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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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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7:41

식민지비망록 32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 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 희생된 만초천 물길의 돌다리들

이순우 책임연구원

칠패, 팔패, 이문골, 도저골, 쪽다리를 지나 청파 배다리, 돌모루, 밥전거리, 모래톱 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뜰 건너 남태령 넘어 인덕원 지나 과천에서 중화하고 갈미, 사근내, 군포내, 미륵당이를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하략)

 

이것은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 1925년 12월 4일자에 연재한 〈춘향(春香)〉에 수록된 한 대목으로,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서울도성 남대문을 나서 전라도를 향해 내려가는 행로가 길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칠패니 이문골이니 돌모루니 하는 곳들처럼 더러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고, 도저골(도동), 청파, 동작, 남태령, 인덕원과 같이 지금도 제법 익숙한 지명들인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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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전도(완산본)>에 표시된 청파주교의 위치.이곳을 지나석우(石隅,돌모루)에 이르면 다시 노량진(당고개경유)이나 동작진 또는 서빙고진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정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정리고(程里考)에는 ‘성문분로(城門分路)’ 즉, 서울 도성의 각문을 나서면 전국으로 갈라지는 길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의 남쪽을 향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행로는 동작나루를 건너는 8대로(해남 방향)와 서빙고로 넘어가는 4대로(동래 방향), 그리고 노량진으로 연결되는 7대로(수원 방향) 등 세 가지가 있다.

<대동지지> ‘정리고’에 표시된 청파 배다리 경유 주요 대로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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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 숭례문을 벗어나면 이문동을 거쳐 석우참(石隅站, 돌모루참)에 이르러 각각의 길이 갈라지는데, 요컨대 그 옛날 삼남지방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청파 배다리와 청파역이 오늘날의 경부고속도로 양재 톨게이트나 만남의 광장쯤으로 받아들여졌던 셈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 국왕 정조가 화성능행에 나서거나 효창원에 행차할 때도 이용했던 행로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머릿속에 담아둘 만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성현(成俔)의 문집인 <허백당집(虛白堂集)>에 수록된 ‘청파석교기(靑坡石橋記)’에 따르면 이곳에 돌다리가 처음 놓인 것은 연산군 때의 일로 확인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대개 이곳을 ‘배다리’라고 불렀던 모양인지 여러 고지도나 문헌자료에는 이곳을 ‘석교’라기보다는 ‘주교(舟橋)’로 표시해놓은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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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에 설치된 ‘청파 배다리 터’ 표석.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거듭 등장하는 청파 배다리가 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 서울역 앞쪽에서 용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동자동과 갈월동의 경계면을 따라 경부선 철길 아래를 비스듬하게 뚫고 지나는 갈월가도교(葛月架道橋)라는 이름의 쌍굴다리가 이내 나타난다. 이곳을 통해 청파동 쪽으로 건너가면 1997년 9월에 서울시에서 세운 ‘청파 배다리터’를 나타내는 표석 하나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협회본부(청파동 1가 161번지) 앞에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표석은 잘못된 고증의 결과물이며, 원래 배다리는 300미터 남짓 북쪽으로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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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사>제2권(1936)에 수록된 청파배다리일대의 전경. 만초천 물길 위에 놓인 이 다리에 인접하여 경인철도가 그 옆으로 함께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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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래거문(漢城府來去文)>에 수록된 남대문외 지도. 동그라미 표시는 각각 오른쪽 위가 숭례문, 가운데 위가 염천교, 가운데 아래가 청파 배다리의 위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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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에 작성된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 부지협정도’. 동그라미 표시는 각각 왼쪽 위가 숭례문, 왼쪽 아래가 염천교, 가운데가 청파 배다리이며, 그 오른쪽에 점선으로 표시된 것이 신설되는 우회도로(지금의 갈월가도교 자리)이다. (<조선철도사> 제1권, 1929)

 

이 자리는 현재 서울역 철도부지에 편입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이 부근의 지적도면을 살펴보면 청파 배다리의 원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서울역 안쪽 플랫폼의 남단부 아래에는 ‘서계동 76번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동쪽으로 동자동과 접한 경계선 가운데 유독 배가 불룩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가 나타난 것은 원래 만초천 물길이 흘러내리던 흔적이 그대로 동네의 경계선으로 굳어진 탓인데, 이를 통해 청파 배다리의 원위치를 가려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청파 배다리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1902년 작성된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 부지협정도(京釜鐵道 南大門停車場 敷地協定圖)’에 잘 드러나 있다. 일본자본으로 이뤄진 경부철도회사가 남대문정거장을 경부철도의 종착역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 일대의 철도부지가 광범위하게 편입되는데, 이때 청파 배다리로 연결되는 기존의 도로가 차단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오랜 세월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의 길목 역할을 했던 옛 돌다리는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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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서 용도 폐기된 청파 배다리를 대체하기 위해 조성된 갈월가도교의 현재 모습.

