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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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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익명 (미확인) | 월, 2017/11/20- 19:35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고 말했다.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흥구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말 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고조되는 긴장에 비해 해법은 아직도 묘연하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역사를 보라는 말이 있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펴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역사학자다. 작고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함께 197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대표적 원로 지성으로 꼽힌다. 유신정권 시절에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4년 동안 대학 강단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상지대 총장(2001~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005~2007년)을 지낸 뒤 강원도 양양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다. 지난 7월 말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던 문재인 대통령이 강 명예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팔순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과 강연 등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파하는 그를 양양에서 만났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북핵 문제가 제일 시급한데, 내가 보기에는 과거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핵 개발 중에도 북·미 관계가 좋을 때는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 시설을 파괴하도록 만들었다. 클린턴 정부 때 북·미 수교, 고이즈미 내각 때 북·일 수교를 놓고 협상할 때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 아니겠는가.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

현재 북한은 수교를 하더라도 핵 보유를 인정받겠다는 입장 아닌가?

북·미나 북·일 수교를 하게 되면 핵은 포기하라든지 하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미가 수교를 하지 않고 해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니까 결국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하며 북한 상륙작전까지 연습하니까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평화주의 견지에서 보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상대가 있으니까 협상에 달렸다. 세계가 평화를 지향해가고 있는 시대이므로 북·미 평화협정, 북·일 수교를 통한 평화 관계도 마땅히 이룰 수 있다.

광복 72주년에 재현된 건국절 논란을 어떻게 보는가?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 이런 문제인데, 광복절이란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기념일로서 이것은 민족주의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건국절 주장은 국가주의적 견해이다. 결국 건국절 논란은 어떤 역사인식을 가질 거냐 하는 문제다. 계속 분단국가주의적 틀 속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통일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역사의식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1945년 광복 당시 건국 개념은 무엇이었나?

1919년 상해에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이 가까워질수록 좌우 합작 정부로 변모했다. 독립운동 내부에 좌익도 있고 우익도 있었는데 광복 후 이들이 합쳐야 하니까 임시정부가 사실상 좌우 합작이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이 주석이고 김규식 선생이 부주석인데 거기에는 아나키스트, 유림 등 모든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광복이 되면 두 개의 국가가 생길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백범 김구로 말하자면 우익 중의 우익인데 좌우 합작 정부의 주석이었고 분단 이후에는 평양에 가지 않았나. 그것이 우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그걸 갈라놓은 게 이승만 정권이고. 오늘날 건국절 운운하는 것은 이승만의 분단주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 남은 일제 잔재 청산 과제는?

최근 <친일인명사전>까지 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광복된 지 72년이나 됐는데 친일파 연구가 학문적으로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로 자료가 전혀 모아지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 때 비로소 자료를 모았다. 그 자료를 가지고 친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화두다. 역사적으로 적폐가 누적된 근본 원인을 뭐라고 보나?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업적을 세웠다는 걸 내세워 독재 체제를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승만 정권의 제일 큰 오점이자 문제점은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민족사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1965년 잘못 맺은 한·일 협정이다. 협정 당시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합법적으로 지배했느냐, 침략적으로 강점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협정 당시 일본의 주장을 따르면 일제 36년이 합법적인 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합법적인 지배에 저항한 잘못된 행동이 된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합방조약을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이 된 그날부터 무효라고 인식하겠다 하고 아무런 대응 없이 넘어갔다. 역사적으로 큰 과오를 남긴 이 문제가 아직까지 제대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한·일 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를 놓고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다’라 주장했고,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성립 때까지는 유효했다’고 해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은 한·일 병탄조약을 어떻게 보았나?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이 청일전쟁 끝에 빼앗은 타이완은 중국에 돌아갔다. 러일전쟁에서 빼앗은 북위 50° 이남의 사할린 땅도 소련에 넘어갔다. 한·일 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연합군이 인정했다면 한반도를 일본의 지배에서 빼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걸 침략 행위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서 한반도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하지만 1965년 한·일 협정 때는 그게 전혀 반영이 안 됐다.

학계에서 그 문제가 전혀 제기되지 않았나?

한·일 합방 100주년이던 2010년 한·일 양국의 양심세력이 성명서를 냈다. ‘1910년에 체결된 한·일 합방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라는 공동성명이었다. 하지만 민간에서 해봐야 법적 효력이 있나. 한·일 양국 정부가 하도록 촉구하는 의미였는데 이후 별다른 노력이 없었다. 이제라도 역사학계의 지적을 정부가 귀담아 듣고 일본 정부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한·일 협정을 통한 청구권 자금이 우리 경제성장의 종잣돈이 되었다며 박정희 정권의 긍정적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들도 많은데?

박정희 정권의 업적으로 경제성장을 자꾸 말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복구 과정에서 경제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그렇고 독일도 그랬다. 심지어 북한도 19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나았지 않나. 경제성장이라는 게 어느 한 정권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을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

▲ 2005년 5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앞줄 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일본과는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교육 문제 등이 있는데 독도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라고 본다. 우리가 우리 영토로 점유하며 증명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들이 뭘 어떻게 원하느냐를 듣고 일본과 교섭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해치웠다. 그러니까 피해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합의할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없었다. 당사자들이 아직 상당수 살아 있다. 그분들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그래야 일본도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역사교육 문제는 일본의 지성들이 해결해야 한다. 아베 정권 이전까지 일본 역사학계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어제를 아는 것이 역사다. 그렇다고 어제를 알고 그냥 끝내서도 안 된다. 잘못된 과오는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과거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이 아직도 부족하다. 한·일 양국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교류하면 역사교육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이 우경화하면서 역사 왜곡이 심해지는데?

