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지역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7:41

식민지비망록 32

삼남으로 가는 길목인 청파 배다리는 왜 사라졌을까?
– 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 희생된 만초천 물길의 돌다리들

이순우 책임연구원

칠패, 팔패, 이문골, 도저골, 쪽다리를 지나 청파 배다리, 돌모루, 밥전거리, 모래톱 지나 동작이 바삐 건너 승방뜰 건너 남태령 넘어 인덕원 지나 과천에서 중화하고 갈미, 사근내, 군포내, 미륵당이를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참나무정이 얼른 지나(하략)

 

이것은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 1925년 12월 4일자에 연재한 〈춘향(春香)〉에 수록된 한 대목으로,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이 서울도성 남대문을 나서 전라도를 향해 내려가는 행로가 길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을 살펴보면 칠패니 이문골이니 돌모루니 하는 곳들처럼 더러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고, 도저골(도동), 청파, 동작, 남태령, 인덕원과 같이 지금도 제법 익숙한 지명들인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22

<수선전도(완산본)>에 표시된 청파주교의 위치.이곳을 지나석우(石隅,돌모루)에 이르면 다시 노량진(당고개경유)이나 동작진 또는 서빙고진 방향으로 길이 갈라진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정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의 정리고(程里考)에는 ‘성문분로(城門分路)’ 즉, 서울 도성의 각문을 나서면 전국으로 갈라지는 길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서울의 남쪽을 향해 한강으로 이어지는 행로는 동작나루를 건너는 8대로(해남 방향)와 서빙고로 넘어가는 4대로(동래 방향), 그리고 노량진으로 연결되는 7대로(수원 방향) 등 세 가지가 있다.

<대동지지> ‘정리고’에 표시된 청파 배다리 경유 주요 대로의 행로

23

 

이들 모두 숭례문을 벗어나면 이문동을 거쳐 석우참(石隅站, 돌모루참)에 이르러 각각의 길이 갈라지는데, 요컨대 그 옛날 삼남지방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는 청파 배다리와 청파역이 오늘날의 경부고속도로 양재 톨게이트나 만남의 광장쯤으로 받아들여졌던 셈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 국왕 정조가 화성능행에 나서거나 효창원에 행차할 때도 이용했던 행로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머릿속에 담아둘 만한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성현(成俔)의 문집인 <허백당집(虛白堂集)>에 수록된 ‘청파석교기(靑坡石橋記)’에 따르면 이곳에 돌다리가 처음 놓인 것은 연산군 때의 일로 확인된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대개 이곳을 ‘배다리’라고 불렀던 모양인지 여러 고지도나 문헌자료에는 이곳을 ‘석교’라기보다는 ‘주교(舟橋)’로 표시해놓은 경우가 많다.

24

지난 1997년에 설치된 ‘청파 배다리 터’ 표석.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거듭 등장하는 청파 배다리가 있던 자리는 어디였을까? 서울역 앞쪽에서 용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동자동과 갈월동의 경계면을 따라 경부선 철길 아래를 비스듬하게 뚫고 지나는 갈월가도교(葛月架道橋)라는 이름의 쌍굴다리가 이내 나타난다. 이곳을 통해 청파동 쪽으로 건너가면 1997년 9월에 서울시에서 세운 ‘청파 배다리터’를 나타내는 표석 하나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협회본부(청파동 1가 161번지) 앞에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표석은 잘못된 고증의 결과물이며, 원래 배다리는 300미터 남짓 북쪽으로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25

<경성부사>제2권(1936)에 수록된 청파배다리일대의 전경. 만초천 물길 위에 놓인 이 다리에 인접하여 경인철도가 그 옆으로 함께 지나고 있다.

26

<한성부래거문(漢城府來去文)>에 수록된 남대문외 지도. 동그라미 표시는 각각 오른쪽 위가 숭례문, 가운데 위가 염천교, 가운데 아래가 청파 배다리의 위치이다.

