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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설계한 강골 학자, 문정인 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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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설계한 강골 학자, 문정인 특보

익명 (미확인) | 수, 2017/10/18- 14:31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 사회과학 논문 인용 색인에 등재된 논문이 40여편에 달한다.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학자이지만 거침이 없다. 민감한 현안이라도 학자적 소신에 따라 발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한미훈련을 축소해야 한다”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으로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별보좌관으로서 발언 수위가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문 특보는 학자로서의 의견이라며 굽히지 않는다.

문정인-중앙
문정인 대통령 통일ㆍ외교ㆍ안보 특별보좌관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국제정치 학계의 권위자이자 외교ㆍ안보 전략가다.(사진 출처:중앙일보)

키 180㎝에 몸무게 80kg으로 고교 시절‘한 주먹’ 하기도 했던 문 특보는 국제사회의 ‘문제아’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힘(군사력)으로 제압하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힘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한들 얻을 게 없다고 본다. 한반도가 핵 전쟁터가 돼 버린다면 전세계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문 특보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진 대북포용 정책인 햇볕정책 설계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2016년 6월 연세대 교수직에서 퇴임한 문 특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자로서의 마지막 혼신을 쏟고 있다. 문 특보는 세간의 비관적 전망과 달리 연말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활로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미군철수 여론 살피러 온 미 대표단과 인연, 정치학자 길로

문정인 특보는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둘째였던 그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운동경기에 선수로 참여할 정도로 스포츠를 즐겼다. 180㎝ 큰 키로 체격 조건이 유독 좋았다. 오현고 시절 씨름ㆍ유도 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글쓰기 소질도 남달라 제주도내 백일장 수필부문에서 장원을 2년 연속 차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1969년 한국외국어대 이탈리아어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봐 연세대 철학과(70학번)로 진학한다. 연대 학보 ‘연세춘추’에서 기자로 또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인생의 항로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문 특보는 애초 대학 졸업후 신문사에 취직할 작정이었다. 학보사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보사 활동을 한 이들에겐 일반적 관례와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2년 미 국무부가 주최한 아시아ㆍ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 회의에 연세춘추 편집국장 자격으로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생각이 달라진다. 4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아보면서다. 문 특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연히 하게 된 미국 여행을 통해 세계를 보는 안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진 군 생활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만한 경험을 쌓게 된다. 첩보를 총괄하는 국군정보사령부에 배속되면서 국제관계와 관련한 각종 보고서를 접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국제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을 지낸 대표적 통일ㆍ외교ㆍ안보 전문가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 특보와 군 생활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에서 제대한 1976년 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게 되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한국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3권을 국문으로 번역했다. 보수 정치권 일각에서 종교 문제로 문 특보에 대한 트집잡기를 하는 배경이다. 문 특보는 이와 관련해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스스로 불교신자라 여기다 2년 동안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했다”며 “미국 유학 때는 기독교에 가까웠지만, 지금 제 종교를 묻는다면 종교가 없다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자를 향해 발을 내딛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찾아온다. 1978년 한국을 찾은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 관계자들을 수행, 통역을 맡은 것이다. 미 공화당 인사들은 당시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불거지자 한국 여론을 살피기 위해 방문했다. 이 인연은 5년간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미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문 특보는 1985년 ‘X터키대 정치과 조교수를 시작으로 월리엄스대, 튜크대 교수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동안 미국에서 활동했다. 미국 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맡는 등 미국 학계에서 명성을 날렸다.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으로 꼽히는 배경 중 하나다. 그러던 19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로 부임하며 한국으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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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모두 참여… 햇볕정책 설계자

문 특보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진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분단 55년만인 2000년 6월 평양에서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정상회담과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ㆍ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등 그간 두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에 모두 참여했다.

문 특보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정성회담 동안두 정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특별수행원으로 1ㆍ2차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인물은 문 특보를 제외하면 남북 경협문제로 참여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특보는 한 인터뷰에서 “1차 정상회담 때의 6ㆍ15공동선언이 총론이라면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은 각론에 해당된다”며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은 참으로 획기적이었는데 그 계획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아 동북아평화번영 정책 수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국정원장,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대통령 안보보좌관 등 외교ㆍ안보 라인에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하마평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문 특보는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캠프에 참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대선 캠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좌장 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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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특보는 “2차 정상회담의 10ㆍ4 공동선언 중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이 제대로 진행됐더라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하기도 했다.(사진 출처: 연합뉴스)

“북한 요구 못 들어줄 이유 없다”… 美태도 변화 주문

학계를 대표하는 ‘미국통’이자 ‘북한통’인 문 특보는 핵ㆍ미사일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대화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북한이 원하는 건 국제사회가 북한을 주권국가로서 인정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굳이 미국을 겨냥해 핵ㆍ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잇단 도발을 하는 것도 결국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보장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거다.

