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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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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익명 (미확인) | 목, 2017/10/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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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938년 제국주의 실현을 꿈꾸던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들은 원치 않는 총을 들어야 했고,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중 최소 60만명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흐려졌다. 교과서는 단 한 문단으로 피해자의 삶을 축약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은 정부의 불허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역시 지지부진하다. 백발이 성성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국회와 법원을 오간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강제 동원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피해자와 유가족을 찾았다. 일본을 방문, 비극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94세의 피해자를 대신해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그의 간절한 당부를 독자들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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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③ “개 묻듯 묻었다” 탄광노동자 기록, 누가 지켜야 하나 (2017/08/07)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② “우리마저 손 놓을 수 없어”…일본의 소도시가 우키시마호를 기억하는 법 (2017/08/03)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① 우키시마호 참사 72년, 가라앉은 귀향의 꿈 (2017/08/01)

광복 72주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정부는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피해자 위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대신 나선 이들은 수많은 ‘익명의 조력자’였다. ‘지워진역사 강제동원’ 기획 시리즈에서 다 담지 못한 강제동원 학계, 시민단체계 인사들의 ‘고군분투기’를 소개한다.

▲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국가의 협조가 절실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를 기록할 기관은 전무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1995년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뛰어든 이유다. 이후 김 연구원은 일본이 수탈한 조선의 인·물적 자원의 정확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피해자와 연구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역사문제연구소,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등에 제안해 ‘강제동원진상규명 시민연대’ 시민단체를 꾸렸다. 이뿐만 아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특별법)’ 초안도 김 연구원의 손을 거쳤다. 김 연구원은 강제동원 연구에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동원 자료가 국가기록원에 이관되면 해당 자료 열람이 힘들어진다”면서 “우리 정부가 자료 연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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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서경 작가 제공

◀ 김서경 노동자상 조각가…예술로 희생자 넋을 위로하다

서울 용산역 앞 세워진 국내 최초의 강제동원노동자상은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조각했다. 노동자상은 조선인 노동자가 어둡고 깊은 갱도를 나와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을 형상화했다. 김 조각가는 이를 ‘불편한 눈부심’이라고 표현한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라는 것이다. 김씨 부부는 강제동원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이들의 작품이다. 김 조각가가 노동자상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일본 땅에 끌려갔다. 일부는 생존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유해로나마 고향 땅에 잠드신 분들도 있다”면서도 “아직 유해조차 발굴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다.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후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조각가는 앞으로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

▶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진상규명 위해 사할린에 흘린 땀방울

비포장도로를 7시간 가까이 달린다. 러시아 사할린 각 지자체 기록보존소에 연금, 노동자 카드 등 자료의 열람을 신청한다. 허가가 떨어지면 ‘서류철’로 된 문서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본다. 대부분의 자료가 전산화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정보 문제로 복사가 불가능한 자료도 다수다. 일일이 손으로 베낄 수밖에 없다.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가 사할린에서 강제동원 관련 자료를 조사해온 방법이다. 방 교수는 지난 2005년부터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서 활동, 사할린에 잠들어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발굴에 집중해왔다. 지난해에는 사할린에 홀로 파견됐다. 그는 약 500여 명의 강제동원 피해자 명단을 발굴해냈다. 방 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와 유가족 모두 절절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며 “이들의 수난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진상규명 활동을 지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의 경우, 자료가 부족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명부 발굴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대표…포기할 수 없던 아버지의 ‘이름’

“이희자 보추협 대표에게 물어봐라. 이 대표는 우리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취재 도중 만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 유가족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유가족과 피해자를 보듬으며 약 30년간 강제동원 진상규명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 또한 강제동원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 대표는 지난 89년부터 관련 기록 찾기에 나섰다.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가까스로 아버지의 사망 사실이 적힌 명부와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명시한 문건 등 총 6건의 자료를 찾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피해 유가족을 돕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에는 보추협을 결성,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찾아낸 기록을 토대로 일본 정부에 피해보상 소송을 걸었다. 또 끊임없이 국회 문을 두드려 특별법 제정을 이뤄냈다. 지난 6월 이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출판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지난 45년 이후 정말 해방된 것이 맞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면서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65년 한·일 협정으로 보상받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가족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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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완익 변호사

