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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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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익명 (미확인) | 수, 2017/11/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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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사진=tbs 공혜림 기자>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주도했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은 현 정부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비판의 뿌리도 ‘친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임 소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8주년을 앞두고 tb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친일은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으로, 파시즘 철학”이라며 “적폐청산을 정치적 보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파시즘적인 철학을 가진 자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며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임헌영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 기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공식적으로 펴낸 지 오는 8일 8주년을 맞습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가 과거사 청산의 일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일파 청산에 관대한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8년에 걸쳐서 친일인명사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 18년 동안의 온갖 연구 축적을 모아서 낸 것이 친일인명사전인데, 이것을 2009년에 저희가 냈습니다. 이 사전을 낸 지가 벌써 8년째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 이 사전을 내고 나니까 국민들에게 우리가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성원으로 이런 사전을 냈습니다, 약속 지켰습니다’ 하고 신고식을, 쉽게 말하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모 여자대학교 강당을 다 빌려서 계약을 해놨는데 하루 전에 못한다고 장소를 못빌려준다고, 대여 못해준다고 취소 통보가 왔어요. 할 수 없이 거기서 못하고 백범 김구 선생 묘소에서 출판 기념회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친일인명사전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열렬한 환영을 한 데도 불구하고 권력층, 집권세력들은 친일인명사전을 냉대하는 구나, 출판 기념회 장소까지도 강제 취소시켜서 못하게 하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친일인명사전입니다.

– 기자: 18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 임헌영: 거의 한 100여건의 각종 소송들이 있었고. 그 많은 소송을 1건도 우리가 진 게 없어요. 다 이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사히 나올 수 있었고. 특히 가장 고비를 겪었던 것은 인쇄까지 다 끝난 상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사전에 들어가 있다고, 박지만씨가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그땐 정말 우리도 위기를 느꼈어요. 그랬는데 아무리 권력의 압력이 있어도 결국은 재판장에서 친일파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우리 사전에 실린 기사를 보고 판결 나서 바로 발행할 수 있었던 거죠.

– 기자: 왜 박지만씨가 소송 냈을 때 가장 큰 위기를 느끼셨습니까. 

= 임헌영:  인쇄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내놓을 판인데. 박지만씨가 가처분 신청 내면 만약에 받아들여지면 다 찍어놓은 책을 못 내는 거예요. 정권도 이명박 정권 때니까 굉장히 위기를 느꼈죠. 다만 우리는 학술적으로 박정희가 썻던 혈서, 우리가 찾았잖습니까. 일본에 있는 국회 도서관에서 우리 연구원이 찾아서. 누구도 아무리 박정희를 옹호하고 싶은 사람도 그걸 보고는 친일파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죽하면 우리가 이겼겠어요, 재판에서.

그 후손들이 다 자기 조상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 사전에 들어가면 안 된다, 친일파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고 소송 걸었는데 우리가 친일했던 거 다 해명해주고 다 해결됐죠. 실제로 후손들 중에는 참 좋은 사람들도 많고, 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해당자가 대단히 억울한 측면들도 참 많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민족사적인 전기를 볼 때, 동아시아의 영원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본도 우리나라도 과거사 청산해야 하고 우리 정치 개혁을 위해서도 이건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이다. 이래서 우리도 참 냉험하게도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만 가지고 한 것이 친일인명사전이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거고 후손들이 여기 와서 처음에는 분노해서 왔다가 나중에는 차근히 우리 취지를 설명 듣고는 이해할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연구소 후원을 해주거나 회원이 된 분들도 있어요. 이게 정말 우리 민족사를 위해 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후손들로서는 우리 조상 그렇게 한 게 잘못이다, 이 한마디면 끝나는 겁니다. 그러지 않고 옳았다, 그땐 다 친일했다, 친일이 뭐가 나쁘냐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히 곤란하고.

– 기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란 말씀이네요. 

= 임헌영: 이 사전을 보시면 저는 이게 쉽게 말하면 광복 8.15 이후에 우리나라 학문 연구의 바로미터입니다. 우리나라 학문이 이 정도로 성장했다. 국가권력은 아주 나쁘게 온갖 독재자와 쿠테타를 거쳐 갔지만, 그런 속에서도 우리나라 학자들이, 양심적인 학자들이 학문 연구를 축적해왔습니다. 그 많은 축적돼온 학문 연구를 우리가 다 종합한 겁니다. 우리가 뭘 새롭게 연구한 게 아니고 그동안 나온 신문, 잡지, 논문, 학술지에 실린 각종 조사들, 기록들, 증언들 다 종합해서 객관적으로 그대로 썼습니다. 우리 사전 서술하는 방법이 ‘친일한 사람들 이렇게 해서 나빴다’ 이런 구절은 하나도 없어요. 행위 자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건조하게 냉철하게 그야말로 냉철한 하드보일드라는 냉철한 문장으로 딱딱 객관적인 기사체처럼 역사에서 말하는 기전체처럼 그대로 쓴 겁니다. 8.15 이후에 산 분들은 이후 행적까지도 그대로 써줬어요. 후손들도 자기 조상이 그렇게 활동한 건 전혀 몰랐을 거예요. 이력서가 가장 자세하게 나온 겁니다. 8.15 이후 자기의 업적이라고 생각한 것도 다 써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사전 나온 뒤에는 이걸로 시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기자: 정치적인 색깔로 보는 분들도. 

