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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 이스라일 병역거부자, 하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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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 이스라일 병역거부자, 하다스

익명 (미확인) | 목, 2017/11/02- 15:51

하다스 탈Hadas Tal*, 이스라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하다스 탈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고 있는 인권침해행위에 반대하며 2017년 8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8월 7일 처음 체포된 이후, 지난 10월 16일부터 세 번째 징역형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지난 8월 3일 하다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병역을 거부하는 성명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열여덟 살, 하다스 탈Hadas Tal이라고 합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입대 예정일인 8월 7일, 입대를 거부할 생각입니다. 그로 인해 아마도 감옥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저는 10학년이 될 때까지 점령지역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9학년 때 직접 그렸던 지도를 최근 발견했는데, 점령지역은 텅 빈 공간으로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0학년이 되면서 정치의식을 키우기 시작했고, ‘로컬 토크Local Talk‘의 게시물과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Breaking the Silence‘의 증언들, 소셜 네트워크상의 관련 게시물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점령지역의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군의 통제를 받는 무력한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군인들이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11학년이 되면서 저는 이미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스라엘 퇴역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근무 당시를 증언하고 인식을 높이고자 활동하는 이스라엘 비정부단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닌, 소수 집단의 이익만 옹호하는 체제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체제하에서 군은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조직으로 군림하며, 점령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 것은 군입대가 50년 넘게 이스라엘 군이 점령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그 모든 일을 모른 체하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반복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령 정책으로 수백만 명은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들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이 수백만 명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정부를 직접 선출할 수도 없습니다. 이 체제 아래서는 모든 해결책은 폭력이 됩니다. 그저 무력을 이용해 공격하고, 우월을 과시하며 지배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란 대체 어떤 사회입니까?

제가 군에 입대하기를 거부한 것은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점령지역이나 이스라엘에 국한된 일이 아니며, 오직 부유한 자와 정부를 위해서만 운영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는 제3 세계와 소외집단을 착취하고, 천연자원을 파괴하고,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며 우리를 파괴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등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독재자와 압제자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는 이념과 당파를 초월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고 해서 점령이 중단되거나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거부하는 이유는, 이러한 점령과 체제가 아무런 저항 없이 유지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의 병역 거부자들은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점령 제도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큰 의의를 남겼습니다. 관련 인식을 높였고,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알았고, 그저 원래 그랬기 때문에, 또는 그게 더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는 국민과 거주민이 아닌 국가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무비판적인 현실 수용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군에 입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며, 당연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스라엘 사회와 인류사회, 자연에까지 피해를 주는 조직에 합류하고 복무해야 합니까?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의사결정자들은 국민의 복지와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뿌리까지 썩어버린 제도에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혐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 원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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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여성 운전권을 외쳐 체포된 여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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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6/0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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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한국의 인기 관광지다. 올해 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예멘 난민 수백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피난을 떠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16,000명 이상
200만 명
340만 명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최소16,000만 명
피난을 떠난 사람들
200만 명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340만 명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 캡쳐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18년 7월 4일, 예멘인 비호 신청자 모하메드 살렘 두하이쉬.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대한 답으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9월 말까지 1차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8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난민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반난민 집회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을 해야 한다. 2017년 대선 후보였을 당시, 문 대통령은 난민협약을 이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해, 망명 신청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금, 2018/08/2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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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팡(Arnold Fang)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동아시아의 인기 휴양지인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 가을이 찾아왔다. 갓 수확된 제주 특산물 감귤이 시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시기와 맞물려, 올해 초 제주도에 들어왔던 예멘인 수백 명에 대한 난민 지위 신청 결과 역시 나오고 있다.

예멘인 550명이 올해 모국인 예멘의 처참한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본래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던 제주의 무비자 입국 제도를 이용해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안전한 피난처를 찾으러 온 이들은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힘겨운 일임을 체감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

제주도 사회는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 익숙해져 있고, 이미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난민 신청자들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수백 명의 예멘인이 들어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에 온 예멘인들의 강렬한 사연은 호기심 많은 한국 언론의 취재 의욕을 자극했다.

알부카티(Albukhati) 역시 그런 사연을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가족들의 압박으로 강제 결혼에 내몰려야 했던 예멘 여성들이 유럽과 미국에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가족들의 주선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은 예멘에서 매우 수익성이 좋은 사업으로, 특히 중개인들이 이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활동으로 권력자들에게도 밉보이게 된 알부카티는 결국 예멘 밖으로 망명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알부카티는 말레이시아에서 3년을 보낸 후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알부카티와 마찬가지로 많은 예멘인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한국인들의 난민에 대한 공포를 더욱 부추기는 데만 이용됐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있고,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좋은 직업군에 종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이전까지 난민과 접한 경험이 거의 없는 일부 한국인들은 이들의 고통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가짜” 난민이라고 간주하기도 한다.

“난민을 환영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멘인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생김새도, 종교도 다르다. 중국인들과는 달리 아주 머나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 아닌가.” 알부카티가 말했다.

언론의 왜곡 보도로 한국에서는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고, 이는 예멘인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 청원에 70만 명이 서명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일부는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며 외국인 혐오 정서를 표출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예멘을 떠나야 했던 알부카티는 2018년 5월 제주도에 들어왔다.

섬에 갇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대중의 요구에 응답했다. 지난 6월, 정부는 제주도 무비자 입국 가능 국가에서 예멘을 제외하고, 제주도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들이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는 유엔난민협약을 위반하는 조치였다.

가명을 요구한 캄란은 “예멘인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결정에 깜짝 놀랐다. 이곳의 물가는 상당히 비싸다. 관광지이기 때문에 일자리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 현지인들이 모두 난민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예멘인들은 제주에 갇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눈에 띄는 집단이 됐다. 사실 제주 현지인들의 태도는 오히려 적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멘 난민 신청자 다수가 소지금이 전혀 없는 상태로 노숙을 시작하자, 지역의 시민사회와 종교단체, 외국인 강사들이 모여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연합을 결성하고 난민들에게 식량과 보금자리,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예멘인들이 재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가 나날이 어려워지면서, 한국 정부는 법적 예외조항을 마련해 난민 신청자가 6개월간 체류하지 않아도 구직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이들은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어업 계열과 같이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멘 북부에서 산간 지역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만큼, 예멘인들에게 어업은 생경한 개념이었다. 캄란은 “다들 고기 잡는 법을 모른다. 어업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일이 맞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일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인기 있는 관광 명소다

인정받지 못한 난민 지위

올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예멘인 481명 중 36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80명은 아직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편, 30명 이상은 난민 신청이 거절됐다.

“인도적 체류” 허가가 있으면 예멘인들은 제주 이외에도 한국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며, 한국이 당사국인 1951년 난민협약에 명시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은 것도 아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예멘인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를 겪게 된다.
먼저, “인도적 체류” 허가만으로는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 없다.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 중 대다수가 남성인데, 결국 이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예멘에 남아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편, 아버지와 만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허가만으로는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학위과정을 마치지 못한 예멘인들은 앞으로도 학위를 획득할 수 없게 된다. 한국에서는 물론 앞으로 예멘에 돌아가서도 장래 직업 전망에 큰 걸림돌이 되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인도적 체류” 허가는 예멘 내전이 끝날 때까지 매년 갱신해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체류 허가를 갱신할 수 없으며, 예멘인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 한국을 떠나야 할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예멘인 수백 명은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캄란은 “지금 예멘에 안전한 지역은 없다. 전쟁이 끝난다고 해서, 돌아가도 안전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살인과 암살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를 통해 얻는 교훈

예멘인들에게 제주도는 자유와 희망의 섬이었다. 한국 사회의 일부 집단은 여전히 편견을 갖고 있지만, 제주도 주민은 대부분 예멘인들을 친구로 받아들였다.

