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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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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익명 (미확인) | 토, 2017/12/02- 10:21

위험판정 형사사법 건축물

1. 역사적 과오

현재 검찰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러 체질적인 문제(검찰의 경찰화, 수사권조정, 내부 적폐청산 및 융합, 업무경감,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등)들을 안고 있다. 가장 큰 현안은 내년부터 본격화될 수사권조정이다.

지금껏 검찰에서 사달(법조비리, 권력의 시녀, 전관예우, 각종부패, 신뢰부재 등)이 나고 국민으로부터 온갖 비속어를 들으며 ‘적폐의 온상’이니 ‘개혁대상 1호’니 하는 노도와 같은 강물소리를 듣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원이자 발원지는 광복 후 법률제정 과정에서 패망한 일본이 내다버린 침략전쟁과 식민수탈의 제국주의 좀비 조항들을 표절하여 우리의 형사소송법에 그대로 심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하여는 서적『제국과 유신의 검찰』을 통하여 그 논리를 전개하였는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광복 후 위정자들은 1949년 검찰청법(제정)에 ‘경찰의 검사에 대한 상명하복’ 조항을 입법하여 지반(地盤)을 다진 후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에서 ‘친일반민족 기득권 유지’라는 반석(盤石)을 주춧돌로 삼고, ‘(정권 이외에는)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이라는 대들보를 튼튼히 지탱하기 위하여 그 주춧돌 위에 일본 제국주의 법률 조항들을 기둥으로 삼았다.

일본은 1945년 패망 후 제국주의 ‘무소불위 군부정권’과 함께 침략전쟁과 식민지탄압을 이끌던 ‘무소불위 검찰권력’을 지탱하던 대정 형사소송법 조항인 ①검사의 수사권독점(제246조) ②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제248조) ③검사실 참여조항(제139조) 등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지탱하던 기둥 조항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고 경찰수사권 독립을 이루어 검찰 권력에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였는데 우리는 그 쓰레기통을 뒤져 그 조항들을 모두 주워와 우리의 ㉠제195조(수사권독점) ㉡제196조(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 ㉢제243조(검사실 참여) 조항들을 기둥삼아 위 친일반민족 주춧돌 위에 세웠으며, 이에 더하여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상 우월 조항을 입법으로 서까래와 지붕을 완성하였다.

위와 같이 구축한 ‘무소불위 검찰권력’에도 행여 불안감을 느낀 5.16 군사정권은 1962년 5차 개헌에서 ‘검사의 영장청구권 독점’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현존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건축물(무소불위 검찰권력)을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서 지금껏 검찰이 사달이 난 것은 처음부터 건축물을 잘 못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중 필요에 따라 경찰처럼 또는 검사처럼(검사대신 피의자를 신문하는 것이 대표적)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현령비현령 법률조항인 우리의 형소법 제243조(참여조항)는 대정 형소법 제139조(제136조 인용)를 표절(우리의 각 조항과 일란성쌍생아의 모습처럼 동일)하여 그대로 옮겨놓은 것임을 확인하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경찰권 역시 검찰의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검찰은 왜?”라는 물음을 달고 살아온 여정 끝에 국내에서 답을 얻지 못하던 중 올해 초 일본국립국회 도서관(홈페이지) 소장 관보에 실린 명치, 대정 형소법을 찾아내어 우리의 반문명적 법률조항들이 제국주의 당시 조항들과 일란성 쌍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당연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검사실 조서작성 관행(법률 규정과 달리 검사 대신 참여수사관이 피의자를 신문)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또한 제국주의 유물인 ‘무소불위 검찰권력’이라는 터전 위에서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낳은 관행으로서 이를 유지하고서는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검찰의 업무관행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매우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시대 검사실 참여를 규정한 139조를 기반으로 조선형사령 그리고 당시 검사 인력부족(대부분 일본인, 일본 본토에서의 인구대비 검사 수의 절반)에다 집중된 권한(수사권독점, 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으로 인하여 업무과중에 시달(현재 우리나라 검찰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함)리는 가운데 제국주의 정권의 식민지정책을 흔들림 없이 뒷받침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부담하며 제반 문제를 타개하여야 한다는 현실적 난관과 민족적 차별 대상인 식민지 조선인을 상대한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제국주의 황실 내규와 법령에 기반을 둔 전관예우 문화는 고난을 이겨낸 검사들이 입신영달을 거듭하여 관료로서 퇴직한 후 그들을 위로하였고, 해방 후 이를 불문율로 계승하여 우리사회에 창궐하게 되었다. 이 또한 일본이 패망 후 쓰레기통에 내다버린 제국주의 문화를 주워와 지금껏 우리사회에 창궐하게 된 것이니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제국과 유신의 검찰』에서 자세히 언급)

