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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공동성명 및 관계개선에 따른 사드배치 효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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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공동성명 및 관계개선에 따른 사드배치 효과의 변화...

익명 (미확인) | 월, 2017/11/06- 16:13
한·중 공동성명 및 관계개선에 따른 사드배치 효과의 변화 ‘사드보복’의 환상과 사라지는 사드배치의 효과 최근 중국과 한국의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사드에도 불구하고 한·중 간 관계가 서로의 긴밀성을 더해가면서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는 ‘사드보복’이라는 희망 섞인 상상에도 불구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2017년도 한·중 간 무역량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것과 통화스왑의 재계약을 통해 보다 선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와 흐름들은 지난 번 올린 페이스북의 중국과 관련된 글에서도 그러하지만 성주투쟁위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지점들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은 미국중심의 경제블록과 중국 중심의 경제블록이 대립·경쟁하면서 교역량에서 세계 11위 권인 한국에 대해 미국은 다른 경제블록으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중국은 자신들의 경제적 영향권으로 견인하기 위한 전략들과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또한 미·중 간 세계통화를 둘러싼 주도권 경쟁의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런 흐름들은 지금 우리들이 벌이고 있는 사드철회투쟁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분명치 않던 한국과 중국 간의 관계의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 지면서 역으로 그 선명함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매우 또렷하게 동북아의 긴장을 만들어내던 사드의 배치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가 형성시키던 동북아의 긴장관계, 전쟁의 위험 등이 한·중 간 관계설정을 통해 상당부분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의 설정은 중국의 대 한반도 전략으로 보인다.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 행보로 볼 때 당시 활발하게 진행되다가 어떤 요인에 의해 중지된 것으로 보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동안 사드를 통해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중심으로 투쟁해 오던 우리들에게도 동북아와 관련된 포괄적인 투쟁의 주요의제가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의 심화는 주한미군 주둔의 효과와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주한미군의 철수가 생각처럼 한반도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변화하는 세계자본주의의 관계 망으로 편입되고 포획되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스스로를 향해있는 '기만' 일반적으로는 편하게 ‘기만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해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다르지 않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만’은 우리들 스스로를 향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투쟁’을 위해서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사드투쟁의 전략적 의미를 유지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이전의 정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해야 하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고집하며 자기최면을 걸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솝우화의 ‘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와 동일한 것일 뿐이다. 투쟁에서 평화와 같은 거대 담론과 의제가 사라지는 것은 거시적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권력의 성격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대중들의 몫이다. 그것은 옳다 그르다와 같은 범주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가 책임질 문제라는 의미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혼자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고립된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진리의 기준을 독점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민주적 삶을 위한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다른 이들과 동떨어진 진리에 대한 감각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한 것이다. 이전의 정부는 전제군주적인 성격을 보여주었다. 강압적 방식으로 권력관계들을 유지시키려고 하였다. 결국 이런 것들이 사단이 나서 촛불집회가 일어난 것이고 탄핵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서 투쟁은 단순했다. 투쟁할 용기와 계기, 방식의 문제이기는 했지만 고도의 지능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푸코가 말하던 ‘자율권력’과 같은 것들을 고민해야만 하는 지점에 맞닥트려 있다. 