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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기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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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기념해야

익명 (미확인) | 화, 2018/01/09- 10:10

–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던 김경천 장군 증손녀 김올가 씨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랑스러운 선조를 갖는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역사가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우했던 역사가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제대로 기념하지 않은 역사였기에 더욱 그렇다.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김경천 장군의 증손녀 김올가 씨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09

문 : 연구소 회원들을 위해 김경천 장군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세요.

답 : 증조할아버지인 김경천 장군은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유명한 독립투사예요. 본명은 김광서였는데 무관가문 출신이었어요. 아버지 김정우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고위 장교로 대한제국 군대의 병참 분야 최고 직위인 군기창감을 지내셨어요. 형 김성은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공병대장을 지내셨구요.
아버지는 공업을 배우라고 권하는데 나폴레옹 전기를 탐독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군인의 길을 선택하셨대요. 1904년 대한제국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건너가셨어요. 일본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셨어요. 말 타고 싸우는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기병 제1연대에서 근무하다가 3·1운동 후인 1919년 6월 만주로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이 되셨어요. 할아버지는 일본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이청천 장군, 중국 사관학교를 나온 이범석 장군과 함께 청년들을 가르치셨어요.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가셔서 독립군 대장이 되셨어요. 동포들을 괴롭히는 마적들을 소탕하셨고, 러시아 내전에 출병한 일본군과도 싸우셨어요. 그렇게 평생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셨어요.
한국이 독립된 뒤 할아버지의 동지인 이범석 장군님은 국무총리가 되시고 이청천 장군님도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셨는데 할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행하게 돌아가셨어요.

문 : 1919년 6월이면 3·1운동 직후로군요. 일본군 장교로 복무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건데,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답 : 조국을 빼앗겼는데 당연히 되찾아야 된다고 생각하셨죠. 할아버지는 일본육사 생도 시절에 3년 후배인 홍사익, 이청천, 이응준과 함께 요코하마에 가서 맹세하셨다고 해요. 조국이 부르면 독립전쟁에 투신하자고 말이에요. 하지만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 맹세를 지키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육사 졸업 후 일본군 장교가 되기도 했고요. 결국 홍사익과 이응준은 망명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증조할아버지와 육사 후배인 이청천 두 분만 모든 걸 내던지고 독립투쟁에 나섰어요. 자기 같은 군사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었겠죠.
그리고 가장 큰 계기는 삼일만세였어요. 증조할아버지는 당시 종로의 만세시위 현장에 있었고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었어요. 이후 1919년 6월에 이청천과 탈출해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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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시절 김경천 장군과 부인 유정화

 

문 : 김경천 장군은 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셨어요. 연해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답 : 증조할아버지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셨어요. 그곳에서 교관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매진하셨구요. 여기서 구한국무관학교 출신인 신팔균 장군도 만나셨대요. 그래서 증조할아버지와 이청천, 신팔균 이렇게 세 분이 하늘 천(天)이 들어가는 별호를 나눠 가지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경천(驚天), 지대형(이청천 장군의 본명)은 청천(靑天), 신팔균 장군은 동천(東天)이라고 했대요. 세 분을 일컬어 남만주 3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조할아버지는 이청천 장군과 의논해서 이청천 장군은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해, 증조할아버지는 연해주로 무기구입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각각 이동하셨어요. 연해주는 혁명전쟁(러시아내전) 중이었지만, 15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 공동체가 있고, 소비에트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문 : 러시아 연해주에서 김경천 장군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고 하는데, 그 활약상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답 :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데 일단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스찬[水淸. 지금의 빨치산스크] 지역에서 동포들을 괴롭혔던 마적단 300여 명을 전멸시키고 말 300여 필과 소총 300여 정을 노획한 적도 있고요. 증조할아버지는 마적 퇴치 투쟁으로 시베리아지역에서 큰 명성을 얻었고, 이때부터 ‘김장군’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 후 증조할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군정을 펼쳐 동포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1922년에는 이만에서 러시아 백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의 활약상도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전투 중에 적군(赤軍)의 사령관이 백군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조할아버지는 자신이 지휘하는 스찬의병대와 함께 적군 잔여 병력도 함께 지휘하며 백군을 물리치고 이만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연해주 혁명사에 길이 남을 큰 승리였어요. 당시 일본은 이 지역에 최대 병력을 출병시켜 백군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승리라 할 수 있어요.

