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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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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익명 (미확인) | 월, 2017/11/20- 19:35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고 말했다.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흥구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말 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고조되는 긴장에 비해 해법은 아직도 묘연하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역사를 보라는 말이 있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펴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역사학자다. 작고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함께 197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대표적 원로 지성으로 꼽힌다. 유신정권 시절에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4년 동안 대학 강단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상지대 총장(2001~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005~2007년)을 지낸 뒤 강원도 양양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다. 지난 7월 말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던 문재인 대통령이 강 명예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팔순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과 강연 등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파하는 그를 양양에서 만났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북핵 문제가 제일 시급한데, 내가 보기에는 과거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핵 개발 중에도 북·미 관계가 좋을 때는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 시설을 파괴하도록 만들었다. 클린턴 정부 때 북·미 수교, 고이즈미 내각 때 북·일 수교를 놓고 협상할 때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 아니겠는가.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

현재 북한은 수교를 하더라도 핵 보유를 인정받겠다는 입장 아닌가?

북·미나 북·일 수교를 하게 되면 핵은 포기하라든지 하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미가 수교를 하지 않고 해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니까 결국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하며 북한 상륙작전까지 연습하니까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평화주의 견지에서 보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상대가 있으니까 협상에 달렸다. 세계가 평화를 지향해가고 있는 시대이므로 북·미 평화협정, 북·일 수교를 통한 평화 관계도 마땅히 이룰 수 있다.

광복 72주년에 재현된 건국절 논란을 어떻게 보는가?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 이런 문제인데, 광복절이란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기념일로서 이것은 민족주의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건국절 주장은 국가주의적 견해이다. 결국 건국절 논란은 어떤 역사인식을 가질 거냐 하는 문제다. 계속 분단국가주의적 틀 속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통일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역사의식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1945년 광복 당시 건국 개념은 무엇이었나?

1919년 상해에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이 가까워질수록 좌우 합작 정부로 변모했다. 독립운동 내부에 좌익도 있고 우익도 있었는데 광복 후 이들이 합쳐야 하니까 임시정부가 사실상 좌우 합작이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이 주석이고 김규식 선생이 부주석인데 거기에는 아나키스트, 유림 등 모든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광복이 되면 두 개의 국가가 생길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백범 김구로 말하자면 우익 중의 우익인데 좌우 합작 정부의 주석이었고 분단 이후에는 평양에 가지 않았나. 그것이 우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그걸 갈라놓은 게 이승만 정권이고. 오늘날 건국절 운운하는 것은 이승만의 분단주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 남은 일제 잔재 청산 과제는?

최근 <친일인명사전>까지 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광복된 지 72년이나 됐는데 친일파 연구가 학문적으로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로 자료가 전혀 모아지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 때 비로소 자료를 모았다. 그 자료를 가지고 친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화두다. 역사적으로 적폐가 누적된 근본 원인을 뭐라고 보나?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업적을 세웠다는 걸 내세워 독재 체제를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승만 정권의 제일 큰 오점이자 문제점은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민족사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1965년 잘못 맺은 한·일 협정이다. 협정 당시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합법적으로 지배했느냐, 침략적으로 강점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협정 당시 일본의 주장을 따르면 일제 36년이 합법적인 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합법적인 지배에 저항한 잘못된 행동이 된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합방조약을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이 된 그날부터 무효라고 인식하겠다 하고 아무런 대응 없이 넘어갔다. 역사적으로 큰 과오를 남긴 이 문제가 아직까지 제대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한·일 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를 놓고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다’라 주장했고,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성립 때까지는 유효했다’고 해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은 한·일 병탄조약을 어떻게 보았나?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이 청일전쟁 끝에 빼앗은 타이완은 중국에 돌아갔다. 러일전쟁에서 빼앗은 북위 50° 이남의 사할린 땅도 소련에 넘어갔다. 한·일 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연합군이 인정했다면 한반도를 일본의 지배에서 빼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걸 침략 행위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서 한반도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하지만 1965년 한·일 협정 때는 그게 전혀 반영이 안 됐다.

학계에서 그 문제가 전혀 제기되지 않았나?

