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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끝이 없는 고난: 백종건 변호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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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 끝이 없는 고난: 백종건 변호사 이야기

익명 (미확인) | 수, 2017/10/25- 17:15

백종건 변호사가 1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출소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였다. 한국은 아직까지 순수 민간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에서 매년 수감되는 병역거부자는 수백 명 규모로, 이들 중 대부분은 젊은 청년들이다. 한국은 전 세계 다른 나라에 수감된 병역거부자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다. 대부분은 종교나 평화주의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한다.

변호사 자격 박탈로까지 이어졌던 부당한 유죄판결로 백종건 변호사가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가 겪어야 할 어려움은 무엇일까? 또, 그럼에도 그가 변화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백종건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 시민으로서 제 의무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고, 모든 형태의 군사주의에 반대해요. 그건 제가 받아 온 신앙 교육 안에 깊이 새겨져 있는 가치에요. 한국에서는 병역거부자들은 집총을 거부할 “정당한” 사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대개는 사상, 양심, 종교나 신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사법연수원 시절 백종건 변호사의 모습

아직까지 상황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병역거부자들은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제 신앙은 제게 매우 부당한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저에겐 징역 18개월이 선고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죠. 지금 저는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전처럼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할 수 없어서 지금은 마음으로만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이 전과자를 뽑지 않아서 많은 병역거부자들은 사실상 이중으로 처벌받는 셈이나 다름없어요.

2008년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어요. ‘어차피 변호사 등록이 취소될 텐데 그걸 알면서 왜 시험을 준비하느냐’고들 물었죠. 저는 단지 저 때문에만 변호사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제가 아끼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을 변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답하곤 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제가 있던 서울남부구치소로 병역거부자들이 계속 들어왔어요. 그걸 보는 게 참 괴로웠어요. 그래도 병역거부자들은 꾸준히 들어왔죠. 정부가 민간 대체복무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계속 외면한다면 제 조카와 동생도 저처럼 감옥에 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정부는 우리의 절규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근 하급심 판사들이 무죄 판결로 병역거부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문제가 부각되고 있고 이 같은 판결이 정부에게 압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백종건 변호사가 7살 때 모습. 그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병역거부로 감옥에 갇혔다.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가족 중 세 명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되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제가 출소했던 5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고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바뀐 것이 없어요. 지금도 병역거부자들은 한 명, 한 명 살인자, 성범죄자 등과 같이 감옥에 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병역제도가 제 가족과 다른 병역거부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자들은 오래도록 범법자 취급을 당해왔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물러서지 않는 것이 저에게 중요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제 변호사 자격을 회복시켜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재등록 신청도 했습니다. 작은 승리일지 몰라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제 역할을 다하려면 이런 작은 일들부터 시작해야겠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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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LGBTI활동가 하이커 치우는 마흔 두살 때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하이커 치우는 42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그는 인터섹스에 대한 대만 사회의 인식을 높이고 수용을 촉진하기 위해 OII(Organization Intersex International)를 설립했다. 하이커는 올해 발렌타인 데이에 누구나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제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거든요. 엄마는 제가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태어난 거라고만 하셨어요. 그때는 인터섹스라는 젠더가 있다는 것도 몰랐죠. 초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괴물이 된 것 같다는 일기를 쓰기도 했어요. 저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의사를 찾아가도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죠.

제가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마흔 두 살 때였어요. 제 의료기록을 다시 읽어보는데, 여섯 살 때 “확대된 클리토리스”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고 제 상태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봤고, 저는 두 가지 종류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어요.

대만의 LGBTI활동가 하이커 치우가 '내가 여기에 있다(I am here)'라고 쓰여진 피켓을 들고 서있다.

대만 사회에서는 인터섹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나요?

중화권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인터섹스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전통적인 성별 이분법 때문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들은 차별을 받아 왔어요. 인터섹스는 재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또 중화권에서는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터섹스인 사람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집안이 많아요. 또 종교나 미신적인 믿음에 따라서, 간성인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저지른 죄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대만에 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1950년대인데, 그때부터 두 살이 되지 않은 간성 아이에게 수술을 하기 시작했어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아이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 부모는 “수치”를 면하게 해 준다는 의미였죠. 인터섹스는 사회에서 거의 “제거”되었어요. 저는 2010년 무렵 인터섹스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대만에 있는 다른 간성인에 대해서는 거의 소식을 접한 적이 없어요.

 

대만의 인터섹스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부모를 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해요. 저희 부모님은 거의 평생을 저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사셨어요. 저는 제 몸이 부모님에게 왜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제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인터섹스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변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인터섹스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걸 부모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인터섹스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술도 받을 필요가 없어요. 부모들도 그 사실에 슬퍼할 필요가 없고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인터섹스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해요. 우리를 차별하면서 “수치스러운”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요. 왜 우리 같은 인터섹스들과 그 부모들이 사회의 편견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거죠?

