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 고양과 창원에서 적폐청산 토크 콘서트 열려
익명 (미확인) 님|목, 2017/11/16- 15:38
연구소는 촛불혁명 1년을 맞아 10월 27일부터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 전국순회 항일음악 토크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이 행사는 개관을 5개월 앞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기금 마련과 항일음악을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10월 27일 고양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3일 창원, 11월 9일 대전, 11월 17일 광주로 이어지는 이 공연에는 이재명 시장, 노회찬, 박주민 의원과 김광진 전 의원이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한다.
팟캐스트 ‘역적’으로 호흡을 맞춘 박한용 교육홍보실장과 MC노(노기환)의 사회로 진행된 콘서트는 ????항일음악 330곡집????을 정리한 고 노동은 교수의 아들 노관우 씨(국립전통예술고 강사)의 항일음악 시연과 이야기 손님의 토크가 어우러져 잊혀진 항일음악을 알리고, 항일음악의 현재적 의미와 2017년 청산해야 할 한국사회 적폐문제를 이야기하는 토크쇼 형식의 공연이다.
10월 27일 고양에서 열린 공연에서는 노관우 씨를 비롯한 연주단이 〈광복군 아리랑〉 〈신흥무관학교 교가〉 등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로 만들어진 항일음악과 이상준 작곡 〈깊이생각〉과 한유한 작곡〈압록강행진곡〉 등 창작 항일음악을 들려주며 관객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이어서 친일 음악가의 노래 〈희망의 아침〉(이광수 작사, 홍난파 작곡)과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작곡)를 영상으로 보여주었고 최근까지 국가 경축일에 친일음악가의 노래인 〈희망의 나라로〉나 〈선구자〉 같은 노래가 연주되었다는 점이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이야기 손님으로 나온 이재명 시장은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자가 촛불혁명 이후 1년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촛불을 든 우리 전사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또 문재인 민주정부가 수립돼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아마 인류 역사상 이렇게 깔끔하게 무혈의, 아무런 피해도 없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낸 건 아마 처음 아닐까 싶다”면서 “저는 우리 촛불혁명의 결과 정권교체를 했지만 이건 하나의 수단이고, 초입이고… 다음 단계 공정한 국가. 미래 희망이 있는 나라 만드는 게 마지막 과제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11월 3일 창원 공연의 이야기 손님인 노회찬 의원은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적폐가 민중의 삶에 대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헌법 앞에 과연 모든 국민이 평등한가”라고 자문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법정이나 검찰·경찰 앞에서 차별을 강요받고, 비참한 현실을 요구받는 게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 적폐 청산에 있어 과거 발생한 특정 권력의 일만 아니라 사회적 일상에서 차별받는 것도 바로잡아 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노회찬 의원은 식민지역사박물관에 대해서 “일본 야스쿠니 신사 옆에 있는 ‘유슈칸’이란 역사박물관에 가본 적이 있다. 세계지도를 그려놓고 2차 대전 당시 독립된 나라들을 그려놨는데, 인도 등 아시아 나라들이 서양 지배를 받다가 일본 덕분에 독립됐다고 해놨다”라며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세우려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연 말미에 이재명 시장과 노회찬 의원은 각각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운동’을 응원하는 영상 메시지를 남기고 역사관 건립 기금 후원에 범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
앞으로 11월 9일(목) 오후 7시에는 대전기독교연합봉사회관 연봉홀에서 박주민 의원과 함께, 17일(금) 오후 7시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대건문화관에서 김광진 전 의원과 함께 토크콘서트를 연다.
“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는 ‘자유, 평등, 진보'” “남북한 역사인식에서 공통적인 부분 중심으로 공동사업 기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천안=연합뉴스) 김은주 논설위원 = “한국의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오늘날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 평화통일과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이 되면 좋겠다”라고 기대를 표했다.
내년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 관장은 “남북한 교류를 통해 3.1운동을 중심으로 북한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이 남지 않아 제대로 포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 차원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념사업은.
▲ 아직 계획 단계이다. 일단 내년 4월 상하이에서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독립기념관 내 독립군체험학교가 있는데 신흥무관학교 교사를 복원해 거기서 독립전쟁을 체험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임시정부가 운영했던 인성(仁成)학교를 복원해 인성학교 체험 프로그램을 병행하려 한다. 초등교육에 해당하는 인성학교에서는 민주주의 관점에서 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1932년 임시정부가 상하이를 떠났고 인성학교도 더는 운영할 수 없었다.
임시정부는 교민 자녀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다. 한편으로는 민족교육, 한편으로는 민주시민교육이 이루어졌다. 중등과정의 삼일학교도 있었다. 임시정부가 직접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교사로 있었다.