현상적 폭력과 강제는 사라지고 미시적 구조의 영역으로 포획되는 권력관계에 맞닥트리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교역확대, 러시아와의 유라시아철도건설, 가스관공사, 북한과의 화해협력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자본주의가 가져다주는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남아있으면서 ‘국가의 발전’과 같은 ‘희망찬 청사진’에 다른 문제들이 덮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는 소수자의 문제들은 더욱 가려지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사드라는 주요고리의 소멸 사드가 만들어내고 있던 효과의 상실은 이것을 소위 ‘주요고리’로 하여 한반도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다양한 투쟁들의 근거 또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사드투쟁이 목적하던 동북아 긴장의 해소와 평화의 문제들은 중국과 한국정부의 전략적 대응과 변화를 통해 다른 의미들로 전환되어 버렸다. 강도의 손에 들려있던 망치가 이전의 세상을 망치로 부수고 창조하는 민주주의자의 손으로 까지 넘어간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이익을 누리려는 목수의 손으로 넘어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에서 언급된 사드운용의 범위를 넘어갈 때,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박근혜 정부와 같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포기될 때 여전히 새로운 긴장형성의 문제들은 있지만 적어도 현재의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드철회투쟁을 통한 세계평화와 같은 거대담론 투쟁의 의제가 소멸되고 있음은 분명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사드를 통해 한반도의 ‘주요모순’을 해결하려고 하던 통속적 맑스주의자들의 문제일 뿐이다. 즉 사드를 모순의 ‘주요고리’로 생각하던 이들에게 국한된 문제라는 점이다. 성주의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사드가 가져온 삶의 문제와 안전, 건강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사드에 인접한 이들에게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사드투쟁은 이제 밀양이나 청도의 송전탑투쟁과 같이 실질적 의미에서의 주요하게는 지역성을 통하여 모든 이들의 삶의 문제와 연결되게 되었다. 사라진 근거들을 가지고 거대의제를 담아낼 방법은 없다. 그렇게 진행하고자 한다면 고립과 친해지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까지 매우 친밀했던 것 이기는 할 것이다. 관성은 어느 정도 지속되겠지만 고립을 싫어하는 이들은 성주를 떠나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본래 그런 자들이기 때문이다. 섭섭하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오해일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선한(?)목적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선함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해 왔다는 점이다. 이제 ‘고리끼의 어머니’가 되어버린 ‘벌거벗은 인간’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시간 또한 다가오고 있다. 제국주의의 환상, MD체계 MD체계란 ‘기표(signifiant)’로서 의미를 방출한다. 즉 은행의 청원경찰이 입고 있는 제복의 의미이다. “지키고 있으니 침입하지 말라.”, “당신의 돈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는 신호를 방출하는 것이다. MD체계가 지키는 은행은 바로 월스트리트, 세계자본주의이다. 물론 이것은 라캉이 이야기하던 ‘기표의 물질성’이라는 의미로서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기표외적 체계의 물리적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체계들이 그 물질성을 통해 은행에 총을 들고 들어오는 강도는 막을지 모르겠지만 옆에 개업한 다른 은행의 영업능력과 전략을 차단하는 데는 한계를 가진다. 물론 지금까지 유엔의 동맹체계, 미국의 군사시스템이 그동안 세계자본주의를 위해 월스트리트의 안전을 지켜온 것은 분명하다. 물리력에 기반 한 침략과 수탈, 파괴를 통한 자기파괴의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imperialism)시대는 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유엔체제로 상징되는 제국(empire)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체제는 자본주의 간의 전쟁을 통한 경쟁보다는 타협과 협상을 통한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제국주의와는 분명히 다르다. 물론 이 체제도 수많은 전쟁을 행하였다. 하지만 대전의 종결 이후 전쟁은 자본주의와 그 외부 사이에서 일어났다. 2차 대전 이후 일어난 전쟁은 거의 월남, 중동과 같은 비자본주의 체제와의 전쟁이며 자본주의 내부의 전쟁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나 마이클 하트의 생각처럼 ‘제국’의 내부로 세계가 자본주의로 모두 통합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제국’의 외부도 분명히 존재하며 한 개의 덩어리라고 하기 보다는 몇 개의 블록으로 구획되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중 하나의 자본주의 블록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중심의 아시아 경제블록을 MD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효과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자신들의 방어력을 신뢰하도록 하고 강력한 물리력의 소유에 대한 신호는 변화하는 ‘제국’의 시대에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한국이 미국의 충실한 ‘식민지’라면 지금의 체제를 벗어날 방법은 없겠지만 한국의 기업과 금융들이 월가의 고객들이라면 이제 그들은 좀 더 친절하고 많은 이익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끌어들여야만 할 것이다. 제국주의의 존재에 대한 환상은 국가에게도 있지만 투쟁의 주체인 우리들에게도 존재한다. 거시적 투쟁에서 미시적 투쟁과 삶으로 세상은 미시적 권력관계들이 그물망처럼 형성된 자본주의의 포획시스템을 통해 지배된다. 이전처럼 하나의 주요고리를 잡아 올리면 모든 문제가 풀려나가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런 것은 이전에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드를 통해 동북아의 긴장을 형성시키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은 무력화되고 있다. 