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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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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까닭

익명 (미확인) | 토, 2017/12/16- 16:54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대한민국은 미군정의 하사물이 아니다”

미국이 건국일은 1776년 7월 4일이다. 정조 임금이 즉위한 그해 4월 27일(음력 3월 10일)로부터 68일 뒤다. 그날 미국인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영국 식민지배를 거부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선출되고 정부가 구성된 해는 1789년이다.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정부가 모습을 갖췄다. 건국된 날, 그러니까 독립을 선언한 날로부터 23년 만이었다. 미국 헌법 제7조는 1789년이 아니라 1776년을 독립 원년, 미국 1년으로 계산한다. 미국 땅을 실효적으로 지배할 정부가 갖춰지지 않았어도 독립을 선언한 해에 미국이 건국됐다고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서문)에서도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3·1운동이 있은 1919년을 대한민국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미국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1919년을 대한민국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제가 되는 것은, 보수세력이 1919년이 아닌 1948년을 대한민국 출발점으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 전문을 무시하고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보고 있다.

보수세력이 그렇게 하는 데는 숨은 동기가 있다. 지난 7일 서울특별시와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이 태화복지재단 강당에서 주최한 ‘민주공화정 100년 심포지엄’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보수세력이 1919년을 외면하고 기피하는 동기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태화복지재단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이 있었던 곳이다. 위 심포지엄은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3·1운동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됐는지 규명하고자 열린 학술대회다.

왜 보수세력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을 미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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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 패널들 ⓒ 인디엔피 제공

심포지엄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은 헌법 제1조 제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부분이다. 제1조 제1항은 1948년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의 머리에서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었다. 3·1운동으로 표출된 민족적 의지를 집대성한 임시정부 헌법을 계승한 것이었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이란 명의의 임시헌법 제1조 제1항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두고, 기조발언을 맡은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헌법 문서에서 ‘민주공화국’을 명기한 것은 임시헌장이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라면서 “서구에서도 우리보다 늦은 1920년에야 비로소 체코와 오스트리아가 민주공화국을 헌법에 명기했다”라고 설명했다.

임시헌장 속의 ‘민주공화제’는 단순히 국민이 주인 되는 체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민주’뿐 아니라 공화(共和)에도 방점이 찍혀 있었다. 공화는 공존과 상생을 전제로 한다. 그 속에는 임시헌장을 기초한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담겨 있었다.

강정인 교수는 “조소앙은 삼균주의의 핵심이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이라고 선언했다”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정치 균등화, 경제 균등화, 교육 균등화’로 … 주장했다”라고 말한 뒤 “삼균주의가 공화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는 한마디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갑질을 배척하는 것이다. 그런 이념이 조소앙을 비롯해 1919년에 활동한 독립투사들의 의식을 지배했으며 그 의식이 1948년 대한민국 헌법에 투영된 것이다. 삼균주의가 담긴 공화 이념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으로도 표현됐다.

‘민주공화정’의 역사, 유구하다

3·1운동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나 “일본 물러가라”나 외쳤지, 사회적 균등까지 요구했다고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다.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도 참가자 대부분은 ‘박근혜 하야’나 ‘박근혜 탄핵’ 같은 단순한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그게 촛불집회의 이념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적인 부조리를 배척하고 새로운 나라를 열자는 게 촛불집회를 지배한 이념이었다.

3·1운동 때도 마찬가지다. 외형상의 구호는 단순했지만, 그 안에는 식민통치와 불공평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또 백성이 주인되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란 규정이 임시헌장 제1조 제1항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 1919년부터 본격화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 헌법이 3·1운동과 임시정부를 대한민국 출발점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1919년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 왕정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로부터 9년 전까지는 조선왕조 및 대한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민주공화정과 상반된 환경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우리 민족이 민주공화정을 의식적으로 지향했다는 게 얼른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심포지엄 맨 마지막에 발언한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서해성 총감독은 “우리 민주공화정의 역사는 대체 언제 시작된 것일까?”라고 질문한 뒤 “여기서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건, 민주공화정이란 게 3·1운동이 일어나 갑자기 깨닫게 된 것일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민주공화정을 향한 투쟁이 예전부터 있었기에, 3·1운동 때 그것이 민족적 이념으로 표출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기조발언에 이어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한국 민주공화제의 기원과 사력(史歷)’이란 발표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 교수 프리만은 ‘로마는 그 이전 역사의 모든 흐름이 유입되어 그곳에서 대문명을 이루었고, 그 이후 역사의 모든 흐름이 그곳을 발원하여 다시 흘러가는 거대한 호수다’라고 의미 있는 발언을 하였다. 이 말을 우리나라의 3·1혁명과 민주공화주의 발전 과정에 대입하면 적절한 비유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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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삼웅 전 관장 ⓒ 인디엔피 제공

