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지역

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익명 (미확인) | 토, 2017/12/02- 10:21

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1. 역사적 과오

현재 검찰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체질적인 문제(검찰의 경찰화, 수사권조정, 내부 적폐청산 및 융합, 업무경감,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등)들을 안고 있다. 가장 큰 현안은 내년부터 본격화될 수사권조정이다.

지금껏 검찰에서 사달(법조비리, 권력의 시녀, 전관예우, 각종부패, 신뢰부재 등)이 나고 국민으로부터 온갖 비속어를 들으며 ‘적폐의 온상’이니 ‘개혁대상 1호’니 하는 노도와 같은 강물소리를 듣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원이자 발원지는 광복 후 법률제정 과정에서 패망한 일본이 내다버린 침략전쟁과 식민수탈의 제국주의 좀비 조항들을 표절하여 우리의 형사소송법에 그대로 심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는 서적『제국과 유신의 검찰』을 통하여 그 논리를 전개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광복 후 위정자들은 1949년 검찰청법(제정)에 ‘경찰의 검사에 대한 상명하복’ 조항을 입법하여 지반(地盤)을 다진 후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에서 ‘친일반민족 기득권 유지’라는 반석(盤石)을 주춧돌로 삼고, ‘(정권 이외에는)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이라는 대들보를 튼튼히 지탱하기 위하여 그 주춧돌 위에 일본 제국주의 법률 조항들을 기둥으로 삼았다.

일본은 1945년 패망 후 제국주의 ‘무소불위 군부정권’과 함께 침략전쟁과 식민지탄압을 이끌던 ‘무소불위 검찰권력’을 지탱하던 대정 형사소송법 조항인 ①검사의 수사권독점(제246조) ②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제248조) ③검사실 참여조항(제139조) 등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지탱하던 기둥 조항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경찰수사권 독립을 이루어 검찰 권력에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였는데 우리는 그 쓰레기통을 뒤져 그 조항들을 모두 주워와 우리의 ㉠제195조(수사권독점) ㉡제196조(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 ㉢제243조(검사실 참여) 조항들을 기둥삼아 위 친일반민족 주춧돌 위에 세웠으며, 이에 더하여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상 우월 조항을 입법으로 서까래와 지붕을 완성하였다.

위와 같이 구축한 ‘무소불위 검찰권력’에도 행여 불안감을 느낀 5.16 군사정권은 1962년 5차 개헌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현존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건축물(무소불위 검찰권력)을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서 지금껏 검찰이 사달이 난 것은 처음부터 건축물을 잘 못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중 필요에 따라 경찰처럼 또는 검사처럼(검사대신 피의자를 신문하는 것이 대표적)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현령비현령 법률조항인 우리의 형소법 제243조(참여조항)는 대정 형소법 제139조(제136조 인용)를 표절(우리의 각 조항과 일란성쌍생아의 모습처럼 동일)하여 그대로 옮겨놓은 것임을 확인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경찰권 역시 검찰의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검찰은 왜?”라는 물음을 달고 살아온 여정 끝에 국내에서 답을 얻지 못하던 중 올해 초 일본국립국회 도서관(홈페이지) 소장 관보에 실린 명치, 대정 형소법을 찾아내어 우리의 반문명적 법률조항들이 제국주의 당시 조항들과 일란성 쌍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검사실 조서작성 관행(법률 규정과 달리 검사 대신 참여수사관이 피의자를 신문)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또한 제국주의 유물인 ‘무소불위 검찰권력’이라는 터전 위에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낳은 관행으로서 이를 유지하고서는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업무관행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매우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 검사실 참여를 규정한 139조를 기반으로 조선형사령 그리고 당시 검사 인력부족(대부분 일본인, 일본 본토에서의 인구대비 검사 수의 절반)에다 집중된 권한(수사권독점, 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으로 인하여 업무과중에 시달(현재 우리나라 검찰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함)리는 가운데 제국주의 정권의 식민지정책을 흔들림 없이 뒷받침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부담하며 제반 문제를 타개하여야 한다는 현실적 난관과 민족적 차별 대상인 식민지 조선인을 상대한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제국주의 황실 내규와 법령에 기반을 둔 전관예우 문화는 고난을 이겨낸 검사들이 입신영달을 거듭하여 관료로서 퇴직한 후 그들을 위로하였고, 해방 후 이를 불문율로 계승하여 우리사회에 창궐하게 되었다. 이 또한 일본이 패망 후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제국주의 문화를 주워와 지금껏 우리사회에 창궐하게 된 것이니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국과 유신의 검찰』에서 자세히 언급)

