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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 차례 소송에서 이기고 17년 만에 교단에 다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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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 차례 소송에서 이기고 17년 만에 교단에 다시 서다

익명 (미확인) | 목, 2017/10/19- 17:55

∷ 전교조 소속 교사 윤희찬 회원 / 정리 박광종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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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1995년 3월에 연구소 회원으로 가입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답 : 평소 친일문제에 관심을 갔고 있었는데 마침 1995년 3·1절 무렵 경희대학교 부근 세탁소 2층에 위치한 연구소(당시 이름 반민족문제연구소)에 직접 방문하여 회원 가입을 하였습니다. 1995년이 한일협정 체결 30주년이 되는 해라,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재평가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연구소도 그때 ‘친일협정, 30년 동안의 굴욕’이라는 학술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문 : 할아버지께서 3·1운동 독립유공자라고 알고 있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 후 평탄치
않았던 가족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 : 할아버지 함자가 윤영주(1893~1988)입니다. 경상북도 의성 출신인데 3·1운동 당시 26세의 나이로 대구에 있는 동산 기독교성경학교에 재학중이었습니다. 3월 8일 계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된 대구 시위에 참석한 후 고향인 의성군 금성면 대리동으로 귀향했습니다. 대리동 기독교회 박낙현 목사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했어요. 그리고는 태극기 100여 장과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비밀리에 제작했습니다. 의성군 장날인 3월 18일, 장터에 모인 수천 명의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지요. 보안법 위반으로 1년 간 옥고를 치르셨습니다. 출옥 후 할아버지는 목사가 되어 목회활동을 하셨는데 ‘불령선인’으로 찍혀 일경에게 항상 감시를 받았습니다. 1988년 96세의 연세로 부산에서 돌아가셨습니다. 1992년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편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감시받는 생활이 싫어 만주에 건너가 지내시다 해방 후 귀향했습니다. 의성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는데 좌익활동을 하셨습니다. 1949년 보도연맹으로 대한민국 군경이 보도연맹관련자들 학살할 때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여 부산으로 도망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당시의 학살의 공포를 한평생 트라우마로 안고 사셨습니다. 잠을 못 주무시고 잠들었다가도 한밤중에 갑자기 깨어나 두려움에 떨기도 하셨습니다.

문 : 지난 9월 21일 대법원으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으셨는데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답 : 2001년 전교조 서울지부 교권국장으로 있을 때 상문고 비리와 관련해 재단 퇴진을 요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2001년 7월 교육청 앞에서 상문고와 관련해 민주 관선 이사 선정과 파견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경찰이 저를 비롯해 전교조 서울시지부장 김재석 용산고 교사(용산고)와 이을재 교사(한천중), 우삼동 교사(신정여상)를 구속 기소했습니다. 2004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2005년 광복절 때 특별사면을 받아 복권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택 교육감 시절이어서 복직이 안 되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두 번째 구속을 당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유로 그동안 복직 발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조희연 교수가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된 후, 복직 신청을 하여 서울 숭곡중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한두 달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의 직권 취소로 말미암아 다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2016년 교육부를 상대로 한 임용취소처분 취소소송에서 두 차례 승소했고 이번에 대법원에서의 확정 판결로 마침내 복직하게 된 것입니다.

문 : 17년 만에 복직하시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답 : 물론 기쁩니다. 서른 살 무렵인 1985년에 서울 고려대 사대부고 국어교사로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제가 환갑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정년이 1년 5개월쯤 남았습니다. 2015년에 잠깐 재직했던 숭곡중학교로 갈 것 같습니다. 비록 남은 기간이 아주 짧지만 비정상적이고 특권층만을 위한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문 : 전교조 가입은 언제 하셨고 어떤 부문에서 중점적으로 활동하셨습니까?