민주공화정에 대한 꿈이 3·1운동 때 갑자기 표현된 게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표현됐다는 것이다. 김삼웅 전 관장은 민주공화정에 대한 대중의 자각이 1894년 동학혁명을 계기로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동학혁명이 민주공화정이란 정치체제를 지향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중심의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동학 정신이 민주공화정의 취지와 연결된다는 의미다.

김 전 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래에서 ‘시천주’는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의미이고, ‘인시천’은 인내천과 동의어다.

“조선 후기 일반 백성들에게 근대적 주권의식을 일깨운 것은 최재우가 창도한 동학이었다. 동학은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인시천(人是天)의 교리를 내세우며 사람 중심, 만인평등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는 동학혁명을 계기로 촉발된 사람 중심 세상에 대한 열망이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같은 혁신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3·1운동과 임시정부로 응집된 뒤 1948년 헌법을 향해 흘러갔다고 강조했다.

수만 명이 18일간 시위, 무려 1898년 이야기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동학혁명 직후의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가 민주공화정 운동에 기여한 역할을 보다 높게 평가했다.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가 추구한 게 의회 설립 운동이었다면서 “수만의 서울 시민들이 (1898년) 12월 6일부터 23일까지 18일 동안 철야로 만민공동회를 개최”한 사실의 역사적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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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익 교수 ⓒ 인디엔피 제공

1898년에 한양 시내에서 수만 명이 18일간 시위했다면, 2016~2017년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 집회에서 의회 개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면, 민주공화국에 대한 우리 민족의 열망이 그 당시에도 상당히 성숙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토양이 있었기에 1919년 임시헌장에 민주공화제가 규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3·1운동 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1919년 이래로 민주공화국을 열렬히 지항하면서 독립운동을 했기에 1948년 헌법에 그 이념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3·1운동과 임시정부에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임시정부는 이승만의 무책임과 좌우의 분열로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3·1운동과 임시정부를 배태한 1919년 당시의 우리 민족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 열망까지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열망이 대한민국 건국으로 이어진 것이건만, 보수세력은 1919년과 1948년의 연관성을 어떻게든 부정하려 하는 것이다.

앞에서, 보수세력이 3·1운동과 대한민국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숨은 동기를 심포지엄 학술 토론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심포지엄에서는 동학혁명 및 만민공동회에서 표출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3·1운동으로 집약되고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이어졌다는 발표들이 있었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열망 밟은 보수세력

동학혁명과 만민공동회의 본질은 촛불혁명과 다르지 않다. 동학혁명·만민공동회는 낡은 세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이 운동들은 보수파의 탄압으로 좌절됐다. 동학운동은 일본군뿐 아니라 보수파에 의해서도 진압됐다. 보수파는 민병대를 만들어 동학 진압에 기여했다. 만민공동회 역시 보수파에 의해 진압됐다.

동학과 만민공동회를 진압한 보수파는 1910년 국권 침탈 때도 살아남았다. 일본이 조선 백성들을 손쉽게 지배할 목적으로 그들과 손잡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1919년 3·1운동 때도 끄떡하지 않았다. 대중이 식민지배에 항거할 때 그들은 시위군중을 무지몽매한 자들로 폄하했다. 신문을 통해 경고문을 발표한 이완용의 글에서도 그런 인식이 드러났다. 이완용을 비롯한 보수파의 태도는, 촛불혁명에 맞서 태극기집회를 벌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수파의 후예들은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할 때도 살아남았다. 한국 사정을 모르는 미군정이 그들을 파트너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후예들은 1960년 4·19 혁명 때도 살아남았다. 이듬해 발생한 박정희 쿠데타가 미국의 승인을 받으면서 진보적 사회개혁이 차단된 덕분이었다. 그 후예들은 1987년 6월항쟁 때도 살아남았다. 이때 상당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아직 숨을 유지하고 있다. 2016~2017년 촛불혁명으로 한 방 더 맞았지만, 아직은 숨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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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 청중들 ⓒ 인디엔피 제공

