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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연원, 1949년 6월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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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연원, 1949년 6월 공세

익명 (미확인) | 목, 2017/10/19- 18:03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 28

국회프락치사건의 시작

그것은 프레임이었다. 만들어지는 순간 각인되고 부인할수록 견고해졌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온몸을 옥죄었다. 그것은 흡사 개미지옥과 비슷했다.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는 ‘의정 단상의 1년 회고’라는 코너에 민국당 국회의원 김준연의 글을 실었다. ‘회고’라기보다는 반대파에 대한 일방적 매도로 가득 찬 글이었다. 그는 주장했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북협상 운운하며 5·10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성립을 방해했다고,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소위 ‘소장파’라 불리는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남로당의 선전방침을 추종하고 있다고. 그의 주장은 놀라웠다. 국회 내에 김일성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고, 그들이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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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당 중진 김준연 의원.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국회프락치사건을 예고했던 그는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88구락부의 일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준연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ML파임을 숨기고 서울파 고려공산동맹의 책임비서를 꿰찬 후,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철수 몰래 당 중앙을 탈취하여 선전부장에 올랐던 자이다. 체포 후 전향하여 우익의 논객이 되었고, 동아일보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해방 후 민국당(한민당의 후신)의 중진이 되었다.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과거를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얼굴에 올라오기 시작한 검버섯처럼 그는 어느새 독기 가득한 극우 인사가 되었다.
김준연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이날 동아일보엔 심상치 않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최근 남로당원 3명이 검거됐는데, 그들이 소장파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황윤원과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남로당원들은 이들 국회의원들에게 외군(外軍) 완전 철퇴, 남북 정치범 석방, 남북통일정치회의 개최, 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관 구성과 중앙정부 수립, 조국방위군 재편 등을 주장하여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후일 남로당 7원칙으로 알려진 사항이다. 남로당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 내에서 프락치 활동을 벌이고 국회의 원들을 조종하여 남로당의 세력 확대를 꾀했다고 한다.
두 개의 글로 프레임이 완성되었다. 내부에 적이 있고 그 배후에 남로당이 있다는 프레임이었다. 실상 동아일보는 두 개의 글로 중대 사건을 암시한 셈이었다. 무속인들도 부러워할 예지능력이었다. 8일 후인 5월 17일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의원이 체포되었다. 국회프락치사건의 시작이었다.

 

이승만과 민국당의 연합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내외 양면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도전은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도 만만치 않았다. 제도권 밖에는 김구와 김규식 세력이 건재하고 있었고, 이들과 공명하는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이 반민법과 지방자치법, 진보적인 농지개혁법 등을 견인하며 신생 정부에 도전하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것은 반민특위였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가장 강력한 힘인 경찰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었다. 더구나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한민당도 야당을 선언하고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든 상황이었다. 내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1948년 말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여순사건 이후 추진된 국가보안법 제정이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한민당과 다시 손을 잡는데 성공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초래한 위기가 두 세력을 하나로 묶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기꺼이 손을 잡고 극우반공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함께 했다. 1949년 들어 이승만 정권은 부분적 조각을 단행할 때마다 한민당 세력을 정부 안으로 끌어들였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다른 ‘적’에 대적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민당은 한민당대로 신익희와 지청천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 확대를 꾀했다. 이제 한민당은 민주국민당(민국당)이 되었다. 이승만과 민국당의 연합으로 전선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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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1일 이문원 등 소장파 국회의원의 구속을 보도한 기사. <경향신문> 1949.6.23.

