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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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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익명 (미확인) | 화, 2018/01/09- 11:30

[식민지비망록 31] 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 헌병보조원 출신 항일의병의 총살 장소로도 사용된 공간 

이순우 책임연구원

서울 서쪽 무악재 고개 너머에 있는 홍제원(弘濟院)은 조선시대에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진휼(賑恤)하는 곳인 동시에 서울을 오가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거나 전송할 때 주로 사용된 공간이었다. 지금의 홍제동은 의당 이 홍제원에서 파생된 지명이다. 옛 지명자료를 살펴봤더니 홍제천 곧 ‘모래내’를 사이에 두고 홍제원내동(弘濟院內洞)과 홍제원외동(弘濟院外洞)이 나란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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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운영하던 경성목장(京城牧場)으로 변한 옛 홍제원 터 일대의 전경 사진. (<경성부사>제2권,1936)

 

이 동네들은 1914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뤄질 때 고양군 은평면에 속한 ‘홍제내리(弘濟內里)’와 ‘홍제외리(弘濟外里)’가 되는데, 이 가운데 홍제내리는 다시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홍제외리의 홍제천 이남 구역과 합쳐 홍제정(弘濟町)으로 전환된다. 홍제외리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 1949년 8월에 이르러 은평면 일대가 서울시로 일괄 편입됨에 따라 1950년 3월 15일에 ‘홍은동(弘恩洞, 홍제외리와 은평면의 앞 글자를 따서 조합한 지명)’으로 동명이 개정되었다.
원래 홍은동이라고 하면 하천변을 따라 황량한 산비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이곳에 집단이주촌이 건설되면서 동네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1930년대 중반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토막민(土幕民, 움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거 변두리 지역으로 이주시키면서 새로운 주거단지가 형성되었는데, 홍제외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동아일보>1936년 8월 2일자에 수록된 「밀려난토막민(土幕民)순방기(巡訪記)(2)이름은좋다 환희촌(歡喜村), 서부 홍제외리 새 두옥촌(斗屋村)」 제하의 기사에는 이러한 변화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놓고 있다.

 

(전략) 주택지로서는 인연이 먼 이 험한 돌산, 영양도 부족한 이 여윈 토막민들의 피땀을 얼마나 흘리게 하고 있는가? 국유림을 토막민 구제라는 미영 아래 불하한 경성부(京城府)는 그의 경영관리를 일개 사회사업단체에 일임한 채 오불상관. 더구나 터 닦는 것쯤이야 알은 체나 하랴? …… 무성의한 경성부 태도에 다시금 흥분되며 동리의 홍제천을 끼고 동남으로 휘돌아드니 이 동리로는 중앙 동본원사(東本願寺) 향상대(向上臺) 사무소가 있고 그 아래로 ‘향상대염매소(向上臺廉賣所)’라는 큰 간판이 붙어 있는 큰 집이 새로 건설되는 이 마을의 한 이채이다. 동명은 홍제외리(弘濟外里)라 하나 구역을 따라 환희촌(歡喜村), 보은촌(報恩村), 지혜촌(智慧村), 청정촌(淸淨村), 정신촌(正信村), 신락촌(信樂村), 무량촌(無量村), 해탈촌(解脫村)으로 나뉘어 있다. 환희촌을 찾아 그들의 기쁨을 나누자 함도 아니요 보은촌을 찾아 보은의 뜻을 알자 함도 아니요 해탈촌을 찾아 속세를 떠나자 함은 아니나 동구에 들어놓은 발길은 자연 이곳저곳으로.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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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6년 8월 2일자에 수록된 일본불교 ‘향상회관’이 위탁 운영하던 홍제외리 토막민 이주촌(향상대)의 탐방기사.

