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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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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익명 (미확인) | 화, 2018/01/09- 11:30

[식민지비망록 31] 포방터시장으로 남은 홍제외리 조선보병대 사격장의 흔적 – 헌병보조원 출신 항일의병의 총살 장소로도 사용된 공간 

이순우 책임연구원

서울 서쪽 무악재 고개 너머에 있는 홍제원(弘濟院)은 조선시대에 병들고 굶주린 사람들을 진휼(賑恤)하는 곳인 동시에 서울을 오가는 중국 사신을 영접하거나 전송할 때 주로 사용된 공간이었다. 지금의 홍제동은 의당 이 홍제원에서 파생된 지명이다. 옛 지명자료를 살펴봤더니 홍제천 곧 ‘모래내’를 사이에 두고 홍제원내동(弘濟院內洞)과 홍제원외동(弘濟院外洞)이 나란히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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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운영하던 경성목장(京城牧場)으로 변한 옛 홍제원 터 일대의 전경 사진. (<경성부사>제2권,1936)

 

이 동네들은 1914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뤄질 때 고양군 은평면에 속한 ‘홍제내리(弘濟內里)’와 ‘홍제외리(弘濟外里)’가 되는데, 이 가운데 홍제내리는 다시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되면서 홍제외리의 홍제천 이남 구역과 합쳐 홍제정(弘濟町)으로 전환된다. 홍제외리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 1949년 8월에 이르러 은평면 일대가 서울시로 일괄 편입됨에 따라 1950년 3월 15일에 ‘홍은동(弘恩洞, 홍제외리와 은평면의 앞 글자를 따서 조합한 지명)’으로 동명이 개정되었다.
원래 홍은동이라고 하면 하천변을 따라 황량한 산비탈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이곳에 집단이주촌이 건설되면서 동네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1930년대 중반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던 토막민(土幕民, 움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거 변두리 지역으로 이주시키면서 새로운 주거단지가 형성되었는데, 홍제외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동아일보>1936년 8월 2일자에 수록된 「밀려난토막민(土幕民)순방기(巡訪記)(2)이름은좋다 환희촌(歡喜村), 서부 홍제외리 새 두옥촌(斗屋村)」 제하의 기사에는 이러한 변화의 실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놓고 있다.

 

(전략) 주택지로서는 인연이 먼 이 험한 돌산, 영양도 부족한 이 여윈 토막민들의 피땀을 얼마나 흘리게 하고 있는가? 국유림을 토막민 구제라는 미영 아래 불하한 경성부(京城府)는 그의 경영관리를 일개 사회사업단체에 일임한 채 오불상관. 더구나 터 닦는 것쯤이야 알은 체나 하랴? …… 무성의한 경성부 태도에 다시금 흥분되며 동리의 홍제천을 끼고 동남으로 휘돌아드니 이 동리로는 중앙 동본원사(東本願寺) 향상대(向上臺) 사무소가 있고 그 아래로 ‘향상대염매소(向上臺廉賣所)’라는 큰 간판이 붙어 있는 큰 집이 새로 건설되는 이 마을의 한 이채이다. 동명은 홍제외리(弘濟外里)라 하나 구역을 따라 환희촌(歡喜村), 보은촌(報恩村), 지혜촌(智慧村), 청정촌(淸淨村), 정신촌(正信村), 신락촌(信樂村), 무량촌(無量村), 해탈촌(解脫村)으로 나뉘어 있다. 환희촌을 찾아 그들의 기쁨을 나누자 함도 아니요 보은촌을 찾아 보은의 뜻을 알자 함도 아니요 해탈촌을 찾아 속세를 떠나자 함은 아니나 동구에 들어놓은 발길은 자연 이곳저곳으로.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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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6년 8월 2일자에 수록된 일본불교 ‘향상회관’이 위탁 운영하던 홍제외리 토막민 이주촌(향상대)의 탐방기사.

