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미남 부처’는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청와대 결단만 남았다

지역

‘미남 부처’는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청와대 결단만 남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7/09/29- 21:53

문화재제자리찾기, 청와대 청원 돌입… 전문가·종교계 “경주로 돌아가야”

0929-1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청와대 석불 1939년 조선총독부 문서에는 청와대 불상이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 절 터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적혀있다. 현재 원위치로 추정되는 이거사 절터가 현재에도 도지마을, 도지동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 조선고적도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가 ‘청와대 불상은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라는 청원을 9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등록했다.

청와대 불상(수려한 외모 때문에 ‘미남 부처’로도 불린다)은 데라우치 총독의 환심을 사려던 일본 상인 ‘오히라’에 의해 1913년 서울로 옮겨져 현재까지 청와대 경내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0929-2

▲ 청와대 불상에 대한 대통령 비서실 답변 대통령 비서실은 2017년 8월 22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불상의 이운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계 및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 구진영

앞서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지난 8월 7일 청와대와 대한민국 국회 앞으로 ‘청와대 불상 제자리 찾기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청와대는 “(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불상의 이운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계 및 관련 전문가 등의 다양한 의견 수렴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앞으로 시간을 두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 “청와대 불상, 경주로 돌려놔야”… 청와대 답변을 공개합니다).

전문가·종교계 “경주로 돌아가야”

0929-3

▲ 청와대 불상 ‘미남 부처’라고 별명이 붙은 이 불상은 1913년 경주에서 지금의 서울 남산 밑 총독관저에 옮겨졌다. 1937년 새로운 총독관저가 완성되자 현재의 청와대 자리로 위치를 옮겨졌으며 현재까지 청와대 관내에 남아있다. ⓒ 구진영

진정서 접수 이후 2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난 현재, 불상에 대한 여론은 어떨까?

일단 관련 전문가들은 ‘청와대 불상이 경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은 KBS <취재파일K>와의 인터뷰에서 불상이 청와대에 있어야 할 이유를 묻자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덧붙여 “한국을 강제 병합했던 바로 그 당사자인 데라우치 총독의 손을 거쳐서 불상이 지금 총독관저에 옮기게 됐고 총독관저가 옮겨지는 것에 따라 청와대에 들어갔다”라면서 “(불상은)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불상의 이전을 반대한다고 알려졌던 조계종은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9월 26일 의견문을 발표했다. 조계종은 “문화재가 조성됐을 때의 당시 취지와 목적에 맞게 종교성과 역사성을 간직한 문화재로 보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라며 “불상의 역사적 가치가 올바르게 조명되고 신앙적 환경 조성을 위해 원래의 자리로 이전되기를 바란다”라는 입장을 정부에 공식 전달했다고 밝혔다.

▲ 경주 남산 약수계 석불좌상(왼쪽)과 청와대 불상(오른쪽 위)) 최근 청와대 불상과 형태가 매우 유사한 쌍둥이 불상이 경주 남산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한 국립춘천박물관에 청와대 석불좌상의 중대석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오른쪽 아래) ⓒ 임영애

청와대가 지난 8월 ‘불상에 관해 다양한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것의 귀결점은 청와대 불상의 경주 이전인 듯하다. 이런 여론을 의식했는지 대통령비서실은 문화재청과 서울시에 현장 조사를 거쳐 국가 문화재 승격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5일 회의를 열어 청와대 불상의 국가보물 지정 건의안을 확정 의결했다. 불상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면 서울시가 갖고 있던 관할 권한이 문화재청으로 바뀌게 돼 정부차원에서 불상 이전 논의를 할 수 있는 행정 요건이 갖춰진다.

이제부터는 청와대 불상이 경주 국립박물관으로 갈 것인지 원래의 자리로 추정되는 이거사터로 갈 것인지 등 이전 장소에 대한 논의만 마무리되면 될 것으로 보인다.

0929-5

▲ 청와대 불상 제자리찾기 국민 청원 등록청 문화재제자리찾기는 9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청와대 불상은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는 청원을 등록했다.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했던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청와대 불상 이전 문제는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해방과 동시에 처리됐어야 할 사건이 권위주의 시대에는 해결될 수 없었다”라면서 “(청와대 불상이 경주로 간다면) 일제강점기로부터 기인한 권위주의의 청산이자 민주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구진영(lovelygudada)편집: 김지현(diediedie)

<2017-09-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미남 부처’는 고향에 갈 수 있을까, 청와대 결단만 남았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
 
친일문제를 연구하던 임종국 선생의 아버지가 선생에게 한 말이다.
선생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실었고,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임문호”를 실었다.
 
