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일본공사관원의 눈에 비친 근대 조선의 모습,

지역

일본공사관원의 눈에 비친 근대 조선의 모습,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5:53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39

01

조선주재 일본공사관의 교제관시보이던 하야시 부이치의 유고 사진집 <조선국진경> (1892)의 표지

 

02

1882년 재동에 설치된 ‘외아문’의 대문 모습. 대문 기둥에 걸린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라는 간판이 또렷하다.

03

‘기보포정사’라는 편액이 내걸린 경기감영 대문의 모습

 

04

서울 남산에 있던 일본공사관 구역 안에서 외아문 독판 민종묵(한복 차림)과 서울주재 각국 공사관의 외교관이 기념촬영을 한 모습.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청국주차조선총리 위안스카이고,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선국진경>을 남긴 일본공사관원 하야시다.

 

돈의문(敦義門)을 들어서서 우측으로 꺾으면 오른쪽에 이태호(怡泰號)의 각색점(各色店)이 있고 남쪽으로 붙어서 러시아 건축사 사바친 씨의 우소(寓所)이며 이어서 법국이사관(法國理事官)의 공서(公署)가 된다. 왼쪽에 아라사와 미국 양국의 공사관이 있으며 또한 좌우로 미합중국 전도사 여러 사람의 거택, 부인병원(婦人病院), 여학교 및 육영공원(育英公院) 등이 이곳에 있는데, 모두 합중국 전도사의 감독에 관계된다. 독일상(獨逸商) 세창양행(世昌洋行)의 지점과 아울러 경성구락부(京城俱樂部)도 역시 이곳에 있다. 미공사관의 남린(南隣)은 총세무사서(總稅務司署)이며, 그 안쪽에 영국총영사관이 있다. 거기에 상림원(上林苑)의 뒤편 작은 언덕에서 시가를 내려 보면 조망이 아름답다. 독일제국영사관은 왕성(王城)의 동방 안동(安洞)에 있으며 우리 공관(일본공사관을 말함)의 정북면에 해당한다.
이것은 1891년에 발행된 ????조선안내(朝鮮案內)????라는 소책자에 수록된 내용이다. 이제 막 서양인들로 넘쳐나기 시작한 정동 일대의 거리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각국 공사관의 위치는 물론이고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이던 보구여관(普救女館)이나 근대식 공립학교의 효시로 일컫는 육영공원 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남긴 이는 일본공사관의 관원이던 하야시 부이치(林武一, 1858~1892)로, 이 책 말고도 ????조선국진경(朝鮮國眞景)????이라는 사진첩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해군소주계(海軍少主計, 경리장교) 출신으로 1888년 7월 교제관시보(交際官試補)로 서임되는 동시에 조선주재 일본공사관에 발령받아 그해 8월부터 1891년 10월까지 서울에서 근무한 인물이었다.
그 후 3년 만기 근무의 대가로 휴가를 얻어 귀국하였다가 1892년 1월에 재차 임시파견의 명을 받아 조선 각도의 순시를 마치고 돌아가던 차에 그가 승선한 이즈모마루(出雲丸)가 그해 4월 5일 전라남도 소안도 앞바다에서 좌초되는 바람에 사망했다. 이에 일찍이 사진기술을 익힌 그가 평소 여가를 활용하여 담아낸 120여 장의 조선 관련 사진자료 가운데 이를 선별하여 그의 처 하야시 카메코(林龜子)가 유고 사진첩으로 묶어낸 것이 바로 ????조선국진경????이었다.
이 사진첩에 수록된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도성의 각 성문을 비롯하여 경복궁 광화문과 창경궁 홍화문, 그리고 동묘 남묘 세검정 영은문 남한산성 등과 같은 여러 문화유적의 옛 모습이 담겨 있다. 대개 익숙한 풍경이긴 하지만, 그의 조선주재 시기에 비춰 촬영시점이 명확하게 파악되므로 이들 유적의 원형고증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이밖에 정동 일대에 포진한 각국 공사관의 전경은 물론이고 용산과 마포 일대의 강변풍경과 부산, 인천, 강화 등지를 포함하여 저 멀리 거문도와 제주도의 풍광까지도 두루 포착되어 있다. 그리고 남산 부엉바위약수터의 모습이라든가 초가집에 파묻힌 원각사탑(지금의 탑골공원 자리)과 조대비(익종비)의 장의행렬과 같은 이색적인 장면도 담고 있다.
또한 이 사진첩의 강점은 여느 사진자료에서는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공간들의 모습을 다수 채록해두고 있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 훈련원 청사와 하도감의 전경, 그리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라든가 경기감영의 대문 사진 등이 그것이다.
흔히 ‘외아문(外衙門)’으로 불렀던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개항기의 외교통상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1882년 12월에 재동에 있는 민영익의 집터(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설치한 중앙행정기구이다.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외무아문(外務衙門)’으로 고쳤다가 다시 1895년 7부 편제로 전환할 때 ‘외부(外部)’로 개칭되며, 그러다가 1896년 6월에 이르러 광화문 앞 옛 이조 터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요컨대 ‘외아문’은 세계열강과의 교섭이 본격화하던 시기에 이들을 상대로 한 외교업무를 전담했던 주요기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 기관에 관한 사진자료는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1885)에 수록된 단 한 장의 사진을 빼고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바로 하야시가 남긴 이 사진첩에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라는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는 외아문의 대문 모습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사진의 희소가치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것 말고도 ‘기보포정사(畿輔布政司)’라고 새긴 편액이 달린 경기감영의 대문 모습도 크게 눈길을 끄는 사진자료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보’는 경기도를 가리키며, ‘포정사’는 지방행정을 관할하는 으뜸 관아를 뜻하는 중국식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경교장’이라는 명칭의 어원도 바로 이곳 경기감영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이곳의 옛 모습은 대개 1902년 한성부 청사가 이곳으로 옮겨온 이후의 것만 더러 남아 있을 뿐 명실상부하게 경기감영 시절의 것은 제대로 구경해 보질 못했다.
일본공사관원이던 하야시가 짬짬이 채록한 이러한 사진자료들은 애당초 점차 자기네의 세력권 안으로 편입되고 있는 ‘잠재적 식민지’ 조선에 대한 충실한 정보보고의 용도로 제작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우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땅의 옛 모습을 사진자료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는 셈이다. 마치 일제가 문화침탈을 위해 제작 배포한 ????조선고적도보????가 오늘날 유적지 복원의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제작된 근대 사진첩의 양면성은 대개 그러한 것이다.

