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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 혐의로 학살된 아산 주민 유해 햇볕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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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 혐의로 학살된 아산 주민 유해 햇볕 볼까

익명 (미확인) | 금, 2017/11/17- 16:53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 아산시 배방면 폐금광 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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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이 아산시 배방면 중리3구 야산에 위치한 세일 폐금광(배방읍 수철리 산 181-2번지)에서 유해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시굴조사를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달 아산유족회 회원들이 폐금광을 찾아 절을 하는 모습이다.

충남 아산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로 학살된 민간인의 유해 매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시굴조사가 시작됐다.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은 시굴조사를 통해 희생자 유해가 확인될 경우 아산시와 협의해 내년 중 본격 발굴을 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발굴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아래 공동조사단)은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아산시 배방면 중리3구 야산에 위치한 세일 폐금광(배방읍 수철리 산 181-2번지)에서 유해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산지역에서는 1950년 9월에서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 시기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 명 이상이 불법으로 학살됐다.

증언에 따르면 학살된 주민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여성 등 일부 마을 주민 대부분이 포함됐다. 임산부가 학살된 경우도 있다. 배방면이 희생자가 가장 많았고, 신창면, 탕정면, 염치면, 선장면 주민들도 다수가 희생됐다.

이곳 세일 폐금광에 유기된 희생자는 대략 200~300명으로 추정된다.

가해 책임자는 경찰이다. 당시 학살은 충남경찰국장과 온양경찰서장의 지휘 및 지시에 의해 자행됐다. 또 경찰의 지시를 받은 대한청년단(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와 태극동맹 등 우익청년단체들이 동원됐다.

주로 경찰과 우익청년단이 잡아들이고 총살한 후, 이곳 폐금광에 시신을 유기했다. 희생자들은 주로 온양, 배방, 신창 등지의 주민들이었는데 시신을 매장할 때에는 중리3구 청년들이 동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이 면내 10여개 마을을 돌며 ‘마을 회의’ 또는 ‘도민증 발급’을 해주겠다며 속여 주민들을 소집, 곡물창고와 창고 등에 감금한 후 새끼줄로 묶어 끌고 가 학살했다.”(목격자 증언, 진실화해위원회)

“우리 집에서 거리가 200미터 정도도 안 되었기 때문에 총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렸고 그 소리를 들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어두울 때인데 그날도 차에 사람을 싣고 지나가더니 총소리가 났었는데, 누군가 와서 삽을 달라고 해서 삽을 준 적이 있습니다.”(목격자 진술, 진실화해위원회)

암매장지는 이곳을 비롯해 여러 곳에 걸쳐 있다. 아산유족회에 따르면, 매장지역은 탕정면 용두1리 탕전지서 뒷산, 영치면 대동리 세지기 공동묘지, 산양리와 산양1구, 배방리 중리3구 뒷산폐금광 등이다.

앞서 정부기구인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경찰과 대한청년단, 태극동맹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조사에서는 아산지역에서 당시 희생자 중 모두 77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번 시굴 조사는 늦은 감이 있지만 아산시(시장 복기왕)의 큰 관심과 의지로 가능했다. 아산시는 지난 2015년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사업과 유해발굴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공동조사단에는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이내창기념사업회, 인권의학연구소·김근태기념치유센터, 인권재단사람, 장준하기념사업회, 제주4·3희생자유족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평화디딤돌, 포럼진실과정의, 한국전쟁유족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17-11-17>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부역 혐의로 학살된 아산 주민 유해 햇볕 볼까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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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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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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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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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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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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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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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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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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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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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운영위원장 최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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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부회장 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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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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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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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 보고 (원고 이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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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감사 임명 (감사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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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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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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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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