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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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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익명 (미확인) | 목, 2017/10/05-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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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938년 제국주의 실현을 꿈꾸던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따른 국민 총동원령을 제정했다.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여파가 미쳤다. 일본은 모집·관 알선·징용 등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조선인을 강제 동원했다. 국내를 비롯해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로 800만명이 끌려갔다. 이들은 원치 않는 총을 들어야 했고,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이중 최소 60만명이상은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국가는 이들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79년의 세월이 흘렀다. 역사는 흐려졌다. 교과서는 단 한 문단으로 피해자의 삶을 축약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 건립은 정부의 불허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역시 지지부진하다. 백발이 성성한 피해자들은 지금도 지팡이를 짚고 국회와 법원을 오간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지난 4월부터 강제 동원의 역사와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취재를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피해자와 유가족을 찾았다. 일본을 방문, 비극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쿠키뉴스 기획취재팀은 94세의 피해자를 대신해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그의 간절한 당부를 독자들께 전한다.

※관련기사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⑯ [단독] ‘틀린 표현 버젓이’ 역사교과서…“일본 더 진전하기도”(2017/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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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⑭ [단독] 빛 좋은 개살구?…총체적 난국 ‘강제동원역사관’ (2017/09/26)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⑬ [단독] 혈세 522억 어떻게 흘러갔나…수상한 국립강제동원역사관 (2017/09/21)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⑫ [단독]오류투성이 ‘피해자 명부’…창씨개명 알아야 확인 가능? (2017/09/19)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⑪ “한국인은 열람 못해”…여전히 찾지 못한 이름들 (2017/09/14)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⑩ 16년간 연락 없는 외교부…”우리가 귀찮은 존재인가” (2017/09/12)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⑨ “화장실 따라와 늦게 나오면 매질” 근로정신대 끌려간 13살 소녀 (2017/09/04)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⑧ 친일파비가 현충시설…정부는 ‘나 몰라라’ (2017/09/04)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⑦ “노동자상 기부한다”는데…‘안 받겠다’는 국토부 (2017/08/21)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⑥ “너무 배고파 개밥까지” 94세 피해자의 눈물 (2017/08/14)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⑤ [단독] 58년만의 부고…“곡괭이 잡은 채 생매장됐다니” (2017/08/11)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④ “내가 죽더라도 알려야 한다” (2017/08/09)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③ “개 묻듯 묻었다” 탄광노동자 기록, 누가 지켜야 하나 (2017/08/07)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② “우리마저 손 놓을 수 없어”…일본의 소도시가 우키시마호를 기억하는 법 (2017/08/03)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① 우키시마호 참사 72년, 가라앉은 귀향의 꿈 (2017/08/01)

광복 72주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정부는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피해자 위로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대신 나선 이들은 수많은 ‘익명의 조력자’였다. ‘지워진역사 강제동원’ 기획 시리즈에서 다 담지 못한 강제동원 학계, 시민단체계 인사들의 ‘고군분투기’를 소개한다.

▲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국가의 협조가 절실하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를 기록할 기관은 전무했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1995년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뛰어든 이유다. 이후 김 연구원은 일본이 수탈한 조선의 인·물적 자원의 정확한 실태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피해자와 연구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 역사문제연구소,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등에 제안해 ‘강제동원진상규명 시민연대’ 시민단체를 꾸렸다. 이뿐만 아니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특별법)’ 초안도 김 연구원의 손을 거쳤다. 김 연구원은 강제동원 연구에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동원 자료가 국가기록원에 이관되면 해당 자료 열람이 힘들어진다”면서 “우리 정부가 자료 연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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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서경 작가 제공

◀ 김서경 노동자상 조각가…예술로 희생자 넋을 위로하다

서울 용산역 앞 세워진 국내 최초의 강제동원노동자상은 김서경, 김운성 부부가 조각했다. 노동자상은 조선인 노동자가 어둡고 깊은 갱도를 나와 태양을 마주하는 순간을 형상화했다. 김 조각가는 이를 ‘불편한 눈부심’이라고 표현한다.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라는 것이다. 김씨 부부는 강제동원뿐 아니라 위안부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이들의 작품이다. 김 조각가가 노동자상 제작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이 일본 땅에 끌려갔다. 일부는 생존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유해로나마 고향 땅에 잠드신 분들도 있다”면서도 “아직 유해조차 발굴되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다. 비극적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후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조각가는 앞으로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

▶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진상규명 위해 사할린에 흘린 땀방울

비포장도로를 7시간 가까이 달린다. 러시아 사할린 각 지자체 기록보존소에 연금, 노동자 카드 등 자료의 열람을 신청한다. 허가가 떨어지면 ‘서류철’로 된 문서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본다. 대부분의 자료가 전산화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개인정보 문제로 복사가 불가능한 자료도 다수다. 일일이 손으로 베낄 수밖에 없다. 방일권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교수가 사할린에서 강제동원 관련 자료를 조사해온 방법이다. 방 교수는 지난 2005년부터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서 활동, 사할린에 잠들어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발굴에 집중해왔다. 지난해에는 사할린에 홀로 파견됐다. 그는 약 500여 명의 강제동원 피해자 명단을 발굴해냈다. 방 교수는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와 유가족 모두 절절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며 “이들의 수난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진상규명 활동을 지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의 경우, 자료가 부족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 있다”며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명부 발굴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희자 태평양전쟁희생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대표…포기할 수 없던 아버지의 ‘이름’