 

이와 아울러 이 지점에서 남쪽으로 멀찍이 물러난 곳에 별도의 우회도로가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 경부철도와 교차하도록 굴다리가 조성된 것이 오늘날 ‘갈월가도교’의 원형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철길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는 대개 직각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전차선로가 함께 지나는 탓에 회전반경과 기존도로의 연결관계 등을 고려하여 사선(斜線)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더하여 청파 배다리의 존재를 완전히 말살시킨 것은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에 시행된 남대문정거장 일대의 대규모 개축공사였다. <경성일보> 1919년 2월 21일자에 수록된 「남대문역 개축설계」 제하의 기사는 경성역과 수색역을 곧장 잇는 ‘경의선 직통노선 개설공사’와 관련하여 장차 변모할 남대문정거장 일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고 있다.

 

[설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역전광장은 시구개정(市區改正)과 정거장의 개축 등에 의해 그 면적이 현재의 3배로 확장하고 구내의 총연장은 650간(間), 즉 약 11정(町)에 달하며, 그 북단은 봉래정(蓬萊町) 1정목의 도로에서 80간 북방으로 넓히는데, 이곳에 남대문소학교 정문과 봉래정 1정목 통과의 중간부터 서쪽을 향해 새로 개착하는 12간 도로와 접속시키며 새로 다리를 놓고 건널목을 만들어 현재의 봉래정 건널목은 폐지하기로 되었다.
[하상(河床)의 이전(移轉)] 역의 서부를 흐르는 하상은 상류 서소문 외 합동(蛤洞) 부근에서 일직선으로 남쪽을 향하도록 교체하고, 현재의 하상 위치는 이를 매립하여 역 구내에 이용하고 곳곳에 교량을 가설하며, …… 이와 관련하여 새로 변경하는 하상의 폭원은 8간으로 이에 부수된 도로는 10간폭이 될 것이라 한다.

 

이렇듯 대규모의 경성역 개축공사에 곁들여 만초천이 직선화하면서 원래의 물길은 사라지고 오늘날 서울역 후면에 자리한 청파로(복개하천)가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바람에 그나마 간신히 남아 있던 청파 배다리의 옛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대상은 ‘염초청교(焰硝廳橋)’의 행방이다. 이 다리는 남지(南池) 옆 칠패길을 거쳐 만리재나 애오개로 건너갈 때 반드시 경유하던 곳이며, 흔히 ‘염천교(鹽川橋)’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은 위의 기사에 나와 있듯이 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서 하천 물길과 더불어 매립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남대문 옆 상공회의소 앞쪽에서 중림동 약현성당 쪽으로 건너가는 다리의 이름이 ‘염천교’이다. 그러니까 이 다리는 여전히 실존하는 다리인 셈인데, 이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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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21년 3월호에 수록된 철도과 선교 ‘봉래교(蓬萊橋)’의 모습이다.1920년 5월에 준공된 이 다리는 당시 ‘경성역과 수색역간 경의선직통노선’을 만들 때 우회도로의 용도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엉뚱하게도 ‘염천교’로 둔갑한 상태이다.

 

알고 보면 이 역시 ‘청파 배다리터’ 표석이 엉뚱한 자리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오류투성이다. 현재 염천교로 오인되고 있는 이 다리의 원래 이름은 봉래교(蓬萊橋)이다. 이것은 일제가 수색역 방향으로 직통선로를 만들 때 ‘오리지날’ 염천교를 없애버리고 경성역 뒤쪽으로 연결되는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 만든 과선교(跨線橋; 1919년 7월 15일 기공, 1920년 5월 24일 준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염천교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익숙하게 남은 탓인지, 봉래교라는 존재는 부지불식간에 잊히고 그 자리는 종종 염천교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이 다리의 교각에는 ‘염천교’라는 이름이 버젓이 달릴 정도로 일제가 만들어놓은 봉래교는 이제 완전히 염천교로 둔갑한 상태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봉래교라는 것은 봉래동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텐데, 실상 이 이름조차도 일제가 이 땅에 남겨 놓은 고약한 왜색지명의 하나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경성부사????제2권(1936),536쪽에수록된내용에따르면“청일전쟁개시전일본거류민은전전긍긍하며 사지에 처한 상황이었으나, 일본군이 입성하여 만리창에 막영(幕營)하고, 현재의 봉래정(蓬萊町)을 거쳐 남대문 안으로 들어와 거류민을 보호했다. 거류민은 흡사 봉래도(蓬萊島: 신선이 살고 있다는 불로불사의 이상향)에 온 듯한 생각을 했으므로 이 이름을 붙였다.”고 적고 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잘못된 다리 이름은 서둘러 바로 잡아주거나 차제에 새로운 명칭으로 바꿔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일제에 의해 지형이 크게 훼손된 청파 배다리와 염천교의 경우 원위치에 가장 가까운 곳을 선정하여 올바른 ‘표석’을 설치하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만약 안내문을 덧붙여야 한다면, 일제에 의해 이 다리들이 사라진 과정도 꼭 함께 서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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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2/0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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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유산에 어두운 역사도 담겨야…강제동원 상처 아물지 않았다”
日강제동원네트워크, 민족문제연구소와 ‘강제노동’ 가이드북 출간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게 하시마는 쇠창살 없는 감옥이자 공포의 노동 현장이었다.”

