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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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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익명 (미확인) | 월, 2017/11/20- 19:35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고 말했다.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흥구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말 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고조되는 긴장에 비해 해법은 아직도 묘연하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역사를 보라는 말이 있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등을 펴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팔십 평생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 연구에 힘써온 역사학자다. 작고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함께 197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대표적 원로 지성으로 꼽힌다. 유신정권 시절에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4년 동안 대학 강단을 떠나기도 했다. 그는 상지대 총장(2001~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005~2007년)을 지낸 뒤 강원도 양양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고 있다. 지난 7월 말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내던 문재인 대통령이 강 명예교수를 초청해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팔순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왕성한 집필 활동과 강연 등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파하는 그를 양양에서 만났다.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북핵 문제가 제일 시급한데, 내가 보기에는 과거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핵 개발 중에도 북·미 관계가 좋을 때는 협상을 통해 북한이 핵 시설을 파괴하도록 만들었다. 클린턴 정부 때 북·미 수교, 고이즈미 내각 때 북·일 수교를 놓고 협상할 때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길은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 아니겠는가. 그 길만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

현재 북한은 수교를 하더라도 핵 보유를 인정받겠다는 입장 아닌가?

북·미나 북·일 수교를 하게 되면 핵은 포기하라든지 하는 조건이 붙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미가 수교를 하지 않고 해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벌이니까 결국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하며 북한 상륙작전까지 연습하니까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평화주의 견지에서 보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상대가 있으니까 협상에 달렸다. 세계가 평화를 지향해가고 있는 시대이므로 북·미 평화협정, 북·일 수교를 통한 평화 관계도 마땅히 이룰 수 있다.

광복 72주년에 재현된 건국절 논란을 어떻게 보는가?

광복절이냐 건국절이냐 이런 문제인데, 광복절이란 우리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기념일로서 이것은 민족주의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건국절 주장은 국가주의적 견해이다. 결국 건국절 논란은 어떤 역사인식을 가질 거냐 하는 문제다. 계속 분단국가주의적 틀 속에서 살 것이냐, 아니면 통일민족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역사의식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1945년 광복 당시 건국 개념은 무엇이었나?

1919년 상해에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이 가까워질수록 좌우 합작 정부로 변모했다. 독립운동 내부에 좌익도 있고 우익도 있었는데 광복 후 이들이 합쳐야 하니까 임시정부가 사실상 좌우 합작이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이 주석이고 김규식 선생이 부주석인데 거기에는 아나키스트, 유림 등 모든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광복이 되면 두 개의 국가가 생길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백범 김구로 말하자면 우익 중의 우익인데 좌우 합작 정부의 주석이었고 분단 이후에는 평양에 가지 않았나. 그것이 우리의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그걸 갈라놓은 게 이승만 정권이고. 오늘날 건국절 운운하는 것은 이승만의 분단주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노무현 정부 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 남은 일제 잔재 청산 과제는?

최근 <친일인명사전>까지 나오긴 했지만 문제는 광복된 지 72년이나 됐는데 친일파 연구가 학문적으로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로 자료가 전혀 모아지지 않다가 노무현 정부 때 비로소 자료를 모았다. 그 자료를 가지고 친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제대로 반성해야 한다. 어떤 조건으로 친일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를 학문적으로 소화해서 교과서에 정확하게 넣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이 화두다. 역사적으로 적폐가 누적된 근본 원인을 뭐라고 보나?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업적을 세웠다는 걸 내세워 독재 체제를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이승만 정권의 제일 큰 오점이자 문제점은 친일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민족사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가장 큰 과오는 1965년 잘못 맺은 한·일 협정이다. 협정 당시 일본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합법적으로 지배했느냐, 침략적으로 강점했느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협정 당시 일본의 주장을 따르면 일제 36년이 합법적인 게 된다. 그러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합법적인 지배에 저항한 잘못된 행동이 된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 합방조약을 1910년 8월29일 한·일 합방이 된 그날부터 무효라고 인식하겠다 하고 아무런 대응 없이 넘어갔다. 역사적으로 큰 과오를 남긴 이 문제가 아직까지 제대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한·일 기본조약 제2조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를 놓고 한국은 ‘처음부터 무효다’라 주장했고, 일본은 ‘1948년 대한민국 성립 때까지는 유효했다’고 해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은 한·일 병탄조약을 어떻게 보았나?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이 청일전쟁 끝에 빼앗은 타이완은 중국에 돌아갔다. 러일전쟁에서 빼앗은 북위 50° 이남의 사할린 땅도 소련에 넘어갔다. 한·일 합방조약이 합법적이라고 연합군이 인정했다면 한반도를 일본의 지배에서 빼낼 이유가 없었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걸 침략 행위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서 한반도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하지만 1965년 한·일 협정 때는 그게 전혀 반영이 안 됐다.

학계에서 그 문제가 전혀 제기되지 않았나?

한·일 합방 100주년이던 2010년 한·일 양국의 양심세력이 성명서를 냈다. ‘1910년에 체결된 한·일 합방조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다’라는 공동성명이었다. 하지만 민간에서 해봐야 법적 효력이 있나. 한·일 양국 정부가 하도록 촉구하는 의미였는데 이후 별다른 노력이 없었다. 이제라도 역사학계의 지적을 정부가 귀담아 듣고 일본 정부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한·일 협정을 통한 청구권 자금이 우리 경제성장의 종잣돈이 되었다며 박정희 정권의 긍정적 업적으로 내세우는 이들도 많은데?