▶장완익 변호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충 해결사’

장완익 변호사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지난 1994년, 정대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담당 변호사로 일하던 지인이 유학을 가면서 장 변호사가 대신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장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강제동원 피해자 고충 해결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년 동안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업무를 진행했다. 장 변호사는 광복 이후 들어선 정권이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노태우·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권들은 과거사 해결을 경시했다”며 “이로 인해 강제동원 역사가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 주도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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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외길 25년째 

“술맛 떨어지게 또 우키시마호 얘기냐”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이 지인을 만나면 듣는 핀잔이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지난 1948년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을 실은 우키시마호가 부산항으로 향하던 중 폭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아직 정부는 희생자 숫자는 물론 정확한 사고 원인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 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꾸준히 우키시마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당시 아시아반핵포럼에 참석해 유적지를 답사하던 중 이 비극적 사건을 알게 됐다. 전 회장은 우키시마호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모두 사비를 들여 이뤄진 일들이었다. 그는 총 82명의 생존자를 만나 증언을 일일이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에서야 ‘우키시마호사건소송자료집’ 두 권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형식적 조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 회장의 주장이다. 세월이 흘러 이 가운데 남은 생존자는 단 2명. 전 회장은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우키시마호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아직도 일본 마이즈루만 앞바다에 묻혀 있을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회장은 우키시마호를 다룬 영화 제작도 계획 중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아닌 개인이 홀로 싸워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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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역사 알아야 바로 잡는 것도 가능하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수십 년간 자료를 분석, 수집해온 ‘강제동원 전문가’다. 대학원 재학 당시 지도교수의 제의로 강제동원 문제에 첫발을 디뎠다. 지난 95년 일본에서 온 연구자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강제동원 특별법 제정을 도왔다. 지난 2005년 2월부터 지난 2015년까지 위원회 조사과장으로 10년간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노무동원 피해자의 유골 발굴과 자료 정리, 진상조사, 지원금 지급, 명부 전산화 등의 작업을 지휘했다.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 관련 자료 입수와 유골 봉환에 힘썼다. 위원회가 종료된 후에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 현장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기 위한 ‘다크투어(역사교훈여행)’를 기획 중이다. 경희궁 지하터널, 인천 동일방직터 등 국내 강제동원 피해 현장은 8000여 곳이 넘는다. 인천과 부산 등 각 지역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일에도 참여했다. 정 연구위원은 “강제동원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일본에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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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문재인 정부, 노동자상 건립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라”

최종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강제동원 노동자상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노동자상을 세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8월 최 직무대행은 노동자상 건립 행사 참석을 위해 일본 교토시 단바망간광산을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탐탁지 않은 이유로 일본 입국이 불허됐다. 일본 정부뿐이었을까. 한국 정부마저 노동자상 건립에 비협조적이었다. 최 직무대행이 속한 민주노총은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은 지난 4월6일부터 매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최 직무대행은 지난 6월24일 열린 ‘노동자상 건립 촉구대회’에서 “정부는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 보상을 위해 주권국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력 끝에 노동자상은 지난 8월 용산역 앞에 세워졌다. 현재 부산에서도 노동자상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시민을 상대로 지지 서명을 받고 노동자상 조성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 오는 12월28일에 노동자상을 세운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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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산 작가