 

정부 vs 국회

1949년 5월 21일 임시국회가 열렸다. 5일 전인 5월 16일 80여 의원들이 중대한 안건이 많다고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회의장 신익희는 웬일인지 국회 개원을 지연시켰다. 의원들이 지방에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댔지만 일부 의원들에 국한된 얘기여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국회는 시작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의원 3명이 구속된 후에야 국회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신문 기사를 보고 동료 의원들의 체포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열리자마자 검찰총장 권승렬에게 체포 경위를 따져 물었다. 권승렬은 이들 국회의원이 3월 하순부터 좌익계열 인사와 내왕하는 것을 탐지하고 내사에 착수했으며, 이들이 남로당 7원칙에 동의하고 이를 남한에 적용하는 것을 협의한 혐의로 구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승렬의 답변은 더 큰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물적 증거 여부에 대해 답변하면서 “이 사건은 물적 증거라는 것은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다소는 있습니다마는 … 없습니다마는 …” 하고 심하게 말을 더듬은 탓이었다. 사실상 증거도 없이 국회의원들을 체포했음을 은연중 드러낸 답변이었다.
더구나 당국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4명의 의원 가운데 한 명을 체포하지 못했다. 황윤원 의원이었다. 지방에 있다가 체포를 피하게 된 황윤원 의원은 5월 24일 국회에 출석해서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공산당과 열렬히 싸워왔으며 죄라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죄밖에 없다고 울먹였다.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은 체포된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국가보안법에 걸릴만한 행동을 했는지 의심했다. 당시 경찰의 자의적 공권력 행사가 드문 일이 아니었던 데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공격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장파 의원들은 체포된 국회의원에 대한 석방 결의안을 제기했다. 격론 끝에 투표 결과는 재석 184명 가운데 가 88표, 부 95표, 기권 1표로 부결되었다. 재석이 184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첨예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석방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이후 양측의 싸움은 김준연 의원의 제명에 관한 긴급동의안 제기로 옮겨 붙었다. 김준연 의원이 석방동의안 토의 과정에서 체포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자는 모두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자라고 매도한데다 5월 9일자 동아일보 기고문과 기사가 소장파를 모략하려는 모종의 음모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갈등은 국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5월 31일 파고다공원에서 세 의원의 석방동의안에 찬성한 88명의 의원을 적색분자로 규탄하는 ‘민중대회’가 개최되었다. 집회를 개최한 이들은 손빈과 허일 등 반민법 대상자들이었다. 이들은 연일 ‘민중대회’를 개최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동네 반장들까지 동원되어 주민들을 동원했지만 당국은 사태를 방조했다. 시위대는 6월 2일 국회가 있는 중앙청까지 행진했고, 6월 3일에는 반민특위로 몰려가 난동을 벌였다. 이쯤 되자 이들의 진짜 목적이 드러났다. 88명의 의원에 대한 공격은 표면이고 실상은 반민특위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민특위는 난동을 부린 주도자를 검거하는 한편, 이들의 배후로 밝혀진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장 최운하와 종로경찰서 사찰주임 조응선을 구속했다. 최운하는 노덕술 만큼이나 유명한 일급 친일 경찰이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움직임을 기다린 자들이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격의 빌미였다.

 

반민특위 습격, 국회의원들의 체포, 그리고 암살

6월 6일 새벽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경찰을 인솔하고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이들은 반민특위 소속 특별경찰대를 무장해제하고, 반민특위 직원들을 연행해 무자비한 린치를 가했다. 우연히 그곳을 방문했던 검찰총장 권승렬도 경찰들에게 수모를 당했다. 몸수색을 당하고 권총을 빼앗겼던 것이다. 한 의원은 경찰의 반민특위 테러를 ‘경찰의 쿠데타’라 명명했다.
국회는 분노했다. 국회는 경찰의 테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무총리 이하 전 각료의 퇴진, 반민특위의 원상복구를 결의했다. 그러나 친일 판사 출신인 장경근 내무차관은 국회에 출석하여 반민특위 습격이 내무부 책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도 6월 7일 AP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특경대의 해산은 자신이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이러하자 경찰들은 반민특위 인사의 쇄신, 경찰관 신분의 보장을 주장하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총퇴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대통령부터 일개 경찰관들까지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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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유해. 1949년 봄, 김구의 현실정치 참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치테러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회가 폐회한 다음날인 6월 21일 체포되지 않았던 황윤원의원과 노일환, 강욱중, 김옥주, 김병회, 박윤원 의원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6월 25일에는 국회부의장 김약수가 체포되었다. 이들 국회의원의 혐의는 남로당 공작원의 회유에 넘어가 남로당에 가입하고 국회 내에서 정부 파괴 공작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국회 밖에서 발생했다.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된 것이다.