 

여기에 나오는 ‘향상대’라는 표현은 일본 불교의 한 갈래인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大谷派 本願寺 京城別院; 남산 동본원사)에 속한 향상회관(向上會館)이 운영하는 주택단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22년 8월에 설립된 향상회관(지금의 천연동 동명여중 자리)은 포교와 더불어 수산(授産; 빈곤자나 무직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한 일종의 사회교화단체였다.
바로 이들에게 홍제외리 집단이주촌의 운영이 위탁된 까닭에 ‘보은’이니 ‘무량’이니 ‘해탈’이니 불교색채가 농후한 것들이 마을이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에야 이 일대가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바뀌었지만, 풍림아파트 후면에 자리한 ‘실락어린이공원’이라든가 홍은벽산아파트 앞쪽에 있는 ‘보은소공원’과 같은 것들은 이를테면 향상대 시절의 유산인 셈이다. 실락은 본디 ‘신락’이 와전된 말일 텐데, 그 내력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사이에 잘못된 발음 그대로 버젓이 공원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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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조선보병대 사격장 자리에 들어선 홍은동 포방터 시장의 입구 전경

그런데 홍은동 지역에는 이곳 말고도 또 다른 근대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홍제천을 따라 상류로 약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물줄기가 크게 굽이치는 지점에 포진한 ‘포방터시장’이 바로 그것이다. 포방(砲放)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포를 놓는다’는 뜻이므로, 포방터는 곧 사격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언제부터 어떻게 사격장이 들어선 것일까? 어떤 자료에는 조선시대 이래로 이곳에서 군사들이 사격훈련을 했다고 서술한 경우도 있지만, 거기에 구체적인 근거자료가 함께 제시된 사례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곳에 관한 근대시기의 자료 가운데 비교적 빠른 용례로 확인되는 것은 ????독립신문????1899년5월12일자에수록된 「대포시험」 제하의 기사이다.

 

포병대 참령 이민섭 씨가 칙령을 봉승하여 재작일에 회선포 이문(二門)과 극로백(克魯伯) 이문을 가지고 창의문밖 수마동에 나가서 시험차로 방포하였다더라.

 

위의 기사에 나오는 회선포(回旋砲)는 ‘개틀링 기관총(Gatling gun)’이고 ‘극로백’은 ‘크루프(Krupp) 야포’를 말하며, 수마동(水磨洞)은 지금의 홍은동 포방터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밖에 ????황성신문????1907년6월24일자에수록된기사에따르면,그 당시일본육군대신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만주지역시찰을 겸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가 경운궁 돈덕전 앞에서 한국 황제에게 헌상한 기관포(機關砲)에 대한 시험발사가 이뤄진 곳이 수마동의 포방터였다.
약간 특이한 기록으로는 <대한제국관보>1909년 7월 3일자에 “작란죄인(作亂罪人)헌병보조원(憲兵補助員) 강재녕(姜在寧)에 대한 포형(砲刑, 총살형)이 6월 30일에 홍제원 수마동에서 집행되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그런데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 2일자에는“장단고랑포파주소(高浪浦派駐所) 헌병보조원 강기동(姜基東)이 의병에 투입(投入)하다가 체포되어 재작일에 신문외 수마동에서 포살되었다”고 하여 그의 이름을 다르게 적고 있다. 하지만 강기동은 양주 고안헌병분견소에 소속된 헌병보조원 출신으로 1911년에 순국할 때까지 의병장으로 이름을 날린 별개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기사에서 말하는 강기동은 강재녕의 표기오류가 아닌가 여겨진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에는 이곳이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의 사격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에 관해서는 여러 신문자료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신보>1921년8월 22일자에 수록된 「은평면민(恩平面民)의 탄원서(歎願書), 육군사적장(陸軍射的場)이 있어 교통에 불편하니 옮겨달라고 탄원」 제하의 기사를 보면 “이곳 사격장은 구 한국시대에 건설한 것인 바 …… 운운”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동아일보> 1921년 10월 27일자에 실린 서대문경찰서원의 사격연습 관련 기사에는 이곳의 명칭이 ‘홍제원 조선보병대사격장’으로 표시한 것이 눈에 띈다.27

<매일신보> 1931년 4월 9일자에 수록된 조선보병대해산식광경

 

