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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이 뭔 죄라고…” 300명 유해암매장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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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들이 뭔 죄라고…” 300명 유해암매장지 찾았다

익명 (미확인) | 월, 2017/11/20- 13:46

[현장] 내년 2월 발굴 예정… 충남 아산 배방리 설화산 자락 유해매장지 찾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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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67년 만에 드러난 희생자 유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 공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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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자들의 두개골이 67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 공동조사단

“여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산기슭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땅속 지형을 살펴보던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은 “이곳은 폐광산 터가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17일. ‘아산시'(시장 복기왕)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아래 공동조사단)은 아산시 배방면 복리 3구 야산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약식 개토제를 지낸 뒤 삽 자루를 움켜잡았다. 1951년 부역 혐의로 억울하게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들에 의해 살해된 희생자 암매장 위치를 찾는 시굴조사였다.

아산유족회원들은 물론 아산시와 공동조사단 일원인 4.9통일 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천안 아산지부 등도 힘을 모았다(관련 기사 : 부역 혐의로 학살된 아산 주민 유해 햇볕 볼까)

유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67년 동안 지형이 바뀐 곳이 많은 데다 온전하다고 해도 증언에 의존할 수 없다. 이번 유해 매장지는 흔적이 사라진 당시 세일 폐광산 입구를 더듬어야 했다. 게다가 폐광산 입구가 산자락 여러 곳에 있었다는 증언마저 나왔다.

[11월 17일] 허탈하게 산자락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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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가 발견된 곳은 희생지임을 알리는 안내판 바로 아래쪽이었다. 하지만 조사단은 유해를 찾기까지 꼬박 3일 간 야산 곳곳을 뒤져야했다. ⓒ 공동조사단

증언을 간추려 산 중턱에 위치한 한 곳을 선정해 조심스럽게 흙을 헤집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해는 종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유해발굴단장은 “오랜 시간이 흘러 유해매장지를 찾는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 일원들이 흙먼지를 털며 허탈하게 산자락을 내려왔다.

18일, 몇몇 마을주민들이 전날 유해발굴에 실패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 일처럼 현장으로 달려왔다. 당시 희생자들이 끌려가는 모습과 폐광산 입구를 기억한다는 증언자의 의견에 따라 능선 부근에서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조사를 시작했지만, 오후 내내까지 흔적을 찾지 못했다. 적어도 금을 캐던 폐광산의 징후들이 나와야 했지만, 이곳에서도 광산을 일구었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다시 또 하루가 갔다.

애초 공동조사단은 시굴조사 기간은 이날까지로 한정했다. 이틀 내내 실패하자 현장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회의결과 조사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

[11월 18일] 또 다시 실패, 조사 기간, 하루 더 연장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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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주 유해발굴단장(가운데)이 유해매장지를 찾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있다. ⓒ 유해발굴공동조사단

19일, 산자락 아래쪽으로 발굴 대상지를 선정하고 시굴조사를 시작했다. 한 시간 넘게 탐색을 했지만, 이 곳 또한 암매장지가 아닌 것으로 판단됐다.

오전 10시. 이번에는 희생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 바로 아래쪽으로 위치를 재선정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30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작업자 중 한 명이 작업중단을 외쳤다. 사람의 뼈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두개골과 치아 등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삭고 부서진 유해가 햇빛을 보았다.

당시 경찰이 사용한 탄피,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흰색 단추, 신발 조각도 발견됐다. 박 유해발굴단장은 “드러난 치아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대를 비롯해 임산부 등 가족 단위 주민들이 무더기로 끌려가 희생됐다는 증언과도 일치한다.

주변 마을에 사는 이봉의(79,중리 3구) 씨가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마을 이름은 지금의 중리3구가 아니라 ‘검배리’야. 검배방앗간에 경찰과 우익청년단원들이 아산지역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을 끌어다 가둬 놓았어. 그 날은 눈이 많이 왔어. 오후 3~4쯤 됐을까? 경찰과 우익 단체단원들이 사람들을 끌고 산으로 가기 시작했어. 펑펑 눈이 쏟아지는데 일렬로 줄을 세워서… 애기를 등에 업고 양손에 아이 손을 잡은 아낙도 있었어. 어린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조금 있다가 산에서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지. 광산 입구에 몰아넣고 죄 쏴 죽인 거야. 총소리가 저녁 7시쯤까지 났어. 100명씩 세 번을 끌고 가 전부 죽었으니까 못해도 300명은 될 거야. 후에 다른 마을에서 시신을 찾겠다고 왔는데 다 그냥 돌아갔다고 해. 광산입구를 흙으로 파묻은데다 시신이 뒤엉켜 있응께니 찾을 엄두가 안 난 거지 “

[11월 19일] 드러난 유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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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러난 탄피는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증언하고 있다. 가해자는 경찰과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였다. ⓒ 유해발굴공동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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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아산시 배방리 산기슭 폐광터에서 발겭야된 희생자 유해 ⓒ 유해발굴공동조사단

같은 지역 주민 맹봉주(78)씨는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들이 확인 사살을 위해 폐광 동굴 안으로 불까지 지폈다고 말했다.