사드의 배치는 박근혜 정부와 미국과 관계 속에 놓이게 되면서 분명 전쟁의 위기를 만드는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그것이 한·중 간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같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시기, 그리고 일정정도 관성이 유지되는 시점에서 사드가 평화의 의제를 던졌고 배치에 반대하는 투쟁은 반전(反戰)의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미들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거시적 문제에서 미시적인 것들로 전환된 것이다. 오히려 전자파문제나 미군부대에 의한 주민피해, 이질적인 것들의 침입에 의한 불안 등이 주요한 문제들이 되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것들, 들리지 않는 것들, 소리 없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자들의 연대, 미시적인 것들 사이의 접속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세상의 투쟁에 귀를 기울이며 작은 소리를 들어내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미 우리들은 오랜 투쟁을 통해 이런 감각들을 만들어 왔다. 우리들의 투쟁 또한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리를 듣고 보는 이들이 또한 있다. 또한 그리고 우리들은 소리를 변환시키고 양태를 바꾸는 능력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게 다양하게 성주의 토양 속으로 주민들의 삶의 영역 안으로 섞여 들어가야 한다. 평화와 반전의 거시적인 구호들을 앞세워 우리들은 성주주민들의 생활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외면해 온 것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거대한 의제를 통해 모든 투쟁을 사드투쟁 내부로 포획하려는 알지 못할 행위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작고 소소한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의 투쟁을 전개해야 할 지점에 이른 것 같다. 우리의 투쟁이 작아지면서 다른 투쟁과 동등함을 느껴가는 겸손함을 가질 수 있는 시점이 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작아지고 왜소해 지는 것이 아니라 동동한 연대 속에서 더 많은 것들과 관계를 이루는 신체가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더욱 확장되는 투쟁의 힘을 의미한다. ‘투쟁의 전략적 전환’과 같은 거창한 말들을 사용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그로부터 투쟁을 생각하고, 준비하고,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출발하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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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국방비 증액분은 미국 군수업체로 들어간다? 국방비 증액이 우려스러운 이유입니다.
금, 2017/07/21-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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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21일] 평화/통일/국제

금, 2017/07/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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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만평]: [7월21일] 만평/사진

금, 2017/07/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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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박의영입니다 우리 민족이 발명한 무기는 강대국에게 다 상납하고 강대국의 무기는 외국에 빛으로 무기를 구입하는것 말입니까?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는 국가 방어가 일단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뭉치고 북한의 사상과이념을 이해하고 그들의 잘못된점을 스스로 알게해주고 반성하게하는것 그게 우선입니다 그러나 보세요 우리 자신들을 그리고 우리국가의 현실을 서로가 자신들 밥그릇 싸움만 하고이지 않습니까? 이런 증상이 북한은 너무 심한상태이지 증상은 같은것 입니다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금, 2017/07/21-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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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주 촛불 마당에서는 향후 투쟁의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었습니다. 이 토론에 대한 소회를 한 번 올려봅니다. > . . 어제 토론회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고 대체로 의견의 흐름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어제 토론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영위와 진행자는 이것을 해소시킨 상태를 만들어 내지 못했습니다. 논의는 매일 집회를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조건과 구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향후 성주 투쟁의 다양함과 확장성을 차단하는 흐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토론은 매일 해야 한다와 일주일에 한 번하자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근거가 ‘힘이 들고 지치니까’와 ‘힘들지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일주일에 한 번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단순히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고 힘들다는 것의 의미 또한 전혀 달랐습니다. 