27

1902년에 작성된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 부지협정도’. 동그라미 표시는 각각 왼쪽 위가 숭례문, 왼쪽 아래가 염천교, 가운데가 청파 배다리이며, 그 오른쪽에 점선으로 표시된 것이 신설되는 우회도로(지금의 갈월가도교 자리)이다. (<조선철도사> 제1권, 1929)

 

이 자리는 현재 서울역 철도부지에 편입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이 부근의 지적도면을 살펴보면 청파 배다리의 원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 서울역 안쪽 플랫폼의 남단부 아래에는 ‘서계동 76번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동쪽으로 동자동과 접한 경계선 가운데 유독 배가 불룩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가 나타난 것은 원래 만초천 물길이 흘러내리던 흔적이 그대로 동네의 경계선으로 굳어진 탓인데, 이를 통해 청파 배다리의 원위치를 가려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청파 배다리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1902년 작성된 ‘경부철도 남대문정거장 부지협정도(京釜鐵道 南大門停車場 敷地協定圖)’에 잘 드러나 있다. 일본자본으로 이뤄진 경부철도회사가 남대문정거장을 경부철도의 종착역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이 일대의 철도부지가 광범위하게 편입되는데, 이때 청파 배다리로 연결되는 기존의 도로가 차단되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오랜 세월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의 길목 역할을 했던 옛 돌다리는 용도 폐기되고 말았다.

 

28

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서 용도 폐기된 청파 배다리를 대체하기 위해 조성된 갈월가도교의 현재 모습.

 

이와 아울러 이 지점에서 남쪽으로 멀찍이 물러난 곳에 별도의 우회도로가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 경부철도와 교차하도록 굴다리가 조성된 것이 오늘날 ‘갈월가도교’의 원형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철길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는 대개 직각 방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전차선로가 함께 지나는 탓에 회전반경과 기존도로의 연결관계 등을 고려하여 사선(斜線)으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더하여 청파 배다리의 존재를 완전히 말살시킨 것은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에 시행된 남대문정거장 일대의 대규모 개축공사였다. <경성일보> 1919년 2월 21일자에 수록된 「남대문역 개축설계」 제하의 기사는 경성역과 수색역을 곧장 잇는 ‘경의선 직통노선 개설공사’와 관련하여 장차 변모할 남대문정거장 일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놓고 있다.

 

[설계의 내용]을 살펴보면, 역전광장은 시구개정(市區改正)과 정거장의 개축 등에 의해 그 면적이 현재의 3배로 확장하고 구내의 총연장은 650간(間), 즉 약 11정(町)에 달하며, 그 북단은 봉래정(蓬萊町) 1정목의 도로에서 80간 북방으로 넓히는데, 이곳에 남대문소학교 정문과 봉래정 1정목 통과의 중간부터 서쪽을 향해 새로 개착하는 12간 도로와 접속시키며 새로 다리를 놓고 건널목을 만들어 현재의 봉래정 건널목은 폐지하기로 되었다.
[하상(河床)의 이전(移轉)] 역의 서부를 흐르는 하상은 상류 서소문 외 합동(蛤洞) 부근에서 일직선으로 남쪽을 향하도록 교체하고, 현재의 하상 위치는 이를 매립하여 역 구내에 이용하고 곳곳에 교량을 가설하며, …… 이와 관련하여 새로 변경하는 하상의 폭원은 8간으로 이에 부수된 도로는 10간폭이 될 것이라 한다.

 

이렇듯 대규모의 경성역 개축공사에 곁들여 만초천이 직선화하면서 원래의 물길은 사라지고 오늘날 서울역 후면에 자리한 청파로(복개하천)가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바람에 그나마 간신히 남아 있던 청파 배다리의 옛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대상은 ‘염초청교(焰硝廳橋)’의 행방이다. 이 다리는 남지(南池) 옆 칠패길을 거쳐 만리재나 애오개로 건너갈 때 반드시 경유하던 곳이며, 흔히 ‘염천교(鹽川橋)’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은 위의 기사에 나와 있듯이 남대문정거장 확장과정에서 하천 물길과 더불어 매립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남대문 옆 상공회의소 앞쪽에서 중림동 약현성당 쪽으로 건너가는 다리의 이름이 ‘염천교’이다. 그러니까 이 다리는 여전히 실존하는 다리인 셈인데, 이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29

<조선> 1921년 3월호에 수록된 철도과 선교 ‘봉래교(蓬萊橋)’의 모습이다.1920년 5월에 준공된 이 다리는 당시 ‘경성역과 수색역간 경의선직통노선’을 만들 때 우회도로의 용도로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엉뚱하게도 ‘염천교’로 둔갑한 상태이다.