조선보병대라고 하는 것은 1907년 군대해산 당시 황궁(皇宮)의 의장(儀仗)과 수위(守衛)를 전담할 목적으로 유일하게 남겨진 1개 대대 규모의 ‘근위보병대’가 경술국치 이후 일본군 소속으로 전환된 이후의 명칭이다. 이때 1개 중대 규모의 ‘근위기병대’도 함께 남겨졌으나, 조선기병대(朝鮮騎兵隊)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1913년 4월에 이르러 진즉에 폐지되고 말았다.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에 있던 조선보병대는 애당초 ‘무용지물’에 가까운 군대로 취급되다가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비절감문제가 불거지면서 1931년 4월 8일에 이르러 완전히 해산되는 수순을 밟았다.
조선보병대가 사라진 이후에 이곳은 서대문경찰서 사격장으로 전환되었는데, <동아일보> 1932년 5월 21일자에 수록된 「경관무장(警官武裝)시킬방탄(防彈)조끼시험(試驗)」 제하의 기사에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30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홍제외리 서대문경찰서사격장에서 방탄조끼 성능시험이 진행되는 광경이다. (<매일신보> 1932년 5월 21일자)

 

일상 기거에 갑주를 입어야 할 만큼 험난한 세상이 되어 일본서는 방금 방탄복(防彈服) 연구열이 대단하다. 조선에도 이전과 달라 총기를 사용하는 ‘테로’행동이 자주 발생하므로 경무국에서는 경관에게 방탄족기를 입히고 강철투구를 씌우려고 이전부터 각 방면으로 연구중이라 함은 기보한 바어니와 경무국분실에서 그간 연구를 거듭한 결과 실용에 적당한 물건을 만들어놓고 19일 오후 독립문(獨立門) 밖에 고양군 은평면, 이전 조선보병대 사격장에서 성능시험을 행하였다.
센다이(仙臺)동북제국대학 혼다(本多) 박사가 연구한 니켈, 크롬과 탄소의 특수합금으로 만든 전중량 4백 량중의 조끼를 개량한 실용품을 사진과 같이 나무막대기에 입혀놓고 모젤식 권총으로 20메돌(미터)의 거리로부터 15메돌, 10메돌까지 단축하며 쏘았으되 자리가 움푹하게 날 뿐이지 관통되지는 않아 이만하면 된다고 합격되었다. (하략)

 

1933년에 발행된 <경성종로경찰서기념사진첩>을 보면, 종로경찰서원들이 실탄사격연습을 하는 장면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뒤쪽에 드러나 있는 북한산 봉우리와 사대(射臺)로 사용하는 언덕 주변에 심어진 포플러 나무의 배열 모습을 보아하니, 이곳이 홍제외리의 옛 조선보병대 사격장이란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곳은 서대문경찰서의 전용공간이 아니라 종로경찰서를 비롯한 여타 경찰서에 속한 일제 경찰관들의 함께 사용했던 곳이었던 모양이었다.
일제패망기로 접어든 이후 <매일신보> 1940년 11월 17일자에 보도된 내용에는 “경성사단 관하의 각부대가 용산사격장과 홍제원외리 사격장에서 사격경기대회를 가진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 사격장과 관련한 막바지의 기록이다. 이곳이 언제까지 사격장으로 운영된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하나, 그래도 이 주변에는 도로명주소로 ‘포방터길’이 두루 사용되고 있으며, 포방터시장으로 건너가는 홍제천 다리의 이름도 ‘포방교’로 작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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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외리 사격장에서 종로경찰서 서원들이 실탄사격연습을 하는 모습. (<경성종로경찰서기념사진첩>,1933)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주변 그 어디에도 포방터의 정확한 내력과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안내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이 일제의 허수아비 군대인 조선보병대는 물론이고 강압적인 식민통치의 선봉이 섰던 일제 경찰들이 사격 훈련을 했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이들은 이제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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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와 청년시대여행이 공동 주관하는 ‘일제 강제동원과 야스쿠니신사-촛불원정대 특강’이 7월 4일부터 매주 목요일 민족문제연구소 강연장과 ‘청년협동조합 몽땅’의 사무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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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강으로 구성된 이번 강좌는 올해 8월 도쿄에서 열리는 ‘야스쿠니의 어둠에 평화의 촛불을’ 공동행동 참가자를 대상으로 마련된 것으로, 현지 행사에 앞서 참가자들이 한일관계와 야스쿠니문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동북아 평화공존의 방안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준비되었다.
1강에서 김진영 선임연구원은 일제식민지배의 특징과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였다. 이와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례와 한일 양국정부의 대응을 통해 강제동원 문제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았다. 2강에서 김영환 대외협력팀장은 야스쿠니신사의 역사를 바탕으로 ‘천황제’와 야스쿠니 이데올로기의 작동원리, 그 허상과 야만성을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 일본사회의 사상적 근원, 우경화의 연원을 설명하여 강좌 참가자들과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7월 19일 3강에는 영화 ‘안녕사요나라’ 상영회와 주인공인 이희자 ‘보추협’ 공동대표의 강연이 준비되어 있고, 7월 26일 4강에는 촛불행동 설명회와 참가자 전체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 김진영 선임연구원

