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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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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익명 (미확인) | 월, 2017/10/30- 23:22


이재명 “적폐 청산은 친일부터 뿌리 뽑아야!”

이재명 성남 시장이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데, 저항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적폐 청산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촛불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7일 오후 고양시 소재 고양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식민지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 출연해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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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좌측부터)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 노기환 MC가 27일 경기도 고양시 문예회관 공연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받은 질문 가운데 세 번째 주제인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사회자가 “촛불시민이 독일 에버튼 인권상 받았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유래가 없는 한 국가의 시민이 이제 인권상을 받은 건데 그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인권이 크다는 생각이다. 시장님 그동안에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시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촛불을 든 우리 전사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또 문재인 정부 민주정부는 수립돼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아마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역사는 말할 필요 없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무결의. 아무런 피해도 없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 낸 건 아마 처음 아닐까 싶다”면서 “저는 우리 촛불 혁명의 이 결과 정권교체를 했지만 이건 하나의 수단이고, 초입이고… 진짜 능력은 적폐세력 청산. 이것도 사실은 초입에 불과하고, 다음 단계 공정한 국가. 미래 희망이 있는 나라 만드는 게 마지막 과제일 것”이라고 시민들이 일구어낸 촛불혁명에 대해 정리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만약 거기까지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프랑스 혁명이 버금갈 만한. 인류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일이 국민들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게 시작인 거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겨우 과거에 잘못된 구조. 이 적폐를 덮고 있던 껍데기 하나를 제거하는 이 적폐를 제거하고 또 새로운 질서. 공정한 나라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아 내가 진짜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다’. ‘애 많이 나야지’. ‘우리 아들 딸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은 거다”라고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봤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현재나 과거의 이 불합리한 구조로 부당하게 작은 노력을 하고 큰 이익을 챙기는 집단들이 있다. 이제 소수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걸 바꾸려면 그들이 저항하지 않겠나? 뺏겨야 되니까. 그거를 뺏지 않고는 뺏어서 공정하게 만들지 않고는 사실 비전이 없는 건데. 희망이 없는 건데. 엄청난 저항이 기다릴 거다”라고 진단해 사실상 적폐 청산의 길은 거대한 저항과 진통이 있음을 예고했다.

이재명 시장은 그러면서도 “적폐 청산은 오히려 쉽다. 성역 없이 조사하고 책임을 물으면 되는 건데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꿔서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엄청난 저항이 있을 거다. 그거는 의지와 국민의 힘으로 합리적으로 권력을 통해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거는 보장돼 있지 않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촛불을 들고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이 권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에 더 신경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많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고 안타깝다”고 촛불 혁명 이후의 세상을 우려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함께 출연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에게 “적폐청산에 무엇보다 시민들의 힘이 중요할 텐데… 실장님 평상시에 역사강의 하면서 시민들 많이 만나시잖는가? 만나시는 시민들 생각이 좀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박한용 실장은 “저는 그래도 희망을 좀 가지고 있다. 갖고 있는 게 과거에는 우리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그런게 있었다. 이번에는 시민들이 나와 주셔서 흩어지지 않고 있는 분들도 많다. 실제로 그분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간단하게 한마디 한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 죽 써서 개주지 말자는 거다. 이 촛불을. 다시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으로 남아야 되겠다. 419혁명을 516으로 박정희가 가져가고 518민주항쟁 했더니 전두환이가 탱크로 가져가고 민주항쟁 했더니 노태우가 619 선언을 통해 가져갔더라. 저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과제들은 더 이상 후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까 우리 이재명 시장님 말씀처럼 혁명은 파괴가 아니고 건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전망이 서 있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박한용 실장이 파악한 촛불민심을 전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대개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끝났다고 생각하면 느슨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뀌고 그렇게 된다. 지금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하고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공정한 나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성공했다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번에 과거로 되돌아가면 다시는 성공하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되고 거기에 모두가 힘을 합해야 되고, 작은 차이들은 이겨내야 된다”면서 “그리고 민주정부 개혁정부가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체제가 좀 안정될 수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매우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날 사회를 맡은 노기환 MC는 다시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적폐들이 있겠지만 또 현직 시장님이시니까 지방자치 부문에서는 적폐들이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적폐 때문에 오늘도 제가 발목 잡히고 있는 중인데 모든 영역에 있다.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도 있고, 지방에도 있고 많다. 적폐라고 하는 게 별 거겠는가? 예를 들면 국민을 배재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그 대리권을 남용하는 형태. 대표적인 적폐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부인하는 거다”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 권력의 원래 귀속이 어디냐? 그 생각을 하면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또는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텐데. 과감하게 내 권력이니까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하는 것도 엄청난 적폐 중에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시장은 특히 “중앙정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아닌?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뭘 한 게 있다고 ‘신적폐’ 운운하고. 또 예를 들면 과거에 적폐청산에 대해서 잘못하면 처벌하자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가지고 ‘정치보복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도둑놈 잡는 게 보복인가? 도둑놈은 때려잡아야지. 그것도 도둑놈 때려잡는 걸 ‘야 이거 보복’이라고 얘기하니까 일부가 동의하는 게 있다. 동네 스피커로 떠들고. 이런 것도 역시 남아 있는 적폐들이다. 상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작금에 일부 야당에서 제기하는 ‘정치보복론’을 합창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적폐’로 규정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답답한 게 도둑이 이건 보복이다. 얘기하는데 그걸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은가?”라는 질문엔 “대개 도둑들이 공범들이다. 오해를 한 건 있다. 친인척. 전폐청산 특히 역사문제 적폐청산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가 가장 앞장서고 있지 않나? 역사 부분 적폐에 대해서 실장님이 조금 집어 주시라”고 마이크를 박한용 실장에게 넘겼다.