독재의 연원, 6월 공세
일련의 사건들은 명확히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극우반공체제 강화였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경찰 조직을 뒤흔드는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고, 반민특위의 인적 배경이자 국회 내 반정부 중심세력인 소장파 국회의원을 체포해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1949년 봄부터 부쩍 정계로 진출할 가능성이 점쳐졌던 잠재적 최대 라이벌김구를 제거했다.

이승만 정권은 반대파를 공격하는데 좌익사건을 활용하고, 관변의 힘으로 민을 동원하여 반대파에게 압박을 가했으며, 최후의 방법이라 할 ‘암살’을 시행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그 후에도 유사한 사건들을 손쉽게 목도할 수 있다. 부산정치파동이 그러하고 장면암살미수사건이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1949년 6월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이승만 독재의 연원이라 할만하다. 이후에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소장파 대신에 민국당이 새로운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1950년 4월에 있었던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란 김성수, 김준연, 백관수, 조병옥 등 민국당 지도자들이 군과 경찰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내통하여 선거를 방해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살해하고,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몄다고 조작하려다 이 사실이 들통 나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는 백성욱 내무부장관과 신태영 육군총참모장, 최영희 헌병사령관, 김병완 치안국장 서리 등 이승만 정권의 주요 인사가 관련되어 있었는데, 조작의 정도가 너무 노골적이고 저급하여 이내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렇게 이승만 독재의 역사는 대상을 바꿔 반복되었다. 한번은 비극이었고, 한번은 희극이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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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시간 동안 자본주의가 잠식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이남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반북, 반공 이데올로기 사상으로 이북과의 대결과 반목이 강요된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친일 잔존 세력들이 친미주의자로 둔갑하여 정치, 군사, 경제, 정보기관, 문화예술, 학계 등 곳곳으로 침투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충성을 다하는 분단적폐 세력으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미국을 고무찬양, 숭배하고 분단을 유지시켜 미국의 배를 불리는 민족반역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삶과 행동이 분단적폐의 효과를 내며,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지 조차 인식 못하는 가련한 삶을 사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완전히 변했다.

 

전 세계가 전변하고 있고, 이남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바로 이북에 대한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평가와 판단이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니 인권이니 떠들어대던 분단적폐들의 목소리를 일소시키는 생생한 장면들이 최근 전 세계로, 이남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4. 27 판문점 선언의 과정과 6.12 북미정상회담의 과정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왜곡과 편견이 없이 이북 사회를 아주 조금이나마 경험한 것의 결과다.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 넘치며 예의바른 배려에서 느껴지는 겸손한 언행, 연출과 조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머감각과 진중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 언제나 이북의 인민들과 이남의 민중들 그리고 미국민들, 세계인류까지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에 대한 과감한 결단력을 우리는 본 것이다.

 

10만명이 집단체조를 하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아리랑’ 공연이 어떻게 가능한가? ICBM과 SLBM이 단 한번에 성공해내는 힘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과 정이 넘치는 곳, 국가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을 위해 멸사복무하겠단 마음으로 헌신하는 곳, 불의와 부정의 그리고 민족배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점도 용납하지 않는 민족 자부심과 양심이 바로선 곳, 자신의 이름은 드러내기보단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밑거름이 되고자하는 곳이 바로 이북 사회의 진짜 모습이다.

 

이런 사회가 최고지도자로부터 전당 전인민이 하나의 마음으로 똘똘뭉쳐진 사회가 바로 이북인 것이다.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지금껏 있어온 편견을 걷어치우자. 이것은 바로 분단적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우리들의 마음에 분단의 장막을 씌워둔 것이다.

 

세상이 주목하며 우러러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가를 몰라본다면 우리는 아마 친미를 일삼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손아귀(그 배후에 있는 미국에게)에서 남은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중대한 변화로 가득한 한반도에서 모든 진보주의자들은 명심하자.

세상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이북의 ‘혼연일체, 일심단결’에 있다는 것을 알자.