식민지 조선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던 일제 검사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자국(법률 규정대로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에서와 달리 멸시대상인 조선인을 마주 대하지 않고 검사 대신 참여서기로 하여금 피의자신문을 하도록 한 후 그 결과 자신의 입신영달 거푸집에 맞는 조서를 작성해오면 이에 서명하여 마치 검사가 신문하고 작성한 것처럼 서명하여 법정에 그대로 제출하였던 것으로 이는 조선식민지 특유의 반문명적 관행으로서 조선인의 피눈물을 쥐어짠 조서재판으로 직결되었던 것이다.

일제의 대정 형사소송법 참여규정은 포괄적이어서 식민지 현실과 융합되어 검찰은 검사실에 참여서기 수만큼 무소불위 검사가 더 있는 것처럼 활용하여 조선인을 탄압하였고, 때로는 악질고문 경찰처럼 활용하여 조선인을 탄압하는데 제대로 활용해 먹었던 것으로 이에 바탕이 된 참여조항 또한 검사의 수사권독점, 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과 더불어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한 축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식민통치에 신음한 우리가 그러한 참여조항과 식민시대 업무관행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니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반문명적 형사사법 업무행태에 메스를 가하는 개혁(일본은 패망 후 참여조항을 폐기하고 검찰직원의 직무범위를 구체화하는 입법을 단행하였음)이 결국은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한 축을 개혁(충격과 여파가 크기 때문에 치밀하고 신중하게 진행)하였을 때 국민은 비로소 광복 국민이자 선진국 수준의 형사사법서비스를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법관 모두는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시보 생활 등을 통하여 검사실에서 법치에 반하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검사실 조서작성 관행에 대한 문제가 법정에 올라올 때마다 대법원은 애매모호하고 궤변적이며 오십보백보 엉터리 신사협정 판례(3건)를 내놓고 식민잔재인 이를 바로 잡으려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러한 조서를 형사피고인의 유죄의 증거로 삼는 한 진정한 의미의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러한 수준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의 후진 수준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검경 수사권조정 관련

제국주의 유물 청산과 관련하여 수사권조정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경찰 수사권독립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헌법 개정을 통하여 경찰이 경찰답게 현장 및 초동수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최소한 경찰이 체포영장 및 압수수색영장청구권을 검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법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한다.

수사권조정에 있어 검찰, 경찰 모두 선진국의 예를 들어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이들 모델 중에 우리에게 근대사법제도의 뼈대를 심었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패망 후 법제에 있어 반문명적, 반인도적 제국주의 유물을 청산하여 검경제도를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일본은 우리 제도로부터 발전적이고 자연적인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식을 적극 들여다봤으면 한다. 일본 보다 더 잘해야 하는데 그 보다 더 못하고 있으니 일본 만큼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고 우리와 근대사법제도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갑자기 햄버거나 샌드위치, 빵과 고기를 주식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경찰, 검찰, 법원 조직 사람들로서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 될 형사사법 기관 종사자들의 각종 비리와 스캔들에 관한 뉴스를 달고 사는데 일본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와 달리 형사사법 법제에 있어 제국주의 유물을 청산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검경간 대등협력 관계에서 서로 긴밀히 우호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검사는 경찰을, 경찰은 검사를 상호 견제하며 서로 잘하려고 하기에 경찰이 법원에 직접 청구하여 체포 또는 압수수색을 당하는 검사도 없거니와 검사의 경찰권 남용에 대한 최종 견제 망(194조, 검사의 경찰에 대한 징계, 해임 요구권)에 걸려드는 경찰에 관한 뉴스를 본 적도 없다. 물론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될 것으로 지금껏 우리처럼 언론에서 검사 또는 경찰의 비리나 스캔들을 사시사철 달고 살지도 않고, 경찰, 검찰 모두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으며, 경찰과 검찰이 너무도 못 미더워서 옥상옥(屋上屋)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니 하는 별도의 기구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일도 전혀 볼 수 없었다.