 

알고 보면 이 역시 ‘청파 배다리터’ 표석이 엉뚱한 자리에 서 있는 것만큼이나 오류투성이다. 현재 염천교로 오인되고 있는 이 다리의 원래 이름은 봉래교(蓬萊橋)이다. 이것은 일제가 수색역 방향으로 직통선로를 만들 때 ‘오리지날’ 염천교를 없애버리고 경성역 뒤쪽으로 연결되는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 만든 과선교(跨線橋; 1919년 7월 15일 기공, 1920년 5월 24일 준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염천교라는 이름이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익숙하게 남은 탓인지, 봉래교라는 존재는 부지불식간에 잊히고 그 자리는 종종 염천교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이 다리의 교각에는 ‘염천교’라는 이름이 버젓이 달릴 정도로 일제가 만들어놓은 봉래교는 이제 완전히 염천교로 둔갑한 상태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봉래교라는 것은 봉래동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따온 것일 텐데, 실상 이 이름조차도 일제가 이 땅에 남겨 놓은 고약한 왜색지명의 하나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경성부사????제2권(1936),536쪽에수록된내용에따르면“청일전쟁개시전일본거류민은전전긍긍하며 사지에 처한 상황이었으나, 일본군이 입성하여 만리창에 막영(幕營)하고, 현재의 봉래정(蓬萊町)을 거쳐 남대문 안으로 들어와 거류민을 보호했다. 거류민은 흡사 봉래도(蓬萊島: 신선이 살고 있다는 불로불사의 이상향)에 온 듯한 생각을 했으므로 이 이름을 붙였다.”고 적고 있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잘못된 다리 이름은 서둘러 바로 잡아주거나 차제에 새로운 명칭으로 바꿔달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일제에 의해 지형이 크게 훼손된 청파 배다리와 염천교의 경우 원위치에 가장 가까운 곳을 선정하여 올바른 ‘표석’을 설치하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만약 안내문을 덧붙여야 한다면, 일제에 의해 이 다리들이 사라진 과정도 꼭 함께 서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후의 결전 1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 여운형 편

화, 2018/07/17- 14:39
36
0

制憲節(제헌절)

 

孩童嘲國法(해동조국법)

守此作愚人(수차작우인)

重罪逢輕罰(중죄봉경벌)

行刑遂不均(행형수불균)

 

제헌절에

 

저 어린아이도 나라의 법을 조롱

이를 지키면 어리석은 이가 되네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刑의 집행이 마침내 고르지 않네.

 

<時調로 改譯>

 

아이도 國法 조롱 지키면 바보 된다네

매우 무거운 죄도 가벼운 벌을 만나니

마침내 그 刑의 집행 고르지 아니하네.

 

*孩童: 어린아이 *愚人:  어리석은  사람  *重罪: 무거운  죄. ≒중벽(重辟)  *輕罰:

가벼운 *行刑: 자유형(自由刑)의 집행 방법 사형수의 수용, 노역장 유치,

미결(未決)  수용(收容)  따위의  절차를 통틀어 이르는 말 *不均:  고르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13:46
9
0

某腐儒凌蔑訓民正音乃詰問

 

識字驕頑甚(식자교완심)

如無眼下人(여무안하인)

正音恒愛用(정음항애용)

但說漢文眞(단설한문진)

 

어떤 썩은 선비가 훈민정음을 능멸하기에 따져 묻다

 

글줄깨나 안다고 驕頑함 심하니

꼭 눈 아래 사람 없는 것 같구려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시면서

오직 漢文만 참되다고 말씀하네.