박한용 실장은 이에 대해 “상징적일 수 있다. 우리가 미 군정 시기에 대한민국 국군을 만들 때 군사영어 학교를 먼저 세웠다. 이때 110명이 배출되니까 108명이 일본군 또는 만주족 장교 출신이더라. 광복군은 딱 두 명밖에 없다. 대한민국 군번 1번이 친일파다. 경찰은 경위 이상이 82%가 친일 순사 출신이다. 저는 이미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고 본다. 그들이 이승만 앉혀 놓고 이 대한민국을 호작질 한 거다. 함께 해 먹으면 한 통속 공범들이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최순실 사건이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일제시대 경찰이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는 일제 때 만주군 장교였다. 이게 적폐의 뿌리가 계속 왔다고 본다. 이들은 도덕성도 없고 후안무치하고. KBS는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에서도 하등의 공로가 없다’. 김부석 아버지가 친일파. 사실 저희가 다 공개할 수 없지만. 그래서 친일세력은 반공을 주장한다. 분단을 악용하고. 한국 사회를 색깔로 마비시키는 주범. 자기 방을 지킬 개들을 해 놓은 거다”라고 분기 탱천한 마음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박한용 실장은 이어 “검찰에는 검경. 경찰에는 경경이 있잖은가? 그래서 적폐혁신은 이거다. 이 57년 동안 한 통속이 됐던 사람들이 고리를 놓았지만 적폐 청산한다고 할 때 57년 동안 밥 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민주세력)를 물어뜯으려고. 이런 역사들이 역사 적폐라고 추가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적폐 청산의 시작은은 친일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한편, 이날 이재명 시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운동’에 공감하고, 박한용 실장이 권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 후원에 범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은 ‘52억 안팎의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미 3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으나 나머지 20억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오는 11월말로 건립부지 잔금을 치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아울러 이재명 시장의 다음 강연 행선지는 경기도 가평이다. 더불어민주당 가평지역위원회가 주관하는 이재명 시장 초청 강연은 11월 1일 수요일 19시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있을 예정으로 이날 이재명 시장은 ‘시대정신과 시민주권’이란 주제로 ‘성남시 사례를 통해 보는 시민주권시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내용으로 경기도 동부지역 주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날 강연회에 참가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제한이 없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mail protected]

<2017-10-28> 한국인터넷언론조합

☞기사원문: 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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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9/02/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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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없는 일본인 약장수를 몽둥이로 패고 강도살인을 저지르고도 그
것도 모잘라 사체유기까지 하고 나중에는 그 죽이고 돈까지 빼앗은
일본인 약장수를 민비를 죽인 일본군 장교로 둔갑시켜 싸우다가 죽
인걸로 조센진들을 속인 김구를 위인으로써의 지휘를 박탈하고 그
자손들의 독립유공자로써의 특혜를 박탈하라. 
 


미개한 조선을 위대한 대일본의 영도아래 이끌어 미개한 조선을 근
대화로 만드는데 공헌한 이완용 공작각하 반자이!!!!!!!!!!!!!!!!!!!!!!

 
이완용 공작각하의 자손들이야 말로 지금 조선에서 특혜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위대한 대일본의 통치이후 미개한 조선에 반공사상을 강화
하야 남조센인 한국이 북괴 빨갱이거지새끼들처럼 안되게 해주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각하 만세!!!!!!!!!!!!!!!!!!!!!!!!!!!!!!!!!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서 기용하신 최정예 일본군 헌병 출신이자 일
본 경찰 출신인 김창룡 장군과 노덕술 총경 같은 분들이 친일청산
이나 외치던 빨갱이놈년들을 잡아다가 전기로 지지고 물통에 머리
통 처박고 하셨기에 이 남조센이 북괴 빨갱이거지새끼들처럼 안되
게 된게다. 


그리고 안두희 장군도 만세!!!!!!!!!!!!!!!!!!!!!!!!!!!!!!!!!!!!!!!!!!!!!!!!!!
일, 2019/02/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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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김구가 강도살해한 일본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군 장교가 아닌 일본의 일반 약을 파는 상인으로 알려져 왔다.

김구도 이미 재판 과정에서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범일지에 민비를 죽인 일본군 장교로 거짓미화하여 조센진들을 속이고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말도 안되는 것으로 조센진들을 우롱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문제는 아직도 백범일지를 출판하는 출판사들은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음에도 아직도 그거에 대해 안고쳐먹고 조센진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게다.

이는 당연 죽은 무고한 일본인 약상인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을 저지른 김구에 대하여 출판사들이 묵인 방조한다고 보는게 맞는 것인게다.

