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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에 숨어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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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에 숨어 있는 이야기

익명 (미확인) | 일, 2018/01/14- 14:44

[김종철 칼럼] 명예도 이름도 없는 민주 교도관들

지난해 12월27일 개봉한 영화 ‘1987’이 1월12일이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기획되어 은밀하게 제작되고 있던 이 작품은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창고에 갇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7’은 촛불혁명 덕분에 밝은 세상에서 많은 이들, 특히 20~30대의 사랑까지 받는 ‘국민영화’로 솟아오를 수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민주·민족·민중운동이 펼쳐진 1980년대는 촛불혁명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의 6월항쟁이었다. 영화 ‘1987’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그해 정초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의 이한열 최루탄 피격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사건은 지난 30여년 동안 나라 안팎에 그 진상이 널리 알려졌는데, 정작 이 영화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는다. 가공(加工) 또는 허구(虛構)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대표적인 보기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의 진상을 재야민주화운동권에 전달한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한병용의 이름과 더불어 그가 겪은 고초의 내막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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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포스터

내가 명확히 알고 있는 사실은 1987년 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 민통련 사무처장)이 작성한 비밀편지(박종철 사건 은폐·조작의 실상)를 그의 친구인 김정남(나중에 김영삼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교도관은 한재동이었다. 한재동은 1970년대에 서대문구치소에서 함께 근무한 바 있는 전직 교도관 전병용에게 ‘비둘기’를 전했고, 전병용이 김정남에게 그 문건을 건넨 것이었다. 박종철 사건 은폐·조작의 전모를 폭로하는 이부영의 두 번째 비밀편지를 한재동이 극비리에 받았던 때, 전병용은 도피 중인 재야인사를 숨겨준 혐의로 체포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어서 한재동이 김정남에게 그것을 직접 전달했다. 김정남은 그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한 뒤 문서로 만들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함세웅(신부)에게 맡겼고, 5월18일 밤 8시30분 서울 명동성당에서 ‘5·18광주항쟁 희생자 추모 미사’가 끝난 뒤 홍제동성당 주임신부 김승훈이 그 문서를 낭독함으로써 전두환 정권을 뿌리째 뒤흔드는 6월항쟁에 불길을 댕긴 것이었다.

영화 ‘1987’의 한병용은 한재동의 한과 전병용의 병용을 차용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역할이 하나로 뒤섞여 있다. 한병용이 치안본부 대공처장 박처원에게 무자비하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도 시나리오작가와 연출자가 만들어낸 허구임이 분명하다. 내가 1975년 봄 이래 서너 번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친밀한 사이가 된 전병용과 한재동은 그렇게 무참한 고난을 겪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정치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런 장면을 연출한 사실을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와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시기에 전국 여러 곳의 구치소와 교도소에는, 민주화운동과 독재타도투쟁을 하다 잡혀온 양심수들이나 정치범들을 은밀하게 도와줌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들의 ‘동지’가 된 민주교도관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병용과 한재동이다. 1975년 3월17일 동아일보사에서 폭력에 밀려 쫓겨난 기자, PD, 아나운서 등 113명이 결성한 동아투위 위원들 가운데 15명 이상이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옥살이를 했다. 1970년대에 서울구치소에서 그들을 은밀하게 도와주면서 바깥 정보를 전달해준 교도관은 전병용과 한재동을 비롯한 여러 명이었다.

이제는 밝혀도 될 그 이름은 최양호, 나장균, 김재술, 김형옥, 최영옥, 김성렬, 김영배, 나종남이다. 전병용과 한재동은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3월 초, ‘민주교도관’이라는 낙인이 찍혀 각기 순천과 김천의 교도소로 전출되었다가 결국 강제 사직 당했다. 한재동은 한 달 동안 수감생활까지 한 뒤 1981년 1월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복직할 수 있었다. 그는 1984년 6월 영등포교도소로 전출해 오랜 지기인 이부영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날마다 퇴근 이전인 저녁 5시쯤 그가 갇힌 감방 앞에 가서 한 시간쯤 대화를 나누던 끝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한 진상을 온 세상에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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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987’ 포스터