한·일 합방 100주년이던 2010년 한·일 양국의 양심세력이 성명서를 냈다. ‘1910년에 체결된 한·일 합방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라는 공동성명이었다. 하지만 민간에서 해봐야 법적 효력이 있나. 한·일 양국 정부가 하도록 촉구하는 의미였는데 이후 별다른 노력이 없었다. 이제라도 역사학계의 지적을 정부가 귀담아 듣고 일본 정부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한·일 협정을 통한 청구권 자금이 우리 경제성장의 종잣돈이 되었다며 박정희 정권의 긍정적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들도 많은데?

박정희 정권의 업적으로 경제성장을 자꾸 말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복구 과정에서 경제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그렇고 독일도 그랬다. 심지어 북한도 19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나았지 않나. 경제성장이라는 게 어느 한 정권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을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

▲ 2005년 5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앞줄 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일본과는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교육 문제 등이 있는데 독도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라고 본다. 우리가 우리 영토로 점유하며 증명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들이 뭘 어떻게 원하느냐를 듣고 일본과 교섭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해치웠다. 그러니까 피해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합의할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없었다. 당사자들이 아직 상당수 살아 있다. 그분들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그래야 일본도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역사교육 문제는 일본의 지성들이 해결해야 한다. 아베 정권 이전까지 일본 역사학계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어제를 아는 것이 역사다. 그렇다고 어제를 알고 그냥 끝내서도 안 된다. 잘못된 과오는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과거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이 아직도 부족하다. 한·일 양국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교류하면 역사교육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이 우경화하면서 역사 왜곡이 심해지는데?

일본 정부가 교육을 통해 극우 사상을 넣으려 하는데 거기도 발전하는 세상이라 나는 그것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본다. 일본 보수 정권이 비교적 오래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래도 21세기인데 과거의 제국주의적 또는 냉전주의적 상황은 희석될 것이다.

역사학자가 보기에 현재 한반도 처지가 구한말과 비슷한가?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4대 강국 시각에서 보면 한반도가 분단 상태에 있는 게 안전하다. 한반도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대륙 세력권에 들어가면 한반도는 해양 세력, 특히 일본을 찌르는 칼이 된다. 반대로 한반도가 일본이나 미국 등 해양 세력권에 포함되면 해양 세력이 대륙을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가 된다. 과거 일제강점기가 대표적인 예 아닌가.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갈렸다. 이 상태가 4대 강국에게는 안전하다. 4대 강국끼리 충돌을 방지하는, 칼도 안 되고 다리도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통일은 어렵다는 얘긴가?

우리는 4대 강국에 의해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4대 강국이 포함된 6자 회담으로 통일 문제나 남북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걸 말해준다. 내가 보기엔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6·15 남북공동선언은 그런 역사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나?

통일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면 분단이 어떻게 고착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1차적으로 1945년 삼팔선이 생기면서 국토가 나뉘었다. 다음으로 1948년 남북한 단독 정권이 생기면서 국가가 분단되었다. 이어서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갈린 과정을 거쳤다.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남북한은 베트남처럼 사이공 인민주의도 안 되고 독일처럼 흡수통일도 안 된다. 결국은 평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연 시작을 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라고 본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민족이 화해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열렸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남북한 사이에 연방제냐, 1정부 2체제냐, 2정부 2체제냐 하는 게 다를 뿐 통일국가 체제 논의도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2정부 2체제로 가는 건 공통분모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역사학자로서 정부 승인을 받아 방북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기 일주일 전인 2016년 2월 역사 발굴 때문에 개성에 들어갔다. 고려 왕궁터를 비롯해 여러 고려 문화 유적이 남아 있어서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삼자고 했다. 그런데 개성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많이 달라졌더라. 5층짜리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남루했던 개성 사람들 옷차림도 달라졌다. 개성공단, 해주공단, 원산공단을 지어나가면 통일이 차츰 되어갈 것이다. 통일이란 게 남북한 사람들 의식이 같아지고 생활이 동화되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차츰 남북이 동화되어가면 통일비용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들어갈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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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방북 중인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박용길 장로, 강만길 교수(왼쪽부터) 등을 접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통일뉴스 제공

북한 사람들과 북핵 문제도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어느 북측 인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에 북한은 달러 한 푼 없이도 살 수 있었는데, 무너지고 나니 달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더라, 결국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북핵을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한 마지막 카드라고 하더라. “우리를 승인하라는 것이고 인정하라”는 주장이었다.

역사란 지그재그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는데?

