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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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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익명 (미확인) | 수, 2017/11/22- 18:09

대구의 식민지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대구의 역사를 모색하는 학술세미나가 경북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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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역사와 도시의 재현, 그리고 대구’ 학술세미나 [사진=경북대 인문학술원]

경북대 인문학술원(원장 허정애)과 대구경북학회(회장 김영철), 대구경북연구원(원장 이주석)은 오는 24일 오후 2시 경북대 대학원동 학술회의실에서 ‘식민의 역사와 도시의 재현, 그리고 대구’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황보영조 경북대 인문대학장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는 김일수 경운대 벽강교양대학 교수, 김경남 경북대 사학과 교수, 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이정찬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사무국장 등이 발표자로 나서 식민지 시대 대구의 도시 재편 문제와 식민지 역사의 재구성, 그리고 도시 콘텐츠 문제 등 다양한 주제로 발표·토론할 예정이다.

이어 박승희 대구경북학회 부회장 사회로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 김석수 경북대 인문학술원 부원장, 이재필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경북학센터장, 조명근 영남대 역사학과 교수, 홍성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토론을 진행한다.

허정애 경북대 인문학술원장은 “대구의 식민지 연구는 대구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번 학술세미나가 식민지 도시에 대한 성찰과 반성, 나아가 새로운 대구를 위한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2017-11-21> 뉴스민

☞기사원문: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경북대,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대학저널: 경북대,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베리타스알파: 경북대 인문학술원 학술세미나 24일

☞에듀동아: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국제뉴스: 경북대 인문학술원, ‘식민의 역사와 대구’ 학술세미나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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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9/2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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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장을 지낸 한상범 교수님이 지난 10월 15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교수님은 2001년 2월부터 2003년 9월까지 연구소 2대 소장을 지내셨으며 2002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끝으로 공식적인 대외활동은 거의 못하셨다. 그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다.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으셨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어 설명하셨던 교수님, 실천하지 않고 현학적인 수사만 늘어놓는 지식 장사꾼들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던 교수님을 더 이상 뵙지 못함이 안타깝다. 연구소 소장님으로 2년 남짓 모셨던 인연으로 몇 가지 교수님과의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고자 한다.
1991년 창립부터 10년 동안 봉사해온 김봉우 초대 소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소장 직을 그만둔 후 후임 소장 물색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문기 이사장님께서 신의 한 수처럼 모셔 온 분이 바로 한상범 동국대 법대 교수님이었다. 연구소로서는 천군만마요 야구로 치면 믿을만한 구원투수의 등판이었다. 왜냐하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법학계에서 한교수님만큼 친일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한 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법학계를지배한일본법학의유산>을 발표해 법학계의 일제잔재청산을 공개적으로 문제화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의 법문화와 일본제국주의의 잔재><일제잔재 무엇이 문제인가>등 제목만보면연구소가 펴낸책 이라고해도 믿을정도로 한교수님은 친일청산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대안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역사법정에세우다><전두환체제의 나팔수들>에서 볼수 있듯이 독재와 불의에 대해서는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분이었다. 그야말로 준비된 구원투수의 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연구소 소장 재임 시절 술을 전혀 안 하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1980년대 초 평생 마실 술을 다 드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신군부 시절 불법으로 연행당해 며칠 동안 고초를 겪고 난 뒤 울화가 치밀어 매일 밤 독주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법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무법이 횡행하는 시절을 살아내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복기, 김기춘, 우병우 등 시대를 막론하고 늘 ‘법꾸라지’들이 난무했기에 교수님은 ????화있을진저 너희들 법률가여????라는책을펴내서법기술자들을질타했다.
또한 법 문구를 어렵게 만들고 난해하게 표현하여 특권층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며 <한글헌법 노트><한자숭배 나라망친다>는책을 펴내기도했다.법학자로서보기 드문 한글 사랑으로 한교수님은 ‘외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재일교포 단체 초청으로 일본을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던 재일교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교수님은 원고 없이 유창한 일본어로 잠시 강연하시더니 곧바로 “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왔으므로 이제부터 한국말로 연설하겠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신다. 실용에 앞서 자존을 중시하는 태도였다.
민족적 자존 나아가 인간의 존엄은 개성 출신으로서 6·25의 참화를 처절하게 겪어낸 한교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따라서 인간 존엄을 해치는 체제에 대한 본능적 저항은 한교수님에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교수님은 멀리 지방 출장길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외출 때도 늘 작은 책을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집일 때가 많다. 한번은 나에게 “시인 중에 누굴 좋아하시나?”라고 물으시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시와 문학작품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셨다. 사회적 모순과 싸운답시고 자칫 거칠고 메마를 수 있는 감정을 다독이며 사회운동의 초심을 지키라는 조언이셨을 것이다.
지방 출장 중에 부득이 한방에서 묵어야 할 때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면서 늦은 시간까지 당대 인물들에 대한 평을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당시 평판에 올랐던 인물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 중용되어 지금까지도 몇몇은 여전히 악명을 떨치고 있다.(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그 인물평들을 녹음해 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밖에 서울 문래동 박정희 흉상 철거로 나를 포함해 여러 명이 재판을 받을 당시, 법정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법적, 역사적으로 박정희의 악행을 거론하며 흉상 철거는 정당하다고 저항권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한교수님은 피고인석에 선 우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셨다.
이제 연구소는 1991년 창립 이래 터 잡고 활동하던 동대문시대를 접고 용산시대를 연다. 동대문시대에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성취했다면 용산시대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과 대중화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동대문을 떠나며 가장 어려운 시절 연구소 2대 소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주셨던 한상범 교수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국가보안법? 허~ 참나. 머릿속의 생각을 벌주는 나라가 어딨어?”

