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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연원, 1949년 6월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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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의 연원, 1949년 6월 공세

익명 (미확인) | 목, 2017/10/19- 18:03

사건과 인물로 보는 우리 근현대사 · 28

국회프락치사건의 시작

그것은 프레임이었다. 만들어지는 순간 각인되고 부인할수록 견고해졌다.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온몸을 옥죄었다. 그것은 흡사 개미지옥과 비슷했다.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는 ‘의정 단상의 1년 회고’라는 코너에 민국당 국회의원 김준연의 글을 실었다. ‘회고’라기보다는 반대파에 대한 일방적 매도로 가득 찬 글이었다. 그는 주장했다. 김구와 김규식이 남북협상 운운하며 5·10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성립을 방해했다고,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소위 ‘소장파’라 불리는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며 남로당의 선전방침을 추종하고 있다고. 그의 주장은 놀라웠다. 국회 내에 김일성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고, 그들이 남로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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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당 중진 김준연 의원.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국회프락치사건을 예고했던 그는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88구락부의 일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준연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ML파임을 숨기고 서울파 고려공산동맹의 책임비서를 꿰찬 후,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철수 몰래 당 중앙을 탈취하여 선전부장에 올랐던 자이다. 체포 후 전향하여 우익의 논객이 되었고, 동아일보와 긴밀한 연관 속에서 해방 후 민국당(한민당의 후신)의 중진이 되었다.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과거를 지우고 싶었던 것일까. 얼굴에 올라오기 시작한 검버섯처럼 그는 어느새 독기 가득한 극우 인사가 되었다.
김준연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이날 동아일보엔 심상치 않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최근 남로당원 3명이 검거됐는데, 그들이 소장파 국회의원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황윤원과 접촉했다는 것이었다. 남로당원들은 이들 국회의원들에게 외군(外軍) 완전 철퇴, 남북 정치범 석방, 남북통일정치회의 개최, 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관 구성과 중앙정부 수립, 조국방위군 재편 등을 주장하여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후일 남로당 7원칙으로 알려진 사항이다. 남로당원들은 국회의원들이 소속된 정당 내에서 프락치 활동을 벌이고 국회의 원들을 조종하여 남로당의 세력 확대를 꾀했다고 한다.
두 개의 글로 프레임이 완성되었다. 내부에 적이 있고 그 배후에 남로당이 있다는 프레임이었다. 실상 동아일보는 두 개의 글로 중대 사건을 암시한 셈이었다. 무속인들도 부러워할 예지능력이었다. 8일 후인 5월 17일 이문원, 이구수, 최태규 의원이 체포되었다. 국회프락치사건의 시작이었다.

 

이승만과 민국당의 연합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권은 내외 양면에서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도전은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이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도 만만치 않았다. 제도권 밖에는 김구와 김규식 세력이 건재하고 있었고, 이들과 공명하는 국회 내 ‘소장파’ 의원들이 반민법과 지방자치법, 진보적인 농지개혁법 등을 견인하며 신생 정부에 도전하고 있었다. 가장 뼈아픈 것은 반민특위였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의 가장 강력한 힘인 경찰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었다. 더구나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한민당도 야당을 선언하고 이승만 정권에 반기를 든 상황이었다. 내부의 ‘적’을 제압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1948년 말부터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여순사건 이후 추진된 국가보안법 제정이 계기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한민당과 다시 손을 잡는데 성공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초래한 위기가 두 세력을 하나로 묶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기꺼이 손을 잡고 극우반공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함께 했다. 1949년 들어 이승만 정권은 부분적 조각을 단행할 때마다 한민당 세력을 정부 안으로 끌어들였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다른 ‘적’에 대적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민당은 한민당대로 신익희와 지청천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 확대를 꾀했다. 이제 한민당은 민주국민당(민국당)이 되었다. 이승만과 민국당의 연합으로 전선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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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1일 이문원 등 소장파 국회의원의 구속을 보도한 기사. <경향신문> 1949.6.23.