1919년 건국,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렇게 동학혁명 때부터 3·1운동 때까지 그리고 1948년 정부수립 때까지도 물론이고, 그 후로도 한국 보수파는 계속 명맥을 유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입장에서는 동학혁명 이래의 이념을 집약한 3·1운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 출발점을 3·1운동에 두는 헌법 전문이 불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부정하는 태도는 미군정을 대한민국의 은인으로 보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물론 미군정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미군정 때문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된 것은 아니다. 민주공화국이 된 것은 위에서 소개한 역사 덕분이다.

심포지엄에서 서해성 총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적어도 대한민국이 미군정 체제의 하사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형익 교수도 유사한 말을 했다. “민주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이 1945년 미군정에 의해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시기의 민중적 각성과 내적 발전의 결과였음을 (…) 드러내고자 한다.”

미국 정부는 1789년에 세워졌는데도 미국인들과 미국 헌법은 미국이 1776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고 하는 것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김삼웅 전 관장이 발표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말에서 ‘살피게 한다’를 문맥에 맞춰 ‘알 수 있다’로, ‘관학자들’을 ‘관변 학자들’로 대체했다.

“이명박·박근혜 중심의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인, 관변 학자들이 1948년 8·15 정부수립일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무지하고 반헌법적인가를 알 수 있다.”

<2017-12-1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보수세력이 ‘1919년 건국’을 부정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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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스프레이가 뿌려진 민족문제연구소 출입문과 현판 [민족문제연구소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진보 성향 역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스프레이를 뿌려 낙서를 한 혐의(재물손괴)로 김모(62)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올해 4월 23일 새벽 1시께 동대문구에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건물에 들어가 현판과 출입문에 스프레이로 ‘X’ 표시 등으로 낙서를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평소 이 단체의 활동에 불만을 품고 있던 김씨가 인근에서 열린 보수 단체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집회에 참가한 직후 범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집회를 주최한 보수단체 회원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해온 단체다. 이 단체 관계자는 “극우단체 회원들이 연구소에 들어와 욕설하거나 전화로 협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7-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붉은색 낙서’ 보수집회 참석한 60대 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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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뉴스: 민족문제연구소 ‘붉은색 낙서’ 보수집회 참석한 60대 소행

아시아투데이: 경찰, 민족문제연구소에 붉은색 낙서한 60대 검찰 송치

☞서울경제: 민족문제연구소 건물 낙서한 60대 검찰 송치

수, 2017/11/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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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심포지엄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 – 1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마련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일제의 종교통제와 전쟁 동원”,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 “일제강점기 가톨릭교회의 제도성에 대한 반성” 등을 토론했다.

“교회는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다”

먼저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을 주제로 발표하고, 일제강점기, 특히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가톨릭교회가 일제 지배정책에 예속됐고, 협조했으며, 이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가톨릭 인사들에 대해 교회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밝혔다.

박수현 연구실장은 일제강점기 한국 가톨릭교회와 당시 교회를 관할했던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입장에 대해, “일제강점 초기부터 가톨릭교회는 일제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제의 지배를 환영하기까지 했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선교권만 보장해 준다면 일제의 강점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에게 자주독립의 능력이 떨어지므로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일제의 통치를 받는 것이 낫다고 인식했다며, “이와 함께 가톨릭 선교사들이 독립운동을 부정하며 내세운 논리는 ‘정교분리론’으로, 그러나 이 원칙은 일제의 강점을 인정하고 지배정책을 따르는 순간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정교분리’를 내세웠지만, 일제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도 ‘정치’였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가톨릭교회에서 이러한 방침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이들이 없었고, 이는 교계제도라는 가톨릭교회의 조직구조의 영향이었다며, 나아가 교회는 불가 방침을 고수하던 신사참배까지 허용하면서 이념마저도 일제에 종속되어 갔다며, “이 시기 가톨릭교회의 친일은 일제의 압박을 탓하기에는 너무도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었으며, 정세의 변화와 상관없이 이전부터 계속되던 순응과 협력의 연장선상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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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0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일제강점기 파시즘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정기 심포지엄을 열었다. ⓒ정현진 기자

<경향잡지> 일제 협력을 위한 선전, 선동에 이용

박 실장에 따르면, 특히 이러한 친일 행태는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부터 본격화됐다.