문 : 그런데 김경천 장군은 1930년대 이후 소련 정부의 탄압을 받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답 : 증조할아버지에게 일본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워 체포한 거예요. 이것은 스탈린의 대숙청과 한인 강제이주 정책 등과 맞물려 벌어졌어요. 대숙청 과정에서 한인 공산당 간부들이 대거 숙청됐고, 증조할아버지는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일본육사를 나왔으니 소련의 관점으로는 나쁜 성분이었어요. 게다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공산당원도 아니었어요. 이 무렵 한인 독립운동 지도자들, 오랫동안 민족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체포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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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증조할아버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군사학과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체포되셨다고 해요. 1936년 9월 체포되셔서 3년형을 받으셨고 2년 반 정도 복역한 후 1939년 2월 석방되셨어요.
이후 가족들이 있는 카자흐공화국으로 이동하셨는데, 거기서 다시 인민의 적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카라간다에 있는 교정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히게 되셨어요. 1941년에는 시베리아로 이감되셨고, 1942년에는 꼬미자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 유배되셨는데, 거기서 결국 숨을 거두셨어요. 안타깝게도 스탈린독재의 횡포에 희생되신 거죠. 증조할아버지는 스탈린 사후인 1959년 2월 복권되셨어요. 증조할아버지 유해를 찾아 고향으로 모시려는 소망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든 간에 자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증조할아버지 같은 분들을 제대로 대우하면서 기념해야 하지요.

문 : 독립운동가의 가족은 흔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곤 합니다. 가족들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특히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신 후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답 : 가장 많이 고생하신 분은 증조할머니인 유정화 할머니예요. 선비 가문에서 출생해서 고생을 모르고 곱게 자란 규수였는데 독립투사의 아내가 되어 힘든 삶을 사셨어요. 카자흐스탄에서의 삶은 유형지로 간 죄수의 아내로서 특히 힘드셨지요. 그 당시 청소 같은 궂은일을 했어야 되는 상황이었고 고생이 심했죠. 하지만 그런 일도 귀족처럼 꿋꿋이 하셨다고 합니다.

문 : 김올가 씨는 지금 전남대 대학원에 재학중이시죠? 전공은 무엇인가요?

답 : 전남대 대학원 디아스포라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최근 수료했고요. 현재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 주제는 국내 거주 동포의 지역 수용에 관련한 연구입니다. 주로 안산과 광주에 있는 고려마을을 비교하여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부담이 좀 돼요. 전공 자체가 저와 저의 가족들, 더 나아가 고려인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고, 제가 이런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은 저 혼자의 논문이라기보다는 고려인을 대표하여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 김올가 씨는 연구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특히 광주지부와 밀접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답 : 네. 한국에 온 지 약 4년 됐는데, 처음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어요. 카자흐스탄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왔으나 전남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이 문화와 언어 기타 문제나 그런 것 때문에 부담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학효 선생님을 통해서 광주대학교 김순흥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교수님을 통해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구요. 한국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김순흥 교수님과 광주지부 식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어요.

문 : 최근 서울 사직동에 김경천 장군의 생가 표지석을 세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 같은 건 없었나요?

답 :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몇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직동 집터에 증조할아버지의 표지석을 세우는 것이었어요.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신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손자인 이종찬 선생님과 우당기념관 상임이사인 황원섭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다행히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일 것 같지 않더라구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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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답 : 방금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몇 가지 소망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몇 가지가 더 있어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본격적인 전기를 출간하는 일, 백마를 탄 형상의 증조할아버지 동상을 세우는 일,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는 일,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념관을 세우는 일, 증조할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일이 그것입니다.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유해를 찾는 일이지만 이것은 DNA검사 등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고 필수적으로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일이어서 가장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구요.
다행스러운 건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셨었나 봐요. 하늘도 할아버지 편을 드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증조할아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설가 이원규 선생님이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평전을 쓰고 있어요. 거의 탈고 단계이구요, 늦어도 내년 내에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소 회원분들도 김경천 장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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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民一人當年平均所得三萬弗

 

數値衆民笑(수치중민소)

朝廷不答酬(조정부답수)

誰貧誰大富(수빈수대부)

或者唱狂謳(혹자창광구)

 

국민 한 사람當 연평균 소득 三萬 달러

 

셈한 값에 많은 백성이 비웃건만

朝廷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네

누가 가난하며 또 누가 大富인가

어떤 者는 미친 노래를 부른다네.

