부의 행적도 더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서훈 이후 후손에 대한 예우보상을 일정 부분 받게 되었는데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꽤 있더라구요. 독립유공자 자녀의 평균 연령은 87세, 손자녀는 77세로 모두 상당한 고령이십니다. 집안 막내인 저는 60대로 독립유공자 손자녀보다도 젊은 편에 속하죠. 그런데 친일파의 후손 중 자녀도 제 나이 또래는 상당히 있습니다. 김무성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죠.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에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은 3대까지 국가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며 보훈 보상 체계 개선을 말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령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조속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또한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란 긍지를 갖고 연구소 활동에 더욱 관심을 쏟으며 연구소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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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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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기에 누구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도를 넘거나 지나치게 되면 독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해서
지금의 고통과 치욕을 경험하고 있나 봅니다…..

저의 물욕에 눈이 멀어서 1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과 연민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질타와 멸시를 받으며
지난 세월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존경하는 함세웅 이사장님….
신부님의 명성과 함자를 감히 제 입에 담기도 송구 스럽습니다….저 또한 모태 신앙인 으로서 살면서 주님께 수 없이 죄를 사해 달라고
저의 욕심때문에 생긴 이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극복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매일매일 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죄가 너무나 커서 인지 아직도 주님의 벌은 제 입장에선 정말 가혹 하기만 합니다….

지난 1년여 의 시간동안 IDS라는 단어는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고 피해자들의 소리는 점점 피 맺힌 절규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은 죄를 용서받기에는 아직도 멀었지만 정신을 차려서 많은 수의 피해자분들과 함께하면서 피해보상을 찾기위해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서 조금은 희망을 찾아 가는 중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 희망이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일부 피해자들로 인해서 무참히 짓 밟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만 30여명이 1만2천명을 대변 할 순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변호사님 또한 자본주의에서 수익 창출을 당연히 하셔야 하는것도 충분히 이해 합니다.
하지만 그 수익 창출로 인해서 수 많은 사람들을 천길만길 낭떠러지로 내 모는 형상이 된다면,그리고 신부님을 도와 주시는 분께서
그 일에 앞장 스셔서 이런일이 벌어 진다면 그 동안 쌓아 올리신 명성과 명예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자라면서 저희 아버님께서 늘 “너 살자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쳐다도 보지말고 관여도 하지마라”라는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나름대로 50여년을 살면서 아버님 말씀을 잘 지켜 왔다고 자부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인범도 변호 받을 권리,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 건 뭐라 하지 않습니다만 지금의 피해자들은 그 어떤 곳으로부터도 변호를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비참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파산신청자들의 법률비용을 가해자인 지점장들로 부터 도움을 받을려고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이게 말이나 됩니까?

존경하는 신부님!
저희들의 눈 먼 욕심을 용서 받거나 위로 받을 수 없다는 건 모든 피해자들이 동감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서른일곱분의 영혼은 아직도 연옥에서 통한의 눈물을 쏟고 계실겁니다….

감히 신부님께 간절히 간청 드립니다….

정만순 변호사님의 파산변호를 말려 주십시요….건방지게 들리 실수 있으시겠지만 1만2천명의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사람은 명예를 함부로 버리거나 먹칠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저희들의 고백성사라 생각 하시고 정의를 바로 세울려고 하는 저희들의 뜻을 헤아려 주시길 진심으로,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신부님 건강 조심 하시고 늘 주님의 은총이 가득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드립니다..

2017년 12월 6일 최명민(프란치스코) 올림

수, 2017/12/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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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IDS 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명입니다.

2016년 9월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이 되고

그 이후 모집책이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저의 상황을 너무 잘 알고 그동안 너무 신뢰했었던 사람이기에

이 일에 대해 모든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되고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 조금 정신을 차려

이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전액은 아니더라도 단돈 얼마라도 제발 변제를 해주었으면…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양파껍질같이 하나하나 들어날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제발…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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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만순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가장 잘 아시겠지만 IDS fx 마진 사업과 셰일 가스 사업에 투자한 1만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1년 넘게 고통받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세상을 등진 분들이 37명입니다.

피해자들의 최종 목표는 투자금을 다시 돌려 받는것일겁니다. 김성훈과 사측은 이를 악용하여 책임지겠다 변제하겠다 피해자를 무시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파산이라니요.

그동안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수많은 의로운일을 행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피해자들의 눈물을 헤아려주셔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세요.

피해자들은 파산이 결정되면 정말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일이 또 일어 날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변호사님의 현명하시고 의로우신 판단으로 파산을 꼭 막아주세요.