“천주 10계 중 제4계에는 다만 부모에 대한 의무뿐 아니라 제왕과 국가에 대한 의무도 포함되어 있음은 우리 교우들이 누구나 다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국가에 대한 이 의무는 평상시에도 잘 지켜야 함은 물론이나 현금과 같은 국가의 비상시를 당하여는 그 의무가 더 한층 중하여짐은 장황한 설명을 기다릴 것 없이 명백한 것이다.” (<경향잡지> 1937년 7월호에 실린 7월 25일자 7개 교구 주교 성명서 ‘비상시에 처한 우리의 의무’ 일부)

박수현 실장은 이 당시 가톨릭교회의 친일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당시 발행된 <경향잡지>에 실린 교회의 공식 입장을 통해 증명했다. 당시 <경향잡지>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기관지이자 서울교구의 관보로 전시체제기에는 종교계의 대표적 친일잡지가 됐으며, 성명서와 사설 등을 통해 신자들에게 파시즘 체제를 미화하고 전쟁 협력을 촉구하는 선전, 선동지가 됐다.

그는 <경향잡지>를 통한 교회의 선전, 선동 대부분은 교회 상층부에서 신자들의 각성과 실천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며, “수직적 관계의 교계제도에 익숙한 신자들은 성직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경향잡지>를 접한 신자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고통보다는 승리의 기쁨과 새로운 희망, 황군으로서 죽는 것은 종교적 순교라는 믿음이라고 생각한 신자가 없다고 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당시 한국교회의 중추인 서울교구는 중일전쟁을 지지한 지 1년 뒤, 일제가 만든 관변단체에 예속돼, 일제의 정책과 방침을 따른다.

일례로, 서울교구는 1938년 중일전쟁 1주년을 맞아 일제가 조직한 관변 전쟁협력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하 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으며 그 대표는 라리보 주교, 실무 책임은 장면이었다. 서울교구는 이어 1939년 5월 종교단체로는 가장 처음으로 총동원조선연맹 산하 ‘국민정신총동원 천주교경성교구연맹’도 조직했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라리보 주교, 이사는 노기남 주교 외 사제 4명, 평신도 7명이 맡았다.

“폐하와 제국의 현명한 통치가 없었던들 우리가 오늘날 천주교회 신자로서 교회의 모든 본분을 안온하게 지켜 가고 있었을지가 의문이다. ….대동아 건설의 대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억일심으로 만민익찬의 신체제를 강조하는 이 시기, 천주교 신자로서 국가정책에 적극 호응하기 위해” (1940년 매월 첫째 주일을 ‘교회 애국일’로 지정하며 이를 설명한 노기남 대주교 발언)

가톨릭교회는 1941년 비행기헌납운동과 노기남 대주교의 1만여 원 조선군사령부 헌납, 1942년 징병에 대비한 일본어 강습회 실시, 1943년 학도지원병 지원 독려 강연회 등을 이어 가며, 조직적으로 일제의 요구를 충실히 따른 것은 물론 자발적 충성을 과시한다. 그 중심에는 김명제, 김윤근, 노기남, 신인식, 오기선 등 신부와 남상철, 장면 등 평신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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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체제기 가톨릭교회의 부일협력에 대해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사목이라는 이름으로 선량한 신자들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몬 죄는 적지 않다”고 일제시기 교회의 잘못을 비판했다. ⓒ정현진 기자


“가톨릭 인사 ‘친일명단’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 (2008년 가톨릭 성직자 등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대한 서울대교구 입장)

문서상으로도 친일행적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들 7명(김명제, 김윤근, 남상철, 노기남, 신인식, 오기선, 장면)은 2008년 4월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오른다.