식민지 조선에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던 일제 검사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자국(법률 규정대로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에서와 달리 멸시대상인 조선인을 마주 대하지 않고 검사 대신 참여서기로 하여금 피의자신문을 하도록 한 후 그 결과 자신의 입신영달 거푸집에 맞는 조서를 작성해오면 이에 서명하여 마치 검사가 신문하고 작성한 것처럼 서명하여 법정에 그대로 제출하였던 것으로 이는 조선식민지 특유의 반문명적 관행으로서 조선인의 피눈물을 쥐어짠 조서재판으로 직결되었던 것이다.

일제의 대정 형사소송법 참여규정은 포괄적이어서 식민지 현실과 융합되어 검찰은 검사실에 참여서기 수만큼 무소불위 검사가 더 있는 것처럼 활용하여 조선인을 탄압하였고, 때로는 악질고문 경찰처럼 활용하여 조선인을 탄압하는데 제대로 활용해 먹었던 것으로 이에 바탕이 된 참여조항 또한 검사의 수사권독점, 경찰에 대한 지배적인 수사지휘권과 더불어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한 축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식민통치에 신음한 우리가 그러한 참여조항과 식민시대 업무관행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니 이를 바로 잡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광복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반문명적 형사사법 업무행태에 메스를 가하는 개혁(일본은 패망 후 참여조항을 폐기하고 검찰직원의 직무범위를 구체화하는 입법을 단행하였음)이 결국은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한 축을 개혁(충격과 여파가 크기 때문에 치밀하고 신중하게 진행)하였을 때 국민은 비로소 광복 국민이자 선진국 수준의 형사사법서비스를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법관 모두는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시보 생활 등을 통하여 검사실에서 법치에 반하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검사실 조서작성 관행에 대한 문제가 법정에 올라올 때마다 대법원은 애매모호하고 궤변적이며 오십보백보 엉터리 신사협정 판례(3건)를 내놓고 식민잔재인 이를 바로 잡으려 진정성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러한 조서를 형사피고인의 유죄의 증거로 삼는 한 진정한 의미의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러한 수준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의 후진 수준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검경 수사권조정 관련

제국주의 유물 청산과 관련하여 수사권조정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우선 경찰 수사권독립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헌법 개정을 통하여 경찰이 경찰답게 현장 및 초동수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최소한 경찰이 체포영장 및 압수수색영장청구권을 검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사법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개혁되어야 한다.

수사권조정에 있어 검찰, 경찰 모두 선진국의 예를 들어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한다. 이들 모델 중에 우리에게 근대사법제도의 뼈대를 심었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패망 후 법제에 있어 반문명적, 반인도적 제국주의 유물을 청산하여 검경제도를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일본은 우리 제도로부터 발전적이고 자연적인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식을 적극 들여다봤으면 한다. 일본 보다 더 잘해야 하는데 그 보다 더 못하고 있으니 일본 만큼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하고 우리와 근대사법제도의 뿌리가 같기 때문에 갑자기 햄버거나 샌드위치, 빵과 고기를 주식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경찰, 검찰, 법원 조직 사람들로서 자기 본분에 충실하면 될 형사사법 기관 종사자들의 각종 비리와 스캔들에 관한 뉴스를 달고 사는데 일본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그렇게 된 데는 우리와 달리 형사사법 법제에 있어 제국주의 유물을 청산하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검경간 대등협력 관계에서 서로 긴밀히 우호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검사는 경찰을, 경찰은 검사를 상호 견제하며 서로 잘하려고 하기에 경찰이 법원에 직접 청구하여 체포 또는 압수수색을 당하는 검사도 없거니와 검사의 경찰권 남용에 대한 최종 견제 망(194조, 검사의 경찰에 대한 징계, 해임 요구권)에 걸려드는 경찰에 관한 뉴스를 본 적도 없다. 물론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될 것으로 지금껏 우리처럼 언론에서 검사 또는 경찰의 비리나 스캔들을 사시사철 달고 살지도 않고, 경찰, 검찰 모두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으며, 경찰과 검찰이 너무도 못 미더워서 옥상옥(屋上屋)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니 하는 별도의 기구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는 일도 전혀 볼 수 없었다.