당시 죽은 일본인 약상인의 후손들이 출판사를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방조와 부작위”로 형사고소 및 민사소송은 당연한게다.

 

일, 2019/02/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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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역사디자인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3.1운동의 주역들과 공간,

그리고 그 영향과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민족대표 33인과 유관순 중심의 기억을

 

더욱 풍부하게 넓혀보고자 합니다.

 

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에서 벌어진 반식민 평화운동,

그리고 통일 한반도를 염두에 두고 북한의 시각에서 3.1운동을 되돌아봅니다.

한편, 3.1운동의 정신이 중국에서 전개된 독립운동 현장에서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그 열악한 현장과 치열했던 고민을 되돌아 봅니다.

나아가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 100년을 향한 기억의 초석을 다져야 할지 고민해 봅니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의 링크를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https://blog.naver.com/rchd2018/221453853369

일, 2019/02/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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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6,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26주년 되는 날의 소회 (2)
–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관련자들과 맹목적 옹호자들, 정녕 임종국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내가 제명된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사회의 제명 결정서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결정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정관에 의거 이사회에 주어진 권한에 따라 참석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회원 여인철을 제명 처분한다. (51차 이사회는 이사 8인 중 이사 강만길을 제외한 7인이 참석하였으며, 여인철씨의 제척사유 주장에 따라 이사 임헌영과 조세열은 의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죄목(?)으로 제명당한 것인지가 나와있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정관 몇조 몇항에 의거, 무슨 죄목으로 제명함” 정도는 기본적으로 결정서에 담겨야할 것 같은데 그저 “정관에 의거”,  “이사회에 주어진 권한에 따라” 제명처분했단다.

제명의 이유는 당사자인 내가 추측하기에는, 아마도 내가 총회 때 정관개정을 통해 회원의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축소시킴으로써 권한을 강화하려는 집행부의 기도에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고 총회장에 들어가 반대의사를 밝힌 것 등의 일련의 행동에 대한 응징일 것이다.  나를 괘씸죄로 회원에서 제거하면 될 줄 알았을 것이다.

지금 3공, 5공 시대인가? 내가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말과 글로 문제제기한다고 제명을 하다니.  더구나 지부장과 운영위원장까지 지내며 20여년을 헌신하며 회원 활동을 한 사람을…

어떤 이사는 내가 “조직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한다.  지난 20여년을 헌신한 사람이 왜 이제 와서 조직에 있어서는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작년 5월 11일자로 제명된 후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을 동지들과 만들어 함께 행동해 왔다.  처음엔 운영위원회를 쪼그라뜨리는 정관 개악에 반대하며 시작했지만 지금은 문제의 양상과 심각성이 크게 달라졌다.

민문연과 투쟁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민문연의 비리 비행 부정의 폭과 깊이가 생각 외로 넓고 크다는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크게 찍힌 꼴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결국 민바행에서 첫 민원을 낸 작년 7월 초 이후 5개월만인 12월 14일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형사고발보다 한 단계 낮은 처벌인 경고처분과 시정조치를 받았다.  4일간이나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나온 행정처분이며 결코 가볍지 않은 처벌이다.

경고처분의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심각하다.
미승인 정관 사용에 ‘엄중경고’,  ‘기부금 부적정 사용’에 기관경고, 그리고 시정조처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전원(5명)과 감사 전원(2명)은 경고처분을 받았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표면적 경고 이유는 미승인 정관 사용(임의로 “운영” 정관을 만들어 사용)이지만, 그 이면의 핵심은  지난 십수년동안 법적 효력이 있다는 “신고 정관”-회원들이 그 존재와 용도를 알지 못한- 을 이용해 “회원 10명”으로 총회를 열어오면서 전국의 1만 3천여 회원들을 속여온 것이다.

그리고 “회원 10명”의 구성원이 ‘이사 5명과 상근자 5명’이라니, 그들이 회원 몰래 총회를 열어 주요 사안을 결정해 왔다는 건 실질적으로 몇몇 상근자들이 운영위원회(회원)의 뜻을 무시하고 저들 마음대로 민족문제연구소를 주물러왔다는 것이다.

그 십수년 동안을 회원과 회원을 대표하는 운영위원회는 있으나마나, 그냥 허울로만 존재한 것이다.  그러니 회원으로서, 회원의 대표격인 운영위원장 으로서 분노가 이는 것이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이런 망나니 사기극을 벌이는가?  그런 속임수를 획책한 핵심 상근자들은, 그리고 그 책임자는 그러고도 그 자리를 지키려 하는가?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가?

그리고 교육청에서는 “기부금 부적정 운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부적정”하게 “운영” 했다는 것의 의미가 무언지 밝혀져야 한다. 돈을 어떻게 걷어서,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은 10명”이라며 신고한 집행부의 의사록에 대해 “흠결이 없다”고 한 서울시교육청의 판단대로라면 1년에 십수억원씩 들어오는 기부금품 처리에대해 기부금품법 위반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무원이 불법을 인지했을 때 고발해야한다는 의무를 피해가기 위해 고의로 봐주기 처분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아직 남아 있다.

어쨌든 감독관청으로부터 위와 같은 내막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로서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민문연 집행부는 전국의 회원과 국민을 속여가며 그동안 무슨 짓을 해온 것인가?