“이희자 보추협 대표에게 물어봐라. 이 대표는 우리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취재 도중 만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 유가족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유가족과 피해자를 보듬으며 약 30년간 강제동원 진상규명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그 또한 강제동원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 대표는 지난 89년부터 관련 기록 찾기에 나섰다.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가까스로 아버지의 사망 사실이 적힌 명부와 야스쿠니 신사 합사를 명시한 문건 등 총 6건의 자료를 찾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른 피해 유가족을 돕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에는 보추협을 결성,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찾아낸 기록을 토대로 일본 정부에 피해보상 소송을 걸었다. 또 끊임없이 국회 문을 두드려 특별법 제정을 이뤄냈다. 지난 6월 이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의 이야기를 모은 책을 출판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가 지난 45년 이후 정말 해방된 것이 맞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면서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65년 한·일 협정으로 보상받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가족의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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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완익 변호사

▶장완익 변호사,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충 해결사’

장완익 변호사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만남은 우연히 이뤄졌다. 지난 1994년, 정대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담당 변호사로 일하던 지인이 유학을 가면서 장 변호사가 대신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장 변호사는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강제동원 피해자 고충 해결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2년 동안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 업무를 진행했다. 장 변호사는 광복 이후 들어선 정권이 강제동원 진상규명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승만·박정희·노태우·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권들은 과거사 해결을 경시했다”며 “이로 인해 강제동원 역사가 국민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가 주도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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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외길 25년째 

“술맛 떨어지게 또 우키시마호 얘기냐” 전재진 우키시마진상규명협회 회장이 지인을 만나면 듣는 핀잔이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지난 1948년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을 실은 우키시마호가 부산항으로 향하던 중 폭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아직 정부는 희생자 숫자는 물론 정확한 사고 원인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전 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꾸준히 우키시마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는 당시 아시아반핵포럼에 참석해 유적지를 답사하던 중 이 비극적 사건을 알게 됐다. 전 회장은 우키시마호 생존자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모두 사비를 들여 이뤄진 일들이었다. 그는 총 82명의 생존자를 만나 증언을 일일이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에서야 ‘우키시마호사건소송자료집’ 두 권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형식적 조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 회장의 주장이다. 세월이 흘러 이 가운데 남은 생존자는 단 2명. 전 회장은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우키시마호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아직도 일본 마이즈루만 앞바다에 묻혀 있을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회장은 우키시마호를 다룬 영화 제작도 계획 중이다. 언제까지 정부가 아닌 개인이 홀로 싸워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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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역사 알아야 바로 잡는 것도 가능하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수십 년간 자료를 분석, 수집해온 ‘강제동원 전문가’다. 대학원 재학 당시 지도교수의 제의로 강제동원 문제에 첫발을 디뎠다. 지난 95년 일본에서 온 연구자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강제동원 특별법 제정을 도왔다. 지난 2005년 2월부터 지난 2015년까지 위원회 조사과장으로 10년간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노무동원 피해자의 유골 발굴과 자료 정리, 진상조사, 지원금 지급, 명부 전산화 등의 작업을 지휘했다. 특히 일본에 남아 있는 강제동원 관련 자료 입수와 유골 봉환에 힘썼다. 위원회가 종료된 후에는 강제동원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 현장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기 위한 ‘다크투어(역사교훈여행)’를 기획 중이다. 경희궁 지하터널, 인천 동일방직터 등 국내 강제동원 피해 현장은 8000여 곳이 넘는다. 인천과 부산 등 각 지역에 노동자상을 세우는 일에도 참여했다. 정 연구위원은 “강제동원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일본에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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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문재인 정부, 노동자상 건립을 전면적으로 보장하라”

최종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강제동원 노동자상을 세우는 데 힘을 보탰다. 노동자상을 세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8월 최 직무대행은 노동자상 건립 행사 참석을 위해 일본 교토시 단바망간광산을 방문하려 했다. 그러나 탐탁지 않은 이유로 일본 입국이 불허됐다. 일본 정부뿐이었을까. 한국 정부마저 노동자상 건립에 비협조적이었다. 최 직무대행이 속한 민주노총은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은 지난 4월6일부터 매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최 직무대행은 지난 6월24일 열린 ‘노동자상 건립 촉구대회’에서 “정부는 강제동원 노동자 피해 보상을 위해 주권국가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력 끝에 노동자상은 지난 8월 용산역 앞에 세워졌다. 현재 부산에서도 노동자상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시민을 상대로 지지 서명을 받고 노동자상 조성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 오는 12월28일에 노동자상을 세운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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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산 작가

한수산 작가…‘군함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다

“소설 ‘군함도’ 집필은 운명이었습니다” 지난 7월 영화 ‘군함도’가 개봉했다. 영화 이전에 소설로 먼저 군함도의 비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는 한수산 작가다. 한 작가가 소설 ‘군함도’를 취재하고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27년. 한 작가는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일본 정부가 철저히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를 은폐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 작가는 오로지 ‘피해자의 증언’에 의지해 소설을 완성해야 했다.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피해자들의 기억도 정확하지 않았다. 한 작가는 지금부터라도 일제강점기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서 “친일인명사전 모금 운동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다만 이 분노를 분출할 길을 여는데 우리가 소홀했을 뿐”이라고 봤다. 또 “건국 이후 흔히 말하는 ‘친일 정부’가 이어졌다. 기득권 세력은 부단히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과거사 기록 작업이 더 폭넓게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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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수많은 희생자는 왜 죽어야 했는가”