 

<時調로 改譯>

 

글 안다고 驕頑하니 眼下無人 같구려

우리글 훈민정음 언제나 즐겨 쓰면서

漢文만 오직 眞書라 그렇게 말씀하네.

 

*腐儒: 생각이 낡고 완고하여 쓸모없는 선비 *凌蔑: 업신여기어 깔봄. ≒능답

(陵踏). 능모(凌侮)  *詰問: 트집을  잡아서 따져  물음 *識字: 글이나 글자를 앎.

그런  지식  *驕頑: 교만하고  완고함  *愛用: 즐겨  씀 *眞書:  예전에,  우리글을

諺文이라고 낮춘 데에 상대하여 진짜  글이란 뜻으로 ‘漢文’을 높여 이르던 말.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6
39
0

一株老松(일주노송)

 

我師非孔孟(아사비공맹)

不好佛耶蘇(불호불야소)

一樹窓前立(일수창전립)

恒從免大愚(항종면대우)

 

한 그루 늙은 솔

 

내 스승은 공자도 맹자도 아니며

부처, 예수도 좋아하지 않는다오

한 그루 늙은 솔, 窓 앞에 섰는데

늘 따르니 큰 어리석음 면하겠소.

 

<時調로 改譯>

 

내 스승 孔孟 아니며 부처, 예수도 싫소

한 그루 늙은 소나무 窓 앞에 서 있는데

사계절 언제나 따르니 大愚를 면하겠소.

 

*孔孟: 孔子와 孟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不好: 좋아하지 아니함. 또는 미워함.
상황이나 형세 따위가 안 좋음 *耶蘇: ‘예수’의 音譯語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8, 이우식 지음>

수, 2018/07/18- 07:37
44
0

鄕里逢舊友

 

不變其情理(불변기정리)

離鄕四十年(이향사십년)

請君携濁酒(청군휴탁주)

同覓舊淸川(동멱구청천)

 

고향에서 옛 벗을 만나

 

그 인정과 도리 변하지 않았구려

고향을 떠난 지도 어느덧 四十年

벗님께 청하는 바 막걸리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내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그 情理 불변이구려 고향 떠나 四十年

벗님께 내 청하는 바 막걸리를 들고서

옛적의 맑은 시냇물 함께 찾아도 보세.

 

*鄕里: 고향(故鄕). 鄕村 *舊友: 옛 친구. 또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 구붕(舊朋)

*情理: 인정과 도리 *離鄕: 출향(出鄕). 고향을 떠남 *淸川: 맑은 물이 흐르는 강.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09:00
36
0

答訓民正音專用論者問

 

吾邦依漢字(오방의한자)

歷史五千年(역사오천년)

不學非輕事(불학비경사)

孩童渡險川(해동도험천)

 

한글 專用論者의 물음에 답함

 

우리나라 漢字에 기댔던 바

그 역사 무려 五千年이라오

不學함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린애가 험한 내를 건너네.

 

<時調로 改譯>

 

漢字에 기댄 그 역사 五千年이 됐다오

그걸 아니 배움은 가벼운 일 아니거니

어쩌랴! 어린아이가 험한 내를 건너네.

 

*專用: 남과 공동으로 쓰지 아니하고 혼자서만 씀.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씀.
특정한 목적으로 일정한 부문에만 限해 씀. 오직 한 가지만을 씀 *孩童: 어린애.

 

<2018.7.19, 이우식 지음>

목, 2018/07/19- 10:49
73
0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신고된 정관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가 있다는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입니다.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을 비공개하는 단체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총회전에 연구소 소개 메뉴에 정관이 있었는데, 두 개의 정관 문제가 나오자 메류를 삭제했습니다.

정관 메뉴를 복원하고 정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목, 2018/07/19- 23:11
54
0

勸無職老友得多錢秘方

 

本是嫌勞動(본시혐노동)

如何作牧師(여하작목사)

多方能語戱(다방능어희)

衆庶見誣欺(중서견무기)

 

無職인 老友에게 많은 돈을 얻는 秘方을 권하다

 

본디 일하기를 싫어하니

목사님이 되면 어떻겠나

多方面에 말장난 능하니

뭇사람 속임을 당하리라.