18년만의 일이다.  2000년에 민문연이 서울시 동부교육청으로부터 고발조치 처분을  당했을 때는 이사 전원이 사퇴를 했다.  그래도 그때의 이사진은 양심이나 염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 민바행에서는 지난 1월 12일 성명을 통해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임헌영 소장과 지난 십수년 동안 “회원 10명”으로 회원들을 우롱해온 조세열 당시 사무총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바행 측을  법적 조치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시면서도 친일연구에 몸 바치신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세워졌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받들어야 할 그분의 정신은 무엇인가?  바로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 행적까지도 친일 자료에 남기는 엄정함, 그리고 가난과 질병에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친일연구에 매달린 기개 아닌가?  그(분) 덕에 오늘날의 민족문제연구소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그런 엄정함과 기개가 남아있나?  그저 오로지 끼리끼리, 패거리 정신과 기득권 지키기 소유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임종국 선생은 또 친일한 인사들이 반성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개탄했다.  그런데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비리와 부정에 연관되거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을 “음해 세력”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관련자들, 그리고 맹목적 비호자들, 정녕 정신적 사표여야 할 임종국 선생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2019. 1. 16.
회원가입 26년째 되는 날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제명자

목, 2019/02/0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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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구를 지지하지 않고 중이 싫으면 절을 나간다고 합니다

아마 여인철씨도 민족 문제 연구소가 싫고 마음과 뜻이 맞지 않아서 나가시고 당신 마음과 뜻을 생각하시면서 새 단체를 세우셨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시고 단체의 정관이나 계획등등 바로 세워서 참 그사람 여인철씨가 이끄는 단체가 마음에 들고 하시는 사업이 옳다고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 세운 단체에 가입할것입니다

당신이 이름을 지적하면서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에 당신이 그자리가 욕심이 나서 그런것 같습니다

당신이 쓴 글 다읽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단한줄입니다 부정 불의 등등입니다 그것이 사실이 라면 법에서 판결할것입니다  누구누구 일하는 분을 사퇴하라고 하면 그자리가 탐나서 그런가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않이라면 다시는 그런글  올리지 마시고 당신이 만든 단체 잘 운영하셔서 참 여인철씨가 훌륭하신 분이구나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단체에 가입 할것입니다 나역시 당신 단체 운영하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면 협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뚜렷한 계획없이 무조건 과거 몸담았던 단체와 임원들 성명 운운하면서 사퇴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당신네가 만든 단체가 날마다 발전하여 민중의 마음의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 전 미주공동대표 이덕문

 

 

 

 

목, 2019/02/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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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日帝治下朝鮮僧徒

 

邦亡奚削髮(방망해삭발)

利敵後人嘆(이적후인탄)

詰問望成佛(힐문망성불)

狂歌百尺竿(광가백척간)

 

일본 제국 治下의 朝鮮 중들에게 묻는다

 

나라 망했는데 어찌 중이 되었는가

敵 이롭게 했으니 훗사람 탄식한다

따져 묻겠노니 부처 되길 바랐는가

百尺竿頭 올라 미친 노래 불렀구나.

 

<時調로 改譯>

 

어찌 중이 됐는가 利敵行爲 탄식한다

따져서 묻겠노니 부처 되길 바랐는가

높다란 장대에 올라 狂歌를 불렀구나.

 

*僧徒:  수행하는  승려의  무리.  치도(緇徒)ㆍ치려(緇侶)ㆍ치류(緇流)  *削髮:  출가

(出家)하여  승려가  됨을 이르는  말 *利敵: 적을 이롭게 함 *後人: 훗사람 *詰問:

트집을 잡아 따져 물음 *狂歌: 곡조나 가사와 상관없이 마구 소리쳐 부르는 노래.

 

<2019.2.8, 이우식 지음>

금, 2019/02/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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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聞某國會議員美國半裸公演觀覽

 

辨覈非全裸(변핵비전라)

愚民忽解頤(우민홀해이)

貴公高位職(귀공고위직)

何故覓佳姬(하고멱가희)

 

어떤 국회 의원이 미국에서 반나체 공연을 관람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알몸 아니었다며 옳고 그름 밝히니

못난 백성 문득 입 딱 벌린 채 웃소

貴公은 높은 지위의 관직에 있는데

무슨 연유로 예쁜 아가씨 찾았는고.

 

<時調로 改譯>

 

알몸은 아니라 하니 어리석은 백성 웃소

貴公은 높은 지위의 관직에 있는 분인데

어떠한 연유로 인해 예쁜 여자 찾았는고.

 

*傳聞: 다른  사람을  통하여  전해  들음.  또는 그런 말 *半裸: 반나체 *辨覈: 옳고

그름을 가려 밝힘 *全裸: 알몸 *愚民: 어리석은 백성 *解頤: 턱을 푼다는 뜻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음을 이르는 *何故: 무슨 까닭 *佳姬: 젊고 아리따운 여자.

 

<2019.2.9, 이우식 지음>

토, 2019/02/0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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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환기화백의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이력을 보니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친일행위를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그런 내용은 없었습니다. 좀더확실히 알고싶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잘 알것이라 생각해서 문의 드립니다.

김환기 화백은 친일파 또는 행위를 했었나요?