= 임헌영: 많았죠. 우리나라는 친일파 청산을 안 한 정도가 아니라 8.15 이후에 친일파들이 세상을 지배했단 말이예요. 정치, 사회, 군부, 경찰, 사법, 입법, 재벌, 종교계, 교육계까지도 모든 기관에 그런 분들이 지배했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이 볼 때는 이게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이었다가 민주화라는 게 불과 11년밖에 안 됩니다. 고작 민주화라는 시절을 보낸 게 4.19 뒤에 1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11년밖에 안 됐잖아요. 그 11년 동안에 있다가 친일 후손들이 또 집권해서 옹호해온 것 아닙니까. 국정교과서까지 만들고 추태를 보여주다 물러났지만. 그런 속에서 그 분들은 이걸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연구소는 어떤 정파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일파 청산에 찬성해주고 지지하고 도와주면 그건 우리 연구소 편이 되고.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비판하면 8.15 이후 제2의 친일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기자: 후손뿐 아니라 정치적 압박도. 

= 임헌영:  많았고. 우리는 일체 모든 연좌제를 반대합니다. 조상이 친일파였어도 후손이 훌륭한 정치가면 정치가로서 봐줘야지. 우리 연구소에서는 그 조상의 후손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절대 공개 안 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었을 때 판단 요청이 오면 그 정치가 때문이 아니고 친일을 한 당사자의 행적은 판가름해주는 거죠. 후손에게 피해가 가기 위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친일파를 올바르게 판단해주는 역할만 했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 기자: 학술적인 활동을 정치적으로 본 이유는 뭘까요. 

= 임헌영:  자기 조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죠. 친일을. 자기 조상만 친일파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하니까 엉뚱한 사람들도 이 사람도 친일파다, 이렇게 함께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정지용 시인이 그랬죠. 친일 후손 중에는 정지용 시인도 친일했다, 왜 사전에 안 넣었느냐, 이거 정치적이다. 어거지를 쓴 거예요. 정지용은. 여러모로 검토하거든요. 친일파가 아닌 사람을 넣은 건 한 명도 없습니다. 사전을 처음 만들 때 집필진들에게나 친일파를 선정하거나 심의할 때 제가 했던 말이 ‘여기 여러분들이 친일파를 선정해서 실을 때 우리 할아버지라고 생각해라. 나의 할아버지다. 이렇게 생각해 달라. 만약 내 할아버지가 여기 들어가면 기분 좋겠나. 나쁠 거다. 되도록 적게,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아무리 잘 봐줘도 이건 아무리 봐도 친일파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분들만 소수로 해서 뽑아라’. 엄선한 겁니다.

– 기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가요. 

= 임헌영: 편찬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위원장이 학자들이죠, 국사학자들. 그 밑에 필진들은 200여명. 몇십명이 각 분야별로. 수십명의 편찬위원들이 각 분야별로 다 나눠서 수십 차례 회의를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합동 심사를 해서. 그 다음에는 제1차 수록 예상자 명단을 국민들에게 다 알려줬어요. 그러면서 이의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친일 안 했고 독립운동 했다는 자료를 가지고 오라, 그러면 우리가 참고하겠다 해서 공고했죠. 한참 지난 뒤에 제2차 확정 명단을 또 발표했어요. 또 언제든지 이의 있으면 제기해 달라. 그동안에 각종 고소, 이의 제기를 한 게 100여건 됐다고 봐요. 그게 해결된 마당에서 책을 펴낸 겁니다.

사전이 나온 뒤에는 일체 말이 없어요. 그 전에 소송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 해결됐지요. 오직 행위자의 팩트 자체만 가지고 학술적인 측면에서 넣었거든요. 그 참고 자료를 각자 각자 한 사람마다 다 넣어줬습니다. 이런 사전은 없어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사람 하나마다 참고자료를 다 넣어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자기 조상에 대해서. 심지어는 우리나라 자료, 일본, 중국 자료 다 뒤졌거든요. 오죽하면 국가기관에서, 교육부니 법원이니 문제가 생기면 우리한테 자문해서 우리가 판단해 주거든요.

