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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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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시장 “적폐 청산? 정신 바짝 차려야!”

익명 (미확인) | 월, 2017/10/30- 23:22


이재명 “적폐 청산은 친일부터 뿌리 뽑아야!”

이재명 성남 시장이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적폐 청산’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데, 저항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 “적폐 청산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촛불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7일 오후 고양시 소재 고양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식민지 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촛불 1년 다시 부르는 항일의 노래’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쇼에 출연해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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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좌측부터)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실장, 노기환 MC가 27일 경기도 고양시 문예회관 공연장에서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받은 질문 가운데 세 번째 주제인 ‘우리 시대 적폐 청산의 과제’에 대해 사회자가 “촛불시민이 독일 에버튼 인권상 받았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유래가 없는 한 국가의 시민이 이제 인권상을 받은 건데 그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인권이 크다는 생각이다. 시장님 그동안에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시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촛불을 든 우리 전사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고, 또 문재인 정부 민주정부는 수립돼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아마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역사는 말할 필요 없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렇게 깔끔하게 무결의. 아무런 피해도 없는 혁명적 결과를 만들어 낸 건 아마 처음 아닐까 싶다”면서 “저는 우리 촛불 혁명의 이 결과 정권교체를 했지만 이건 하나의 수단이고, 초입이고… 진짜 능력은 적폐세력 청산. 이것도 사실은 초입에 불과하고, 다음 단계 공정한 국가. 미래 희망이 있는 나라 만드는 게 마지막 과제일 것”이라고 시민들이 일구어낸 촛불혁명에 대해 정리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만약 거기까지 우리가 만들어낸다면 프랑스 혁명이 버금갈 만한. 인류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일이 국민들이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게 시작인 거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겨우 과거에 잘못된 구조. 이 적폐를 덮고 있던 껍데기 하나를 제거하는 이 적폐를 제거하고 또 새로운 질서. 공정한 나라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아 내가 진짜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다’. ‘애 많이 나야지’. ‘우리 아들 딸들 더 나은 세상에서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야지’.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은 거다”라고 국민들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봤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현재나 과거의 이 불합리한 구조로 부당하게 작은 노력을 하고 큰 이익을 챙기는 집단들이 있다. 이제 소수 기득권 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걸 바꾸려면 그들이 저항하지 않겠나? 뺏겨야 되니까. 그거를 뺏지 않고는 뺏어서 공정하게 만들지 않고는 사실 비전이 없는 건데. 희망이 없는 건데. 엄청난 저항이 기다릴 거다”라고 진단해 사실상 적폐 청산의 길은 거대한 저항과 진통이 있음을 예고했다.