 

<時調로 改譯>

 

본디 일을 싫어하니 목사님 어떻겠나

여러 방면에 대하여 말장난 능숙하니

마침내 많은 이들이 속임을 당하리라.

 

*秘方: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하는 방법. ≒비법(祕法).  자기만 알고 남에게

공개하지 않는  특효의  藥方文 *本是: 본디 *多方: 여러 방면. 여러 방향 *語戱:

말을 재미 삼아 하는 *衆庶: 뭇사람 *見: 여기에선 ‘당하다’의 *誣欺: 속임.

 

<2018.7.20, 이우식 지음>

금, 2018/07/20- 07:10
46
0

忘暑(망서)

 

忽開三國志(홀개삼국지)

別界固如斯(별계고여사)

到處逢英傑(도처봉영걸)

憂邦擧酒巵(우방거주치)

 

더위 잊기

 

문득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란 진정 이러하네

 도처에서 英傑을 만나

憂國하며 술잔을 든다.

 

<時調로 改譯>

 

삼국지를 펼치니 별계 진정 이러하네

사방의 가는 곳마다 영웅호걸을 만나

나라를 걱정하면서 함께 술잔을 든다.

 

*別界:   세계란  뜻으로,  특별한 세계를 이름 *如斯: 이러함  *到處: 이르

는 곳  *英傑: 영웅호걸. 또는  영특하고  용기와 기상이 뛰어남 *酒巵: 술잔.

 

<2018.7.21, 이우식 지음>

토, 2018/07/21- 07:19
50
0

炎威携酒覓詩朋

 

炎威君莫嘆(염위군막탄)

忍苦易於冬(인고이어동)

樹下淸風至(수하청풍지)

投毫覓與儂(투호멱여농)

 

무더위에 술을 지니고서 詩의 벗님을 찾다

 

그대 무척 덥다고 한숨짓지 말게

괴로움 참아 내기 겨울보다 쉽네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時調로 改譯>

 

한숨일랑 짓지 말게 겨울보다 참기 쉽네

푸르른 나무 아래로 맑은 바람이 이르니

그대는 붓 내던지고 나와 함께 찾아가세.

 

*炎威: 복중(伏中)의 아주 심한 더위. 또는 기세(氣勢) *携酒: 술을  몸에 지니

다님 *詩朋: 함께 詩를 짓는  벗. 시반(詩伴).  시우(詩友) *忍苦: 괴로움을 참음

*樹下: 나무의  아래나  *淸風: 부드럽고 맑은 바람 *儂: 나. 자기. 我의 속어.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10:20
34
0

 

 

問金正恩(문김정은)

 

愛民君莫道(애민군막도)

豚笑犬嚬眉(돈소견빈미)

善政連三代(선정연삼대)

何如不救飢(하여불구기)

 

김정은에게 묻는다

 

그대는 인민 사랑 말씀하지 말게

돼지 비웃고 개는 눈살 찌푸리네

잘 다스리는 정치 三代 이었건만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 못하는고.

 

<時調로 改譯>

 

인민 사랑 말씀 말게 개돼지도 비웃네

잘 다스리는 정치 어언 三代 이었건만

그 어찌 굶주림 구제 아직도 못하는고.

 

*愛民:  백성을  사랑함  *莫道: ‘말하지  말라’의    *豚犬: 개돼지  *嚬眉: 눈살을

찌푸림 *善政: 백성을 바르고 어질게 잘 다스리는 정치. ≒양정(良政)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孫子)의    代. ≒삼세(三世)  *何如:  어떻게.  또는  어찌.

 

<2018.7.22, 이우식 지음>

일, 2018/07/22- 07:19
64
0

曹溪寺前老僧斷食

 

誰言僧職好(수언승직호)

不若彼鷄冠(불약피계관)

滿寺權謀術(만사권모술)

金堂佛痛歎(금당불통탄)

 

조계사 앞의 老스님 단식

 

중 벼슬이 좋다고 누가 말하나

저 닭의 볏만도 못한 것이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 가득한 절간

金堂의 佛 또한 통탄하고 있네.