이에 따라 교계 언론은 사설과 기사를 통해 이에 반박했으며, 서울대교구는 대변인 허영엽 신부의 이름으로 “유감”이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성명서에서 서울대교구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명단에 가톨릭 인사 7명이 포함된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당시 각계 단체의 책임자는 일제 총동원 단체의 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친일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가벼운 판단이라고 반박했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실제로 그분들이 일제 치하에서 어떤 희생과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판단, 올바른 조사가 결여된 것 같아 심히 유감”이라며, “친일 인사로 발표된 가톨릭 인사들이 우리 민족에 어떤 해를 끼쳤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서울대교구는 성명 발표와 함께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노기남 대주교는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반민족행위자로도 이름이 올랐으며, 서울대교구는 이에 대해서도 이의신청을 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이에 대해 박수현 실장은 “가톨릭교회의 친일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며, 일부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 친일이었다”며, “그럼에도 현재까지 교회는 반성은커녕 친일에 책임을 져야 할 인사들을 적극 옹호하고 구체적 증거를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방 이후 가톨릭교회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거의 없으며, 친일 세력이 그랬듯이 일제가 패망한 뒤 공식적 반성과 참회 없이 새로운 정치권력과 타협하고 밀착했다며,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대응은, 나름 교회가 진일보한다는 기대를 갖게 했던 2000년의 반성과 참회조차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12월 3일 가톨릭교회는 새천년을 맞아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통해 과거의 잘못에 대해 참회와 쇄신, 민족과 화해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대열에 함께 하려한다며, 7개 항목에 대해 반성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내용이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것인데, 교회는 이에 대해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가톨릭교회는 호교라는 자신들만의 무기로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파시즘 체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며, “이는 어떤 명분이든 죄악이며, 그리스도교 정신에도 크게 반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자들을 침략전쟁으로 내몬 행위는 전쟁범죄이자 반교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었다고 변명하거나 돌려 말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하지 않아도 되는,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었다”며, “1970-80년대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노력, 불의에 저항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기억이 온전히 전통으로 남기 위해서는 원죄인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7-10-31> 가톨릭뉴스

☞기사원문: 일제강점기 교회, 정교분리인가 정교유착인가

수, 2017/11/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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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연영과  동국대 사회학과   동국대  국문과

쓴이는  조아한다,

홍반장!!!!

기억에  남는  감동의   그 ! 홍반장의  ㄱ어기……………

홍반장님  !  안타까븐  둘째  동생뻘………….

쓴이는  동생이  엄따.  나도  저런  동상이  이서시모

저런 여동생이  이서시모…..  (경남민언련)

모든분야에서   “홍반장”  이  감동이대고  생활에  촛불이  대어시모………………..!***************

목, 2017/11/02-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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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현관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다.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의 대형 그림이다.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대작으로 제목은 ‘적영’(敵影·적의 그림자라는 뜻)이다. 베트남 638고지(일명 안케 고개) 전투를 묘사한 작품이다.

■역사의식 부재한 ‘육방부’와 육군

이 그림은 한국군의 정통성 훼손 논란까지 제기되는 등 10년 넘게 군 안팎에서 구설에 올랐다. 운보의 대표적인 친일 작품으로 분류되는 ‘적진육박’과 너무나 유사한 탓이다. ‘적진육박’은 운보가 일제강점기 당시 남양군도에서 적진을 향하고 있는 일본군을 묘사하면서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한 작품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반성과 고민 없이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을 물리치는 일본군을 묘사한 작품을 한국군의 베트남전 그림으로 그대로 베끼다시피 한 것은 작가의 몰역사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광복군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국군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그림은 국방부에서 즉시 철거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육방부’로 불리는 국방부는 오불관언이다. 역사의식이 부재한 탓이다.

육군 야전부대는 역대 부대장 사진을 부대 현관에 걸어놓는 게 관례다. 단 한 사람만 예외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그가 거쳐간 어떤 부대에서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은 그들이 거쳐간 부대에 봉황문양 표지와 함께 걸려 있다. 이들과 함께 쿠데타를 주도했던 멤버들의 사진도 다 걸려 있다. 육군이 역사를 인식하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아버지’ 없는 육군과 육탄용사들

공군은 얼마 전 공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는 글을 공식 블로그 ‘공감’에 올렸다. 공군은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한 주역들은 광복군의 독립투쟁을 계승했다”며 “대한민국 공군에는 광복군의 숭고한 조국애가 뜨겁게 흐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군은 ‘공군의 아버지’로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창석 최용덕 장군을 꼽고 있다. 그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출신이다. 해군은 초대 참모총장으로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손원일 제독을 ‘해군의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육군은 ‘육군의 아버지’로 추앙할 수 있는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1~16대 육군 참모총장 13명 가운데 최영희 12대 참모총장을 뺀 12명 전원이 일본군(학도병 포함)이나 만주군 출신인 탓이다. 이 중 5명은 정부가 죄질이 가장 나쁘다고 공식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에도 포함됐다.