 

정부 vs 국회

1949년 5월 21일 임시국회가 열렸다. 5일 전인 5월 16일 80여 의원들이 중대한 안건이 많다고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지만, 국회의장 신익희는 웬일인지 국회 개원을 지연시켰다. 의원들이 지방에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댔지만 일부 의원들에 국한된 얘기여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결국 국회는 시작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의원 3명이 구속된 후에야 국회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신문 기사를 보고 동료 의원들의 체포를 알게 된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열리자마자 검찰총장 권승렬에게 체포 경위를 따져 물었다. 권승렬은 이들 국회의원이 3월 하순부터 좌익계열 인사와 내왕하는 것을 탐지하고 내사에 착수했으며, 이들이 남로당 7원칙에 동의하고 이를 남한에 적용하는 것을 협의한 혐의로 구속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승렬의 답변은 더 큰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물적 증거 여부에 대해 답변하면서 “이 사건은 물적 증거라는 것은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다소는 있습니다마는 … 없습니다마는 …” 하고 심하게 말을 더듬은 탓이었다. 사실상 증거도 없이 국회의원들을 체포했음을 은연중 드러낸 답변이었다.
더구나 당국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4명의 의원 가운데 한 명을 체포하지 못했다. 황윤원 의원이었다. 지방에 있다가 체포를 피하게 된 황윤원 의원은 5월 24일 국회에 출석해서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공산당과 열렬히 싸워왔으며 죄라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죄밖에 없다고 울먹였다.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은 체포된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국가보안법에 걸릴만한 행동을 했는지 의심했다. 당시 경찰의 자의적 공권력 행사가 드문 일이 아니었던 데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공격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장파 의원들은 체포된 국회의원에 대한 석방 결의안을 제기했다. 격론 끝에 투표 결과는 재석 184명 가운데 가 88표, 부 95표, 기권 1표로 부결되었다. 재석이 184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첨예한 문제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석방에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지지세력 확보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한 결과였다.
이후 양측의 싸움은 김준연 의원의 제명에 관한 긴급동의안 제기로 옮겨 붙었다. 김준연 의원이 석방동의안 토의 과정에서 체포 의원 석방을 요구하는 자는 모두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자라고 매도한데다 5월 9일자 동아일보 기고문과 기사가 소장파를 모략하려는 모종의 음모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갈등은 국회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5월 31일 파고다공원에서 세 의원의 석방동의안에 찬성한 88명의 의원을 적색분자로 규탄하는 ‘민중대회’가 개최되었다. 집회를 개최한 이들은 손빈과 허일 등 반민법 대상자들이었다. 이들은 연일 ‘민중대회’를 개최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동네 반장들까지 동원되어 주민들을 동원했지만 당국은 사태를 방조했다. 시위대는 6월 2일 국회가 있는 중앙청까지 행진했고, 6월 3일에는 반민특위로 몰려가 난동을 벌였다. 이쯤 되자 이들의 진짜 목적이 드러났다. 88명의 의원에 대한 공격은 표면이고 실상은 반민특위를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민특위는 난동을 부린 주도자를 검거하는 한편, 이들의 배후로 밝혀진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장 최운하와 종로경찰서 사찰주임 조응선을 구속했다. 최운하는 노덕술 만큼이나 유명한 일급 친일 경찰이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움직임을 기다린 자들이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격의 빌미였다.

 