이재명 시장은 그러면서도 “적폐 청산은 오히려 쉽다. 성역 없이 조사하고 책임을 물으면 되는 건데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바꿔서 공정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정말 엄청난 저항이 있을 거다. 그거는 의지와 국민의 힘으로 합리적으로 권력을 통해 할 수밖에 없는데 그거는 보장돼 있지 않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촛불을 들고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이 권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에 더 신경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개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많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고 안타깝다”고 촛불 혁명 이후의 세상을 우려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날 함께 출연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에게 “적폐청산에 무엇보다 시민들의 힘이 중요할 텐데… 실장님 평상시에 역사강의 하면서 시민들 많이 만나시잖는가? 만나시는 시민들 생각이 좀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박한용 실장은 “저는 그래도 희망을 좀 가지고 있다. 갖고 있는 게 과거에는 우리가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그런게 있었다. 이번에는 시민들이 나와 주셔서 흩어지지 않고 있는 분들도 많다. 실제로 그분들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간단하게 한마디 한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 죽 써서 개주지 말자는 거다. 이 촛불을. 다시 깨어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으로 남아야 되겠다. 419혁명을 516으로 박정희가 가져가고 518민주항쟁 했더니 전두환이가 탱크로 가져가고 민주항쟁 했더니 노태우가 619 선언을 통해 가져갔더라. 저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과제들은 더 이상 후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아까 우리 이재명 시장님 말씀처럼 혁명은 파괴가 아니고 건설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이 전망이 서 있지 않아서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박한용 실장이 파악한 촛불민심을 전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대개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끝났다고 생각하면 느슨해지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뀌고 그렇게 된다. 지금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하고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공정한 나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민들로부터 성공했다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과거로 되돌아간다. 이번에 과거로 되돌아가면 다시는 성공하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야 되고 거기에 모두가 힘을 합해야 되고, 작은 차이들은 이겨내야 된다”면서 “그리고 민주정부 개혁정부가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체제가 좀 안정될 수 있겠다. 지금도 여전히 매우 엄혹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날 사회를 맡은 노기환 MC는 다시 “우리 사회 각 분야에 적폐들이 있겠지만 또 현직 시장님이시니까 지방자치 부문에서는 적폐들이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재명 시장은 이에 대해 “적폐 때문에 오늘도 제가 발목 잡히고 있는 중인데 모든 영역에 있다.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영역에도 있고, 지방에도 있고 많다. 적폐라고 하는 게 별 거겠는가? 예를 들면 국민을 배재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그 대리권을 남용하는 형태. 대표적인 적폐다.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부인하는 거다”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 권력의 원래 귀속이 어디냐? 그 생각을 하면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또는 시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을 텐데. 과감하게 내 권력이니까 내 마음대로 이렇게 하는 것도 엄청난 적폐 중에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시장은 특히 “중앙정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 아닌? 이번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뭘 한 게 있다고 ‘신적폐’ 운운하고. 또 예를 들면 과거에 적폐청산에 대해서 잘못하면 처벌하자는 게 당연한 거지. 그걸 가지고 ‘정치보복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도둑놈 잡는 게 보복인가? 도둑놈은 때려잡아야지. 그것도 도둑놈 때려잡는 걸 ‘야 이거 보복’이라고 얘기하니까 일부가 동의하는 게 있다. 동네 스피커로 떠들고. 이런 것도 역시 남아 있는 적폐들이다. 상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작금에 일부 야당에서 제기하는 ‘정치보복론’을 합창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적폐’로 규정했다.

이재명 시장은 이어 “답답한 게 도둑이 이건 보복이다. 얘기하는데 그걸 실제로 믿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은가?”라는 질문엔 “대개 도둑들이 공범들이다. 오해를 한 건 있다. 친인척. 전폐청산 특히 역사문제 적폐청산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가 가장 앞장서고 있지 않나? 역사 부분 적폐에 대해서 실장님이 조금 집어 주시라”고 마이크를 박한용 실장에게 넘겼다.

박한용 실장은 이에 대해 “상징적일 수 있다. 우리가 미 군정 시기에 대한민국 국군을 만들 때 군사영어 학교를 먼저 세웠다. 이때 110명이 배출되니까 108명이 일본군 또는 만주족 장교 출신이더라. 광복군은 딱 두 명밖에 없다. 대한민국 군번 1번이 친일파다. 경찰은 경위 이상이 82%가 친일 순사 출신이다. 저는 이미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고 본다. 그들이 이승만 앉혀 놓고 이 대한민국을 호작질 한 거다. 함께 해 먹으면 한 통속 공범들이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최순실 사건이다.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은 일제시대 경찰이었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는 일제 때 만주군 장교였다. 이게 적폐의 뿌리가 계속 왔다고 본다. 이들은 도덕성도 없고 후안무치하고. KBS는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에서도 하등의 공로가 없다’. 김부석 아버지가 친일파. 사실 저희가 다 공개할 수 없지만. 그래서 친일세력은 반공을 주장한다. 분단을 악용하고. 한국 사회를 색깔로 마비시키는 주범. 자기 방을 지킬 개들을 해 놓은 거다”라고 분기 탱천한 마음을 거침 없이 쏟아냈다.

박한용 실장은 이어 “검찰에는 검경. 경찰에는 경경이 있잖은가? 그래서 적폐혁신은 이거다. 이 57년 동안 한 통속이 됐던 사람들이 고리를 놓았지만 적폐 청산한다고 할 때 57년 동안 밥 준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민주세력)를 물어뜯으려고. 이런 역사들이 역사 적폐라고 추가해서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적폐 청산의 시작은은 친일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한편, 이날 이재명 시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추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운동’에 공감하고, 박한용 실장이 권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 후원에 범국민적 동참을 호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기금은 ‘52억 안팎의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미 30억원의 재원을 마련했으나 나머지 20억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오는 11월말로 건립부지 잔금을 치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아울러 이재명 시장의 다음 강연 행선지는 경기도 가평이다. 더불어민주당 가평지역위원회가 주관하는 이재명 시장 초청 강연은 11월 1일 수요일 19시 가평군청 대회의실에서 있을 예정으로 이날 이재명 시장은 ‘시대정신과 시민주권’이란 주제로 ‘성남시 사례를 통해 보는 시민주권시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내용으로 경기도 동부지역 주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날 강연회에 참가 자격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제한이 없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email protected]