역사는 정치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적으로는 인간 생활을 균등하게, 사회적으로는 인간을 평등하게,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자유롭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게 직선으로만 가지 않는다. 그랬다면 인류의 역사가 여기 머물러 있겠나? 훨씬 더 많이 앞으로 갔을 것이다. 역사는 중간에 가다가 반작용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고 나선형으로 올라간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침략과 분단 등을 겪었지만 우리는 왕조시대를 극복하고 넘어섰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나 중국의 신해혁명 같은 것은 없었지만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해갔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분단도 극복하고 통일도 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자신감을 갖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할 말이 있다면?

내치야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발전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북 문제가 걱정이다. 미국 트럼프 정권도 대북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아서 지난 10년간 닫힌 남북 관계를 푸는 게 쉽지 않다. 북·미 관계가 나빠지면서 야당과 수구 보수 세력이 정부를 비판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남북 관계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정부 내 대북 정책을 맡은 사람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얼마나 빨리 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보다는 방향이 맞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식만 있다면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설득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민간단체가 남북 간 교류를 더 넓혀 나가야 한다.

정희상 기자 [email protected]

<2017-9-1> 시사in

☞기사원문: 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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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次成三問先生絶命詩韻

 

僅僅新生國(근근신생국)

何爲殆半(하위태반사)

北狂南腐爛(북광남부란)

難復本來(난복본래가)

 

삼가 成三問 선생의 絶命詩에 次韻하다

 

겨우 독립해 새로 생긴 나라인데

어찌하여 거의 반쯤 기울게 됐나

北은 미쳤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 쉽지 않으리라.

 

<時調로 改譯>

 

겨우 생긴 나라인데 왜 반쯤 기울었나

北은 미쳐 버렸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成三問:  조선

세종 때의 文臣(1418~1456). 字는 근보(謹甫). 號는 매죽헌(梅竹軒). 집현전 학사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元年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해  처형됨. 저서에 ≪성근보집(成謹甫集)≫이 있다 *僅僅:

겨우  *新生國: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  독립한  국가  *腐爛:  썩어서  문드러짐.

 

<2019.4.4, 이우식 지음>

목, 2019/04/0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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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족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가 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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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주년 4.3 추념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든 4.3유족 사연의 주인공인 김연옥 할머니(78)가 자신의 기구했던 4.3 경험담을 추념식장에서 발표한 손녀 정향신 씨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1948년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는데,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요.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이름은 김·연·옥.입니다.”

일순간 추념식장은 어느 유족의 사연으로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제주에 사는 어느 여대생이 들려준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71주년 추념식장을 찾은 모든 이들의 눈과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유족이든 아니든, 제주도민이든 아니든, 귀가 열려 있고 심장이 뛰고 있기에 흘린 눈물이다.

제주 안덕면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살이던 아이는 이제 일흔 여덟.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손녀 정향신씨가 전한 ‘4.3 광풍’에 의한 김연옥 할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통한의 세월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었고,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도 잃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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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내 대학에 재학 중인 정향신씨가 자신의 할머니가 겪었던 4.3당시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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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이야기를 손녀가 4.3추념식 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자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무엇보다 할머니가 생선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전할 때는 자신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남은 4.3희생자 유족들이 4.3 트라우마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손녀가 대신한 김연옥 할머니의 말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살.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향신씨는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연단 맞은편 객석에서 손녀의 이야기 내내 그치지 않는 눈물이 앞을 가리던 김연옥 할머니는 통곡의 울음과 함께 허공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평화대공원을 내려다보던 하늘도 함께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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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희생자 유족들이 김옥연 할머니의 사연을 듣던 중 곳곳에서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2019-04-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4.3 추념식장에서 모두를 통곡하게 만든 대학생 

※관련기사 

☞경향신문: “4.3때 바다에 던져진 부모님, 파도칠때마다 ‘연옥아’부르는 것 같아” 

☞뉴스제주: 제주4.3 71년,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 달래야 

☞파이낸셜뉴스: 제주4.3 추념식 봉행 “특별법 개정…4.3 완전 해결 첫 걸음“ 

☞아시아투데이: 제주4.3추념식 1만여명 참석한 가운데 거행

목, 2019/04/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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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스페셜 투어

『임정로드 4000km』 김종훈 기자와 함께 떠나는 《서울 임정로드 탐방》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공간: 현충원에 잠든 독립투사와 친일파를 찾아서”

서울 동작동에 자리 잡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신규식·박은식·홍진 등 임시정부 요인들 뿐만 아니라 신돌석·이회영·김상옥·우덕순 등 한국 독립운동사를 수놓은 영웅들이 잠든 신성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들 곁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현충원은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친일파 출신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등 무려 63명의 친일파들이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살아서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던 항일애국지사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죽어서 동거하는 어이 없는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 역사의 비극을 공부하는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투어는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함께 합니다.