박정희 정권의 업적으로 경제성장을 자꾸 말하는데,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 복구 과정에서 경제가 발전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그렇고 독일도 그랬다. 심지어 북한도 19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나았지 않나. 경제성장이라는 게 어느 한 정권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을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

▲ 2005년 5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앞줄 오른쪽)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한·일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일본과는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교육 문제 등이 있는데 독도 문제는 이미 해결된 거라고 본다. 우리가 우리 영토로 점유하며 증명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잘못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사자들이 뭘 어떻게 원하느냐를 듣고 일본과 교섭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해치웠다. 그러니까 피해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위안부 문제는 일본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와 합의할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없었다. 당사자들이 아직 상당수 살아 있다. 그분들 의견이 들어가야 한다고. 그래야 일본도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역사교육 문제는 일본의 지성들이 해결해야 한다. 아베 정권 이전까지 일본 역사학계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어제를 아는 것이 역사다. 그렇다고 어제를 알고 그냥 끝내서도 안 된다. 잘못된 과오는 반성해야 한다. 일본의 과거 침략주의에 대한 반성이 아직도 부족하다. 한·일 양국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교류하면 역사교육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 본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이 우경화하면서 역사 왜곡이 심해지는데?

일본 정부가 교육을 통해 극우 사상을 넣으려 하는데 거기도 발전하는 세상이라 나는 그것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본다. 일본 보수 정권이 비교적 오래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래도 21세기인데 과거의 제국주의적 또는 냉전주의적 상황은 희석될 것이다.

역사학자가 보기에 현재 한반도 처지가 구한말과 비슷한가?

주변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은 비슷하다. 4대 강국 시각에서 보면 한반도가 분단 상태에 있는 게 안전하다. 한반도가 중국이나 러시아 등 대륙 세력권에 들어가면 한반도는 해양 세력, 특히 일본을 찌르는 칼이 된다. 반대로 한반도가 일본이나 미국 등 해양 세력권에 포함되면 해양 세력이 대륙을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가 된다. 과거 일제강점기가 대표적인 예 아닌가.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갈렸다. 이 상태가 4대 강국에게는 안전하다. 4대 강국끼리 충돌을 방지하는, 칼도 안 되고 다리도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통일은 어렵다는 얘긴가?

우리는 4대 강국에 의해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4대 강국이 포함된 6자 회담으로 통일 문제나 남북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걸 말해준다. 내가 보기엔 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해결해야 한다.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6·15 남북공동선언은 그런 역사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나?

통일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생각하면 분단이 어떻게 고착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1차적으로 1945년 삼팔선이 생기면서 국토가 나뉘었다. 다음으로 1948년 남북한 단독 정권이 생기면서 국가가 분단되었다. 이어서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민족이 갈린 과정을 거쳤다.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남북한은 베트남처럼 사이공 인민주의도 안 되고 독일처럼 흡수통일도 안 된다. 결국은 평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 문을 연 시작을 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라고 본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민족이 화해하기 시작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열렸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남북한 사이에 연방제냐, 1정부 2체제냐, 2정부 2체제냐 하는 게 다를 뿐 통일국가 체제 논의도 상당 부분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2정부 2체제로 가는 건 공통분모다.

박근혜 정부 때도 역사학자로서 정부 승인을 받아 방북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기 일주일 전인 2016년 2월 역사 발굴 때문에 개성에 들어갔다. 고려 왕궁터를 비롯해 여러 고려 문화 유적이 남아 있어서 복원하여 관광자원으로 삼자고 했다. 그런데 개성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많이 달라졌더라. 5층짜리 아파트가 많이 생기고 남루했던 개성 사람들 옷차림도 달라졌다. 개성공단, 해주공단, 원산공단을 지어나가면 통일이 차츰 되어갈 것이다. 통일이란 게 남북한 사람들 의식이 같아지고 생활이 동화되어가는 데서 출발한다. 차츰 남북이 동화되어가면 통일비용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들어갈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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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 세 번째)이 방북 중인 김민하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박용길 장로, 강만길 교수(왼쪽부터) 등을 접견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통일뉴스 제공

북한 사람들과 북핵 문제도 이야기했을 것 같은데?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어느 북측 인사가 이런 말을 하더라.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기 전에 북한은 달러 한 푼 없이도 살 수 있었는데, 무너지고 나니 달러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더라, 결국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북핵을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한 마지막 카드라고 하더라. “우리를 승인하라는 것이고 인정하라”는 주장이었다.

역사란 지그재그로 발전한다고 강조했는데?

역사는 정치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경제적으로는 인간 생활을 균등하게, 사회적으로는 인간을 평등하게,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자유롭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이게 직선으로만 가지 않는다. 그랬다면 인류의 역사가 여기 머물러 있겠나? 훨씬 더 많이 앞으로 갔을 것이다. 역사는 중간에 가다가 반작용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고 나선형으로 올라간다. 우리 역사도 마찬가지다. 침략과 분단 등을 겪었지만 우리는 왕조시대를 극복하고 넘어섰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나 중국의 신해혁명 같은 것은 없었지만 독립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해갔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 분단도 극복하고 통일도 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자신감을 갖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 정부에 할 말이 있다면?