– 기자: 친일이란 역사가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 임헌영: 몇 십 년 전 일을 지금 들춰서 뭐하느냐.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자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세력이 오랫동안 집권한 나라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말하면 인종 편견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존중합니다. 인디언 추장들도 자기 종족을 하나라도 죽이면 추장이 안 돼요. 우리 민족과 나라를 배신했던 사람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이런 나라가 지구상에 없어요.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이러지 않아요. 독재자, 군부 독재, 쿠테타 온갖 걸 식민지 이후에 겪어왔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하다가 우리가 친일인명사전 만든다 하니까 옛날 거 아니냐 하다가, 그 사람들 명단을 보니까 우리가 그렇게 쿠테타, 독재, 부정부패에, 도둑이 큰 소리 치고 그걸 잡으러 가는 경찰들이 벌벌 피신해 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되레 피신해가지고. 이 거꾸로 된, 착한 사람이 피해 받고 나쁜 사람이. 그 원인이 뭐냐. 온갖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단 말이예요. 뭐든지 그 뿌리를 캐면 친일인명사전하고 다 연결된다.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의 소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동학군은 독립운동가를 낳고 독립운동가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쟁이를 낳고. 친일파는 독재자를 낳고 독재자는 재벌을 낳고 재벌은 많은 사장을 낳고.’ 삼대째 가난하게 산다고 소설에 그렇게 딱 나와요. 물론 그런 식으로 두부 자르듯이 그런 건 아니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뿌리가 친일이고. 우리나라 걱정보다 미국 걱정을 더 하는 사람들. 어떻게 성조기를 드록 시위합니까, 태극기도 아까운데. 그것도 정말 친일파적인 발상이다.

– 기자: 과거 친일 가치관이 아직. 

= 임헌영: 아직도 미완이라고 보고 있고. 우리나라는 특히 나쁜 사람들이 상대편을 공격할 때 종북 좌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집권했잖아요. 자기 밑에 친일파들 배치해서 집권해서 독재하다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게 반공이었거든요. 자기 반대하는 건 빨갱이로 몰았단 말이예요. 친일인명사전이 나온다는데 ‘북한 사람 안 넣었다’. 너무나 무식한 소리입니다. 북한 사람 다 들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작사했던 시인도 들어가 있어요. 남북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의 정통성, 소위 민족을 팔아 먹었다, 그런 사람은 이데올로기, 남북에도 관계 없고 돈 많든 없든 종교에도 관계 없이. 오직 그겁니다, 민족과 조국이 어려웠을 때 배신했느냐 안 했느냐. 거기에 딱 초점 맞춰서 판단했습니다.

지금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숫자가 그 당시 전 국민 2천만명으로 쳐도 소수입니다. 반대파들이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 조상이 대단한 친일파인 사람들은 뼛속까지 반대하는 거죠. 친일 옹호하고 우리를 빨갱이로 몰려고 작정한 분도 있고. 또 뭔지 잘 모르고 세상 그렇게 다 살았는데 그게 나쁘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방관자예요.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자발적으로 자기가 하는 행위가 뭔지 아는 똑똑한 사람들, 사회 지도급 인사, 판단력까지 가진 사람이 자기 행동으로 자기 하나에만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위와 명예와 권세, 실세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우리가 넣은 거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교장, 면장, 우리 명단에서 다 뺐어요. 우리도 논쟁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생계형 친일, 먹고 살기 위해서 했는데 뭐 나쁘냐. 그런 사람들은 친일 행위를 안 해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생계형 친일이란 말은 성립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친일파로 안 봅니다. 혹시 이 방송 들으신 분들은 전해주세요. 우리가 한 것을 우리가 앞으로 더 잘 살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평화 통일해서 우리 민족이 자주롭게 잘 살기 위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적인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 한 거지. 잘 사는 사람들 괜히 배 아파서 한 게 아닙니다.

– 기자: 요즘 ‘적폐 청산’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립니다. 