월, 2019/02/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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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허위사실 인지·반복 게시 등에 비춰 볼 때 죄질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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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기타

문재인 대통령과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하는 허위 내용이 담긴 글과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수 성향 인사가 항소심에도 1심과 같이 실형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공직선거법 및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방 모(50)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9일 밝혔다.

1심은 방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6개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징역 4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방 씨는 게시글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피해자들을 비방할 목적으로 각 게시글을 게시했다고 충분히 볼 수 있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전파성이 높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작성한 글의 개수·반복성에 비춰 그 죄질이 나쁘다”고 설명했다.

보수 성향 단체 대표로 알려진 방 씨는 지난 2016년 11월부터 19대 대선을 앞둔 2017년 4월까지 문 대통령에 대한 허위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게시물의 ‘문 대통령 아버지는 북한 공산당 간부 출신’, ‘문 대통령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파산관재인’, ‘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1조원의 환전을 시도했다’는 등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 2014년 10월에는 트위터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일본 욱일기를 배경으로 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을 조작했다’는 허위 사실을 세 차례 게시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방씨의 이런 범행은 선거 공정성을 훼손하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그릇된 인식을 하게 할 위험이 있어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크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2019-02-09>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문 대통령 아버지는 공산당’ SNS 허위 글 올린 50대 2심도 실형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민족문제연구소 명예훼손 방자경 2심도 유죄, 징역 10개월 

☞YTN: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50대 2심도 실형 

☞뉴시스: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50대 2심도 실형 

☞세계일보: ‘문재인 부친은 공산당’ SNS 허위글 50대 2심도 실형

☞일요신문: ‘文 대통령 아버지 공산당 간부’ 허위 사실 게시한 보수 인사 ‘실형’

월, 2019/02/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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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頂上會談

 

何邦先破約(하방선파약)

不信又相疑(불신우상의)

老虎逢狼子(노호봉낭자)

將來豈可期(장래기가기)

 

북한과 미국의 정상 회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약속을 깰까

믿지 못하겠는지라 또 서로 의심

늙은 호랑이가 이리 새끼 만나니

다가올 앞날 어찌 가히 기약하랴.

 

<時調로 改譯>

 

뉘 먼저 약속 깰까, 믿지 못해 서로 의심

늙어 버린 호랑이가 이리 새끼를 만나니

다가올 저 앞날일랑 어찌 가히 기약하랴.

 

*破約: 약속이나 계약 따위가 깨어짐. 약속이나 계약 따위를 깨뜨림 *狼子: 이

새끼  *不信: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 *可期: 기대하거나 또는 기약할 만함.

 

<2019.2.12, 이우식 지음>

화, 2019/02/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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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부터 기생까지 만세운동 선봉…3ㆍ1운동 직전 첫 ‘여성 독립선언서’ 발표
임시정부 헌장에도 남녀평등 명문화…”독립운동계, 여성 역할에 깊은 이해”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3·1 만세운동때 선봉에 섰던 여성은 유관순 열사만이 아니었다.

어린 학생부터 평범함 주부, 간호사, 기생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은 물론이고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3·1운동은 여성들이 오랜 세월 성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 항일운동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3·1운동 이후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여성 독립운동단체들도 우후죽순으로 결성돼 항일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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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여성가족부 제공]

3·1운동 직전 만주지역에선 1천335자 한글로 작성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발표됐다. 이 선언서의 말미에는 기원 4252년(1919년) 2월이라고 표기돼 있고,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이정숙 등 여성 독립운동가 8인이 서명했다.

국가기록원이 발간한 ‘여성독립운동사(3·1운동 편)’는 이 선언서를 “3·1운동 이전에 발표된 여성들의 첫 독립선언서”라고 평가했다.

선언서는 여성도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국민 구성원임을 강조했다. 자주독립 정신과 함께 남녀평등 의식을 표명한 것이다.

여성들은 3·1운동 당시 서울, 개성, 평양, 부산, 광주, 전주 등 주요 도시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 도시에는 여학교와 교회 부인회 조직 등이 있어 여성들을 조직하기가 용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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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자혜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서울에선 이화학당, 정신여학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배화여학교 등을 중심으로 여학생과 졸업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조선총독부 부속 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도 서울의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중심인물은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간우회(看友會)를 조직한 박자혜 선생이다. 간우회 회원들은 각종 유인물을 작성해 배포하는 등 만세시위의 전면에 섰다.

개성에선 당시 여자성경학원 기숙사 사감을 지내던 어윤희 선생이 남성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독립선언서 배부를 자청하는 등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선생이 집집마다 독립선언서를 돌리는 광경을 본 학생들이 독립선언서 배부에 동참했고 이는 개성 만세시위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됐다. 일제에 체포된 선생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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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윤희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충남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는 3·1운동으로 휴교령이 내려지자 몰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왔던 이화학당 학생 유관순 열사가 주도했다. 태극기를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 등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이끈 열사는 일본 헌병에 체포된 이후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했다.

부산 일신여학교의 만세시위는 경남지역 3·1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 교사인 주경애 선생은 12명의 여학생과 시위 준비를 한 뒤 저녁에 기습적으로 거리에서 만세시위를 했고 이때 거리의 군중들도 시위에 동참해 시위대는 순식간에 수백명으로 늘었다.