육군 창군 주역들 상당수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군국주의와 맥이 닿다 보니, 육군에는 유난히 조작되거나 날조된 육탄용사가 많다. 육탄 10용사와 육탄 5용사가 대표적이다. 북한군 토치카를 폭파한 후 전사했다고 알려진 육탄 10용사의 핵심들이 북한군에 귀순한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육군이 심일 소령과 함께 북한군 자주포를 화염병으로 폭파시켰다고 미화한 육탄 5용사는 조작된 ‘유령용사’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례다. 육군의 가짜 영웅 대부분은 일본 군국주의를 모방한 과거 친일파 출신 군부의 작품이다. 일본 군국주의 선동의 도구를 빌려와 호국 영웅의 아이콘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본조차 이미 ‘(관동군) 육탄 3용사’와 같은 군국주의 가짜 영웅을 반성하고 있지만, 육군은 군 역사 바로 세우기 얘기가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광복군 역사 찾기나 국군의날 변경에 소극적인 배경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육군은 이제 미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용사 대신 영웅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여기서 나아가 악성사건이 터지면 지휘관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희생자를 미담의 주인공으로 미화했다. 부하들을 사망케 하고 죽은 중대장을, 본인이 생존했으면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살신성인의 표상으로 포장하는가 하면, 지휘관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억울하게 숨진 병사에 대해 충혼비를 세워주며 유족들의 반발을 막은 사례 등이 그것이다. 육군은 이런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일상은 ‘유령상’···시상식도 숨어서 한 육군

육군은 지난 9월 전투중대장 14명에 대해 심일상을 몰래 수여했다. 공개적으로 상을 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파문을 우려해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은 것이다. 앞서 군 당국은 ‘가짜 신화’ 논란을 빚은 심일 소령의 북한군 자주포 파괴 전공을 기정사실화하는 ‘알박기’ 발표를 한 바 있다. 이를 놓고 심일 소령 논란이 가짜 영웅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군 역사 바로잡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군 당국이 문재인 정부 출범 전에 ‘알박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종걸·서영교 의원은 심일 소령의 ‘가짜 영웅’ 논란에 대한 철저한 재조사를 촉구했다.

게다가 육군이 심일 소령의 군인 정신을 기린다며 시상하는 심일상 2종류는 근거가 없는 ‘유령상’이다. 육사 우수 생도 3명에게 주는 심일상은 물론 우수 전투중대장에게 수여하는 심일상 모두 상의 제정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회의조차 한번 열리지 않았다. 상이 만들어진 과정 자체가 불법적이어서 오히려 누가 밀실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진상조사가 필요한 군의 적폐청산 대상이라는 의미다.

■독립군·광복군 역사 연구는 보훈처 몫

이 같은 가짜 영웅 논란의 중심에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있다. 이 군사편찬연구소가 독립군·광복군 역사를 한국군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출신인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14년째 자문위원장으로 있는 군사편찬연구소의 과거 행태를 보면 왜곡된 연구결과를 내놓을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독립군·광복군 역사 연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오고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연구자료를 축적해온 국가보훈처가 더 정통하다. 그런 점에서 독립군·광복군을 한국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연구는 보훈처가 하는 게 타당하다. 매일 아침 일본군복 위에 한국군 군복을 덧칠한 듯 보이는 그림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는 ‘육방부’에 군 역사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게 난망해서 하는 말이다.

박성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7-11-03> 경향신문

☞기사원문: [한국군 코멘터리]문 대통령과 따로 노는 일제 군국주의 후예들

※관련기사

☞경향신문: 국방부 ‘운보 그림’ 철거논란 (2004.10.17)

금, 2017/11/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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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사관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약아빠진 중국놈들에게 일침을 놓는군나
중국놈들은 미국 앞에서 벌벌기면서 우리나라한테는 벼래별 트집으로
탄압을 가하고 있다
문통님께서 추진하는 사드를 막는 중국놈들을 가만둬선 안되겠다!!


금, 2017/11/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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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출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홈페이지)

동상건립추진모임 기증…광화문 세종대왕상 조각가 제작
민족문제연구소 등 “역사적 논란 큰 인물” 설립 반대 준비

【서울=뉴시스】 유자비 기자 =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립이 추진돼 논란을 빚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이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세워지게 됐다.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 운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여 또다시 논란이 예상된다.