<2017-10-28> 한국인터넷언론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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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국가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우상으로 군림하며 가장 가공할 폭력과 살상을 저질러왔다. 국가에게서 우상의 가면을 벗겨내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윤리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수레가 되어야지 국민이 국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우일ㅣ베드로 주교

지난 3월28일 일본에서 96세의 재일교포 한 분이 뇌출혈로 타계하였다. 성함은 ‘이학래’, 1925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봄 어느 날 돌연히 마을 면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총독부에서 남방포로감시원 모집이 나왔는데, 네가 가라’는 통보였다. 2년 근무에 월급도 나온다고 했다. 17세 소년은 군인으로 징집되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군속 신분으로 타이와 버마를 잇는 국경지대의 철도 건설 현장에 파견되어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게 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동남아 전선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연합군 포로가 수십만에 이르렀다. 포로들 감시를 위해 3천여명의 조선인 청년들이 동원되었다. 이씨가 배속된 곳은 타이였고 영화 <콰이강의 다리> 이야기로 유명해진 지역이다. 일본군은 포로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였다. 깎아지른 절벽을 끼고 철로를 건설하는 난공사는 많은 포로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씨는 일본군 공병대가 요구하는 노역 인원을 매일 차출하기 위해 포로 측 대표와 자주 충돌하였다. 포로들의 보호를 규정한 ‘제네바 조약’ 등은 들은 적도 없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구타하는 것이 그가 받은 일본군 교육의 전부였다. 일본군의 도구로 동원된 조선인 포로감시원 중 148명은 연합군 전범재판에서 포로 학대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23명에게는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씨도 싱가포르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군의 군사재판에서 단 두차례의 공판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수 감방에 같이 있던 동료들이 차례로 형장으로 불려 나가는 공포의 수감생활이 8개월 계속되다가 어느 날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다. 수감생활 중 작업 시간이 끝나면 그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덮어씌워진 억울한 운명의 연유를 찾으며 식민지 백성이었던 자신이 ‘가해자’로 둔갑하게 된 경위를 돌아보았다. 일본이라는 국가가 자행한 불의와 부조리에 말할 수 없는 울분을 느꼈다. “내가 그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역경에 빠지지 않았을 텐데…. 전쟁이야말로 모든 해악의 근원이다”라고 그는 수기에 썼다. 이씨는 자신을 전쟁에 가담시킨 천황제 파시즘을 증오하고 만년은 오직 평화를 위한 일을 찾아 나섰다.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한 후 조선인들의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복지와 원호 대상에서도 제외했다. 고립무원이 된 어떤 이들은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55년 조선인 B, C급 전범 70여명은 ‘동진회’라는 자치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원호와 보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일본 정부는 ‘한일 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며 이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이들은 일본인도 아니면서 ‘전범’이라는 엄청난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조국은 이들을 ‘대일협력자’로 간주하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희생과 죽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절규하다 하나씩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초부터 이씨와 동료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법정 투쟁을 시작하였다. 양심적인 일본인들(우쓰미 아이코씨 등)도 이들을 지원하며 함께 연대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재판소는 1999년 12월 ‘보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국가의 입법정책에 속한 문제’라고 규정짓고 원고 측 패소로 판결하였다. 2008년 5월 일본 국회의 민주당 의원들이 피해자 1인당 300만엔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법안을 작성하였으나 국회의원 대다수의 무관심으로 폐기되고 말았다. 일본제국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다음, 조선의 어린 10대 소년들에게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황국신민의 도리라고 세뇌하고 전쟁터로 징발하였다. 이 소년들은 동남아 밀림 속에서 일본군의 수하가 되어 최악의 철로 공사에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을 다그치다가 ‘전범’이라는 끔찍한 혐의로 법정최고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이라는 국가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타국 소년들을 데려다가 전쟁 원흉의 죄를 덮어씌웠다. 사형을 당했거나, 장기형을 치르고 평생을 죄인으로 숨어 살았던 이들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와 부조리의 희생자요 피해자들이다.