 

이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힘으로 세계를 움직인다면, 이남에서는 민족대단결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미국으로부터 자주로운 나라로 거듭나자.

 

이것이 평화이자 번영이며 통일이다!

 

 

토, 2018/07/14-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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悖鄕(패향)

 

小人懷大志(소인회대지)

癡者說儒經(치자설유경)

逆竪云忠孝(역수운충효)

狂夫促覺醒(광부촉각성)

 

風紀 문란한 고을

 

도량 좁은 사람이 大志를 품었고

어리석은 者가 儒家의 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 충효 운운하고

미친 사내 정신 차리길 재촉하네.

 

<時調로 改譯>

 

小人이 大志 품고 癡者가 儒經 논하네

도리에 어긋난 놈이 충과 효 운운하고

오호라! 미친 사내가 각성을 재촉하네.

 

*悖鄕: 못된  사람들이  살아 風紀가  고약한  시골.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풍기가  문란한  고을 *大志: 마음에 품은 큰 뜻. ≒홍지(鴻志) *癡者:

치인(癡人).  치한(癡漢).  어리석고  못난 사람  *儒經: 유서(儒書). 유가서(儒家

書).  유가(儒家)에서  쓰는,  유학(儒學)에  관한  *逆竪: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고약한  사람  *狂夫: 미친 사내 *覺醒: 깨어 정신을 차림. 醒覺. 깨달아 앎.

 

<2018.7.14, 이우식 지음>

토, 2018/07/1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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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告韓國古典飜譯院

 

或此難於作(혹차난어작)

衆人語不輕(중인어불경)

村儒嘲誤譯(촌유조오역)

盡力免苛評(진력면가평)

 

한국고전번역원에 삼가 아룀

 

或 이것은 짓기보다도 더 어려워

많은 이들이 가볍지 않다 말하네

시골 사는 선비 誤譯을 조롱하니

힘을 다해 가혹한 비평 면하소서.

 

<時調로 改譯>

 

或 짓기보다 어려워 가볍지 아니하네

시골에 사는 선비가 誤譯을 조롱하니

모쪼록 힘을 다하여 혹평을 면하소서.

 

*衆人: 뭇사람 *不輕: 가볍지 않음 *村儒: 시골에 사는  선비  *誤譯: 잘못 번역함. 

또는 잘못된 번역 *盡力: 있는 힘을 다함. 또는 낼 수 있는 모든 힘. 갈력(竭力).

사력(肆力). 기력(盡其力) *苛評: 가혹(苛酷)하게 비평함. 또는 그러한 비평.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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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局(정국)

 

萬猫逢一虎(만묘봉일호)

魄散作悲鳴(백산작비명)

左右無人物(좌우무인물)

當然雜輩爭(당연잡배쟁)

 

정치계의 형편

 

수많은 괭이들, 한 마리 범 만나면

놀라 넋 잃고 비명을 막 지를 텐데

좌우를 돌아봐도 인물이란 없으니

잡된 무리끼리 다툼일랑 마땅하다.

 

<時調로 改譯>

 

수많은 고양이들이 한 마리 범을 만나면

놀라서 넋을 잃고는 비명을 지를 터인데

좌우로 인물 없으니 雜輩 다툼 마땅하다.

 

*魄散: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悲鳴: 슬피 욺. 또는 그런 울음소리 *雜輩: 잡된 무리.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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賢問愚答(현문우답)

 

敎堂聽說敎(교당청설교)

牧者辱耶蘇(목자욕야소)

訪寺逢僧衆(방사봉승중)

方知佛大愚(방지불대우)

 

똑똑한 물음에 못난 대답

 

예배당에서 설교를 들어 보니

목사는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

절간을 찾아가 중들을 만나니

부처의 大愚 바야흐로 알겠다.

 

<時調로 改譯>

 

목사의 설교 들으니 예수를 욕보이며

절간을 찾아가서 스님들을 만나 보니

부처의 큰 어리석음 바야흐로 알겠다.

 

*賢問愚答: 현명한 물음에 대한 어리석은 대답 *敎堂: 종교 단체 信者들이 모여

예배나 布敎를 하는 집 *說敎: 종교의 교리를 설명함. 또는 그러한 설명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僧衆: 여러 승려. 승려의 무리 *大愚: 매우 어리석음.