 

<時調로 改譯>

 

많은 백성 비웃건만 朝廷은 대답 않네

누가 가난뱅이며 또 누가 큰 富者인가

오호라! 어떤 사람은 狂歌를 부른다네.

 

*數値: 계산하여 얻은 값 *衆民: 많은 백성 *答酬: 수답(酬答). 묻는 말에 대답함.

 

<2019.2.25, 이우식 지음>

월, 2019/02/2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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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풍·엔카풍도 수두룩…도교육청, 친일 교가 개선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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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교육청 청사 전경 [전북교육청 제공]

(전주=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지역 학교 25곳이 친일 작곡가나 작사가가 만든 교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북도 교육청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도내 모든 초·중·고교 교가를 분석한 결과 25개 학교가 친일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었다”고 25일 밝혔다.

교가에 일제 잔재가 남은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초등학교 5곳, 중학교 20곳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김성태와 이홍렬이 각각 8곳, 김동진이 6곳, 현제명이 2곳, 김기수가 1곳의 교가를 작사 혹은 작곡했다.

친일 작곡가 제자들이 만든 교가도 적지 않고, 1950년대 이전 개교한 학교 중에 일본 군가풍, 엔카 풍 교가도 상당하다는 게 도 교육청의 설명이다.

이들 교가에는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등 표현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교육청은 전북중등음악연구회를 중심으로 친일 교가 개선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우선 25개교 중 희망학교를 대상으로 작곡이나 편곡 등을 지원한다.

전북교육청은 현재 교육 방향이나 시대정신에 동떨어진 가사는 학교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쳐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역사교육도 강화한다.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하는 ‘사제동행 국회 역사체험학교’와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 ‘역사 인문학 캠프’ 등 학생 참여 중심의 역사교육을 한다.

역사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담은 역사교육으로 아이들을 건전한 역사관과 국가관을 갖춘 민주시민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02-25> 연합뉴스

☞기사원문: 전북교육청 “25개 학교 교가 친일인물이 작사·작곡”(종합)

※관련기사

☞뉴스1: 전북교육청, ‘일제 잔재’ 교가 교체 운동 본격 추진 

☞노컷뉴스: 일제 대표하는 ‘군가’와 ‘엔카’, 교가 사용 학교 수두룩

☞서울신문: 전북 학교 25곳 교가 친일 작곡·작사가가 만들어

☞포커스데일리: 전북도교육청, 역사바로 세우기 앞장선다 … 3·1운동 100주년 맞아 

월, 2019/02/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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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옥희 교육감 기자회견 열어 친일잔재 청산, 친일인명사전 배부 등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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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이 25일 오전 울산시 중구 울산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하고 있다. 2019.02.25. (사진=울산시교육청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박일호 기자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시교육청이 교육현장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는 동시에 친일잔재 청산에 나선다.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은 25일 시교육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을 발표했다.

노 교육감은 이날 “시교육청은 대한민국 건립의 뿌리인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울산교육 독립운동 찾기에 나선다”며 “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 독립운동과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 학생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그 뜻을 바로 새기고 역사를 기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래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열어갈 새로운 100년이 바르게 기록된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미래가 되길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노 교육감은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구체적인 사업으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교와 학교터에 QR코드가 포함된 표지판 설치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 ▲사업 추진연구회 연구결과 알리기 ▲교육 분야 친일잔재 청산 ▲관내 중·고등학교에 친일 인명사전 배부 ▲울산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동참 등을 추진한다.

먼저 병영지역 3·1 만세운동이 시작됐던 병영초등학교(옛 일신학교)에서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을 통해 QR코드를 시연한다.

병영초 뿐만 아니라 시교육청과 울산초, 울산노동역사관, 보성학교터, 언양초 등에 표지판을 설치해 울산교육 독립운동 역사체험 지도를 만든다.