의사들도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의사의 개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인터섹스에게 어떻게 더 좋은 치료를 제공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본인의 동의와 우리 몸에 대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터섹스를 질병으로 여기는 것을 중단해야 해요.

정부는 아직 인터섹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예요. 우리에게 긍정적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대중이 우리를 사회의 가치있는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할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과거에는 젠더에 대한 생각이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고 인터섹스를 인정해야 할 때예요.

당신의 활동이 어떻게 대만의 인터섹스 운동 상황을 변화시켰나요?

인터섹스에 대한 대만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인터섹스 유아에게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수술을 강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이제는 대만의 젠더 운동이 상대적으로 성숙해졌고, 사회가 젠더 다양성에 대해 더욱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전부예요. 인터섹스도 사람이에요. 우리도 사랑을 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거든요. 제 이름의 한자 뜻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언덕 위의 러브그래스’라는 뜻이죠. 저희 부모님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제가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셨어요.

 

대만에서는 인터섹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인터섹스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회가 여전히 우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면, 관계를 시작하기는 매우 어려울 거예요. 저는 제가 남들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동성애인지, 이성애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죠. 또 출산에 대한 압박도 있어요.

 

발렌타인 데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발렌타인 데이는 사랑에 대한 희망을 전파하는 날이에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제가 커밍아웃한 이후, 중국 본토에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소개해줄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친구들은 자신을 이해해줄 만한 파트너를 찾기가 힘들거든요. 중국 본토에서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압박이 심한 편이에요.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섹스들의 신체적, 정신적인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우리는 그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 성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해요. 더 이상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갇혀 있어서는 안 돼요. 사랑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잖아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더욱 높아지면, 앞으로는 우리 환경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수, 2018/03/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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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는 한 때 인구 230만 명의 시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산업과 경제의 중심지였다. 12-13세기 사원과 유물이 온 도시를 가득채워 198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세계가 보호하기로 한 알레포는 이제 시리아 내전의 중심지가 되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수천명이 사망하고, 피난을 떠났다.

이제는 잿더미로 뒤덮혀 시리아 내전의 비극을 상징하는 도시 알레포. 알레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진 출처: Olympia Restaurant 페이스북 페이지

 

1. 알레포의 거리


2. 우마이야(Umayyad) 사원


3. 사원 앞 광장


4. 우마이야(Umayyad) 사원으로 가는 길


5. 알레포의 전통 시장




6. 쇼핑센터 내/외부




7. 칼튼(Carlton) 호텔


8. 팰리스(Palace) 호텔


9. 다 자마리아(Dar-Zamaria) 호텔


※알레포의 더 많은 사진은 Olympia Restaurant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유엔 회원국들에게 시리아 결의안을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탄원에 참여해주세요!

온라인액션
시리아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
7 명 참여중
목표 1,000
탄원편지 보내기

수, 2017/03/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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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정치적으로 개방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쿠바 활동을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아, 쿠바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권문제를 만화로 엮었습니다.

 

2화 나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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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2017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생긴 일

나디아는 언어학도였고, 여행가이드로 일했다. 나디아에겐 친구가 많았는데, 그 중 여럿은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는 이들이었다. 나디아는 직접 정치 활동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감시를 피할 수는 없었다. 동네, 거리, 학교에서 나디아는 끊임없는 감시를 받았다.

나디아는 자동으로 용의자로 간주됐고,심각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나디아는 대학에서 퇴학당했고. 그다음엔 감옥에 보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그 후에는 가택연금에 처해진 채로 몇 달을 보냈다. 결국, 나디아는 문제가 있는 형법을 근거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나디아는 보트를 타고 쿠바를 탈출하려 했지만, 붙잡혀서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나디아는 자신이 한 번이라도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했었다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혹한 탄압에 지쳐버린 나디아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자기검열을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 결심했다.


언어학도이자 여행가이드인 나디아는 정치 활동에 참여한 적이 한 번도 없음에도, 그녀의 친구들이 ‘반체제 인사’로 간주된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위험인물’로 지명되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감시당하던 나디아는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결국 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쿠바로부터의 탈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가혹한 탄압에 너무도 지친 나디아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자기 검열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월, 2017/12/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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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구르 골란Noa Gur Golan*, 이스라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2017년 7월 반전과 평화를 위한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7월 12일 처음 구속되었고, 10월 2일 네 번째 징역형이 시작되었다. 30일 구금형이 추가 선고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래는 지난 7월 31일 노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병역을 거부하는 성명을 번역한 것이다.