수, 2018/08/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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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반민특위 설립 70주년을 맞아 6월 20일 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아들인 김정륙 회원(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1시간 정도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김정륙 회원은 당시 서울 충무로에 있던 반민특위 위원장 관사로 이승만 대통령이 찾아와 김상덕 위원장을 회유한 이야기, 김상덕 위원장이 6·25 직후 납북된 과정과 그 후 비참했던 가정사 등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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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를 마친 후 김정륙 회원은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인장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 인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국무위원 시절 그리고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사용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이다. 김정륙 회원은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마련된 2층 전시실에 인장을 직접 진열했다.
김정륙 회원은 아버지의 유품을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에 기증하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며 소중하게 보관해 달라고 당부했다.

• 편집부

수, 2018/08/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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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물 1층에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전달식’이 열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이하 잇는 모임)이 건립기금 1억 345만 원을 시민역사관건립위원회에 전달했다. 식민주의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이야말로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침략,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일본 시민과 단체로부터 모은 기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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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금전달식에는 잇는 모임에서 서승 공동대표, 안자코 유카 공동대표,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등 총 19명이 참석했고, 연구소 측에서는 이이화 시민역사관건립위원장, 함세웅 이사장, 임헌영 소장, 이민우 운영위원장 등 약 60명이 참석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들도 함께 했다.
기금전달식에 이어 2층 전시실에서 자료기증식이 진행되었다. 잇는 모임은 그동안 기금뿐만 아니라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과 전후보상운동의 전개과정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모아왔는데, 이날은 ‘재한군인군속재판의 요구 실현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후루카와 마사키 씨가 커다란 현수막을 기증했다. “야스쿠니 합사를 하지 마라!! 유골을 돌려 달라!!”라는 구호가 힘찬 글씨체로 적혀 있는 이 현수막은 2003년 군인군속재판 추가제소 당시 일본 법원 앞에서 피해자들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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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는 모임 참가자들은 기금전달식에 앞서 효창원과 백범김구기념관, 남산 권역을 답사했으며, 6·10민주항쟁 31주년이 되는 날에는 남영동 옛 대공분실을 견학했다. 그들은 일제와 국가폭력으로 짓밟힌 역사가 켜켜이 쌓인 용산과 남산 일대를 답사하면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의 의의를 다시금 확인했다.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시민들에게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알리고 함께할 것을 다짐했다.