한수산 작가…‘군함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다

“소설 ‘군함도’ 집필은 운명이었습니다” 지난 7월 영화 ‘군함도’가 개봉했다. 영화 이전에 소설로 먼저 군함도의 비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는 한수산 작가다. 한 작가가 소설 ‘군함도’를 취재하고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7년. 한 작가는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일본 정부가 철저히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 작가는 오로지 ‘피해자의 증언’에 의지해 소설을 완성해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피해자들의 기억도 정확하지 않았다. 한 작가는 지금부터라도 일제강점기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다만 이 분노를 분출할 길을 여는데 우리가 소홀했을 뿐”이라고 봤다. 또 “건국 이후 흔히 말하는 ‘친일 정부’가 이어졌다. 기득권 세력은 부단히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과거사 기록 작업이 더 폭넓게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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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수많은 희생자는 왜 죽어야 했는가”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의 전문분야는 일본 역사교과서다. 한 박사는 지난 2010년부터 일본 역사교과서가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를 사실대로 기술하고 있는지 꼼꼼히 ‘모니터링’ 해왔다. 한 박사는 일본의 각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 왜곡된 부분의 수정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한국 교과서는 일제강점기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술한다. 또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착취당한 일에 대해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연행’이라고 말한다. 이 단어에는 전쟁 속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범죄, 또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한 박사는 “우리 민족은 식민지 체제 하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일본 국민이 해야 할 일을 강요당했다”면서 “그런데 현재 역사 교과서는 희생자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기술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박사는 “강제동원과 관련해 교과서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강제동원의 실태를 정확히 알리고, 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짚어주는 것이 교과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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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바라는 목소리는 일본에도 있었다. 지난 60년대부터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과거를 반성하며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자료 수집에 나섰다.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네트워크) 공동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재일사학자 고(故) 박경식 선생의 강연을 들으며 문제의식을 키웠다. 이후 일본 전역을 돌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05년에는 네트워크 공동 대표를 맡는 등 주축이 됐다. 네트워크는 일본 내 흩어져 있던 400여 명의 강제동원 연구자와 시민운동가들을 모은 단체다. 히다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조사, 비밀 자료 공개 요구, 미불 임금 처리 등을 위해 힘썼다. 네트워크가 수집한 자료는 한국 위원회로 보내져 진상규명을 위한 토대가 됐다. 최근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히다 대표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위원회를 설립했던 것처럼 새로운 정부에서도 다시금 노력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진용, 이소연, 심유철, 박효상, 박태현 기자 [email protected]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email protected]

영상=윤기만 [email protected]

<2017-10-05>쿠키뉴스

☞기사원문: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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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次成三問先生絶命詩韻

 

僅僅新生國(근근신생국)

何爲殆半(하위태반사)

北狂南腐爛(북광남부란)

難復本來(난복본래가)

 

삼가 成三問 선생의 絶命詩에 次韻하다

 

겨우 독립해 새로 생긴 나라인데

어찌하여 거의 반쯤 기울게 됐나

北은 미쳤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 쉽지 않으리라.

 

<時調로 改譯>

 

겨우 생긴 나라인데 왜 반쯤 기울었나

北은 미쳐 버렸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成三問:  조선

세종 때의 文臣(1418~1456). 字는 근보(謹甫). 號는 매죽헌(梅竹軒). 집현전 학사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元年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해  처형됨. 저서에 ≪성근보집(成謹甫集)≫이 있다 *僅僅:

겨우  *新生國: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  독립한  국가  *腐爛:  썩어서  문드러짐.

 

<2019.4.4, 이우식 지음>

목, 2019/04/0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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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유족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가 전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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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주년 4.3 추념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든 4.3유족 사연의 주인공인 김연옥 할머니(78)가 자신의 기구했던 4.3 경험담을 추념식장에서 발표한 손녀 정향신 씨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1948년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는데,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요.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이름은 김·연·옥.입니다.”

일순간 추념식장은 어느 유족의 사연으로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제주에 사는 어느 여대생이 들려준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71주년 추념식장을 찾은 모든 이들의 눈과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유족이든 아니든, 제주도민이든 아니든, 귀가 열려 있고 심장이 뛰고 있기에 흘린 눈물이다.