내치야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궁극적으로 민주주의 발전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대북 문제가 걱정이다. 미국 트럼프 정권도 대북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아서 지난 10년간 닫힌 남북 관계를 푸는 게 쉽지 않다. 북·미 관계가 나빠지면서 야당과 수구 보수 세력이 정부를 비판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남북 관계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정부 내 대북 정책을 맡은 사람들의 의식이 중요하다. 얼마나 빨리 북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느냐보다는 방향이 맞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식만 있다면 인내심을 갖고 북한을 설득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또 민간단체가 남북 간 교류를 더 넓혀 나가야 한다.

정희상 기자 [email protected]

<2017-9-1> 시사in

☞기사원문: 강만길, “건국절 운운은 이승만 분단주의의 연장”

시민들의 의견

[다운로드] [보도자료]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판결의 압류결정에 대한
소송대리인·지원단 공식 입장

1. 신일철주금이 2018년 10월 30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음에 따라, 위 판결의 원고들(피해자들) 대리인은 2018년 12월 31일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에 대한 압류 신청을 하였다.

2.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2019년 1월 3일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 81,075주(피해자 2명의 손해배상금 및 지연손해금 상당)에 대한 압류를 결정하였고, 법원 압류명령결정의 주식회사 피엔알에 대한 송달절차가 현재 진행중이다.

3. 압류명령결정은 주식회사 피엔알에 송달된 이후에 압류의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압류가 효력을 발생하면 신일철주금은 신일철주금이 소유한 주식회사 피엔알 주식 중 81,075주에 대한 매매, 양도, 기타 일체의 처분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그 자체만으로 기업 운영에 장애가 발생하였거나 현실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4. 지난 압류신청서 제출 때에도 강조한 바 있지만, 피해자들은 통상적으로 압류명령 신청과 함께 이루어지는 매각명령 신청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즉, 압류를 통한 자산보전은 이루어졌으나, 현금화 절차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신일철주금과 협의할 여지를 남겨놓기 위해서였다.

5. 그러나 신일철주금이 계속 피해자 측과 협의하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의 대리인은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의 대리인은 신일철주금에게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위하여 신속히 협의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2019년 1월 8일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김세은, 임재성(법무법인 해마루)
동 지원단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화, 2019/01/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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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상하지 않은 곳이 없다 (1)

이제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 비리투성이 민문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지금까지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는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과 개인들의 모든 문제제기에 대해 일체 대꾸를 하지 않아왔다.  

나는 민문연 홈페이지에서 몇 차례나 집행부 핵심 상근자와 운영위원장, 그리고 임헌영 소장님에게 문제제기를 했는지 모른다.  

어떤 때는 집행부 모 실장, 조세열 당시 사무총장, 그리고 임소장님께 약 2주간에 걸쳐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 문자를 수차례 남겼어도 답을 받지 못한 적도 있다.  

이민우 운영위원장에게는 1, 2, 3 숫자를 붙여가며 문제제기/질문을 했으나 아무런 답도 듣지 못 했다. 모두가 그냥 피하며,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그렇게 해서 답을 얻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지난해 1229일 내가 SNS 상으로 임헌영 소장님께 드린 “(서울시 교육청 행정처분 관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님께 드리는 공개질의라는 글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 했다.  

그 질의의 내용은 지난 1221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가진 민족문제연구소 비리에 대한 민바행의 민원 처분의 지연, 비리 묵인 방조 관련 항의집회 후 인지하게 된 교육청 처분내용에 대한 공개 요구였다.

는 그날 두 개의 사안

1. 신고된 정관 외의 운영정관 사용 관련해서는 엄중 경고”,

2. 기부금 처리 관련해서는 기관 경고처분이 내려진 것을 보았다.

결론은 짧았지만, 각 사안별 처분 내용이 두쪽 씩에 달할 만큼 긴 4쪽짜리 처분공문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민문연 홈페이지에 올린바 있으나 지금까지 아무 답이 없다.  

그러더니 집행부에서 임시 운영위원회를 연다고 공지를 한 모양인데, 아래와 같이 안건이 정관 개정() 심의 의결도 아니고, “정관 개정() 심의란다.  

작년 3월의 유신 헌법정관으로의 개정으로 말미암아 운영위원회의 권한이었던 일상업무에 대한 심의 의결조항이 삭제된 결과로 허울뿐인 심의만 남은 것이다.  

집행부 발송 문자내용

“[Web발신]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2019년 임시 운영위원회 소집공고  

다음과 같이 민족문제연구소 임시운영위원회를 소집합니다.

: 2019112() 오후 2

: 연구소 5층 회의실  

안건

1. 정관 개정() 심의의 건 (서울시 교육청 실태조사 결과 처리의 건)

2. 기타 토의  

2019. 1. 3. 운영위원장 이민우  

그러니까, 이제 막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2019. 1. 8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화, 2019/01/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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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철주금-포스코 합작사 PNR 주식 8만1천7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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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징용 피해자측 변호인, 신일철주금에 협의요청서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 측 변호인이 지난해 12월 4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협의요청서를 전달하고자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를 방문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변호인단이 신청한 신일철주금 한국 자산 압류신청을 승인했다고 8일 밝혔다.

포항지원 관계자는 “지난 3일 주식회사 PNR 주식 압류신청을 승인하고 회사 측에 관련 서류를 보내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압류명령결정은 PNR에 서류가 송달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신일철주금은 변호인단이 신청한 PNR 주식 8만1천75주의 매매, 양도 등 처분할 권리를 잃는다.

다만 이 자체만으로 기업 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PNR 측은 아직 관련 서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5)씨 등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신일철주금이 손해배상을 하지 않자 지난달 31일 신일철주금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법원에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압류 절차에 들어간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은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이다.