“어떤 한국인들은 우리를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했지만, 그때는 우리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와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한국인들은 우리가 본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깨닫고 있다. 우리를 끌어안고 청원에 서명한 것을 사과하는 사람도 있다.” 알부카티는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역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빼앗기고 가족들이 헤어져야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한국인이 세계 곳곳으로 피난을 떠났다. 캄란은 “제주도의 노년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우리의 상황을 훨씬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역사회와의 잦은 소통과 더 큰 이해가 예멘인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될 수 있는 열쇠라고 믿는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무장 분쟁은 여전히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가장 도움이 절실한 시기에 자국민이 받았던 보호와 지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월, 2018/11/1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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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활동가들이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UDHR)이 채택됐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과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성 또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만을 이유로 170만명이 학살당했던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마련되었으며, 국적과 성별, 피부색 또는 종교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인권을 인류 역사 최초로 제시한 문서다.

총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에는 고문 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 비호를 신청할 권리 등을 비롯해 생명권, 자유권, 사생활권, 사회보장권, 건강권,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와 같은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오늘날까지 모든 인권 기준의 근간이 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인권 문서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역사적인 순간으로부터 70년째를 맞는 올해, 국제앰네스티는 1948년 전후 태어난 활동가 4인을 만났다. 이들에게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지, 오늘날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물었다.

아르헨티나의 도라 바란코스(Dora Barrancos, 78)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운동, 특히 여성인권운동에 참여해왔다. 지칠 줄 모르는 도라는 앞으로도 인권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항상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권활동가로 살아왔어요. 특히 1980년대에 페미니스트가 되면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인권을 위한 실천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죠.”

도라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 등 새로운 영역까지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마련하는 것까지, 세계인권선언이 그 기초를 다지는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에게 세계인권선언은 평등과 정의를 요구하는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줬어요. 이 모든 난관에 맞서기 위한 신념과 힘, 저항과 위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케냐의 기투 와 카헨게리(Gitu wa Kahengeri)는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던 순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제 93세가 된 기투는 영국 식민지배 하에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끔찍한 인권침해를 직접 목격했다.

기투는 17세에 일을 그만두고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수용소를 전전하고, 고문과 노역을 견디면서도 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이후, 선언에 명시된 권리에 따라 자주권과 존엄, 자유를 요구하던 케냐인들의 모습을 기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케냐는 마침내 1963년 영국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기투는 희생 없이는 아무런 진전도 이룰 수 없음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들이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 국가를 이룩할 수 있으려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만 해요. 가치 있는 행동은 결코 쉽게 해낼 수 없죠.


헬렌 토마스(Helen Thomas)는 세계인권선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영국인으로서 오랜 시간을 인권활동에 헌신한 그는 196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 그리고 인도 마하라시트라의 가뭄으로 수많은 사람의 인권이 부정당했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헬렌이 태어난 것은 세계인권선언 최종본이 채택되던 바로 그 날 밤이었다. 지금 헬렌에게 세계인권선언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근간이지만, 처음부터 세계인권선언을 잘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전혀 모르는 쪽에 가까웠다. 헬렌은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이야기와 그 기원, 중요성이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이 지나고서야 저는 제가 태어나던 그날 밤,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지만, 우리들은 학교에서 세계인권선언의 존재조차 배우지 않았어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자유를 보호할 수 있겠어요?”

헬렌은 또한 장기적인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교육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권 보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인권에 대해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계인권선언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내가 가진 인권이 무엇인지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해야 합니다.


사회정의 활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캐나다의 윌 브라이언트(Will Bryant)에게 국제앰네스티는 언제나 내 집 같은 곳이다.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던 날 윌은 이제 태어난 지 10주가 막 지난 아기였다.

“저는 불의라면 정말 질색이에요! 국제앰네스티에는 1973년 가입했는데, 캐나다지부가 창립된 지 불과 수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던 존 험프리(John Humphrey)가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죠. 개인이 정부에 직접 의견을 전하고, 정의와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자극을 받았어요.”

“살아 있는 동안에 어디서나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북아일랜드에 평화가 찾아오고, 칠레에서 인권에 대한 존중이 회복되는 모습을 목격했었는데, 이제는 중국이나 미얀마 같은 곳에서도 인권이 존중받고, 미국의 인권 퇴보가 끝나는 날을 보고 싶어요. 난민이 더 환영받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젊은 세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끊임없이 참여하고, 헌신하고, 앞으로 나서기를 멈추지 말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현재이자 미래인 여러분이 정의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싸울 수 있겠어요?


앰네스티 인권아카데미에서 인권에 대해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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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2/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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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놓인 트로피

매년 헐리우드 최대의 관심이 쏠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난 2월 24일 진행된 가운데, 앰네스티는 이번 아카데미 후보작들에서 다뤄진 인권을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수상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인권 문제를 훌륭하게 다룬 다음 세 개의 후보작들을 만나보시라. 의외의 지점에서 인권 활동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이스 (Vice)

영화 <바이스> 스틸 컷

영화 <바이스>에는 좀처럼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외모로 변신한 크리스찬 베일이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 역할을 맡았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2003년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로 인해 세계적으로도 큰 파급을 일으킨 인물이다. 체니 전 부통령은 사실상 부시 정권 최악의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남성 수백 명에 대한 장기간 임의 구금과 고문, 용의자 인도를 공공연히 지지하면서 더욱 악명이 높아졌다.

<바이스>에서는 체니 전 부통령이 동료들과 함께 수감자들에게 무리한 자세를 시키거나 이들을 밀폐된 공간에 구금하고 물고문하는 등,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미국에서 자행했던 모든 형태의 고문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고문은 국제법은 물론 미국 국내법으로도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나, 이 영화에서 체니 전 부통령은 그 점에 대해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소수의 권력자가 법을 회피하고 인권을 철저히 무시하면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섬뜩한 장면이다.

미국의 일명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은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그 여파로 이라크에 수많은 무기가 유입되었고, 그 중 수십만 정이 사라지거나 IS와 같은 무장단체의 손에 넘어가게 된 실태를 최근 기록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매일같이 극심한 폭력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또한 관타나모 수용소 역시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국제앰네스티는 2003년 초부터 혐의나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던 토피치 알 비하니(Toffiq al-Bihani)의 사례를 알리기도 했다. <바이스>의 코미디적 시도는 결국 영화에서 해당 주제를 다루며 제기되는 의문을 진지하게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한계를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부시 행정부 사람들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고문 및 전쟁범죄 혐의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연히 상기시켜주는 역할은 충실히 수행한다.