답 : 1989년 전교조 출범 때부터 활동한 창립멤버입니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교권부장, 조직부장, 부지부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습니다. 제가 전교조에 들어와서 주안점을 둔 것은 사학비리 척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비리재단은 대체로 일제시대 친일파와 닿아 있습니다. 김달하라고 아시죠. 북경에서 밀정짓을 하다가 다물단에 의해 처단된 사람 말입니다. 김달하는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창숙 선생에게 총독부 경학원 부제학 자리를 제안했다고 합니다. 김달하의 사위인 조 아무개(초대 교장을 겸함)와 친일교육자 김활란이 공동 설립자로 있었던 동구학원이 대표적인 세습비리사학입니다. 조 아무개의 아들이 현재 이사장으로 있습니다. 2008년 11월 동구여상(현재의 동구마케팅고)에서는 교육청 예산으로 200여 권의 도서를 구입하기로 했는데, 학교측이 국어·역사 교사들이 신청한 <친일파 99인>(연구소 기획) 등 3종의 근현대사 관련책에 대한 구입목록을 무단으로 제외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2014년에는 동구마케팅고 이사장과행정실장의 비리 관련 민원을 교육청에 제기한 교사를 파면하기도 했습니다.
전교조는 사학비리를 막기 위해 꾸준히 입법 청원을 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2006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무산되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는 사립학교법이 재단측에 유리하게 개악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자신이 박정희가 불법으로 탈취한 영남대 이사장으로 재직했었으니 가재는 게편이란 속담이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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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2015년에 잠깐이나마 복직하셨는데 전교조 해직교사에게 특혜를 줬다는 등 종편과 보수언론으
로부터 인신공격을 받지 않으셨나요?

답 : 엄청난 인신공격을 받았지요. 종편과 보수언론에서는 제 과거 발언과 SNS에 올린 글까지 철저히 뒤져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민재판정을 만들어야”와 “세월호 범인 박근혜”입니다. 전자는 김정훈 전교조 전 위원장의 징역 1년 반에 집행유예 선고를 내린 사법부를 비판한 내용입니다. 후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박근혜의 잃어버린 7시간이 없었으면 세월호 최악의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음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TV조선, 채널A 등은 북한식 표현이니 하며 저를 친북 용공분자 혹은 파렴치한으로 몰았습니다. 이러한 종편과 보수언론의 여론몰이로 인해 교육부의 임용 취소 결정이 훨씬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의 이면에는 진보 진영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흠집 내려는 의도도 다분했습니다. 더구나 이 무렵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대통령 명예훼손 사실에 대해 저를 조사하였는데 그후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문 : 요새 이명박·박근혜 집권기의 적폐청산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교육계에서 시급히 청산
해야 할 적폐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 시급한 현안은 불공정한 입시제도 개선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동안 교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더 심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입시사정관제도, 자사고·특목고 활성화 등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악화시킨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교육계 적폐를 바로 잡아 참다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실현해야 합니다.
한편 박근혜 정권하에서 전교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외노조’가 되었습니다. 전교조의 합법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행정통보를 취소하면 바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해고당한 노조 전임자가 50여 명이나 되는데 이들이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신속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겠습니다.

문 : 끝으로 연구소 회원들께 드릴 당부 말씀은?.

답 :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폐해는 일제 교육제도를 답습한 데서 옵니다. 사학 비리가 대표적이죠. 또 자사고다 특목고다 하여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학제가 시정되어야 하겠습니다. 회원들께서 우리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인간다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성원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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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 “사장 몰아내고 피해자들 KBS에 모셔야”… 박성제 MBC 해직기자 “세월호, MBC는 정권과 공범”

성재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이 공영방송 KBS·MBC 피해자들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공영방송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책임과 함께 노동조합 대표자로서 내부에서 발버둥 쳐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느낀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전국 213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발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지난 9년 양대 공영방송의 왜곡·편파보도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사례를 증언했다.

유경근 416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증언한 세월호 보도를 포함해 △MB 정부의 4대강 사업(참석자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친일 독재 미화 및 역사 왜곡(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백남기 농민 국가 폭력 사망(최석환 백남기투쟁본부 사무국장) △사드 성주 배치(조은숙 원불교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 교육팀장) △성과 연봉제 및 철도 노조 파업(최은철 철도노조 조직국장) 등의 이슈에서 공영방송 보도가 ‘정권 편향’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보도다. MBC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실종자를 수색하던 민간 잠수사의 죽음에 대해 ‘일부 가족의 조급증과 압박’을 원인으로 꼽는 뉴스데스크 리포트를 내보내 논란을 불렀다.

리포트 주인공은 박상후 당시 MBC 전국부장이다. 그는 목포 MBC에서 올라온 ‘구조자 숫자 중복 집계 가능성’ 보고를 무시해 전원 구조 오보의 책임자로 꼽힌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탄핵 국면에선 친박·극우 집회에 참여하는 등 사내에서도 극단적 보수 편향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인물이다.