이 회사는 경북 포항에 본사와 포항공장, 전남 광양에 광양공장을 둔 제철 부산물 자원화 전문기업이다.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은 PNR 주식 234만여주(110억원 상당)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변호인단은 피해자 2명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손해금에 해당하는 8만1천75주에 압류를 신청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말 이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일철주금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신일철주금이 계속 피해자 측과 합의하지 않고 있어 압류된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며 “신일철주금은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신속히 협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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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ノ內)의 신일철주금 본사의 명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01-08> 연합뉴스 

☞기사원문: 법원, 강제징용 신일철주금 자산 압류신청 승인

화, 2019/01/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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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상하지 않은 곳이 없다 (2)

비리투성이 민문연, 대수술이 필요하다

 

지난 915일자 3분기 운영위원회 회의록을 보니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사원 총회에서 서울시교육청에 등록된 정관과 연구소 자체 운영 정관을 개정키로 하고 개정안 작성은 운영위원회 3(김순흥 조승현 김재운), 이사회 2(102954회 이사회에서 조세열 신용옥 이사를 소위 위원으로 선임), 집행부 2인으로 구성키로 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민문연은 이미 3분기 운영위원회 날인 915일 이전에 교육청으로부터 엄중 경고와 함께 운영 정관을 폐기내지 정리하라는 취지의 처분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번에도 늘 하던 대로 이사 5인과 상근자 5인으로 구성된 회원 10이 전국의 지부 회원들은 모르는 소위 사원 총회를 열고 정관 개정을 의결한 것이다.  

그리고는 형식상 운영위원회, 이사회, 집행부에서 사람을 차출해 개정안을 만들었고, 이번 토요일에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는 들러리 운영위원회를 내세워 심의’(지난해 정관개정에 따라 의결없이 심의’)만 하게 한 후 올해 3월초쯤에 다시 회원 10이 진짜 회원들 모르게 가짜 총회를 열어 의결하고, 교육청에 신고하고,  

다시 마치 아무 일(가짜 총회) 없었다는 듯이 전국의 지부회원들에게 또 총회 연다고 공지하고, 이메일 보내고, 부산떨며 총회를 열어 임헌영 소장의 사회로 박수로 통과시켜 달라할 것이다.  

전국 회원들의 진짜 총회든, “회원 10의 가짜 총회든 비민주적 행태와 몰상식적 행태가 벌어질 민족문제연구소 총회 현장, 내 예언이 맞는지 틀리는지 지켜보자.  

민바행이 작년 75일 이사 신용옥 선출에 대한 문제제기(당시엔 사단법인 등록 당시에 제출한 정관을 이용해 회원들 몰래 총회를 열어 이사를 선출하는 것 같은 일을 벌일 줄은 까맣게 몰랐고그런 맥락에서 신고정관이 있는 줄 몰랐다고 얘기하는 것)부터 시작해,  

나중에 교육청 항의방문 갔다가 알게 된 회원이 10이라는 충격적인 사실, 그리고 밝혀진 이중정관 (그제서야 소위 교육청에 등록할 때 신고한 신고정관의 용도”-집행부에서 회원 10으로 총회를 아무 때나 마음대로 열기 위한 목적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에 대해서는 교육청의 처분 조치를 받고나서야 집행부가 그동안 은밀하게 교육청 시정조치 작업을 거친 모양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핵심 상근자, 이렇게 비위를 저질러도 되는 것인가?  

운영위원장, 집행부 들러리 임시 운영위에서 무얼 심의하고 그래서 뭘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회원들을 또 다시 우롱하는 것이다. 위에서 내가 말한 회원 기만 시나리오대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집행부는 지난 십수년동안을 몰래 기만해온 전국의 회원들에게 교육청 처분 관련 사실을 밝히고, 사과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지는 게 순서 아닌가?  

그리고 운영위원회는 집행부와 이사회에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이런 식으로 또 회원들을 기만할 작정인가?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 핵심 상근자의 비리는 그렇다 치고, 이를 감시 통제해야 할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감사까지도 무엇 때문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지금 총체적으로 비리와 부실로 가득 차 있으며, 어느 곳 한군데 상하지 않은 곳이 없다.

대수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2019. 1. 8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수, 2019/01/0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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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대 산학협력단 친일 잔재 연구용역 결과
경찰·사법·교육 분야 친일 인사 150여명 발굴
건축물·교가 등 곳곳 산재 “단죄비, 교육 필요”

0109-11

▲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사법·경찰·교육 등 각 분야 친일인사 156명과 관련된 친일 잔재물이 광주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광주교대 산학협력단 연구결과 확인됐다고 9일 광주시가 밝혔다. 사진은 광주 도심에서 발견된, 일제 강점기 군사용 동굴. 2019.01.09 (사진=뉴시스DB)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구길용 송창헌 기자 = 사법·경찰·교육 등 각 분야 친일인사 156명과 관련된 친일 잔재물이 광주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석과 누정현판은 물론 일선 학교 교가에 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으며 이들 ‘친일 흔적’에 대해서는 단죄비 설치와 교육자료 활용 등이 추진된다.

광주시는 9일 본청 행복회의실에서 광주교대 산학협력단(대표 홍기대)이 주관한 ‘광주 친일 잔재 조사 결과 및 활용 방안 제시 용역’ 최종보고회를 가졌다.