반민특위 습격, 국회의원들의 체포, 그리고 암살

6월 6일 새벽 중부경찰서장 윤기병이 경찰을 인솔하고 반민특위를 습격했다. 이들은 반민특위 소속 특별경찰대를 무장해제하고, 반민특위 직원들을 연행해 무자비한 린치를 가했다. 우연히 그곳을 방문했던 검찰총장 권승렬도 경찰들에게 수모를 당했다. 몸수색을 당하고 권총을 빼앗겼던 것이다. 한 의원은 경찰의 반민특위 테러를 ‘경찰의 쿠데타’라 명명했다.
국회는 분노했다. 국회는 경찰의 테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국무총리 이하 전 각료의 퇴진, 반민특위의 원상복구를 결의했다. 그러나 친일 판사 출신인 장경근 내무차관은 국회에 출석하여 반민특위 습격이 내무부 책임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만도 6월 7일 AP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특경대의 해산은 자신이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태가 이러하자 경찰들은 반민특위 인사의 쇄신, 경찰관 신분의 보장을 주장하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총퇴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대통령부터 일개 경찰관들까지 불법을 저지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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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유해. 1949년 봄, 김구의 현실정치 참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치테러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회가 폐회한 다음날인 6월 21일 체포되지 않았던 황윤원의원과 노일환, 강욱중, 김옥주, 김병회, 박윤원 의원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6월 25일에는 국회부의장 김약수가 체포되었다. 이들 국회의원의 혐의는 남로당 공작원의 회유에 넘어가 남로당에 가입하고 국회 내에서 정부 파괴 공작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국회 밖에서 발생했다.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된 것이다.

독재의 연원, 6월 공세
일련의 사건들은 명확히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극우반공체제 강화였다.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권력 기반인 경찰 조직을 뒤흔드는 반민특위를 해산시키고, 반민특위의 인적 배경이자 국회 내 반정부 중심세력인 소장파 국회의원을 체포해 세력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1949년 봄부터 부쩍 정계로 진출할 가능성이 점쳐졌던 잠재적 최대 라이벌김구를 제거했다.

이승만 정권은 반대파를 공격하는데 좌익사건을 활용하고, 관변의 힘으로 민을 동원하여 반대파에게 압박을 가했으며, 최후의 방법이라 할 ‘암살’을 시행했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는 그 후에도 유사한 사건들을 손쉽게 목도할 수 있다. 부산정치파동이 그러하고 장면암살미수사건이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1949년 6월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이승만 독재의 연원이라 할만하다. 이후에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소장파 대신에 민국당이 새로운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1950년 4월에 있었던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대한정치공작대사건이란 김성수, 김준연, 백관수, 조병옥 등 민국당 지도자들이 군과 경찰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내통하여 선거를 방해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살해하고, 정부를 전복할 음모를 꾸몄다고 조작하려다 이 사실이 들통 나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는 백성욱 내무부장관과 신태영 육군총참모장, 최영희 헌병사령관, 김병완 치안국장 서리 등 이승만 정권의 주요 인사가 관련되어 있었는데, 조작의 정도가 너무 노골적이고 저급하여 이내 들통이 나고 말았다. 이렇게 이승만 독재의 역사는 대상을 바꿔 반복되었다. 한번은 비극이었고, 한번은 희극이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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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4.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실현 가능한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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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Q.3 – ‘남북관계 개선’이 첫 번째로 언급된 이유 ?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8/06/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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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등 반민족·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대회

“반민족주의자 김창룡의 묘를 몰아내자!”
“친일청산하고 민족통일 이뤄내자!”
“국회는 국립묘지법을 신속히 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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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현충원 묘지 현충원 묘지 앞 ⓒ 송혜림

6일 10시, 대전국립묘지 현충교에선 뜨거운 열기를 잊은 듯한 힘찬 구호가 울려퍼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들이 묻혀진 현충원에 ‘친일파’라니, 과연 무슨 일일까.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에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된 김창룡과 5.18 민주항쟁을 진압한 책임자들이 순국열사들과 함께 현충원에 묻혀있다고 문제를 제기 했다.

이번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등 반민족 반민주행위자 묘 이장 촉구대회’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평화재향군인회, 대전충청 5.18민주유공자회 등 시민단체 주최로 현충교에서 진행되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묵념하기 위해 찾는 현충원,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날 행사는 가두 판넬 전시와 홍보물 배포, 성명서 낭독과 파묘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되었다.