“….1937년 4월 이후에는 청년당 당두로서 천도교중앙종리원 관정(觀正)에 선출되어…….일제 침략전쟁과 황민화 정책을 적극 후원하고 지원할 것을 독려했다…..”-친일인명사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던 아버지

아버지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낸 아들

진실을 밝힘에 있어 그 어떤 이해관계(비록 아버지일지라도..)도 철저히 배척하는 원칙주의자가 임종국 선생이다.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써 내려갔던 그 날
임종국 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토, 2018/06/02- 00:10
90
0

널문리

은인아

인은아!!

박교수님이  연구소를  고만 두었다는 집현전들이  사실인지,

그만두었다면,

박교수님의 건강과  원하시는 일  잘되고,

다오메

상경하면,

형제서로만내

함바끄럭

똥술을

(수고 하이소)

 

화, 2018/05/29- 04:35
90
0

정만순 변호사님께

사기꾼 김성훈은 감옥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할게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합니다

한순간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으로 이러한 고통 속에 빠졌고 어찌하든 정당한 방법으로 이고통을 끝내려하는데 어찌된 법인지 사기꾼에게는 할것이 많고 피해자들은 그저 탄원서 진정서밖에 쓸게 없네요

변호사님 사기꾼 김성훈을 도우면 안되십니다 김성훈은 정말 온갖 방법으로 사기에 사기로 피해자들을 우롱하고 있어요

끝까지 김성훈이 이땅에서 피해자들에게 법에 의해 심판받도록 파산만은 말아주세요

파산이 어떤 의미인지 변호사님이 더 잘 아실것입니다

부디 이런 정당하지 못한 일에 앞장서지 말아주세요

화, 2017/12/05- 16:43
90
0

정만순 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피해자입니다

이번 사기사건으로 저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정도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있습니다. 정말 김성훈이 피해자들을 기만하며 변제한다 떠들기만 할뿐 실제 1원도 받지 못했고 오히려 김성훈은 피해자들에게 파산을 하면 돈을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며 편지글을써서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게 정말 정의가 살아있나 싶을정도로 사기범이 자기 파산하니 찬성해달라하니.. 어느 사람이 이해하며 받아들일까요

 

정만순 변호사님께서 만일 제 입장이시라면 파산 좋으니 동참하세요 하실수 있으실까요? 민족문제연구를 이번에 처음알고 친일파를 바로 잡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좋은 일을 하는 곳이란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김성훈의 파산을 도와 1만가정의 결제를 파탄내는 일을 도우신다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정만순 변호사님

1만명의 목소리와 피맺힘이 들리시는지요?

김성훈에게 파산이라니.. 이걸 채권자라는 20여명의 사람들이 돕고 있으니 정말 1만명의 피해자 대표도 아닌 그들이 나서서 김성훈을 돕는 것을 볼수가 없습니다

제발 !! 올바른 길이 무엇일까 생각해주십시요. 저는 김성훈의 파산을 절대 받아들일수가 없습니다. 부디 파산을 막아주십시요

목, 2017/12/07- 21:26
90
0
1212-1

▲일본군 위안부 자료 보는 참석자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1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시, 서울대인권센터와 승선명부·신문 기사 등 비교·검토
대구 거주 ‘하토가와 후쿠준’, 故 이복순 할머니로 판명

1212-2

▲ 트럭 섬의 한국인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해군 함대 기지가 있던 남태평양 ‘트럭섬'(Chuuk Islands)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의 명부와 사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과 함께 미군 전투일지, 호위함 ‘이키노’호의 승선명부, 사진 자료, 1946년 3월 뉴욕타임스 기사 등의 자료를 비교·검토한 끝에 이들 위안부 26명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11일 밝혔다.

시는 “그동안 증언으로만 있었던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의 의의를 설명했다.