 

여기에 나오는 ‘향상대’라는 표현은 일본 불교의 한 갈래인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大谷派 本願寺 京城別院; 남산 동본원사)에 속한 향상회관(向上會館)이 운영하는 주택단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22년 8월에 설립된 향상회관(지금의 천연동 동명여중 자리)은 포교와 더불어 수산(授産; 빈곤자나 무직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 일종의 사회교화단체였다.
바로 이들에게 홍제외리 집단이주촌의 운영이 위탁된 까닭에 ‘보은’이니 ‘무량’이니 ‘해탈’이니 불교색채가 농후한 것들이 마을이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에야 이 일대가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바뀌었지만, 풍림아파트 후면에 자리한 ‘실락어린이공원’이라든가 홍은벽산아파트 앞쪽에 있는 ‘보은소공원’과 같은 것들은 이를테면 향상대 시절의 유산인 셈이다. 실락은 본디 ‘신락’이 와전된 말일 텐데, 그 내력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사이에 잘못된 발음 그대로 버젓이 공원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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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보병대 사격장 자리에 들어선 홍은동 포방터 시장의 입구 전경

그런데 홍은동 지역에는 이곳 말고도 또 다른 근대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홍제천을 따라 상류로 약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물줄기가 크게 굽이치는 지점에 포진한 ‘포방터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포방(砲放)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포를 놓는다’는 뜻이므로, 포방터는 곧 사격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언제부터 어떻게 사격장이 들어선 것일까? 어떤 자료에는 조선시대 이래로 이곳에서 군사들이 사격훈련을 했다고 서술한 경우도 있지만, 거기에 구체적인 근거자료가 함께 제시된 사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곳에 관한 근대시기의 자료 가운데 비교적 빠른 용례로 확인되는 것은 ????독립신문????1899년5월12일자에수록된 「대포시험」 제하의 기사이다.

 

포병대 참령 이민섭 씨가 칙령을 봉승하여 재작일에 회선포 이문(二門)과 극로백(克魯伯) 이문을 가지고 창의문밖 수마동에 나가서 시험차로 방포하였다더라.

 

위의 기사에 나오는 회선포(回旋砲)는 ‘개틀링 기관총(Gatling gun)’이고 ‘극로백’은 ‘크루프(Krupp) 야포’를 말하며, 수마동(水磨洞)은 지금의 홍은동 포방터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밖에 ????황성신문????1907년6월24일자에수록된기사에따르면,그 당시일본육군대신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만주지역시찰을 겸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가 경운궁 돈덕전 앞에서 한국 황제에게 헌상한 기관포(機關砲)에 대한 시험발사가 이뤄진 곳이 수마동의 포방터였다.
약간 특이한 기록으로는 <대한제국관보>1909년 7월 3일자에 “작란죄인(作亂罪人)헌병보조원(憲兵補助員) 강재녕(姜在寧)에 대한 포형(砲刑, 총살형)이 6월 30일에 홍제원 수마동에서 집행되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런데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 2일자에는“장단고랑포파주소(高浪浦派駐所) 헌병보조원 강기동(姜基東)이 의병에 투입(投入)하다가 체포되어 재작일에 신문외 수마동에서 포살되었다”고 하여 그의 이름을 다르게 적고 있다. 하지만 강기동은 양주 고안헌병분견소에 소속된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1911년에 순국할 때까지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린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기사에서 말하는 강기동은 강재녕의 표기오류가 아닌가 여겨진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에는 이곳이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의 사격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에 관해서는 여러 신문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1921년8월 22일자에 수록된 「은평면민(恩平面民)의 탄원서(歎願書), 육군사적장(陸軍射的場)이 있어 교통에 불편하니 옮겨달라고 탄원」 제하의 기사를 보면 “이곳 사격장은 구 한국시대에 건설한 것인 바 …… 운운”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동아일보> 1921년 10월 27일자에 실린 서대문경찰서원의 사격연습 관련 기사에는 이곳의 명칭이 ‘홍제원 조선보병대사격장’으로 표시한 것이 눈에 띈다.27

<매일신보> 1931년 4월 9일자에 수록된 조선보병대해산식광경

 

조선보병대라고 하는 것은 1907년 군대해산 당시 황궁(皇宮)의 의장(儀仗)과 수위(守衛)를 전담할 목적으로 유일하게 남겨진 1개 대대 규모의 ‘근위보병대’가 경술국치 이후 일본군 소속으로 전환된 이후의 명칭이다. 이때 1개 중대 규모의 ‘근위기병대’도 함께 남겨졌으나, 조선기병대(朝鮮騎兵隊)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1913년 4월에 이르러 진즉에 폐지되고 말았다.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던 조선보병대는 애당초 ‘무용지물’에 가까운 군대로 취급되다가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비절감문제가 불거지면서 1931년 4월 8일에 이르러 완전히 해산되는 수순을 밟았다.
조선보병대가 사라진 이후에 이곳은 서대문경찰서 사격장으로 전환되었는데, <동아일보> 1932년 5월 21일자에 수록된 「경관무장(警官武裝)시킬방탄(防彈)조끼시험(試驗)」 제하의 기사에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30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홍제외리 서대문경찰서사격장에서 방탄조끼 성능시험이 진행되는 광경이다. (<매일신보> 1932년 5월 21일자)