현충원의 장군묘역은 반민족 사범들의 안식처인가” 울분의 성명서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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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교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든 모습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가 열린 와중,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임재근

오전 9시, 가두 판넬 전시 및 홍보물 배포로 시작한 행사는 본격적으로 ‘국립묘지법 개정 및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의 대회사와 촉구 발언이 이어지고, 대회 참가자들의 성명서 낭독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성명서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으로 구석구석 이 땅의 적폐를 청산중에 있으며, 오래된 민족의 적폐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새 시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곳 국립묘지는 과거의 적폐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여전히 ‘국립묘지법’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 국립묘지는 이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영혼의 안식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였으며, 그것도 모자라 해방 후에는 이승만 비호 아래 양민학살에 앞섰고, 민족 지도자이신 김구 선생님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 행위를 저지른 김창룡이 ‘국립 묘지법’의 비호 아래 이 곳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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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서를 낭독중인 이순옥 부위원장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 <국립묘지법 개정과 친일파 묘 이전 촉구대회> 성명서를 낭독중이다. ⓒ 임재근

그리고 무력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주범이자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여 처벌받은 범법자 안현태와, 5.18 민주항쟁 당시 진압군 측 주요 책임자인 유학성, 소준열이 이곳에 버젓히 편하게 잠자고 있다. 이런 자들의 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국립묘지에 대한 모독이자, 우리 국민을 욕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짓이자, 이 곳에 고이 잠들어 계시는 순국선열과과 애국지사를 능멸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더불어 이해 관계자들에 주장하는 바를 밝혔다. 우선 김창룡과 안현태 등의 유족에는 “그들의 묘가 현충원에 있는 한 국민에게 조롱받을 것”이라며 “고인을 위한다면 하루빨리 묘를 이장”하길 요구했다. 또 국회위원들에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개정하고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길” 촉구했다.

더불어 현충원 유족들과 국민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우리 호국영령 들은 반민족 반민주 인사들과 한자리에 묻혀 맘이 편하실리 없다. 유족과 국민들은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들을 국립현충원에서 몰아내도록 여론을 만들자”라며 친일파 파묘에 힘을 보태주길 호소했다.

추모의 장에 친일파 흔적은 없어져라… 파묘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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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현충원 파묘 퍼포먼스 김창룡의 묘 앞에서 파묘 퍼모먼스를 대회 참가자들이 이행하고 있다. ⓒ 송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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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룡 묘 앞에 놓인 피켓들 김창료 묘 앞에 참가들이 준비한 피켓들이 놓여져 있다. ⓒ 송혜림

‘민족의 반역자 김창룡 묘 파가라!’라고 적힌 커다란 삽이 등장했다. 대회 참가자들이 삽에 이어진 끈을 잡고 영차영차 잡아당기자, 마치 무덤을 파내는 듯한 파묘 장면이 연출된다. 현충원 장군묘역에 위치한 육군중장 김창룡의 묘에서는 위와 같은 파묘 퍼포먼스와 묘 이전을 촉구하고 국립묘지법을 개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

김창룡,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이들이 이렇게도 분노하는걸까. 1920년 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한 그는 1940년에 일본 관동군 헌병교습소에서 근무하다가 일본 중지군의 아마카스사단 파견헌병대에 배속되었다. 중국공산단 거물 왕진리를 체포하는데 큰 공을 세운 그는 이후 다수의 항일조직을 적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월남 이후 국방경비대 내부 좌익숙청을 벌이며 육군 방첩대장이 된 김창룡은 1949년 ‘김구암살사건’에서 사건 당일 범인 안두희를 특무대 영창으로 이감, 특별 배려하며 배후 은폐에 가담했다. 6.25 전쟁 이후 김창룡은 특무부대장으로 부임 후 정치적목적과 성과주의로 상당한 공안사건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암살당한 그의 장례식은 최초의 국군장으로 안양의 사설 묘역에서 치뤄졌으나, 1988년 국군기무사령부의 노력으로 대전 현충원에 이장되었다.