이를 통해 휴대전화로 손쉽게 연구자료와 영상, 사진 등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1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학교 중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관내 학교에서 차례대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울산교육 독립운동 100년의 빛’ 현판 제막식을 연다.

항일독립운동 교육자·학생독립운동가 추모사업으로는 오는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육분야 독립운동가들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해 기념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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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배병수 기자 = 6일 울산시 중구 병영사거리 일원에서 울산광역시중구문화원(원장 박문태) 주관으로 열린 제99주년 울산 병영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에서 참가들이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2018.04.06. [email protected].

보성학교 설립자인 성세빈 선생과 서진문, 이효정, 이무종, 박상진, 최현배 선생 등을 울산교육의 참스승으로 선정한다.

공훈록과 신문잡지 자료, 학적부, 졸업대장, 재판기록 등을 일괄 조사해 알려지지 않은 학생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기록하고 추모할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9월 발족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연구회의 연구결과를 심포지엄, 보고회, 전시회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지역화교재에 울산의 독립운동을 담는다.

친일잔재 청산과 관련해서는 TF팀을 구성해 학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을 거쳐 교육계에 남아있는 친일잔재 사례를 정리,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또 친일잔재 청산을 국어와 역사, 음악 교과학습에 연계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학습활동을 권장한다.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친다.

아울러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명사전을 관내 중·고등학교에 배부한다.

노 교육감은 “시교육청은 일회적 기념사업이 아니라 연간 지속사업으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에 나서겠다”며 “대한민국의 튼튼한 기초를 세웠으나 잊혀진 독립운동 교육자를 찾아내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진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선포식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울산시 중구 병영초등학교에서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9-02-25> 뉴시스 

☞기사원문: 울산교육청,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발표…QR코드 표지판 설치 등

※관련기사

☞연합뉴스: QR코드로 알리는 학교 독립운동사..울산 3·1 운동 기념사업

☞노컷뉴스: ‘학교 친일잔재 청산’ 교육분야 항일독립운동 알린다

월, 2019/02/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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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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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2/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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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민족문제연구소 공동발표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인물 동상도 7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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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초∙중∙고교 100곳 이상이 친일인사가 등재된 인물이 만든 교가를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의 동상을 세운 학교도 7곳이나 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 100주년,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1차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서울지역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교가를 작사 또는 작곡한 학교는 113개교에 달했다. 초등학교가 18개교, 중∙고등학교는 95개교였다. 설립유형으로 보면 사립이 73개교(64.6%)로 40개교인 공립(35.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여기엔 서울대사범대학 부설초, 영훈초, 창덕여중, 숙명여고, 휘문중∙고 등이 포함됐다. 성남중∙고교는 친일인사가 작사∙곡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교가에 친일파였던 이 학교 설립자 원윤수와 김석원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의 동상 등 기념물이 있는 학교는 7곳으로 파악됐다. 중앙고와 고려대에는 두 학교의 설립자로 알려진 김성수의 동상이 있는데, 김성수는 조선방송협회 평의원 등 친일단체 간부를 역임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고려대 학생들은 꾸준히 김성수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휘문고에는 대표적 친일 자본가로 알려진 민영휘의 동상이, 상명대에는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배상명의 동상과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는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가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TF팀을 꾸려 교육계 친일잔재에 대한 전수조사와 청산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26> 한국일보 

☞기사원문: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파가 만든 교가 사용” 

※관련기사 

☞연합뉴스: “서울 학교 곳곳에 친일잔재…일왕 찬양 의혹 교가도” 

☞뉴시스: “서울 초중고 113곳,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사용” 

☞KBS: “서울 초·중·고교 113곳 교가, 친일파가 작사·작곡”

☞노컷뉴스: 학교에 ‘친일파’ 동상·기념관·교가…서울에만 100곳 넘어 

☞뉴스1: “서울 초·중·고 100여곳 친일인사 작사·작곡 교가 써”

화, 2019/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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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 곳곳에 3·1운동과 항일투쟁을 기리는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는데요.

이 기념비마저 일제식으로 세워진 곳이 많습니다.

친일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건데 서둘러 바로 잡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보도에 유승용 기자입니다.

[리포트]

3·1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1970년대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당시 투쟁을 소개하고 이끌었던 인사들의 이름도 새겨 넣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의 사각뿔 모양이 일본 황실의 무력을 상징하던 일제의 충혼비와 같습니다.