문 특보는 특히 “북한의 요구를 못 들어줄 이유가 없다”며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줄기차게 주문하고 있다. 북ㆍ미간에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자 문 특보는 “많은 분들이 한미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문 특보는 “북한 지도부 궤멸과 핵 자산을 없애는 정치적 목표나 군사 지휘부를 궤멸 시키는 군사적 목표 모두달성이 어려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하게 (군사행동을) 한다면 인류에 대한 죄악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난다면 재래식보다 오히려 핵전쟁으로 발전되는 것 아닌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문 특보가 거듭되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는 ‘쌍 잠정중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이른바 쌍 잠정중단론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특보는 지난 6월 미 워싱턴 방문 당시 내놓은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발언으로 논란이 불거진 점을 의식한 듯 최근에는 “정부의 입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핵 동결을 전제로 대화는 가능하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려운 얘기”라며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곧잘 거론되는 군사 옵션은 쉽게 입에 오르내리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할 뿐더러 정치적ㆍ군사적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하루빨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있다. 문 특보는 9월 27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10ㆍ4선언 10주년 기념식 특별강연에서 “북한이 핵탄두를 100개 가지면 지금과 협상 테이블이 또 달라진다”며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라 북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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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의 합의문 발표가 갑작스럽게 취소된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들 중 가장 복잡하고 모순된 사건들 중 하나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폼페이오가 결렬 직후 진행한 즉흥적인 기자회견은 전혀 복잡하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미디어를 의식하여 짜낸 진부한 쇼였고, 변명 이상의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꼼수였다.

트럼프는 김정은, 신조 아베, 시진핑 그리고 문제인과 맺고 있는 “깊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런 모습은 갑작스런 방송사고 프로그램의 공백을 채우려 애쓰는 심야 프로그램 코미디언 같아 보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던진 긍정적인 언어들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들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가졌던 “생산적인 시간”들에 대한 달콤한 말들이, 세계 곳곳에서 수직 상승중인 전쟁의 위험성을 가려주지 못 한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해 보자. 세계평화의 차원에서 봤을 때 북한은 특출난 위협이라기보단,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으로 구축된 세계 질서가 붕괴되며 뒤따라 벌어진) 비교적 안정적인 섬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압제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사실은 특별히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어떤가? 현재 미국 정부는 정부로서의 전문성을 모두 잃었고, 이슈와 정책에 대한 분석은 급격히 사유화되었으며, 부가 극도로 집중되며 문화 또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미국은 이제 고립주의와 군사주의로 빠져들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을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 제재완화에 대한 연방 의회의 강한 반발, 혹은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헨의 저속한 증언들로 인해, 하노이에서의 쇼는 어떤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트럼프를 기다려주지 않고 있다. 핵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 두 나라가 대립하는 이유 중 작지 않은 부분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정치게임에서 나오고 있다. 미군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중앙 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 개입하고 있으며, 새로 선출된 연방의회는 거기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것 같아 보인다.
남미에는 정치적 문제 해결에 강제력을 동원하겠다는 협박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이득을 위해서 분별없는 반지성주의 풍조를 부채질하고 아마존의 우림을 파괴하려 하는, 나아가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려 하는 브라질의 볼소나로 덕분에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시에 네오콘의 사상적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엇 에이브람스와 존 볼턴은 베네수엘라의 정권 교체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다.

그들은 마두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국적 기업들을 위해 석유생산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역겨운 행동 중 하나는 우익 상원의원 중 하나인 마르코 루비오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 리비아의 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진을 올린 일이다. 이는 마두로가 계속 미국에 저항한다면 무아마르 카다피와 비슷하게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암시였다.

자원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음모는 석유와 석탄 재벌인 찰스 코흐와 앤디 코흐 형제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또한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듯한 북한의 금, 석탄 그리고 다른 지하자원들을 노리고 있다는 혐의의 기조에 큰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김정은과의 회담에 있어서 트럼프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기적이 북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제 투자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북한과의 접촉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적대적인 행동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이다. 미국이 INF(중거리 핵전력 협정) 협정에서 탈퇴하게 하려는 존 볼턴의 행동들은 발전한 기술 덕에 1950년대에 있었던 군비경쟁보다 훨씬 위험한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란핵협상의 일방적인 파기와 더불어서, 이런 광기가 독일, 러시아, 중국, 미국, 터키, 일본, 인도 그리고 이란 사이의 군비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모든 나라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핵전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과 그의 참모들은 현재의 혼란한 정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찬에서 김정은이 지어 보였던 미소 뒤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노이 2차 회담은 양측이 모두 극심한 자기기만을 받아들이고자 했기에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시진핑에게 했던 친절한 말들은 미 국방성이 중국과의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지 못한다. 트럼프와 주변인들이 제재를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전쟁 위협을 협상 전략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떠한 문민통제도 없이 미군의 힘을 사이코패스들의 영향아래 둔다면 이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민주당의 반응 그리고 남한과 일본 보수층의 반응은 트럼프가 국제법을 무시하며 군사주의를 받아들이고 그의 파시스트적 기반에 영합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비판들이었다. 미국이 모든 나라들이 핵 확산 금지 조약을 지키도록 하는데 실패하고 이란과의 핵협상도 파기되면서, 국방성은 1조 달러를 들여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 명백한 조약 위반이지만 이에 대한 업급이 금기시되는 주제이다.