이번 용역은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광주·전남 출신 친일인사 156명(광주 13, 전남 143)의 행적과 잔재물에 대해 체계적인 조사와 함께 향후 활용 방안을 찾기 위해 지난해 7월27일부터 150일간 진행됐다.

용역 결과 1876년 개항 이후 1945년 8월 해방 직후 사이에 만들어진 비석, 비각, 누정현판, 각급 학교 교가를 비롯해 군사·통치·산업시설 등에 친일 시설물이 광주 도심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친일 인물은 크게 경찰·사법·관료·교육·음악 분야로 구분되는데 전남도 경찰부 경찰청장, 광주고법원장, 광주고검장, 전남도 관찰사, 도지사, 전남대 총장, 광주일고 교장, 유명 사찰 주지, 영화감독 등 상당수가 포함됐다.

학교 교가를 만든 일부 작사·작곡가들도 친일 인물로 분류됐다. C대, H대, S고, G여고, D고 교가가 대표적이다.

친일 잔재물로는 광주공원 사적비와 관찰사 윤웅렬 선정비, 관찰사 이근호 선정비, 행군수 홍후난유 구폐선정비, 원효사 부도전 송화식 부도비 등이 확인됐다.

또 송정공원 내 나무아미타불탑과 대한불교 조계종 금선사, 서구 양동 전남도시 제사공장(굴뚝), 지하시설 및 방공호 등 여러 건축물도 포함됐다.

남구 사동 양파정 누정현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운남 정봉현의 상량문과 하정 여규형의 시문, 의춘후인 남기윤의 시문 등이 수록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서구 세하동 습향각 현판도 일제 잔재물로 분류됐다.

이밖에 사월산 지하동굴과 마륵동 탄약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주변 동굴 등 군사시설도 다양하게 발견됐다.

용역팀은 이와 관련해 ▲당시 행적을 기록하고 친일 잔재물임을 알리는 단죄비 설치 ▲불명예스러운 역사가 담긴 현장이나 흔적을 보존해 후대에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네거티브 유산 ▲네거티브 유산을 견학하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획한 다크투어리즘 추진 등 활용 방안을 제시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이번 용역 결과를 토대로 광주 친일잔재 TF팀의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올해 상반기 중 친일잔재 청산 및 활용방안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2019-01-09> 뉴시스1 

☞기사원문: 광주 친일 잔재물 ‘수두룩’…단죄비 설치 검토(종합) 

※관련기사 

☞뉴스1: 광주시, 친일잔재 청산 작업 본격화한다 

광주in: ‘친일잔재’ 곳곳에…’단죄비’ 건립 필요 

호남타임즈: 광주광역시, 친일잔재 조사 용역 결과 최종 보고 

전남매일: 광주시, 친일잔재 조사 용역 결과 최종 보고 

경인투데이: 광주광역시, 친일잔재 조사 용역 결과 최종보고

수, 2019/01/09-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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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버린 빵 하나

 

길가

벚나무 아래

 

누가 버렸을까

반쯤 먹다 버린 빵 하나

 

자세히 보니

반도 채 안 먹었다

 

굶주리는

북한 동포 생각에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욕설

 

“三代 빌어 처먹을 놈!”

 

<2019.1.10, 이우식 지음>

목, 2019/01/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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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등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 (1)
– 비리 적폐 상근자들을 비호하는 임헌영 소장님


지금 비리투성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이끌고 나가시는 분은 임헌영 소장님입니다. 

임소장님에 대해서 저는 2015년 3월 운영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직접적 만남이나 대화 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우리 사회의 원로로서 무지 존경했었고 그에 따라 깍듯하게 예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2015년 운영위원장으로 그 분을 직접 만나 회의하고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은 깨졌습니다. 존경심은 물론 사라졌습니다.

연구소에 2002년에 부소장으로 오셔서 다음해 한상범 소장님이 사퇴하시고 바로 소장직을 맡아 10수년이나 계속 해 오셨는데(올해로 치면 부소장 재임기간 1년 포함 18년), 그렇게 오랜 세월을 혼자 계속 연임하시는 이유는 과연 무엇때문인가?

전임 한소장님은 2년만에 물러나셨는데…하는 근본적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제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내내 임소장님은 편파적으로 집행부, 특히 (당시)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해도 늘 감싸고 대신 방어해 주셨습니다.  그 큰 방패막이 앞에서 운영위원장인 저는 늘 무기력했습니다.

2015년 내내 계속되는 집행부의 비민주적 행태와 정관 규정 무시, 전횡 등 비위의 진원지인 조세열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운영위원회의 문제제기(사무총장/국장 사퇴 징계요구)에 대해 임소장님은 끝까지 반대하시다 결국 조총장 징계보류, 방국장 징계 (사무국장 사퇴)에  동의를 하셨고, 그에 따라 2016년 6월 2분기 운영위원회 석상에서 두 사람이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임소장님의 집행부 두 상근자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의 하일라이트는 단연 그후 운영위원장단과의 약속을 깨고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사퇴)는커녕, 오히려 직제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기획실을 만들어 1인 ‘기획실장’으로 발령을 낸 일입니다.

그에 대해 조세열 사무총장은 “직원 하나 없는 기획실장으로 발령낸 것을 갖고 뭘 그러느냐?”며 강변을 하면서 실제로는 사무국 일을 보게 했습니다.