평양 만세시위에선 숭의여학교와 교회 여신도들의 활약이 컸다. 숭의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직접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남산현교회에서 열린 고종황제 봉도식(奉悼式)에선 여신도 20여명이 나서 만세시위를 촉발했고, 미국 선교사 거주지인 신양리에선 기독교 부인 200여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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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관순 열사 [국가보훈처 제공]

수원과 해주 등지에선 기생들이 만세시위에 불을 붙였다.

당시 수원 기생조합의 총무였던 김향화 선생은 자혜병원 앞에서 동료 기생들과 만세행진을 벌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김향화 선생은 일제에 체포돼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해주에선 김해중월 선생 등의 주도로 기생들이 자신의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고 만세행진을 벌였고, 여기에 시민들이 동참해 만세시위 군중이 수천 명에 달했다.

3·1운동을 통해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선 여성들은 서울과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항일 여성단체를 조직해 활동했다.

여성단체 중 서울 중심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평양 중심의 대한애국부인회는 조직 규모가 방대해 지방 곳곳에 지회를 두고 활동했다. 평안남도 순천의 대한국민회부인향촌회, 평안남도 강서의 대한독립여자청년회, 평안남도 대동의 대한독립부인청년회, 평안남도 개천의 여자복음회 등 항일여성단체들도 비밀리에 활동했다. 중국에선 김순애·이화숙 선생 등이 주축이 된 애국부인회, 일본에선 여성 유학생 중심으로 여자학흥회가 조직됐다.

미국에선 로스앤젤레스의 대한여자애국단과 유학생 중심의 근화회, 하와이의 대한부인구제회 등이 결성됐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고 했다”며 “3·1운동 당시 독립운동계를 비롯해 민중들 사이에서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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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문화재 등록 예고
(서울=연합뉴스) 문화재청이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따라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6일 전했다. 2018.11.6 [문화재청 제공] [email protected]

<2019-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3ㆍ1운동.임정 百주년](25) 성차별 굴레 벗고 항일 주체로 우뚝

화, 2019/02/1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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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지명 결정판 군산…도시 곳곳 수탈의 역사 담긴 지명 수두룩  

전국 지명의 30퍼센트 일제식 추정 
미쓰비시 창업주 호 딴 전주 동산동 본래 쪽구름, 조각구름이란 우리말 이름 가진 곳 
군산 서수면, 푸른 이삭이 넘실 거리는 땅이라는 일제식 지명 
지자체 의지만 있다면 곧바로 지명 개정 가능…의지의 문제


■ 방송 : 전북CBS 라디오 <사람과 사람> FM 103.7 (17:05~18:00)

■ 진행 : 박민 참여미디어연구소장
■ 대담 :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요.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일제가 남긴 잔재가 사회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지명인데요. 자세한 내용,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과 짚어보죠. 소장님 어서 오세요.

◆ 김재호> 네, 반갑습니다.

◇ 박민> 3.1절 100주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고요. 역사운동을 하는 분으로서 소감이 더욱 남다를 것 같아요?

◆ 김재호> 네, 남다르기는 한데요. 현재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가 100년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다 보니 일제 잔재나 3.1정신을 그동안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해냈는가 하는 부분은 의문입니다. 요즘 많이 부각되는 것이 3.1운동이 운동이냐 혁명이냐인데요. 논란이 되겠지만 우리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고요. 3.1운동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요. 1908년, 1909년으로 넘어가면서 호남 지방 의병들이 초토화 됩니다. 그리고 경술국치가 이뤄지고요. 이후 거의 10여 년에 걸쳐 무단통치가 행해집니다. 무단통치라는 것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부분들에 저항해서 민족적인 거사로써 일어난 것이 3.1운동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고요. 3.1운동은 이후 우리 독립운동의 방향, 항일무장투쟁이나 해외 독립군 기지 건설 등에 교훈을 남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박민> 우리 민족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사건인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나란히 100주년을 맞는 시점인데요. 중요한 것은 아직 일제의 잔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남아있죠. 대표적인 사례가 지명인 것 같아요?

◆ 김재호> 한글학자 배우리 씨에 의하면 우리나라 지명의 약 30퍼센트가 아직도 일제 지명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 박민> 우리 지역에도 있죠. 대표적으로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김재호> 우리 지역에도 굉장히 많습니다. 전주 동산동이 대표적이죠.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투하한 두 번째 핵무기가 나가사키에 떨어집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돼 가있었단 말이죠. 거기가 초토화되면서 조선인들이 대량 학살됩니다.

◇ 박민> 혹시 미쓰비시 중공업 말씀하시는 건가요?