 

<2018.7.15, 이우식 지음>

일, 2018/07/15-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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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전시자료 14

제국 홍보의 소품, 시정기념엽서 시리즈

박한용 교육홍보실장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매년 10월 1일이면 이른바 시정기념엽서(始政記念葉書, 1920년부터는 5주년 단위)를 발행했다. 조선총독부가 출범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통치를 처음 펼친 날이 바로 10월 1일이었으므로 이를 기념하려는 목적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이 고급 엽서들은 조선의 문화 유산이나 자연풍광을 비롯해 조선 각 지방의 산업 발달 또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시정기념’이란 말에 걸맞게 이 엽서들은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를 넘어 총독부의 선정(善政)에 의해 미개한 조선이 비약적으로 문명개화했다고 내외에 선전하는 홍보수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실제 매년 발행된 기념엽서는 대부분 조선 전 분야가 일제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처럼 묘사 하거나, 낙후된 과거 모습과 일제에 의해 ‘근대화된’ 모습의 사진을 나란히 배열하여 한눈에 비교하기 쉽게 디자인되었다.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한국인들이 기뻐하고 환영한 것처럼 디자인한 후안무치한 엽서들도 있다. 의도적인 상징 조작과 합성을 통해 그들은 조선인의 실상과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낙토(樂土) 식민지’를 이미지로 창출한 것이다.
통신우편수단으로 각광을 받던 이 엽서를 상용하면서 조선인들은 알게 모르게 일제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정기념엽서는 통신수단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제국의 홍보수단이자 민족적 자각과 저항을 잠재우려는 ‘움직이는 마취제’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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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황후 그림

2 조선총독부시정기념 : 일장기를 든 소녀를 둘러싸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손을 잡고 노는 장면. 뒤쪽에 일본과 한국의 상징인 벚나무와 오얏나무가 함께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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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정1주년기념 : 배경에 인삼이 개화한 모양 도안. 백운동 식림 1년과 4년 비교 사진 배치

4 시정1주년기념 : 한강 철교, 죽도 등대, 광량만 염전, 인천 수도 수원지 사진 삽입

5 시정2주년기념 : 구식 서당과 신식 학교 비교 사진. 일본 다이쇼천황 상중이라는 이유로 검은색 바탕 사용

6 시정3주년기념 : 부산 제1잔교와 연락선, 부산우편국, 부산정거장 사진 삽입

7 시정4주년기념 : 일본인 농업이민 주택과 근대식 논농사 사진과 조선인의 재래식 관개 및 제초 방식 그림 대비

8 시정4주년기념 : 조선호텔과 진남포 축항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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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정5주년기념 : 경성우편국 신축청사 전경

10 시정5주년기념 : 군산항에 쌓인 쌀가마니와 목포항의 면화 집
하 장면 사진과 관련 통계

11 시정6주년기념 : 전북 임익수리조합과 평북 태천관개 사업 관련 사진 배치, 여백에는 수차와 흰닭을 그림

12 시정6주년기념 : 동아연초공장과 조선피혁공장 사진, 배경에 담배꽃, 담뱃대 등을 그림

13 시정7주년기념 : 하세가와 총독의 초상을 도라지꽃으로 감싸고, 그 아래 용산총독관저는 국화, 월계수와 총독부 상징인 오동나무꽃으로 꾸밈

14 시정8주년기념 : 황해도 겸이포 미쓰비시제철소 전경과 용광로 등의 사진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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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시정8주년기념 : 대정수리조합 취수구과 수로 사진. 해당지역 지도를 바탕으로 구성

16 시정9주년기념 : 동해 횡단항로를 사용하는 선박 다테가미마루(立神丸), 청진항에서 일본으로 보내지는 콩과 성진항에서 일본으로 실려가는 소 사진 실림. 배경은 동해 횡단항로도