 

블랙팬서 (Black Panther)

영화 <블랙팬서> 스틸컷

<블랙 팬서>는 사상 최고 수익을 거둔 슈퍼 히어로 영화다.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슈퍼 히어로 영화로는 최초로 루피타 뇽오, 채드윅 보스먼 등의 대형 스타를 비롯해 흑인 배우들을 주로 기용한 만큼, <블랙 팬서>는 인종차별주의와 억압, 식민주의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영화는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인 와칸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와칸다는 희귀하면서도 품질도 뛰어난 비브라늄이라는 물질의 원산지로, 와칸다의 지도자들은 이 물질을 이용해 월등한 기술을 개발한다. 식민 지배를 노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와칸다는 빈곤 국가처럼 보이게 만드는 최첨단 은신 장치를 사용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서양의 편견과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와칸다의 왕인 트찰라가 유엔을 방문하고 와칸다의 기술과 자원을 세계와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을 때, 정장 차림을 한 백인이 무시하는 태도로 이렇게 답한다. “와칸다가 줄 수 있는 건 뭡니까?” 이 장면은 아프리카 국가에 대해 여전히 팽배한 편견을 반영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 국가를 가리켜 “거지 소굴”이라고 발언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매년 미국에서 경찰의 폭력으로 수백 명의 흑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가운데, <블랙 팬서>는 억압과 지루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흑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헐리우드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와칸다는 가상의 국가지만, 스크린 밖에서는 매일같이 인권을 위해 나서며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흑인 활동가들이 아주 많다. NFL 경기 중 평화적인 항의 행동을 취해 국제앰네스티 양심대사상을 수여받은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부터, 브라질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용감한 청년들까지, 국제앰네스티는 현실의 수많은 슈퍼 히어로와 함께 활동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개들의 섬 (Isle of Dogs)

영화 <개들의 섬> 스틸컷.

웨스 앤더슨의 최신작 <개들의 섬>은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통해,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어떻게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부패 정치인 고바야시 시장은 개를 모두 쓰레기 섬으로 추방한다. 쓰레기로만 가득 찬 이 섬에서 개들은 식량과 자기 영역,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병에 걸려 죽고 마는 개들도 많다.

고바야시 시장은 개 독감이 퍼지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이처럼 잔혹한 결정을 내리고, 이를 이용해 모든 개를 나쁜 존재로 몰아간다. 어떤 교수가 개 독감의 치료법을 발견하자 그를 가택 연금에 처하고, 결국 살해하기까지 한다.

혐오를 조장하고, 반대 의견을 탄압하고, 정치적 경쟁자를 박해하는 등, <개들의 섬>은 세계 각지에서 외국인혐오와 공포를 조장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만드는 지도자들의 횡포를 개에 빗대어 보여주고 있다.

고바야시 시장은 ‘악마화 정치’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트럼프, 푸틴, 두테르테, 볼소나로 등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개들이 살고 있는 쓰레기 섬의 풍경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지구가 전례 없는 위험에 빠진 현 시대에 특히 불길함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막바지에서, 개를 사랑하는 활동가 아타리와 트레이시의 부단한 노력 끝에 고바야시 시장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가끔 의외의 지점에서 영감을 얻게 된다. 액티비즘이 삶을 변화시킨 실제 사례를 확인하고 싶다면, 용감한 사람들이 만든 놀라운 뉴스를 찾아 보자.

화, 2019/03/0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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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일랜드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수정 헌법이 폐지되는 기념비적인 승리를 올렸다.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를 비롯한 아일랜드 여성 인권옹호자들의 분연한 투쟁의 결과다.

3.8 세계 여성의 날과 헌법재판소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그레이스 월렌츠Grace Wilentz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지부 캠페인·조사 담당관이 아일랜드에서 거둔 성과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단 이틀. 그 숨가쁜 일정

그레이스 담당관의 방한 활동기간은 2월 21일과 22일, 단 이틀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국의 시민사회 포럼 참석 및 여성인권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비롯해, 수차례의 미디어 인터뷰, 3곳의 정부기관과의 면담을 모두 양일간 소화했다. 많은 미디어의 관심도 이어졌다. 가톨릭 국가에서 낙태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아일랜드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인권옹호 정책가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그레이스는 유럽 및 국제 사회에서 성 · 재생산의 권리 향상을 위해 10년 이상  활동해온 경험과, 국제앰네스티 아일랜드 지부에서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안전한 낙태 서비스 보장을 위한 <It’sTime>  캠페인을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 유의마한 메시지를 전했다.

 

아일랜드의 승리, 사실과 증언의 힘이 이룬 성과

그레이스 조사관은 지난 21일(목)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시민사회, 낙태죄 위헌을 논하다> 포럼에서 ‘낙태죄 폐지를 향한 국제적 운동의 흐름’ 을 주제로 발제에 나셨다. 가톨릭 국가에서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아일랜드에서 이 캠페인의 중심은 여성과 소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이겨내고, 자신의 낙태 사례를 앞장서 공유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낙태에 대한 전국적인 논쟁의 지형을 변화시킨 것은 바로 그들의 용기 있는 태도였습니다.

아일랜드 공영방송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투표자의 43%는 아는사람들의 경험이나 미디어에서 언급된 개인의 스토리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밝혔다. 낙태를 터부시하고, 낙인찍던 사회는 용기있는 개인의 이야기가 쌓이고 커짐에 따라 낙태 논의의 핵심을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실제 투표자들이 찬성표를 던진 가장 큰 이유로 “여성의 선택권”을 꼽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레이스는 2월 21일 혼잡한 변호사회관에서 진행하는 낙태에 대한 시민사회 포럼에서 아일랜드의 낙태죄 폐지 운동에 대해서 발표하고 있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같은 날 저녁, 그레이스는 아일랜드에서의 낙태 비범죄화를 위해 아일랜드 여성 운동이 채택한 캠페인 활동에 대해 한국의 여성 활동가들과 집중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레이스 담당관은 낙태 범죄화와 의료 서비스 이용 거부로 인해 치명적인 영향을 받은 아일랜드 여성들의 실제 이야기를 공유하며, 수정 헌법 제8조의 폐지 이전 아일랜드 상황을 담은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 (She is not a criminal)> 보고서와  캠페인 과정을 설명했다.  지금은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국민투표 전까지 아일랜드 여성운동 안에서 수없이 많은 좌절과 후퇴가 반복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의 낙태 비범죄화 운동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캠페인이 시작되었던 몇년 전만 해도 낙태 비범죄화에 뜻을 같이하고, 국제앰네스티에 현실을 증언해주는 의료전문인은 단 1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수년에 걸쳐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현재는 3,000여 병원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후퇴와 좌절이 있었지만 변화는 가능합니다.

 

시민사회 간담회에 참석한 한국의 여성인권 활동가들과 함께.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낙태 비범죄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메시지 전달

촉박한 일정 가운데에서도 그레이스 담당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낙태에 대한 전면적 비범죄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관련된 부처 정부 관계자들 찾았다. 법무부 인권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마지막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나온 공통 질문은 가톨릭 국가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헌법 폐지에 찬성했는지였다. 그레이스 담당관의 답변은 명확했다.