일본 정부가 재작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나가사키(長崎)현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등 메이지 산업시설의 강제동원 역사 은폐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일본 시민단체가 진상 알리기에 발벗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시 약속한 강제동원 실상을 알리는 정보센터를 하시마에서 1천㎞를 훌쩍 뛰어넘는 도쿄에 설치하기로 하는 등 각종 꼼수를 동원해 은폐에 급급한 상태다.

이런 일본 정부에 맞서는 일본 시민단체는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다.

이 단체는 최근 우리나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동원’이라는 책자를 내고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만행을 속속들이 고발했다.

한국과 일본의 양심있는 사람들이 함께 참가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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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시민단체가 공동발간한 강제동원실상 소개 책자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출간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책자. 양측은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으로서 이 책자를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각각 만들었다. 2017.12.12 [email protected]

우선 하시마에 대해 가이드북은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린다”며 “하시마 전체가 탄광으로, 바다 곳곳으로 갱도가 펼쳐져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1939년부터 하시마와 바로 옆 섬에 있는 다카시마탄광에는 4천명 정도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에게 하시마는 쇠창살 없는 감옥이자 공포의 노동 현장이었다”며 “탈출은 어려웠고 끌려간 이들에게 그곳은 지옥섬이었다”고 가혹했던 실태를 전했다.

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군함도에는 1939년부터 1945년에 걸쳐 1천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장(火葬) 관련 문서로 확인된 사망자는 50명 가량이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사고로 변을 당했다. 탄광 매몰에 의한 질식사, 압사, 외상에 따른 사망, 여기에 탈출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익사도 있었다.

책자에는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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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강제동원 실상 담긴 책자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가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출간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 책자에서 군함도의 실상을 설명한 부분. 양측은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든 세계유산 가이드북’으로서 이 책자를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로 각각 만들었다. 2017.12.12 [email protected]

실제 1943년 전북 김제군에서 군함도로 끌려온 윤춘기 할아버지는 “임금의 3분의 1은 강제 저금되었고, 3분의 1은 고향에 송금한다고 했지만, 귀국해 보니 송금이 전혀 안됐다”고 일본측을 고발했다.

그는 “식사는 외국 쌀로 지은 밥과 국뿐이었다”며 “밥에 주먹 정도 크기의 감자가 들어있었기 때문에 밥은 겨우 세 숟가락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고 당시 열악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최장섭 할아버지의 경우 14세이던 1943년 전북 익산에서 군함도로 강제동원됐다.

책자에는 “도주해서 잡히면 고무 튜브로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맞고 고문을 당했다.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1945년) 원폭 투하 후 8월 18일쯤에 청소를 하러 나가사키 시내에 갔을 때 ‘인간 지옥이 여기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그의 증언도 소개됐다.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관계자는 12일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설명 속에,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되는 강제노동 등 어두운 역사도 담겨야 한다”며 “이는 2차대전이 끝난 지 70여년이 지났어도 아직 강제동원·강제노동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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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동원 실상 담긴 책자

[email protected]

<2017-1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군함도는 지옥”…日시민단체, 진상은폐 日정부 ‘꼼수’에 맞선다

※관련기사

☞한국일보: “군함도는 지옥이었다” 日시민단체, 일제 강제동원 만행 고발책자 출간

세계일보: ‘군함도 진상 규명’ 책 출간한 日 시민단체

☞인사이트: ‘군함도’ 사실 은폐하려는 아베에 맞서 싸우는 일본 시민들

※참고자료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전체 역사를 알게 하라‘는 이렇게! –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만든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강제노동』가이드북 공개

※ [다운로드] 2017 유네스코 가이드북 [한글] [영문] [일문]

화, 2017/12/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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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박주민의원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박한용 실장과 박주민 의원이 만났습니다~!