 

일상 기거에 갑주를 입어야 할 만큼 험난한 세상이 되어 일본서는 방금 방탄복(防彈服) 연구열이 대단하다. 조선에도 이전과 달라 총기를 사용하는 ‘테로’행동이 자주 발생하므로 경무국에서는 경관에게 방탄족기를 입히고 강철투구를 씌우려고 이전부터 각 방면으로 연구중이라 함은 기보한 바어니와 경무국분실에서 그간 연구를 거듭한 결과 실용에 적당한 물건을 만들어놓고 19일 오후 독립문(獨立門) 밖에 고양군 은평면, 이전 조선보병대 사격장에서 성능시험을 행하였다.
센다이(仙臺)동북제국대학 혼다(本多) 박사가 연구한 니켈, 크롬과 탄소의 특수합금으로 만든 전중량 4백 량중의 조끼를 개량한 실용품을 사진과 같이 나무막대기에 입혀놓고 모젤식 권총으로 20메돌(미터)의 거리로부터 15메돌, 10메돌까지 단축하며 쏘았으되 자리가 움푹하게 날 뿐이지 관통되지는 않아 이만하면 된다고 합격되었다. (하략)

 

1933년에 발행된 <경성종로경찰서기념사진첩>을 보면, 종로경찰서원들이 실탄사격연습을 하는 장면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뒤쪽에 드러나 있는 북한산 봉우리와 사대(射臺)로 사용하는 언덕 주변에 심어진 포플러 나무의 배열 모습을 보아하니, 이곳이 홍제외리의 옛 조선보병대 사격장이란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곳은 서대문경찰서의 전용공간이 아니라 종로경찰서를 비롯한 여타 경찰서에 속한 일제 경찰관들의 함께 사용했던 곳이었던 모양이었다.
일제패망기로 접어든 이후 <매일신보> 1940년 11월 17일자에 보도된 내용에는 “경성사단 관하의 각부대가 용산사격장과 홍제원외리 사격장에서 사격경기대회를 가진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 사격장과 관련한 막바지의 기록이다. 이곳이 언제까지 사격장으로 운영된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이 주변에는 도로명주소로 ‘포방터길’이 두루 사용되고 있으며, 포방터시장으로 건너가는 홍제천 다리의 이름도 ‘포방교’로 작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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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외리 사격장에서 종로경찰서 서원들이 실탄사격연습을 하는 모습. (<경성종로경찰서기념사진첩>,1933)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주변 그 어디에도 포방터의 정확한 내력과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안내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이 일제의 허수아비 군대인 조선보병대는 물론이고 강압적인 식민통치의 선봉이 섰던 일제 경찰들이 사격 훈련을 했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제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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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후 6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하 ‘역사재단’)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에서 강만길저작집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강만길 고려대명예교수의 의사에 따라 직접 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들만 참여하는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용옥 역사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저작집 간행위원회 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 신용옥 이사가 저작집 출간 경위
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자인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의 감사인사, 저작집을 펴낸 창비 기획편집위원장인 백영서 교수 및 임헌영 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강교수는 답사에서 “이번 저작집 역시 학자로서 치열하게 살고자 한 삶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후학들이 나를 넘어서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만길저작집은, 역사재단이 2010년부터 기획한 것으로 역사재단과 창비사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에 간행된 것이다. 강교수의 첫 저작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시작으로 초판 출간 연도에 맞춰 19권의 저서를 순서대로 배치하고 2010년에 나온 〈역사가의 시간〉은 자서전이라는 성격을 고려해 저작집의 마지막 권으로 했으며 미출간 원고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특히 제자 20명이 각 저서에 대한 사학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해제를 실어 그 의의를 더했다.
• 편집부

수, 2019/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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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2/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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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寄金正恩

 

壓制連三代(압제연삼대)

衆言未久亡(중언미구망)

民飢君飽喫(민기군포끽)

共産若豺狼(공산약시랑)

 

김정은에게 거듭 띄우는 글

 

압제하는 정치가 三代를 이으니

뭇사람 未久에 망한다고 말하네

백성은 굶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공산주의란 승냥이와 이리 같네.