3. 경찰수사권 독립 후 경찰권남용 관련

경찰은 수사권조정에 있어 ‘검사의 보완수사요청에 의한 사후통제는 받겠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으로서 정작 확보되어야 할 견제장치로서 넘어야할 가장 높은 산은 어설픈 경찰수사권 독립이 가져올 경찰권 남용에 대한 국민 그리고 검사의 궁극적인 우려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이 당사자 간 조정이 어려울 경우 ‘제3의 기구를 통한 조정’을 언급한 것은 서로 양보하지 않는 비타협성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우리나라 특유의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유래와 현실에 관한 이해와 더불어 국가와 국민을 정점에 두고 검경의 직무특성상 상호 배려 하에 접점을 찾으면 당사자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신의 골(일제강점기 검사에 굴종하던 경찰의 검사에 대한 반감은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 지속)이 너무도 깊기 때문에 성사되기는 지난하다. 경찰, 검찰 모두 국가와 국민은 뒷전이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니 꼭꼭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샅바싸움만 하고 있다. 이 모두 불신 때문이다.

예전에 김 모 검사장이 검사를 의사에, 경찰을 간호사에 비유하여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매우 잘 못된 비유이다. 오히려 검찰내부에서 검사와 검사실 참여수사관에 비유하면 좀 더 가까울 것 같고, 법치에 반하게 자기(의사) 대신 간호사로 하여금 수술을 집도(피의자신문)하게 한 후 그 사이 다른 업무를 수행한 후 그 수술을 자신이 집도한 것이라고 하는 현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경찰과 검찰의 관계는 좋은 옷감(정의)를 짜내는 씨줄과 날줄의 관계가 기본이고, 때로는 찢어진 옷감을 꿰매는 실과 바늘일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형사사법서비스를 받을 주권자의 입장에서 대등협력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더 예를 들자면 같은 부모(국가와 국민, 헌법과 법률)가 낳은 친자녀여서 서로 우애 있고, 역할이나 절차에 있어 형제간 우열이 있을 수는 있어도 서로 열심히 하여 국민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검사의 직무 중 위 비유(씨줄날줄, 실과바늘)와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되 검사의 직무수행(경찰의 수사결과물에 대한 최종 결정 및 공소유지)을 하기 때문에 경찰권남용에 대하여 ‘사후보완 수사지휘’와 더불어 최후로서 실질적인 안전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검사의 직무수행에 회복할 수 없는 장애(옷감을 아주 못 쓰게 망침)를 초래한 경찰관의 중대하고도 심각한 과오가 사후에 드러난 경우 이에 대하여 검사에 의한 합리적이고 실질적이면서도 최후의 견제(안전장치)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취지를 살린 일본 형사소송법 194조(검사의 경찰에 대한 징계, 해임 요구)와 반드시 똑 같이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다가올 경찰수사권 독립에 있어 우리와 근대사법제도 도입의 뿌리가 같은 검사의 경찰에 대한 최종 견제장치로서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국민을 속이고 개혁에 저항하며 일본 제국주의 쌍둥이 조항을 이용해먹은 정치인, 법조인, 학자, 언론인, 공직자들은 그러한 진실을 외면하고 함구하고 있다. 오랜 세월 검찰을 이용해먹었던 업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부화(검찰개혁)는 알 밖에서의 어미 새의 지극정성 노력(밖으로부터의 개혁동력)과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건강한 성장(안으로부터의 개혁동력)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 어떤 정부도 부정부패를 척결하거나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4.3 유족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가 전한 사연

0404-1

▲ 제71주년 4.3 추념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든 4.3유족 사연의 주인공인 김연옥 할머니(78)가 자신의 기구했던 4.3 경험담을 추념식장에서 발표한 손녀 정향신 씨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1948년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는데,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요.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이름은 김·연·옥.입니다.”

일순간 추념식장은 어느 유족의 사연으로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제주에 사는 어느 여대생이 들려준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71주년 추념식장을 찾은 모든 이들의 눈과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유족이든 아니든, 제주도민이든 아니든, 귀가 열려 있고 심장이 뛰고 있기에 흘린 눈물이다.