방학진 하나를 감싸기 위해, 소장님이 먼저 제안함으로써 운영위원장단 대표 2명과 외부에서 이틀동안 만나가며 어렵사리 만들어낸 합의를 깨고, 저를 비롯한 운영위원장단의 뒤통수를 친 것입니다.

연구소 주요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2016년 8월 ‘집행위원회’에 앞서 안건을 사전에 달라는 운영위원장의 요구는 방학진 사무국장에게 묵살 당했는데, 당일 날 회의자리에서 배포된 안건 1호를 보니  “방학진 면 사무국장, 임 기획실장” 이라는 기가 막힌  인사발령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임소장님으로부터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저는 심한 모멸감과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6월 운영위원회 이후 방국장 후임 선임이 늦어지고, 발령 소식도 없고, 조세열 총장에게 물어도 어물어물 넘어가고, 결정적으로, 집행위 안건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담당 방국장이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안 보내준 것, 회의 당일 날 시작 바로 전에 회의자료를 배포한 것, 모두 이미 짠 시나리오였습니다.

임소장님은 그러면서 운영위원장인 제가 뭐라 항의할까봐 먼저 “누가 뭐라 하든 이대로 시행하겠다”고 선수를 치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얘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그때 잘하시던 말씀이 “조세열, 방학진이 없으면 민족문제연구소 망한다” 였습니다.

임소장님과 합의문을 만들 때도 “방학진 사무국장에 대한 ‘징계 사퇴’란 용어가 시민사회 쪽에 알려지면 연구소가 망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셔서 합의문에는 번호만 매기고 여백으로 남기면서, 운영위 발표 때는 “1번 사항은 합의상 발표를 생략하겠다”고 했습니다.

몇 번이나 그런 임소장님의 말씀과 행동 앞에서 운영위원장으로서의 저의 조총장과 방국장의 비민주적 행태에 대한 문제제기는 늘 가로막히곤 했습니다.

집행부의 비위와 전횡에 맞서 전국의 회원의 대표로서, 운영위원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하려 했던 저는 소위 우리 사회의 ‘원로’ 앞에서, 그 권위에 눌려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2019. 1. 10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금, 2019/01/1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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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웅 소설의 하나이나 동류의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백합과 ‘매우 비슷한’ 전개가 특이한 부분.시대를 앞선 백합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남장하고 이름을 널리 알린 주인공 방관주가 영씨가문의 강압으로 결혼하게 된 히로인 영혜빙에게 첫날밤에게 여자임을 들킨다, 결국 관주가 그냥 이렇게 된 이상 미안하다며 형제의 의로서 남자고 제안하지만 영혜빙이 나는 남자랑 혼인하는게 마음에 안든다면서 부부로 남자고 해버린것. 소설 결말도 백합냄새가 진하게 나는데 방관주가 죽자 영혜빙도 그 뒤를 따라 같이 죽는다(…). 방관주는 자신이 여성이라는것을 감추기 위해서, 영혜빙은 당대 부부 관계의 억압 구조에 대한 거부감으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부부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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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1/1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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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를 고문·탄압한 노덕술은 훗날 한국전쟁 때의 공로로 화랑무공훈장 등 세 차례 훈장을 받았다. 사진은 일제 당시의 행적이 문제시돼 반민특위에 붙잡힌 노덕술을 보도한 신문 일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고문 경찰’로 악명을 떨친 노덕술 등 친일인사들의 훈·포장이 취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사업을 벌이면서도 절차상 문제를 들어 친일인사의 상훈 취소에 소극적이다. 친일행위가 밝혀진 이들의 상훈 유지는 서훈의 가치뿐 아니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의 의미도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경향신문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친일행적’을 이유로 대통령장·애족장·애국장 등 상훈이 취소된 이들은 정부 수립 이후 모두 25명이다. 현재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 중 상훈을 유지하고 있는 이는 224명이다.

취소는 김성수 등 25명뿐
친일 224명 상훈 그대로

“법률적 요건 마련 안돼”
행안부, 훈장 취소에 난색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하는
정부의 노력까지 퇴색 우려

인촌 김성수(1891~1955)는 1962년 건국훈장인 대통령장을 받았다가 지난해 2월 상훈이 취소됐다. 앞서 2017년 4월 대법원이 징병과 학병 찬양 등 친일행위를 인정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를 고문·탄압하고 해방 후에도 경찰로 활동하다 육군으로 소속을 옮긴 노덕술은 한국전쟁 당시 받은 화랑무공훈장 등 3건의 훈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군 헌병으로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신상묵(을지무공훈장 등 8건), 일제 고등형사를 지낸 이정용(홍조근정훈장 등 6건) 등 해방 후에도 경찰 등으로 활동했던 친일인사들의 훈장도 아직 유지되고 있다.

정부는 현행법상 친일행적이 있다고 서훈을 다 취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상훈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상훈법에서 친일경력을 서훈 취소의 요건으로 두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행 상훈법에 따르면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국가 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 형을 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형법·관세법·조세범처벌법 등에 규정된 죄를 범하여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금고형을 받은 경우 등이 아니면 서훈을 취소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독립·건국유공자로 상훈을 받은 인사의 친일경력이 훗날 밝혀지면 취소할 수 있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해 체육훈장을 받은 사람은 친일경력이 드러나도 상훈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포상 취소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하고, 특별법 등 법률적으로 취소 요건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단편적인 사실로 훈장 자체를 취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 등을 발굴해 독립유공자로 서훈심사를 요청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친일경찰 문제 등을 청산하는 데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며 “현재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상훈과 친일은 정통성과 역사성에 대한 문제”라며 “친일행적이 상훈 취소 요건이 되지 않는 건 법이나 규정 자체가 미비한 것이지, 그것이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친일행적에 대한 평가는 분야를 떠나서 봐야 한다”고 했다.