일본 정부가 교육을 통해 극우 사상을 넣으려 하는데 거기도 발전하는 세상이라 나는 그것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본다. 일본 보수 정권이 비교적 오래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래도 21세기인데 과거의 제국주의적 또는 냉전주의적 상황은 희석될 것이다.

역사학자가 보기에 현재 한반도 처지가 구한말과 비슷한가?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4대 강국 시각에서 보면 한반도가 분단 상태에 있는 게 안전하다. 한반도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대륙 세력권에 들어가면 한반도는 해양 세력, 특히 일본을 찌르는 칼이 된다. 반대로 한반도가 일본이나 미국 등 해양 세력권에 포함되면 해양 세력이 대륙을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가 된다. 과거 일제강점기가 대표적인 예 아닌가.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갈렸다. 이 상태가 4대 강국에게는 안전하다. 4대 강국끼리 충돌을 방지하는, 칼도 안 되고 다리도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통일은 어렵다는 얘긴가?

우리는 4대 강국에 의해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4대 강국이 포함된 6자 회담으로 통일 문제나 남북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걸 말해준다. 내가 보기엔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6·15 남북공동선언은 그런 역사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나?

통일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면 분단이 어떻게 고착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1차적으로 1945년 삼팔선이 생기면서 국토가 나뉘었다. 다음으로 1948년 남북한 단독 정권이 생기면서 국가가 분단되었다. 이어서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갈린 과정을 거쳤다.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남북한은 베트남처럼 사이공 인민주의도 안 되고 독일처럼 흡수통일도 안 된다. 결국은 평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연 시작을 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라고 본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민족이 화해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열렸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남북한 사이에 연방제냐, 1정부 2체제냐, 2정부 2체제냐 하는 게 다를 뿐 통일국가 체제 논의도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2정부 2체제로 가는 건 공통분모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역사학자로서 정부 승인을 받아 방북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기 일주일 전인 2016년 2월 역사 발굴 때문에 개성에 들어갔다. 고려 왕궁터를 비롯해 여러 고려 문화 유적이 남아 있어서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삼자고 했다. 그런데 개성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많이 달라졌더라. 5층짜리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남루했던 개성 사람들 옷차림도 달라졌다. 개성공단, 해주공단, 원산공단을 지어나가면 통일이 차츰 되어갈 것이다. 통일이란 게 남북한 사람들 의식이 같아지고 생활이 동화되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차츰 남북이 동화되어가면 통일비용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들어갈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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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방북 중인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박용길 장로, 강만길 교수(왼쪽부터) 등을 접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통일뉴스 제공

북한 사람들과 북핵 문제도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어느 북측 인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에 북한은 달러 한 푼 없이도 살 수 있었는데, 무너지고 나니 달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더라, 결국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북핵을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한 마지막 카드라고 하더라. “우리를 승인하라는 것이고 인정하라”는 주장이었다.

역사란 지그재그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는데?

역사는 정치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적으로는 인간 생활을 균등하게, 사회적으로는 인간을 평등하게,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자유롭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게 직선으로만 가지 않는다. 그랬다면 인류의 역사가 여기 머물러 있겠나? 훨씬 더 많이 앞으로 갔을 것이다. 역사는 중간에 가다가 반작용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고 나선형으로 올라간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침략과 분단 등을 겪었지만 우리는 왕조시대를 극복하고 넘어섰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나 중국의 신해혁명 같은 것은 없었지만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해갔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분단도 극복하고 통일도 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자신감을 갖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할 말이 있다면?

내치야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발전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북 문제가 걱정이다. 미국 트럼프 정권도 대북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아서 지난 10년간 닫힌 남북 관계를 푸는 게 쉽지 않다. 북·미 관계가 나빠지면서 야당과 수구 보수 세력이 정부를 비판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남북 관계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정부 내 대북 정책을 맡은 사람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얼마나 빨리 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보다는 방향이 맞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식만 있다면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설득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민간단체가 남북 간 교류를 더 넓혀 나가야 한다.

정희상 기자 [email protected]

<2017-9-1> 시사in

☞기사원문: 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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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모 방송에서 사회  분야별로 친일파 후손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는데, 다른 건 기억 안나고 국립인 서울대학교  교수진에

친일파 후손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보았습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틀릴 수 있음)

그래서, 친일파 및 그 후손들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1)친일파 및 후손들이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지도와

2)사회 분야별 친일 후손들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지도(?)를

연구/작성해 주실 것을 건의드립니다~~~

(혹시, 이와 유사한 자료가 이미 있다면 죄송합니다~)

목, 2019/03/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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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一家之末運

 

輝煌三代運(휘황삼대운)

不遠遇狂風(불원우광풍)

百姓皆蜂起(백성개봉기)

權凶遂有終(권흉수유종)

 

김일성 一家의 막다른 運數

 

눈부시게 번쩍이는 三代의 運數

머지않아 미친 바람을 만나리니

백성이 모두 蜂群처럼 일어나서

權凶에게 마침내 끝이 있으리라.

 

<時調로 改譯>

 

휘황한 三代運數 곧 狂風을 만나리니

백성들이 모두 다 蜂群처럼 일어나서

마침내 저 權凶에게 종말이 있으리라.

 

*一家: 한집에서 사는 가족. 한집안 *末運: 기울어지거나 막다른 운수(運數) *輝煌:

휘황찬란(輝煌燦爛).  광채가  나서  눈부시게  번쩍임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狂風: 미친 듯 사납게 몰아치는 거센 바람 *蜂起: 벌 떼처럼 떼 지어 세

일어남 *權凶: 권력을 함부로 두르는 흉악한 *有終: 시작한 일에 끝이 있음.