제주 안덕면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살이던 아이는 이제 일흔 여덟.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손녀 정향신씨가 전한 ‘4.3 광풍’에 의한 김연옥 할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통한의 세월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었고,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도 잃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0404-2

▲ 제주도내 대학에 재학 중인 정향신씨가 자신의 할머니가 겪었던 4.3당시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0404-3

▲ 자신의 이야기를 손녀가 4.3추념식 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자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무엇보다 할머니가 생선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전할 때는 자신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남은 4.3희생자 유족들이 4.3 트라우마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손녀가 대신한 김연옥 할머니의 말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살.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향신씨는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연단 맞은편 객석에서 손녀의 이야기 내내 그치지 않는 눈물이 앞을 가리던 김연옥 할머니는 통곡의 울음과 함께 허공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평화대공원을 내려다보던 하늘도 함께 오열했다.

0404-4

▲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희생자 유족들이 김옥연 할머니의 사연을 듣던 중 곳곳에서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2019-04-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4.3 추념식장에서 모두를 통곡하게 만든 대학생 

※관련기사 

☞경향신문: “4.3때 바다에 던져진 부모님, 파도칠때마다 ‘연옥아’부르는 것 같아” 

☞뉴스제주: 제주4.3 71년,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 달래야 

☞파이낸셜뉴스: 제주4.3 추념식 봉행 “특별법 개정…4.3 완전 해결 첫 걸음“ 

☞아시아투데이: 제주4.3추념식 1만여명 참석한 가운데 거행

목, 2019/04/04- 13:48
15
0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스페셜 투어

『임정로드 4000km』 김종훈 기자와 함께 떠나는 《서울 임정로드 탐방》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공간: 현충원에 잠든 독립투사와 친일파를 찾아서”

서울 동작동에 자리 잡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신규식·박은식·홍진 등 임시정부 요인들 뿐만 아니라 신돌석·이회영·김상옥·우덕순 등 한국 독립운동사를 수놓은 영웅들이 잠든 신성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들 곁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현충원은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친일파 출신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등 무려 63명의 친일파들이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살아서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던 항일애국지사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죽어서 동거하는 어이 없는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 역사의 비극을 공부하는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투어는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함께 합니다.

◎ 일시: 2019년 4월 13일 (토) 오후 2시 ~ 4시 30분

◎ 장소: 국립서울현충원 ‘만남의 집'(지하철 4·9호선 동작역)

◎ 코스: 현충원 만남의집(집결장소)-장군1묘역-박정희대통령묘역-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장군2묘역-임시정부요인묘역-충열대-애국지사묘역

◎ 인원: 선착순 30명 (미취학 아동은 참여 불가·초등학생 자녀는 성인 가족 동반 하에 참여 가능)

◎ 참가비: 1만 원 (1인당)

◎ 준비물: 활동하기 편한 복장 + 각자 먹을 생수와 간식

◎ 신청기간: 3월 29일(금) ~ 4월 10일(수)

◎ 신청하기: https://www.onoffmix.com/event/173789

 

※ 『임정로드 4000km』 지참시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싸인을 해드립니다.

※ 구역마다 즉석 ‘퀴즈 이벤트’가 있습니다. 필로소픽에서 준비한 특별 굿즈를 상품으로 증정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투어에 함께 하시길 권합니다.

목, 2019/04/04- 13:19
23
0

0403-4

[바로듣기]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목, 2019/04/04- 11:31
7
0

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0404-12

▲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청년 200여명과 함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김 할아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했고,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받지 못해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했다.

이후 1945년 8월9일에 공장에서 작업 중에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을 당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같은해 10월20일께 동료들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0404-13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 등은 이날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이날 함께 소송을 제기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일본은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용화 할아버지도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민변 측은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자행됐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어떤 주체도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고,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 후에도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 다수는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감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사라지고 있어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제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각 1억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고(故) 홍모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열었다.

홍씨 등의 대리인은 “대법원 판결도 나오고 해서 가급적 포괄적 화해를 하려고 한다”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일본에서 부정적 답변이 왔다”고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사실관계나 법리 문제에 주장할 것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겠다”며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조정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선고는 오는 6월27일 진행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2019-04-04> 뉴시스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들 추가 손배소…”日, 짐승 취급했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개·돼지 대우도 못 받고 살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 상대 추가 소송 제기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들 상대 또 소송 

☞뉴스1: 일제징용 피해자들 日 전범기업에 추가 소송…”짐승처럼 부려” 

☞SBS: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 기업들 상대 또 소송

목, 2019/04/04- 14:11
6
0

방국장님

박교수님

희빌  몬네가

지송

달달앤공부의일부판사들

구형과선고

그리고   그판사들의  그금사

그비노사들의  전옥서

 

금, 2019/04/05- 06:51
12
0

그검사는 나에게

징역 파월을 구형해따.