 

반지성주의의 대두와 미디어의 부패
북미 정상화담의 뒤에 숨은 정치학적 의미는 간단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변화가 거대하다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이 기득권과 타협하고 사익에 스스로를 팔아 넘기면서 정치인들은 재벌들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우리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침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는 다국적 기업이나 투자은행들을 답습하여 이 세상을 소개하고 있다. 미디어 또한 또 하나의 사업이 되었고, 기업체들의 홍보부 역할을 맡고 있다. 세상의 현 상태에 대한 지성적인 탐구는 없고, 뉴스를 만드는 데 있어서 도덕적 문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많은 기사들은 혼란과 오해를 부추기기만 하고 있다.
회담에 대해 미디어가 제공한 자세한 사항이라고는 김정은이 하노이까지 어떻게 기차를 타고 왔는지, 호텔과 외교적 관례에 주요한 지점 주위의 통행이 어떻게 차단되었는지 밖에 없었다.

미디어는 죽었고 반지성주의의 커다란 파도가 미국을 휩쓸었으며, 많은 나라들은 더 이상 비판적 분석이 불가능한 지경이 이르렀다. 우리 세상에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은 트럼프뿐만이 아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온라임 게임, 포르노 혹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어 옹알거리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고, 더 이상 복잡한 문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퇴화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회담의 끝에 던져졌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음 회담이 언제 열릴까?” 가 아닌, “많은 단체나 기관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문제를 토론하는 소통의 문화가 자리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물어야 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어떤 주제들이 다뤄지지 않았는가?
어떤 것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 중요한 주제인가?

세상의 부가 몇몇 사람들의 손에 급격히 집중되는 현실은 분명 트럼프나 김정은 누구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한반도를 사막화 시킬 수도 있는 기후 변화와 규제 없는 오염과 석탄 사용 증가로 인해 나빠지는 공기질 또한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과 점점 가속화되는 군비 경쟁 또한 (이 문제가 북한이 가진 불안정성의 중심적인 이유였음에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남한의 군수업체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꼭 1차 세계대전 직전처럼 무기와 전쟁 위협은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정상회담에 대한 초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어떻게 포기할 것인지에 맞춰져 있었다. 이는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금지조차 천명하지 않은 채 전쟁위협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이 가진 수천 개의 핵무기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또 한 차례의 정상회담이 자리한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시민들의 진정한 우려가 반영된 대화가 자리잡을 때 해결될 것이며, 국제 관계에서의 진정한 위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담은 담론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정책이나 행정부의 변화가 아닌 문화 자체의 변화를 필요로 할 터다.

목, 2019/03/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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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은 방러 임박?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뒤 북한과 러시아간 움직임이 분주하고 심상치 않다. 양측 고위 인사들의 접촉이 빈번해졌다. 하노이 회담 일주일 만인 3월 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북한과 러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경제협력 문제를 논의하는 <북-러 통상경제·과학기술 협력 정부 간 위원회(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제9차 회의가 열렸다. 14일에는 임천일 북한 외무성 부상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부 아태담당 차관과 회담했다. 16일에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이 평양을 찾았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이고 예정된 상호 방문으로 이해된다. 3월 17일이 ‘북러 경제.문화 협력 협정’을 체결한지 70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일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창선 부장은 모스크바에 나흘 머무는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3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타나면서 언론에 포착됐다.

김창선 부장은 김정일.김정은 일가의 집사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요 정무를 보다가 막히는 일이 생길때면 김창선 부장을 불러 아버지 김정일때는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물어본다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서실장이자 대외방문 의전 책임자로 알려진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났으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읽혀질만하다.