“전해 들은 얘기인데, 혹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봐 불을 피웠다고 해. 짚불로 연기를 피워 질식사시키려 한 거지.”

아산지역에서는 1950년 9월에서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 시기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불법으로 학살됐다. 배방면이 희생자가 가장 많았고, 신창면, 탕정면, 염치면, 선장면 주민들도 다수가 희생됐다.

이곳 세일 폐금광에 유기된 희생자는 대략 200~3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학살은 충남경찰국장과 온양경찰서장의 지휘 및 지시로 자행됐다. 또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과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동원됐다.

정석희 충남유족회장은 “저항도 못하는 어린 아이부터 일가족을 국가가 나서 이렇게 무참히 살해했는데도 정부가 유해발굴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이게 유가족과 민간단체가 할 일이냐”고 반문했다.

시굴조사로 유해매장을 확인한 아산시와 공동조사단은 내년 2월경 본격 유해발굴을 시작할 예정이다.

글: 심규상(djsim)편집: 최유진(youjin0213)

<2017-11-2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어린애들이 뭔 죄라고…” 300명 유해암매장지 찾았다

※관련기사

민중의소리: 충남아산, 한국전쟁기 학살된 민간인 매장지 드러나…“어린아이까지 학살”

우리들뉴스: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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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10/0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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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광복 72주년 맞아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전 열려
‘친일 문학상’ 반대 가두 홍보도


때 : 8월 15일(화) 10:00∼18:00
곳 :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
* 한국작가회의자유실천위원회의 기자회견은 11시에 진행되며, 비가 많이 올 경우 전시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한국작가회의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72주년인 8월 15일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앞에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을 반대하는 특별전시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전을 열고, ‘2017 서대문독립민주축제’에 참여하는 시민 학생들을 대상으로 ‘친일 문학상’ 폐지 홍보활동을 벌인다.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전은 이광수 김동환 모윤숙 유치진 서정주 등 대표적인 친일문인들의 작품 56점을 재구성한 패널 전시이다. 관련 시민단체들이 전시를 열고 가두서명 등 홍보활동에 들어가게 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했던 친일문인들에 대한 기념사업이 폐지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과 김동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이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라는 언론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다, 이제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남선과 이광수마저 복권시키려는 시도가 현실화하고 있다. 작년 한국문인협회(문협)가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하려다 거센 역풍을 맞고 사업 자체를 전면 취소하였는데, 동서문화사라는 출판사가 육당학술상과 춘원문학상을 제정해 지난 해 12월 은밀하게 시상식을 가진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동서문화사는 박정희를 미화한 책을 여러 권 발간하였으며, 조선일보 이전에 ‘동인문학상’을 운영한 전력이 있는 출판사다.

친일문인 기념사업은 유족과 문하생 등 직접적인 관련자 외에 과거 친일협력의 길을 걸었던 보수언론에 의해 주도되어 왔으나,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는 지자체장들의 표를 의식한 성과주의에 힘입어 무리하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분단체제와 냉전구도 아래 친일문인들이 문단의 주류로 재등장하면서 이들은 문단의 권력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친일문인들은 문학단체 문학잡지 대학을 장악하고 아류세력을 확대재생산해 나갔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도 70∼80년대 한 때 반독재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문학계는 오늘 다시금 비판력 상실이라는 문단 안팎의 지적을 받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친일문인과 그 기념사업을 대하는 문단과 다수 문인들의 태도이다. 이들이 기념사업을 옹호하는 주요논리는 공과론과 작품성우선론이다. 전자는 “일제에 부역한 과오에 비해 문학에 기여한 공로가 훨씬 크다”라는 것이며, 후자는 “어떤 인간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작가는 작품으로만 평가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근래 한국작가회의자유실천위원회를 중심으로 문단 내부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고, ‘친일 문학상’을 용인하는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음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최근 미당문학상 후보로 선정된 작가들이 이를 정면으로 거부함으로써 공고해 보이던 ‘친일 문학상’의 권위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주최측 관계자는 이번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 전시와 가두서명 그리고 성명 발표가 “친일 문인들의 진면목과 ‘친일 문학상’의 비도덕성을 여론에 직접 호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역사적폐의 하나인 친일파 기념사업을 저지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8월 15일에 발표할 성명서 전문이다.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을 폐지하라