◆ 김재호> 미쓰비시 그룹은 일본의 군국주의 기업 중에서 가장 최상위층에 있는 그룹이죠. 그런데 미쓰비시 그룹이 한국의 토지를 수탈하기 위해서 동산농사주식회사를 차립니다. 수원에 조선지점을 두고 전국에 여러 지점을 둡니다. 전주에 동산농사주식회사의 전주지점이 있었고요. 동산농사의 동산을 따서 동산동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서 동산은 미쓰비시 창업주인 이와사키 야타로의 호입니다. 그러니까 창업주의 호를 따서 지은 지명이 동산동이라는 거죠. 원래 이 지역은 편운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조각구름이나 쪽구름이라는 뜻입니다. 예쁘죠. 그런데 동산이라는 지명이 아직도 안 바뀌고 3.1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거예요. 큰 문제죠. 그렇다면 동산농사주식회사가 한국에 와서 얼마나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는가도 봐야 해요. 여의도의 24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땅이죠. 상상이 가지는 않죠. 전국적으로 2100만여 평 정도 되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호를 딴 동산이라는 지명을 아직도 안 바꾸고 있다는 겁니다.

◇ 박민> 그렇다면 동산농사주식회사의 땅이 전국적으로 흩어져있을 텐데 전주만 지명이 남아있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지역에도 이 지명이 남아 있습니까?

◆ 김재호> 이 부분은 전수조사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동산동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서 보여요. 그런데 아직은 그 부분이 저희 같은 시민사회단체가 전수조사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거든요. 추정은 하고 있지만 정확한 사실관계가 필요합니다.

◇ 박민> 그런데 전주 동산동은 분명하다는 말씀이죠?

◆ 김재호> 네 맞습니다.

◇ 박민> 이거는 어떻게 확인하신 거예요?

◆ 김재호> 이 부분은 실제 많은 기록들에서 나오고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안이 분명해 보입니다. 지명이 바뀐 시기도 일제강점기 때 바뀌었고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쭉 유지돼 왔습니다. 문제는 그겁니다. 자치단체나 시의회가 여기에 대해서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면 힘듭니다. 동산동의 유례가 어떻게 전해져 오는 것인지 주민들에게 명확하게 설명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러한 설명 절차가 부실합니다. 주민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고요. 이 문제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데 바꾸려고 하겠어요? 그리고 지명을 개명하는 문제에서 행정적인 절차가 쌓이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무원들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잠깐 개정 논의를 하다가 결국 무산됐고 계속 동산동이라는 지명을 쓰고 있는 겁니다.

◇ 박민> 그런데 최근에 또다시 논의가 되고 있다고요?

◆ 김재호> 아무래도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저희 단체, 시민단체들이 지명을 바꿔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최근 들어서 김승수 전주시장도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개정과 관련한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박민> 전주시의 상황을 짚어봤습니다만 일제 잔재하면 군산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어요. 여기도 일본식 지명이 많이 남아있죠?

◆ 김재호> 그렇습니다. 군산은 거의 일본식 지명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 전죽마을, 중야마을, 팔목마을 이런 데는 대부분 일본인 지주나 아니면 측량기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어요. 일본이 식민 통치 편의를 위해서 숫자로 이름을 붙인 마을이 아직도 남아있거든요. 해2마을, 해7마을, 해8마을 이런 식으로도 남아있고요. 군산이 동이 59개인데 쌀 ‘미’자가 들어간 동이 아직도 다섯 개가 남아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군산 식민통치 중심부라고 할 수 있었던 지역인 금광동, 영동, 중동, 영화동 이런 곳들도 모두 일본식 지명입니다. 그런데 군산시는 이런 문제에는 소홀하고요. 오히려 식민 거리를 재현하는 일에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 박민> 개정 움직임은 없나요?

◆ 김재호> 제가 보기에는 서수면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수면도 지금 행정 차원에서 논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서수면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수치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 박민> 서수가 어떤 의미이기에 그렇습니까?

◆ 김재호> 서수는 한두 군데 있는 지명이 아니에요. 서수는 대만에도 있고 사할린에도 있고요. 일본에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서수는 신칸센에도 있고 일본 여자 이름에도 서수가 쓰입니다. 푸른 이삭이 넘실거리는 땅이라는 게 서수의 뜻입니다. 자신들이 식민통치하는 국가의 이상향을 지명에 심어놓은 거예요. 침략과 약탈을 본질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는 그게 이상향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지배를 당한 입장에서는 지옥인 거죠. 여기 같은 경우에는 가와사키라는 농장주가 서수라는 지명을 지었다고 해요.

◇ 박민> 지명을 바꿀 때 절차가 까다롭거나 복잡한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까?

◆ 김재호> 도로명 주소를 변경하거나 동과 면을 변경할 때 차이가 있어요. 행정동이나 동명 개정은 지방자치법 4조에 분명히 명시돼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바꿀 수 있어요. 물론 주민공청회나 설명회는 필요합니다만, 지방자치단체와 시의회가 마음만 먹으면 사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거죠. 도로명 주소는 주민들의 동의 절차가 필요해요. 복잡하긴 하지만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의지가 문제라는 겁니다.

◇ 박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우리 생활 곳곳에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명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김재호 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재호> 네, 고맙습니다.

<2019-02-12> 노컷뉴스 

☞기사원문: 일제 지명 사용하는 전주 ‘동산동’, 전범기업 창업주 호 딴 지명도…

화, 2019/02/1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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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전시 내용 가득…찾는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아
日관람객 “3·1운동에 한국인 프라이드 대단하다 느껴”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많은 일본인은 3·1 독립운동은커녕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과거의 사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얘기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일제의 식민지배에 평화적으로 저항한 한국인들의 독립만세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일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도쿄(東京).