3월 23일 모스크바 세레메쩨보 공항에 나타난 김창선 부장

지난해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무대에 전격 등장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자 러시아도 김 위원장의 방러를 적극 추진했다. 지난해 5월 평양을 방문한 라프로프 외무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나 9월 동방경제포럼도 좋고 편리한 시간에 러시아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6월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크렘린에 따로 부른 푸틴 대통령은 재차 김 위원장의 방러를 요청했고, 9월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에 평양을 찾은 마트비옌코 상원의장도 김정은 위원장과 환담한 바 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서울을 방문한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을 단독 인터뷰했는데,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마트비옌코 의장은 ”양국 지도자들이 만날 장소와 시간을 놓고 북러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가까운 장래, 아마도 연말 전에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뒤 갑자기 김창선 부장이 모스크바에 나타나고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언론에선 북한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관계를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무역협상을 앞둔 시점이라 중국은 운신의 폭이 좁은 만큼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자유로운 러시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분석한다. 이와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에 줄 선물이 마땅치 않더라도 미국을 긴장시키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김창선 부장이 이번 모스크바 방문길에 김 위원장의 방러 문제를 논의했는지, 논의했다면 구체적 방문 장소와 시기를 결정했는지, 결정했다면 이를 어느 시점에 공개할는지 등이 관심사로 주목된다.

 

(2) 북러 경제협력위원회

지난 6일 9차 ‘북-러 경제협력위원회’에 북한에선 김영재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수산성, 보건성, 철도성 등 여러 정부 부처. 기관 대표들이 정부 대표단으로 참가했고 러시아에선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극동개발부 장관이 이끄는 정부 대표단이 참석해 양국간 교역 확대 방안 등을 논의했다. 북러 양국은 해마다 상대국을 오가며 경제협력위원회를 열고 있으며, 제8차 회의는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러 교역 확대 방안과 루블화 결제 도입 방안 ▶두만강에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문제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 ▶나진~하산 복합물류 사업 추진 문제 ▶러시아에 대북 무역 전담 회사 설립 문제 등이 논의됐다고, 코즐로프 장관이 회담이 끝난뒤 언론 브리핑에서 밝혔다. 북한은 이 중에서도 두만강 자동차 교량 건설과 북한 노동자 체류 문제에 관심을 많이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두만강 철교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 2015년부터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통행용 교량 건설 협상을 벌여오고 있다. 북러 국경의 두만강 위에는 현재 북한 두만강 역과 러시아 하산역을 연결하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철교가 놓여 있지만 자동차 도로용 다리는 없다. 코즐로프 장관은 “자동차 도로용 교량 건설 프로젝트에 대한 사전 타당성 조사를 주문한 상태이며 그 결과에 따라 (북측과) 사업 견적 문제와 건설 조건 등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동차 교량은 길이 915m, 너비 14m, 2차선 도로에 하루 차량통행량은 500대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교량 건설에는 4천만 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측이 적극적인 반면 러시아측은 소극적인 편이다. 이미 벌려놓은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유엔 제재 등으로 소강상태인지라 러시아 입장에선 북러 국경에 또다른 건설 인프라를 추진해야할 필요성을 덜 느끼는 듯하다. 시베리아 석탄을 북한 나진항을 통해 한국에 보내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는 나진역과 하산역 54km를 개보수하는 사업에 7천만 달러를 투입해 2013년 9월 완공한 바 있다. 당초 나진~하산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 컨소시움도 참여하기로 했었으나,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한국 정부의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러시아 건설현장의 북한 노동자들

코즐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 문제도 논의했고, 특히 안보리 결의의 틀 내에서 북한 노동력을 계속해 이용하는 문제가 검토됐다고 밝혔다. 한때 3만 8천여명에 달했던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현재 9,800명 수준으로 줄었다고 하는데 (실제론 만 2천명 정도로 예상됨) 유엔 대북 제재에 따르면 올 12월까지 순차적으로 북한에 돌려보내야 한다.

2017년 9월 3일 실시한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9월 11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다. 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화성-15형’ 발사에 대한 응징으로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했다. 북한 정부로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러시아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이번 회의에선 어학연수생으로 북한 노동자를 받아 들인다거나 사할린에 기술자로 파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모스크바 회의에선 이밖에도 러시아에 북한과의 무역을 전담하는 회사를 건립하고 러시아 내에 북한 상품관을 개설하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3)북한의 전략적 도발

필자가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재직할 당시 북한은 전략적 무력 도발을 강도 높게 자행했다. 특히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에 집중됐는데, 3차례의 핵실험과 35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진행됐다. 다음은 2016~2017년 동안의 주요 무력 도발 일지다.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 북 “첫 수소탄 실험 성공”

3월 3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6발 발사

3월 10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 발사

3월 18일: 동해상으로 노동계열 미사일 2발 발사

3월 21일: 동해상으로 300㎜ 방사포 5발 발사

3월 29일: 300㎜ 방사포 추정 발사체 1발 발사

4월 1일: 동해상으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1발 발사

4월 15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4월 23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4월 28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5월 31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1발 발사