한혜인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소속 역사학 박사의 전문분야는 일본 역사교과서다. 한 박사는 지난 2010년부터 일본 역사교과서가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를 사실대로 기술하고 있는지 꼼꼼히 ‘모니터링’ 해왔다. 한 박사는 일본의 각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 왜곡된 부분의 수정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은 기본적으로 강제동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한국 교과서는 일제강점기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술한다. 또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착취당한 일에 대해 ‘강제동원’이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연행’이라고 말한다. 이 단어에는 전쟁 속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범죄, 또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한 박사는 “우리 민족은 식민지 체제 하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일본 국민이 해야 할 일을 강요당했다”면서 “그런데 현재 역사 교과서는 희생자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기술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 박사는 “강제동원과 관련해 교과서에서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강제동원의 실태를 정확히 알리고, 또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짚어주는 것이 교과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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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공동대표…행동하는 일본의 양심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바라는 목소리는 일본에도 있었다. 지난 60년대부터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과거를 반성하며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자료 수집에 나섰다. 히다 유이치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네트워크) 공동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강제동원 문제를 처음 공론화했던 재일사학자 고(故) 박경식 선생의 강연을 들으며 문제의식을 키웠다. 이후 일본 전역을 돌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지난 2005년에는 네트워크 공동 대표를 맡는 등 주축이 됐다. 네트워크는 일본 내 흩어져 있던 400여 명의 강제동원 연구자와 시민운동가들을 모은 단체다. 히다 대표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조사, 비밀 자료 공개 요구, 미불 임금 처리 등을 위해 힘썼다. 네트워크가 수집한 자료는 한국 위원회로 보내져 진상규명을 위한 토대가 됐다. 최근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히다 대표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해 위원회를 설립했던 것처럼 새로운 정부에서도 다시금 노력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정진용, 이소연, 심유철, 박효상, 박태현 기자 [email protected]

쿠키뉴스 기획취재팀 [email protected]

영상=윤기만 [email protected]

<2017-10-05>쿠키뉴스

☞기사원문: [지워진역사 강제동원]⑰ 어둠 속 건져올린 진실…진상규명 힘쓴 11인의 조력자

시민들의 의견

20여개교 이흥렬·김성태 등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음악인이 만든 교가 사용
충남교육청 “일선학교에 공문 보내 파악 중…조만간 발표”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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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A고등학교와 B고등학교의 교가는 각각 친일인명사전(사전)에 수록돼 있는 이흥렬과 김성태가 작곡했다.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 “반만년 역사위에 지나간 자취…”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A고등학교의 교가 중 일부다. 이 학교는 1922년 개교해 국무총리와 내무부장관, 시장, 야구 선수 등 졸업생 2만8403명을 배출했다.

“하늘과 마주선 계룡의 싱싱한 숨결…” 1955년 개교한 같은 지역 B고등학교는 현재까지 졸업생 1만4989명을 배출했다.

두 학교의 공통점은 바로 친일 음악인들이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고등학교와 B고등학교의 교가는 각각 친일인명사전(사전)에 수록돼 있는 이흥렬과 김성태가 작곡했다.

A와 B고등학교 학생들은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음악인들이 만든 교가를 불러왔던 셈이다.

이처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일제 잔재가 여전하다.

앞서 지난 14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충남지부(전교조)와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연구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광주 지역 상당수 학교가 현제명, 이홍렬, 김동진, 김성태 등 친일 음악인 4명이 만든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며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만든 교가를 충남지역 학교도 상당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청이 친일 잔대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굿모닝충청>이 교육청과 전교조, 연구소를 통해 취재한 결과, 도내에서 20여개 학교에서 친일 음악인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일 음악인은 강연이나 방송활동, 국민개창운동 등 분야에서 창작과 단체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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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 음악인은 강연이나 방송활동, 국민개창운동 등 분야에서 창작과 단체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를 말한다. (자료사진, 왼쪽부터 김성태, 이흥렬)

김성태는 1941년 조선총독부가 내선일체와 농업보국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영화 ‘농업보국대’에서 작곡과 지휘를 담당했다.

이때 그가 지휘한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은 ‘태평양행진곡’, ‘미영 격멸가’ 등 군국주의 일본을 찬양하는 곡들을 불렀다.

이후 1943년 경성음악연구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군국의 어머니’ 등을 작곡했고, ‘우리들은 제국군인’ 등을 지휘하며 조선청년의 참전을 선동했다.

또 이흥렬은 ‘봄이 오면’, ‘자장가’ 등 노래 400여 곡을 만든 작곡가다.

그는 1940년대 국민개창운동과 경성후생악단, 평양대화악단 등에 참여했다. 또한 반국가적 음악을 구축하고 일본 음악을 수립하는 활동에 앞장선 행적이 드러나 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전교조 관계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를 새롭게 세우기 위해 문제를 제기했다”며 “교육청이 친일 음악인들이 만든 교가를 하루 빨리 파악해 조치에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일선학교에 공문을 보내 교가의 작사‧작곡가 명단을 받고 있다”며 “조만간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헀다.

<2019-02-18> 굿모닝충청 

☞기사원문: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 충남에 ‘수두룩’

※관련기사 

☞대전MBC: [리포트]학교에 남은 ‘일제 잔재’

월, 2019/02/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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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민족문제연구소 비리 부정 관련자와 책임자는 사과하고 거취를 결정하라

–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 3차 월례 정기집회, 2019. 2. 16

작년 8월 24일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이 출범한지 이제 반년가량 지났다. 오늘 집회가 3번째 월례 정기집회다. 그동안 우리 민바행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비리와 관련해 사실에 입각해 문제제기를 해왔고,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은 4일간 실태조사를 실시했으며 그 결과 연구소의 비리와 부정은 사실로 드러났다.

교육청은 작년 12월 14일 ‘미승인 정관 사용(2중 정관 사용)’에 대해서는 ‘엄중 경고’, ‘기부금 부적정 사용’에 대해서는 ‘기관 경고’ 그리고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 5인 전원과 감사 2인 전원에게 경고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는 우리 민바행의 문제제기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것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연구소의 비리와 부정은 위에 지적된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내용이 더 나올지 알 수 없다.