나는 개인적으로 전병용·한재동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1980년 5월17일 전두환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 지명수배를 당해 도피생활을 하던 나를 그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숨겨주거나 다음 은신처를 물색해 주었던 것이다. 그 쿠데타가 터지기 한 달쯤 전에 나는 한재동으로부터 ‘난감한’ 부탁을 받았다. 여동생이 결혼할 계획인데 주례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 실직 상태였고, 여동생은 영등포 어느 공장의 노동자였다. 신랑감은 작은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만 36세였으므로 주례를 서기에는 터무니없이 젊은 나이였다. 내가 한사코 고사하자 그는 어느 날 주례로 내 이름을 박은 청첩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울의 봄’을 맞아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5월5일 오전 11시, 나는 아내와 함께 세 살 박이 아들의 손을 잡고 용산구 남영동 큰길가에 있는 허름한 건물의 예식장으로 갔다. 식단 앞으로 어색하게 다가가자 안내를 맡은 여성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당황해서 “제가 주례인데요”라고 우물거리자 그는 “새파랗게 젊은 분이 주례를 보세요?” 하면서 내 손에 흰 장갑을 끼워주었다.

나는 그날 진지하게 ‘주례사’를 했는데, 나중에 한재동에게 들어보니 큰 실수를 한 대목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신부의 오빠와 맺은 인연 때문에 주례를 맡게 되었다고 말한 뒤에 서대문구치소에서 민주화운동 투사들을 돕다가 파면 당했지만 꿋꿋하게 살고 있다고 소개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례객 대다수는 한재동의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올라온 순박한 친척과 농민들로, 그 지방의 명문인 순천고등학교를 나온 그가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잘 살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봄’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5월18일부터 도피자 신세가 되어버린 나는 당장 숨어 지내야 하는 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때 한재동은 서대문구 현저동 산동네의 단칸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한 평을 겨우 넘는 방이라서 둘이 누우면 칼잠을 자야 했다. 그래도 그는 여러 날이 지나도록 전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앞에 이름을 소개한 민주교도관들 역시 동아투위는 물론이고 청년·학생운동권의 수배자들을 적극적으로 숨기고 보살펴주었다.

전병용은 지금 성남시 분당에서 농사를 짓고 있고, 한재동은 수원시의 한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조경(造景) 일을 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 웬만한 민주화운동가들 대다수는 적절한 보상을 받았는데 민주교도관들은 ‘명예도 이름도 없이’ 지내 왔다. 그래도 70대 안팎의 그들은 충실하게 생업에 종사하면서 겸손하게 살고 있다. 요즘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회포를 푼다고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그렇다 치고,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는 이제라도 민주교도관들에게 ‘숨은 노고’를 치하하는 상패라도 주어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email protected]

<2018-01-12>미디어오늘
☞기사원문: 영화 ‘1987’에 숨어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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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0/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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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대 위험없는 군사옵션, 과연 존재하는가?
(연합뉴스tv)

[앵커]
미국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 방안이 존재한다 이렇게 언급했는데요.

이외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북한과 관련된 강경 발언들을 일삼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군사옵션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재선 정치안보 전문기자 연결합니다. 이재선 기자!

계속 강경발언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미중정상회담 직전에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와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핵실험, 미사일발사 때마다 강경발언들을 쏟아왔습니다.

지난 8월 “화염과 분노”, “가만두지 않을 것” 등의 발언들이 이어졌고 유엔 대북 제재안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한 옵션에는 전술핵배치·참수작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과연 그러한 옵션이 가능할까요?

[기자]
이중 참수작전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과거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할 때 미군 특수부대가 들어갔죠.

네이비 실 팀이 들어갔는데 이런 특수부대가 평양에 들어가서 이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작년 아프간에서 탈레반 지도자 만수르를 제거할 때는 스텔스 무인기를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형태로 해서 참수작전을 진행하게 되었을 때 과연 서울은 어떻게 되겠는가가 문제입니다.

결국 공격형 무인기를 동원하는 군사옵션을 선택한다고 할 때 북한의 지도부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가 됩니다.

[앵커]
지금 한미 정보력이 그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기자]
그것이 바로 킬체인 개념인데 북한의 지도부 움직임을 과연 포착할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앵커]
실패할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기자]
실패를 하게 될 경우 서울은 전면전을 피하기 힘듭니다. 전쟁 직후 8분안에 수만개의 북한 방사포가 서울을 날라옵니다. 8분안에 피할 수 있는 사람들은 평소 대피훈련을 해온 주한미군 가족들과 외교관 등일 것입니다.

결국 참수작전이 조금이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전면전이 벌어지고 10분안에 수도권 2300만명 중 절반이상에 위험에 노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앵커]
그런데 왜 참수작전을 언급하는 것인가요?

[기자]
일종의 북한에 대한 협박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이런 말들이 자주 언급될수록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발언들이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이런 발언들이 북한 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도 불안감을 주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9월 9일 북한 행사장을 폭격하겠다는 발언을 해서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었죠?