아일랜드 사람들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지만, 이번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할수 없고, 법으로 처벌하는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주류였습니다. 가톨릭 신념에 근거해서 반대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이 낙태는 범죄가 아니라 법과 규정을 통해 규제 받는 의료서비스의 하나로 인식하면서 찬성표를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레이스는 아일랜드에서 성공된 낙태 비범죄화 캠페인에 대해서 금태섭 의원에게 설명허고 있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최영애와 함께 낙태 비범죄화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그레이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낙태죄로 처벌한다고 낙태를 막을수 없다

짧은 일정속에 그레이스 담당관이 수없이 반복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낙태를 범죄화하고 금지하는 것이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은밀한 낙태로 이어집니다. 안전하지 못한 낙태 후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여성의 건강과 삶을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습니다. 이제 사실과 증거,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 이외에 국가가 여성과 소녀 그리고 태아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할수 있는 일을 찾는것!  많은 미디어에서 “낙태는 범죄가 아닌 보건서비스”라는 메시지에 주목한 것도 결국 인권을 보장해야 할 정부의 관점 변화를, 그리고 낙태를 바라보는 경직된 사회의 시선에 대한 전환을 촉구 한 것일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의 위헌 여부가 논의중이다. 한국은 아일랜드처럼 여성에 대한 범죄화를 넘어 여성의 건강권과 재생산권을 보장을 실현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화, 2019/03/1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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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클릭 한 번이면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편지’라는 전통 매체를 고집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매년 이 시간을 잊지 않고 찾아와, 편지만 쓰고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구나.” 예윤해 회원

“10년 전 대학을 다닐 때, 수업 중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에서 우연히 앰네스티를 발견했습니다. 앰네스티 활동이 인상적이어서 후원까지 하게 되었죠. 레터나잇은 네 번 정도 참여했는데, 평생 쓸 편지를 여기서 다 쓰는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억울한 일이나 불의를 보면 잘 못 참아요. 그런데 레터나잇의 목적 자체가 인권을 위해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지지해주고 도움을 주는 일이니까 편지를 쓰다 보면 “나 혼자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편지를 쓴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어요. 인권이라는 건 경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걸 직접 볼 수 있는 현장 같았거든요. 작년에는 아내와 함께 참여했었는데, 행사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 우리가 인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얘기 나눴던 것이 기억나요.”

“사실, 요즘 살기 너무 바쁘잖아요. 그런데도 시간을 내서 레터나잇을 가게 되는 건, 후원금만 내고 끝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내서 매년 레터나잇을 가려고 노력하죠. 인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레터나잇은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손 끝에서 시작되는 연대가 경이로워요.” 장채영-자원봉사자

“저는 아일랜드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처음 앰네스티를 만났어요. 행사 진행을 전문으로 하는 ‘소파 사운즈(sofarsounds)’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참여한 행사가 뮤지션 호지어와 앰네스티의 콜라보레이션 행사였죠.”

“작년에 레터나잇에서 주로 인물 중심의 사진을 찍었는데, 사실, 그날 너무 감동 받았어요. 여러 사람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쓰는 그 모습이 멋지더라고요. 손 끝에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시대를 산다고 해도, 직접 손편지를 쓰는 건 멋진 일이니까요.

“행사를 마치고 세계인권선언 포스터를 여러 장 챙겨주셔서 집에도 붙이고 친구들에게도 나눠줬었어요. 제 친구들 중에도 소수자가 꽤 있는 편이라서 친구들과 관련 고민들을 이야기하곤 해요. 그때마다 사실 그렇게 긍정적인 이야기가 나오진 않아요. 워낙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대해 닫혀있으니까요. 그런데 레터나잇을 통해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움직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거구나’를 실감하게 돼서 좀 더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본업이 작가라, 글을 쓰면서 살고 있는데, 글을 쓰다 보면 읽는 대상이 누구건 간에 그 말이 사실은 저에게 필요한 경우도 많아요. 레터나잇도 그런 것 같아요. 인권옹호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지만, 결국 그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하는 말인 거죠.”

 

2019 Write for Rights
2019년, 또 한번의 Write for Rights가 시작됩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유스들과 함께합니다.
함께 놀라운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주저 말고 편지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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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12/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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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소니아 응(Sonia Ng)은 자신의 실명을 걸고 홍콩 경찰의 성추행 혐의를 고발한 유일한 시위자다. 다른 시위자들도 익명을 조건으로, 홍콩 경찰이 체포 또는 구금 도중 부적절하게 더듬는 행위를 하거나 알몸 수색을 했다고 주장했다.

응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던 중 한 경찰관이 자신의 가슴을 쳤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후 사람들로 가득 찬 대학교 강당에서 “나뿐만이 아니다”라고 밝히며, 다른 시위자들도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이제, 응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니아 응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홍콩을 싫어했다. 이곳 사람들과 공통점이 별로 없는 것 같았고, 민주화운동이 진전 없이 지지부진하자 우리가 약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을 겪고 나니, 이제는 나도 홍콩 시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이 저지른 성폭력 피해 경험을 밝히고 난 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카드를 보내주고, 곰인형을 선물하고, 수프나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의 애정 덕분에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 나를 지지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8월 31일 산욱링(Sun Uk Ling)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담당 경찰은 내게 옷을 벗어야 하는 2단계 몸수색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항의했던 사회복지사 한 분의 친절함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분 덕분에 수색 방법이 조정되었고, 나는 옷을 벗지 않을 수 있었다. 이날의 사건 덕분에 알게 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주변에 있는 약자들, 그리고 체포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는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반발에 부딪혔다. 사람들은 나에게 “문란하다”고 말하거나, 내가 돈을 받고 성관계를 했다며 나를 비방하려 했다. 내게 “하룻밤에 얼마를 받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했고 우리 가족들의 배경과 나의 정신 건강에 대해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내가 제기한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경찰의 성폭력 문제를 폭로한 후, 처음 며칠 동안은 도망칠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평생 도망치기만 한다면 이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심한 피해를 겪은 사람들도 알고 있다. 나는 경찰에게 물리적인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실명하거나 이가 뽑히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부상당한 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찰에 성추행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여성 시위대는 최전선에 나서지 말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는 여성들에게 앞에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위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홍콩은 우리 모두가 사는 곳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더더욱 사랑한다.
여전히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소니아 응

 

홍콩의 여성단체들은 여성인권옹호를 위해 매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레인릴리(Rainlily)라는 단체는 여성들에게 ‘성폭력에 대해 폭로하는 것은 주저할 필요가 없으며, 그 폭로를 욕보이려는 말들에는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훌륭히 일을 해내고 있다. 또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이번 운동 이후,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홍콩에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에 맞서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돈 밖에 모른다고 할 때, ‘저 많은 기부자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다고 할 때, ‘낯선 사람의 죽음에 눈물짓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에게 굽실거린다고 할 때, ‘하나가 되어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라’고 말할 수 있다.

홍콩이 중국 공산당에 맞서는 것이 계란에 바위를 치는 겪이라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는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는 끝까지 투쟁해야만 한다. 이 운동 이후, 나는 진심으로 홍콩이 나의 집이라고 느끼게 됐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이곳 사람들은 더더욱 사랑한다. 여전히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아직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가슴에 이 불꽃이 살아있는 한, 아직 기회는 있다.

 

 

온라인액션
홍콩: 경찰의 폭력을 즉각 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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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12/1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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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만 아리아니(좌)와 아잠 장그라비(우)

 

이란의 히잡 강제 착용법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활동가 야사만 아리아니에게, 이란 활동가 아잠 장그라비가 편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야사만.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몇 줄이라도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저는 최근에야 당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당신의 세계관에도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도 압니다. 당신도 이 부당한 현실에 지쳤다는 것을.

