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2017년 8월. 역사관 건립에 후원하신 분들

지역

2017년 8월. 역사관 건립에 후원하신 분들

익명 (미확인) | 월, 2017/10/23- 16:12

[신용카드, CMS (월분납 포함)]
강정인 2만원 김광훈 1만원 김도윤 1만원 김병일 1만원 김봉천 1만원 김성열 10만원 김연태 5만원 김영 10만원 김영임 10만원 김영화 1만원 김영훈 1만원 김용범 3만원 김원석 1만원 김윤철 1만원 김인규 1만원 김재원 10만원 김점구 1만원 김종철 10만원 김희곤 10만원 류사영 1만원 문인수 10만원 박근태 10만원 박기석 1만원 박동진 5만원 박우빈 10만원 박정우 1만원 박중열 1만원 박지수 31만원 방선희 2만원 방승옥 2만원 부선정 1만원 서하람 2만원 설광호 2만원 성명희 1만원 신국현 2만원 신미라 1만원 심경주 1만원 양경희 1만원 양서연 1만원 양승수 10만원 양창민 1만원 여양구 10만원 염미란 3만원 오영희 10만원 오혜림 1만원 우기동 1만원 원종형 2만원 유정완 1만원 윤기훈 10만원 윤현지 1만원 윤희섭 10만원 이경민 3만원 이광능 1만원 이상만 10만원 이성연 1만원 이순자 5만원 이은경 1만원 이진호 3만원 이창용 1만원 이충훈 10만원 이태영 1만원 이현일 1만원 이효진 1만원 임승현 10만원 장혜주 1만원 정기용 1만원 정상란 10만원 정승윤 1만원 정윤숙 1만원 조성민 3만원 조재광 2만원 조형래 1만원 차선혜 20만원 채주병 1만원 최인주 1만원 최형석 5만원 한상희 10만원 현상진 1만원 현유진 1만원

[온라인, 계좌이체 등]

(주)우리기술 10만원 088416 10만원 감사합니다1 3만원 감사합니다2 10만원 강명주 10만원 강미주 10만원 강성민 10만원 강재광 2만원 강정숙 20만원 고경일 10만원 곽미경 10만원 권순기 10만원 권재호 10만원 김강민 10만원 김경록 20만원 김경선 20만원 김경수 10만원 김광출 10만원 김대한 10만원 김동성 10만원 김동훈 1만원 김미형 10만원 김보름 10만원 김선미 1만원 김선화 10만원 김성준 10만원 김영철 10만원 김영화 10만원 김영환 1만원 김은정 10만원 김인식 백만원 김종해 10만원 김지수 10만원 김진숙 5만원 김태관 30만원 김태연 3만원 김태완 10만원 김태운 2만원 김태헌 15만원 김태현 10만원 김혜린 5만원 남지우 10만원 독일에서 응원합니다 1만원 동관수 10만원 류바른 3만원 류호명 1만원 류희승 10만원 민영록 10만원 민옥기 10만원 박경삼 3만원 박광철 10만원 박미아 100만원 박민정 50만원 박성환 5만원 박인주 10만원 박장성 2만원 박정순 10만원 박지남 10만원 박지욱 10만원 박현선 10만원 서계원 1만원 서시우 1만원 서시우 1만원 서영빈 7만8천400원 성기서 10만원 송면종 10만원 신성숙 10만원 심기옥 30만원 안승경 10만원 안영순 10만원 안우환 15만원 역사관일본후원회 2천590만원 예담+재겸 10만원 오문영 10만원 오채은 10만원 오태길 10만원 원대식 10만원 유승수 10만원 유연정 1만원 유영호 3만원 유태선 10만원 윤건주 10만원 윤정방 10만원 윤정옥 3만원 이건호 10만원 이경숙 10만원 이경하(Kyungha Lee) 3만6천741원 이경호 10만원 이광호 10만원 이기철 10만원 이도홍 5만원 이상윤 10만원 이세희 1만원 이수현 2만원 이순철 20만원 이원영 1만원 이일구 15만원 이찬구 10만원 이홍석 5만원 이화수 50만원 임영신 10만원 임재환 10만원 장윤석 20만원 장은희 10만원 장혁인 10만원 전북외고아르마다 40만원 정경선 3만원 정미란 10만원 정수연 10만원 정애리 20만원 정예진 3만원 정윤선 2만원 정진희 100만원 정찬수 20만원 정찬진 20만원 정현구 10만원 정호리 10만원 조우성 10만원 조인규 10만원 조종오 10만원 주철희 20만원 주희영 10만원 지동호 3만원 차명은 10만원 채수일 10만원 채은선 10만원 천도현 10만원 천세현 10만원 최규필 4만4천880원 최영식 10만원 최옥림 10만원 하혜정 10만원 한규원 10만원 한종민 10만원 홍서영 3만원 황경애 10만원 황민지 2만원

●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명단에 누락되신 분은 사무국(02-2139-0406)으로 전화주시면 확인 후 반영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67
0

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월, 2018/04/09- 10:19
45
0

0409-1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0409-2

▲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0409-3

▲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0409-4

▲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0409-5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0409-7

▲ 임원소개 (운영위원장 최낙훈)


0409-6

▲ 임원소개(부회장 김문식)


0409-8

▲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0409-9

▲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0409-10

▲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 보고 (원고 이병순)

0409-11

▲ 신임감사 임명 (감사 이명구)


0409-12

▲ 회원 팔순 축하

월, 2018/04/09- 15:37
52
0

0410-1

화, 2018/04/10- 21:33
159
0

0403-4

[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10- 21:23
110
0

(오디오) ‘내역사’ 시즌2 –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YouTube

근현대역사 1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적폐의 현장을 찾아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적폐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목, 2018/04/12- 17:52
80
0

0416-1

월, 2018/04/16- 19:40
117
0

0403-4

[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4/16- 19:58
137
0

0403-4

[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17- 15:57
80
0
0412-3

▲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0412-4

▲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0412-5

▲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26
0

wp-content/uploads/2018/04/report_3.1.pdf

화, 2018/04/17- 20:38
13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