• 이순우 책임연구원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사장 몰아내고 피해자들 KBS에 모셔야”… 박성제 MBC 해직기자 “세월호, MBC는 정권과 공범”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공영방송 KBS·MBC 피해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공영방송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책임과 함께 노동조합 대표자로서 내부에서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느낀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 213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발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지난 9년 양대 공영방송의 왜곡·편파보도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사례를 증언했다.

유경근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증언한 세월호 보도를 포함해 △MB 정부의 4대강 사업(참석자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친일 독재 미화 및 역사 왜곡(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백남기 농민 국가 폭력 사망(최석환 백남기투쟁본부 사무국장) △사드 성주 배치(조은숙 원불교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교육팀장) △성과 연봉제 및 철도 노조 파업(최은철 철도노조 조직국장) 등의 이슈에서 공영방송 보도가 ‘정권 편향’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보도다. MBC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실종자를 수색하던 민간 잠수사의 죽음에 대해 ‘일부 가족의 조급증과 압박’을 원인으로 꼽는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내보내 논란을 불렀다.

리포트 주인공은 박상후 당시 MBC 전국부장이다. 그는 목포 MBC에서 올라온 ‘구조자 숫자 중복 집계 가능성’ 보고를 무시해 전원 구조 오보의 책임자로 꼽힌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탄핵 국면에선 친박·극우 집회에 참여하는 등 사내에서도 극단적 보수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인물이다.

2012년 MBC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박성제 MBC 해직 기자는 “유경근 위원장이 세월호 참사에서 ‘공영방송이 정권과 공범이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100% 동감한다”며 “MBC 내 극우 인사들이 MBC를 장악했고 경영진은 이를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0728-1

▲ 전국 213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발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왼쪽)과 박성제 언론노조 MBC본부장의 모습.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각 이슈별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어진 뒤 마이크를 쥔 성 본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2008년 8월8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경찰 공권력 속에 쫓겨난 뒤 KBS가 나쁜 짓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사건이 너무 많이 스쳐가서….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귀족 노조로 몰아세웠던 유성기업 노동자 분들, 쌍용차 노동자 분들이 많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새로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촛불 시민 혁명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공영방송의 왜곡 보도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지난 2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를 둘러싼 마약 투약 의혹과 검찰 수사 축소를 보도해 주목받은 ‘추적60분’을 언급하며 “3년 전에 나갔어야 할 프로그램”이라며 “여전히 탈핵, 최저임금 보도는 편파적이다. 안에서 구성원들이 보도 투쟁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과 함께 하루빨리 적폐 사장들을 몰아낸 뒤 지난 9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공영방송 피해자 분들을 KBS 프로그램 안으로 모셔야 한다”며 “KBS 사장이 공식적으로 보도 피해자들에 사과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email protected]