6월 22일: 무수단 계열 미사일 2발 발사

7월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7월 19일: 동해상으로 노동 2발, 스커드 계열 1발 발사

8월 3일: 동해상으로 노동미사일 2발 발사

8월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1발 시험발사

9월 5일: 동해상으로 스커드 계열 추정 미사일 3발 발사

9월 9일: 5차 핵실험, 북 새로 연구 제작한 핵탄두 위력 판정 시험 주장

10월 15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10월 20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에서 무수단 미사일 1기 발사

-2017년  2월 12일: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서 동해상으로 북극성-2 미사일 1기 발사

3월 6일: 평북 동창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스커드 개량형 추정 미사일 4기 발사

3월 22일: 강원도 원산비행장 일대에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4월 5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 발사체 발사

4월 16일: 함경남도 신포 일대에서 불상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 추정

4월 29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북동방향으로 미사일 1기 발사했으나 실패 추정

5월 14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1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서 미사일 1기 발사

5월 27일: 장소 미상(북한 동쪽지역 추정) 지대공 미사일 발사

5월 29일: 강원도 원산 일대서 동쪽으로 지대지·지대함 복합 미사일 발사

6월 8일: 강원도 원산일대서 동해방향 지대함 미사일 수발 발사

7월 4일: 평안북도 방현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발사 (화성 14형)

7월 28일: 자강도 무평리 일대서 동해방향 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4형)

8월 26일: 강원도 깃대령일대서 동해방향 단거리 미사일 3발 발사. 이 중 2발 성공

8월 29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9월 3일: 풍계리 일대서 6차 핵실험

9월 15일: 평양 순안 일대서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기 발사 (화성 12형)

11월 29일: 평안남도 평성 일대서 동해상으로 장거리탄도미사일 1기 발사

   김정은, ”신형 ICBM 화성-15형 발사 성공, 핵무력 완성 선언

2017년 11월 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불과 석달 뒤 2018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특사에게 비핵화 의지를 전격적으로 밝혔다. 2016~2017년 동안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로 끌어올린 것은 결국 핵협상에서 자신들의 몸값을 최대치로 높이기위한 계산된 전략적 도발이자 몸부림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4) 러시아의 대응

1)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

북한의 강도 높은 전략적 도발에 국제사회의 대응은 단호했다. 유엔은 2016년부터 2년 동안 모두 6개의 사상 유례없는 대북 제재안을 의결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도 이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러시아가 취한 대응은 대북 금융거래 전면 금지와 러시아내 북한 노동자 송환으로 압축된다.

2016년 1월 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한지 57일 만인 3월 3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 2270호는 ▷소형무기(small arms) 수입 금지 ▷북한을 들고나는 모든 화물에 대한 전수조사 의무화 ▷북한산 석탄, 철, 철광 수입 금지 ▷항공유 수출 금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대폭 강화 등이 주요 골자인데, 70년 유엔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 결의로 평가됐다. 두달 뒤 5월 19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북한과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할 것을 지시하는 통지문을 산하 은행과 금융기관들에게 발송했다. 통지문의 내용은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의 개인.법인 소유 자산즉시 동결 ▷북한 은행들과의 송금 거래 금지, 북한에 새 계좌 개설도 금지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러시아내 금융계좌 폐쇄 등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의 북한 노동자들

 

2) 러시아의 북한 노동자

북한 노동자가 소련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946년 노동계약에 따라 사할린에 도착했을 때이다. 그후 연해주 일대 벌목 현장이나 건설 현장, 시베리아 석유개발 현장, 극동지역의 수산물 가공공장,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그 수는 한때 4만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노동자들은 훈련돼 있고 규율을 잘 지키며 부지런하고 험한 작업현장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는 노동력이다. 러시아 특히 극동지역의 입장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극동 연해주 일대에서 일하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 가운데 북한 노동자들이 단연 제일 우수하다는 말을 필자는 여러 러시아 지인들로부터 들은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도 해외 노동자들이 보내온 외화 수입이 연간 2~3억 달러에 달하니 괜찮은 소득원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이 받는 월 평균 급여는 500~600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 충성자금 명목으로 본국에 송금하는 돈을 제외하면 노동자 본인이 월 100달러 정도 벌어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던 분위기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7년 9월 이후부터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는 다른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 신규 채용, 고용을 금지했고 기존 노동자는 계약이 끝나면 연장을 못하도록 했다. 이를 의식한 러시아 정부는 2017년 11월 ‘북한 노동자 쿼터’를 25,000명으로 결정해 버렸다. 4만 수준이던 노동자가 40% 가까이 급감하는 것이어서 주러 북한 대사관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대외경제성 차관이 모스크바에 40일 이상 머물면서, “요즘 중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물밀 듯이 북한으로 돌아와서 북한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외화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도와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12월에는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24개월 이내에 모두 송환시키도록 규정한 ‘대북제재 결의안 2397호’가 채택되면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가 계속 줄어들어 2019년 현재 9,800여 명이 된 것이다.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올 12월까지 북한 노동자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최근 들어 북중 접경 지역의 북한 노동자들도 잇따라 귀국길에 오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북한 당국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화, 2019/03/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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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로티 한 장을 위해서 생산지인 인도네시아에는 2불을 지불하는데, 이를 미국 소비자는 왜 70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가?