= 임헌영: 근대 민족 100년사 중에서 적폐청산 제1호가 친일파 청산입니다. 그걸 해결되면 상당수가 바뀌고. 그래야 정치가들이나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잘 사나 연구해야지. 결국 친일파 가치 철학. 사대 외세 의존하는 가치 철학이 그대로 유전되어서 유전만 되는 게 아니라 더 악랄한 수법으로 퍼져서 지금 그런 상황 아닙니까. 적폐청산 1호죠, 아니죠 0호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친일청산은 항상 먼저. 친일파는 행위만 생각하는데 행위만이 아니라 가치관입니다. 파시즘 철학입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를 싫어합니다. 절대 평등을 안 해요. 자기 가족한테도 자기가 어른이고 우리 가족은 내 부하. 직장에서도 파쇼적이고.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 민주주의를 싫어하죠. 그런 철학으로. 전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평화를 좋아하는. 가짜 간첩 만들고 탄압하고 이래야 자기들은권세를 누리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단 말이예요. 호혜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싫어 한단 말이예요. 그런 철학은 21세기 UN이 정한 세계시민에 위배돼죠. 아주 못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적폐청산을 그야말로 마약에 박근혜 정권이 그대로 있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지금 그 밝혀지는 세계 인류에서 볼 수 없었던 죄악입니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최대 과제가 촛불 시민들이 바라는 적폐 청산입니다. 어떤 분들은 또 일부 권세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인 보복이다. 그야말로 파시즘적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특권을 누리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적폐청산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8·15 이후 첫 기회입니다. 항상 해야 하는데 못했어요. 4·19 이후에도 적폐청산 못했기 때문에 5·16 일어난 거고요. 근대 우리 민족사에 장애물이었던 국민 복지의 장애물, 평화통일의 장애물, 모든 부정부패, 권력 남용 다 들어가는 거죠. 독재 찬양도. 지금은 국정원에서 돈 대서 시민단체들이 전부 그게 독재 옹호하는 거잖아요.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 기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임헌영: 사전이 나온지 8년을 맞았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8년 동안 만질정도 나갔어요.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 생각에는 이게 웬만한 가정마다 비치서로 집안 비치서로 집안 한 권 있어야 하고. 모든 학교, 기관, 하나씩 들어가야 해요. 다 가지고 기본 가치관 자체를 파시즘적 철학을,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없고 이 생각 가져야 합니다. 친일파라는 개념과 그 사람들이 저지른 작태, 범죄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오히려 잘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서서 압력행사하려고 하니까 민주주의가 불안하죠. 그런 것만 인식하면 ‘아, 이런 게 간단한 일이 아니구나’. 지금은요. 친일한 분들은 100% 돌아가셨습니다. 후손들은 아무 죄가 없어요. 자기 조상의 행위가 잘못됐으면 잘못됐다, 이렇게 하면 간단히 끝나는데 자꾸 옹호하려는 데서 파시즘적 생각을 부활시키려고. 그러니까 독재정권 자꾸 옹호해서 마찰이 일어나는 거죠 . 진짜 소수거든요. 지금 거의 청산됐다고 보고. 소수가…. 유럽이나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실현했던 나라에 비해서는 아직까지 구시대적 파시즘적 많은 편이예요.

우리 연구소는 지금 이제 새로운 사옥을 사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돈이 많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20억을 빚지고 갑니다. 지금 이 사무실은 너무 좁고 강좌도 할 수 없고. 교통 좋은 데로 가서 강좌도 열고. 식민지 역사 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하고 있거든요. 큰 기부를 해주시길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공혜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7-11-06> tbs

☞기사원문: [그때그사건-인터뷰 전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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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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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7/3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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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아침좋은글>

 

좋은 일만으로 기억하며

지낼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향내와 인간미

물씬 풍기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속 깊은 옹달샘의

맑은 물 같은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 만났다고

정말 즐거워할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난 행운아야 라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더할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거나

짜증 나지 않고 미소 머금을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행복했다”

“잘 했어” 라고 말할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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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7/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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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아침좋은글>

 

좋은 일만으로 기억하며

지낼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향내와 인간미

물씬 풍기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향수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산속 깊은 옹달샘의

맑은 물 같은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 만났다고

정말 즐거워할 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난 행운아야 라고 말하며

어깨에 힘을 더할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하거나

짜증 나지 않고 미소 머금을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행복했다”

“잘 했어” 라고 말할수 있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화, 2018/07/3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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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나라에 남아서 지킨 놈은 다 친일이고 도망간 놈만 애국자냐? 병신들…

화, 2018/07/3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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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만 하오리까. 일본이 연합국과 편하게 싸우라고 불가침조약 체결하고 뒤를 기켜준 소련.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떨어지자마자 8월8일 불가침조약 파기하고 다죽어가는 일본군 사냥하며 만주로… 딱 일주일 싸우는척하고 한반도 반을 쳐먹은 소련… 완장차고 따라 들어온 김일성… 그때 한반도 문맹률이 78%!  김일성이가 친일을 청산했다고 사기치는 놈들과 거기 속은 바보들… 글도 못읽는 무지랭이 완장채우준다고 나라가 되는가 아니고… 북조선 철도, 발전소는 일본 기술관료 출신 아니면 누가 운전했을까?  문과나와서 행정관료, 경찰관료했으면 친일이고, 이과나와 기술관료했으면 친일이 아니라고?  개가 웃는다!