<2017-07-28>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공영방송 피해자 앞에서 KBS 기자가 ‘눈물’ 보인 사연

금, 2017/07/28- 21:00
274
0

21-1

▲ 2017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답사 현수막

21-2

▲ 난징대학살기념관 화평탑

21-3

▲ 올 12월 난징대학살 80년을 맞아 기념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21-4

▲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입구

21-5

▲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외벽

21-6

▲ 난징 리지항위안소 옛터 진열관

21-7

▲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내부에 전시된 민족문제연구소 발행도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2009)

21-8

▲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

21-9

▲ 항공열사공묘 내부 전시실

21-10

▲ 항공열사공묘에서 항일전에 참전한 조선인 전상국, 김원영 열사의 이름도 있다.

21-11

▲ 항공열사공묘 야외에 전시된 당시 중국군 비행기

21-12
▲ 약산 김원봉 주도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터(현재 천녕사)
21-13

▲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옛터

21-14

▲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간부학교

21-15
▲ 민족혁명당 거점(현재 난징 호가화원)
21-16

▲ 야경으로 유명한 부자묘(공자 사당) 입구 거리

21-17

▲ 중국 고속철도 난징남역

21-18

▲ 난징에서 광저우로 가는 아침 첫 고속열사 내부

21-19

▲ 제1차 국공합작을 계기로 설립된 황포군관학교는 현재도 항일역사공간으로 활용중

21-20

▲ 군벌 타도, 국민혁명 완성을 목표로 한 황포군관학교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도 많이 입교함

21-21

▲ 한인청년들이 많이 다녔던 대학이자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중산대학

21-22

▲ 황포군관학교 입구에 있는 쑨원의 유언(革命尙未成功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21-23

▲ 1927년 반국민당 정부 무장봉기(광저우꼬뮌)에 참여했다 희생된 조선 청년들을 기려 세워진 광주기의열사능원의 ‘중조인민혈의정’

21-24

▲ 현재 공사 중인 ‘중조인민혈의정’ 앞에서 묵념.

21-25

▲ 광주기의열사능원 조형물

21-24-1

▲ 중조인민혈의정 앞에서 이항증 선생(석주 이상룡 증손자)에게 ‘항일’ 구호로 격려하는 학생 답사 단원들

21-26
▲ 혈의정 비문에 의하면 광저우꼬뮌 당시 희생된 조선인 혁명가들이 약 150명에 달한다.
21-27

▲ 광저우 신해혁명기념관에는 당시 주요 혁명가들의 동상이 역동적으로 제작되어 있다.

21-28

▲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당시 시국 전도

21-29

▲청나라를 놓고 열강들의 각축을 보여주는 시사만화

21-30

▲ 신해혁명기념관 등 대부분의 역사기념관은 국민들의 역사교육을 위해 입장료가 무료이다.

21-31

▲ 신헤혁명기념관 정문

21-32

▲ 광저우는 주강 강변의 야경이 유명하다.

12-21-32-1

▲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린 주경기장 주변 야경

21-33

▲ 형형색색 조명이 변하는 주강 강변의 광저우탑

월, 2017/08/21- 00:26
272
0

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267
0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8:08
266
0

聞人君言我邦無力乃上疏

 

大韓衰弱國(대한쇠약국)

上疏我心欣(상소아심흔)

美日爲親父(미일위친부)

中俄事若君(중아사약군)

 

나라님이 우리나라는 힘이 없다고 말함을 듣고 上疏함

 

대한민국은 매우 쇠약한 나라이오니

上疏하는 저의 마음일랑 기쁘답니다

미국과 일본을 친아버지로 삼으시고

중국과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時調로 改譯>

 

우리나라 쇠약하니 제 마음 기쁘답니다

저 미국과 일본일랑 親父로 삼으시옵고

중국과 또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人君: 임금. 나라님 *我邦: 우리나라 *無力: 힘이 없음 *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 *衰弱: 힘이 쇠하고 약함 *弱國: 힘 약한 나라 *親父:

친아버지 *俄: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약칭(略稱).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15:39
26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