 

<2019.3.15, 이우식 지음>

금, 2019/03/1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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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임정 100주년 특집]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2편 ‘국호를 정하다, 대한민국’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3월 14일 (목요일)
■ 대담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이기호 성우

[임정 100주년 특집] 2편 “국호를 정한 사람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준비한 특집 코너,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오늘 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해볼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허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 우리 헌법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헌법의 기초가 된 것이 1919년 4월 11일 독립운동 대표자 27명이 함께 만든 임시헌장인데요. 3.1운동 이후 상해에 모인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을까. 임시헌장에서 민주 공화제 선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런 이야기를 오늘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 큰 흐름을 쉽게 짚어주실 분.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지난해 광복절 특집 때 뵙고, 우리 방송에 오랜만에 초대했는데요. 그때 방 실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눈 게 반민특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반민특위가 왜 실패했는지, 또 반민특위 좌초가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데 오늘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방학진> 글쎄요, 무덤에 있는 친일파들이 기뻐서 무덤 밖으로 나올 그런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거꾸로 독립운동가들은 지금 통곡하고 계시겠죠.

◇ 이동형> 반민특위의 와해, 실패, 이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다 입증된 거고, 무엇 때문에 와해됐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우리는 민족반역자들을 처단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많이들 통탄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 방학진> 실은 올해가 반민특위가 해체된 지 70년입니다. 49년에 해체됐기 때문에. 반민특위를 만든 곳은 제헌 국회였거든요. 쉽게 말하면, 지금 나경원 의원의 최고참 선배들이 만든 반민특위를 나경원 원내대표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죠.

◇ 이동형> 모든 국민들의 굉장히 큰 전폭적인 지지를 안고 특별법으로 탄생한 것이 반민특위인데, 그것을 지금 부정하는 이야기를 해서 논란이 앞으로 상당히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얘기로 다시 들어가 봅시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우리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임시정부의 성격과 의미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이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3.1 운동 직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를 포함해서 여러 정부가 곳곳에 흩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결국은 조선반도에서 독립운동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에 망명해서 독립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데요. 여러 정부들이 상하이로, 또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인 배경이 있었을까요?

◆ 방학진> 그 당시 상해에는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교민들 자체가 몇 명이 되지 않는 도시였습니다. 우리 조선인들이. 그렇지만 상해를 굳이 택한 이유는 일단 상해가 국제도시라는 측면이 하나 있고요. 그다음에 특히 여러 나라의 조계가 있는데, 프랑스 조계가, 특히 프랑스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대해서 우호적인 측면이었다는 것도 있었고, 그런데 그 당시에 노령이라든지, 만주 쪽에도 독립운동 단체가 있어서 그쪽으로 기지를 옮기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도 있지만,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바로 넘어서면 일본 최강의 부대들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지리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여러 가지 외교적 노선, 안정적인 논의, 이런 차원에서 상해가 선택된 것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거기서 다 모여서 독립운동가들이 앞으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 그런 것을 논의한 거죠? 임시의정원.

◆ 방학진> 그렇습니다. 국회죠. 4월 10일이 되면, 임시의정원 100주년이라서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임시의정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아주 잘 준비하고 있더라고요.

◇ 이동형> 여기서 국호와 연호, 또 국채, 임시헌장 채택, 여러 가지가 이루어졌는데, 1919년 4월 10일 밤 10시에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김 신부로 있는 한 주택에 국내외 각지에 있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이들은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는데, 그날의 상황을 재현해봤습니다.

◆ 성우>“지난달 3월 1일 국내에서 독립선언을 통해 우리는 독립국임을 천명하였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독립국을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선 이 회의의 명칭을 임시의정원이라고 칭하면 좋겠습니다.” “조소앙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제청합니다.” “의장을 선출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식 의장 1인, 부의장 1인, 서기 2인을 선거하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할 것을 개의합니다.”

◇ 이동형> 조소앙, 신석우 선생의 목소리였는데, 저희가 재현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의장은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 서기에 이광수, 백남칠이 당선. 임시의정원을 설립하고, 밤 12시가 넘어서 4월 11일이 됐습니다. 회의는 계속 이어집니다.

◆ 성우> “지금부터 제1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의하도록 합니다.” “의제는 먼저 국호를 정하고, 정부의 관제, 공무원 선출, 헌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정할 것을 동의합니다.” “그러면 제가 국호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겠습니다. 대한 제국의 ‘대한’과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라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 할 것을 제안합니다.” “지난 경술년 대한 제국의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포기했습니다. 군주가 포기한 주권을 국민이 이어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대한 제국이 사용하던 대한은 그대로 사용하되, 국민이 주인이 된 나라라는 의미를 담아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할 것을 찬성합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결정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이동형>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결정된 과정을 들으셨는데요. 여기서도 조소앙, 신석우 선생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두 분에 대해서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방학진> 네, 지금 국호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가 보통 대한 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바뀌었다, 이게 순탄한 과정을 통해서 바뀐 것으로 알지만, 이 과정에서 상당히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 ‘대한’이라는 말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있었거든요. 대표적인 분이 몽양 여운형 선생입니다. 쉽게 말하면, 대한 제국은 고종 황제가 만든 이름인데, 우리가 고종 황제, 반봉건을 표방하면서 민주공화국을 만든다는 마당에 황제가 만든 이름을 쓸 수 있겠느냐, 이런 의미로 대한을 거부하셨는데요. 그런데 이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셨냐면, 신석우나 이런 분은 앞의 대한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앞의 대한이라고 하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제국의 나라에서 민국의 나라, 민의 나라로 바뀌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표결을 통해서 대한민국으로 낙찰되었는데요. 말씀하신 신석우 선생님은 재밌는 이력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일보의 두 번째 사장님이십니다. 아시지만 조선일보는 최초의 대정 실업 친목회라고 하는 친일단체가 만들었고, 20년대에 신석우가 들어오면서 조선일보가 대단히 사회주의 신문이라고 할 정도의 좋은 논조를 가지고 있었다가 33년도까지 하시는데, 33년도에 조선일보 사장이 방응모가 되면서 조선일보는 우리가 아는 친일 신문으로 일관되게 가는데요. 그런 분이 신석우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고요.