• 노기 카오리 선임연구원

수, 2018/08/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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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음)와 육군사관학교(교장 정진경 중장)가 공동주최한 이날 기념식은 처음으로 육사에서 열렸는데 이는 육사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라는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육사는 지난 해 12월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특별 학술회의를 열었고, 올해 3월 1일에는 육사 교정에 독립전쟁 영웅 5인(이회영,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의 흉상을 제막하는 등 우리 국군의 뿌리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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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임원, 유족, 시민 등 60여 명이 참석한 기념식에는 1,100여 명의 육사생도 전원이 연병장에 도열했다. 주동욱 경희민주동문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 준비위원장이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를 했고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기념사를 했다. 윤경로 상임대표는 기념사에서 “신흥무관학교 선열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육사 생도들이 배우기를 원했는데 쉽지 않았지만 촛불시민들의 덕분으로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도 매년 기념식을 육사에서 열 수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을 마친 후에는 육사 생도들의 분열식이 거행되었다. 이어서 독립전쟁 특별전시회를 관람 후 육사 생도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을지강당에서 공연된 항일음악회 관람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날 기념식에는 윤경로 상임대표를 비롯해 이항증 공동대표, 정철승 조직위원장, 김용호 행사위원장 등이 참석했고 독립운동가 유족으로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차영조 선생 그리고 김순흥, 권위상, 김희원 운영위원 등이 함께 했다.

• 편집부

수, 2018/08/01-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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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增稅(부자증세)

 

衆庶號增稅(중서호증세)

人君不欲聽(인군불욕청)

何由初約遠(하유초약원)

請願若雷霆(청원약뇌정)

 

富者에 대한 增稅

 

썩 많은 이들이 增稅 부르짖는데

나라님은 당최 들으려 하지 않네

무슨 연유로 첫 약속 멀어졌나요

請하고 願함이 천둥과 벼락 같네.

 

<時調로 改譯>

 

많은 이 부르짖는데 나라님 듣지 않네

그 무슨 까닭으로 첫 약속 멀어졌나요

請하고 願하는 바가 천둥과 벼락 같네.

 

*增稅: 세금의 액수를 늘리거나 세율을 높임. ≒복상(卜相) *衆庶: 뭇사람 *人君:

임금. 나라님 *初約: 처음에 약속 *請願: 일이 이루어지도록 청하고 원함 *雷霆:

뇌정벽력(雷霆霹靂).  천둥과 벼락이 격렬(激烈)하게 침. 또는 그런 천둥과 벼락.

 

<2018.8.1, 이우식 지음>

목, 2018/08/0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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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통일의 집’ 방문기

최인담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사

 