 

<時調로 改譯>

 

僧官 좋다 뉘 말하나 鷄冠만도 못하니라

권모와 술책 따위가 한가득 들어찬 절간

金堂의 부처님 또한 몹시 탄식하고 있네.

 

*僧職: 승관(僧官). 법령, 수계(授戒), 관정(灌頂) 따위의 의식이나 사원(寺院)의

운영을 맡아보는 승려의 직무 *不若: 불여(不如). ‘~만 못함’. ‘~하는 편이 나음’

*鷄冠: 계두(鷄頭).  닭의 볏.  맨드라미  *權謀: 때와 형편에 따라서 꾀하는 계략

*金堂: 절의 본당. 본존상을 모신 법당이다 *痛歎: 몹시 탄식함. 또는 그런 탄식.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5
25
0

題隣儒摺扇

 

道者淸溪詠(도자청계영)

雲峯一鶴飛(운봉일학비)

何人圖畵此(하인도화차)

隱密冷風威(은밀냉풍위)

 

이웃 선비의 접부채에 쓰다

 

道人은 맑은 시내에서 詩를 읊고

雲峯에서는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어떤 사람이 이 그림을 그렸는지

차가운 바람의 그 위세 은밀하오.

 

<時調로 改譯>

 

道를 닦는 사람은 淸溪에서 詩를 읊고

구름 봉우리에선 한 마리 두루미 나네

이 그림 뉘 그렸는지 冷風威 은밀하오.

 

*摺扇:  쥘부채.  접부채.  접이부채  *淸溪: 맑고  깨끗한 시내.  청간(淸澗)  *雲峯:  여름

날에 산봉우리처럼 피어오르는 구름. 구름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 *何人: 어떤

  *圖畵: 도안과  그림. 그림을 그리는 일. 또는 그려 놓은 그림 *隱密: 숨어 있

겉으로 드러나지 않음. 陰密 *冷風: 차가운 바람 *風威: 세게 부는 바람의 위력.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07:46
22
0

問答與國立國語院擔當先生箕帚讀音

 

古音今可變(고음금가변)

帚字亦如斯(추자역여사)

但守焉能事(단수언능사)

村儒起大疑(촌유기대의)

 

국립 국어원의 담당 선생과 ‘箕帚’의 讀音에 대해 묻고 답하며

 

옛적 漢字音 지금 변하기도 하니

저 ‘帚’란 글자가 또한 이와 같소

오직 지키는 것만이 어찌 能事랴

시골 선비는 큰 의심을 일으키오.

 

<時調로 改譯>

 

古音은 可變이니 ‘帚’ 또한 이와 같소

오로지 고수함만이 그 어찌 能事이랴

시골에 사는 선비는 大疑를 일으키오.

 

*箕帚: 쓰레받기와  빗자루.  처첩(妻妾)이  되어  남편을  섬김.  소제(掃除)  *讀音:  한자

(漢字)의 音. 또는 글을 읽는 소리 *古音: 옛날에 쓰던 한자음(漢字音) *可變: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음. 또는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을 바꾸거

라지게 있음 *如斯: 이러함 *能事: 자기에게 알맞아 잘해 낼 수 있는 일.

하는 *村儒: 시골에서 사는 선비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8.7.23, 이우식 지음>

월, 2018/07/23- 21:50
41
0

“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는 ‘자유, 평등, 진보'”
“남북한 역사인식에서 공통적인 부분 중심으로 공동사업 기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0723-1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천안=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한국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오늘날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 평화통일과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이 되면 좋겠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 관장은 “남북한 교류를 통해 3.1운동을 중심으로 북한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 남지 않아 제대로 포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념사업은.

▲ 아직 계획 단계이다. 일단 내년 4월 상하이에서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독립기념관 내 독립군체험학교가 있는데 신흥무관학교 교사를 복원해 거기서 독립전쟁을 체험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임시정부가 운영했던 인성(仁成)학교를 복원해 인성학교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려 한다.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인성학교에서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1932년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났고 인성학교도 더는 운영할 수 없었다.