기부금 부적정 사용의 내용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고 특히 ‘2중 정관’ 사안은 겉으로 보여 지는 것과는 사뭇 다른, 집행부에서 전국의 1만 3천 회원을 속여온 사안으로 이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생명인 민족문제연구소로서는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집행부를 믿고 어렵게 회비를 내오며 연구소를 지탱해온 전국의 회원들과 국민의 신망을 저버리는 배신행위가 아닐 수 없다. 연구소가 지난 2000년 이후 18년만에 다시 겪는 치욕이었다.

그럼에도 집행부와 이사회는 반성이 없다. 감독관청의 처분을 받았으면 적어도 회원들에게 공개하고 사과문이라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아직까지 쉬쉬하고 있다.

지난 200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고발조처를 당한 사실을 일체 함구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당시엔 이사 전원이 사퇴를 했다. 그나마 그때 이사들은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이사와 감사들은 전원 경고라는 치욕스러운 처분을 받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뭉개고 있다. 아는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비위를 서로 공유한 실무자들과 한배를 탔으니 같이 조용히 넘어가자는 것인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문제제기한 민바행에 대한 분풀이인가, 아니면 특정인에 대한 보복인가? 연구소 명의로 발표됐다는 소위 그 ‘민족문제연구소 음해세력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입장문’이라는 글은 남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수준이 떨어져, 절대 민족문제연구소 명의로 나와서는 안 될 졸문이었다.

그 졸문 발표는 연구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집행부 핵심 상근자들과 그들을 지휘해야 할 이사회의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 지를 세상에 여실히 드러낸 일대 사건으로 남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집행부와 이사회가 지금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스스로를, 그리고 더 나아가 민족문제연구소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모르는 듯하다. 참 딱한 일이다. 우리 민바행이 대응하기가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다.

지금 정말로 우리 민바행이 민족문제연구소를 “와해”시키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 집행부의 안일함과 적반하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연구소의 기제는 무엇인가? 주인인 회원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소 공든 탑을 주인없이 저들이 쌓아올렸다고 착각하는 오만방자함과 기득권 유지에 대한 욕심 그리고 그것들을 유지시키는 패거리 정신이리라.

그리고 연구소에 감시 감독 통제 기능이 작동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두 감사는 집행부와 밀착되어 15년째, 11년째 연임하고 있다. 최수전 업무감사, 임명호 회계감사의 전 감사는 임기 2년 한번 마치고 잘렸다.

2000년 초반 당시에는 집행부가 분기에 한번 운영위원회의 감사를 받았는데, 세무사로서 집행부 회계 감사를 깐깐하게 하다가 2년만에 잘린 것이었다.

이사(회)는 집행부를 통제하지 못 한다. 거기에 연구소 주인인 회원들의 대변 기구인 운영위원회는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민우 운영위원장부터 거의 집행부 요원 수준이다. 이민우 위원장부터가 과거 사무국 출신으로, 지부장으로 진출해서 운영위원장이 되었으니 예상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연구소 집행부 업무를 제대로 독려해 썩은 부분이 있다면 도려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들이 집행부의 비리를 옹호하는 호위무사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다보니 연구소는 핵심 상근자의 놀이터가 됐다.

거기에 이들 핵심 상근자들을 제대로 통제해야 할 소장은 2002년에 부소장으로 들어와 2003년부터 지금까지 17년을 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다. 거의 종신직이다. 정관에도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장은 상근자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상근자는 소장의 연임을 지원한다. 공생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임헌영 소장의 전임 소장도 2년만에 물러났다.

지금의 소장과 핵심 상근자들과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청산하고 엄정한 관계를 정립해 놓지 않는다면 앞으로 연구소 비리는 끊임없이 계속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경악스러운 비리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인적 청산이 절실한 이유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은 누구인가? 케케묵은 질문인 것 같지만 지금 연구소에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다.  회원인가? 상근자인가? 아니면 이사진인가?

상근자는 이미 회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중하지도 않는다. “’회원 10명’이라는 문구 하나에 그들의 인식과 태도 등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이미 연구소는 ‘이사 5인과 상근자 5인’으로 구성된 “회원 10명”이 주인격으로, 이사진과 핵심 상근자들이 연구소의 공동주인인 셈이다.

설사 편의상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의 “회원(사원, 또는 법인 회원)을 10명”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치더라도 어찌 진짜 회원은 한명도 없이 이사와 상근자가 그 자리를 다 차지해야 하는가? 그것도 십수년동안을 운영위원장에게도, 전임 위원장에게도, 회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어느 회원이 그에 동의했는가?

그래서 그런가 회원들의 대표라고 하는 운영위원회는 꿀먹은 벙어리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이 회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운영위원회가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의 민족문제연구소의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길은 무엇이고,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타개하는 길은 인적 청산이고, 그 힘은 바로 회원에게서 나온다.

지금 연구소는 ‘회원 주권’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이제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상근자 주권’도 아니고, ‘이사 주권’도 아닌, ‘회원 주권’의 이정표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연구소에 반드시 ‘회원 소환제’를 확립해야 한다.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지난 십수년 동안 전국의 회원들을 속이며 “회원 10명”으로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를 지금 이 지경으로 만든 비리의 당사자들에 대한 처리다.

십수년 “회원 10명” 안에 있으면서 실무를 집행해 온 당시 사무총장과 사무국장, 그리고 역시 그 “회원 10명” 안에 있었고, 18년 동안 연구소 운영의 책임이 있는 소장은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길만이 새로운 민족문제연구소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비리 당사자들의 반성과 사과, 그리고 거취 결단을 촉구한다.