3. 경찰수사권 독립 후 경찰권남용 관련

경찰은 수사권조정에 있어 ‘검사의 보완수사요청에 의한 사후통제는 받겠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으로서 정작 확보되어야 할 견제장치로서 넘어야할 가장 높은 산은 어설픈 경찰수사권 독립이 가져올 경찰권 남용에 대한 국민 그리고 검사의 궁극적인 우려에 관한 것이다. 대통령이 당사자 간 조정이 어려울 경우 ‘제3의 기구를 통한 조정’을 언급한 것은 서로 양보하지 않는 비타협성에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우리나라 특유의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유래와 현실에 관한 이해와 더불어 국가와 국민을 정점에 두고 검경의 직무특성상 상호 배려 하에 접점을 찾으면 당사자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신의 골(일제강점기 검사에 굴종하던 경찰의 검사에 대한 반감은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 지속)이 너무도 깊기 때문에 성사되기는 지난하다. 경찰, 검찰 모두 국가와 국민은 뒷전이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니 꼭꼭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고 샅바싸움만 하고 있다. 이 모두 불신 때문이다.

예전에 김 모 검사장이 검사를 의사에, 경찰을 간호사에 비유하여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매우 잘 못된 비유이다. 오히려 검찰내부에서 검사와 검사실 참여수사관에 비유하면 좀 더 가까울 것 같고, 법치에 반하게 자기(의사) 대신 간호사로 하여금 수술을 집도(피의자신문)하게 한 후 그 사이 다른 업무를 수행한 후 그 수술을 자신이 집도한 것이라고 하는 현실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경찰과 검찰의 관계는 좋은 옷감(정의)를 짜내는 씨줄과 날줄의 관계가 기본이고, 때로는 찢어진 옷감을 꿰매는 실과 바늘일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형사사법서비스를 받을 주권자의 입장에서 대등협력 관계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더 예를 들자면 같은 부모(국가와 국민, 헌법과 법률)가 낳은 친자녀여서 서로 우애 있고, 역할이나 절차에 있어 형제간 우열이 있을 수는 있어도 서로 열심히 하여 국민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검사의 직무 중 위 비유(씨줄날줄, 실과바늘)와 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하되 검사의 직무수행(경찰의 수사결과물에 대한 최종 결정 및 공소유지)을 하기 때문에 경찰권남용에 대하여 ‘사후보완 수사지휘’와 더불어 최후로서 실질적인 안전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검사의 직무수행에 회복할 수 없는 장애(옷감을 아주 못 쓰게 망침)를 초래한 경찰관의 중대하고도 심각한 과오가 사후에 드러난 경우 이에 대하여 검사에 의한 합리적이고 실질적이면서도 최후의 견제(안전장치)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취지를 살린 일본 형사소송법 194조(검사의 경찰에 대한 징계, 해임 요구)와 반드시 똑 같이 규정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다가올 경찰수사권 독립에 있어 우리와 근대사법제도 도입의 뿌리가 같은 검사의 경찰에 대한 최종 견제장치로서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국민을 속이고 개혁에 저항하며 일본 제국주의 쌍둥이 조항을 이용해먹은 정치인, 법조인, 학자, 언론인, 공직자들은 그러한 진실을 외면하고 함구하고 있다. 오랜 세월 검찰을 이용해먹었던 업보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부화(검찰개혁)는 알 밖에서의 어미 새의 지극정성 노력(밖으로부터의 개혁동력)과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건강한 성장(안으로부터의 개혁동력)이 병행되어야 가능하다. 견제 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 권력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그 어떤 정부도 부정부패를 척결하거나 성공한 정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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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1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목, 2017/08/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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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판사가 역사에 무식..즉각 항소할 것”

 