화, 2018/07/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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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8/0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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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함께만들어요!

수, 2018/08/0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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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일제의 병영으로 가득한 땅
– 용산시가도龍山市街圖

 

01

용산시가도

 

이번에 소개하는 자료는 용산이 일제침략의 총본산이었음을 알려주는 1929년에 발행한 지도이다. 축적은 1:7,500이며 색인으로 행정구역(町, 洞, 里) 표기와 함께 관청과 회사, 학교를 표기하였는데 총독관저, 보병영步兵營, 병기지창兵器支廠, 군사령부, 군사령관 관저, 야포병영, 공병영工兵營, 기병영騎兵營, 사단사령부, 사단장관저 등 군사시설과 철도국, 철도원양성소, 철도공장, 철도병원 등 용산역을 중심으로 한 철도관계 시설, 용산소학교, 중학교, 효창보통학교, 삼판三坂소학교 등 학교 시설, 용산경찰서, 경성형무소, 형무소공장 등이 기재되어 있다.

지도는 모눈의 형식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동일한 축적과 형식을 갖춘 시가도, 특히 경성시가도 같은 지도를 모눈에 이어서 맞춰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범례로 교량, 산악 등고선, 성벽, 철도, 전차선로, 행정구역 경계까지 표시하였는데 이렇게 상세한 범례와 모눈의 형식은 군사용 지도로 사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시가지에는 지번과 함께 주요 건물들을 모양대로 그려 넣었으며 지도의 범위는 북쪽으로 서울역 아래, 동쪽으로 이태원, 서쪽으로 마포, 남쪽으로 용산역까지 보여준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서울지도>의지도전시관에도“용산시가도”를볼 수 있는데1927년에 발행된 것이다. 연구소 소장 “용산시가도”(1929년판)와 다른 지형이 세 곳인데 이는 모두 을축년 대홍수(1925년)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먼저 1927년판에 보이던 용산역 하단의 이촌동 지역 마을이 1929년판에서 사라졌다. 해마다 비만 오면 침수문제로 이재민이 발생하던 이촌동이 을축년 대홍수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고 수많은 피해를 입게 되자 조선총독부는 이촌동 주민들을 노량진(500戶)과 공덕리(215戶)로 나누어 이전시켰다.
원래 이촌동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요청한 이전지는 효창원이었는데 관철되지 못하였다. 대신 효창원 부지에는 용산역에 있던 철도관사를 옮겨 지은 것을 1929년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용산역 위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하천을 정비하여 직선화한 모습도 보이는데 2년 만에 이와 같이 변화된 지형도는 을축년 대홍수와 관련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02

물에 잠긴 이촌동, 『매일신보』 1925. 7. 13.

 

용산역 근처에는 구획이 정리된 신시가지의 모습과 함께 거대한 일제의 군사시설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조선의 중심부에 일제의 군대를 둔 것은 식민지 조선의 치안을 담당하는 마지막 보루인 군대를 상시적으로 주둔시켜 안정된 통치기반을 조성하려는 의도와 함께 대륙침략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03

일장기가 걸려 있는 조선군사령부 정문, 사단대항연습사진첩

 

04

사단대항연습사진첩일본군의 위세를 과시하는 관병식 장면 항공사진, 사단대항기념사진첩

 

이처럼 1929년판 “용산시가도”는 용산 주둔 일본군의 관계시설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자료는 <민족사랑> 2014년 9월호에 실린 「하늘에서 본 일제강점기 용산 일대 전경」(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0)과 함께 보면 용산의 실상을 더욱 생생하게 살필 수 있다.
• 강동민 지료팀장

수, 2018/08/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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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진 기획실장 인터뷰 • 이홍관 정리

현재 국제운송회사 로드 원(ROAD 1) 로지스틱스를 운영하고 있는 홍남화 아산지회장은 2000년 9월부터 연구소 회원에 가입했다. 2016년 5월에는 아산 둔포면에 있는 친일파 윤웅렬, 윤치호 공덕비를 제보하였고, 아산지역 민간인학살 유해발굴사업(2017년 1월~5월)을 제안하고 이끌었다. 우리에게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각인시킨 <나는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선생과사촌지간이다. 찾아간 날, 마침 홍남화 회원은 업무상 무언가 바쁜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이곳저곳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를 받고 처리하면서도, 성의 있고 진지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인터뷰는 아산의 신정호수 인근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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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아산지회의 회원은 몇 명이나 되나요?