이학래씨와 동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하며 즉시 떠오른 것은 미국이 시작한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이다. 2년 전에 나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민간인들이 한국군에 집단으로 살해당한 곳이다. 벼가 파랗게 자란 들판에 74위의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었다. 이 마을은 본디 남베트남 군인 가족들도 여럿 살고 있었고, 한국군과는 같은 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군이 마을 옆 도로를 따라 행군하던 도중에 마을을 향해 진입해 주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8살 소녀였던 응우옌티탄은 몇몇 생존자 중 하나다. 그녀도 배에 총을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어머니와 가족 5명을 모두 잃은 응우옌티탄이 2020년 4월에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4월13일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자료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들도 처음엔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 좀처럼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순박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참전 군인들은 고백한다. 전투가 벌어지고 옆에 있던 동료가 적의 총탄에 피 흘리며 쓰러지는 순간, 그곳은 지옥으로 변하고 윤리나 이성과 결별한다고. 눈앞에 등장하는 상대가 군인인지 민간인인지 구분할 여유가 없다고.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병사들은 몹시 앓았다. 스스로 자진한 이들도 있다. 아직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으며 가족에게 말 못 하고 밤중에 혼자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이다.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심판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개인들도 심판받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는 최고의 권위와 권좌를 보유하기에 이를 심판할 사람이 없다. 역사상 국가는 아무도 못 건드리는 우상으로 군림하며 가장 가공할 폭력과 살상을 저질러왔다. 국가에게서 우상의 가면을 벗겨내고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윤리로 무장한 깨어 있는 시민들뿐이다.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 수레가 되어야지 국민이 국가를 우상으로 섬기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1-05-06> 한겨레

☞기사원문: [강우일 칼럼] 국가의 죄

토, 2021/05/0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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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발자국]31. 충북 박달재 : ‘친일 문인의 두 얼굴’ – 반야월과 ‘종천(從天) 친일파’ 서정주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유명한 옛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다. 박달재는 충북의 충주에서 제천을 잇는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에 거의 다 이르면 있는 고개다. 특히 이 고개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경상도 청년 박달과 이 고개 아랫마을의 금봉이가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가진 곳으로, 인기 작사가 반야월이 이 전설을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이 노래 덕에 이 고개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고개 이름 박달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고개는 한 때는 많은 트럭들의 정체가 일어났던 곳이지만, 이제 박달재터널이 생긴 뒤 통행량이 한적해졌다.

이제는 거의 버려진 이곳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유는 반야월 때문이다. 그는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불린 탁월한 작사가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등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히트곡을 작사했고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진 작사가로 알려졌다. 이 곳 박달재에도 박달과 금봉이의 사랑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 동상이외에 ‘박달재 노래비’라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노래비 옆에 세워져 있는 작은 팻말이다. 2016년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설치한 하얀 이 팻말은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라는 제목 아래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이 고개를 넘어가다 우연히 이를 발견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땅에 이 같은 친일 고발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친일군인 김백일의 ‘친일행위처단비’는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는 김백일 동상 옆에 세워져 있다).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 /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 / 피 뛰는 일억일심 함성을 쳐라 /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 장병아 / 총후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 올려라 히노마루 빛나는 국기 (…)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그는 이 같은 가사로 ‘일억일심’을 작사하고 직접 노래 부르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으며, 사망 2년 전인 2010년 국회 간담회에서 일제 지배 하의 친일 행각에 대해 사과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 박달재에 있는 작사가 반야월의 ‘박달재노래비’ 옆에는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는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손호철
▲ 가수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 고발판 ⓒ손호철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계속 권력을 잡으면서 친일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금기로 남아왔다. 임종국 교수가 1966년 발표한 역사적인 <친일문학론>을 발표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 문제는 최근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등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1991년 임종국의 뜻을 살려 민족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작업을 벌여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 차원에서도 2005년 뒤늦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이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제1차 106명, 제2차 195명, 제3차 705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장교를 지원했던 박정희는 제외됐다. 이들 중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사람으로 유명한 친일 고문 경찰 노덕술 등 225명은 정부로부터 훈장 등 서훈을 받았는데, 2019년 현재 25명에 대한 서훈이 취소됐고 노덕술 등 200명에 대한 서훈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 천안에 설치되어 있는 친일문학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흉상 ⓒ손호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겨울 설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 전북 고창의 선운사다. 선운사에서 바다 쪽으로 올라가 기막힌 전망의 언덕 위에 폐교를 잘 정비한 건물 옥상에 서서 바다가 내려다보면, 누구나 다 아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이곳이 서정주 문학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시인’,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시인’, ‘시의 정부(政府)’라는 칭송을 받지만, 친일인명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도 오른 대표적인 친일 문인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칭송했으며, 그래도 솔직하게 사과를 한 반야월과 달리 기이한 변명을 늘어놓는 등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곡학아세의 큰 어른’이었다. 아니, ‘학문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니 곡문아세(曲文阿世)의 큰 어른’이다.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져야 할 것인가?