애국지사 조문기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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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충원에 이장된 조문기 묘 앞에서 대회 참가들이 추모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 송혜림

친일파의 묘에서 퍼모먼스를 이행한 참가자들은 고 조문기 열사의 묘로 이동했다. 조문기 열사는 항일 독립운동가로서 대한애국 청년당을 개설하고 국내 항일운동을 주도해왔다. ‘친일청산이 오늘의 독립운동’이라는 구호아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노력을 기하다 2006년 파킨스병으로 사망했다.

추모사를 발언한 박해룡은 “이승만 정권 하에 단독정부와 독재를 반대한 조문기는 민주화 투쟁과 통일 운동을 이어나갔다. 현대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했고,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함께 했다.”라며 “승리의 영광없이 고난밖에 없던 가시밭길을 걸어오셨다. 그러나 현재 남북회담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 다. 민족문제연구소도 시대에 발맞춰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 친일파들을 청산하고 몰아내는 데 힘을 다하겠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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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곽낙원의 묘와 김 인의 묘 앞 단체촬영 김구 어머니 곽낙원의 묘와 김구 아들 김 인의 묘 앞에서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송혜림

또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의 묘 앞에서는 “민주화를 갈망했던 아들이 부당하게 세상을 뜬지 70년이 되었다. 여전히 국내 곳곳에는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다.”라며 “요즘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김구와 김구 어머니가 그토록 꿈꾸시던 통일을 앞두고 있다. 조속하게 친일과 유신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노력하겠다. 양심 민주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연대하며 만들어가겠겠다”라며 추도사를 마쳤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친일 인사 중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으로 총 63명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가슴아픈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의 하나로 이들 묘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져 왔으나, 현행 법에 제정된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 째 미뤄져 왔다. 그러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민족사의 오랜 숙원이 해결되어 현충원의 진정한 존재가치가 바로잡히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2018-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현충원에 드리워진 그림자, 친일파의 묘?

목, 2018/06/0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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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어린이 책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정황이 보인다. <시사IN>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전태일이 위인으로 소개’돼 있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요하게 ‘좌편향’을 문제 삼았다. 기존 검인정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며, “99.9% 전국 고등학교의 절대다수가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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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5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오른쪽)과 안종범 경제수석이 청와대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좌편향’ 낙인찍기 집착은 교과서만이 아니었다. <시사IN>은 박근혜 정부가 기존 어린이 교양도서도 좌편향이라며 낙인찍은 문건을 입수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캐비닛 문건’이다. 여기에는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지시사항에 대한 이행 및 대책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같은 내용이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업무수첩 51권 곳곳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이하 국정화)를 추진하던 2015년 11월23일, 이병기 실장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아래 <그림 1-1> 참조). “당분간 ‘집필진 명단 미공개’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해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고, 명단 보안 관리에도 만전을 기할 것(교문수석).”

이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누가 참여하는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 ‘복면 집필진’이라는 비판을 샀다. 정부 입맛대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과정을 불투명하게 하고, 집필진의 비전문성을 숨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실장은 계속해서 집필진 비공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바로 다음 이어진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문건 내용이 눈길을 끈다. “어린이 교양도서의 이념 편향성, 특히 위인전집에 있어 대상 위인 선정의 좌편향성이 매우 심각한데 이러한 도서가 교양도서로 출판되도록 놔둔 교육부/문체부에 문제가 있음. 행정조치에 앞서 이러한 실상을 학부모들이 정확히 알도록 해 도서 선택에 신중하도록 유도할 필요 *전태일, 레닌, 호찌민, 모택동, 체 게바라 등을 위인으로 소개.”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기록된 지시사항