2019. 2. 16
민족문제연구소바로세우기시민행동(민바행)

월, 2019/02/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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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독립운동 할 수 있게 도운 여성들 공적도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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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노준희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고 한 달 만인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올해 2019년은 자주독립의 근간과 실체인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특별한 해다. 이에 정부와 독립기념관,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가 있는 충남 천안시는 기념일을 치르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역사적인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취임 3년차를 맞는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을 만났다. 이준식 관장은 영화 <암살>과 육군 창작뮤지컬 <신흥무관학교>로 널리 알려진 독립군 양성기지 지도자이자 한국독립군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다. 또한, 임시정부 간부 출신 여성독립군인 지복영 여사는 지청천 장군의 차녀이자 이 관장의 어머니다.

대를 이은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이준식 관장 역시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는 등 역사를 바로잡는 활동에 몰두했다. 지난 11일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지금, 이 관장에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3.1운동은 여성과 청소년이 주체로 등장한 계기

–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독립기념관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7개 전시관 중 3개 전시관에서 3월 1일에 맞춰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원본자료를 공개하는 특별전시를 한 달간 개최한다. 독립선언서, 원본 태극기 등 평소 훼손을 우려해 전시하지 않았던 귀중한 자료들이다.

2월 28일엔 겨레의집 앞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전야제’를 크게 열 계획이다. 겨레의집 2층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체험전시관을 별도 오픈한다. 자체적으로는 임시정부 수립 내용까지 담은 해외 순회전시를 LA, 뉴욕, 상하이, 도쿄에서 열 예정이다.

4월엔 임시정부기념사업으로 육군본부, 충남도와 음악회를 열 예정이며 현재 행사를 협의 중이다.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인 4월 11일엔 임시정부 요인 21명을 어진 방식으로 그린 초상화를 특별 전시할 계획이다. 8월엔 국내 최대 규모 무궁화테마공원도 연다.”

– 3. 1운동을 역사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으로 나눠서 설명한다면?
“역사적 관점에선 거족적, 평화지향적 운동이었다.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3.1운동이야말로 한국민주주의의 기원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뒤이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대한민국 기원은 1919년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해석은 3.1운동을 계기로 여성이 새로운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성과 청소년이 사회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 3.1운동이었다. 3.1운동 이후 여성과 청소년의 사회 진출도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 올해 가장 선행돼야 할 연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3.1운동 사망자 수가 6000~8000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이름이 확인된 사람은 극히 일부다. 독립기념관은 이런 기록을 빨리 찾아 명단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우리 임시정부는 국민 대다수가 인정할 뿐만 아니라, 중국 쑨원 정부와 2차대전 당시 프랑스와 폴란드 등 다른 나라들이 승인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도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인식이 있어 이를 불식시키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한다.”

– 외조부 지청천 장군에 대한 기억은?
“내가 태어난 다음 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직접적인 기억은 없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만주 등을 전전하며 독립운동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외할아버지가 더 유명하시고 공적으로 더 큰 일을 하셨지만, 외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도와 가족생계를 책임졌다. 자식들이 성장한 후에는 독립운동에도 직접 참여한 외할머니가 더 인상 깊다. ‘윤용자 여사 외손주’라는 사실이 더 자랑스럽다.”

“기록 위주로 선정하다보니 여성 독립운동가 비율 3%… 관점 자체를 바꿔야”

– “해외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인가.
“자신을 돕는 아내가 없었으면 남편이 밖에 나가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독립운동가를 도운 아내의 활동도 넓은 의미의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로 망명한 독립운동가 아내들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

지난해 독립운동가를 뒷바라지한 여성들이 처음으로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부인과 석주 이상용 선생의 손자며느리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다행히 회고록을 남겨 기록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비율이 3%다. 여성이 남성보다 이름을 남기는 경우가 적어 기록상으로는 남성이 훨씬 많다. 기록 위주로 독립유공자를 선정하면 남성이 많아진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독립운동을 도운 활동 등 독립운동 성격이 포함된 건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여성 포상이 늘고 있으나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 유관순 서훈을 더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유관순 열사의 훈격만 조정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 시급한 게 있다. 임시정부 수반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훈장을 수여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런 분이 3등급 훈장을 받기도 했다. 천안 출신 석오 이동녕 선생은 임시정부의 살아 있는 역사다. 임시정부 주석을 3번이나 지냈는데도 2등급 훈격이다. 이런 분들의 훈격을 조정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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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기념관 전경 독립기념관 전경이다. 사진 가운데 우뚝 솟은 겨레의 탑이 보이고 뒤쪽에 겨레의 집이 보인다.ⓒ 독립기념관

“이름 없이 순국한 무명용사 기리는 기념탑 건립해야”

– 독립운동사에서 무장투쟁한 독립군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무장투쟁 역사는 60년대에 연구가 활발했다. 그런데 무장투쟁에 참여한 무명독립군을 기리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일을 부각하는 데 실패한 거 같다.

무장투쟁 지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름 없이 헌신한 무장독립군이 없었으면 지도자가 빛날 수 있었을까. 직접 총 들고 일본과 맞서 싸운 독립군 무명 독립용사를 기억하고 이들을 기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무명 독립용사를 기리는 기념탑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다닌다.”

– 독립기념관도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있다던데 얼마나 발굴했나. 또 기존 독립유공자가 아닌데 포상을 받은 경우가 있던데, 이는 어떻게 하나.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유공자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하라고 했다. 국가보훈처가 독립기념관에 발굴을 위임한 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361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보훈처에 포상심사를 신청했다. 독립유공자가 아닌데 포상을 받은 경우 회수 절차가 어려워 상훈법에 따른 절차를 거쳐야 포상을 취소할 수 있다. 독립에 기여했다 하더라도 이후 변절한 사실이 확인되면 포상 취소 대상이다.”