내일이면 저는 법정에서 또 한 번 판결을 받게 됩니다. 제가 양심에 따라 민간 대체복무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열린 재판입니다. 다시 감방에 들어가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집에서 며칠 간의 자유를 누린 뒤라면 말이죠. 하지만 결국 이렇게 결심한 이유를 스스로 되새기기 위해 짧은 글을 남겨 봅니다.

지난 수요일, “바다 가는 날Sea Days”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11년 전, 4인의 훌륭한 여성 활동가들이 창안한 이 프로그램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의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여성과 아이들을 데리고 텔아비브Tel Aviv, 이스라엘의 실질적 수도의 해변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활동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평생 바다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자동차로 불과 한 시간만 달리면 바다가 나오는 지역에 살면서도 말입니다.

참가자들을 태운 버스가 해변에 처음 도착한 순간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어색함부터 느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애초에 저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긴 할까?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마법처럼 사라졌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바닷물에 손을 담가 본 아이들의 미소를 보는 순간, 한 손에 튜브를 끼고 다른 손으로는 이스라엘 자원봉사자의 손을 꼭 잡은 채 헤엄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처음 느꼈던 어색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열 살 소녀 말락은 자기 얼굴에 선크림을 발라 달라며 (손짓 발짓을 동원해) 제게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순식간에 말락은 내 손을 잡고 “어서요!Yala”를 외쳤고, 저는 소녀와 함께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전까지의 두려움은 눈 깜짝할 사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언어와 감정의 장벽은 물론, 그날 아침만 해도 바다로 향하기 위해 그들이 지나쳐야 했던 물리적인 장벽들조차도 모두 자취를 감췄습니다. 하지만 그 검문소는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버티고 서 있겠죠.

하루가 저물 무렵, 우리는 각자의 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창문만 열면 그 끝없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길 하나만 건너면 바다에 갈 수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그 경험은 해변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져 버렸는데, 정작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뭘 했던가요?

주변 사람들에게 병역거부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군사적인 수단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반이스라엘 교육을 시킨다”, “전부 다 그들이 먼저 선동해서 시작된 일이다”, “동맹국이란 건 없다”. 물론 폭력은 있었습니다. 선동 행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양측 모두 말이죠.

제가 궁금한 건, 그래서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다음 세대를 무사히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총을 든 모습 대신 다른 모습도 있다는 걸,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젯밤 뉴스에서 본 광경 대신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면 말입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의무, 인간의 의무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입니까?

내일이면 군 교도소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심정은 복잡합니다. 솔직히 말해볼까요? 아주 괴롭습니다. 교도소에 있다 보면 아주 소극적으로 변합니다. 몇 시간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감방 안에 멍하니 있어야 하니까요. 애초에 그 안에 갇히게 된 이유조차 아주 쉽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병역을 거부하게 된 진짜 이유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이 싸움을 계속해 나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 싸움은 나의 양심에 따라 살아가며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 개인으로서의 싸움이자,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를 위해 진정한 안전과 자유, 평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더욱 큰 싸움입니다.

무기가 아닌, 사람을 믿습니다. 분명 다른 방법은 있습니다.

※ 원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 2017/11/0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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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국제앰네스티의 초창기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간 갈등이 극에 달한 냉전의 시대였기에 오로지 세계인권선언문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동시에 불편부당성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습니다.

이를테면 인권보고서를 발간할 때에 양쪽 진영에서 일어난 인권 문제에 대한 수적인 균형을 맞춰서 발표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미국과 소련 양쪽 모두에서 앰네스티를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앰네스티는 KGB 말만 듣는 빨갱이 단체다” 라고, 소련은 “앰네스티는 가면을 쓴 CIA다“와 같은 수사를 쏟아냈습니다.

이런 양 진영의 비난을 모아둔 <AI in Quotes>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는데, 양쪽에서 고르게 욕을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앰네스티가 특정한 정치체제와 진영에 상관없이 오로지 인권을 기준으로 활동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2010년대인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권침해 사실을 부정하고, 앰네스티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국가들의 유형을 굽시니스트 작가의 그림과 함께 정리해 봤습니다.


지난 2008년 7월, 국제앰네스티가 한국 경찰이 촛불집회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경찰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국제앰네스티에 법적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이에 앰네스티는 “경찰이 자칫 하다간 상당히 민망해질 수 있다”고 응수했고,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경찰청은 어떤 법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안나 나스탓(Anna Neistat), 국제앰네스티 선임조사국장

 

1. 공정성에 이의제기

헝가리 정부 “앰네스티는 정부 반대편”
국제앰네스티가 기고문을 통해 헝가리 로마족이 처한 어려움을 지적하자, 헝가리 정부 대편인 졸탄 코박스(Zoltán Kovács)가 국제앰네스티는 정부의 반대쪽 입장에 치우쳐 있다며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균형 잡힌 토론을 나누는 데 전혀 관심이 없다.”