 

<時調로 改譯>

 

壓制三代 이으니 未久에 망한다 하네

백성은 굶고 있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오호라! 공산주의란 豺狼과도 같다네.

 

*壓制: 권력이나 폭력으로  남을  꼼짝 못 하게  강제로  누름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대. ≒삼세(三世)  *衆言: 많은  사람의  말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飽喫: 배부르게 먹음. 포식(飽食). 포복(飽腹) *共産: 공산주의(共産主義).

을 공동(共同)으로  관리하고  소유함  *豺狼: 승냥이와 이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2019.1.4, 이우식 지음>

금, 2019/01/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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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급식이 아닌 학교 다닐쩍에 도시락 처먹던 세대들은 잘 알게야. 

점심시간에 애들끼리 도시락 먹으면 당연 서로 같이 싸온 반찬 나눠먹고 하는게 올바른 것이며 국가간 외교로 따지면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국제적 참다운 교류인게다. 

그런데 꼭 도시락은 안 싸오고 거지새끼 처럼 염치도 없이 애들한테 밥이나 얻어 처먹고 반찬이나 축내면서 왔다갔다하는 얄미운 새끼들 있지? 

바로 이런 새끼들이 지금 북괴 빨갱이같은 새끼인게다. 

남한한테 얻어먹고 퍼가고 바라는건 졸라리 많으면서 정작 남한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해만되고 말썽이나 부리는 애물딴지 개버러지 새끼들 

바로 북괴 빨갱이거지10새끼들인게다.

금, 2019/01/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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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시빌

팔용동

목장원

주소는

창원 의창구  팔용로 494-20

박상규윤항기의 경상5회 갑짱들아!

진영당감 일세

ㅍㅏ이브

손소리통  목장원:256-6205

합천봉산똥대지가

생각나는  오마고  창원 경상고 다섯기  정기총회에서

ㅂㅗ고픈 칠팔칠구팔공의  경상고5기

황금도야지해  에는 희비 제대로 내고

경조사 스님에게  찾아 배야 대는데,

기해와기회

올겐 진짜  너거 한테 비찐거 가파야 대는데,

0110모교일  19:00에 봄세

금, 2019/01/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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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筆强於刀諺

 

日本霜刀國(일본상도국)

朝鮮久筆邦(조선구필방)

如何其結果(여하기결과)

誤信正無雙(오신정무쌍)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을 비웃다

 

일본은 시퍼런 칼의 나라였고

조선은 오래 붓의 나라였지만

그 결과는 마침내 어떠했던가

잘못된 믿음 참으로 무쌍했네.

 

<時調로 改譯>

 

일본은 서슬도 푸른 칼의 나라였었고

조선은 오랜 세월 붓의 나라였었지만

그 결과 어떠했던가 誤信 무쌍하였네.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如何:   형편이나 정도가

어떤가의  뜻을  나타내는 *結果: 어떠한 원인으로 결말생김. 그런 결말의

상태 *誤信: 잘못 믿음 *無雙: 서로 견줄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심함.

 

<2019.1.5, 이우식 지음>

토, 2019/01/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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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를 소망하며

새해 우리 사회를 향한 나의 소망 두 개.

하나는 우리 사회가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패거리 짓기, 같은편 편들기와 봐주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행적까지도, 대학 은사 유진오 등 많은 인연 닿는 인사들까지도 “그런 저런 사정은 일체 눈을 감기로 작정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라고 쓴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불러와 기려야 할 시대정신이다.

동문이니까, 동향 사람이니까, 같은 편이니까…등등의 부족사회 수준의 감성으로 잘못된 것에 눈감고 침묵하고 봐주는 사회 분위기,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양심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썩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가 유학에서 돌아와 인사차 찾아뵌 교수님이 1991년에 하신 말씀이다.  그 후 한 세대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다.  세상 곳곳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있다.