2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 따르면 오는 13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정면에 4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세워진다.

이 동상은 시민단체 ‘동상건립추진모임’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으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만든 김영원 조각가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관계자는 “동상건립추진모임으로부터 동상을 기증받아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11월14일)에 맞춰 세우기로 했다”라며 “추진위가 그동안 해온 모금운동을 통해 동상이 건립된다”고 전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 탄생 100년을 맞는 올해에 맞춰 광화문광장에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이 추진된다는 계획이 알려지며 논란이 빚어진 바 있다.

지난해 11월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추진위는 이 같은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최순실 게이트’로 분노가 들끓고 있던 시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동상이 세워지게 됐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 운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기획실장은 “적폐청산을 해야 할 현 시점에 역사적 논란이 큰 인물의 동상이 서울시 소유의 공공 땅인 박정희기념도서관에 세워지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라며 “관련 단체들과 함께 설립 반대 운동을 준비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방 실장은 이어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세워진 박 전 대통령의 동상도 설립 과정에서 허술함이 드러났다”며 “서울시 심의를 거쳤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기념도서관은 서울시로부터 무상 임대한 상황으로 서울시에 동상 건립 심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라며 “논란이 있긴 하나 역사적으로 공이 있는 분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2017-11-03> 뉴시스

☞기사원문: ‘광화문 건립 논란’ 박정희 동상, 상암에 세우기로

※관련기사

인사이트: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4m짜리 ‘박정희 동상’ 세워진다

민중의소리: 광화문광장 설치 논란 ‘박정희 동상’, 탄생 100주년 맞아 상암에 세워진다

머니S: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기념도서관에 건립… 일부 시민단체 반발

금, 2017/11/0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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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 탑승, “에어포스 원” 격추 가능성.

‘빅 게임’이란 영화에서 이미 다뤄진 내용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막말의 대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을 맞이하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란 얘기가 있다. 동양의 특정 철학에 의해 점성술을 다루는 이00씨(58세, 부천)의 경우 11월 6일~7일 사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사이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한다. 특히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정치행보에서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산 것이 불행의 기운을 모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예측에 의하면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파되는 사고와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추락 사고 등을 주요하게 언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몰고 올 불행의 기운에 의해 한국 동해상에서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무사히, 조용히 마무리되기를 기도한다.

금, 2017/11/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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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
우리 문통께서 하고자하는 바를 이해를 못하는건가!
감히 우리에게 조건을 걸고, 압박을 하다니!
분통이 터진다! 중국놈들한테 무시당하고 살수 없지 않은가!
한중정상회담, 시진핑 평창참석 조건 걸고 ‘사드 합의문’ 압박
http://news.zum.com/articles/41069540?c=01&t=t

“中이익 훼손 인정하라”… 한국 보복 피해는 인정 안해
한국, 文대통령 연내訪中 시한에 쫓겨 中에 말릴 우려

중국이 문재인 대통령의 연내 방중(訪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성사의 조건으로 일종의 ‘사드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25일 알려지면서, 향후 문안의 성격과 표현에 따라 양국 간에 다시 논란이 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이 훼손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문구를 요구하면서도, 부당한 사드 보복에 따른 우리 측 피해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당초 이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 ‘한·중 통화 스와프 연장→한·중 정상회담 성사→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한 사드 문제 해결’ 수순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측이 문 대통령의 연내 방중과 시 주석의 내년 동계올림픽 참석을 ‘사드 합의문’과 사실상 연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로선 교섭을 거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접근법에는 ‘연내 방중’이란 시한에 쫓긴 나머지 중국 측의 계산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전에 일본이 중국과의 교섭 끝에 발표했던 ‘양국 관계 개선을 향한 논의’라는 문건이 반면교사(反面敎師)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중·일 관계는 2013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파와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 총리가 2년 가까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이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되면서, 일본으로서는 대중 외교의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APEC을 계기로 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일 간의 물밑 교섭이 거듭됐다. 그 결과 2014년 11월 초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국장이 중국을 방문해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과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합의문 공개 직후부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일본 측이 공개한 일본어 문안의 3항은 “양측은 센카쿠 열도 등 동중국해의 해역에서 근래 긴장 상태가 생기고 있는 것에 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였다. 센카쿠를 실효 지배 중인 일본은 ‘센카쿠는 일본의 영토로 영유권 분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견해는 다르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를 중국어로 “양측은 댜오위다오 등 (중국의) 동해 해역을 둘러싸고 근래에 출현한 긴장 국면에 다른 주장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고…”라고 옮긴 뒤, “양측은 다른 입장이 존재하는(different positions exist) 것을 인정(acknowledge)한다”는 영문 번역문을 공개했다. 이를 보고 중국 언론은 물론 뉴욕타임스 같은 일부 서방 언론까지 ‘일본이 기존 정책을 바꿔 마침내 영유권 분쟁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아베 정부가 외교적으로 치명적 양보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중국에서는 ‘중국 외교의 쾌거’란 분석이 나왔다.