2012년 MBC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박성제 MBC 해직 기자는 “유경근 위원장이 세월호 참사에서 ‘공영방송이 정권과 공범이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100% 동감한다”며 “MBC 내 극우 인사들이 MBC를 장악했고 경영진은 이를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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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213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해 발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KBS·MBC 피해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왼쪽)과 박성제 언론노조 MBC본부장의 모습.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각 이슈별 관계자들의 증언이 이어진 뒤 마이크를 쥔 성 본부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2008년 8월8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경찰 공권력 속에 쫓겨난 뒤 KBS가 나쁜 짓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사건이 너무 많이 스쳐가서….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귀족 노조로 몰아세웠던 유성기업 노동자 분들, 쌍용차 노동자 분들이 많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청산하지 않으면 새로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촛불 시민 혁명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공영방송의 왜곡 보도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지난 26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를 둘러싼 마약 투약 의혹과 검찰 수사 축소를 보도해 주목받은 ‘추적60분’을 언급하며 “3년 전에 나갔어야 할 프로그램”이라며 “여전히 탈핵, 최저임금 보도는 편파적이다. 안에서 구성원들이 보도 투쟁을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과 함께 하루빨리 적폐 사장들을 몰아낸 뒤 지난 9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공영방송 피해자 분들을 KBS 프로그램 안으로 모셔야 한다”며 “KBS 사장이 공식적으로 보도 피해자들에 사과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email protected]

<2017-07-28> 미디어오늘

☞기사원문: 공영방송 피해자 앞에서 KBS 기자가 ‘눈물’ 보인 사연

금, 2017/07/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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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답사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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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대학살기념관 화평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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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12월 난징대학살 80년을 맞아 기념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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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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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외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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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리지항위안소 옛터 진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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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위안소유적진열관 내부에 전시된 민족문제연구소 발행도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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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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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열사공묘 내부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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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열사공묘에서 항일전에 참전한 조선인 전상국, 김원영 열사의 이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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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열사공묘 야외에 전시된 당시 중국군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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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산 김원봉 주도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터(현재 천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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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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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간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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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혁명당 거점(현재 난징 호가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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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경으로 유명한 부자묘(공자 사당) 입구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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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고속철도 난징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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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징에서 광저우로 가는 아침 첫 고속열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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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국공합작을 계기로 설립된 황포군관학교는 현재도 항일역사공간으로 활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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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벌 타도, 국민혁명 완성을 목표로 한 황포군관학교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도 많이 입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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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청년들이 많이 다녔던 대학이자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중산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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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포군관학교 입구에 있는 쑨원의 유언(革命尙未成功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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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반국민당 정부 무장봉기(광저우꼬뮌)에 참여했다 희생된 조선 청년들을 기려 세워진 광주기의열사능원의 ‘중조인민혈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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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공사 중인 ‘중조인민혈의정’ 앞에서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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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기의열사능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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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조인민혈의정 앞에서 이항증 선생(석주 이상룡 증손자)에게 ‘항일’ 구호로 격려하는 학생 답사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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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의정 비문에 의하면 광저우꼬뮌 당시 희생된 조선인 혁명가들이 약 150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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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 신해혁명기념관에는 당시 주요 혁명가들의 동상이 역동적으로 제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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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당시 시국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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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를 놓고 열강들의 각축을 보여주는 시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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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혁명기념관 등 대부분의 역사기념관은 국민들의 역사교육을 위해 입장료가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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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헤혁명기념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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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는 주강 강변의 야경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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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저우아시안게임이 열린 주경기장 주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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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형색색 조명이 변하는 주강 강변의 광저우탑

월, 2017/08/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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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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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人君言我邦無力乃上疏

 

大韓衰弱國(대한쇠약국)

上疏我心欣(상소아심흔)

美日爲親父(미일위친부)

中俄事若君(중아사약군)

 

나라님이 우리나라는 힘이 없다고 말함을 듣고 上疏함

 

대한민국은 매우 쇠약한 나라이오니

上疏하는 저의 마음일랑 기쁘답니다

미국과 일본을 친아버지로 삼으시고

중국과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時調로 改譯>

 

우리나라 쇠약하니 제 마음 기쁘답니다

저 미국과 일본일랑 親父로 삼으시옵고

중국과 또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人君: 임금. 나라님 *我邦: 우리나라 *無力: 힘이 없음 *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 *衰弱: 힘이 쇠하고 약함 *弱國: 힘 약한 나라 *親父:

친아버지 *俄: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약칭(略稱).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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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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