◇ 이동형> 방응모 체제 전에.

◆ 방학진> 여기도 조소앙 선생님을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3균주의라고,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이라고 얘기하는 건데요. 우리가 100년 전에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 단순히 일본에서의 독립이 아니라 이런 정치, 경제, 교육에서의 균등한 나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나라를 만든 이론적 기초를 만드신 분이 조소앙 선생이 되겠습니다.

◇ 이동형> 방 실장이 잠깐 언급했는데, 국호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여운형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고 갑시다.

◆ 성우>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로서 그 대한 때문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 합병되어 버린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일본에 빼앗긴 나라 이름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 이동형> 들으신 대로 여운형 선생은 대한이라는 국호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던 것 같네요. 여운형 선생님은 굉장한 웅변 능력이 있거든요. 도쿄 한복판 일본 정치인 앞에서도 압도하는 웅변을 했던 분인데, 여기서는 논쟁에 졌네요?

◆ 방학진> 소수파였습니다. 소수파였던 분이 얼마 안 되는데, 예를 들어서 몽양을 비롯해 가지고 아마 그런 개인적인 입장 차였던 것 같아요. 아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적인 경험들, 이런 속에서 대한민국을 택한 분도 계시고, 그다음에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자신의 이념적인 지향, 출신 지역, 이런 것을 통해서 그러한 것들이 있었는데요. 여운형 선생님은 소수파였죠.

◇ 이동형> 이념으로 싸운 것은 이해가 가는데, 출신 지역, 혹은 출신 성분 가지고도 싸웠다면서요?

◆ 방학진> 지역은 아무래도 북쪽에 계신 분들은 고려라고 하는 것, 고구려, 이쪽을 선호하셨던 거죠. 사회주의 이념을 조금 더 지향하셨던 분들은 조선이라고 하셨고요.

◇ 이동형> 국호 말고 또 다른 논쟁이 있었습니까?

◆ 방학진> 3대 논쟁이 있을 수 있는데요. 첫 번째가 국호 논쟁이고, 그다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임시정부라는 형태로 독립 투쟁을 할 것이냐, 아니면 정당을 만들어서 독립 투쟁할 것이냐, 이게 두 번째 논쟁점이었고요. 세 번째 논쟁은 구 황실, 전주 이씨. 구 황실을 대우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게 3대 논쟁이 되겠습니다.

◇ 이동형> 황실 문제도 있었군요. 회의가 그렇게 계속 이어지면서 정부의 관제를 결정하고,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선출이 이어지는데, 어떤 분들이 선출됐죠?

◆ 방학진> 어떻게 보면 이때는 선출됐다기보다 아직은 4월에 임시정부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실제 9월이나 12월에 가서나 정확한 꼴을 갖추게 되고요. 이때는 서로서로 조각하는 수준입니다. 어떤 자리에는 누구를 앉히자, 어떤 자리에 누구를 모시자,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요.

◇ 이동형> 투표나 이런 것은 없었다고 봐야겠네요?

◆ 방학진> 네, 어떻게 보면 투표라기보다 서로의 동의, 제청, 내가 너를 추천하고, 네가 나를 추천하고, 이런 과정이었던 거죠. 그전에 앞서서 국호 논쟁 이외에 정당이냐, 정부냐의 논쟁을 설명드리면, 여운형 선생과 이회영, 신채호, 이런 분들은 정부라는 것보다는 당을 만들자. 러시아 혁명이라든지, 이런 것을 봤을 때 볼셰비키 정당이 러시아 혁명을 이끌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부를 만들면, 서로 자리다툼을 하게 된다, 누가 장관, 누가 차관, 그다음에 지역을 따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자리다툼을 할 수 없게끔 정당을 만들자. 또는 이회영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독립운동 투쟁본부를 만들자, 총 본부를 만들자, 이런 식의 논쟁이 있었고요. 그다음에 격론이 있었던 것이 황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나라가 처음에 구 황실을 우대하는 것으로 첫 번째 헌법에 들어가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여운형 선생도 우리가 황제를 부정하면서 혁명을 하고 있는 마당에 황실을 우대하면 될 것이냐, 라고 하는 것이 있었지만, 다수파들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황실에 대해서 극복했지만, 아직 많은 백성들이 황실에 대해서 애환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략·전술 차원에서 아직 황실은 우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황실 우대 조항을 넣게 된 것입니다.

◇ 이동형> 그리고 국무총리하고, 국무위원에는 어떤 분들이 선출됐죠?

◆ 방학진> 그 당시 국무총리가 임시정부에서는 이승만이 되었는데요. 그다음에 국무총리는 나중에 12월에 이동녕 선생님이 오시는데, 바로 이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그 당시 임시정부에서는 최고위의 자리였지만, 이 이승만 씨가 자기가 국무총리하는 것을 거부했죠. 자기는 대통령이지, 나는 국무총리가 최고인 자리에는 안 간다라고 몇 달 몽니를 부렸지만, 그래도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 노령에 있던 정부, 그다음에 서울에서 만들어진 한성 정부를 어쨌거나 통합해서 가을에는 출범시켜야 한다고 왔다 갔다 하시면서 고생하신 분이 도산 안창호 선생님입니다.