상해와전과를  가지고

그변호사는 국선….?

십팔마는이고  일당하고 치로비까지 요구하는 하물차 사장…

 

형동친  오시  우찌사노?

트키나 터기나

친구

ㄱㅗ마븐   ..그리고ㄱ…미아넌 칭구고향동창

 

시달린 실외기의 장ㄴ녀  칠월삼십일일

경찰의 이십구  삼십일

이사밀 시달린 마산 봉암동 옥주원룸의  그사람은

호솔  한다.

저녹서에서  이백  사시빌은  시마다.

금, 2019/04/05- 04:32
16
0

박교수님

방국장님

!!

보고싶다.

형동상

진단삼주의

원인과과정은  엄는가?

병원과검사판사변호사

그리고 좨인들

좨와블?

죄와벌!

방국장님  기소장하고  공소장하고  머가  다르요?

ㅆㅣ씨티브이  증거신청

진단삼주에  대한

나의 별론  안닌  변론

 

금, 2019/04/05- 04:40
15
0

비야

비야

비야

바기니

나무와숲

공기

군경은 대피만  할거신가?

 

 

금, 2019/04/05- 05:30
15
0

나무와인가

인간과숲….애리

자연과인류….소매

산소와무산소들

나도지금시순간분터  냉장고세탁기 자꾸돌리야 대거따….?

금, 2019/04/05- 15:45
15
0

業報(업보)

 

歿後成何物(몰후성하물)

祈求化犬豚(기구화견돈)

今生貪食甚(금생탐식심)

後世我當呑(후세아당탄)

 

업보

 

죽어 버린 이후에는 무엇이 될까

개나 돼지로 化하길 빌고 바라네

이승에서 탐내 먹는 일 심했으니

다음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時調로 改譯>

 

죽어 무엇이 될까 개돼지 되길 바라네

저들의 肉 탐식함, 이승에서 심했으니

다음에 올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歿後: 죽고 난 이후. 사후(死後). 신후(身後) *何物: 무슨 물건 *祈求: 원하는 바가

실현되도록 빌고 바람 *犬豚: 개돼지 *今生: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이승 *貪食: 음식

을 탐냄. 탐내어 먹음  *後世: 다음에 오는  세상. 또는  다음  세대 사람들.  내엽(來葉).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13:20
9
0

春日(춘일)

 

川邊春柳綠(천변춘류록)

聚散稚魚遊(취산치어유)

野老孤徐步(야로고서보)

吟哦上古樓(음아상고루)

 

봄날에

 

냇물 주변의 봄철 버들 푸릇푸릇

모였다 또 흩어지며 노는 稚魚들

시골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時調로 改譯>

 

냇가 春柳 푸릇푸릇 노는 어린 물고기들

시골에 사는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저으기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春日: 봄철의 날. 또는 그날의 날씨 *川邊: 냇물의 주변 *春柳: 봄버들 *聚散: 모임

흩어짐 *稚魚: 알에서 얼마 되는 어린 물고기 *野老: 한적한 시골에 사는

늙은이  *徐步: 천천히  걷는  걸음  *吟哦: 음시(吟詩).  吟詠.  시가(詩歌) 따위를 읊음.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08:25
8
0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주최
대규모 상황극으로 100년 전 만세함성 되살려

800명 청소년·시민, 행사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
새로운 100년 위해 ‘친일 청산’ 다짐

0405-3

▲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행주산성에서, 마을에서, 배 위에서…. 100년 전 행주나루터에서 울려 퍼졌던 고양땅 선조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가 주최한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지난달 30일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열렸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행진에 앞장섰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은 만세를 선창했다. 그러나 이날의 재현행사를 성대한 기억과 체험의 장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800여 명 시민과 청소년들이었다. 100년 전 기미년 3월, 민족대표와 지식인·학생들이 앞장서 시작한 독립만세의 외침이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와 마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을 연상케 했다.