2016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국회에 친일파 등의 상훈을 취소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인 의원은 발의 당시 “서훈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에 서훈 대상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의 가해자, 전범자인 경우를 추가하고, 서훈이 확정 또는 취소된 경우 관보뿐만 아니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공개해 서훈의 가치를 높이고, 그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독립운동에 참여한 경찰을 발굴하는 등 잊혀진 소수의 인물을 찾아내는 일은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일이지만, 과거 일을 깊이 반성하는 구체적인 모습이 병행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미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9-01-11> 경향신문
☞기사원문: ‘고문경찰’ 노덕술도 무공훈장 유지 친일 인사 서훈 취소 손 놓은 정부

금, 2019/01/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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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94) 할아버지가 30일 오후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이동하고 있다.

대법원이 전범기업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각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해 10월 확정 판결을 내린 이후 전범기업 측이 배상을 이행하지 않음에 따라 실효성 있는 후속 절차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모아진다.

9일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전문가 정책토론회’에서 피해자들의 소송대리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는 실제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후속 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임 변호사 등 소송대리인들은 신일철주금의 한국소송대리인인 김앤장 소속 변호사에게 대법 판결이 내려진 이후인 지난해 11월 초 협의 요청, 면담 요청 등을 전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후 한 달 뒤 다시 접촉을 시도했으나, “할 말이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만 협의 요청서는 전달됐다. 당시 협의 요청서에는 ‘이 사건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의무 이행 방법’, ‘배상금 전달식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후속조치’ 등의 안건이 담겼다.

그러나 또다시 아무런 협의의사를 확인할 수 없었고, 이에 소송대리인단은 지난해 12월 31일 신인철주금이 소유한 PNR의 주식 중 원고 이춘식씨, 망 여운택씨의 소송수계인들의 채권액에 상당하는 주식 4억 여원에 대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압류를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3일 압류 신청을 승인하고 PNR 측에 서류를 보냈다. 이후 송달이 되면 압류 효력이 발생해 팔거나 양도할 수 없게 된다.

이후 토론회가 열린 이날 9일 PNR 측에 송달이 완료돼 압류 효력이 발생한 것으로 일본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나 압류 효력이 발생했다고 해서 판결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 주식압류의 경우 매각명령을 함께 신청한다. 그러나 이들은 매우 이례적으로 압류 신청만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신일철주금과의 협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다.

이들은 압류 신청 당시 “신일철주금과의 협의를 통해 판결이행을 포함한 강제동원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국내법에 따른 판결의 정당한 이행과 아울러 국제 인권법에 따른 피해자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매각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임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판결이행보다 포괄적 해결을 원한다”면서 “판결 내용을 보면 불법적 행위를 넘어서서 조직적인 국가가 개입한 식민지 지배 하에 이뤄진 불법행위”라고 꼬집었다.

임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센터를 통해 소송대리인단을 추가로 모집해 후속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10여명의 변호사들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내부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소송대리인단은 오는 25일 오후 2시 민변 대회의실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분들을 대상으로 한 소송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후속소송의 쟁점은 ‘소멸시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송대리인단은 △강제동원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로서 시효가 배제돼야 하며 △가사 시효가 적용될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대법 판결이 나온 2018년 10월 30일이 시효기간일이 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송대리인단은 오는 4월까지 후속소송의 소장 접수를 완료할 방침이다.

김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2018-01-10>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대법 판결 이후, 실제 배상까지 ‘갈 길 머네’

금, 2019/01/1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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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등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이유 (2)
– 임헌영 소장님은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수치스러운 경고처분(‘미승인 정관’ 엄중경고와 ‘기부금 부적정 운영’ 기관경고)에 대한 책임을 지십시오

지금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에서는 온갖 꼼수, 거짓말, 허위, 공작, 비리, 부정행위  등 도저히 상식적인 시민활동가와 시민단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에는 소위 미승인 “운영 정관” 임의 제정 문제, 그리고 “기부금 부적정 운영”문제로 인해 감독관청인 교육청으로부터 2018년 12월 14일 경고처분(엄중경고와 기관경고)과 시정조치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도 민문연 내 관련 비리 적폐 인물들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저런 거짓말로 둘러대고 있으며, 오히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음해” 세력이라 호도하며 빠져 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빠져 나가려 하고 또 빠져나갈 수 있는 배후에는 임헌영 소장님이 있다고 봅니다.  임헌영 소장님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이들과 거의 다르지 않고, 이런 류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비호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집행부의 일부 핵심 상근자들과 거기에 동조하는 일부 운영위원은 이제는 민문연을 비리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소위 “적폐”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들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오늘을 있게 하신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친일연구 자료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리신-을 닮기는커녕 기득권 유지를 위한 패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오래된 비리 적폐 인물들이 청산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임헌영 소장님의 책임소재는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2000년 1월에도 당시 서울시 동부교육청의 실태조사 결과 고발조처와 시정조치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에 따라 이사진이 총 사퇴한 적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작년의 서울시 교육청의 경고 처분은 비록 2000년 동부교육청 고발조처 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위지만, ‘미승인 정관의 사용’과 ‘기부금 부적정 운영’은 심각한 사안으로, 오랜 세월 성실하게 회비를 납부해온 전국의 1만 3천여 회원들과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를 믿고 성원해 온 국민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사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중경고’ 처분을 받은 ‘미승인 정관 사용’은 회원들이 그동안 정관이라고 알고 있었던 소위 “운영” 정관이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는 ‘미승인 정관’이었으며,