안녕하세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여러분. 저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사 최인담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연구소가 강북구의 요청으로 기념관을 위탁운영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2016년 개관 이래 제가 이곳에서 일한지 어느덧 2년 이상이 흘렀습니다.
강북구에 문익환 목사의 사택으로 알려진 통일의 집이 있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근무하게 된 김에 빠른 시일 내 한번 가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통일의 집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의 집이 공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박물관으로 새 단장을 한다는 것이었어요. 박물관 건립과 운영을 위해 사단법인 통일의 집에서도 박물관 운영을 위해 연구소에 조언을 구하고자 기념관으로 연락을 준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기념관 위탁 운영 과정을 상세히 전달해드리고자 연구소로 직접 연결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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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다시금 ‘통일’이라는 말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 날이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상황과 마주하게 된 것이죠. 아직도 그날 아침 사무실의 분위기가 생각납니다. 다섯 명의 직원들은 지금 이 순간이 훗날 오래도록 기념할 역사적 순간임을 직감했었는지 각자 앞에 놓인 모니터에 시선을 떼지 못했어요.
군사분계선에 선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오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어느 새 악수를 나누는 모습으로, 또 악수를 나누는가 싶더니 어느새 김정은 위원장이 천진한 모습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팔을 잡아끌며 야트막한 방지턱을 넘는 모습으로 장면이 바뀌더군요. 군사분계선이 마음속에 그린 상상의 것이었나, 이렇게 넘을 수도 있는 것이었구나 싶어 울컥했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실감나지 않던 정상회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로 사회의 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실감해요.
그리고 지난 6월이었습니다. 통일의 집이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관람객을 맞아들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과 배우 문성근 씨가 손님을 맞이하는 사진도 몇 편의 기사를 통해 접했지요. 그로부터 며칠 뒤 강북구청의 담당 주무관이 기념관을 직접 방문했어요. 주무관은 통일교육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강북구청과 서로 만나기로 했대요. 이를 발판삼아 강북구가 ‘통일’을 주제로 근현대사기념관과 연계하여 역사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어요.
사실 근현대사기념관 개관 이래 통일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는 수강생들이 기념관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공유한 적은 없었거든요. 또 기념관에 전시 해설을 요청하신 적이 있지만 통일교육원의 교육프로그램의 주제와 맞지 않아 지속적으로 교류가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강북구와 근현대사기념관과 통일교육원이 서로 연계하여 통일교육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요!
그간 근현대사기념관은 기념관 인근에 있는 애국자시 16기의 묘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살려 시민들과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었어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도보로 10분 이내 갈 수 있는 초대 제헌국회 부의장 신익희 선생 묘역, 1세대 검사 이준 열사 묘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묘역, 초대 국군이라 할 수 있는 광복군 합동 묘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묘역을 1시간 시간 코스로 둘러볼 수 있는 ‘초대初代길’은 근현대사기념관을 찾는 중고등학교 학급 단위의 단체관람객에게 매우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념관 설립 단계부터 민족문제연구소는 통일교육원과 국립4·19민주묘지 그리고 통일의 집을 염두하고 기념관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량으로 통일의 염원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2016년 8월, 광복 71년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소중한 모금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의 회비로 후원한 독립민주기념비가 세워질 당시 기념비의 의의는 독립과 민주 그리고 통일을 기념하고 염원하는 조형물을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어요. 지난 10년간 냉각된 남북의 분위기에도 통일이라는 염원을 잊지 않은 연구소의 바람도 근현대사기념관의 전시와 독립민주기념비에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찰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저에게 통일의 집 방문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하셨어요. 아, 이제는 정말 통일의 집 방문을 미룰 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2018년 7월, 여름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통일의 집까지 걸어가는 데는 작은 골목 사이 최단거리로 1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국립4·19민주묘지 앞을 거쳐 큰 길로 간다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통일의 집 앞 골목까지 이정표가 있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아서 50m 정도 지나치기도 했지만 이내 훤한 대문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박물관과 만날 수 있었어요.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익환 통일의 집 개관전이 열린다는 커다란 플래카드도 볼 수 있었어요. 반쪽 문이 열린 대문으로 총총 계단을 올라가니 소담한 정원이 펼쳐지더라고요.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펼쳐진 빨간 벽돌집은 문익환 목사와 가족이 1970년부터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1994년 문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부인 박용길 선생님께서 ‘통일의 집’이라는 현판을 걸고 일반에 공개하면서 알려졌다고 해요.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의 성금으로 집을 복원하였으며 2018년 6월 1일 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어요. 지금은 문익환 목사가 남긴 유품과 글, 서한 등 귀중한 근현대사의 자료를 보존하고 평화와 통일을 꿈꾸는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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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기 전에 안내판을 꼼꼼히 읽고 화단을 한번 둘러보며 숨을 가다듬었고 있노라니,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문익환 목사 댁을 방문한 손님이 된 기분을 느꼈어요. 문영금 통일의 집 관장님은 문을 열고 친히 슬리퍼를 내어주시며 손님을 맞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시라며 관람객을 배려해 주셨어요.
거실로 들어서자 “너른마당”이라는 글자가 적힌 액자가 눈에 띄었어요. 문익환 목사의 글처럼 오래 된 피아노와 문익환 목사의 사진과 그림이 벽에 걸렸으며, 문익환 목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들이 거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아담한 거실에 둘러앉아 벗과 덕담을 나누는 어떤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관람객을 배려한 작은 의자와 방석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들방에서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문익환 목사의 생애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윤동주, 장준하와 같은 역사 속 인물들과 교류하며 보편적인 말과 진실함으로 사람들 한가운데 서 있으며, 김일성 위원장과 포옹하는 장면이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는 육성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그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해방의 혼돈을 거친 젊은 청년이 종교에 헌신하면서도 민주화운동의 거목이 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유물은 박용길 선생님이 모아놓은 남편의 수인번호였어요. 생애 중 10여 년 이상을 춥고 고달픈 곳에서 투쟁해 왔는지를 알 수 있었지요.
다음으로 기도방은 한가운데 자그마한 탁자가 놓여있었어요. 이곳에 앉아 기도하는 목사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다음으로 안방으로 가는 복도를 두고 널찍하고도 깔끔한 화장실이 사용한 흔적 그대로 남아있었어요. 복도 벽면에는 문익환 목사의 청년시절, 신학자의 삶, 수감생활, 방북의 과정을 지도와 연표, 사진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패널이 있었어요. 좁은 집을 전시실로 알차게 활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방으로 들어서니 붉은 벽돌이 노출된 천장 일부가 눈에 띄었어요. 관장님께서 함께 둘러보시며 원래 복도에서 끝나는 집을 안방 방향으로 집을 증축하면서 가려져있던 굴뚝을 이번에 노출시켰다고 하셨어요. 마당이 훤히 보이는 안방은 문익환 목사의 자필 편지, 성서 연구 노트가 가지런히 진열장에 정리되어 있었어요. 생전에 그가 읽던 책은 성서부터 역사서, 시집 등이 벽면에 가지런히 꽂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박물관을 둘러보고 문영금 관장님과 너른마당에 앉아 담소를 나눴어요. 관장님께서 제게 전시를 어떻게 보셨는지 물으시며 말씀하셨어요. 원래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통일의 집을 개방했을 때는 아버지의 유품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많은 물건들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도록 배치하셨대요. 그러다 박물관으로 단장하면서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바꾸다보니 배치할 수 있는 물건이 줄어들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이 공간은 문익환 목사가 살았던 집을 고스란히 복원하고 그 안에 그의 생애와 그 시대의 치열함이 녹아있는 유물들이 놓여있어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리고, 또 다른 공간에서 얼마든지 특별전을 개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소장 자료를 가지고 계시니 그것을 활용할 수 있으면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 같아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과 북이 평화를 약속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은 이때, 박물관에 걸린 ‘남누리 북누리 한누리 되도록’ 이라는 글처럼 통일을 향한 염원이 한데 모여 천천히 평화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 2018/08/0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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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최후의 결전3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민족주의 진영”