◇ 이동형> 내무총장. 외무총장에 김규식. 그런데 이승만은 왜 그 ‘프레지던트’에 집착했을까요?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대통령 자리에 집착했죠?

◆방학진> 그것에 대해서 본인이 쓴 글은 없지만, 어쨌든 본인은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의 프레지던트다, 라고 누가 인정은 안 했지만, 수시로 명함을 만들어서 뿌리고 다녔다는. 정말 대통령에 집착했던. 아마도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을 본인이 많이 선호했던 것 같습니다.

◇ 이동형> 국무총리 이승만 선출에 대해서 반발은 없었습니까?

◆ 방학진> 가장 많이 반발한 것은 우리 단재 신채호 선생이죠. 왜냐하면, 3.1운동 전후에 이승만이 미국 조야에다가 뭐라고 청원서를 냈냐면, 그 당시 국제연맹이죠. 국제연맹이 우리나라를 통치해주십시오. 위임통치 청원서를 낸 것이 알려지죠. 어떻게 독립을 하겠다는 임시정부 사람들이 위임통치를 주장하는 사람을 최고 지도자로 모실 수 있는가. 그러면서 신채호 선생이 뭐라고 주장하냐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를 판 사람이다. 내가 이승만을 모시는 임시정부에는 절대로 몸담을 수 없다고 해서 박차고 나가셨죠.

◇ 이동형>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았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았다. 신채호 선생의 이야기였고요. 결국은 이승만은 떠나죠, 상하이를?

◆ 방학진> 떠나기도 하거니와 나중에 25년이 되면, 탄핵이 되죠. 임시정부에 의해서.

◇ 이동형> 이승만이 떠난 후 상해 임시정부는 분열하는 모습을 조금 보였는데요. 의정원은 탄핵 발의에 앞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에 전보를 보내 수습을 요청합니다. 당시 의정원이 이승만에게 보낸 전보문과 이승만의 답신을 들어봅시다.

◆ 성우>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정부의 형세가 급하니 유지 방침을 보내시고 난국을 정돈하여 주십시오.” “노백린을 국무총리로 임명하니 내각을 다시 조직하고 나의 결재를 받은 후에 실시하시오.”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노백린은 국무총리직에 취임이 불능하고 정부에 각원이 없으니 무정부상태이오. 속히 책임을 이행하시되 5일 안으로 회답하시오.” “당신들이 소란을 일으키면 이곳의 재정수합하는 일이 방해되어서 재정곤란을 당할 터이니 속히 정돈하시오.” “임시 대통령 이승만 각하. 시국이 지극히 어려운데 임시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이 정부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지 못하므로 임시 대통령 불신임안이 제출되었으니 의향을 말씀하시오.” “정식 후임자가 나오기 전에는 사면하지 못하겠소.”

◇ 이동형> 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탄핵까지 당하는데, 그 훗날 광복 후에 이승만은 일본에 의해서 맥아더를 만나고,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미군과 함께 굉장히 큰 환영을 받고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 이후에 백범 선생 같은 경우에, 그러니까 상해 임시정부, 그때는 상해가 아니었습니다만, 중국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는 1차, 2차, 이렇게 나눠서 들어왔는데, 홀대받으면서 들어왔단 말이죠.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라고 볼 수 있겠죠?

◆ 방학진> 그게 한국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이 가장 먼저 입국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은 이승만을 먼저 한국에 들여보낸 것. 그리고 임시정부를 뒤늦게 들여보낸 것. 이것이 미군정의 가장 큰 포석이었고, 지금도 그 포석 속에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 이동형> 오늘 우리가 특집 방송, 두 번째 시간으로 대한민국 국호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 절차를 이야기해드렸는데요. 올해가 3.1운동, 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후손들이 이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한다고 보는지,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방학진> 네, 3.1운동은 그냥 만세가 아니라 혁명인 것이죠. 프랑스에서는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림으로써 과거 봉건과 단절했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스스로를 혁명함으로써 새로운 나라를 꿈꿨다. 그래서 전주 이 씨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도산 선생의 말에 의하면 2,000만 모두가 황제가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기틀을 선언한 곳이 바로 3.1운동이었습니다. 그러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동형> 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제2편, 국호를 정하다, 대한민국.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과 함께했는데요.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참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만,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었잖아요?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분들 아니었어요?

◆ 방학진>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의 아주 좋으신, 마음씨 좋은, 그다음에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는 그런 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이동형> 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고요. 저희는 다음 주에 3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방학진> 네, 고맙습니다.

<2019-03-14> YTN 

☞기사원문: [임정 100주년 특집] 2편 “국호를 정한 사람들”

금, 2019/03/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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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욕스럽고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 여정은 길었고 쉽지 않았다. 검찰은 왜?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하여 국내 관련 서적과 논문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던 중 일본 국회홈페이지를 뒤져 해답을 얻었다.  그중 일본 제국과 일본 형사소송법들(치죄법,  명치 형사소송법, 대정 형사소송법, 소화 형사소송법) 검찰권력 관련 법률조항들 분석을 통하여 얻은 해답 하나를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share&v=cAUkIaSqizA

토, 2019/03/16-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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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면 미개한 조선은 400여년전부터 근대화를 이루고 태평성대를 이룰수 있었을 것을…

위대한 일본께서 그때 조선을 먹지 못하는 바람에 또 300여년 동안 무능한 전주 이가네의 병신가튼 통치아래 미개한 세계 최빈곤 거지로 살다가 1905년 을사조약 그리고 1910년 일한합방으로 겨우겨우 위대한 대일본의 통치 아래 근대화의 길로 들어 서게 되었구나.

미개한 조선을 위대한 대일본의 영도 아래 근대화로 이끌어 주신

 

이완용 공작 각하 반자이!!!!!!!!!!!