고양시와 고양시3·1혁명100주년추진위원회, 민족얼지킴이,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행주어촌계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고양시 소재 10여 개 학교 5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겼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준 고양시장, 이규열 고양시의회 부의장과 김해련·김미수·정봉식 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이 참석했고, 이이화 역사학자와 김재득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을 비롯해 많은 지역인사들이 참석해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기림행사에 동참했다.

0405-4

▲ 이재준 시장은 “고양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밭두레보존회가 길놀이 농악으로 문을 열었고, 이어 24반무예 전수자들이 친일 청산을 주제로 한 호쾌한 전통무예 시연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무예인들의 칼과 활이 일제와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친일매국노를 응징하는 대목에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열린 개회식에서 이재준 시장은 “역사는 기억할 때만 살아난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서 선상만세를 불렀던 역사를 살아 흐르게 하자”고 말했다. 이어 “친일자본가를 비롯해 친일 세력들이 여전히 죄과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청소년들이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달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린 수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고양 행주나루터에서 열리는 오늘의 행사가 가장 멋지고 감동적”이라고 소감을 밝힌 후 “고양시를 넘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키워내자”고 제안했다. 임 소장은 여전히 남은 과제를 상기시키며 “친일파 청산!”을 기운차게 선창했다.

0405-5

▲ “친일 잔재 청산”을 힘차게 외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음으로 파주 수억고등학교 ‘민족얼지킴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세준군과 이아람양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33명의 청소년들이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들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백창환 지부장이 만세삼창을 선창하며 개회식이 마무리됐다.

한강 수로의 관문이자 개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던 행주지역은 3·1운동 당시 고양땅에서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이 수차례 반복해서 일어난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1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시위에서는 총칼을 앞세운 일경의 진압에 쫓긴 행주어민들과 주민들이 행주나루터에서 나룻배와 고기잡이배에 올라 타 전국 유일의 선상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고양에서 항일 운동이 치열하고 다양하게 펼쳐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날의 뜨거웠던 외침은 개막식 후 이어진 재현행사에서 생생하게 표현됐다. 상황극을 연출한 젊은 배우들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외침의 소문을 들은 고양의 민중들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자발적으로 통문을 돌리고, 시위 날짜를 약속해 대대적 만세운동을 일으킨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또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제의 잔인함과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항의 함성을 외친 선조들의 의기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농민과 학생들이 한 몸이 되는 모습은 고양은 물론,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펼쳐졌던 민중 중심 만세운동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여기에 행주나루에서만 발견된 선상만세 장면이 상세히 보태졌다.

재현행사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주최측은 전문배우들의 연기와 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커다란 말이 등장하고 총탄 소리에 만세를 부르던 학생들이 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손수 치마저고리, 학생교복 등을 차려입고 행사장을 찾은 청소년들이 재현행사의 적극적 주인공이 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만세를 따라 부르며 상황극에 참여했다.

0405-6

▲ 재현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지부장은 “신임 지부장 취임 후부터 행주나루 선상만세 재현행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서 “100인 추진위원회와 33인 어린이 합창단, 남과 북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민족대표 33인 퍼포먼스, 그리고 출연진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 등이 올해 새로 선보인 순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후에 행사를 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4월 13일 친일·항일 음악회를 개최하고, 고양교육청과 협력해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 TF’도 구성할 예정이다. 백 지부장은 “학교 교가, 석물 등의 친일잔재 조사를 위해 회원들과 발로 뛸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 사진으로 보는 3.1혁명 행주나루터 선상만세 재현행사
 (사진제공=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0405-7

▲ “100년 전 선조들의 뜨거운 외침, 기억하겠습니다”

0405-8

▲ 진밭두레패의 길놀이 농악공연. 3.1운동과 같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진밭두레패는 농악대 깃발 끝에 태극기를 꽂고 공연을 펼친다.

0405-9

▲ 이날 행사에선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와 독립운동기가 휘날렸다.

0405-10

▲ 전통무예 수련자들이 한민족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을 응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0405-11

▲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얼지킴이’ 동아리 배세준군과 이아람양.

0405-12

▲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동안 33명의 청소년들이 민족대표의 얼굴을 들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0405-13

▲ (사진 왼쪽부터) 김미수.김해련 고양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 이규열 시의회부의장, 이재준 고양시장, 백창환 민문연 고양파주지부장.