제주 안덕면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살이던 아이는 이제 일흔 여덟.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손녀 정향신씨가 전한 ‘4.3 광풍’에 의한 김연옥 할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통한의 세월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었고,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도 잃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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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내 대학에 재학 중인 정향신씨가 자신의 할머니가 겪었던 4.3당시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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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이야기를 손녀가 4.3추념식 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자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무엇보다 할머니가 생선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전할 때는 자신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남은 4.3희생자 유족들이 4.3 트라우마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손녀가 대신한 김연옥 할머니의 말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살.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향신씨는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연단 맞은편 객석에서 손녀의 이야기 내내 그치지 않는 눈물이 앞을 가리던 김연옥 할머니는 통곡의 울음과 함께 허공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평화대공원을 내려다보던 하늘도 함께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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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희생자 유족들이 김옥연 할머니의 사연을 듣던 중 곳곳에서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2019-04-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4.3 추념식장에서 모두를 통곡하게 만든 대학생 

※관련기사 

☞경향신문: “4.3때 바다에 던져진 부모님, 파도칠때마다 ‘연옥아’부르는 것 같아” 

☞뉴스제주: 제주4.3 71년,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 달래야 

☞파이낸셜뉴스: 제주4.3 추념식 봉행 “특별법 개정…4.3 완전 해결 첫 걸음“ 

☞아시아투데이: 제주4.3추념식 1만여명 참석한 가운데 거행

목, 2019/04/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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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스페셜 투어

『임정로드 4000km』 김종훈 기자와 함께 떠나는 《서울 임정로드 탐방》

“항일과 친일이 공존하는 공간: 현충원에 잠든 독립투사와 친일파를 찾아서”

서울 동작동에 자리 잡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신규식·박은식·홍진 등 임시정부 요인들 뿐만 아니라 신돌석·이회영·김상옥·우덕순 등 한국 독립운동사를 수놓은 영웅들이 잠든 신성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들 곁에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현충원은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간도특설대 출신 ‘김백일’·친일파 출신 초대 육군참모총장 ‘이응준’ 등 무려 63명의 친일파들이 잠든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살아서는 결코 공존할 수 없었던 항일애국지사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죽어서 동거하는 어이 없는 현장을 돌아보며, 우리 역사의 비극을 공부하는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투어는 『임정로드 4000km』의 저자인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가 함께 합니다.

◎ 일시: 2019년 4월 13일 (토) 오후 2시 ~ 4시 30분

◎ 장소: 국립서울현충원 ‘만남의 집'(지하철 4·9호선 동작역)

◎ 코스: 현충원 만남의집(집결장소)-장군1묘역-박정희대통령묘역-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장군2묘역-임시정부요인묘역-충열대-애국지사묘역

◎ 인원: 선착순 30명 (미취학 아동은 참여 불가·초등학생 자녀는 성인 가족 동반 하에 참여 가능)

◎ 참가비: 1만 원 (1인당)

◎ 준비물: 활동하기 편한 복장 + 각자 먹을 생수와 간식

◎ 신청기간: 3월 29일(금) ~ 4월 10일(수)

◎ 신청하기: https://www.onoffmix.com/event/173789

 

※ 『임정로드 4000km』 지참시 현장에서 저자가 직접 싸인을 해드립니다.

※ 구역마다 즉석 ‘퀴즈 이벤트’가 있습니다. 필로소픽에서 준비한 특별 굿즈를 상품으로 증정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투어에 함께 하시길 권합니다.