이런 입장은 오히려 투쟁을 강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힘이 든다거나 지친다는 말의 의미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힘이든 것이 맞습니다만 그것은 매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투쟁이 확장력도 없고, 새롭지도 않은 투쟁을 매일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든 것입니다. 당연히 매일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만 이 의견은 우리가 다른 투쟁의 방법이 없을 때에 한해서 그러합니다. 매일 촛불을 들지 않더라도 사드철회투쟁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다른 재미있고 즐거운 투쟁의 방법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런 방법들이 매일 촛불을 드는 것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훨씬 영향력 있는 투쟁의 확장성을 가진다면 생각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 신명나는 투쟁을 개발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헌신적’으로 매일 촛불을 들어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논의의 흐름이 “힘드니까 한 번하자”와 “힘들어도 계속하자”로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투쟁을 확장시키고 다양화하고 강화시키기 위해 투쟁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의 이야기로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힘들다’와 ‘힘들지만’은 자연스럽게 제출된 근거들처럼 보이지만 이것 또한 투쟁을 사유하는 하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헌신적 투쟁’이라는 담론의 구조 속에 놓인 것들입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당연히 ‘힘들지만 계속하자’라는 관점이 ‘힘드니까 한 번하자’는 이야기를 압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쟁은 이런 당연한 담론의 구조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단호히 ‘헌신적이고 숭고한 투쟁’의 담론에 반대하고 벗어나야만 합니다.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미 우리를 포획하고 있던 하나의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진행한 꼴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런 관점에 빠져있고 빠져버립니다. 투쟁의 관점을 ‘재미있다’와 ‘재미없다’로 전환시켜 볼 필요가 있고 이를 통해 논의가 새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 조금씩 이야기 되고 있고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닙니다만 <사드퇴치 홈키파 원정대>와 같이 다른 외부의 대중과 연대할 수 있는 형태의 조직을 만들어 구심력이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 원심력을 통해 투쟁을 확장시키고 강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원정대>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평택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과 인적 네트워크의 구성 가능성이 감지되었고 몇 번의 답사활동을 통해 이것들이 구체화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각 그룹 활동과 교육프로그램, 성주의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는 월간지의 발간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방식들이 제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 매일 촛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이런 조건과 여지들을 박탈하고 있다고 봅니다. 상황이 변화하고 우리의 투쟁이나 활동이 변해야 하거나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면 우리의 투쟁방식 또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번 글에도 투쟁은 놀이여야 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오징어가이생 놀이도 지겨워지면 다른 놀이로 바꾸어 놀아야 합니다. 그것이 놀이의 재미를 유지하는 방법이고 놀던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길이며 주변에서 지켜보던 아이들이 우리의 놀이를 부러워하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나게 놀아야 다른 이들도 부러워하고 놀이에 끼고 싶어 합니다. 저는 끝까지 몇 명이 남더라도 촛불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몇 명이 남을 수밖에 없는 투쟁은 가능한 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은 우리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판을 재미있게 끌고 갈 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투쟁을 해오며 우리를 재미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 생각해보고 그런 재미들이 무엇을 통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 인가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금, 2017/07/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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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7/2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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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뜨겁다 말겠지 작열하고 머리까지 곤두서게 하지만 한달쯤 지지고 볶다가 지풀에 나자빠지겠지. 뜨건것도 한때 뜨겁다가 사라지길 몇천년을 해왔는데 지가 별 수 있을까? 푸른감이 까닭도 없이 떨어지면 그놈 아픔삼아 땅보고 매달린 다른감이 가을로 익어가는데.... 여름은 더운거야 덥지않은 여름은 그저그런 여름이지. 세달치 이발료를 개새끼 바리깡으로 밀어준 여름은 거룩한 내사랑의 무지 뜨거운 계절나기 몸값이다. 더우면 더운데로 꾸역꾸역 살아가자. 내 나이 설흔즈음 넘은때가 아득한데 김광석은 오늘도 키타치며 노래한다.