(…)

인제 겨우 스무 살인 벗아, 나도 너처럼 하고 싶구나.

나도 총을 메고 머언 남방과 북방을

포연과 탄우를 뚫고 가보고 싶구나.

그는 ‘우리말의 달인’답게 뛰어난 문장력으로 젊은이들에게 징병을 권유했다. 가미가제까지 찬양한 서정주는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에도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 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고 “이것이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라고 생각해, 이 같은 하늘의 뜻을 따른 ‘종천(從天) 친일파’라는 기이한 변명을 펼쳤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친일 행각을 솔직히 사과한 반야월은 최소한의 양심은 가진 것이다.

서정주의 ‘곡문아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에게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는 생일 축시를 바치기도 했다. 이렇게 찬양한 것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서정주는 “하도 깡패같이 굴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을 안 죽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의 ‘후학’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전집을 발간하면서 “생전에 시집으로 발표한 작품만 수록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웃기는 변명 아래 그의 친일시들을 뺀 것이다.

▲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 서정주 문학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서정주의 흉상 ⓒ손호철
▲ 서정주문학관에 쓰여 있는 서정주의 업적에 대한 설명 ⓒ손호철

나는 친일과 죽고 죽이는 이념 대립을 강요당했던 일제와 해방정국에 청년으로 살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개 필부가 아니라 지도자나 지식인은 달라야 한다.

뤼시엥 골드만이란 프랑스의 철학자는, 한 인간은 연구할 때 그 시대가 불가피하게 한계지우는 ‘한계 의식’이 있고 그 시대에도 가능했던 ‘가능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이광수가 친일 한 것을 평가할 때, 순수 가정으로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면 친일은 ‘한계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나 장준하 등 반일 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은 그 시대에도 가능한 ‘가능 의식’이지 한계 의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중 <서유기>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한국사 주요 인물을 만나는데, 이광수를 만나 친일 행각을 다그치자 이광수는 흐느끼며 “나에게 단파 라듸오만 있었다면” 하며 흐느낀다. ‘단파 라듸오’가 있어 미국이 내보내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면 미국이 이기고 있는 것을 알고 친일하지 않고 버티다가 민족적 영웅이 됐을 텐데, ‘단파 라듸오’가 없어 일본의 선전처럼 일본이 이기는 줄 알고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파 라디오를 생각하며 고창을 떠났다.

<2021-05-17> 프레시안

☞ 기사원문: ‘친일’ 반야월‧서정주, 같지만 달랐다

월, 2021/05/1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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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승 광복회 고문 변호사]