목, 2019/04/0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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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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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목, 2019/04/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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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철·후지코시·미쓰비시·코크스 4곳
피해자 “인간에 자유 있어도 한계 있어”
민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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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운데)와 김용화 할아버지(오른쪽) 등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추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 기자들 앞에 선 김한수(101) 할아버지는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민족문제연구소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 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피해 당사자인 김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4명과 사망 피해자 6명의 유족 27명은 일본 기업 일본제철(신일철주금)·후지코시·미쓰비시중공업·코크스공업 4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소장을 접수했다. 손해배상 금액은 개인당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할아버지는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사람이 아닌 짐승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며 “당시 같은 식당에서 일본 사람은 하얀 쌀밥을 먹고, 한국 사람은 기름짜고 남은 것에 쌀을 넣어 먹는데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이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연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과를 받고 손을 싹싹 비는 모습을 봐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면서 “그들이 생각할 때 한국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인간에 자유가 있다고 해도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 1944년 8월께 목재를 실어 나른다는 설명을 듣고 회사 트럭을 타고 갔다가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하고 청년 200여명과 함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김 할아버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압적인 규율을 받으며 생활했고, 작업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병가를 받지 못해 다음날에도 출근해 일했다.

이후 1945년 8월9일에 공장에서 작업 중에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피폭을 당했지만 목숨을 건지고, 같은해 10월20일께 동료들과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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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옥성구 기자 = 일본강점기 시절 강제징용 피해자 김한수 할아버지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일제강제동원 사건 추가소송 제기’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 등은 이날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04.04. [email protected]

이날 함께 소송을 제기한 김용화(90) 할아버지도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를 보호해줘야 하는데 일본은 악용해서 노예화했다”며 “일본은 마땅히 보상해야 하고, 보상 이전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용화 할아버지도 일본제철 야하타제철소에서 강제징용을 당했다.

민변 측은 “대법원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다시금 확인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시대 이 땅에서 자행됐던 강제동원은 인권의 관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강제동원에 책임 있는 어떤 주체도 사과나 배상에 나서지 않는 현실은 여전하고, 가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 후에도 손해배상채무의 임의 변제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 다수는 피해 회복을 받지 못한 채 눈감고, 기록되지 못한 역사도 사라지고 있어 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해 소 제기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각 1억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며 강제징용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1965년 한·일 정부 간 청구권협정이 있었더라도 개인별 위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설범식)는 이날 고(故) 홍모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14명과 그 가족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을 열었다.

홍씨 등의 대리인은 “대법원 판결도 나오고 해서 가급적 포괄적 화해를 하려고 한다”며 조정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미쓰비시 측 대리인은 “일본에서 부정적 답변이 왔다”고 조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판부는 “더 이상 사실관계나 법리 문제에 주장할 것이 없으면 사건을 종결하겠다”며 “미쓰비시 측이 조정 의사가 있으면 중간에 조정기일을 잡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선고는 오는 6월27일 진행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2019-04-04> 뉴시스 

☞기사원문: 강제징용 피해자들 추가 손배소…”日, 짐승 취급했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개·돼지 대우도 못 받고 살았다”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 상대 추가 소송 제기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기업들 상대 또 소송 

☞뉴스1: 일제징용 피해자들 日 전범기업에 추가 소송…”짐승처럼 부려” 

☞SBS: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전범 기업들 상대 또 소송

목, 2019/04/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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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장님

박교수님

희빌  몬네가

지송

달달앤공부의일부판사들

구형과선고

그리고   그판사들의  그금사

그비노사들의  전옥서

 

금, 2019/04/05-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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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검사는 나에게

징역 파월을 구형해따.

상해와전과를  가지고

그변호사는 국선….?

십팔마는이고  일당하고 치로비까지 요구하는 하물차 사장…

 

형동친  오시  우찌사노?

트키나 터기나

친구

ㄱㅗ마븐   ..그리고ㄱ…미아넌 칭구고향동창

 

시달린 실외기의 장ㄴ녀  칠월삼십일일

경찰의 이십구  삼십일

이사밀 시달린 마산 봉암동 옥주원룸의  그사람은

호솔  한다.

저녹서에서  이백  사시빌은  시마다.