금, 2017/07/2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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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래요 투쟁도 건강해야 가능 합니다 부디 전 일본에 살고 있지만 성주시민분들 지지하고 응원 합니다^^아자아자 화이팅!!!! 사드가고 평화오라~~~
금, 2017/07/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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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것이 진정 파란나비효과겠지요? ㅎ


파란나비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금, 2017/07/2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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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이교주님 성주에 와주셨네요! 소성리가셨다가 성주촛불참석하셔서 검찰청에 개똥투척했던 일들도 들려주시고 매일 촛불드느라 수고많다고 일당 십만원씩 쏘시고 ㅎ 페북으로만 봤던 다까끼마사오 기념우표도 나눠주셨어요~^^ 가장 멋진건 성주군청 앞에 배신의 아이콘 성주군수 서식지라는 푯말까지 놓아주셨어요 ㅎ 속이다 시원해요 ㅍㅎㅎㅎ 행동하는 양심! 누구도 가지지 못한 용기! 기발한 아이디어들!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금, 2017/07/2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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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투쟁,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투쟁위원회에서도 토론이 있었고, 촛불집회에서도 토론이 있었다. 촛불집회를 매일 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주일에 한 번 하자는 두 가지 의견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되면 어느 단위에서든 결정하기가 힘들어졌다. 다시 문제제기를 해본다. 1년 넘도록 매일 촛불을 밝혀왔다. 투쟁전술이었다. 정권교체가 됐다. 시간을 벌었고, 투쟁공간이 확대됐다. 상황이 변한 것이다. 전술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우리는 전략전술을 유연하게 구사해야 한다. 변화된 상황에서는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로 고민해야 한다. 점점 지쳐가고, 점점 참여인원이 줄어드는데 이대로 계속 가자는 것은 좋은 전술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면 참여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더 이상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가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성주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매일 계속하면 더 힘들고 지칠 것이다. 소수가 되더라도 계속하자는 것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그것은 고립이고, 저들은 얕잡아 볼 것이다. 바로 저들이 바라는 바다. 김천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있다. 성주가 전략전술을 바꾸는데 김천이 왜 흔들리는가? 이해할 수 없다. 김천도 독자적으로 우뚝 서야 한다. 김천도 김천대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론하고,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독자적으로 동력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김천의 몫이다. 원불교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성주촛불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지치고 힘들어도 매일 촛불을 드는 것을 보고 참 끈질기게 싸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싸우면 그래 성주는 다르구나! 역시 성주다! 라며 더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볼 것이다. 국민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편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성주촛불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 상징적인 의미는 매일 촛불을 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싸워왔다는 것에 있다. “성주는 다르다.” 이것이 성주촛불의 상징이다. 성주투쟁이 다르다는 것은 새로운 투쟁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롭기 때문에 낯설고, 낯설기 때문에 힘든 과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성주촛불집회를 일주일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과 노력으로 다른 활동을 해나가야 한다. 두 가지 아이디어가 나와 있다. 그 하나는 “사드퇴치 홈키퍼 원정대”를 꾸리는 것이다. 평택, 군산, 진천, 강정 등 미군기지, 미군사격장, 미군훈련장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여 연대하고, 미군문제를 전국적으로 이슈화해 나가는 것이다. 전국적 투쟁으로 만들어가는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불어 사드철회 투쟁도 전국화 되어갈 것이다. 또 하나는 “평화산행”이다. 전국의 주요 명산을 찾아 그 지역에서 사드를 반대하는 주민들과 연대하여 산행을 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두 번이든 좋다. “사드가고 평화오라”는 작은 깃발과 리본을 제작하여 깃발은 가방에 꽂고 줄지어 산을 오르고 등산로마다 리본을 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이를 볼 것이고 성주촛불들이 다녀간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활동이 즐겁게, 신나게, 건강하게, 질기게 싸우는 새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지치고 힘든데 말로만 즐겁게 건강하게를 외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더 좋은 다른 아이디어도 많이 나와야 한다. 성주촛불을 매일 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을 찾아서, 긴 싸움을 해나가야 할 때다.
토, 2017/07/2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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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자파실험에대한 민의를 외면한 국방부의 갈지자 걸음은 문재인 정권이 충분히 합벅적 테두리안에서 사드배치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드문제에서 대해선 우린 영원한 을일 뿐이다 그나마 유류차단이라도 잡고 있으니 국방부 차관이 우리를 상대해주는 것이다 고통받고 있는 국민이 있다는 것이 문민정부에게는 큰 부담감이 되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만약 현실적으로 부각되는 대착점이 아무것도 없다면 바쁜 이세상에 누구인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까? 수많은 적폐청산 이슈들중 외연이 제일 큰 사드배치는 현실감이 떨어지기에 자연 늘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매일 촛불을 드는 것은 매우 고되고 힘든일이지만 그 가치로써 평가받는 일면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외연을 확장하는 문화활동 외부 투쟁연대등의 방식을 늘려간다는 데에는 동의하나 자신의 자산을 거둬가면서가 아닌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고 정비할 것은 전략적 유연성 보다 초심의 절박함과 순수성이 아닐까??