야사만, 지금은 감옥에 갇혀 계시죠. 적절한 환경에서 생활하지도 못하고 고통받고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캐나다의 한 여성이 이란 여성들의 상황에 대해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당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이 24세의 나이에 히잡 강제 착용법에 용감하게 맞섰으며, 그 때문에 징역 16년형을 선고받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혁명 거리의 여성들(Girls of Revolution Street)” 운동에 대해서도 전했습니다. 나스린 소토데, 비다 모바헤드, 나르제스 호세이니, 모지간 케샤바르즈, 사바 코르다프샤리의 이야기도 했습니다.  법원은 여성에게 무거운 형을 선고하고, 여성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캐나다 여성은 제 말을 쉽게 믿지 못하겠죠. 그에게는 그런 대우를 받지 않을 모든 권리가 있으니까요. 그 말처럼 우리의 이야기, 당신이 고통받은 이야기와 당신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는 믿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기억할 것입니다.

야사만, 세계가 다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잠 장그라비

야사만, 저는 ‘블루 걸’ 사하르 코다야리의 불탄 시신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도 공유했습니다. 여성은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자, 캐나다 여성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라고 하더군요. 사하르는 경기장에 갔지만 체포되어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을 나서는 길, 그녀는 항의의 의미로 분신했으며 결국 숨졌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언제나 고통과 눈물, 불신과 침묵이 돌아왔습니다.

야사만, 당신은 법과 관행이 여성에게 가하는 부당함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신이 즉시 석방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가 다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용기 있는 항의의 목소리가 이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역사는 당신의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고, 이처럼 노골적인 불의는 사라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당신의 석방을 기원하며, 자유롭고 번영하는 이란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잠 드림

 

수, 2019/12/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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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일상속에서 북한, 특히 북한인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다. 탈북인을 만나게 된다면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가깝지만 또 ‘멀게’ 느껴지는 북한,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한’ 탈북인과 함께 자주 들어보기는 했으나 ‘잘 모르는’ 북한인권을 주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생소한 순간으로 다가오게 될 지도 모른다.

2019년 11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회원들이 탈북인을 직접 만나 북한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다. ‘탈북인과 함께하는 북한인권 세미나’가 바로 그것이다. 세미나는 총 4회로 구성되었다. 주제별로 관련한 경험이 있는 탈북인 강사가 직접 회원들을 만나 강의를 진행하고 질의응답을 통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참석자들은 북한의 모습, 북한인권의 현실, 그리고 북한 사람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첫번째 세미나

유엔에서 북한인권을 외치다.


지난 2년간 국제앰네스티와 함께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북한인권 옹호 활동을 펼쳤던 김건우 ‘NAUH’ 홍보팀장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회원들을 만났다. 김건우는 북한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 탈북했다. 그는 한국에 정착 후 대학교에 다니던 중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탈북청년단체인 NAUH를 알게 되면서 북한인권 활동을 처음 접했다. 이내 그는 탈북인인 자신이 먼저 나서서 북한 사람의 인권 개선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북한인권 활동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는 운이 좋게도 11살 때 탈북에 성공해서 여러분들이 북한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고문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직접 경험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북한에서 아동으로서 겪었던 삶 자체가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에 온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김건우 ‘NAUH’ 홍보팀장

 

김건우는 올해 3월 유엔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전개한 북한인권 옹호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을 참석자들과 공유했다. 그의 경험은 단순히 북한인권 활동을 한다는 것을 넘어 탈북인으로서, 권리 보유자의 입장에서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을 직접 말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그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국제앰네스티의 도움으로 인권을 옹호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의 강의가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은 질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경험하거나 목격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궁금증부터 유엔에서의 체류 경험,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북한인권에 대해 보인 반응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두번째 세미나

김정은 집권 이후 달라진 북한사회


대북전문 인터넷매체 ‘데일리NK’의 강미진 기자와 함께 최근 북한의 동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기자로 활동하며 얻은 북한 정보를 참석자들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빨리 변하고 있어요. 외부와의 단절은 여전하지만, 휴대폰을 사용하고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에요.

강미진 ‘데일리NK’ 기자

 

최신 북한 동향이라는, 누구나 궁금해하고 흥미를 느낄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북한의 전반적인 상황을 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해줘서 그런지 참석자들은 그가 언급한 내용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특히, 북한의 경제 상황과 주민들의 외부 정보 접근과 관련해 질문이 쏟아졌다.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진 북한 내 한류의 인기에 대해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강미진은 북한 전문 기자답게 자신이 직접 수집하고 취재한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질문에 이해하기 쉽게 답변해주었다.

 

세번째 세미나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구금시설


정치범수용소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놓고 안명철 ‘NK Watch’ 대표가 강의를 진행했다. 그는 탈북 직전까지 북한 내 다수의 정치범수용소에서 경비병과 운전병으로 근무한 전력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역시 북한인권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기에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중들을 상대로 북한인권을 말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을 제외하고는 세상 그 어디에도 국가 차원에서 정치범의 가족과 친척까지 연좌제로 엮어서 수감하는 곳은 없어요.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평생을 갇혀 살아야 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사는 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압니다. 이런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나요?

안명철 ‘NK Watch’ 대표

 

안명철은 정치범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에 대해 자신이 목격한 것을 사례로 들며 상세히 설명하였다. 그는 강의를 마치며 정치범수용소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권유린 형태를 총망라한,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뒤이은 질의응답 시간에서 참석자들은 정치범수용소 내 수감자들의 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부터 왜 정치범수용소는 탈출하기 불가능한지, 그리고 왜 북한 사람들은 부당한 대우에 대항해 시위하지 않는지 등을 질문했다.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을 통해 정치범수용소가 왜 반드시 폐쇄되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네번째 세미나

북한 여성의 삶

북한에 대한 강연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정진 강사가 국제앰네스티 회원들을 만났다. 정진은 2014년 탈북 후 대한민국에 정착한, 비교적 최근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인 중 한 명이다. 그는 북한에서 예술인으로 살았고 현재 한국에서도 예술을 전공하고 있다. 또한, 그는 북한에 대한 강연 활동을 펼치면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북한의 여성들은 전통적 가부장제 문화 아래 가정과 사회의 여러 부분에서 차별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으로서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해요.

정진 강사

 

정진은 여성 인권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면이 오히려 북한 여성의 삶을 생생하고 실감 나게 전달하는 데 장점이 되었다. 특히, 그는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북한 여성의 삶을 예술에 비춰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북한의 출산, 육아 문화부터 여성의 경제력, 가정과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북한 예술단에 속한 여성의 인권상황 등 북한 여성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젠더에 기반한 차별에 관한 내용 등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탈북인을 직접 만나 북한인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해요.

참석자

 

참석자들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다. 비록 4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석자들은 탈북인을 만나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물론 세미나에서 북한인권의 모든 부분을 다루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시간을 같이하며 참석자들은 최소한 북한과 북한인권, 그리고 탈북인이라는 단어를 이제 더 이상 낯설게만 느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북한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북한 사람의 삶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탈북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면서 북한 사람,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앞으로도 북한인권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수, 2019/12/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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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뭐하는 곳이에요?브랜드 쇼룸인가요?대표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히는 성수동. 과거 공장 지대이자 전통적인 수제화 제조업의 메카로 통하던 이곳 분주한 길목에 역동적인 ‘공’이 굴러가는 그래픽이 돋보이는 이색 전시가 진행 중이다. 바로 지난 12월 28일부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선보이고 있는 전시 캠페인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브랜드 쇼룸인가요?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브랜드 쇼룸인가요?