0405-14

▲ 이날 행사에선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독립군가와 3ㆍ1절 노래를 합창했다.

0405-15

▲ 태극기와 대한독립기를 앞세운 만세행렬이 행주나루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0405-16

▲ 일제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총칼을 앞세워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0405-17

▲ 행주나루터 빨래터 강물 위에 마련한 행사용 무대.

0405-18

유경종 기자 [email protected]

<2019-04-02> 고양신문 

☞기사원문: 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관련기사

☞경기인터넷신문 :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경기&뉴스: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내외통신: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민족문제연구소:[화보] 선상만세시위 재현 (3.30)

※관련영상

금, 2019/04/05- 17:44
14
0

待燕子(대연자)

 

鄕村多燕子(향촌다연자)

何去遂無踪(하거수무종)

忽見空檐下(홀견공첨하)

深憂半廢農(심우반폐농)

 

제비를 기다리며

 

시골 마을에 제비가 참 많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마침내 자취 없네

문득 텅 빈 처마를 바라다보면서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하게 되네.

 

<時調로 改譯>

 

시골에 참 많았는데 마침내 자취 없네

이제는 텅 빈 처마 문득 바라다보면서

오호라!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한다네.

 

*燕子: 제비 *鄕村: 시골 마을. 향리(鄕里) *無踪: 행방을 모름. 종적(蹤跡)이 없음

*檐下:  처마.  처마    *深憂:  깊이  근심함. 또는 그런 근심 *廢農: 농사를 그만둠. 

 

<2019.4.6, 이우식 지음>

토, 2019/04/06- 07:14
21
0

奉次李塏先生善竹橋韻

 

擧事遂成(거사수성공)

誰能測意(수능측의중)

今人雖拙妄(금인수졸망)

不忘六臣(불망육신충)

 

삼가 李塏 선생의 ‘善竹橋’란 詩에 次韻하다

 

擧事가 마침내 보람 없게 됐으니

뉘 능히 그 意中 헤아리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지만

여섯 신하의 충성 잊지 못합니다.

 

<時調로 改譯>

 

擧事가 空이 되니 意中 뉘 알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다 하지만

死六臣 그 충성일랑 잊을 수 없습니다.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李塏: 조선 前期

  文臣(1417~1456).  字는  청보(淸甫)ㆍ백고(伯高).  號는  백옥헌(白玉軒).  直提學

지냈으며,  詩文이  청절(淸節)하고  글씨를    썼다.  死六臣의    사람으로, 世祖  2년

(1456)에  端宗의 復位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善竹橋: 경기도  開城  있는

돌다리.  高麗  말기의  충신  鄭夢周가 李芳遠이 보낸 趙英珪 등에게 철퇴를 맞고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今人: 지금 세상의  사람 *拙妄: 옹졸하고 孱妄함 *不忘: 잊지 않음.

 

<2019.4.7, 이우식 지음>

일, 2019/04/07- 08:31
13
0

逢自稱文豪者自評

 

猫兒那作虎(묘아나작호)

鳳鳥化村鷄(봉조화촌계)

醜拙吾天性(추졸오천성)

詩文似雪泥(시문사설니)

 

스스로 文豪라 일컫는 者를 만나 自評하다

 

괭이 새끼가 어찌 범이 되겠으며

鳳이 시골에 사는 닭으로 化하랴

나의 天性 추잡하고 또 졸렬하니

詩文일랑 눈 녹은 진창과도 같소.

 

<時調로 改譯>

 

猫兒 어찌 범이 되며 鳳 어찌 촌닭 되랴

내 타고난 본성일랑 추잡하고 졸렬하니

오호라! 詩와 글월도 눈 녹은 진창 같소.

 

*文豪: 뛰어난 문학 작품을 많이 써서 알려진 사람 *猫兒: 고양이의 어린 새끼 *鳳鳥:

봉황(鳳凰). 봉(鳳) *村鷄: 촌닭. 시골의 *醜拙: 지저분하고 졸렬함 *詩文: 詩歌와

散文을 아울러 이름 *雪泥: 눈과 진흙을 아울러 이름. 눈이 녹아 뒤범벅이 된 진 땅.

 

<2019.4.7, 이우식 지음>

일, 2019/04/07- 13:44
1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