금, 2019/03/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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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訓(성훈)

 

聖訓盈邦國(성훈영방국)

其書不計量(기서불계량)

易言難實踐(이언난실천)

今古孰多忙(금고숙다망)

 

聖人의 교훈

 

聖人의 교훈일랑 나라에 한가득

그 책의 수량, 헤아릴 수 없구나

말이야 쉽지만 실천은 어렵거늘

예나 지금이나 누가 다망하신가.

 

<時調로 改譯>

 

聖訓이 나라 한가득 헤아릴 수 없구나

말이야 썩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거늘

古今을 가릴 것 없이 누가 다망하신가.

 

*聖訓: 성인(聖人)이나  임금의  교훈 *邦國: 나라.  국가(國家)  *計量: 수량(數量)을

헤아림 *今古: 고금(古今).  지금과  옛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 *多忙:  대단히 바쁨.

 

<2019.3.16, 이우식 지음>

토, 2019/03/16-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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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9/03/16- 15:56
25
0

北美會談展望

 

誰欺誰被譎(수기수피휼)

善惡不分明(선악불분명)

兕虎焉相信(시호언상신)

難期結友情(난기결우정)

 

북한과 미국의 회담 전망

 

누가 속이고 누가 속임을 당하나

선하고 또 악함 분명하지 않다네

외뿔소와 범이 어찌 서로 믿으랴

우정 맺음을 기약하기 쉽지 않다.

 

<時調로 改譯>

 

뉘 속이고 뉘 당하나 善惡 불분명하네

외뿔소와 범 같은데 어찌 서로 믿으랴

오호라! 우정 맺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善惡: 착한 것과 악한 *兕虎: 외뿔소와 범. 轉하여 사나운 *외뿔소: 옛날 중국

산야(山野)에 살고 있었다는 외뿔 들소를 닮은 짐승. 무소의 일종 *相信: 서로 믿음.

 

<2019.3.17, 이우식 지음>

일, 2019/03/17-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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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世態(세태)

 

凶人論正義(흉인론정의)

孺子說三綱(유자설삼강)

野犬麒麟化(야견기린화)

村鷄作鳳凰(촌계작봉황)

 

세상 돌아가는 꼴

 

凶人이 정의를 의논하고

어린애는 三綱을 說하네

들개는 麒麟으로 化하고

촌닭은 봉황이 되었다네.

 

<時調로 改譯>

 

凶人이 정의 논하고 어린애는 說三綱

들판을 떠돌던 개는 麒麟으로 化하고

村에서 노닐던 닭은 봉황이 되었다네.

 

*世態: 사람들의 일상생활, 풍습 따위에서 보이는 세상의 상태나 형편. 세상(世相) *凶人: 흉악한 사람 *孺子: 어린아이 *三綱: 儒敎의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가지 綱領.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로서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을  이름  *野犬: 주인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개. 들개 *麒麟: 聖人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 속의 짐승. 몸은 사슴과 같고 꼬리는 같고,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五色이라고 한다*村鷄: 시골의 닭. 촌닭 *鳳凰: 예로부터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사령(四靈) 또는 사서(四瑞)로 불림. 수컷은 ‘鳳’, 암컷은 ‘凰’이라고 하는데,  성천자(聖天子) 下降의 징조로 나타난다고 한다.  前半身은 기린, 後半身은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등은 거북, 턱은 제비, 부리는 닭을 닮았다고 함. 깃털에는 오색 무늬가 있고 소리는 五音에 맞고 우렁차며, 오동나무에 깃들이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영천(靈泉)의 물을 마시며 산다고 함.

 

<2019.3.17, 이우식 지음>

일, 2019/03/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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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代學人問金鶴峯誠一

 

江山成血海(강산성혈해)

誤報罪衝天(오보죄충천)

日本何觀察(일본하관찰)

宜當斬首懸(의당참수현)

 

後代의 學人이 鶴峯 김성일에게 묻는다

 

강과 산이 피바다를 이루었으니

誤報의 죄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일본에서 그 무엇을 살펴봤는지

목 베어 매달았어야 마땅하도다.

 

<時調로 改譯>

 

강산이 血海됐으니 誤報罪 충천이라

일본에 건너가서 무엇을 살펴봤는지

斬首해 매달았어야 마땅한 일이도다.

 

*金誠一: 朝鮮 중기의 文臣이며 學者(1538~1593).  字는  사순(士純).  號는  학봉(鶴峯).

宣祖 1년(1568)에 增廣 문과에 급제하고, 1590년에 통신 副使로서 일본에 가서 실정

  살핀  후, 침략의  우려가  없다고  보고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觀察使로

임명되어 義兵 규합, 군량미 확보 등에 힘썼다. 저서에 ≪鶴峯集≫, ≪상례고증(喪禮

考證)≫ 따위가 있다 *血海: 피바다. 사방에 온통 피가  낭자하게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誤報: 어떤  사건이나 소식을 그릇되게 전하여 알려 줌. 그 사건이나 소식

*衝天:  하늘을  찌를 듯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름  *斬首: 목을  벰. 괵수(馘首). 斬頭.

 

<2019.3.17, 이우식 지음>

일, 2019/03/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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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鶴峯誠一功罪

 

或論功蓋罪(혹론공개죄)

失報遂難忘(실보수난망)

正使衆稱頌(정사중칭송)

君言忽斷腸(군언홀단장)

 

鶴峯 김성일의 功과 罪

 

혹은 功이 죄를 덮는다고 논하나

그릇된 報告 마침내 잊기 어렵소

正使 황윤길은 많은 이 칭송하나

그대의 말씀엔 문득 창자 끊기오.