목, 2018/08/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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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내역사 시즌2-비하인드히스토리 9화

44년만에 무죄, 문인간첩단 조작사건과 임헌영

 

 
목, 2018/08/02-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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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 최후의 결전 2편

해방전야의 독립운동가들 “공산주의 그룹과 조선독립동맹”

목, 2018/08/0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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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8회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기념관”

목, 2018/08/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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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소에 관한 허위사실을 계속 유포하는 사람(비회원)이 교육청에 정관 정보공개를 청구하더니, 이제는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교육청 승인 정관을 ‘연구소 소개’에 게시해 놓았으니 더 이상 의미없는 정보공개 청구를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목, 2018/08/0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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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 관련 게시물을 진정 민족문제연구소가 쓴 글이 맞나요?
내가 알고 있는 민문연의 수준이 이정도였습니까?

의미 없는 정보공개청구?????

지난 3월 24일 총회 이전에 홈페이지에 정관이 게시되었고, 여러 회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홈페이지에서 정관을 삭제했습니다.
왜 삭제했습니까?

지도감독기관인 서울시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을때
민문연은 ‘정관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공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공개해야할 정관을 스스로 공개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인데,
‘영업상.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비공개해달라도 했습니다.

민문연 운영의 근본 규범인 정관마저도 공개하지 않으려는 민문연의 작태에 분노가 치솟습니다.

만약, 민문연이 미리 정관을 공개했다면 정보공개청구도 없었을 것이고.
‘영업상.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추가의 정보공개청구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정보공개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홈페이지에 게시했을까요?
가슴에 손을 언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회원의 당연한 권리 행사를 ‘의미 없는’이라고 했습니다.

점입가경, 설상가상…..
민문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봄날 눈 녹듯 사라지고 있습니다.

임종국 선생이 작금의 사태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금, 2018/08/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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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 D-26! 릴레이 응원영상 3탄!]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전설의 개발자’라고 불리우는

역사게임의 선구자 김태곤PD가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응원합니다!

화, 2018/08/0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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