도쿄에서도 중심가인 신주쿠구(區) 오쿠보의 한국광장 빌딩 7층에는 일본인 시민운동가들이 운영하는 ‘고려(高麗ㆍ일본발음 고라이)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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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광장 빌딩 7층의 고려박물관에서 일본인들이 주관하는 ‘3ㆍ1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기획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장 모습.

이곳에서 3·1 독립운동 100년을 생각하는 전시회가 지난 6일 시작됐다.

오는 6월 2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아직은 일본인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발걸음은 간간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일본 시민들만의 힘으로 2001년 12월 만들어진 한국 역사 박물관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정확히 배워 알리고자 하는 일본인들이 자발적으로 회비를 모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서 700여 명이 연회비로 5천엔(약 5만원)씩을 내고 있다.

한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 외에 수시로 기획전을 열고 있는데,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기획전시회를 시작했다.

기획전은 자원봉사 활동가 80여 명이 7~8명씩 한 조를 이루어 매번 한국 역사에 연관된 주제로 마련하는데, 이번 3·1절 기획전은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8명이 매달려 1년 6개월 정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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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에서 이사 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하라다 교코 씨가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

작년 6월에는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박물관 회원 6명을 포함한 14명이 3박 4일 일정으로 직접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천안 유관순기념관,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 제암리순국박물관, 서대문형무소 등 3.1운동 관련 자료를 모을 수 있는 곳곳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연구하고 분석해 총 24장의 패널로 3·1운동 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리한 전시물을 내놓았다.

작년까지 고려박물관 이사장을 지낸 뒤 지금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하라다 교코(77) 이사는 7일 “모든 멤버들이 함께 공부하고 배우면서 전시 패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봉사자들이 꾸민 전시회라고 했지만 내용은 전문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알찼다.

3·1운동 이전의 한일 관계 역사를 먼저 소개한 뒤 3·1 운동 전개 과정, 종교의 역할, 여성의 참가, 제암리 학살사건, 3·1운동 당시의 신문보도와 일본인의 관점, 3·1운동 이후 100년에 걸친 격동의 한국사를 핵심을 빠뜨리지 않고 자료사진까지 곁들여 명료하게 설명했다.

3·1 운동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24장의 패널을 훑어가면 한국인들이 가혹한 탄압을 받으면서 왜 평화적인 만세 운동에 나섰는지, 일제의 당시 대응은 어땠는지,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엇갈린 시각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3·1운동 관련 기술이 거의 돼 있지 않는 일본 역사교과서 여러 종을 펴놓았다. 일본인들이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하며 앞으로 배워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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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박물관 전시장에 펼쳐 놓은 일본 역사교과서. 한국인들의 비폭력 독립운동인 3·1 운동이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하라다 이사의 설명이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하라다 이사는 “3·1 독립운동 정신에는 동양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면서 “우리 일본인들이 많이 와서 배우고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시회 시작 이틀째인 7일까지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10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하라다 이사는 “일본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보도를 해줘야 하는데 몇몇 매체가 문의만 하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다마키 시노(56·고교 영어교사) 씨는 “한국에 여러 차례 갔는데, 서대문형무소역사관도 둘러본 적이 있다”며 “3·1독립운동에 대한 한국인들의 프라이드(자긍심)가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방한 때의 인상을 전했다.

다마키 씨와 3·1운동 기획전을 함께 관람한 니와 쇼코(57·고교 일본어 교사) 씨는 “두 나라 국민은 물론이고 국가 간에도 사이 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박물관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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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인들이 도쿄 한복판에 연 ‘3·1운동 전시회’

화, 2019/02/1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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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8 독립선언문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 수립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았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선언문의 취지와 의미가 충분히 연구되거나 확산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뒤늦게나마 2.8 독립선언문이 모두 5개 국어로 번역돼 배포되는 등 그 의미를 알리는 운동도 활발해질 전망입니다.

정새배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활자를 구하지 못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 쓴 6장의 선언문.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해 뜨거운 피를 흘리겠다며 조국 독립의 열망을 담았습니다.

[조한성/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 “오족(우리 민족)이 정당한 방법으로 자유를 요구할 텐데,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해서 끝까지 자유행동을 취해서…”]

선언문에 40여 회나 등장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3.1 운동을 거치며 더욱 굳어져 임시정부의 기틀로 이어졌습니다.

[조영진/한국독립유공자협회 회장 : “(조선의 젊은이들은) 빼앗긴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불굴의 기개와 용기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집회 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가 침해되는 상황을 비판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고 언급한 대목입니다.

엄혹한 압제의 상황에서도 청년들이 꿈꿨던 독립국가는 어느 누구도 특권이 없고 모두에게 자유와 민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였던 겁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이냐. 황제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이고요.”]

서울시는 선구적인 2.8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기리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5개 언어로 번역해 전세계에 배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뒤늦게나마 2.8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독립기념관은 다음달 3.1 운동 기념관이 완공되는 대로 2.8 선언문 원본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KBS 뉴스 정새배입니다.

<2019-02-09> KBS NEWS 

☞기사원문: “자유 향한 열망”…2·8 독립선언문 5개 국어로 번역

화, 2019/02/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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