토, 2017/07/22-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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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기에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더없이 서글프다 다 기울어가는 세월호와 이미 잠긴 세월호에도 부모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만주벌판 35년 독립군은 어땠을까? 지금은 어떻게?? 라는 방향성 논의 이전에 왜?? 라는 초심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6주체의 화합이 아닐까?
토, 2017/07/22-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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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체 회합에서 지혜로운 결정이 나면 그에 따른 역할에 충실할 것을 전제로 다시 한 말씀 올립니다 지난 1년 성주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고결했으며 운동의 주체로써도 맏형의 리더쉽을 충분히 보여줘 왔습니다 이런 모든점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적으론 미ᆞ중을 상대하고 내적으론 자한당과 조선 서북등의 친일적폐세력을 상대해야하고 광범위하게는 국민여론에 호소하고 직접적으로는 환경부와 국방부를 상대해야 하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이를 줄여보면 앞으로 운동쟁점은 여론조성과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잘 얻어내는데 촛점이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여론은 주체들의 응집되고 한결같은 모습들과 끊임없이 이슈를 재생산하고 선점하는데서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꾸준히 대착점을 만드는 것이 방송등의 관심을 유지시킬 수있는 좋은 장치가 될 것입니다 서북의 행진을 막은 것을 불법적 요소라하여 걱정하시는 일면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평화를 아젠다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주민들의 노력이 퇴색되거나 폄하되는것을 걱정하시는 마음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비관적인 측면만으로만 보지말고 유류차단과 같은 최소한의 주민저항권 행사로 저극 피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류도 터주고 마을길도 터줘서 쟁점이 소멸된 곳에 냉정한 세상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성주촛불 1년 과정중 소성리 대착점이 생겨난 시점부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왔고 서북의 출현이나 유류의 차단등에 대한 주민항거시에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적폐언론환경에서야 저희들의 모습이 당연 부정적 여론으로 비치는게 정상적인 것이겠지만 sns상이나 jtbc 뉴스 민 등 진보적인 환경에서는 아직 해볼만한 싸움입니다 무엇보다도 국방부가 우리의 눈치를 보는 형국으로 조성돼가고 있는 측면을 그냥 놓아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유류도 편하게 들어가고 서북이 오던말던이 되는 곳에서는 언론도 관심이 멀어지고 국방부도 저희가 귀챯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한 자기들 마음대로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폐쇄적 집단인 국방부에게 우리는 한줌의 세력일 뿐입니다 끌려다니다가 안되면 또 다시 절박한 상황에서 길바닥에 앉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끊었다 다시하게 되는 싸움은 자칫 매번 딴지만거는 모습으로 호도 될수도 있습니다 더더욱 문재인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언제든 합법적 사드배치로 바뀔수 있습니다 외교에서 유리할 수 있도록 국민여론을 조성해주는 하부지원이나 민주정부에 대해 상시적 압박을 줄 수 있는 것은 유류나 서북같은 대착점의 유지와 상설 집회에서 그 힘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쟎은 모습으로 문화적 모습으로 여론 형성을 해나가는 것은 반드시 추진하고 확장해해야 할 일이지만 대착점을 유지해내는 여력범위 안에서의 총력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라나비 상영은 이런 좋은 선례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나 이역시 1년의 고난의 추출물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식는 것이고 평범하고 고매한데는 인심의 쏠림이 잘 일어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외로움과 고립감을 연대의식으로 견뎌내며 현재를 유지시켜내는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바든 것이고 그자체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가서 연대발언할때 스스로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것 역시 성주집회가 매일 매일 열린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게 더 시너지 효과가 크게 작용할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 평화가 어떤 모습으로 올런지 다만 하나 분명한것은 각주체가 서로 처한 환경따라 이견들이야 있겠지만 합리적인 안을 도출해내는 진통의 과정과 결과의 산물에 평화가 잔뜩 묻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으로 저희가 더 성숙해질 수 있기를 염원합니다 6주체의 집행부에 이후의 모든 것을 일임합니다 부디 수고해 주십시요
토, 2017/07/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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