* 사람들은 이같은 가격체계에 대해 당연히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경제학 어디에도, 경제학자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실은 많은 사람들이 노벨상 경제학자가 주식해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현실의 경제현상에 대해 경제학이 설명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을 발표하였고, 맑스는 1867년 자본론 1권을 출간하였다.

국부론에서 말하는 생산시스템은 사실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이 아니다. 그가 제창한 균형이론, 즉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는 그를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 숭상하게 하고 있지만 정작 국부론에서 다루는 생산시스템은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공장제 수공업 시대를 배경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당연히 스미스는 1820년대 처음으로 발생한 경제공황에 대해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을 터, 즉 보이지 않는 손, 균형이 깨어지는 상황이 거의 7~8년간이나 지속되고 이후 매 10년마다 반복되는 비정상(?)상황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칼 맑스는 영국이 한창 자본주의 금자탑을 쌓고 있던 1860년대에 자본론을 썼다. 그가 목도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발시키는 과정이었고, 그가 생각해낸 이윤율 경향저하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몰락의 길로 갈 것이라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150년, 맑스시대 영국이 경험한 자본주의 역사, 100년 보다 1.5배는 긴 기간을 지내 오는 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경향적 저하론과 무관하게 비교적 자~알 지내고 있으며, 도리어 그 경쟁 상대였던 현실사회주의를 경쟁에서 패퇴시켜 인류유일의 경제시스템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 우리는 자본주의와 경제학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담 스미스의 살아 생전에는 본격적인 자본주의가 채 시작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기본원리로서 고전경제학이 시작되었고, 그 숭고한 잣구의 한 점 오류도 없이, 경제학은 해마다 노벨상을 받고 있다.

맑스 사후 150년 간 자본주의는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여 전 세계 8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세계 유일의 경제시스템이며 어디에나 그의 제조공장을 만들 수 있고, 증권화를 통해 산업과 분리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감을 대신하는 기계적 장치로 인하여 자율 생산까지 가능한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매 10년마다 불황, 혹은 장기적 만성불황이 일어나고 있고, 전혀 망할 기색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250년간 자본의 철옹성이지만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의 실제적인 소비자로 등장한 만큼, 그만큼의 지분이 존재하는 사회가 되었다.

* 잠깐 다시 처음의 폴로티의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학생 때 잠시 안면이 있었던 노동가치설만 가지고는 인도네시아에서 미국까지의 그 험난한 과정을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사이의 엄청난 가치의 차이,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음식물과 생산이 많아 밭에서 썩히고 있는 농산물과 비교되는 수많은 아프리카 아동들의 굶주림, 이들에게 하루 1불이면 2~3명이 풍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생산된 상품은 당연히 소비될 것이므로! 이는 맑스 경제학도 마찬가지이다. 즉 상품의 개념, 그 자체가 다른 상품에 의해 교환되어야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경제학의 출발점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어서이다.

오늘날 인터넷 쇼핑이 오프라인 쇼핑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자본주의 초반에는 모든 생산이 상업자본의 의한 주문생산이 이루어졌다. 즉 1700년대 말에서야 근대적인 소매점이 생겼고, 귀족이 아닌 일반 자본가에게조차 상시적 소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이때부터 산업자본이 상업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150년여가 지난 1900년대 초중반이후 노동자에게도 전면적인 소비의 기회가 주어진 대량소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인터넷쇼핑 시대, 유통의 힘이 생산을 압도하고 나아가서 소비가 생산을 압도할 준비가 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2019년, 우리는 150년 전의 맑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본주의 세상, 생산과 분리된 자본의 시대, 국제금융의 시대, 새로운 노동에 의한 생산이 예고된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250년 역사를 통해서 발전해온 가치와 가격에 대한 사고를 보다 발전시켜야 할 때이다.