◎ 일시: 2019년 4월 13일 (토) 오후 2시 ~ 4시 30분

◎ 장소: 국립서울현충원 ‘만남의 집'(지하철 4·9호선 동작역)

◎ 코스: 현충원 만남의집(집결장소)-장군1묘역-박정희대통령묘역-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장군2묘역-임시정부요인묘역-충열대-애국지사묘역

◎ 인원: 선착순 30명 (미취학 아동은 참여 불가·초등학생 자녀는 성인 가족 동반 하에 참여 가능)

◎ 참가비: 1만 원 (1인당)

◎ 준비물: 활동하기 편한 복장 + 각자 먹을 생수와 간식

◎ 신청기간: 3월 29일(금) ~ 4월 10일(수)

◎ 신청하기: https://www.onoffmix.com/event/173789

 

※ 『임정로드 4000km』 지참시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싸인을 해드립니다.

※ 구역마다 즉석 ‘퀴즈 이벤트’가 있습니다. 필로소픽에서 준비한 특별 굿즈를 상품으로 증정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투어에 함께 하시길 권합니다.

목, 2019/04/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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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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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목, 2019/04/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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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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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청년 200여명과 함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김 할아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했고,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받지 못해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했다.

이후 1945년 8월9일에 공장에서 작업 중에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을 당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같은해 10월20일께 동료들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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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 등은 이날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이날 함께 소송을 제기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일본은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용화 할아버지도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민변 측은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자행됐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어떤 주체도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고,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 후에도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 다수는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감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사라지고 있어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제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각 1억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고(故) 홍모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열었다.

홍씨 등의 대리인은 “대법원 판결도 나오고 해서 가급적 포괄적 화해를 하려고 한다”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일본에서 부정적 답변이 왔다”고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사실관계나 법리 문제에 주장할 것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겠다”며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조정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선고는 오는 6월27일 진행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2019-04-04> 뉴시스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들 추가 손배소…”日, 짐승 취급했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개·돼지 대우도 못 받고 살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 상대 추가 소송 제기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들 상대 또 소송 

☞뉴스1: 일제징용 피해자들 日 전범기업에 추가 소송…”짐승처럼 부려” 

☞SBS: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 기업들 상대 또 소송

목, 2019/04/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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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장님

박교수님

희빌  몬네가

지송

달달앤공부의일부판사들

구형과선고

그리고   그판사들의  그금사

그비노사들의  전옥서

 

금, 2019/04/0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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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검사는 나에게

징역 파월을 구형해따.

상해와전과를  가지고

그변호사는 국선….?

십팔마는이고  일당하고 치로비까지 요구하는 하물차 사장…

 

형동친  오시  우찌사노?

트키나 터기나

친구

ㄱㅗ마븐   ..그리고ㄱ…미아넌 칭구고향동창

 

시달린 실외기의 장ㄴ녀  칠월삼십일일

경찰의 이십구  삼십일

이사밀 시달린 마산 봉암동 옥주원룸의  그사람은

호솔  한다.

저녹서에서  이백  사시빌은  시마다.

금, 2019/04/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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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님

방국장님

!!

보고싶다.

형동상

진단삼주의

원인과과정은  엄는가?

병원과검사판사변호사

그리고 좨인들

좨와블?

죄와벌!

방국장님  기소장하고  공소장하고  머가  다르요?

ㅆㅣ씨티브이  증거신청

진단삼주에  대한

나의 별론  안닌  변론

 

금, 2019/04/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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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비야

비야

바기니

나무와숲

공기

군경은 대피만  할거신가?

 

 

금, 2019/04/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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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인가

인간과숲….애리

자연과인류….소매

산소와무산소들

나도지금시순간분터  냉장고세탁기 자꾸돌리야 대거따….?