 

<時調로 改譯>

 

功이 죄 덮는다 하나 失報 잊기 어렵소

正使였던 황윤길은 뭇사람이 칭송하나

김성일 그대의 말씀, 문득 창자 끊기오.

 

*金誠一: 朝鮮 중기의 文臣이며 學者(1538~1593). 字는 사순(士純). 號는 학봉(鶴峯).

宣祖 1년(1568)에 增廣文科에 급제하고 1590년에 通信副使로서 일본에 가서 實情

살핀  후,  침략 우려가 없다고 보고함.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觀察使로 임명

되어 義兵 규합, 軍糧米 확보 등에 힘씀. 著書에 ‘鶴峯集’, ‘상례고증(喪禮考證)’  따위

가 있다 *功罪: 공로와 罪過 *難忘: 잊기 어려움 *正使: 使臣 가운데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  *稱頌: 칭찬하여 일컬음. 또는 그런 말 *斷腸: 몹시 슬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

 

<2019.3.18, 이우식 지음>

월, 2019/03/1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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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人叱仁祖

 

因誰成血海(인수성혈해)

半國半非邦(반국반비방)

百姓如魚肉(백성여어육)

低頭遂乞降(저두수걸항)

 

훗사람이 仁祖를 꾸짖다

 

그 누구 때문에 피바다가 되었는가

반쯤 나라이되 반쯤 나라 아니었네

朝鮮 백성 마치 魚肉과도 같았느니

머리 숙여 마침내 항복을 빌었구나.

 

<時調로 改譯>

 

뉘 땜에 血海 됐는가 반쯤 나라 아니었네

가련한 저 朝鮮 백성 마치 魚肉 같았느니

오호라! 결국 머리 숙여 항복을 빌었구나.

 

*後人: 훗사람 *仁祖: 朝鮮의 제16대 王(1595~1649). 이름은 종(倧). 字는 화백(和伯).

號는 송창(松窓). 仁祖反正에 성공하여, 光海君을 몰아내고 王位에 올랐다. 병자호란

(丙子胡亂), 정묘호란(丁卯胡亂)을  겪었으며  새로운 軍營을 설치하고  大同法을 실시

했다. 在位 기간은 1623~1649년이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三田渡)에서 중국 淸나라

太宗에게 항복했다 *血海: 피바다 *魚肉: 생선의 고기. 생선과 짐승의 고기를 아울러

이름.  짓밟고  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름  *低頭: 머리를  낮게  숙임.

 

<2019.3.18, 이우식 지음>

월, 2019/03/1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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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적폐의 원인과 원천을 파해친 “한국 검찰권력의 뿌리와 원동력”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검찰은 왜?”라는 스스로의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하여 상당 세월 국내 서적, 논문 등을 뒤졌으나 단서발견에 희미하게나마 도움이 된 몇몇 문헌을 제외하고 천편일률적, 짜집기, 추상적이거나 심지어 진실을 감추거나 호도하여 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히는 바가 있어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다가 그곳에서 답을 얻은 것입니다. 일어, 영어판으로도 제작하여 곧 올릴 예정이며, 국내는 물론 외국의 관심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알리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래 유튜브 주소에 접속하시면 영상물이 나옵니다.

https://m.youtube.com/watch?v=_-a2ZxKInpo&feature=youtu.be

월, 2019/03/1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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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철학] 치명적인 선택, 운명적인 선택을 바라보는 문학과 철학의 시선들

강사 소서영
개강 2019년 4월 1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30 (6강, 120,000원)

강좌취지
현대 철학이 어떤 의미에서 새롭고, 어떻게 우리 현재와 이어져 있는지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 곤란한 질문의 실마리를 이 강의는 철학이 문학과 맺었던 밀접하고 특별한 관계에서 찾아보려 한다.
문학은 꾸준히 한 개인이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선택이 때로 어떤 파국을 불러오는지 그려왔다. 이 강의에서 함께 읽고자 하는 『악령』, 『안티고네』, 『필경사 바틀비』, 『선고』 등은 그런 문학작품의 예다. 문학이 이렇게 치명적인 선택의 상황을 자주 다루는 것은 그것이 삶의 근원적인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 역시 언제나 윤리적 딜레마를 고민한다. 인간이 어떤 이유로 어떤 선택을 하고, 해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철학의 문제이고, 철학은 오랫동안 인간이 선택 상황에서 모순을 해소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유의 틀과 선택의 규준을 제시하려 노력해왔다.
20세기 철학이 이전과 다른 점은 바로 이런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선택에 들어있는 어떤 모순이나 불일치는 어쩌면 분석을 통해 파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철학이 오랫동안 확실하고 근본적이라 간주해 온 개념들보다 앞서는 것일 수 있다는 인식. 우리가 선택을 통해 만들어내려는 새로움과 변화는 구체적인 각각의 고유한 선택이 환원되지 않는 차이가 될 때 생겨난다. 그러므로 20세기 철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문학에 가까워진다.
이 강의는 하나의 문학 텍스트와 그 문학 텍스트를 둘러싼 철학적 담론을 살펴보며 20세기 철학의 변화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낯설고 불투명한 철학의 용어들을 문학 텍스트를 통해 사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1강 소개, 문학과 철학 : 장 폴 사르트르 ― 4/1 월
2강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모리스 블랑쇼 ― 4/8 월
3강 무의미한 선택 :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조르쥬 아감벤 ― 4/15 월
4강 선택은 우연/필연인가 :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헤겔에서 버틀러까지 ― 4/22 월
5강 불가능한 선택 : 프란츠 카프카의 『선고』, 질 들뢰즈 ― 4/29 월
6강 마무리, 문학과 철학 : 자크 데리다 ― 5/13 월

