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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의 우토로, 영원히 기억하자” 우토로 역사관 위한 시민모임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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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의 우토로, 영원히 기억하자” 우토로 역사관 위한 시민모임 발족

익명 (미확인) | 일, 2018/01/14- 14:35

방송인 김미화 씨 등 각계인사들 ‘우토로 지킴이’로 나서…“우토로의 인간 존엄과 평화, 오랫동안 기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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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이 결성식을 가졌다.ⓒ민중의소리

‘마지막 일제징용 마을’로 기억되는 일본 우토로에 역사관을 만들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방영된 이후, 국민적 관심을 받게된 우토로 마을은 일제 식민지 정책과 전쟁 수행의 피해자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집단 합숙소이자 6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토지 소유권자들의 분쟁 탓에 강제철거 위기까지 겪었던 이 곳은 가까스로 한국 정부의 지원과 민간 모금 등으로 안정을 찾긴 했지만, 우토로 동포들의 흔적 또는 추억이 점차 지워져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정부의 마을 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우토로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이 12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결성식을 갖고, 그 시작을 알렸다. 시민모임의 주축이 된 57명의 ‘우토로 지킴이’에는 방송인 김미화 씨를 비롯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진관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했다. 공동대표는 류종열 흥사단 이사장, 박연철 전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상임대표, 정진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맡았다.

이들은 이날 결성선언문을 통해 “지금 우토로는 조선사람이 사는 낯익은 마을 풍경이 사라지고, 장구소리와 김치냄새가 사라져가고 있다. 마을을 일구고 지킨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우토로가 외쳐온 인간 존엄과 평화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기억하고 있고,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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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토로 마을의 재일동포 모습이 담긴 전시물ⓒ민중의소리

또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소중한 가치들이 우리 후세에, 한국과 일본, 재일동포 모두에게 오랫동안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저항과 분노를 넘어 평화와 희망의 메시지를 발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은 우토로 동포들의 버팀목이 되어 이상의 노력을 다해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이들은 민간 모금 등으로 매입한 우토로 토지 위에 세워진 공적주택에 동포들이 첫 입주하는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우토로 동포들의 구술기록집과 사진집(正史) 발간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시민모임의 배지원 사무국장(전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은 “역사관은 우토로 동포들과 한국 시민들의 약속이자 꿈이었다”면서 “작고 소박하지만 자자손손 평화의 홀씨를 퍼뜨리는, 우토로의 파수꾼이 되어줄 역사관이 우토로 땅에 세워질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참여해달라”고 당부했다.

<2018-01-12>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조선인들의 우토로, 영원히 기억하자” 우토로 역사관 위한 시민모임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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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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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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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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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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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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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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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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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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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운영위원장 최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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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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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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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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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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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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