 
대표적인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히는 성수동. 과거 공장 지대이자 전통적인 수제화 제조업의 메카로 통하던 이곳 분주한 길목에 역동적인 ‘공’이 굴러가는 그래픽이 돋보이는 이색 전시가 진행 중이다. 바로 지난 12월 28일부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선보이고 있는 전시 캠페인

Hit the Ball,
Hit the Action

 

성수동 거리를 지나던 가족, 친구, 연인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전시장에 들어선다. 전시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공과 골프채, 트랙별 게임룰이 적힌 팜플렛이자 점수표를 들고 미니 골프를 즐기기 위해 트랙 앞에 선다.

 

1번 트랙의 테마는 ‘택배상자’. 트랙 안내판에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다 불법 마약 거래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쓴 열일곱 살 소년이 재판도 없이 10년 징역형을 살고 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그런가하면 3번 트랙에서는 강제히잡착용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역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스물 네살 이란 여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트랙의 골인 지점은 감옥을 형상화한 쇠창살로 된 울타리 안에 있는데, 그 사이로 어렵사리 공을 집어 넣으면 조형물 윗부분에서 오색찬란 무지개빛이 반짝인다. 강제와 억압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향한 그의 신념에 박수 갈채를 보내듯.

 

우발적인 총기 오발 사고로 15살에 교수형을 선고 받은 남수단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6번 트랙은 ‘사형제 폐지’가 지닌 무게감에 상응하듯 최고 난이도 코스로 설계했다. 숫자 9를 닮은 트랙 형태는 사건의 발단이 된 권총 모양을 나타낸 것. 미세하게 높낮이가 다른 원형 트랙을 빙 둘러 골인 지점에 공을 넣으면 ‘사형제’ 라고 쓰인 팻말이 뒤집어지며 ‘폐지하라’는 메시지를 내보인다. 새 시대를 알리는 듯한 희망찬 종소리도 짤랑 울린다.

 

관람객들은 이와 같은 총 6개의 사례가 녹아있는 트랙에서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직접 몸을 움직여 목표를 달성하는 집중도 높은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게임에 사용했던 공에 핸드프린터기를 사용해 자신만의 메시지를 새겨 넣고 리프트에 공을 태워 보낸다. 구불구불한 레일을 통과한 공은 투명한 우체통으로 아슬아슬, 그러나 명쾌하게 낙하한다.

 

당신의 행동에 감사하다는 유스들의 메시지가 때맞춰 영수증 형태로 출력된다. 영수증 속 QR코드를 따라가면 전시장 내 아이패드에도 띄워져 있는 캠페인 탄원 페이지가 뜬다. 그렇다. 이 모든 과정은 그간 국제앰네스티가 연말마다 박차를 가해온 명실상부 세계 최대 인권 캠페인, ‘Write for Rights 편지쓰기 캠페인’에 대한 재해석이다.

 

미니골프는 보통 트랙마다 다른 장애물이 있어요. 플레이어들은 각기 다른 장애물을 넘기 위해 트랙별로 요구하는 특정한 미션을 수행해 점수를 받게 되는데 그런 개념과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유스들의 사례를 각 트랙에 대입한 뒤 관람객들이 트랙에 따라 특정한 액션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성취해가는 상징적인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축해보았죠.
이번 전시 아트디렉션을 총괄한 소목장세미 유혜미 작가는 말한다.

 


그는 특히 사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각 사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작업에 임했다. 왜 입고 싶은 대로 입은 게 죄가 되어서 10년 이상 감옥에 갇혀야 하지? 어디서부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먼저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습니다.

 

글로벌 인권 침해 사례는 물론 앰네스티와 편지쓰기 캠페인을 몰랐던 이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카페 나들이를 나온 이들도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두 같은 탄식을 내뱉으며 같은 행동을 취한다. ‘말도 안돼’에서부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를 읊조리며 발끈하고, 필리핀에 불어 닥친 태풍이 왜 기후 위기의 영향이고 나아가 기후와 인권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질문한다. 함께 게임을 즐긴 친구와 자신이 ‘사형제도’에 대해 이렇게나 서로 다른 의견을 지녔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인권’을 말하지 않고
인권에 대해 말하기

이번 전시로 앰네스티가 외치고 싶던 메시지는 결국 이런 게 아니었을까. 얼굴도, 이름도, 출신 국가명도 생소한 누군가가 처한 상황을 마주하기, 작은 행동이나마 몸소 움직여 직접 관계를 맺기. 이로 인해 더 이상 ‘나랑 상관없다’ 할 수 만은 없는 불의에 공감하기, 분노하기,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시는 오는 1월 26일 막을 내리지만 평범한 일상 속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인권’이란, 인류애가 존재하는 한 결코 식을 수 없는, 부정할 수 없이 세상 ‘핫한’ 우리 모두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오는 1월 26일 막을 내리지만 평범한 일상 속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인권’이란, 인류애가 존재하는 한 결코 식을 수 없는, 부정할 수 없이 세상 ‘핫한’ 우리 모두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시 정보

전시기간 2019년 12월 28일 ~ 2020년 01월 26일, 12:00~19:00
※ 매주 월요일, 1월 25일 휴무
전시공간 성수동 퓨처 소사이어티 ㅣ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1
목, 2020/01/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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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활동가 메흘랍 자밀(좌)과 나이로비 카스티요(우)의 모습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기념해 국제앰네스티는 도미니카공화국과 파키스탄 출신의 활동가 2인에게 그간 마주했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했습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와 트랜스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의 이사장입니다. 2004년 이 단체를 설립한 공동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메흘랍 자밀은 연구자이자 지역사회 교육자로, 파키스탄의 역사적인 트랜스젠더법(2018) 초안 마련을 도운 인물입니다. 이 법은 관련법 중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연대가 가져오는 막대한 위안과 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성장 환경은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나이로비저는 정말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제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가족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 제가 열세 살이 되던 해 가족들은 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저를 내쫓았습니다. 저는 산토 도밍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향정신성 물질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랜스여성이 되기까지의 전환 과정은 매우 힘겨웠습니다.

메흘랍저는 펀자브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도심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운영하고 파키스탄의 젠더 및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HOPE(‘긍정적인 기대만 가져라’)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반대하고, 가부장제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모의하며 차이chai를 아주 많이 마시는 것이 제 일상입니다. 그냥 평범해요.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나이로비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여자 옷을 입는다며 “게이 자식faggot”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선택지가 없어 생계를 위해 성노동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제도권에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포주 없이 혼자서 일을 시작했지만 다들 그렇듯이 많은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매일같이 경찰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경찰은 저를 폭행하고, 제 돈을 빼앗고, 그들과의 구강 섹스를 강요했습니다. 옷을 벗으면 그동안 당해온 부당대우로 인해 생긴 흉터가 모두 드러납니다. 각 흉터가 생긴 날짜와 시간까지도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이로비 카스티요, 도미니카 트랜스젠더 및 트랜즈베스타이트 성노동자 커뮤니티COTRAVETD 이사장

 

메흘랍트랜스젠더, 그 중에서도 특히 저희 지역 출신 사람들은 언제나 불운한 희생자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억압당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알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우리를 억압하는 제도에 맞서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폭력을 매일 마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우리의 방식대로 발언할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합니다.