답 : 저희가 80명 정도 되요. 3년 전까지만 해도 천안아산지회였는데 분리하고 보니까 좀 아쉽게 느껴집니다. 열성적이고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회의 발전을 전망하면서 힘들더라도 각자 독자적으로 가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문 : 천안아산지회로 활동하셨을 때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답 : 그때나 지금이나 주로 임종국 선생님 추모사업을 했었죠. 오랫동안 노력이 쌓이니 2016년에는 천안 신부공원에 임종국선생의 조형물을 세웠고 앞으로 지역의 명소로 가꿔 나갈 계획입니다.

 

문 : 아산에 내려오시기 전에 이미 연구소와 인연을 맺으셨지요?

답 : 제가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였는데요. 1997년 또는 1998년 무렵 수원 북문 부근에서 북한동포돕기 캠페인을 보고 그 단체가 어디인가 하고 찾아갔더니 연구소 경기남부지부와 관련되어 있더라구요. 그것이 연구소와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북한동포돕기 성금으로 5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 무렵 수원지역에서 열린 강연들을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수원역전의 경기서적에서 리영희 선생님 강연에도 참가해 제가 “DJ와 YS는 둘 다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왜 차이가 납니까” 하고 질문했더니 리영희 선생님께서 “한 사람은 철학이 있고, 다른 사람은 철학이 없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원청소년문화센터에서 노동은 교수님의 친일음악 강연도 참석했습니다. 노동은 교수님 강연은 화성시가 홍난파기념관 건립을 계획하자 반대운동 차원에서 연구소 경기남부지부가 마련한 것이었습니다. 그 강연에서 방학진 사무국장을 처음 만났는데 현재 방학진 기획실장은 기억을 못하시네요. 그 후 오산으로 이사해서 2001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문 : 수원에서 오산으로 다시 천안에서 고향인 아산으로 계속 내려오셨네요?

답 : 제 회사 이름이 로드 원(ROAD 1)입니다. 1번 국도를 타고 대륙까지 오가자는 뜻입니다. 우리 가족사를 살펴보니 큰 집은 북한 진남포에서 해방을 맞고 소련군에 쫓겨 인천으로 내려옵니다. 우리 집안을 보면 수백 년간 한 곳에서 살다가 개화기를 거치면서 할아버지는 천안, 아버지는 홍성, 저는 아산에서 태어납니다.
지난 100여 년의 격동과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 집안이 이리저리 내몰렸던 거죠. 그렇게 집안 어른들의 기억 조각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다보니 다시 고향인 아산으로 오게 되었고 그동안 잘 몰랐던 가족사를 80% 정도는 복원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고, 이름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오명으로 남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가족사를 복원했던 것 같습니다.

 

문 : 아직 복원하지 못한 가족사의 20%는 무엇입니까?

답 : 6·25전쟁 전후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의한 망각이 그 20%입니다. 그래서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에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 당시 희생될 뻔 하셨습니다. 아산 현충사 부근의 황골이라는 마을은 대대로 남양 홍씨(홍남화 지회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홍대용 집안이다) 집성촌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와중에 황골에서 우익에 의한 학살이 벌어진 것은 1950년 추석 무렵입니다. 새벽에 아버지가 화장실을 가던 중 요란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사촌이며 큰어머니가 모두 끌려간 후였습니다. 우익 청년들이 동네 사람들을 공회당에 가두어놓고, 좌익 혐의자에 대해 인민재판을 거꾸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운좋게도 친척 되시는 할머니가 두둔해주어 살아남았지만 아버지의 큰어머니를 비롯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가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홍세화 선생도 그때 죽을 뻔했습니다. ????나는빠리의택시운전사????에그 내용이 실려 있구요. 그 후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가해자들과 한평생 사셨습니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집과 살림살이는 풍비박산 났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릴 적부터 6·25 이야기를 알음알음 알아 오면서 자랐고, 숙명처럼 민간인 학살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됐을까, 시골마을에 두레패가 왜 둘이나 있는지 의문을 품었지요. 난리가 끝나고 마을 한켠을 지키던 왜가리떼도 사라지고 맙니다.

 

문 : 그래서 이번에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에 열심히 참여하셨군요?

