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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손자 김진영 회원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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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의 손자 김진영 회원을 추모하며

익명 (미확인) | 월, 2017/10/23- 11:17

해방 후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고 김상덕 선생(1892~1956)의 유일한 손자인 김진영 회원이 투병 끝에 8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사람에게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업보이지만 그래도 진영 군의 죽음은 그의 파란만장한 가족사와 더불어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김상덕 선생의 손자이자 김정육 선생(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외아들인 고인은 지난해 말기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으나 만삭의 아내와 딸 김예일리 양(3)을 남기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다. 9월 8일 태어난 아들 김선리 군은 유복자가 되고 말았다.
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을 잇는다는 설립 취지만큼이나 반민특위의 역사와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8년 반민특위 가상법정 개최, 1999년 반민특위터 표석 설치, 2001년 반민특위 다큐(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 협조, 2005년 정부와 국회에 반민특위 명예회복 진정서 제출, 반민특위 기념우표 제작 요청 등이 대표적 활동이다.
연구소의 이러한 활동이 때로는 미약하고 때로는 부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늘 연구소 활동이 곧 제2의 반민특위 활동이라면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분은 바로 김정육 선생이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같은 연배의 분들보다 목소리가 유독 작은 이유는 지독한 연좌제 탓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자신이 자랑스런 독립투사요 반민특위 위원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신 세월이었다.
그러던 김정육 선생에게 아들 진영 군은 자부심이요 희망이었고 또한 속 깊은 효자였다. 넉넉지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가족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군부사관으로 복무했고 특유의 성실함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홀로계신 아버지를 가까이서 봉양하기 위해 공기업을 과감히 그만두고 아버지 집이 있는 의정부시청 공무원으로 뒤늦게 다시 취직한 그런 효자였다. 작년 초에는 의정부시청 안에서 보훈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면서 밝은 표정으로 연구소를 방문해 3·1절 기념 전시회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독립운동과 반민특위 명예회복을 위해 활동하려는 결의를 보여주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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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첫딸 예일리를 낳고는 아버지께서 길한 꿈을 꾸신 다음 손녀의 이름을 지으셨다면서 이름에 대한 내력을 설명하고는 “이제 반민특위 4대가 연구소 회원이 되었다”면서 안부 인사를 전해오기도 했던 정 많은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올 여름 조심스럽게 안부 전화를 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련만 힘겨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응대를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던 우직한 청년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경기북부지부 몇몇 회원들과 건국대병원으로 문병을 갔지만 너무도 마르고 힘겨워하는 모습에 차마 병실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별세 소식을 접했다.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기에는 남아 있는 가족들의 삶도 녹록치 않다. 우선 김정육선생도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의 몸이다. 진영 군 빈소에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다녀가는 등 정부에서도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쪼록 김정육 선생과 진영 군의 유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그 가족들이 견뎌야 했던 모진 세월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세심히 보살펴야겠다. 연구소 또한 반민특위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더욱 매진하려 한다. 끝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입회원 김진영입니다. 일천한 저를 민문연 가족분들께 소개해주신다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루빨리 사회의 주역이 되어 연구소 상근자 분들과 같이 큰 뜻을 펼치는 분들께 힘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매일매일 희망하고 있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꼭! 그리될 것이니 기다려주십시오. 필승!
– 김진영 군이 2007년 2월 19일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며 남긴 글

∷ 방학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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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_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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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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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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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월, 2018/04/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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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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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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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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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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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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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운영위원장 최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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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부회장 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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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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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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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 보고 (원고 이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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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감사 임명 (감사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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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팔순 축하

월, 2018/04/09-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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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4/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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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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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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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8/04/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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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내역사’ 시즌2 –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YouTube

근현대역사 100년 동안 켜켜이 쌓인 역사적폐의 현장을 찾아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하고 적폐청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냅니다.

목, 2018/04/1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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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4/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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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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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4/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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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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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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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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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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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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