다행히 아무일이 없이 지나갔지만 이런 발언들이 자주 있게 될 경우 오히려 북한을 더 자극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빈도를 높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발언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전쟁에 대한 불감증이 오히려 커져서 막상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누구도 대처할 수 없게 될 것이고요.

[앵커]
그렇군요. 이번 시간은 서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대북군사옵션이 가능한지를 확인해보았습니다.

일, 2017/10/0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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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에게 “어리석은 인간”, “하찮다”고 표현해
(선데이저널=채수영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어리석은 인간(노로마,???)”, “하찮다(쯔마라나이,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유럽(프랑스)의 유명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는 일본 소식통의 주장을 인용하여 아베 총리가 최근 진행된 ‘일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극렬히 비난했다고 전했다.

‘일본회의’는 일본 우익 최대로비단체로 1997년 우파단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이 통합, 결성한 조직이다.

현재 아베 총리를 비롯한 대다수 각료가 일본회의 멤버로 있으며 ‘기본운동방침’은 황실 존숭(천왕제 부활, 국민주권 부정), 헌법 개정, 국방의 충실(재무장), 애국 교육 추진, 전통적 가족 부활이다.

아베 총리는 이 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가로지른 것을 두고 북핵문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무능을 지적했다.

최근 8월 29일과 9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넘어가면서 일본은 경보시스템을 발동하고 홋카이도 지방 대피훈련을 벌린바 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을 혼란에 빠트린 것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무능’하다고 표현하면서 한국이 현재 북한 핵, 미사일문제에 대한 뽀족한 수가 없는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고 한다.

또한 아베 총리는 ‘일본회의’에서 한일위안부합의 역시 재논의할 뜻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하찮다(쯔마라나이)’고 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위안부합의 수정 요구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력히 피력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7일에도 위안부 합의 변경과 관련해 “골대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 합의한 것이 전부다”라고 위안부 합의 변경에 대해 선을 그은 바 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일본대사관 뒤 소녀상을 옮길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한국정부는 이 요구를 받아들일 뜻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아베 총리는 2013년 11월 한국을 두고 “어리석은 국가”라는 망언을 쏟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하찮다”라고 표현한 것 역시 과거 입장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2017-09-20)

 

 

 


일, 2017/10/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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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님께 요청 드릴 사항 2가지가 있어서 게시판에 글 남깁니다.

1. 박정희가 일제때 활동했던 사진과 기록(어느 문헌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지) 그리고 해방 후 빨치산

행적에 대한 사본을(원본 명시)  우편으로  보내주실 수 있는지요?

요청 드리는 이유는 제 70 노모가 박정희(박근혜) 숭배자(일명 박사모)라 언터넷에 떠도는 사진과 기록,

뉴스 매체가 조작이라면서 신뢰하질 않습니다.

그러면서 가짜 뉴스, 개소리의 진원지인 유튜브 관련 박사모 관련 사이트는 왜 이리 신뢰하는지 참…

박정희의 친일 행적이 담긴 사진과 기록 내용, 해방 후  빨치산 행적을 공식 문서로 해 확인시켜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제 메일로 받는 방법도 확인해 볼 수 있으나 정확한 기록에 의한 것이 더 확실한 팩트로 전달할 수 있기에

부탁 드립니다.  보내주실 주소는 제 개인 정보란의 집 주소(인천)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사 비용 및 우편요금이 발생한다면 납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2. 핸드폰 기기 변경으로 친일인명사전을 재 다운로드 하려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기존 핸드폰 기기(아이폰6s plus)에서 10,000으로 구매했는데 기기 변경(LG G6)하고 다시 받으려고 하니

다시 10,000을 납부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서… ㅠㅠ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기기 정보와 인적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연결하여 기기 변동이나 전화번호

변경시에도 다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정 보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월, 2017/10/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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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에필로그

수, 2017/10/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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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1

금, 2017/10/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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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1

월, 2017/10/1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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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수리온부터 사드까지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군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하어영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이경주ㅣ종합편집: 문석진ㅣ타이틀: 이정온ㅣ카메라: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ㅣ메이크업 : 강도겸ㅣ기술: 박성영 ㅣ연출: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 한겨레TV <2017.10.17>

☞기사원문: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 (안보)

※ 관련영상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 (경찰)<2017.10.10>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 (검찰과 국정원) <2017.9.26>

화, 2017/10/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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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content/uploads/2017/10/201710.pdf

목, 2017/10/19-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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