방학진 기획실장

화, 2018/01/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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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山僧韻(화산승운)

 

不德無才器(부덕무재기)

浮遊獨醉吟(부유독취음)

前宵巖下宿(전소암하숙)

此夜覓松林(차야멱송림)

 

山僧의 詩에 화답하다

 

덕이 부족한 데다가 才器도 없어

이리저리 떠돌며 홀로 취해 읊소

간밤엔 바위 밑에서 잠을 잤는데

이 밤에는 솔숲을 찾아볼까 하오.

 

<時調로 改譯>

 

부덕하고 才器 없어 떠돌며 홀로 醉吟

간밤엔 바위 밑에서 잠을 청해 봤는데

이 밤엔 소나무 숲을 찾아볼까 한다오.

 

*和韻: 남이 지은 詩의 韻字를 써서 화답하는 詩를 지음 *不德: 덕이 없거나 부족

*才器: 사람이 지닌 재주와 기량. 재주가 있어 人才 만한 인품. 또는 그런

사람 *浮遊: 물 위나 물속, 또는 공기 중에 떠다님. 행선지를 안 정하고 이리저리

떠돎 *醉吟: 술에 취해 詩나 노래를 읊음 *前宵: 어젯밤 *此夜: *松林: 솔숲.

 

<2018.7.7, 이우식 지음>

토, 2018/07/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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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문연 후원회원인 가톨릭대 법학전공 이민영교수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치욕의 침탈과 이념의 대립 그리고 비극의 분단과 국론의 분열 및 급기야 헌정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내재적 한계가 있고 게시판의 비방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위반으로 처벌되는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재판소 결정이 아니라도 강학상 민주주의의 척도가 되는 기본적 인권으로 주관적.객관적 측면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새깁니다. 민문연의 거꾸로섬과 바로세움은 인권.평화.미래를 생각하는 민문연의 좌표는 상호 존중과 협의로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가려는 민주주의를 기초로 해야 지금의 난국을 그리고 민족의 난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제주 4.3을 되새기다 몽양선생님을 몹시 그립게 떠올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뭐라 하실까? 하는 물음에 여러분도 응답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수, 2018/04/0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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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宿運與基督者

 

莫言無宿運(막언무숙운)

或者怨天公(혹자원천공)

善友焉貧困(선우언빈곤)

凶人五穀豊(흉인오곡풍)

 

기독교인과 宿命을 논함

 

숙명은 없다 그런 말씀일랑 마오

어떤 사람은 하늘님 향하여 원망

착한 벗님은 어찌 살기 어려우며

흉악한 사람 五穀 어찌 풍성한고.

 

<時調로 改譯>

 

숙명 없다 말 마오 어떤 자 天公 원망

착하고 어진 벗님은 어째서 빈곤하며

흉악한 사람 五穀은 어째서 풍성한고.

 

*宿運: 숙명(宿命) *基督者: 기독교인 *天公: 하늘님 *善友: 착하고 어진 *貧困: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움. 빈난(貧難) *凶人: 흉악한 사람 *五穀: 다섯 가지 중

요한  곡식. 쌀, 보리, 콩, 조, 기장을  이름.  오가(五稼).  오종(五種).  온갖 곡식.

 

<2018.7.8, 이우식 지음>

일, 2018/07/0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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