트럭섬, 공식 명칭 ‘축(Chuuk)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4개 주(州) 가운데 하나인 섬으로 태평양 남서쪽에 있다. 일본식 발음인 ‘토라크’를 접한 한국인들은 이곳을 ‘트럭섬’이라고 불러 왔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자료를 발굴해 조사·분석해 이뤄졌다.

미군 전투일지에 따르면 당시 트럭섬에서 귀환한 1만4천298명 가운데 조선인은 3천483명이었다. 이 중 군인이 190명, 해군 노무자가 3천49명, 민간인이 244명으로 나타났다.

1212-3

▲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1212-4

▲ 트럭섬 점령군 전투일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조선인들은 트럭섬 환초 ‘드블론’이라는 곳에서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을 거쳐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이 배에는 조선인 위안부 26명과 아이 3명이 타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946년 3월 2일 자 ‘트럭의 일본인들은 포로가 아니다’라는 제하의 뉴욕타임스 기사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사는 “트럭섬 사령관인 해병 준장 로버트 블레이크에 의해 조선인과 27명의 조선인 위안부(Comfort Girls)들이 보내졌다”며 “블레이크 장군에 따르면 이 여성들은 남아서 미국인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른 조선인들이 일본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바다에 빠뜨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는데, 하지만 블레이크 장군은 그러한 일을 듣지 못했다”고 묘사했다.

연구팀은 이 기사가 위안부를 27명이라고 적은 것은 아이 3명 가운데 1명을 위안부로 분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키노호 승선명부를 보면 승객 368명 가운데 조선인 249명, 여성과 아이 29명이 확인된다. 여성 26명과 아이 3명의 이름·직업·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여성은 ‘노동자’, 아이는 ‘무직’으로 돼 있다.

시는 “다른 문서와 비교를 통해 이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212-5

▲ 위안부 피해자 이복순 할머니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1212-6

▲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이름이 적힌 이키노호 승선 명부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 [그래픽] ‘트럭섬’으로 끌려간 위안부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이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창씨개명된 일본식 이름으로 적혀 있어서 신원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하토가와 후쿠준’이라는 인물이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돼 있는 고(故) 이복순 할머니라는 점을 판명해냈다.

이복순 할머니는 생전 구술자료를 남기지 않고, 1993년 12월 정부에 피해를 신고했을 때에도 간략한 피해 내용만 남겨 삶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이 생전 이복순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대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이인순 관장에게 트럭섬 위안부 사진을 보여주자, 할머니를 단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며칠 뒤 할머니의 아들도 이 사진이 자신의 어머니가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서울, 경북 안동, 대구의 공무원들이 자료를 뒤진 결과 하토가와 후쿠준이 할머니의 창씨명이 맞고, 주소지도 예전에 그가 살던 곳과 일치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시는 “할머니의 남편 호적이 있는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계장은 한자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온종일 제적등본을 뒤져 해당 자료를 찾아줬다”고 관계자의 노고를 전했다.

1212-8

▲ 이복순 할머니 이동 경로 [서울시 제공=연합뉴스]

이 같은 자료를 종합해보면 이복순 할머니는 1943년 트럭섬에 끌려가 위안부가 됐다. 일본 패전 후 그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 26명은 1946년 1월 17일 호위함 이키노호를 타고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시 우라가 항으로 갔다.

이 할머니는 이후 도쿄로 갔다가 규슈 후쿠오카 현 하카타 항에서 부산행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26명 가운데 이복순 할머니를 뺀 나머지 25명의 구체적인 신원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나머지 할머니들의 신원도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이날 오후 1시 30분 서울시청 신청사 3층 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서울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관리사업 성과보고회’에서 발표한다.

또 지난해부터 2년간 발굴·축적한 일본군 위안부 사료를 바탕으로 내년 1월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1·2권을 출간한다. 내년 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국·중국·일본의 전문가와 단체를 초청해 성과를 공유할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2017-12-11> 연합뉴스

☞기사원문: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관련기사

☞뉴스1: 일본군 위안부 남태평양 ‘트럭섬’까지 끌려갔다…서울시 첫 확인(종합)

☞민중의소리: 남태평양 트럭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한국NGO신문: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명부, 사진 … 서울시 첫 확인

☞KBS: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첫 확인

※뉴스영상

☞MBC: 남태평양 ‘트럭섬’ 조선인 위안부 26명 첫 확인


화, 2017/12/12- 17:05
9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