– 천안 지역에서 근현대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단체가 생겼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립운동을 기리는 일은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이다. 해방 후 역사가 꼬이다 보니까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의 활동을 보면 역사 정립에 기여한 바가 많고 앞으로 기여할 것이 많다고 본다. 천안만 해도 근현대사의 산 현장인데 역사의 현장이 방치된 곳이 많다. 제대로 정비하고 감춰진 곳을 찾아 알리는 일을 시민이 나서서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세운동 최소 200만 참여, 당시 10명에 1명 꼴… 독립운동은 나와 직결된 문제”

– 남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 인식의 간극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 모두 동의하는 역사가 있지만, 아닌 것도 있다. 3.1운동과 관련해 김일성 주석과 안중근, 신채호 선생은 남북 모두 긍정한다. 같은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간극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통일을 내다본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역사관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까.

“모든 사람을 설득해서 같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친일인명사전을 낼 때만도 난리가 났었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된 후에는 친일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지금은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을 못 봤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 매우 힘들지만, 차곡차곡 하나하나 헤쳐나가야 한다.”

– 독립운동이 단지 지나간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은?

“독립운동의 역사가 ‘나하고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살아 있는 이야기로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만세운동 참여자로 최소 200만 명을 추산한다. 당시 한반도 거주 인구가 1600만 정도였다. 적어도 10명에 1명 꼴로 참여했다는 얘긴데, 친일파 후손이 아니라면 자기 집안 누군가는 만세 시위에 참여했을 것 아닌가.

독립운동은 나와 직결된 문제다. 단순히 100년 전에 일어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라는 사실을 생각하길 바란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우지 않았으면 지금의 대한민국과 나는 없을지도 모른다.”

– 현실을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모든 젊은이는 다 자기 세대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나도 그랬다. 모든 청년세대의 통과의례 같다. 집 없는 설움과 나라 없는 설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시야를 넓게 잡고 생각을 크게 해주길 바란다.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싸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일을 위한 투지를 불태우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내용을 일부 수정해 천안아산신문에도 게재합니다.

<2019-02-1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아내에게도 훈장을” 독립기념관장의 이유있는 주장

월, 2019/02/1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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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1993년 1월 16일에 반민족문제연구소에 가입한 사람으로서 지난 해 5월에 제명될 때까지 25년 4개월 가량 성실히 회비를 납부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본인이 회원 지위를 유지하던 기간 동안의 연구소에서의 회비 인출 내역을 알아야 할 상황이 생겨 은행에 갔으나 기록이 없어  2003년 6월부터밖에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1993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10년 가량 연구소가 본인의 계좌에서 인출해간  “회원”으로서의  “회비” (“후원 회비” 분명히 아님) 내역을 통보바랍니다.

 

2019. 2. 19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화, 2019/02/1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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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악명 높은 밀정

☞ (1.15)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 우리의 과제는?_1편

☞ (1.08) ‘내역사’ 시즌 3: 프롤로그 – 70년만에 부활하는 반민특위 친일파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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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3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9/02/1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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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02/1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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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교서 사용 확인…”친일 청산을 통해 학교문화 개선”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충북 도내 일부 학교가 친일 음악가들이 작사,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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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당시 학교 [연합뉴스 자료사진]

19일 충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친일문화 청산 등을 위해 도내 초·중·고 교가의 작사가, 작곡가를 전수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376개교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9개교 등 19개교가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노래를 교가로 사용하고 있다.

충주의 3개 고등학교의 교가는 현제명이 작곡하고, 이은상이 작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제명이 작곡만 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도 1곳이 있다.

또 김성태가 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가 9곳이 있다. 김동진과 이흥렬이 작곡한 노래도 각각 3곳에서 교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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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인명사전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제명, 김동진, 김성태, 이흥렬 등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고, 이은상은 친독재 논란을 빚고 있다.

도교육청은 전수조사를 마친 뒤 친일 음악가들이 작사, 작곡한 교가를 다른 노래로 교체해 나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충북도교육청은 2017년 ‘일본 향나무(가이스카 향나무)’를 교목(校木)으로 지정한 5개교의 교목을 소나무, 은행나무 등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3·1운동 100년을 맞아 아직도 남아있는 친일을 청산하는 등 학교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교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02-19> 연합뉴스 

☞기사원문: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교체”…충북교육청 전수조사 

※관련기사 

☞노컷뉴스: 친일 음악가 만든 교가 19개교 교체 추진 

☞한국일보: 충북교육청 “친일음악가들이 만든 교가 교체”

☞뉴시스: 충북 19개 학교서 친일 작사·작곡가 교가 사용 

☞헤럴드경제: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지금도 부른다…충북도교육청 전수조사

☞대전일보: 충북교육청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교체” 전수조사 나서

화, 2019/02/1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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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02/1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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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17개 학교 친일 확인…광덕 중·고 ‘새 교가’ 만들기로
충북 19곳 확인, 충남·울산 조사 나서…친일 잔재 청산 운동

광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친일 음악인 등이 만든 ‘친일 교가’를 바꾸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 제창을 식순에서 빼고,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일 교가 교체는 교육계가 펼치는 친일청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교가 바꾸기의 물꼬를 튼 것은 광주지역 학교들이다. 광주시는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지난달 9일 나온 ‘지역 친일 잔재 조사용역’에서 17개 학교 교가가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작곡가 김동진이 서강중·고, 동신중·고, 동신여중·고 등 11개교, 현제명이 숭일중·고 등 3개교, 김성태가 광덕중·고 등 2개교, 이흥렬이 광주일고 교가를 각각 작곡했다. 이 가운데는 전남대·호남대·서영대 등 대학 3곳도 있다. 이들 학교 교가 작곡가 4명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광덕중·고 신흥수 이사장은 졸업식에서 교가 제창을 하지 않도록 하고, 3월 입학식 때 신입생이 새로운 교가를 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 설립한 학교다. ‘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학교 측이 학부모·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에 나섰고, 동문회가 지난 11일 열린 총동창회에서 교가 바꾸기 여부에 대한 토론을 벌여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문이자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씨에게 교가 작곡을 맡기기로 했다. 올해로 건학 111주년을 맞은 광주 첫 사립학교인 숭일중·고도 3월 교가 교체 대책반을 꾸리기로 했다. 나머지 중·고교도 올해 1학기 안으로 교가를 바꾸기로 했다.