 
현재의 상황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나이로비활동가가 된 때 저는 29세였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연합여성운동Movement of United Women이라는 단체가 폭력이나 체포, HIV로 고통받는 여성 성노동자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런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희 지역에는 트랜스젠더 문제를 다루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성노동자의 요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노동자 단체를 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죠. 그렇게 2004년 COTRAVETD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메흘랍하루에도 그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겪는 것 같아요.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의 조직적인 활동은 동떨어지고 개인주의적인 인권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의 말처럼, 집단 속에서 우리는 희망과 낙관이 잠든 저수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나이로비COTRAVETD을 이끈 것입니다. 저희는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교육 활동을 진행하고 군과 경찰의 트랜스젠더 인권침해 중단을 위한 인식 제고 및 교육 워크샵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약을 복용하는 트랜스젠더 성노동자였던 제가 이 단체의 대표가 되고 약물 남용을 극복하기도 했다는 것이 큰 성과입니다.

 

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메흘랍 자밀, 조사관 겸 지역사회 교육자

 

메흘랍저는 제가 이룬 것보다 제가 하지 못한 일들에 더 호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가족 안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한 것, 트랜스젠더 의제를 우익 정부에 이해시키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제 존재 자체와 인간성을 끊임없이 말살하는 사회에 안주하지 못한 것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제 실패를 통해, 제가 살아남고자 노력하고 있는 이 사회의 폭력성과 제가 저항하려는 폭력을 지지하는 구조에 대해 매일 새롭게 배워가고 있습니다.

나이로비도미니카공화국 공문서에 우리의 이름과 성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는 성 정체성 법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도 시급합니다. 메흘랍씨, 당신은 이 멋진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나요?

메흘랍모두가 노력한 결과입니다. 트랜스젠더 법은 무엇보다도 성 정체성과 표현에 관한 자기결정권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변호사, 활동가, 연구자들로 구성된 저희 팀은 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될 때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폭력에 취약한 성소수자 사회의 요구를 특히 대표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파키스탄의 입법 절차는 아시다시피 매우 배타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기 때문에 장벽을 허물고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경찰의 만행과 범죄조직의 폭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용감한 트랜스젠더 전사들이 있었기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전세계의 트랜스젠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로비배제와 낙인, 차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배제는 우리의 인권 침해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우리가 직접 선택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스스로 힘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메흘랍우리는 온몸 구석구석에 사회의 수치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몸으로 태어나 우리의 신체에 대해 직접 결정할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폭력과 삭제, 증오로 얼룩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러우니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지는 맙시다.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친절해지고 서로 보살피는 문화를 만들어나갑시다. 그리고 변화를 위해 다 같이 행동합시다.

미래에 대한 가장 큰 꿈은 무엇인가요?

나이로비제 꿈은 우리나라에서 젠더 정체성 법이 통과되고, 고령이거나 갈 곳이 없는 트랜스젠더들과 HIV에 감염돼 가족들에게 거부당한 트랜스젠더들을 위한 쉼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트랜스젠더들이 더 이상 성 노동자가 될 필요가 없도록 다른 고용 기회들이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제 꿈입니다.

메흘랍저는 퀴어의 미래를 꿈꿉니다.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억압의 제도적 근원을 해결하는 강력한 정치적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랜스젠더 자매가 지구 반대편에서 비슷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입니다. 서로의 투쟁을 통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다국적 연대를 만드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국경을 넘어선 자매애를 통해 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고 있습니다. 당신의 활동 이야기를 듣고 매우 큰 영감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훌륭해요. 당신은 지역사회의 희망의 빛입니다.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더욱 큰 힘이 되기를!

이 글은 TIME에 먼저 게재되었습니다

 

캠페인
TDOV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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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3/31-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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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는 현 시대 속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번 사태로 인한 고통은 바이러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당장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상실을 겪을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데이빗 그리피스David Griffiths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장 

코로나19COVID-19는 현 시대 속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번 사태로 인한 고통은 바이러스가 사라진 이후에도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당장의 위기를 넘긴다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상실을 겪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일자리, 보금자리를 잃게 될 것이며, 수백만 명이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불안과 고독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잃는 만큼 우리에게 남은 것도 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선택의 기회다.

집단 트라우마를 벗어난 뒤,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선택할 수도 있다. 반대로, 이번에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말처럼 “우리는 인류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에 맞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이번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취약한 상황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이번 사태로 추악한 외국인 혐오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지만 수백만 명이 보여준 작은 친절 가운데 지역사회의 결속이 더욱 돈독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인종차별, 혐오를 거부하기로 선택한다면 최근 몇 주간 나타났던 따뜻한 연대가 더욱 큰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노숙인이나 난민의 안전을 위한 공동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번 위기 속에서, 우리는 쉼터와 의료 지원이 긴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불평등을 확인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취약한 상황에 놓인 타인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에도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보호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 사태가 끝나고 다시 태연하게
시동을 걸고 지구를 파괴할 것인가?

 

우리는 앞으로의 기후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로 선택할 수 있다. 항공편이 취소되고, 거리에 자동차들이 사라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배기가스 배출량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기후 문제로 그 동안 엄청난 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해 왔다. 그런데 이 사태가 끝났다고 태연하게 다시 시동을 걸 것인가? 아니면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실현 가능한, 더욱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싸울 것인가? 정부는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 생명과 건강, 경제를 보호하고자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고, 막대한 규모로 재정에 개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여있는, 기후 위기라는 더 거대한 존재론적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충분한 자원을 기반으로 의료제도를 강화하고, 모든 사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계 곳곳의 보건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어떤 제도는 개인의 치료 접근성과 비용 지불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번 사태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때에만 개인도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

 

사회적 안전망 없이 일하는 근로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사회 보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선택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경제적으로 가장 불안정한 집단에 제일 큰 피해를 입혔다. 이는 불평등이 낳은 가장 가혹한 결과였다. 비공식적 경제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사회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안전망으로 보호 받지 못한다. 아무런 보수 없이 대부분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전 세계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임시” 근로자들은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배달 기사와 같은 사람들은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모든 형태의 노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사태가 더욱 포괄적인 보호를 위한 자극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감시, 사회적 통제용 기술 사용에 명확한 기준을 수립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중국은 코로나19를 추적하고 확산을 억제하고자 감시 기술을 널리 사용해왔다. 이 모델은 최근 여러 국가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기술은, 한 번 도입되면 쉽게 철회할 수 없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 고도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달콤한 악마의 거래에 우리는 저항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신뢰를 쌓기로 선택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인들은 기술적 전문성을 공격하고 증거와 과학을 무시하며 큰 이득을 얻었다. 이들은 “가짜 뉴스”를 부르짖으며 진실을 가로막으려 했고 끊임없이 기자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과학,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거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다시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러니 올바른 선택을 하자. 그것이 이번 위기로 고통받은 사람들을 기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화, 2020/04/07-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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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대표, 김지나입니다. 저는 2018년도부터 학교 동아리인 ‘숙명앰네스티’를 통해 국제앰네스티 회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체첸의 LGBTI 탄압 중단 촉구 공동행동,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후위기 비상행동 등을 통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혐오 표현에 관한 강연을 듣고, 회원 모임인 국제정책모임에 참여하며,

 

안녕하세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 대표,
김지나입니다.