수, 2017/08/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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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은 우리 민족의 핵이자 세계평화의 핵이다.

세계 인류역사의 흐름에서 국제관계는 오직 힘과 힘의 대결이었다. 양심에 의거한 국가 대 국가의 협정과 약속은 강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파기되는 것이 일반이었다. 이런 세계사의 흐름에 북은 핵무력 강성국가로 우뚝 자리 매김 했다.

지난 시간은 어땠는가!
소위 말하는 강대국이라는 국가들이 조그만 땅덩어리의 북을 전 세계적로 제재하고 압박하여 고립압살정책을 펼치지 않았던가! 심지어 같은 노선을 걷고 있던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 조차도 그 힘에 아부굴종하며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이나 자행되어 온 미제의 침략적 만행과 비겁한 주변국의 동조에도 불구하고 북의 위대한 인민들과 지도자들은 전세를 역전했다. 지금은 오히려 압도하고 있다.

바로 북의 핵무력!

북핵은 지금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내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평화의 핵이 되고 있다. 전쟁광 미제놈들은 이렇게 종이 호랑이처럼 북핵의 위력 앞에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너도나도 북핵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이다.

힘이 없어 죽임 당했고, 굶어 죽었고, 수탈 당했던 한반도 피의 역사가 말해주지 않는가!
인두겁을 쓴 제국주의자들의 짐승같은 만행은 여전히 중동에서 무참히 학살되고 있는 어린이와 노인, 여성들, 고문 받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 협정을 맺기 위해서 그렇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북핵이 있어야만 지금의 대화국면이 계속 될 수 있다. 미제를 흔들어 좨치면서, 국제적인 강국들 사이에서 평화의 깃발을 쥐고 있는 근본 힘은 바로 북핵이며, 북의 단결된 민중의 뜻이다.

우리민족의 핵이 결국 강성번영통일국가의 핵으로 되는 것이다!
평화의 핵! 민족의 핵을 온 힘을 다해 지켜가자!

목, 2018/03/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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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ongak.net/board/index.html?id=nca123&no=34437

 

진보진영 길들이기 성공을 기원한다.

국정농단 세력들이 처벌을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이 급진적 좌파정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문재인 좌파정권이 당선이 되고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우려되는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하지만 그나마 여전히 애국적인 국가공무원들이 주요 행정, 입법기관에 자리잡고 있어 속도조절이 가능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최근에 이같은 정국에 대한 걱정이 가득해 예전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안탑깝게도 그분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애국적인 활동을 하는 정부기관에서 정보활동을 하시는 나름 지위가 높은 훌륭한 분이였다. 그분의 살아온 인생 얘기를 들어보니 특출한 재능과 우수한 학력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정보기관에서 일을 하셨으며, 정권이 몇차례 바뀌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켜가며 지금까지도 열정적인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겉으로는 우리나라 곳곳에 적폐들을 청산하겠다고 급진적인 행보를 걷는 것처럼보이는게 모두 계획적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작전’같은 것이라는 말에 나는 믿음이 간다. 소위말해서 문재인 지지자들을 통해서 진보진영에 간접적인 통제와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손바닥 안에 놓기 위한 행보를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민주노총 선거에 민주당 지지자를 배치해서 선거를 진행하고 있는 것과 총파업(민중 총궐기) 같은 행위를 하는데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청와대에서 개별적인 만남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알려주었다. 믿음이 가는 것은 좌파집단들이 촛불항쟁 1주년이라며 생난리를 쳤던 10월경에도 그분의 작전으로 여의도에서 문빠들을 동원한 집회를 만들어내면서 나라가 다시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막아내는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했다며 진심을 다해 얘기해주었다.

여전히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국정농단의 잔해물들이 남아 있지만, 이렇게 애국적이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면 급진적인 좌파세력이 우리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보진영을 충분히 길들이고 통제한다면 문재인 정부를 합리적인 선에서 지지할 수도 있겠단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들은 문빠들만 제외하고 모든 진보진영과 보수단체를 모조리 다 죽여버리겠단 마음으로 활동하는 위험천만한 인종들도 있다고 하는데 내가 만난 그분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정도야 거뜬히 극복할 수 있을 듯하다.

문재인 정부가 정말 믿음이 안가고 걱정되는 부분이 많지만, 문재인 측근들이 시민사회단체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니 앞으로의 국정운영이 급진적이지 않게 합리적으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촛불좀비들과 민주노총이라는 단체만 잘 길들여도 얼마나 평화로운 나라가 될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국하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나라걱정을 덜어본다.

금, 2017/12/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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