* 가치와 가격에 기본사고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자본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탐험이 필요하다. 모든 사변이 과학적이려면 그 사변의 근거가 되는 환경을 반드시 고려하여 생각해야 한다. 선언이 말하는 1800년대 노동자들은 지금의 노동자와 많이 다르다. 근대교육이 없던 시절의 노동자들은 신문물과 과학에 대해서 가장 감수성이 높은 계층이었다. 현실세상이 변하는 만큼을 사변, 학문, 특히 사회과학은 따라 가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주변의 것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를 이해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더욱이 학문이라는 것도, 역사적 사실들도 지배적 계층입장에서 보고 싶은 것들만 보니, 지금 우리 주변의 현상들이 아무리 자연스러워도, 그의 기원을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대 종교도 생겨날 시점에서는 최고의 과학이며 인간 사고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2000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2000년 전의 사고체계를 우러러 숭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는 새로운 종으로 거듭 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인류는 자신만이 가진 것, ‘과학적 사고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참으로 게으른 종족이다.

* 일생의 노력으로 새로운 경제학적 사고를 시작해 보자. 자본주의 원리인 가격과 가치에 대해서, 맑스 사후 150년 지나고도 이윤율저하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사회주의는 어째서 붕괴했는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는 현재 어떤 단계이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현대 자본주의 내부에 위치한 화산들은 어느 지점에 있고 어떻게 분출될 것인지 등을 힘 닿는대로 밝혀 보고 싶다. (‘힘되는만큼’에 방점!!! ㅎㅎㅎ)

 

월, 2019/03/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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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샹탈 무페는 이 책을 ‘포퓰리즘 계기가 드러내는 현재 정세의 본질과 도전을 좌파가 시급하게 이해’하고, 지금이 좌파가 신자유주의 우파의 권력독점을 깨고 민주적 권력을 창출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알리려 썼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무페는 왜 이토록 시급한 주장을 좌파를 향해 펼칠까? 무페에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해 온 지난 40여 년간 (무페는 자신의 분석을 서유럽으로 제한한다) 서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정치적 무능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함없이 무능력한 정당들은 권력 장악을 위해 신자유주의 아래 금융 자본주의의 강제적 명령을 수용하면서, 정치를 우파와 좌파 엘리트 집단 사이 ‘중도적 합의’로 축소해 버렸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1985년에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쓸 때만 하더라도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무페의 생각은 이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았다. 그러나 소비에트 해체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당 스스로 신자유주의에 갇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적 이상 추구를 포기하고, 대중들의 탈정치화를 촉진했을 때, 무페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사진: 한겨레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신자유주의 맥락에서 변질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좌파의 새로운 과제를 주장한다. 이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무능력한 기존 좌파의 회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통제불능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 확산, 부채 증가, 나쁜 노동의 확산,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등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점점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약탈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우파 포퓰리즘이 외국인 혐오, 인종주의, 사회적 약자 차별 등 반인권적이고 배타적인 가치를 내세워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는 것을 저지하고 민주적 가치를 복원하는 대안 헤게모니 세력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제는 전통적 좌파처럼 노동자 계급을 절대화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노동자 계급’ 정체성은 다양한 가치와 어떻게 접합되는가에 따라 민주적 가치와 부딪힐 수도, 가장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노동자 계급은 모든 세계시민의 수평적 관계를 나타내는 정체성이 되거나, ‘국민’과 결합하여 가장 폐쇄적인 정체성이 되는, 즉 좌·우파 포퓰리즘 어느 특성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의 과제는 신자유주의라는 전 지구적 신조와 헤게모니가 유기적 위기에 처하고, 정치사회적으로 도전받는 ‘포퓰리즘 계기’에 좌파가 전통적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정치전략을 통해 시급히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전략은 곧 좌파 포퓰리즘 정치이다. 우선 무페는 포퓰리즘이란 ‘사회를 두 진영으로 분리하는 정치적 경계를 구성하고, ‘권력자들’에 맞선 ‘패배자들’의 동원을 위한 담론 전략’이라는 라클라우의 정의를 따른다. ‘국민’, ‘민족’, ‘인종’처럼 수평적으로 확장될 수 없는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정체성과 결합한 우파 포퓰리즘이 정치사회적 배제와 차별화를 통해 권력을 획득하는 시도라면, 좌파 포퓰리즘은 이에 맞서는 전략이다. 좌파 포퓰리즘은 한가지 정체성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계를 형성하지 않고, 평등주의적 대중주권을 내세운다. 이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등가 관계를 형성하고 이 관계를 보다 다양한 정체성과 민주적 가치로 끊임없이 확산한다. 이를 통해 ‘대중’의 새로운 민주적 정체성이 구성된다. 따라서 좌파 포퓰리즘은 전체주의적 경향의 우파 포퓰리즘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절대적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반본질주의 입장에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추진한다. 이 새로운 정체성의 ‘이름’이 바로 새로운 헤게모니, 그리고 이 특수한 좌파 포퓰리즘의 이름이 된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대중’은 소유적 개인주의 및 대의제의 자유주의와 끊임없이 경합하며 탈정치와 과두제의 포스트 민주주의에 저항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서유럽을 먼저 장악해가는 우파 포퓰리즘이 대중을 사로잡은 공감 방식이다. 이것은 좌파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좌파는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승리를 그 지지자들 탓으로 돌리면서, 우파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은 방식에서 교훈을 얻기를 꺼려했다. 무페는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본다. 물론, 혐오와 차별이 보편 가치가 될 수 없기에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수사적 표현은 진리와 충돌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좌파가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 대중과 정서적 공감을 해야 한다.