금, 2019/04/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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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님

방국장님

!!

보고싶다.

형동상

진단삼주의

원인과과정은  엄는가?

병원과검사판사변호사

그리고 좨인들

좨와블?

죄와벌!

방국장님  기소장하고  공소장하고  머가  다르요?

ㅆㅣ씨티브이  증거신청

진단삼주에  대한

나의 별론  안닌  변론

 

금, 2019/04/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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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비야

비야

바기니

나무와숲

공기

군경은 대피만  할거신가?

 

 

금, 2019/04/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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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인가

인간과숲….애리

자연과인류….소매

산소와무산소들

나도지금시순간분터  냉장고세탁기 자꾸돌리야 대거따….?

금, 2019/04/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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業報(업보)

 

歿後成何物(몰후성하물)

祈求化犬豚(기구화견돈)

今生貪食甚(금생탐식심)

後世我當呑(후세아당탄)

 

업보

 

죽어 버린 이후에는 무엇이 될까

개나 돼지로 化하길 빌고 바라네

이승에서 탐내 먹는 일 심했으니

다음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時調로 改譯>

 

죽어 무엇이 될까 개돼지 되길 바라네

저들의 肉 탐식함, 이승에서 심했으니

다음에 올 세상에선 내가 먹혀야 하리.

 

*歿後: 죽고 난 이후. 사후(死後). 신후(身後) *何物: 무슨 물건 *祈求: 원하는 바가

실현되도록 빌고 바람 *犬豚: 개돼지 *今生: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이승 *貪食: 음식

을 탐냄. 탐내어 먹음  *後世: 다음에 오는  세상. 또는  다음  세대 사람들.  내엽(來葉).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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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日(춘일)

 

川邊春柳綠(천변춘류록)

聚散稚魚遊(취산치어유)

野老孤徐步(야로고서보)

吟哦上古樓(음아상고루)

 

봄날에

 

냇물 주변의 봄철 버들 푸릇푸릇

모였다 또 흩어지며 노는 稚魚들

시골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時調로 改譯>

 

냇가 春柳 푸릇푸릇 노는 어린 물고기들

시골에 사는 늙은이 홀로 천천히 걷다가

저으기 詩를 읊조리며 옛 누각에 오른다.

 

*春日: 봄철의 날. 또는 그날의 날씨 *川邊: 냇물의 주변 *春柳: 봄버들 *聚散: 모임

흩어짐 *稚魚: 알에서 얼마 되는 어린 물고기 *野老: 한적한 시골에 사는

늙은이  *徐步: 천천히  걷는  걸음  *吟哦: 음시(吟詩).  吟詠.  시가(詩歌) 따위를 읊음.

 

<2019.4.4, 이우식 지음>

금, 2019/04/0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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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주최
대규모 상황극으로 100년 전 만세함성 되살려

800명 청소년·시민, 행사 주인공으로 적극 참여
새로운 100년 위해 ‘친일 청산’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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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일제는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행주산성에서, 마을에서, 배 위에서…. 100년 전 행주나루터에서 울려 퍼졌던 고양땅 선조들의 외침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고양파주지부(지부장 백창환)가 주최한 3·1혁명 100주년 기념 행주나루터 선상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지난달 30일 고양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열렸다.

이재준 고양시장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행진에 앞장섰고,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친일파 청산을 외쳤다.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은 만세를 선창했다. 그러나 이날의 재현행사를 성대한 기억과 체험의 장으로 완성시킨 진정한 주인공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800여 명 시민과 청소년들이었다. 100년 전 기미년 3월, 민족대표와 지식인·학생들이 앞장서 시작한 독립만세의 외침이 노동자, 농민들에 의해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와 마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 것을 연상케 했다.

고양시와 고양시3·1혁명100주년추진위원회, 민족얼지킴이, 고양시민사회연대회의, 행주어촌계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특히 고양시 소재 10여 개 학교 550여 명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고양의 자랑스런 독립운동 역사를 되새겼다.