울산시교육청은 다음달부터 친일 교가·교명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경남도교육청도 지역 교육계에 남은 친일 잔재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도교육청은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을 위해 다음달부터 친일 행적 의혹이 있는 4명의 작곡가들에게 대한 검증을 시작할 계획이다. 검증을 마친 뒤 친일 관련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충청지역에서도 도내 교가 가사·작곡가 명단을 <친일인명사전>과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현재 19개교 교가를 친일 음악가가 작곡한 것으로 확인했다. 충남도교육청은 전체 학교 713곳 교가의 친일성 여부를 조사해 20일 조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학교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을 권고하고 필요에 따라 교육청이 강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명재·백승목·권순재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18> 경향신문 

☞기사원문: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 바꾸자” 광주 학교들 선두로 확산

※관련기사 

☞연합뉴스: 친일인사 교가 없애고 일본 나무 뽑고…일제 잔재 지우는 교육계 

☞연합뉴스: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교체”…충북교육청 전수조사 

☞굿모닝충청: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 충남에 ‘수두룩’ 

☞한겨레: 광주일고,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 바꾼다

화, 2019/02/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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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94살 이상주씨 숙환으로 별세
소송 당사자인 생존 피해자는 한 명뿐
“양승태 대법원이 일부러 지연시킨
대법원 재판이 빨리 진행됐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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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에서 일본 신일철주금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오자, 대법원 앞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email protected]

일본 전범 기업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징용 피해 소송 중인 피해자 한 명이 별세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징용 재판을 지연시킨 결과 유사한 다른 재판도 지연됐고 결국 피해자는 재판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법조계에 따르면 신일철주금 징용 피해자이자 소송 당사자인 이상주씨가 지난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 이씨는 또 다른 징용 피해자 6명과 함께 2013년 3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11월 1심은 회사가 피해자 1인당 1억원 등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회사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항소심이 3년 넘게 이어지는 이유는 지난해 10월 말에서야 생존 피해자 이춘식(95)씨 등 3명의 피해자가 먼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의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춘식씨 사건은 2013년 7월 파기환송심 이후 5년 넘게 대법원에서 재판을 하지 않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청와대·외교부와 입을 맞춰가며 재상고심을 고의로 지연시킨 재판이 이 사건이다. 지난해 10월에서야 대법원은 이춘식씨 등 원고에게 회사가 1억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상주씨는 17살이던 1942년 10월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 제철소로 끌려갔다. 면 직원이 ‘네가 안 가면 형이라도 붙잡아 보내겠다’고 해 억지로 갔다. 1943년 5월까지 수레로 원석과 석탄을 실어다가 용광로에 넣어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식사로는 밥, 된장국, 단무지가 전부였다고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진영 선임연구원은 19일 “이상주 할아버지는 기자회견이나 집회가 있을 때면 충청남도 보령에서 상경해 참여하는 등 재판 결과를 애타게 기다렸다”며 “대법원 판결이 일찍 나오지 않아 재판이 길어지면서 지난해부터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재판 결과를 보지 못한 채 떠나셨다”고 말했다.

이씨가 별세하면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소송 당사자 중 생존 피해자는, 이미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이춘식씨 한 명으로 줄었다. 2015년 5월 피해자 고 김공수씨의 가족 3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은 지난해 11월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신일철주금은 “정부의 대응 상황 등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일본 정부의 배상 불가 방침을 따르고 있다. 이에 신일철주금 징용 피해자와 변호인단은 일본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배상을 촉구하는 항의 방문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지난달 8일 이춘식씨 등이 낸 신일철주금의 한국 자산 압류 신청을 승인했다.

최우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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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와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 변호인들이 지난해 11월12일 한국 대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요청서와 피해자 4명의 사진을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 책임추궁 재판 전국 네트워크 사무국장, 김민철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 변호사, 김세은 변호사.

<2019-02-19> 한겨레 

☞기사원문: 신일철주금 ‘징용 피해자’ 항소심 진행 중 별세

화, 2019/02/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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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의 본인 (여인철) 계좌에서의 “회비“(“후원 회비” 아님) 인출 내역 통보 요청>

연구소가 1993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본인의 계좌에서 인출해 간 회비 내역을 통보 바랍니다.

본인은 1993년 1월 16일에 반민족문제연구소에 가입한 사람으로서 지난 해 5월에 제명될 때까지 25년 4개월 가량 성실히 회비를 납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본인이 회원 지위를 유지하던 기간 동안의 연구소에서의 회비 인출 내역을 알아야 할 상황이 생겨 은행에 갔으나 2003년 6월 이전의 기록이 없어 그후의 내역밖에 받지 못 했습니다.

그러니 1993년 1월부터 2003년 5월까지 10년 4개월가량 연구소가 본인의 계좌에서 인출해 간 본인의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법인) 회원” 또는 “사원”으로서의 “회비” (“후원 회비” 분명히 아님) 내역을 통보바랍니다.