임시정부는 교민 자녀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다. 한편으로는 민족교육, 한편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졌다. 중등과정의 삼일학교도 있었다. 임시정부가 직접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교사로 있었다.

–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은.

▲ 민주주의다.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공화제가 확립됐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다.

1944년 마지막으로 개헌한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에는 대한민국의 정신을 ‘자유, 평등,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고,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 공동 발굴 사업을 기대하고 있다.

▲ 북한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에도 3.1운동 관련 사적지나 자료가 많다. 북한의 관련 재판기록을 조사하면 더 많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에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요소도 많다. 이를 중심으로 공동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남북 간 역사, 특히 근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는 남북한이 모두 인정하고 존경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이 협력해서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소재 안중근 의사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겠다.

안중근, 홍범도, 신채호 등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채호 관련 원자료는 평양 인민대학습당이 많이 소장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독립기념관에서 입수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성사 직전에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다. 남한 자료만 갖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발간했다. 북한 자료까지 포함해서 다시 만들고 싶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 기록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독립운동과 관련돼 활동했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을 따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대표적인 경우가 독립운동가의 부인들이다. 특히 해외에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부인의 도움이 없었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하는 남편의 뒷바라지 자체가 독립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의 구술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를 보면 밖에서 독립운동하다가 동료들과 집에 들어온 시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들의 끼니를 해결하고 수발을 드는 것은 전적으로 부인, 딸, 며느리, 손주며느리들의 몫이었다.

국내에서 활동한 경우 가장 중요한 포상기준이 옥고이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옥고가 적다. 여성이라고 봐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경찰에 잡혀가도 기소가 안 되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에 남아있는 여성 한국광복군의 수는 10명 남짓인데 실제로는 더 많은 여성이 해외에서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광복군이나 조선의용군의 남아있는 사진에는 군복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0723-2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외국인들도 한국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지금까지 60~70명 정도가 포상을 받았다. 대다수가 중국인들로, 모두 중국국민당 쪽 인물들이다.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 중에는 중국공산당 쪽 인물들도 있는데 공산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포상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국공합작 당시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충칭에 와 있었던 저우언라이는 임시정부를 많이 도왔다.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인들 중에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직접 참여한 사람이 제법 있다. 노동자도 있고 교사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보는 경향 때문에 지금까지 딱 한 명만 서훈을 받았다. 인권 변호사 후세 다츠지(布施辰治)이다.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관리는.

▲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대부분 독립기념관에서 관리한다. 직접 관리는 못 하고 현지 사람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관리한다.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면 사적지 관리도 어렵다. 최근 들어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를 중국 정부가 직접 조성하고 관리도 직접 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사적지를 복원하고 시설물을 설치하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중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한국의 독립운동은 쌍방향 관계였다. 중국이 지원했지만, 우리도 할 만큼 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해석이라는 것이 항상 중국 중심이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독립기념관 운영 방향은.

▲ 한국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다.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독립운동과 평화통일로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을 만들고 싶다. 당장은 내년 100주년을 기리는 사업을 잘 꾸려나갔으면 한다. 특히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전문기관으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활성화하고 싶다. 그야말로 독립운동사 연구센터가 되면 좋겠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의 세대 단절이 심각하다.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은 정년 퇴임을 했거나 이를 앞둔 교수들이 많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젊은 세대는 수도 적고 아직은 앞세대 만큼의 연구 업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위축되고 있으니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외할아버지이다.

▲ 첫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는데 어른들 말씀이 늦게 보신 외손자여서 말년에 매우 예뻐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현역 일본 군 장교 신분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잡히면 사형이었다. 가족들이 뒤늦게 수소문해서 만주로 갔다. 외할아버지는 공인으로 존경하지만, 사실은 외할머니가 더 존경스럽다. 농사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1919년생으로 충칭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셨다.

0723-3

▲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조교수)를 지냈다. 2006∼2010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2013∼2017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했다.

[email protected]

월, 2018/07/23- 19:43
4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