아예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다.  처벌도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다.  앞에서 말한 엄정함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니 어물쩍 넘어가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냥 넘기는 사람들이나, 양심과 엄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 낮은 사회 분위기가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2019. 1. 4
민족문제연구소 제명자, 회원
여인철

토, 2019/01/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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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인단 “강제징용 기업 한국 자산 압류해달라” 강제집행 신청
아베 주장하는 ‘국제법‘ 뭐냐 질문에… 법조계 “나도 물어보고 싶다”
법조계 “‘국제법 위반했다’ 국내외 향한 ‘여론전’… 그 이상 이하도 아냐”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6일) 아베 신조 총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힌 모양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아베 총리가 어제 NHK ‘일요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전범기업 신일본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관련해서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부처에 지시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워딩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고 한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지난 연말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단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요.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지난해 두 차례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면담조차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국 내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입니다.

여기다가 배상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인데요. 이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 워딩을 보니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등 ‘국제법’을 많이 언급하고 있던데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다는 건가요.

[기자] 네, 안 그래도 궁금해서 강제징용 손배소송을 수행한 김세은 변호사에게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어서 아베 총리가 그러는 거냐” 라고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그 국제법이 도대체 뭔지 나도 물어보고 싶다”는 답변이었는데요. 직접 들어 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아, 저희도 사실 그게 궁금한데요. 일본 측에 좀 물어봐 주셔야 될 거 같은데. 어느 국제법, 계속 아베 총리나 고노 외무상 워딩이 그래요.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에 근거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어느 국제법인지 사실 국제법이라는 건 없어요.”

[앵커] “국제법이 없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네, 통상 ‘국제법을 어겼다’고 할 때는 김세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어떤 국제 조약, 또는 어떤 국제 협약, 몇 조 몇 조, 이걸 위반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워딩은 이런 게 없이 그냥 거두절미하고 “국제법 위반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건데요. 국내외를 향한 ‘여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김세은 변호사의 말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호하게 그냥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엄청 ‘국제법 위반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우리가 되게 큰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걸 위반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장이고요”

일본 정부 일부 각료가 ‘한국에 대한 트럼프식 관세 보복’ 등을 언급하는 것도 다 이런 여론전, 보수우익 결집 등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을 받는 건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재판처럼 어느 일방이 제소를 한다고 해서 바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양 국 정부가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로 동의를 해야 재판 관할권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미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새삼 국제 분쟁화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옵션이 못 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그러면.

[기자] 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업무가 종료됐다는 일본과 그건 정부 차원의 일이고 민간 차원은 다른 문제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인데요.

일단 외교 경로를 통해 풀어보고 안 되면 별도의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든다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시죠.

[조시현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외교부가 지금 오늘 반응이 나왔잖아요. ‘비우호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한 것은 아닌가. 아베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할 것은 뭐냐면 협의를 해야죠. 언론 선전전을 할 것이 아니고…”

[앵커] 일본은 총리까지 나서 여론전을 펼치는데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될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2019-01-07>법률방송뉴스 

☞기사원문: 아베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 강제징용 변호사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은 없다”

화, 2019/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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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충북지부전체회원모임에서 임헌영 소장님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사무국에 요청을 하라고 하셨고, 지난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도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무국에 연락을하여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2018. 12. 14. 서울시교육청은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행정처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에 있어서 법률 또는 행정처분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 회원들이 공유하여야 할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비공개했던 총회 의사록을 교육청을 통해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2002년 1월에도 동부교육청이 법인실태 조사후 고발 및 시정시시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은 민문연 집행부에서 어떻게 연구소를 운영했으면 고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또 서울시교육청이 현장 실사를 하고,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처분한 공문을 제공해주시고, 회원에게 공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 2019/01/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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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의 조서 기록 –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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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받는 사람의 실루엣
테이블
서류뭉텅이들

전등

1919년 3월 1일

100년 전 그 날은 몇몇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총독부 순사로 보초를 서던 곳에서, 농촌의 민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뛰쳐 나왔던 모든 사람들의 걸음이다.

일제는 3·1운동 참여자들을 취조한 신문조서를 2000여건이나 남겼다.

참여자 200만명, 사망 7500여명, 피검자 4만7000여명이라는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 참여했던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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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문조서 기록을 열람합니다…

3.1운동 당시 신문조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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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다함께 만들어온 세상 100년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100년전 3.1 운동 그날의 신문기록







화, 2019/01/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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