정치권에서는 이재준 고양시장, 이규열 고양시의회 부의장과 김해련·김미수·정봉식 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이 참석했고, 이이화 역사학자와 김재득 농협중앙회 고양시지부장을 비롯해 많은 지역인사들이 참석해 고양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기림행사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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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준 시장은 “고양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밭두레보존회가 길놀이 농악으로 문을 열었고, 이어 24반무예 전수자들이 친일 청산을 주제로 한 호쾌한 전통무예 시연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무예인들의 칼과 활이 일제와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 친일매국노를 응징하는 대목에서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이어 열린 개회식에서 이재준 시장은 “역사는 기억할 때만 살아난다. 100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서 선상만세를 불렀던 역사를 살아 흐르게 하자”고 말했다. 이어 “친일자본가를 비롯해 친일 세력들이 여전히 죄과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청소년들이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써 달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열린 수많은 행사에 참석했지만, 고양 행주나루터에서 열리는 오늘의 행사가 가장 멋지고 감동적”이라고 소감을 밝힌 후 “고양시를 넘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키워내자”고 제안했다. 임 소장은 여전히 남은 과제를 상기시키며 “친일파 청산!”을 기운차게 선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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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잔재 청산”을 힘차게 외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다음으로 파주 수억고등학교 ‘민족얼지킴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배세준군과 이아람양이 ‘쉽고 바르게 읽는 3·1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33명의 청소년들이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들의 얼굴을 받쳐 들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호명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3·1절 노래를 합창하고, 백창환 지부장이 만세삼창을 선창하며 개회식이 마무리됐다.

한강 수로의 관문이자 개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던 행주지역은 3·1운동 당시 고양땅에서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이 수차례 반복해서 일어난 곳이다. 특히 1919년 3월 1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시위에서는 총칼을 앞세운 일경의 진압에 쫓긴 행주어민들과 주민들이 행주나루터에서 나룻배와 고기잡이배에 올라 타 전국 유일의 선상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는 고양에서 항일 운동이 치열하고 다양하게 펼쳐졌음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날의 뜨거웠던 외침은 개막식 후 이어진 재현행사에서 생생하게 표현됐다. 상황극을 연출한 젊은 배우들은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 외침의 소문을 들은 고양의 민중들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자발적으로 통문을 돌리고, 시위 날짜를 약속해 대대적 만세운동을 일으킨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또한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제의 잔인함과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저항의 함성을 외친 선조들의 의기를 고스란히 표현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농민과 학생들이 한 몸이 되는 모습은 고양은 물론,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펼쳐졌던 민중 중심 만세운동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여기에 행주나루에서만 발견된 선상만세 장면이 상세히 보태졌다.

재현행사의 감동을 전하기 위해 주최측은 전문배우들의 연기와 의상·소품 등을 활용해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커다란 말이 등장하고 총탄 소리에 만세를 부르던 학생들이 쓰러지는 장면은 한 편의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손수 치마저고리, 학생교복 등을 차려입고 행사장을 찾은 청소년들이 재현행사의 적극적 주인공이 돼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만세를 따라 부르며 상황극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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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현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행사 준비를 총괄한 백창환 지부장은 “신임 지부장 취임 후부터 행주나루 선상만세 재현행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면서 “100인 추진위원회와 33인 어린이 합창단, 남과 북 학생들의 독립선언서 낭독, 민족대표 33인 퍼포먼스, 그리고 출연진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 등이 올해 새로 선보인 순서”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오후에 행사를 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4월 13일 친일·항일 음악회를 개최하고, 고양교육청과 협력해 ‘학교 내 친일 잔재 청산 TF’도 구성할 예정이다. 백 지부장은 “학교 교가, 석물 등의 친일잔재 조사를 위해 회원들과 발로 뛸 일이 많아질 것”이라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다.