가정의 달 5월에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누구나 귀에 익을 정겹고 뭉클한 선율의 이 노래의 제목은 “어머니의 마음”인데, 현제명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반역행위를 일삼았던 이흥렬 숙명여대 음대학장이 작곡한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음악인들이 어떻게 친일반민족행위를 했을까? 음악인들은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대화악단 등 친일활동을 위한 음악인단체를 조직하여 일본국민가요를 조선에 보급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정책을 도왔고, 각종 음악회를 개최하여 모금한 수익금을 일제의 전쟁군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공장, 광산 등을 돌며 위문음악공연을 함으로써 생산을 독려하였을 뿐 아니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국민과 학생들에게 징용 및 학병 지원을 독려하였고, 구로야 샤이민(현제명), 나오키 오키이찌오(이흥렬), 모리카와 준(홍난파) 등 일제의 창씨개명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에 협력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친일반민족행각을 가장 적극적 주도적으로 자행했던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재명과 이흥렬인데, 이들은 해방 후에는 자신들의 미국 유학경력 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친미반공으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신해서 서울대 음대학장, 숙대 음대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대통령 문화훈장 등 음악계의 행정가, 교육자, 원로, 실력자로서 죽을 때까지 권위와 명예를 누렸고, 현재 음악계는 이들이 배출한 제자나 후진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어떠한 비판도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현제명과 이흥렬은 2001년부터 8년 동안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선정한 일제 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에 포함되어 2009년 11월 8일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특히 현제명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705명에 포함되었음에도 이들의 후진들이 국내 문화예술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명성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그 예로 현재 서울대 음대건물에는 현제명의 흉상이 있다.

이들은 이처럼 해방 후 감쪽같이 변신하여 음악계 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학교, 기관으로부터 교가 등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모양인데, 그 결과 전국 138개 학교들의 교가가 이흥렬 작곡이고, 14개 학교 교가가 현제명 작곡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교가부터가 현제명 작곡인데 그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7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된 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울대에서는 이를 바꾸자는 목소리조차 없다.

참고로, 위와 같이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를 갖고 있는 대학들은 서울대 외에도 경북대, 성균관대, 국민대, 경희대, 홍익대, 동국대, 한국외대, 단국대, 인하대, 숭실대 등 전국 29개 학교에 이른다는 언론보도(YTN)가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수도 없이 불러봤을 군가 “진짜 사나이”도 위 대표적 친일파 이흥렬의 작곡이다. 이흥렬은 “진짜 사나이”를 작곡하면서 부끄럽지 않았을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라는 가사의 군가를 작곡하면서 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파시즘 세력으로부터 식민지 또는 점령지에서 해방된 민족ㆍ국가들은 새나라를 재건하는 작업을“민족을 배반하고 국민을 학대한 자들”을 처단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고 재판소 등 처벌기관을 설치한 나라는 22개국이고 이와 관련하여 제정한 법률은 총 63개에 이르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ㆍ중국ㆍ일본ㆍ북한ㆍ필리핀 등 5개국이고, 유럽은 독일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덴마크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노르웨이ㆍ그리스ㆍ이탈리아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ㆍ헝가리ㆍ유고슬라비아ㆍ에스토니아ㆍ소련 등 17개 국가다.

위와 같은 반역자 처벌의 정신은 벨기에 정부가 1944년 5월 6일 공포한 <전시에 국가의 국외 안보에 반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국적과 일정한 권리를 박탈하고 정지하는 사안에 관한 명령>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조국을 배신한 자는 그가 절대로 다시 해를 끼치기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그리고 신속히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국회에서 친일반역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제정하고, 반민법을 집행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까지 구성하였으나, 1949년 6월 친일파 세력의 반격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친일반역자 단죄는 실패하였고 단 한 명의 반역자도 처벌하지 못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반민특위가 와해되어 친일반역세력의 단죄에서 실패한 지 72년이 되는 해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조국을 배반하고 동족을 해친 친일반역자들 중 생존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반역자들에 대한 단죄는 미완의 역사로 묻어두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이 어떤 반민족행위를 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함으로써 그런 자들이 죽은 후까지 명예를 누리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날 가능한 최소한의 과거사 청산이 아닐까 싶다.

정철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법학과 ▷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광복회 고문변호사 ▷한국입법학회 회장

<2021-05-17> 아주경제

☞기사원문: [정철승 칼럼] 음악계의 친일반역자들

목, 2021/05/2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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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5/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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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 사진 52점 전시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 사적지 담겨…온라인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8월18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개최한다.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김동우 작가가 촬영한 52점의 사진이 준비됐다.

김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왔다.

독립운동가들은 먼 타국의 땅에서 굶주림, 차별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을 세워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해 왔다.

전시회에서는 쿠바 마나티 항구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등 한인 이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미국의 타운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인도 레드포트 훈련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적지 등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쿠바와 멕시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 희망자는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전화신청 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무료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광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심 있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021-05-21> 아시아경제

☞기사원문: 강북구 ‘쿠바 이민 10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개최

화, 2021/05/2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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