참고문헌
장 폴 사르트르 『구토』, 『문학이란 무엇인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악령』, 열린책들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그린비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조르쥬 아감벤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새물결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동문선
프란츠 카프카 『선고』
질 들뢰즈 『카프카 –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동문선
자크 데리다 『문학의 행위』, 문학과 지성사

강사소개
홍대 미학과와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라이프니츠를 공부하고 현재 번역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철학] 예술로서의 삶 : 저항과 긍정, 창조의 삶

강사 윤동민
개강 2019년 4월 4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이 강의에서 우리는 재커리 심슨의 『예술로서의 삶』을 기반으로 삼아 주로 19-20세기 유럽대륙철학 전통에서 논의된 예술적인 삶에 대해 탐구한다. 철학은 언제나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했다. 특별히, 본서에 논의된 학자들은 그러한 좋은 삶이 예술적이고 미학적으로 자기를 구성해내는 것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에 본 강의에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한 계기로서의 예술로서의 삶이 무엇인지 각 철학자들의 사상을 추적하며 논의한다. 또한 본 강의는 19-20세기 수놓은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다루기 때문에 현대유럽철학에 입문하거나 그 흐름을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크게 유익할 것이다.

1강 예술로서의 삶과 댄디즘 ― 4/4 목
2강 니체의 이상적 유형들 ― 4/11 목
3강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부정적 사유와 유토피아 ― 4/18 목
4강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예술적 개인 ― 4/25 목
5강 마르틴 하이데거와 시적 사유 ― 5/2 목
6강 메를로-퐁티와 장-뤽 마리옹의 존재사유 ― 5/9 목
7강 알베르 카뮈와 삶-예술가 ― 5/16 목
8강 푸코의 실존의 미학 ― 5/23 목

참고문헌
주교재: 재커리 심슨, 『예술로서의 삶』, 김동규·윤동민 역, 서울: 갈무리, 2016
(수강생들은 첫 강의부터 교재를 지참해야 합니다.)

강사소개
총신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철학과에서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주체의 문제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해군사관학교와 여러 중·고등학교 시민 아카데미 등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강의하며,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예술로서의 삶』(공역)이 있다.

[철학/글쓰기] 리라이팅 『에티카』 ㅡ 나만의 주석 쓰기 : 시즌 1 <신과 인간에 대하여>

강사 박영대
개강 2019년 4월 4일부터 매주 목요일 저녁 7:30 (8강, 160,000원)

강좌취지
이번 강의에서는 『에티카(윤리학)』를 다시 쓰는 공부, 또는 실험을 시도하려 합니다.
1. 글쓰기가 중심입니다. 읽은 내용을 단순히 정리하고 반복하는 글쓰기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글쓰기는, 주어진 ‘상식’에 맞서서 새로운 앎을 스스로 발견하는 글쓰기-실험 입니다. 『에티카』를 도구로 삼아, 기존의 나, 흔한 상식, 우리 시대를 넘어 써봅시다! 글쓰기를 통해 삶의 변화와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이 우리 공부의 목적입니다.
2. 스피노자와 『에티카』의 힘을 빌립니다. 모든 철학자들처럼, 스피노자 또한 자기 삶의 변화와 자유를 『에티카』로 표현했습니다. 때문에 『에티카』 속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힘이 들어있습니다. 이 힘을 빌려 글을 씁니다. 물론 그 힘을 끄집어내려면, 매우! 꼼꼼히 읽어야만 합니다. 이 꼼꼼한 읽기가 우리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 『에티카』는 크게 본문과 주석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우리는 <『에티카』에서 나만의 주석달기>를 할 것입니다.
3. 매주 쓰고 함께 읽습니다. 매주 꼼꼼히 읽고, 자신의 『에티카』 주석을 씁니다. 수업시간에서는 각자 쓴 주석들을 함께 읽으며 토론합니다. 토론 후에 저의 강의로 수업을 마무리 합니다. 각자 써온 글은 제가 첨삭 및 코멘트를 할 예정입니다. (첨삭 방법과 시간은 사람 수에 따라 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업의 마지막 시간에는 지금껏 쓴 주석들을 토대로 최종 에세이를 발표합니다.

※글쓰기가 목적인 만큼, 스피노자나 『에티카』, 혹은 철학을 잘 모르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편이 좋습니다. 사전지식 없이 누구나, 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의 목적이니까요. 저는 철학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철학적 지식이 전혀 없어도 철학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는 공부를 해보고자 합니다. 부담없이, 함께 공부했으면 좋겠습니다.

1강 이번 강의의 목표와 글쓰기 방법. 스피노자와 『에티카』 소개 강의. ― 4/4 목
2강 『에티카』 1부 전반부 (매 시간은 토론과 강의로 이루어집니다) ― 4/11 목
3강 『에티카』 1부 중반부 ― 4/18 목
4강 『에티카』 1부 후반부 ― 4/25 목
5강 『에티카』 2부 전반부 ― 5/2 목
6강 『에티카』 2부 중반부 ― 5/9 목
7강 『에티카』 2부 후반부 ― 5/16 목
8강 최종 에세이 발표 ― 5/23 목

참고문헌
스피노자, 『에티카』 (어느 번역본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새로 사신다면, [황태연, 『에티카』, 비홍출판사]를 추천합니다)
스피노자, 『스피노자 서간집』, 아카넷

강사소개
철학과 과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를 가장 좋아하며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때문에 함께 공부하면서, 삶에 슬픔보다 기쁨이 많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다중지성의 정원 daziwon.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9-13 [서교동 464-56]

T. 02-325-2102

메일링 신청 >> http://bit.ly/17Vi6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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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9/03/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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