수단 “앰네스티는 의도가 있다”
수단 정부가 다르푸르에서 화학 무기를 사용한 것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자 수단 정부는 국제앰네스티를 비난했다. 모하메드 엘톰(Mohamed Eltom) 주영 수단 대사는 “우리 정부는 [앰네스티가] 신뢰성 있는 단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앰네스티가 수단에 대한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엘톰 대사는 앰네스티가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그 “의도”가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못했다. 수단 유엔 특사 역시 앰네스티의 보고서가 “무모하고 모험심 많은 직원 한 명이 꾸며낸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수단이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방법

2. 부정하기 – 해명도 없음

일부 정부는 전적으로 부정하기도 한다.

호주 “절대 사실이 아니며, 대응하지 않겠다”
호주 정부가 난민들을 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강제 이송한 것은 고문에 해당하는 대우라고 하자 말콤 턴불(Malcolm Turnbul) 호주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런 주장은 완전히 무시하겠습니다. 절대 사실이 아니며,정부는 그런 의혹이나 비난에 대응하지 않겠습니다”라며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도미니카공화국 “모릅니다. 모른다구요.”
2016년 9월, 국제앰네스티가 도미니카공화국 정부에 무국적상태로 있는 아이티 출신 수천 명이 직면한 위기 해결을 촉구하는 탄원서명을 전달했다. 다닐로 메디나(Danilo Medina) 대통령은 이에 대해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저는 모릅니다. 모른다구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앰네스티는 정보가 부족해요.”

앰네스티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대화의 문을 차단하기 좋은 방법이다.

미얀마 “근거 없는 보고서, 날조한 사진”
미얀마의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보고서 발표 후, 미얀마 외교부는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국제앰네스티가 근거 없는 의혹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사진과 설명을 날조했다.”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방법 - 호주, 도미니카, 미얀마

 

3. 다른 데로 화제 전환하기

가장 오래된 전략이다.

시리아 “그럼 사우디는?”
시리아 대통령은 교도소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일단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미국인 질문자가 인권 문제로 미국과 시리아의 협력 기회가 어려워지게 되지 않겠냐 하자 아사드 대통령은 대화 주제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로 바꾸려 했다. “그럼 제가 묻겠습니다. 그럼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어떻게 가까울 수가 있죠?”

아사드 대통령의 교묘한 전략은 인터뷰어가 지금 문제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금방 들통났다.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방법 -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4. 그냥 앰네스티 공격하기

앰네스티가 편향되었다고 비난하는 것 이상의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이지리아 “이 악랄한 비정부단체”
나이지리아 군대가 비무장 상태의 독립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는 앰네스티 보고서에 나이지리아 군은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이 비정부단체는 악랄한 의도를 갖고 객관성과 공정성, 논리조차 없이 우리 국가안보에 끼어들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 “보고서는 이간질하려는 목적”
러시아 외교부의 마리아 자카로바(Maria Zackarova) 대변인은 앰네스티가 최근 발표한 사이드나야 보고서에 대해 “진정되어 가는 시리아 내전에 의도적인 도발해서 불을 지피고… 시리아 국민을 이간질하려 한다”고 했다.

필리핀 “앰네스티는 멍청이”
한편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은 앰네스티가 대통령의 취임 이후 수 천 건의 초법적 사형이 일어났다고 폭로하자 이에 대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 또 그에게 폭력 조장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자 “멍청이”라고 했다.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방법 - 나이지리아, 러시아, 필리핀

5. 지부 폐쇄시키기

다른 방법이 모두 실패했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노골적인 검열하는 방법이 있다.

태국 “직원들을 체포하겠다”
2016년 9월, 태국 정부의 고문 사용 보고서 발표를 준비하자 태국 정부가 직원들을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노동부 관계자들이 앰네스티 직원의 비자로는 공개발언을 할 수 없으며, 발언할 경우 기소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까지 취소되며, 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됐다.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방법 - 태국


정부가 온갖 부인과 추측, 음모론으로 앰네스티를 비난하고 나서도 국제앰네스티는 이에 맞서는 전세계 수백만 명의 지지자와 함께 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원칙적이고 공정한 조사 방식은 50년 이상 동안 그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어떤 비난에도 굴복하지 않고 최악의 인권침해로부터 힘없는 사람들을 지키고 변화를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화, 2017/02/2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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