한국 근대문학의 음습한 구석 자리에 ‘친일문학’이라고 하는 괴물이 웅크리고 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미화·찬양하고 전쟁동원을 선전·선동했던 ‘부역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친일문학은 단순히 일본제국주의에 동조한 행위가 아니라, 제 민족을 침략전쟁의 소모품으로 희생하게 만든 반민족적 반인도적 전쟁범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필보국으로 ‘천황’에 충성했던 친일문인들은 해방 70년이 넘도록 단 한 사람도 단죄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한국문단의 주류로 자리 잡고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반민족범죄자들의 죄상은 가려지고, ‘문학’의 이름 아래 친일 문학상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문학계의 영예로까지 여겨지게 되었다. 제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을 사표로 삼는 기이한 행태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한심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친일파 청산을 위해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민특위는 와해되고 역사정의를 실현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만일 반민특위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일제에 부역한 문인들이 온전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단죄를 모면한 친일문인들은 단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이, 한술 더 떠 “과거의 불가피했던 친일행적 때문에 문학적 자산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뻔뻔한 주장을 폈다. 게다가 그들의 작품들은 버젓이 교과서에 실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위상을 확보했다. 나아가 그들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문학상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친일문인과 그를 기리는 기념사업에 대한 반대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친일문학의 상징적 존재인 서정주가 죽은 이듬해인 2001년 미당문학상 제정이 추진되자, 대표적인 진보문학인 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부 유명 문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문단 권력은 ‘용서와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서정주를 용인했다. 2002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실천문학〉이 공동으로 친일문인 42인의 명단을 발표하고 일체의 기념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십수년간에 걸친 반대운동에도 두 차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일문인 기념사업은 오히려 확산의 조짐마저 보이게 되었다. 2016년 한국문인협회가 육당·춘원 문학상 제정을 기도하다 시민사회의 반발로 취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에 제16회 미당문학상 시상식을 앞두고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반대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친일 문학상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이유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같은 수구 언론권력과 결탁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으며,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한국작가회의에서도 작년부터 치열한 내부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작가들의 ‘진지한 성찰과 결단’이 요구된다는 비판적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2017년 미당문학상 심사대상에 오른 명망 있는 시인들이 후보 선정 자체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친일문인의 대명사격인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문학상의 권위가 비로소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러 평론가들도 본격적으로 친일 문학상을 비판하고 나섰다. “친일 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번번이 분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제때, 제대로 앓았어야 할 진통을 회피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절 일제에 적극 협력하고 나아가 동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데 앞장섰던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상을 시행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지독한 모순이요, 난센스”라고 평가한 것이다.

한마디로 친일문인 기념문학상은 ‘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이다. 예술의 영역으로만 국한하기에는 친일문학이 우리 정신사에 미친 악영향이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광복 72주년을 맞아 ‘친일문인과 그들의 작품전’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는 친일문인들이 저지른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그들이 제국에 헌정한 작품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다. 또 왜 그들이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없는지를 명명백백하게 증거한다. 문학의 탈을 쓰고 지금까지 뭇사람들을 속여 왔을지 모르나, 역사는 그들의 비열한 행위를 낱낱이 기록하고 또한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우리는 항일독립투쟁과 반독재민주화운동, 민족민중문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문학이 더 이상 친일문학으로 오염되고 왜곡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폐지하라!
 

2. ‘친일 문학상’ 주관사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고, 미당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의 운영 및 수상자 선정을 즉각 중단하라!

3. 한국문학의 미래와 참다운 문학정신을 위해 문학인들은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고 ‘친일 문학상’ 심사와 수상을 단연코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2017년 8월 15일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민족문제연구소

금, 2017/08/1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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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NK Goodbye My Love, North Korea 연출 김소영│2017│Documentary│89min 38sec│HD│Color│16:9│stereo 언어 : 러시아어/한국어|자막 : 한국어, 영어 배급: (주)시네마달 SYNOPSIS 8명의 북한 청년들이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김일성 체제 비판 후 유라시아로 망명해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 등으로 다른 세상과 만난다 8명의 북한 청년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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