금, 2019/04/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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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報(업보)

 

歿後成何物(몰후성하물)

祈求化犬豚(기구화견돈)

今生貪食甚(금생탐식심)

後世我當呑(후세아당탄)

 

업보

 

죽어 버린 이후에는 무엇이 될까

개나 돼지로 化하길 빌고 바라네

이승에서 탐내 먹는 일 심했으니

다음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時調로 改譯>

 

죽어 무엇이 될까 개돼지 되길 바라네

저들의 肉 탐식함, 이승에서 심했으니

다음에 올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歿後: 죽고 난 이후. 사후(死後). 신후(身後) *何物: 무슨 물건 *祈求: 원하는 바가

실현되도록 빌고 바람 *犬豚: 개돼지 *今生: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이승 *貪食: 음식

을 탐냄. 탐내어 먹음  *後世: 다음에 오는  세상. 또는  다음  세대 사람들.  내엽(來葉).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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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춘일)

 

川邊春柳綠(천변춘류록)

聚散稚魚遊(취산치어유)

野老孤徐步(야로고서보)

吟哦上古樓(음아상고루)

 

봄날에

 

냇물 주변의 봄철 버들 푸릇푸릇

모였다 또 흩어지며 노는 稚魚들

시골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時調로 改譯>

 

냇가 春柳 푸릇푸릇 노는 어린 물고기들

시골에 사는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저으기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春日: 봄철의 날. 또는 그날의 날씨 *川邊: 냇물의 주변 *春柳: 봄버들 *聚散: 모임

흩어짐 *稚魚: 알에서 얼마 되는 어린 물고기 *野老: 한적한 시골에 사는

늙은이  *徐步: 천천히  걷는  걸음  *吟哦: 음시(吟詩).  吟詠.  시가(詩歌) 따위를 읊음.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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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주최
대규모 상황극으로 100년 전 만세함성 되살려

800명 청소년·시민, 행사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
새로운 100년 위해 ‘친일 청산’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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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행주산성에서, 마을에서, 배 위에서…. 100년 전 행주나루터에서 울려 퍼졌던 고양땅 선조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가 주최한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지난달 30일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열렸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행진에 앞장섰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은 만세를 선창했다. 그러나 이날의 재현행사를 성대한 기억과 체험의 장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800여 명 시민과 청소년들이었다. 100년 전 기미년 3월, 민족대표와 지식인·학생들이 앞장서 시작한 독립만세의 외침이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와 마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을 연상케 했다.

고양시와 고양시3·1혁명100주년추진위원회, 민족얼지킴이,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행주어촌계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고양시 소재 10여 개 학교 5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겼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준 고양시장, 이규열 고양시의회 부의장과 김해련·김미수·정봉식 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이 참석했고, 이이화 역사학자와 김재득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을 비롯해 많은 지역인사들이 참석해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기림행사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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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시장은 “고양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밭두레보존회가 길놀이 농악으로 문을 열었고, 이어 24반무예 전수자들이 친일 청산을 주제로 한 호쾌한 전통무예 시연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무예인들의 칼과 활이 일제와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친일매국노를 응징하는 대목에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열린 개회식에서 이재준 시장은 “역사는 기억할 때만 살아난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서 선상만세를 불렀던 역사를 살아 흐르게 하자”고 말했다. 이어 “친일자본가를 비롯해 친일 세력들이 여전히 죄과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청소년들이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달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린 수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고양 행주나루터에서 열리는 오늘의 행사가 가장 멋지고 감동적”이라고 소감을 밝힌 후 “고양시를 넘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키워내자”고 제안했다. 임 소장은 여전히 남은 과제를 상기시키며 “친일파 청산!”을 기운차게 선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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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잔재 청산”을 힘차게 외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음으로 파주 수억고등학교 ‘민족얼지킴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세준군과 이아람양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33명의 청소년들이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들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백창환 지부장이 만세삼창을 선창하며 개회식이 마무리됐다.

한강 수로의 관문이자 개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던 행주지역은 3·1운동 당시 고양땅에서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이 수차례 반복해서 일어난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1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시위에서는 총칼을 앞세운 일경의 진압에 쫓긴 행주어민들과 주민들이 행주나루터에서 나룻배와 고기잡이배에 올라 타 전국 유일의 선상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고양에서 항일 운동이 치열하고 다양하게 펼쳐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날의 뜨거웠던 외침은 개막식 후 이어진 재현행사에서 생생하게 표현됐다. 상황극을 연출한 젊은 배우들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외침의 소문을 들은 고양의 민중들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자발적으로 통문을 돌리고, 시위 날짜를 약속해 대대적 만세운동을 일으킨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또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제의 잔인함과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항의 함성을 외친 선조들의 의기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농민과 학생들이 한 몸이 되는 모습은 고양은 물론,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펼쳐졌던 민중 중심 만세운동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여기에 행주나루에서만 발견된 선상만세 장면이 상세히 보태졌다.