답 : 네. 6·25전쟁기에 민간인 학살은 학살의 주체나 피해 유형이 다양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요시찰대상처럼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은 좌익사상자들을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구실로 보도연맹을 만들고, 이들을 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산지역에서 보도연맹건으로 희생된 사례를 접하지 못했습니다. 아산의 경우 UN군이 들어오면서 북한군 지배가 끝나가는 2~3일 전후 치안 공백기에 우익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차별 학살을 벌였고 이후 치안이 확보된 상황에서 경찰이 좌익 혐의자들을 검거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굴한 설화산 민간인 희생자 유골은 1951년 1월 평택까지 중공군이 내려오자 후퇴 직전의 경찰이 학살한 좌익 혐의자들의 유골인 거죠.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기록에는 아산지역 민간인 희생자를 800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일부에서는 피난민들의 희생이 컸던 점을 들어서 1,300명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천안의 경우 당시 천안경찰서 김종대 서장이 희생을 줄이려고 노력했다는 미담이 전해지고 있는데. 아산에서는 그렇지 못했기에 엄청난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문 : 내년에 제2기 진화위가 출범할 것 같기도 한데요. 그러면 현재 직업을 잠시 접어두고 조사관 활동하면서 민간인 학살 진상을 조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답 : 이번 설화산 유해 발굴 현장에 진화위 당시 아산지역 조사관으로 활동하신 경찰관이 휴가를 내고 조용히 찾아주었는데 본인도 당시 조사가 미흡했다고 말하더군요. 여하튼 2기 진화위에서는 1기와 달리 위원회뿐 아니라 아산시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예상되는 만큼 더 이상의 논란이 없도록 명확한 조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이번에 당선된 아산시장이 후보 때 공약으로 내건 민간인 학살 실태 파악과 공청회 개최, 인권기념관 건립이 반드시 이뤄지길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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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아산지회는 이밖에도 친일파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교체운동도 열심히 벌이고 계시지요?

답 : 우선 새로 출범한 아산시의회와 충남도의회 차원의 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노력하고 표준영정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다행히 표준영정 퇴출 서명운동에 함께 했던 아산지회 회원들 중에 각각 아산시의원(홍성표 회원)과 충남도의원(안장헌 회원)에 당선되어 아주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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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이문구의 「관촌수필」에는 바다에 마을사람을 수장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산 구성리에서도 마을사람들을 좌우로 길게 세워서 바닷가로 나가게 하고, 물이 차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자 총을 쏴 살해해서 그대로 수장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현장을 목격한 희생되신 분의 딸이 노인이 되어 증언합니다. 엄마한테 동네 청년들이 남편이 어디 있냐고 묻자, 마당에서 놀던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가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 길로 아버지는 불귀의 객이 됩니다.
현재 이 같은 증언을 할 분들은 찾기 어렵고, 생존해 계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후손들에게 당시 상황을 여간해서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6·25전쟁 때 학살된 유가족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고, 반대로 한 사람을 통하면 가해자와 연결되지 않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며 어설프게 덮기보다는 민족사의 상혼을 드러내 근원부터 차근차근 치유하면서 서로에게 응어리진 아픔을 보듬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수, 2018/08/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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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하다 간첩 누명을 썼던 임헌영 소장이 6월 21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로부터 불법적인 수사를 받으면서 작성된 진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는 모두 그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무죄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른바 문인간첩단 사건은 1974년 문인들이 개헌 지지 성명 등을 발표하자 보안사가 임 소장을 비롯해 이호철·장병희·정을병·김우종 씨 등 문인 5명을 상대로 고문과 가혹행위 끝에 거짓 자백을 받아낸 뒤 처벌한 사건이다. 당시 보안사는 일본에서 발행된 잡지 『한양(漢陽)』에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했고, 법원은 임 소장을 비롯한 이호철·장병희·김우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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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이 사건을 재조사한 뒤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었던 보안사가 불법 수사했으므로 잘못된 판결”이라며 재심을 권고했다. 이후 이호철·장병희·김우종 씨 등은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검찰은 2017년 독재정권 시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았던 임 소장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 편집부

수, 2018/08/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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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65개 독립·민주화운동 단체, 교육·학술단체 등이 활동하고 있는 역사정의실천연대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이하 국정화저지넷, 사무국 민족문제연구소)는 6월 6일 오전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앞서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대구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강은희의 심판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박근혜 정부의 반 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인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가슴에 비수를 꽂은 인물, 국정농단 세력을 비호한 인물, 강은희 후보에게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내려달라”며 “2·28민주화운동 정신과 촛불정신으로 강은희 후보를 단죄해달라”고 대구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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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1일 대구시교육청 앞에서도 국정화저지넷과 대구 5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대구네트워크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무너져 가는 공교육을 바로 세우고 대구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교육청의 수장이 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마땅하다”라며 강 후보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역사의 산증인인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데 위안부합의 주동자인 인물이 내가 사는 대구에서 교육감 후보로 나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각계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하고 6월 13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강은희 후보는 40.7%의 득표율로 대구교육감에 당선됐다. 그러자 대구의 학생·청소년들이 강은희 대구교육감 당선을 취소해 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리며 학생들 손으로 교육감을 뽑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강 교육감은 2015년 새누리당 의원 시절 역사교과서 개선 특별위원회 간사로서 중학교 역사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지지 여론조성에 앞장섰다. 또 여성가족부 장관 재직 당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옹호하며,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일본 정부의 ‘위로금’을 받도록 회유하고 종용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4년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특혜 입학 등을 비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송민희 홍보팀장 /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사무국

수, 2018/08/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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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회 회원인 박노정 시인이 7월 4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시인의 부고기사가 여러 언론에 났지만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쓴 기사 제목에 가장 공감이 간다.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 별세〉.
박 시인을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박 시인이 ????진주신문????대표이사 시절 그의 소개로 진주의 어른인 남성(南星) 김장하 선생을 만났으니 아마도 1990년대 후반으로 짐작한다.