17 시정9주년기념 : 은사수산경성제사장(恩賜授産京城製絲場)과 총독부제생원 맹아교육 장면. 뽕잎, 누에, 국화와 오동나무꽃을 배경으로 그림

18 시정10주년기념 : 평북 신의주 조선제지회사와 평남 승호리 오노다세멘트제조주식회사 평양지사 공장 전경

19 시정10주년기념 : 한강 인도교를 배경으로 사이토 총독과 미즈노 정무총감의 초상 배치

20 시정15주년기념 : 이왕가 수견식(收繭式)과 누에고치 모양의 테두리 안에 경성제사장 사진 삽입

월, 2018/07/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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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有名牧師

 

莫語從神意(막어종신의)

衆知幾度違(중지기도위)

平生貪貨色(평생탐화색)

不愧仰天祈(불괴앙천기)

 

이름난 목사에게 띄우는 글

 

神의 뜻을 따른다고 말하지 말게

몇 번이나 어겼는지 뭇사람 아네

한평생 돈과 또 女色 탐했으면서

부끄러워 않고 하늘 우러러 비네.

 

<時調로 改譯>

 

神意일랑 말 말게 뭇사람이 어김 아네

돈과 또 女色 따위 한평생 탐했으면서

부끄럼 하나도 없이 하늘 우러러 비네.

 

*神意: 神의 뜻 *貨色: 재색(財色). 재물과 여색(女色) *仰天: 하늘을 우러러봄.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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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自稱莊老道通者

 

問汝知莊老(문여지장로)

焉輕孔孟言(언경공맹언)

危人危己者(위인위기자)

閉口速歸源(폐구속귀원)

 

스스로 莊子와 老子에 도통했다고 일컫는 者를 비웃다

 

네게 묻노니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子와 孟子의 말씀 어찌 깔보나

타인과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者

입 닫고 빨리 근원으로 돌아가라.

 

<時調로 改譯>

 

莊子와 老子 아는가 孔孟 말씀 왜 깔보나

타인과 또한 자신을 썩 위태롭게 하는 者

신속히 그 입 꽉 닫고 근원으로 돌아가라.

 

*莊老: 장자(莊子) 노자(老子) *孔孟: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閉口: 입을 다묾.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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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雲里(백운리)

 

暫且望雲變(잠차망운변)

能知所以名(능지소이명)

每峯奇別界(매봉기별계)

爲客築宮城(위객축궁성)

 

흰 구름 마을에서

 

잠시 구름의 변하는 모습 보자니

이름을 붙인 까닭일랑 알 만하다

솟은 봉우리마다 썩 기이한 別界

나그네 위하여 궁궐도 쌓고 있다.

 

<時調로 改譯>

 

구름의 변모 보자니 命名 까닭 알겠다

저기 솟아난 峯마다 매우 기이한 別界

지나는 나그네 위해 궁궐도 쌓고 있다.

 

*白雲: 색깔이 흰 구름  *暫且: 잠시(暫時)  *所以: 까닭  *築城: 城을  쌓음 *宮城:

궁궐(宮闕). 궁궐을  둘러 싼 성벽. 궁장(宮牆). 금성(禁城). 봉성(鳳城). 朱闕.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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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여식이 5월 18일 금요일 오후 6시 숙명여대 100주년기념관 7층 한상은라운지에서 각계인사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학자들의 도전적 탐구정신을 격려하고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2007년 제정되었다. 수여식은 함세웅 이사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수령자 발표, 지원금 수여, 최덕수 고려대 교수, 김도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축사, 수령자의 소감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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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사대상은 2016년 8월과 2017년 2월에 수여된 17편의 한국근현대사 관련 박사학위논문으로 2월 20일 예비심사를 거쳐 4월 9일 심사위원회에서 유바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미래인재양성사업단 연구교수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최종 선정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지수걸 공주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조재곤 동국대 교수, 장영숙 상명대 교수, 한모니까 카톨릭대 교수, 김태우 외국어대 교수가 예비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령자인 유바다 박사의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는 그간의 국제법적 연구와 만국공법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의 연구로서 한국사와 국제법 연구자들에게 주목받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국내외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그동안 등한시해 온 당대 유럽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까지 확보하여 분석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다. 앞으로 개항 이후 조선의 국제법적인 지위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논쟁이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 김혜영 연구원

월, 2018/07/0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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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低賃金引上

 

如何零細業(여하영세업)

店主用人難(점주용인난)

氣盡呼妻子(기진호처자)

無能固未安(무능고미안)

 

최저 임금 인상에 대해

 

영세한 사업은 과연 어떻겠는가

가게 주인, 사람 쓰기 쉽지 않네

기진맥진하여 妻와 자식 부르니

무능함에 대하여 정말 미안하네.