 

저는 2018년도부터 학교 동아리인 ‘숙명앰네스티’를 통해 국제앰네스티 회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체첸의 LGBTI 탄압 중단 촉구 공동행동,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후위기 비상행동 등을 통해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혐오 표현에 관한 강연을 듣고, 회원 모임인 국제정책모임에 참여하며, 앰네스티의 연간 행사인 에서 전 세계의 유스활동가들을 위해 편지를 썼습니다. 숙명앰네스티에선 회원들과 인권영화제를 개최하고 군형법 92조의6 폐지, 히잡법에 반대하다 채찍형을 선고받은 나스린 소토데와 연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레논벽Lennon Wall을 부착했습니다.

그동안 유스의 목소리는 한국 사회 그리고 전 세계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물론 작년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전 세계 유스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한국의 선거 연령 하향이 이뤄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은 ‘기특한 학생들’로 불리며 국회에서 유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앰네스티 유스 모임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스의 목소리를 모으고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의를 가집니다. 유스들과 함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인권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연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에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고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특별한 변화’ 앰네스티의 슬로건 중 하나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인권 운동을 높은 윤리적 기준을 가진 소수의 사람이 하는 거창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변화는 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연대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특별한 변화의 시작이 됩니다.

유스 모임을 통해 다양한 유스를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인권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유스,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고 싶은 유스,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유스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인권에 대해 함께 알아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유스,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고 싶은 유스,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유스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인권을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19, 더는 기후변화라고 할 수 없는 기후위기,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혐오 범죄,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하는 트렌스젠더,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난민과 이주민. 2019년을 넘어 2020년, 어두움을 밝히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세상의 부당함은 여전히 너무 거대하고 무겁습니다. 작년 한 해, 이러한 크기와 무게로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대의 힘을 느끼는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거리에서, 강의실에서,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고, 행동하여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올해도 이러한 투쟁과 변화의 현장에 앰네스티 유스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부당함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같이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토, 2020/05/0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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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한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영상에는 미니애폴리스의 경찰관이 한 흑인 남성의 목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수갑을 차고 있었고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경찰관은 강경 진압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관은 7분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목을 짓눌렀고 결국 그는 사망했다.

George Floyde 일러스트

George Floyde 일러스트

 

I can’t breathe: 반복되는 죽음

5월 25일, 한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영상에는 미니애폴리스의 경찰관이 한 흑인 남성의 목을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수갑을 차고 있었고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경찰관은 강경 진압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관은 7분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목을 짓눌렀고 결국 그는 사망했다.

 

숨을 쉴 수 없어요
I can’t breathe

 

조지 플로이드는 사망 전 ‘I can’t breathe’를 여러 번 외쳤다. 숨을 쉴 수 없다는 외침, 우리는 이 외침을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6년 전, 흑인 에릭 가너Eric Garner는 뉴욕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에릭 가너 역시 죽어가는 가운데 ‘I can’t breathe’를 여러 번 외쳤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뉴욕 경찰들은 진압을 멈추지 않았다. 6년이 지났지만 죽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변한 것은 없었다.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들

 

흑인을 향한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

에릭 가너 뿐만 아니다.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 아카이 걸리Akai Gurley, 타미르 라이스Tamir Rice, 브레오나 테일러Breonna Taylor, 아흐머드 알베리Ahmaud Arbery까지, 너무나도 많은 흑인들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미국 경찰은 그간 많은 인권 침해를 일으켜왔다. 그 중 상당 수가 소수 인종, 소수 민족, 특히 흑인과 연관된 것이었다. 미국 내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가 이와 같은 살인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의 크리스티나 로스Kristina Roth는 이번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다. 그런데 흑인의 경찰관들이 이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하고 경찰 정책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일 때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시위 현장을 막고 있는 경찰들

시위 현장을 막고 있는 경찰들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찰

미국 시민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보며 공포와 실의에 빠졌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인종 차별 사건에 분노했다. 그 결과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미국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대한 정부의 대답을 요구했다.

시위 속 구호는 시위자들의 응축된 경험을 반영한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경험, 감정, 욕구가 하나의 문장으로 터져 나올 때 그것이 시위의 구호가 된다. 조지 플로이드 연대 시위에서는 “’Hands up’, ‘Don’t Shoot!’” 이라는 구호가 울려퍼진다. 시위의 중심이 되는 흑인 사회가 어떠한 경험 속에서 살아왔고 생존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구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중무장한 경찰, 주 방위군 투입이었다. 실제로 CNN의 보도에 따르면 6월 2일(현지 시각 기준) 최소 23개 주에 주 방위군이 투입되었고 투입된 방위군의 숫자 역시 17,000명에 이른다.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위대를 향해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무력이 행사된 것도 확인되었다.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용 무기 등이 사용되고 있다.

 

시위에서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는 흑인 시위자

시위에서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는 흑인 시위자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의 총기 폭력 중단 캠페인 매니저 어니스트 컨버슨Ernest Coverson은 “현 (미국) 정부의 유일한 대응은 평화적인 혁명의 현장에 군대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흑인에게는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적법한 시도는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만이 있었다.”고 말하며 현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 조사국장인 레이첼 워드Rachel Ward 역시 “경찰에게는 평화적 시위의 권리를 존중하고 장려할 국제인권규범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 미국 경찰은 긴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시위대의 생명을 위협하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당한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법 집행을 촉구했다.

레이첼 워드의 말처럼 평화적 집회 시위의 자유는 국제인권규범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다. 시위대를 향해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은 정확히 조사되어야 하며 법을 어긴 경찰관이 있다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또한 이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흑인과 유색 인종에 대한 뿌리 깊은 인종 차별, 경찰의 불법 살인, 그에 대한 정의 실현의 부재에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미국 정부가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어 관련 책임자들이 제대로 된 책임을 지게 할 것을 촉구한다.

더 이상 무고한 이들의 죽음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액션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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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 속 경찰의 대응을 비판한 레이첼 워드의 성명 전문이다.

 

성명서 전문

경찰에게는 평화적 시위의 권리를 존중하고 장려할 국제인권규범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 미국 경찰은 긴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시위대의 생명을 위협하며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각 도시마다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무력 행사로 볼 수 있는 행동들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무력 사용을 즉시 중단하고, 정당한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하는 법 집행을 할 것을 촉구한다.

평화적인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육중한 진압 장비와 군용 무기 및 장비를 동원하는 것은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는 시위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시에 적합한 수준의 무장은 경찰관들에게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경찰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안정화에 나서야 한다. 경찰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 수준의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시위 주최자들과 소통하며 긴장을 완화해야 하고, 폭력을 예방하거나 최대한 빨리 진정시켜야 한다.

모든 종류의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무력은 즉시 멈춰야 한다. 시위대를 대상으로 이러한 무력을 행사한 사례는 모두 조사해야 하며, 법을 어긴 경찰관이 있다면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더불어, 미국 연방정부와 각 도시, 주 정부는 이러한 시위가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의미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 또한 흑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불법 살인이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도록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문제의 경찰관들은 반드시 기소되어야 하며, 미국의 모든 주 정부는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제한하고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의회에서는 연방 기준을 마련하고 개혁을 장려하기 위해 평화 법안PEACE ACT 역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가 이러한 살인을 부추기고 있으며 경찰의 시위 대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방정부는 경찰의 살인, 시위할 권리 (보장), 차별 폐지 등 이번 위기의 모든 면을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위원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발언과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모든 수준에서 국제법에 보장된 권리인 시위권을 보장해야 한다.

금, 2020/06/05-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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