이런 전례로 비춰볼 때, 한·중 간의 사드 합의문 교섭에서 우리 측이 자칫 중국 측에 말릴 경우 또 다른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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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1/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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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반헌법, 반국민, 반학문적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엄정 수사와 엄중 처벌만이 미래를 연다

1106-12015년부터 우리 역사학계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에 대해 국민과 함께 단호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지난 5월 국정 교과서를 폐지시켰다. 지금은 중고등학교 역사과 교육과정 전면 개정과 국정화 강행 사태의 진상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역사학계에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교육부가 2016년 7월 16일 작성한 ‘역사분야 학술연구 지원사업 공모 결과 검토’라는 문건이 명확한 증거이다. 박근혜의 청와대가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역사연구 지원 방침을 지시하면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이를 충실히 실행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학계 블랙리스트가 세 가지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짓밟는 범죄 행위임을 천명한다.

첫째,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반헌법적 범죄이다. 블랙리스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연구자를 연구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키고 차별함으로써 역사 연구자 내부를 분열시켰다. 이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를 정면으로 위배한 반헌법적 범죄이다.

둘째,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반국민적 도발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은 2015년 11월 52.6%, 2016년 11월 60.4%로 확대 추세인 반면, 찬성여론은 42.8%, 19.9%로 축소 추세였다.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라 국정화에 반대한 역사 연구자들을 적대시함으로써 국민까지 적대시한 행위이다. 이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부정한 반국민적 도발이다.

셋째,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는 반학문적 범죄이다. 블랙리스트는 정권에 비판적인 역사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연구를 차단한다. 연구자들은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연구성과를 만들게 된다. 이는 국민이 피땀으로 조성한 정부 재정을 집권세력의 사사로운 목적에 악용함으로써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문의 발전을 저해한 반학문적 범죄이다.

우리 역사학계는 이 같은 반헌법적, 반국민적, 반학문적 범죄 행위가 기획되고 실행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경구를 되새기면서 우리는 정부와 교육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바이다.

1. 역사학계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적용된 실상을 엄정하게 조사하고 규명하라.

1.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적용하는 데 참여한 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라.

1. 학술 연구 지원 사업이 정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를 강구하라.

2017. 11. 6.
역사학계 53개 학회(연구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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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7/11/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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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속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동해상공에서 격추

– 아베, 무사정신 발동하여 트럼프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닌가!
– 전세계 민중들의 바람, 트럼프 격추!

일본에서 무기장사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해상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소식을 전세계 민중들이 기다리고 있다. 동해상을 무사히 지나더라도 한국에서의 주요일정 중에 성난 민심에 두려워하는 트럼프 수행원들의 실책으로 인해 다종다양한 사고로 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주요일정을 진행하는 차량이동과 주한미군기지에서의 헬리콥터 이동에서 폭파사고가 예측되며, 현재까지 보안으로 알려지지 않은 그의 숙소에서 대형 화재사고가 예견된다.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 미본토를 포함해서 20여개국이 넘는 세계 곳곳에서 트럼프를 반대하는 민중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트럼프의 신변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화, 2017/11/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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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6화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다”
<언론의 적폐청산과 개혁방향>

-진행:  김미화 
-출연:  최승호 PD,  원용진 서강대 교수,  김완 한겨레21 기자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 이경주, 종합편집: 문석진, 타이틀 : 이정온
-카메라 :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 메이크업 : 강도겸
-기술 : 박성영, 연출 :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관련기사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5화[교육]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4화[경제]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군]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경찰]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검찰과국정원]

화, 2017/11/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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