같은 날(2015년 11월23일) 쓰인 안종범 업무수첩에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5. 역사 교양도서(아래 <그림 1-2> 참조)’라고만 쓰인 단어에 위와 같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 등을 다룬 도서는 ‘좌편향’이 심하다며 어린이가 읽지 못하게 정부 부처가 민간 출판에도 개입하라는 초법적인 주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지역 중·고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배포할 계획이었다. 이 또한 편향이라고 몰아세웠다.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관련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아래 <그림 2-1> 그림 참조). “친일인명사전이라는 용어가 자꾸 회자되지 않도록 하고, ‘학교가 특정 편향 단체의 출판을 지원하는 곳이 아니다’라는 점을 적극 알려나갈 것(교문수석).” 같은 날 작성된 2016년 2월14일 안종범 전 수석은 청와대 티타임 메모를 남겼다. 1번부터 7번까지 기록한 내용의 다섯 번째가 ‘친일인명사전?(아래 <그림 2-2> 참조)’이다. 0608-4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4389명이 이름을 올렸다. 2008년 박지만씨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으면 안 된다”라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은 학문적 의견 표명에 가깝고 발간 목적이나 동기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국정화를 ‘이념 전쟁’으로 인식한 박근혜 정부는 비판세력을 제어할 방법을 끊임없이 강구했다. 2015년 9월30일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안)’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교과서 국정화 성공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고 비판세력을 제어할 정교한 추진 전략과 디테일한 상황 진전 계획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함…. ※이러한 대국민 홍보 강화를 위해 KBS, EBS 등 매체를 잘 활용할 필요(위 <그림 3-1> 참조)”.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안종범 전 수석에게 국정화 홍보전에 나서라는 주문을 했다.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2015년 9월20일자 VIP 메모에 ‘1. 국정교과서, 부모들 마음 움직여야, 조갑제 대한민국 진실을 지키기 위하여, 김일성 보천보 전투 X, 조선 MBC 한경 매경, 시민단체 부모단체(위 <그림 3-2> 참조)’로 기록되어 있다. 국정화 찬성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활용하라는 취지다.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리고 시행하는 데 관여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기 전 비서실장,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은 현재 모두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다만 이들은 박근혜 게이트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고, 국정교과서 관련 직권남용 등 혐의는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2018-06-05> 시사인

☞기사원문: 어린이 책에 붙인 좌편향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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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향한 ‘보이지 않는 손’

시사인: 국정교과서 타임라인

금, 2018/06/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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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방한
“남북 분단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남북 평화 무드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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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시절 북한의 피해자들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 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야노 국장이 성금 모금을 위해 만든 팸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2018.6.9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본은 한반도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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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통해 탄생한 4·27 판문점 선언을 지지한다며 종전선언 이후의 남북과 일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야노 국장은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이후 한국 전쟁도 있었지만, 결국 한반도 분단의 연원은 일본 식민지배에 있다”며 “하지만 그 사실을 일본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알리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 일본은 자민·사회당이 북한 노동당과 양국 관계 정상화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현재 아베 정권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베 정권은 대북 압력만 넣고 있는데 이는 북미정상회담 등 화해 과정을 방해하는 길이 될 수밖에 없다”며 “아베 정권의 이런 방해 공작을 막는 것이 일본 시민으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야노 국장은 또 “많은 일본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만 생각하면서 일본을 피해국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본 때문에 피해를 본 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 관계가 더욱 개선되고 종전선언이 나오더라도 향후 북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은 쉽게 진행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야노 국장은 “현재 한일 간에도 위안부 문제나 군인·군속의 강제동원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한일 양국의 상황을 극복해서 향후 북한에 대해서는 더 발전된 해결책을 생각해내야 하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공원으로 뒤바뀐 효창공원과 김구기념관, 대공분실을 참관하는 등 식민지배와 강제병합, 한국 현대사 등을 배운 뒤 10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야노 국장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 식민지역사박물관을 홍보하는 캠페인을 열 계획”이라며 “일제강점기 시절 자행된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과 학습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앞으로 과거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토, 2018/06/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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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일제강점기 북한 피해자에게도 제대로 보상해야”
(서울=연합뉴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팸플릿.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은 9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본의 식민지배가 아니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한에도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 등이 많이 계시는 만큼 일본 정부가 그들에게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노 국장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에서 모은 성금 1억여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하고자 7일 방한했다. 2018.6.9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9일 민족문화연구소에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으로 써달라며 1억여원을 기부했다.