재현행사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주최측은 전문배우들의 연기와 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커다란 말이 등장하고 총탄 소리에 만세를 부르던 학생들이 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손수 치마저고리, 학생교복 등을 차려입고 행사장을 찾은 청소년들이 재현행사의 적극적 주인공이 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만세를 따라 부르며 상황극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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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지부장은 “신임 지부장 취임 후부터 행주나루 선상만세 재현행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서 “100인 추진위원회와 33인 어린이 합창단, 남과 북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민족대표 33인 퍼포먼스, 그리고 출연진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 등이 올해 새로 선보인 순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후에 행사를 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4월 13일 친일·항일 음악회를 개최하고, 고양교육청과 협력해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 TF’도 구성할 예정이다. 백 지부장은 “학교 교가, 석물 등의 친일잔재 조사를 위해 회원들과 발로 뛸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 사진으로 보는 3.1혁명 행주나루터 선상만세 재현행사
 (사진제공=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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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선조들의 뜨거운 외침,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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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밭두레패의 길놀이 농악공연. 3.1운동과 같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진밭두레패는 농악대 깃발 끝에 태극기를 꽂고 공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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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와 독립운동기가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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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무예 수련자들이 한민족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을 응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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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얼지킴이’ 동아리 배세준군과 이아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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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동안 33명의 청소년들이 민족대표의 얼굴을 들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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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김미수.김해련 고양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 이규열 시의회부의장, 이재준 고양시장, 백창환 민문연 고양파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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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독립군가와 3ㆍ1절 노래를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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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대한독립기를 앞세운 만세행렬이 행주나루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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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총칼을 앞세워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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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나루터 빨래터 강물 위에 마련한 행사용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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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기자 [email protected]

<2019-04-02> 고양신문 

☞기사원문: 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관련기사

☞경기인터넷신문 :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경기&뉴스: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내외통신: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민족문제연구소:[화보] 선상만세시위 재현 (3.30)

※관련영상

금, 2019/04/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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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燕子(대연자)

 

鄕村多燕子(향촌다연자)

何去遂無踪(하거수무종)

忽見空檐下(홀견공첨하)

深憂半廢農(심우반폐농)

 

제비를 기다리며

 

시골 마을에 제비가 참 많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마침내 자취 없네

문득 텅 빈 처마를 바라다보면서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하게 되네.

 

<時調로 改譯>

 

시골에 참 많았는데 마침내 자취 없네

이제는 텅 빈 처마 문득 바라다보면서

오호라!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한다네.

 

*燕子: 제비 *鄕村: 시골 마을. 향리(鄕里) *無踪: 행방을 모름. 종적(蹤跡)이 없음

*檐下:  처마.  처마    *深憂:  깊이  근심함. 또는 그런 근심 *廢農: 농사를 그만둠. 

 

<2019.4.6, 이우식 지음>

토, 2019/04/0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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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次李塏先生善竹橋韻

 

擧事遂成(거사수성공)

誰能測意(수능측의중)

今人雖拙妄(금인수졸망)

不忘六臣(불망육신충)

 

삼가 李塏 선생의 ‘善竹橋’란 詩에 次韻하다

 

擧事가 마침내 보람 없게 됐으니

뉘 능히 그 意中 헤아리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지만

여섯 신하의 충성 잊지 못합니다.

 

<時調로 改譯>

 

擧事가 空이 되니 意中 뉘 알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다 하지만

死六臣 그 충성일랑 잊을 수 없습니다.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李塏: 조선 前期

  文臣(1417~1456).  字는  청보(淸甫)ㆍ백고(伯高).  號는  백옥헌(白玉軒).  直提學

지냈으며,  詩文이  청절(淸節)하고  글씨를    썼다.  死六臣의    사람으로, 世祖  2년

(1456)에  端宗의 復位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善竹橋: 경기도  開城  있는

돌다리.  高麗  말기의  충신  鄭夢周가 李芳遠이 보낸 趙英珪 등에게 철퇴를 맞고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今人: 지금 세상의  사람 *拙妄: 옹졸하고 孱妄함 *不忘: 잊지 않음.

 

<2019.4.7, 이우식 지음>

일, 2019/04/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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