눈물로 호소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수, 2017/12/0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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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IDS 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명입니다.
2016년 9월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이 되고
그 이후 모집책이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얘기해온 변제는 모두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록 전액은 아니더라도 단돈 얼마라도 되찾아보고자 법적으로 발버둥쳐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이런 사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날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피해금 일부의 회복은 커녕,

그 일부라도 복구하고자 법원과 변호사에게 쏟아부은 돈까지 모두 먼지처럼 날려갈 생각에

살아갈 한줄기 희망마저 사라져감에 미쳐버릴것만 같습니다.
제발… 제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김성훈은 파산을 통해 그 모든 책임을 면제 받아서는 안됩니다…

도와주십시오 제발…

수, 2017/12/06- 17:37
104
0

IDS 홀딩스 사건의 피해자 입니다.

희대의 사건으로 일컫어지는 김성훈 사기사건으로

하루도 맘 편할 날없이 지내고 있는 요즘인데,

파산신청 이야기가오가며 피해자들의 마음을

더 옥죄고 있습니다.

법앞에 공정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시어

1만 2천명의 피해자들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주세요.

김성훈의 파산신청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부탁입니다.

수, 2017/12/0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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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제2의 조희팔” IDS홀딩스 사건의 피해자의 한사람으로
거대 사기사건에 휘말려 삶이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변제해준다고 해서 기다렸고
기다렸고 또 기다렸지만
단 한푼의 변제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파산을 하여 면책을 받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12,000명의 피해금에 대한 파산을
극히 일부인 29명의 파산신청인이 대표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 아닙니다

수, 2017/12/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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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IDS는 온갖 권력비리의 표본 입니다!!

인터넷에서만 이라도 검색을 하면 정치인,경찰,언론인 등등 연루 안된곳이 없을 정도 입니다!!

이러한 연결로 인해서 사기주범은 최초 재판때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 됐습니다!!700억원의 사기를 쳤는데도 말입니다!

이일로 인해서 사기공범들은 죄는 있지만 큰 죄는 아니라라며 대대적 홍보를 하여 우매한 피해자가 더 양산되는 꼴이 됐습니다

물론 저희들도 일말의 반성과 책임을 면 할 수 없는건 인정 합니다…

아직도 이 적폐는 소위”윗선”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디 조사하고 적폐청산을 간곡히 요청 합니다!!

변호사님께서 변호를 하시는건 당연한 일 입니다 하지만 파산을 시켜서 피해자들 돈 찾는다는건 정말 무리라는건 변호사님께서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부디 파산변호를 다시한번 생각해 주시고 처음 이 연구소에 오실 때 마음이 끝까지 변치 않으시길 바랍니다..부탁 드립니다

수, 2017/12/06- 16:23
53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6
11
0

안녕하세요!

저는 IDS홀딩스  1만 2천명의 피해자중 한사람입니다.

 

2016년 9월 2일

IDS 김성훈대표가 긴급구속 되고

그 이후 모집책으로부터 김성훈대표가 100%변제를 해줄것이라며 기다려달라고만 했습니다

본인도 큰돈을 투자했으며

IDS가 잘못되면 자신이 더 큰일난다며 지난 1년이상 민사 형사 소송을 지연시켜왔습니다.

 

물어볼때마다 희망고문 하듯

잘 될꺼라고만 했고

실질적인 변제안이 나올거라며

너무 확신에 차서 말을 했기에

전 믿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와서는 제가 결정하고 투자한거니 변호사비용이며 법원 인지세와 송달료등을 요구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써는

다 따를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도저히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경찰서에 찾아가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김성훈을 비롯하여

모집책 또한 같은 사기공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이제라도 이 일을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잠을 설쳐가며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을 다스려가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정말 피같이 모은 돈인데

그냥 이대로 사기맞은것으로 끝난다면 미쳐버릴것 같고 절대 절대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하여 변호를 받고

구치소 동기인 한재혁과 공모하여 또다른 사기변제안을 만들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한 씨는 김성훈 ‘구치소 동기’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6792

 

 

그 대위변제자는 피해자들의 피같은 돈으로

경찰 인사 청탁을 하고

 

IDS홀딩스 대위변제자, 경찰 인사 청탁 정황 드러나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9452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씩 들어날때마다 어이가없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는 또 다른 커다란 시련이 떡~!하니 나타나  피해자들의 앞을 가로막아

추운겨울 한파가 뼈속을 파고들고 흘린 눈물이 얼어붙는것같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행동을 하는 곳이고

이런 훌륭한 곳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계시는 분이니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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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기는 남의 일인줄 알고 살았던 IDS 피해자 입니다.