–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은.
▲ 민주주의다.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주공화제가 확립됐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됐다.
1944년 마지막으로 개헌한 임시정부의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에는 대한민국의 정신을 ‘자유, 평등, 진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독립운동이 지향한 기본 가치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자유, 평등, 진보’가 과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고, 더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 후손들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 공동 발굴 사업을 기대하고 있다.
▲ 북한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사료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북한에도 3.1운동 관련 사적지나 자료가 많다. 북한의 관련 재판기록을 조사하면 더 많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에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요소도 많다. 이를 중심으로 공동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남북 간 역사, 특히 근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혀나가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는 남북한이 모두 인정하고 존경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유해발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이 협력해서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소재 안중근 의사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겠다.
안중근, 홍범도, 신채호 등 남북이 모두 인정하는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채호 관련 원자료는 평양 인민대학습당이 많이 소장하고 있다. 10여년 전에 독립기념관에서 입수하려고 한 적이 있었으나 성사 직전에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다. 남한 자료만 갖고 단재 신채호 전집을 발간했다. 북한 자료까지 포함해서 다시 만들고 싶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 기록이 적기 때문이다. 여성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독립운동과 관련돼 활동했으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여성들을 따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대표적인 경우가 독립운동가의 부인들이다. 특히 해외에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부인의 도움이 없었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하는 남편의 뒷바라지 자체가 독립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의 구술 회고록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 소리가’를 보면 밖에서 독립운동하다가 동료들과 집에 들어온 시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들의 끼니를 해결하고 수발을 드는 것은 전적으로 부인, 딸, 며느리, 손주며느리들의 몫이었다.
국내에서 활동한 경우 가장 중요한 포상기준이 옥고이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옥고가 적다. 여성이라고 봐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경찰에 잡혀가도 기소가 안 되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기록에 남아있는 여성 한국광복군의 수는 10명 남짓인데 실제로는 더 많은 여성이 해외에서 무장투쟁에 뛰어들었다. 광복군이나 조선의용군의 남아있는 사진에는 군복 입은 여성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외국인들도 한국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 지금까지 60~70명 정도가 포상을 받았다. 대다수가 중국인들로, 모두 중국국민당 쪽 인물들이다.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한 중국인 중에는 중국공산당 쪽 인물들도 있는데 공산당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포상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국공합작 당시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충칭에 와 있었던 저우언라이는 임시정부를 많이 도왔다.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 중국공산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인들 중에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직접 참여한 사람이 제법 있다. 노동자도 있고 교사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보는 경향 때문에 지금까지 딱 한 명만 서훈을 받았다. 인권 변호사 후세 다츠지(布施辰治)이다.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 관리는.
▲ 중국 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대부분 독립기념관에서 관리한다. 직접 관리는 못 하고 현지 사람을 내세워 간접적으로 관리한다. 한중관계가 어려워지면 사적지 관리도 어렵다. 최근 들어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를 중국 정부가 직접 조성하고 관리도 직접 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중국이 일방적으로 사적지를 복원하고 시설물을 설치하면 한국의 독립운동은 중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관점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한국의 독립운동은 쌍방향 관계였다. 중국이 지원했지만, 우리도 할 만큼 했다고 본다. 중국의 역사해석이라는 것이 항상 중국 중심이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독립기념관 운영 방향은.
▲ 한국 독립운동은 단순한 독립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뿌리이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평화통일의 토대가 되는 운동이었다. 독립운동과 민주주의, 독립운동과 평화통일로 접목되는 독립기념관을 만들고 싶다. 당장은 내년 100주년을 기리는 사업을 잘 꾸려나갔으면 한다. 특히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했으면 좋겠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전문기관으로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 독립기념관 내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활성화하고 싶다. 그야말로 독립운동사 연구센터가 되면 좋겠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의 세대 단절이 심각하다. 독립운동사 전공자들은 정년 퇴임을 했거나 이를 앞둔 교수들이 많다.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는 젊은 세대는 수도 적고 아직은 앞세대 만큼의 연구 업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 위축되고 있으니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지청천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이 외할아버지이다.
▲ 첫돌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는데 어른들 말씀이 늦게 보신 외손자여서 말년에 매우 예뻐하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현역 일본 군 장교 신분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잡히면 사형이었다. 가족들이 뒤늦게 수소문해서 만주로 갔다. 외할아버지는 공인으로 존경하지만, 사실은 외할머니가 더 존경스럽다. 농사와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1919년생으로 충칭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셨다.
▲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조교수)를 지냈다. 2006∼2010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2013∼2017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2016년 근현대사기념관 관장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제11대 독립기념관 관장에 취임했다.
시민들의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