▲ 박노정 시인./경남도민일보DB

????진주신문????은1990년진주시민들이모여창간한신문으로지역의수구적인여론에맞서 정론직필 그리고 ‘진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정신을 ‘신분해방운동인 형평, 임진왜란 때 2차례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서 민관군이 일체가 돼 보여준 주체, 남명 조식 선생의 호의’ 등 3가지를 꼽았다.
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이사뿐아니라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진주민예총회장,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를 빼놓고 진주의 시민운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있던 2005년 5월, 박 시인은 지역의 후배들과 함께 진주성 촉석루 옆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내 박 시인을 포함해 4명이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선고가 부당하다며 모두 노역장 유치를 자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벌금 대납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당시 4명의 벌금은 2,000만원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성금이 이보다 더 많은 2,370만원이나 모아졌다. 박 시인 등은 나중에 이 성금 중 일부를 연구소 진주지회 결성(2012년 3월) 자금으로 내놓았다. 실제로 박 시인은 연구소 진주지회의 숨은 설계자였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시절이던1990년대초부터논개영정폐출운동을시작해 2008년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그린 새로운 논개 영정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박 시인은 2006년에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을 만들어 진주 출신 친일가수 남인수의 이름을 딴 ‘남인수 가요제’를 ‘진주 가요제’로 바꾸기도 했고 ‘을사늑약 100년 남북공동사진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친일잔재 지도’ 제작도 추진했다. 이처럼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의 일생은 올바른 ‘진주정신’의 발굴과 계승이었다.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방학진 기획실장

 

수, 2018/08/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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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67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185점 보내와
6월 18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67번째 자료를 기증했다. 주요 자료는 <보성문화>, <새전남>, <월간호남> 등 전라도 지역에서 발행한 잡지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기금전달식 후 자료 기증 잇달아
▪ 기타무라 메구미 씨, 제7차 일본 교류관계의 소장자료 전달
지난 6월 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기금전달식에서 기타무라 메구미 씨가 교류단체와 개인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6월 9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일본역사사진첩>(1914), <황족화보>(1930)등 총 5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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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카와 마사키(재한군인군속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씨가 2003년 재한군인군속 추가 제소에서 사용한 플래카드, 2009년 군군재판 도쿄고등법원 판결 후 지원하는 모임이 받은 플래카드 2점을 기증했다.

야마모토 나오요시(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장) 씨가 <계간전쟁책임연구>, 군인군속재판관련자료등책자와문서, 현수막을기증했다.

야스다 치세 씨가 <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인희생자보상청구사건소송>(1992)을기증했다.

평화교육연구위원회에서 <新潟県内における韓國·朝鮮人の足跡をたどる>(2010), <平和教育委員會資料シリーズ 第2集 新聞などに見る新潟県内韓國朝鮮人の足跡>(2006) 도서 3권을 기증했다.

야노 히데키(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씨가 활동했던 자료 모음인 플로피디스크, 카드, 명함 파일 등 다량의 자료와 지난 2018 남북정상회담 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 등을 기증했다.

히구치 유이치(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공동대표) 씨가 6월 18일 「용산시가도」(1929)를 기증했다. 이 지도는 용산 일본군기지와 용산역 및 주변의 철도기지 등이 표시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번 호 ‘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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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와 도시코 씨가 2014년 6월 27일 기증에 이어 <일본의 전사>등 강제동원관련도서31권과 ‘일본정부와 피해자의 목소리에 응답하라’에서 찍은 사진 등을 기증했다.

 

▪ 3월 24일 김삼웅 지도위원이 1962년 발행한 『동경재판』(전3권)을 기증했다. ‘동경재판’은 극동군사재판소가 제2차 세계대전 중 극동지역의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하였던 재판으로 정식명칭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이다. 이 책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 조일신문법정기자단에서 작성했다. 동경재판 당시 법정사진과 함께 재판의 모든 과정을 담은 유일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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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이덕문 회원이 지난해에 이어 소장자료를 기증했다. <제13회숙명여자대학교졸업앨범>(1964)등 도서 3권이다.

▪ 6월 14일 호시카와 가즈에(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 씨가 아베 반대 표찰 1점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수, 2018/08/0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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