안자코 유카 모임 공동대표와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등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민문연에서 열린 기금전달식에서 지난 2년간 일본에서 모은 성금 1억345만원을 관련 자료와 함께 전달했다.

민문연은 “한국과 일본 시민의 연대의 뜻을 모은 만큼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평화의 인권의 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은 민문연의 식민지박물관 건립을 응원하는 취지로 지난 2015년 11월 발족했으며, 홍보 팸플릿 4만 부를 찍어 지난해 초까지 일본 전역에 배포했다.

[email protected]

<2018-06-09>연합뉴스

☞기사원문: 일본 시민단체, 식민지역사박물관 설립기금 1억원 기부

※관련기사

☞헤럴드경제: 아베와 다른 일본인들…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 1억원 기부

토, 2018/06/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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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하는 사관생도(서울=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8일 오후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제107주년’기념식에서 사관생도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육사, 신흥무관학교 계승한 학교”…독립군 전통, 국군역사에 편입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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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 육사에서 처음 개최(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서 육사 군악대와 생도들이 분열의식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1천100여명은 육사 화랑연병장에 집합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을 위한 분열의식을 했다.

8개 중대로 나뉜 육사 1~4학년 생도들과 육사 군악대는 약 15분간 절도 있는 동작으로 연병장을 돌며 연단 앞에 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을 항해 큰 소리로 ‘충성’ 경례를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와 호국간성의 대한민국 정예장교를 양성하는 육사의 역사적 만남이었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처음으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것은 육사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라는 선언의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 등 독립군의 전통이 국군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신흥무관학교는 1910년 3월 신민회의 국외독립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 결의를 계기로 이듬해 6월 10일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신흥강습소는 1912년 통화현으로 이전한 뒤 이듬해 건물을 신축해 신흥중학교로 개칭했다가 각지에서 지원자가 몰려오자 신흥무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같은 해 10월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권을 되찾기 위한 군 조직이라는 점에서 국군의 효시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동안 국군의 역사에 공식적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과거 군 당국이 독립군의 전통을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1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행사를 육사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육사에는 독립군의 역사를 가르치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군 당국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작년 9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과 광복군과 관련한 역사를 국군의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육사에서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당시 박일송 육사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1911년 설립된 신흥무관학교 등의 군사교육기관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육사의 정신적 정통성의 연원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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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 교내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8일 오후 2시 육사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신흥무관학교 설립 107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들이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뒤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8.6.8 [email protected]

이어 올해 3월 독립전쟁에 나섰던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육사 교내 충무관에 설치됐다.

이날 신흥무관학교 기념식이 육사에서 열린 것도 군 당국의 이러한 태도 변화로 가능했다.

기념식에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와 육사 생도대장인 김태진 준장을 비롯해 기념사업회 및 육사 관계자 1천200여명이 참가했다.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육사 생도들의 분열의식,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및 특별전시회 관람, 항일음악회 순으로 진행됐다.

항일음악회에선 ‘안중근 옥중가’, ‘기쁨의 아리랑’, ‘광복군 아리랑’, ‘압록강 행진곡’ 등 독립군이 부르던 노래들이 연주됐다.

육사 관계자는 “육군사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의 독립 정신을 계승한 학교”라고 “전쟁사 과목 중 포함됐던 독립전쟁 역사교육의 시간을 크게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겸하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오늘 기념식은 신흥무관학교와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국군의 뿌리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 “국군 장병들이 앞으로 독립군이 불렀던 노래도 군가로 불렀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18-06-08 

☞기사원문: 신흥무관학교 기념식 육사서 처음 열렸다…”독립군 정신 계승”

금, 2018/06/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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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역사교육위원회’의 조속한 신설을 촉구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에 부쳐-