 

<時調로 改譯>

 

영세업 어떠한가 사람 쓰기 어렵다네

기운이 떨어져서 妻와 자식을 부르니

家長의 무능에 대해 정말로 미안하네.

 

*零細: 작고 가늘어 변변하지 못함.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 *店主:

가게 주인 *用人: 사람을 씀. 또는 그 사람 *氣盡: 기운이 다해 힘이 없어짐.

 

<2018.7.16, 이우식 지음>

월, 2018/07/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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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천도)

 

凶徒爲大富(흉도위대부)

善類豈貧寒(선류기빈한)

或者云天道(혹자운천도)

牛嘲犬馬嘆(우조견마탄)

 

하늘의 道

 

흉악한 무리는 큰 富者가 되는데

착한 무리 왜 가난하고 쓸쓸한가

어떤 者가 하늘의 道를 운운하니

소는 비웃고 개와 말은 탄식한다.

 

<時調로 改譯>

 

凶徒는 大富 되는데 善類는 빈한하네

어떤 者 하늘의 道 어쩌구저쩌구하니

마침내 소는 비웃고 犬馬는 탄식한다.

 

*凶徒: 흉당(凶黨). 사납고 흉악한 무리 *大富: 큰 富者 *善類: 착한 무리 *貧寒:

살림이 가난해 집안이 쓸쓸함 *或者: 어떤 사람 *犬馬: 개와 말을 아울러 이름.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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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錢庵住持逐客乃笑吟

 

執着奚如此(집착해여차)

無非暫借錢(무비잠차전)

紅樓恒不惜(홍루항불석)

向客放揮鞭(향객방휘편)

 

崇錢庵의 住持가 나그네를 내쫓기에 웃으며 읊다

 

집착하심이 어찌 이와도 같은고

잠시 동안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妓樓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時調로 改譯>

 

집착 어찌 이런고 빌린 돈 아닌 게 없네

아가씨 술집에서는 늘 아끼지 않으면서

가련한 나그네에겐 채찍을 막 휘두르네.

 

*逐客: 손님을  푸대접하여  쫓아냄  *如此: 이러함  *無非: 그러하지  않은  것이

없이 모두 *暫借: 잠시 동안 빌림 *借錢: 차금(借金). 돈을 꾸어 옴. 또는 그 돈

*紅樓: 기루(妓樓). 창루(娼樓). 娼妓를 두고 영업하는 집 *不惜: 아끼지 않음.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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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酒貪色友

 

糟糠情久久(조강정구구)

妓女愛由錢(기녀애유전)

盡信其言約(진신기언약)

嗚呼賣石田(오호매석전)

 

술 좋아하고 女色 탐내는 벗

 

조강지처 情이란 오래가는 것이나

妓女의 사랑은 돈에서 비롯되는데

그 말약속일랑 신뢰하기를 다하여

오호! 저 돌밭도 그만 팔아 버렸네.

 

<時調로 改譯>

 

조강지처와 달리 妓女 사랑 곧 돈인데

그 거짓된 언약 따위 신뢰하길 다하여

오호라! 돌밭마저도 그만 팔아 버렸네.

 

*好酒:  술을  좋아함  *貪色:  호색(好色).  女色을  몹시  좋아함  *糟糠:  지게미와

쌀겨라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 먹는 변변치 못한 음식을 이르는 말. 조강

지처(糟糠之妻) *久久: 기간이 *言約: 말로 약속함. 그런 약속 *石田: 돌밭.

 

<2018.7.17, 이우식 지음>

화, 2018/07/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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