본인은 스스로를 민족문제연구소의 주인인 “회원”이라고 생각하며 회비를 납부해왔고, 그런 인식 하에 지난 20여년 지부장과 운영위원, 그리고 운영위원장직을 수행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연구소 집행부 측의 기망뿐이었습니다.

본인이 내온 그 “회비“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법적 효력이 있는 승인 정관과 별개인) 운영 정관과 가짜 정기총회, 그리고 회보 등 각종 장치와  발언 등을 통해 운영위원장을 지낸 본인조차 마치 “(법인) 회원” 또는 “사원”인양 착각에 빠지도록 속여가며 인출해 간 돈으로, 만일 본인이 “(법인) 회원” 또는 “사원”이 아닌, 아무 권리도 없는 단순 기부자 또는 “후원 회원“이었음을 알았다면 내지 않았을 돈입니다.

결국 연구소 집행부는 “회원”을 “10명”이라고  이미 정해놓고 다른 전국의 “회원”들은 “후원 회원”으로 간주했으면서도 회비를 빼내가기 위해 기망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이러한 행위는 법적으로 ‘사기’에 해당할 수도 있으며, 또 “회원”의 “회비”를 회비로 취급하지 않고 “후원 회원”의 기부금(회비 제외)으로 처리했을 것이기 때문에 기부금품법 위반의 소지도 상당하다고 봅니다.

연구소는 이제라도 더 이상 전국의 1만 3천 “회원”들을 기망하지 말고 반성,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작금의 비리 사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은 단순 “후원 회원”이 내는 후원금 또는 기부금으로 본인의 계좌에서 연구소가 돈을 인출해가는 것에 동의한 바 없으며, 주인인 “회원”의 의무로서 내는 “회비” 인출에 동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힙니다.

2019. 2. 19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전 운영위원장 여인철

목, 2019/02/2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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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장님 박 교수님

보고 싶네예!

희비를

내야

댈낀테,

잘안 풀리겐는교?

……31518….다오메

ㅇㅏ베다

목, 2019/02/2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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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9일과 29일 2차례에 걸쳐, 정하진 회원(충남지부)이 소장 도서, 전국 지역 지도 및 리플렛(808점), 공중전화카드(215점) 등 다수의 자료를 기증했다. 정하진 회원은 고인이 되신 부친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와 함께 기증한 것으로 유품은 일제강점기 통신부, 급여증명서, 교사임명서, 품행우수상(31점) 등이다.
• 1월 29일 꾸준히 자료기증을 하고 있는 심정섭 지도위원이 지인인 김선식 예원출판사 대표, 의병 김용구의 증손자 김주원 씨와 연구소를 방문했다. 김선식 대표는 <소장訴狀 내 생전에 이 한을> 등 조선여자근로정신대 관련 도서 등 책 5권을, 김주원 선생은 소장자료인 <후은김선생신담록> 기증과 함께 식민지역사박물관 기금도 전달했다.

 

김선식 대표

 

김주원 선생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금, 2019/02/2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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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일제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 후지코시)의 대리인 김세은, 임재성 변호사와 소송 사무국인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등이 일본 도쿄에 있는 신일철주금 등 피고기업의 본사를 방문했다.
원고 측은 2018년 11월 12일과 12월 4일에도 배상과 문제해결 방법을 협의하기 위해 신일철 주금 본사에 찾아갔지만 피고 측과 만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2018년 12월 31일 원고 측은 신일철주금이 갖고 있는 ‘PNR’(POSCO-Nippon Steel RHF Joint Venture Co.,Ltd) 주식에 대해 압류신청을 했고, 지난 1월 4일, 포항지방법원은 해당 주식에 대한 압류결정을 했다.
이번 방문에서 “만약 본 협의요청이 합리적 답변이나 이유 없이 거절될 경우, 원고들의 연세가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한국 내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절차를 개시할 예정”이라는 요청서를 전달하여 이후 압류주식에 대한 매각절차를 시작할 것임을 통지하였다. 한편,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이후 제기된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 3건의 항소심 판결에서 2019년 1월 18일, 1월 23일, 1월 30일에 모두 원고 승소판결이 나왔다.
• 김진영 선임연구원

금, 2019/0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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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광주지부가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광주지역 친일잔재 조사결과보고회가 열린후, 친일잔재 조사 내용이 각종 미디어에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4명의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가 일선 학교에서 불리고 있음이 밝혀져 학생과 학부모, 동문 등의 거센 반발을 샀다. <광주지역 친일잔재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그 실태는 다음과 같다.

▲ 현제명 : 전남대, 숭일중·고 ▲ 김성태 : 광덕중·고 ▲ 이흥렬 : 광주일고
▲ 김동진 : 호남대, 서영대, 동강대, 서강중·고, 금호중앙중·금호여고, 동신중·고, 동신여중·고

2월 13일 광주일고 측은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를 즉시 폐기하고 학교 동문인 김종률 씨에게 새 교가의 작곡을 맡기고, 학생을 대상으로 교가 가사도 공모해, 11월 3일까지 완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주일고의 전신인 광주고등보통학교가 1929년 광주학생의거의 주역이었음에 비추어 친일 작곡가의 교가를 사용하는 것은 그 역사성에 배치된다고 지적되었으며 재학생, 교직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90% 이상 교체를 원하는 것으로 나왔다.
연구소 충남지부와 전교조 충남지부는 14일 공동성명을 내고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만든 교가를 충남 도내 학교도 상당수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충남도교육청은 친일 잔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하루빨리 실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충남교육청은 친일 반민족행위자가 작곡한 교가를 바꾸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시민, 교육 단체가 참여하는 가칭 역사교육위원회를 구성해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편집부

금, 2019/02/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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