16년 9월 IDS 대표 김성훈이 구속되고

IDS 가 불법 다단계 조직임이 밝혀진 상황에서, 단 한번도 변제가 행동으로

이루어 진적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감언이설로 피해자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산이라뇨~

피해자가 1만명이 넘는데, 고작 29명이 파산을 신청해서 김성훈에게

1조가까운 피해금의 면죄부를 준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를 받고, 반성한다면 피해회복을 위해

행동을 해야 하는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제발 김성훈의 파산을 막아주세요

 

 

수, 2017/12/0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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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S 피해자 입니다.

사건 이 후 왜 이리도 이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친일파 적폐와 김성훈의 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공통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말과 글로써 백성을 기만했다.
2. 국가와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저질렀다.
3.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아직도 잘먹고 잘산다.
4. 지식층 권력층과 규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 받고 있다.

반면, 그때나 지금이나 백성들은(사기 피해자들은)매일같이 피빨리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는 확고 합니다. 그것이 친일파 적폐이든 사회 전반의 적폐이든…
다만, 피해자 구제는 요원합니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의 파산 변호를 맡으신 변호사님…
변호는 자유입니다.
다만, 이 사회가 아직 정의롭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니까요.
또한, 이번 변호를 통해 얻은 금전도 자유입니다.
다만, 친일파의 더러운 돈과 김상훈의 돈이 다르지 않음을 피해자들은 아니까요.

부디, 파산을 통해 1/n 구제가 합리적이라는 논리에 현옥되지 마시고, 또한 적폐의 우두 머리인 김성훈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주지 마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다시한번 생각하시고, 백성들과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변호를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수, 2017/12/0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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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변호사님

저는 어디에도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하는 ids피해자의 한사람입니다

김성훈은 정관계 로비까지하며 1조원이라는 피해금을 키우고

 

지금 1년 3개월동안 변제한다 속이며 피해자들을 기만해왔습니다

김성훈은 평생을 피해자들 변제를 위해 살아도 모자랍니다

저는 돈만 잃은것이 아닙니다. 1년3개월동안 가정도 파탄이 났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병원치료도하며 힘든시간을 버티고있습니다

김성훈은 피해자들에게 파산을 통해 변제한다 이상한 말을합니다

그 돈음 피해자들것인데 자기것인냥 변제한다 떠들어댑니다

정만순 변호사님께서는 이런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아실거라봅니다

변호하고 계신 파산신청이 1만명의 피해자들에게 어떤 일로 다가올지

생각해주십시요  저는 김성훈이 파산하는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가정을 망쳐놓은 파괴범이요 사기꾼입니다

이런자를 돕는 일을 부디 멈춰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수, 2017/12/06- 19:08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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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IDS 홀딩스의 피해자입니다.
Ids
홀딩스는 2심에서 15년형을 받은 금융다단계로 37명이 목숨을 잃은 사기사건 입니다.

김성훈은 입으로만 피해자들한테 변제한다. 할수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1년이 넘는 시간동안 피해자들에게는 단한푼도 변제 하지 않고,지금도 피해자들을 계속 죽이고 있습니다.

피해 변제를 받기위해 집중하기에도 모자른 시간에 김성훈의 파산을 막기 위해 저희는 생업을 뒤로하고 진정서와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성훈의 파산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김성훈의 파산은 김성훈의 파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공범자들.. 지점장과 본부장 모집책들도 파산 신청을 할겁니다.
그리고 사기를 진행 중인 많은 금융사기꾼들의 표본이 될것입니다.

소수의 피해자들과 파산을 진행중인 정만순 변호사님,
부디 부당한 파산으로 더이상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수, 2017/12/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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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IDS홀딩스 사건은 제2의 조희팔사건이라고 불리우며 피해자 1만2178명, 피해액 1조 969억원에 달하는 사건입니다.

현재 IDS  홀딩스 대표 김성훈은 2심 징역 15년 구형을 받았으며 현재는 대법원 상고 중입니다.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변제해 주면 무죄를 증명할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텐데도 여전히 피해자의 피해금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할뿐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꼼수로 1년 5개월이나 변제를 미뤄오고 있으며 오직 자기 살길만은 모색하고 있는 사기꾼 입니다.

가짜 변제안, 자산가치도 증명 되지 않은 회사의 주식변제안 그리고 최근에는 파산신청까지 진행하며 여전히 피해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시대의 사기꾼 입니다.

김성훈의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1만여명의 피해자들은 끝없는 괴로움으로 힘들어 할것이며 사기꾼과 그 공범자들은 또다시 이런 유사한  사기를 치며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 것입니다.

왜 변호사님은 이런 일에 사기꾼 김성훈편이 되시려는지요?

피해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고

김성훈의 실체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주세요..

 

 

목, 2017/12/07-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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