잘못하면 포퓰리즘의 이론적 논쟁은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논쟁이 될 수 있다. 지금은 훈고학적 논쟁보다 어떤 이름으로 드러나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통한 좌파 포퓰리즘 정치의 출발이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차별의 우파 포퓰리즘의 승리가 분명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살아남은 모든 자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교수신문, 2019년 3월 12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이승원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월, 2019/03/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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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던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문 없이 끝났다. 지난 싱가포르 합의 이후, 교착국면을 이어가던 북미관계가 이번 회담으로 무언가 돌파구를 찾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새 역사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던 낙관적 전망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또 한번 밀고 당기기의 오랜 긴장이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극적인 합의점을 찾고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젖힐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국가간 협상에서 합의와 결렬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론 협상이 합의에 이르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결렬이 되면서 두 국가의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대국과 약소국의 입장에서 협상 결렬이 미치는 충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대국과 약소국의 협상에 임하는 자세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강대국의 입장에서 약소국과의 협상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여타의 대외적인 관계의 단지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약소국의 입장에서 강대국과의 협상은 때론 자신의 모든 국가적 역량을 다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이자 동시에 그 결과의 충격은 전 국가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때론 강대국과 약소국의 협상에서 모든 힘을 다한 약소국이 강대국에 비해 더 많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모두 협상에 성실히 임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합리적인 협상의 원칙을 기켰을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만일 강대국이 자신의 힘을 믿고 비-합리적이며, 약소국의 뒷통수를 치는 협상을 해 왔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여러 분석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비판하는가 하면,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미국은 판을 뒤집으려고 했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미국 국내정치의 영향까지 다양한 각도에서의 분석과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분석과 평가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서 원인을 찾는 입장은 북미간 불신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이 주장하는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미국의 논리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고, 북의 비핵화 진정성을 문제삼는 측에서는 북이 처음부터 비핵화에 관심이 없고 시간을 끄는 것에 불과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정상회담 기간 중에 미국 사회를 달구었던 코헨의 의회 청문회 등의 미 국내정치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의 약화 때문에 합의문에 서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중 북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문제삼는, 어쩌면 북에 대한 근본주의적 시각을 제외하면 결국 결렬의 요인은 미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협상의 문제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미국의 무리한 요구 혹은 자신들의 내부적인 요인 때문에 협상을 결렬시킨 것이다.

흔히 협상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두를 실망시키지도 않는다고 한다. 즉, 협상은 서로가 마주 앉아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이며, 따라서 이득과 양보의 함수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앞세우는 즉,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얻기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공정한 협상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힘의 우위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비-합리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말과 행위를 ‘갑질’이라고 한다. 사회에 갑질이 넘친다면 그 사회는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로 구분되는 말 그대로의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그 사회의 법과 질서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어쩌면 전형적인 강대국의 ‘갑질’이라 할 것이다. 이를 ‘제국의 갑질’이라 이름붙일까 한다. 사실, 강대국 미국의 갑질은 새삼스럽지 않다. 1994년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제네바 합의’의 일방적인 파기부터 시작하여, 2002년 소위 특사 방북을 통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켰고, 2005년에는 ‘9.19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BDA’ 사태를 일으켜 협상을 뒤로 돌리고자 했던 것까지…..

역사적으로 제국의 갑질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남북의 관계 개선을 막아왔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인내를 강요해왔다. 그렇다면, 갑질에 대처하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갑질에 대해 ‘을들의 반란’이라는 말이 있듯이, 갑질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은 ‘연대와 협력’일 뿐이다. 남북의 연대와 협력, 지금 당장 미국의 갑질에 불편해하는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미간 문제해결을 위한 중재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당사자이자 한반도 미래의 설계자여야 하고, 남북의 연대와 협력의 힘을 통해 문제 해결의 선도자가 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후에도 북미가 서로에게 결렬의 책임을 묻기는 하지만 협상의 파국을 선언하지는 않고 있고, 여전히 협상의 기대감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미 신년사 분석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정부가 또 다시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제국의 갑질’에 부응하는 것이거나 그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의 갑질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을들의 반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핵심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듯이 바로 ‘남북의 연대와 협력’일 것이다.

 

통일뉴스, 2019년 3월 11일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가 공동게재에 동의하여 실린 것임).

화, 2019/03/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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