지난 십수년을 회원들 모르게 “회원 10명”이 수시로 정기, 임시 총회 등을 열면서 연구소의 주요 사안에 대한 법적 의사 결정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작년의 경우 전국의 회원들을 불러 모아 3월 24일에 정기총회를 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 회원들의 진짜) 총회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전 3월 8일에 “회원 10명”이 모여 정기총회를 열어 모든 주요 결정을 하고 교육청에 신고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총회’로 알았던 3월 24일의 총회는 집행부가 회원들에게 “총회를 열었다”고 하기 위한 꼼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의 정기총회는 뭐고, 왜 모였으며, 1만 3천명 중 그 “회원 10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법은 잘 모르지만, 이건 사기 아닙니까?

게다가 그 “회원 10명”이 ‘이사가 5인, 상근자가 5인’이라니…우리가 아는 회원은 한명도 없이 결국은 실질적으로 상근자들이 십수년 동안 모든 사안을 저들의 뜻대로 했다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그 오랜 세월 지속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이런 부정직한 상황을 임소장님은 지난 17년간 아시면서도 모른체 해오셨습니다.

 

두 번째 사안인 ‘기부금 부적정 운영’은 내용이 더 법적으로 심각하다고 봅니다.

교육청에서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민문연도 일체 함구하고 있으니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민바행이 판단하기에는 교육청에서 고발조치 사안인 “기부금품법 위반”을 경고조치 사안인 모집된 “기부금 부적정 운영”으로 낮춰줬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육청은 전국의 13,000명 회원을 배제하고 고작 “회원 10명”으로 총회 의사록을 작성한 것에 대해 “흠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회원 10명”을 제외한 사람들의 지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  “회원 10명”이 매년 걷힌 돈 십수억을 ‘회비’로 다 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청의 판단에 따르면, 민문연에 돈을 낸 9000여명(민족사랑지 참조)은 회원이 아님에도 매년 십수억을 냈으며 이것은 회비가 아니라 기부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문연은 당연히 기부금품 모집 관련 법에 따라 모집 등록을 했어야 했지만, 민문연에서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렇다면 “민문연은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육청에서는 ‘기부금품법 위반’을 문제 삼지 않고 ‘기부금 부적정 운영’의 처분을 내린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부금품 모집 과정에 ‘불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기부금은 제대로 모았는데 “부적정하게 운영”했다고 판단, 내지는 봐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 관련해서 또 하나의 문제는 교육청이 “부적정”하다고 판단한 것은 무엇이고, “운영”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성격에 따라 사안의 심각성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니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주제지만 매년 걷힌 돈 십수억원이 “회원 10명”의 ‘회비’로 모인 ‘기부금’이라면, 전국의 (유령?) 회원 1만 3천여 명이 낸 ‘회비’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그리고 “운영” 정관에 따라 이사회의 가입 승인을 받은 회원이 아니라면 그동안 무슨 근거로, 왜 회비를 빼 내갔습니까?

 

임헌영 소장님은 지난 17년 동안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위 사안으로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20년만에 경고처분이라는 수치를 민족문제연구소에 안겨주시고, 전국의 회원들을 부정하시며 부끄럽게 만드신데 대해 적절하게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2019. 1. 11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토, 2019/01/1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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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

◀ 앵커 ▶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어느때보다 친일 잔재 청산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그런데 국군의 공식 군가를 모두 조사해보니 친일파가 작곡한 음악이 상당수였습니다.

공윤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육군 훈련소에서 군가를 배우는 시간.

“여러분들이 배워야 할 군가는 ‘육군가’다.”

육군에 입대하면 누구나 배우게 되는 ‘육군가’는 1951년 김동진이 작곡한 곡입니다.

김동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공식 등재된 대표적인 ‘친일음악가’.

1940년과 50년대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위한 연주활동을 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곡을 만들며 부역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지만 육군은 육군가를 당대 ‘최고의 작곡가’가 만든 곡으로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10대 군가에 포함돼 널리 불리는 행군의 아침을 포함해 김동진이 작곡한 군가는 국군의 날 노래 등 17곡에 달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방부가 만든 ‘군가 총록집’의 군가 298곡을 살펴보니, 35곡이 친일파로 분류된 작곡가가 만든 군가였습니다.

일제의 징용, 징병을 찬양하는 노래를 다수 작곡한 친일음악가 이흥렬과 김성태가 작곡한 곡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반면 ‘항일음악’이나 독립군 노래는 단 1곡도 없었습니다.

[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일제때 친일했던 분들의 노래를 무 비판적으로 받아서 썼던 상황이고요. 오히려 친일문제가 제대로 거론되지 못했던 현실속에서 자연스럽게 친일 음악인들의 과거가 은폐되면서 “

그나마 독립 군가’ 1곡이 군가수첩에 올해 처음 이름을 올렸습니다.

친일파가 만든 군가 대신 국군의 뿌리를 되새기는 노래를 병영에 보급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해보입니다.

MBC뉴스 공윤선입니다.

공윤선 기자 ([email protected])

<2018-01-14> MBC 

☞기사원문: 친일파가 만든 군가 부르며 독립군 후예?

월, 2019/01/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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