■ 사진으로 보는 3.1혁명 행주나루터 선상만세 재현행사
 (사진제공=김정호 독자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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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선조들의 뜨거운 외침,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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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밭두레패의 길놀이 농악공연. 3.1운동과 같이 100년의 역사를 지닌 진밭두레패는 농악대 깃발 끝에 태극기를 꽂고 공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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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다양한 모양의 태극기와 독립운동기가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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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무예 수련자들이 한민족을 침탈한 일제의 만행을 응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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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얼지킴이’ 동아리 배세준군과 이아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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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선언서가 낭독되는 동안 33명의 청소년들이 민족대표의 얼굴을 들고 입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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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 김미수.김해련 고양시의원, 김경희 경기도의원, 이규열 시의회부의장, 이재준 고양시장, 백창환 민문연 고양파주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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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행사에선 역사어린이합창단이 독립군가와 3ㆍ1절 노래를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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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와 대한독립기를 앞세운 만세행렬이 행주나루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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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비폭력 평화시위를 총칼을 앞세워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재현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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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주나루터 빨래터 강물 위에 마련한 행사용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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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종 기자 [email protected]

<2019-04-02> 고양신문 

☞기사원문: 고양의 청소년·시민들이 재현한 100년 전 행주나루터 만세 외침

※관련기사

☞경기인터넷신문 :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경기&뉴스: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내외통신: 고양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주 선상에서 외친 ‘대한독립만세‘

☞민족문제연구소:[화보] 선상만세시위 재현 (3.30)

※관련영상

금, 2019/04/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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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燕子(대연자)

 

鄕村多燕子(향촌다연자)

何去遂無踪(하거수무종)

忽見空檐下(홀견공첨하)

深憂半廢農(심우반폐농)

 

제비를 기다리며

 

시골 마을에 제비가 참 많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마침내 자취 없네

문득 텅 빈 처마를 바라다보면서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하게 되네.

 

<時調로 改譯>

 

시골에 참 많았는데 마침내 자취 없네

이제는 텅 빈 처마 문득 바라다보면서

오호라! 반쯤 廢農됨 깊이 근심한다네.

 

*燕子: 제비 *鄕村: 시골 마을. 향리(鄕里) *無踪: 행방을 모름. 종적(蹤跡)이 없음

*檐下:  처마.  처마    *深憂:  깊이  근심함. 또는 그런 근심 *廢農: 농사를 그만둠. 

 

<2019.4.6, 이우식 지음>

토, 2019/04/0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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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次李塏先生善竹橋韻

 

擧事遂成(거사수성공)

誰能測意(수능측의중)

今人雖拙妄(금인수졸망)

不忘六臣(불망육신충)

 

삼가 李塏 선생의 ‘善竹橋’란 詩에 次韻하다

 

擧事가 마침내 보람 없게 됐으니

뉘 능히 그 意中 헤아리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지만

여섯 신하의 충성 잊지 못합니다.

 

<時調로 改譯>

 

擧事가 空이 되니 意中 뉘 알겠습니까

지금 세상 사람 비록 拙妄하다 하지만

死六臣 그 충성일랑 잊을 수 없습니다.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李塏: 조선 前期

  文臣(1417~1456).  字는  청보(淸甫)ㆍ백고(伯高).  號는  백옥헌(白玉軒).  直提學

지냈으며,  詩文이  청절(淸節)하고  글씨를    썼다.  死六臣의    사람으로, 世祖  2년

(1456)에  端宗의 復位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善竹橋: 경기도  開城  있는

돌다리.  高麗  말기의  충신  鄭夢周가 李芳遠이 보낸 趙英珪 등에게 철퇴를 맞고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今人: 지금 세상의  사람 *拙妄: 옹졸하고 孱妄함 *不忘: 잊지 않음.

 

<2019.4.7, 이우식 지음>

일, 2019/04/07-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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