정미홍 전 아나운서. 2017.3.8/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血書)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58)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는 31일 한국 근현대사 비영리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아나운서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전직 아나운서로 대중의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에 명예훼손글을 무분별하게 실은 경우 통상에 비해 높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용한 링크글의 논지가 분명하지 않고 전파가능성도 낮은 점을 감안해 벌금 30만원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트위터로 글을 단순히 리트윗한 것이라 해도 타인의 글이 명예훼손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며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바, 증거도 없이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했다고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신문을 내세우기 전 과거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삼았지만 만주일보에 박 전 대통령의 혈서 기사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기에 박정희 혈서설은 조작됐다는 취지”라고 밝히고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해왔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아나운서는 선고 중 판사를 향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방송에 나와 만주일보에 (박정희 혈서설)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며 “위증죄로 증인을 고소한 건이 현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고 판사에게도 증거로 제출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선고 후 기자와 만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기에 저에 대해 인신공격 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판사가 링크글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무식하기 때문으로, 역사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39년 3월 31자 만주신문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라’라는 혈서를 썼다고 2009년 밝혔다.

정 전 아나운서는 2013년 2월 ‘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혈서 기사 조작’이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인용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글은 ‘지난 5년간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고 주장했으나 만주일보는 1908년 폐간된 신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7월 강용석 변호사와 정 전 아나운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각각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강 변호사가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고,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원심을 확정했다.

 

<2017-08-31> 뉴스1

☞기사원문: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 1심서 벌금 30만원

※관련기사

☞ 연합뉴스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원

☞ SBS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 원

☞ 머니투데이 :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씨, 1심서 벌금 30만원

목, 2017/08/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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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 모독하는
박성진 장관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1.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야심차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활력 제고와 균형 있는 성장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후보자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지명함으로써, 정작 당사자인 중소상인들로부터 “이럴 거면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는 항의와 함께 지명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2. 박성진 후보자는 이승만 독재를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새마을운동을 “국민의 정신개조 운동,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 평가했고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긴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삶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일 프레임, 편협한 민족주의, 과도한 민주주의, 갑을 논쟁” 등 “계층적 분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를 승계한 것이 된다.

3.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때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초청해 ‘건국 세미나’를 벌인 인물을 중기부 장관후보로 지명하는 자기모순을 범하였다.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박성진은 생활 보수일 뿐이며…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인재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였다. 인사검증이 허술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 청와대가 ‘이승만-박정희 신도’인 박성진 중기부 장관 지명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자 새롭게 집권한 민주정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포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촛불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박성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끝>


2017년 9월 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금, 2017/09/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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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의 날’을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날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경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현재 경찰의날은 1945년 해방 후 당시 미군정이 미군정청에 경무국을 창설한 10월21일이다. 1957년 11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날로 지정했고, 1973년 제정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 주관 기념일로 확정됐다.

이재정 의원의 개정안은 1919년 11월5일에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관제’에 따라 설치된 경무국 창시일을 경찰의 날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초대 경무국장을 역임해 경무국이 임시정부 청사를 경비하고 임시정부 주요 인물들을 경호하게 했다”라며 “일제의 정탐을 방지하고 밀정을 찾아내는 등 경찰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를 두고 “헌법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돼 있다”라며 “11월5일로 변경해 경찰의 효시가 일제 강점기 이후 미군정기의 과도기적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경무국에 있음을 명확히 해 경찰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11월5일을 경찰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당시 “현재 경찰의 날인 10월21일은 한국 정부 수립 전인 1945년 미군정 시기에 경무국이 창설된 날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경찰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날을 변경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된 헌법정신과 식민잔재 청산 의미에 부합한다”고 했다.

2009년 5월 당시 민주당 김희철 의원도 같은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 날을 11월5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경찰 내부망에 일선 경찰관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경찰관은 “해방 이후 ‘친일 경찰’ 재등용은 경찰의 가장 가슴 아픈 실책”이라며 “경찰의 첫 시작을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삼고 독립과 친일파 처단 등의 역할을 한 선배 경찰들을 찾아 기리는 등 임시정부 경무국의 역사를 경찰사로 편입한다”고 썼다. 또 “그래야 ‘친일 경찰’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 경찰이 되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특히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든 경찰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안은 경찰개혁위원회 내부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당시 경무국 창설일을 ‘경찰의 날’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이 외에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문제 등 다른 여러 기념일 변경도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09-01>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경찰의 날’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 법안 추진···경찰 내부에서도 의견 나와