바로 옆에 세워진 독립운동 인사 숭모비도 마찬가집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세워진 기미독립선언 기념비도 같은 모양을 했습니다.

일제가 ‘황국신민’이 되기를 강요하며 전국 곳곳에 세웠던 비석 모양 그대로 독립운동으로 내용만 바꿔 다시 만든 겁니다.

이처럼 일제식으로 세워진 독립운동 기념비는 보훈처에 등록된 현충시설에만 10여 개,

미등록 시설의 기념비와 군대와 경찰 충혼비까지 포함하면 일제식 기념비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김순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 “기단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위에는 뿔 모양이 이런게 일본의 충혼비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이런 걸 세웠단다 하는 안내판을 세울 필요는 있죠.”]

독립운동 기념비에까지 스며 있는 일제의 잔재.

선조들의 항일 운동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바로잡는 일이 시급합니다.

KBS 뉴스 유승용입니다. 

<2019-02-26> KBS 

☞기사원문: 독립운동 기념비마저 ‘일본식’…“서둘러 바로잡아야”

화, 2019/02/2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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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경기도 고양시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진 작곡가가 지은 ‘고양시의 노래’를 사용 중단한다고 26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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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시청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동진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인물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돼 있다.

그는 고양시의 노래 외에도 대한민국 군가 등 다수의 곡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전국 초중고 교가, 시가 등 많은 관공서의 공식 노래에 김동진을 비롯한 친일 음악인의 손길이 미쳐 있다.

고양시는 ‘고양시의 노래’를 시가(市歌)로써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고, 시민 공론화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시는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시민이 잘 알지 못하지만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찾기’에 나선다.

일본군 군사기지로 추정되는 고양 시내 육군 A 사단 탄약고,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건설한 덕은동 쌍굴터널 조사 등이다.

이재준 시장은 “역사의 청산은 정치적 논쟁이 아닌 성장의 토양을 다지는 작업”이라며 “점차 잊혀져 가는 일제의 흔적은 역사의 아픔으로 생생하게 보존하고, 항일운동의 정신은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정신으로 승화해 그 불씨를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19-02-26>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양시, 친일파 김동진 작곡한 ‘고양시의 노래’ 사용중단

※관련기사 

☞뉴시스: 이재준 고양시장 “친일파가 작곡한 고양시歌 사용 중단”

화, 2019/02/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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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글론지… 근론지

한다꼬

밥무꼬  살마돼지  말라  비엠인지…W륜지 그래 산노?

친구야 오늘  니한테  마니 미안해가꼬,

여는 마산 회원구 봉암동 창힌핵죠 부그이다.

하모하모 바로 미테아이가

…..그래 링게루 좀주리자 !

니가아이고 내가

고래 통기 기다리꾸마?1

진천총국호양은  군고향 오마이중  둥기둥청….!

유관순들  안중근들  극장  하지말게

 

호영드리며,…..

 

화, 2019/02/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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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질도 좋아져서 낭비가 되는것 같아  e-mail을 이용 PDF파일로 받았으면 합니다.

수, 2019/02/2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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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口增減(인구증감)

 

水來風去事(수래풍거사)

孰挽孰能防(숙만숙능방)

若此人增減(약차인증감)

官衙豈太忙(관아기태망)

 

인구의 늚과 줆

 

물이 흘러오고 바람이 떠나는 일

누가 말리며 누가 능히 막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이와 같거늘

官衙에선 어찌 그리 몹시 바쁜가.

 

<時調로 改譯>

 

물이 오고 바람 떠남 누가 어찌하겠는가

사람의 늚과 줆이란 바로 이와도 같거늘

오호라! 官衙에서는 어찌 그리 太忙한가.

 

*增減: 많아지거나  적어짐. 늘리거나  줄임.  증손(增損)  *若此: 이러함 *官衙: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공당(公堂). 공부(公府).

 

<2019.2.27, 이우식 지음>

수, 2019/02/2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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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3

“3.1혁명 100주년 특집편성_만세열전 2부”

팟빵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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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드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3

“3.1혁명 100주년 특집편성_만세열전 1부”

팟빵링크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9/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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