1. 오늘(8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완료 및 백서 발간에 맞추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국민 대다수의 뜻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권력의 횡포’이자 ‘교육의 세계적 흐름을 외면한 시대착오적 역사교육 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화 추진이 “교육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므로, 교육부장관으로서 “정부 과오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새로이 되새기며 국민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2. 지난 3월 2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원회)’는 <조사 결과 발표문>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각종 법률, 그리고 민주적 절차를 어겨가면서 국가기관과 여당은 물론이고 일부 친 정권 인사들까지 총동원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부당하게 개입한 반헌법적이고 불법적인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국정화 사건’으로 명명한 바 있다. 한마디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와 교육부가 작당하여 자행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역사쿠데타’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발표문을 접하고, 교육부가 과연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을 헌법을 유린한 중차대한 사안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3. 가장 심각한 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최고·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 의뢰 대상에서 배제하였다는 사실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한 다음,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하여 추진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가 (가)편찬기준 수정요구, (나)편찬심의위원 선정 개입 (다)집필진 선정 등 교과서 편찬과 내용 수정과 같은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박근혜 전 대통령임이 명약관화한데도 교육부는 그를 수사의뢰 대상에서 제외하는 납득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였다.

4. 다음 국정농단에 동조한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처벌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가)국정화 추진과 실행 계획을 수립‧추진하였으며, (다)청와대의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다)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관을 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하였다’고 하였다. 교육부는 청와대의 국정농단에 자발적‧적극적‧반복적으로 동조한 ‘공동정범’인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화 방침을 결정할 당시 교육부 수장이었던 황우여 장관이 수사의뢰 대상에서 빠졌다. 게다가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 등 산하기관을 총동원하여 국정농단에 부역하였는데, 겨우 여섯 명의 고위 공무원에게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5. 교육부의 과장급 이하 중·하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면죄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추진과정에서 상급자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던 수동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국정화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삼아 견마지로를 다한 적폐세력이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이 (가)국정화 논리를 적극 개발하고 홍보하였으며 (나)검정교과서가 좌편향 되었다고 거짓 선동하였으며 (다)여론 조사를 빙자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였다.’고 파악하였다.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라 정권의 ‘충견(忠犬)’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함부로 팔아넘겨도 된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6. 교육부는 <보도 자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 발표(‘18.3.28) 당시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하여 추진”하겠다면서, 구체적으로 (가)역사교육지원체제 구축 (나)역사교과서 발행관련 제도와 법규 개선 (다)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 정립 (라)역사교육 공론화 장 및 기구 마련 등을 제시하였다.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제작에 올인한 교육부가 역사교육과 관련된 이와 같은 중차대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선언하고 1년이 넘었는데도, 교육부는 아직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대신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자유한국당이 적반하장으로 근거 없는 색깔론 공세를 퍼붓는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반박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한 수구-냉전 세력인 교육부가 갑자기 안면을 바꾸어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역사교육 방향을 정립’한다고 하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7. 역사학계·역사교육계는 작년 4월 28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와 ‘역사교육의 정치성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정책 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 가운데 3항이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주성 전문성 확보를 위해, 차후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에서 역사교육을 논의하는 기구(전담 위원회 등)를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진상조사위원회도 재발방지책으로 ‘역사교육위원회를 설치하여 역사교육 거버넌스 주관기구로 역할을 부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교육부는 ‘스스로도 믿지 않는’ 면피용 재발 방지책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학계와 체결한 대통령 공약이 조속히 이행되도록 노력하여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끝>

2018년 6월 8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금, 2018/06/0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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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식당의

유뤌이십일

사대강물요일이

기다려지는구나!

월, 2018/06/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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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작은 이야기를 골라 다소 깊게 파보겠습니다. 100년 전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추적하는 시간, 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미식가 6회 “을사늑약과 이토히로부미”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금, 2018/06/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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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금, 2018/06/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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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정세현 특별대담]

“4.27선언과 한반도의 미래” – Q8.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져야할 자세(마지막 질문)

주최 :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때 : 2018년 5월 18일 오후 2시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곳 :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식민지역사박물관)

대담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회 : 신용옥 (내일을여는역사재단 편집장)

※ 팟빵에서 오디오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4024

금, 2018/06/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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