금, 2017/09/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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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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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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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①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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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9강 식민통치 마케팅 – 박람회와 기념축전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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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금, 2017/09/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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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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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금, 2017/09/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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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직원이 ‘제국과 유신의 검찰’이라는 서적을 펴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권력은  일본 제국주의 법률조항  표절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관예우는 일본 제국주의 황실 법령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법치에 반하는 검사실에서의 조서작성 관행(검사대신  참여직원이 신문)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검사가 조선인을 불령선인 취급하던 업무 방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책에는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이를 옹호하거나 본분을 다하지 못한 학자, 정치인, 법조인, 검사, 판사, 공무원, 교육자, 언론인 등 지식인, 공직자, 지도층 사람들이 매우 화가나거나 부끄러워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토록 저주하였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토, 2017/09/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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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 혁명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청산의 의무가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가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책임자 조사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광주학살은 돌발사건이 아니었다. 군은 제주 4·3사건,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다시 제암리 사건,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해방 이후 군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들이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역대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었다. 제주 4·3사건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니 광주학살의 진상 규명은 더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이어져야 한다. 군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본군 잔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독립군의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28일 언급한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립운동의 정점은 무장투쟁이다.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인 1920년에 이미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군’을 창설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17일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다. 광복군이 있었기에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국군의 창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잇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친일군인들이 장악한 군은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에서 1956년에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육군 제3사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한 1950년 10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적혀 있다. 북진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 국시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북진을 기념하는 날로서 국군의 날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게다가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사단장은 친일군인이던 정일권과 이종찬이었다. 제3사단은 백색테러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사단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제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친일파와 정치깡패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던 이승만정권다운 일이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립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로 삼아야 하며 그 일환으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령으로 정해지는 기념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가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국경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 부처 차원에서 기념하는 ‘각종 기념일’이다. 각종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국군의 날은 각종 기념일에 속한다. 그러니 대통령령만 고치면 국군의 날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쾌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7-09-04>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9월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 이준식

화, 2017/09/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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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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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로 되고 있다.
8월 전쟁위기설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북한의 최첨단 핵무기들이 하나 둘씩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6차 핵실험이 진행되었고, 이것은 지난 괌 타격 유보를 이제는 집행할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9월 9일은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일 중의 하나로,
광인 트럼프의 막말대잔치와 미국의 뒷구녕을 핥아대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 대북제재 망발에 대한 응징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주요 해외 언론의 동향은 괌 타격이 9월 9일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목, 2017/09/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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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가족 철수!! 목동 원어민 강사들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주한미군 가족철수 훈련을 진행한 일이 있었고, 올해에도 유사하게 진행된 북한 공격시 대피훈련이 4월, 6월 연일 계속되고, 이제는 민간인 영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목동, 대치동 등에서 돼지엄마들의 입소문이 대박이다.
주한미군 가족뿐만 아니라 실제 원어민 강사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데, 난리도 아니라는 것. 실제 전쟁공포로 원어민 강사들의 요청으로 심리치료사 소개를 해준 일도 있다는 것.

[관련기사]
주한미군 가족, 北 공격 대비 대피 훈련
입력 2017.06.06 (21:07) | 수정 2017.06.06 (22:12) 뉴스 9

<앵커 멘트>
주한미군이, 유사시 미군 가족들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지난해 7년만에 재개한 데 이어, 올해도 또 실시했습니다. 배경이 무엇인지, 우한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배낭을 짊어진 미국인들이, 공군 수송 헬기로 향합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일행은 헬기에서 버스로 다시 수송기로 갈아탑니다. 배낭에는 비상식량이 담겼고, 이동 때마다 신원 확인을 거칩니다. 유사시 만7천명에 이르는 미군 가족 등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훈련입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족들을 주일 미군 기지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훈련에 자원한 미군 가족 150명은 어제부터 서울에서 평택, 대구를 거쳐, 주일 미군기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내 미군 가족 대피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전략 무기 전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미군은 최근 동해 상에 항공모함 두 척을 전개한 데 이어, 오늘(6일)은 핵 잠수함 샤이엔 함을 부산항에 입항시켰습니다.

<녹취> 신종우(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 “미군의 화기에 의해서 미국인이 피해를 볼 수 있잖아요. 훈련을 통해서도 미국인을 소개시키고 한반도에 전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근 며칠간 북한 지역에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의 움직임이 관측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군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목, 2017/09/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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