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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여기에 서 있죠?”···일제잔재 제대로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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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여기에 서 있죠?”···일제잔재 제대로 알려야

익명 (미확인) | 수, 2017/09/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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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옛 충주읍성) 중원루 옆에는 대한제국기 마지막과 일제강점기 초대 충주군수를 지낸 서회보의 애민선정비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에 올라 있는 서회보 관련 설명을 적은 안내판이 없어 시민과 관광객이 비석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2017.09.19. [email protected]

충주 관아공원 서회보 애민선정비 등 안내판 설치 여론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일제강점기 친일세력을 칭송하는 공적비 등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19일 충북 충주시 성내동 옛 충주읍성인 관아공원 중원루 근처 은행나무 옆에는 가첨석(지붕돌)이 있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비석 앞면에는 ‘行郡守徐候晦輔愛民善政碑(행군수서후회보애민선정비)’라고 새겨져 있다.

그럼 서회보(徐晦輔·1849~1919년)는 누구인가.

먼저 ‘디지털충주문화대전’에 보면, 서회보는 1849년 충주시 신니면 송암리(충주군 남변면 남부리-‘조선신사대동보’)에서 태어났다.

1907년(조선 순종1) 12월에 영동군수로 재임하다가 충주군수로 전임했다. 1908년 3월 공립충주보통학교 교장을 겸한 그는 충주군수로 있을 때 시설을 만들고 보수해 지역주민의 칭송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펴낸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1966~1978년)에 따르면 대한제국기 마지막 충주군수였던 서회보는 일제강점기 초대 군수로 계승해 1917년 1월까지 재임했다.

 하지만 디지털충주문화대전 등에는 서회보가 친일파였음은 언급되지 않았다.

서회보는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과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모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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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충주시 성내동 관아공원(옛 충주읍성) 중원루 옆에는 대한제국기 마지막과 일제강점기 초대 충주군수를 지낸 서회보의 애민선정비(점선 원안)가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에 올라 있는 서회보 관련 설명을 적은 안내판이 없어 시민과 관광객이 비석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2017.09.19. [email protected]

서회보는 1912년 일제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고 1917년에는 중추원 부찬의에 임명됐다.

김희찬(비영리단체 충주아이들의하늘 간사)씨는 서회보가 중추원 부찬의가 된 것이 일제강점기 초대 충북도장관이었던 스즈키 다카시(領木隆·1910년 10월~1916년 3월 재임)의 신임이 두터워 가능했다고 봤다.

김씨는 “서회보와 관련해 꼭 기억할 것이 1913년 ‘시구개정(市區改正)’이라는 명분으로 충주군수 서회보의 책임 아래 충주읍성을 허물고 전국에서도 모범적으로 식민도시 충주 시가지를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관아공원 내 서회보 비석과 관련해서는 그의 친일 행적 등을 시민에게 알리도록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는 중론이다.

전홍식 한국교통대 한국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서회보의 ‘애민선정비’를 철거하는 게 최선은 아니다”며 “서회보 애민선정비 외에도 많이 남아 있는 친일파 공적비에 안내판을 세워 후손이 교훈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환경운동연대 박일선 대표도 “충주읍성이 없어지고 초창기 충주가 일제식 도시로 형성하는데 서회보가 일조를 한 만큼 그의 행적을 자세하게 표현해 잘 보이는 곳에 보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호암지 주변 일제강점기에 세운 일본인 또는 ‘친일인사’의 기념비와 위령탑 등도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초창기 수리조합장은 친일 행위와 직간접으로 연계해 있다”며 “관련 문헌을 찾아서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 이들이 애향이나 애민한 것으로 시민이 잘못 알고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암지 서북쪽 제방 위 산책로 옆(문화동 3887-1) 일대에는 과거 호암지 수리조합장 등의 공덕비 2기가, 그 뒤쪽에는 일본인 잠수부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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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주=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충주시 호암지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충주수리조합장 일본인 스즈키 마사이치의 사업성공기념비가 세워져 있지만 안내판이 없어 일반인은 비석 내용과 스즈키의 인물을 알지 못한다. 2017.09.19. [email protected]

인근에는 스즈키 마사이치(領木政一) 수리조합장의 사업성공기념비가 있다.

이들 비석 주변에는 관련 안내판이 없어 이곳을 찾는 시민과 방문객이 비석의 내용과 비석에 적힌 인물의 행적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시 관계자는 “비지정문화재라도 여론이 있으면 안내판은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인근 제천 박달재에는 고(故) 반야월(본명 박창오·1917~2012년) 작사가가 노랫말을 지은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와 관련해 ‘박달재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비 옆에는 지난해 3월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친일행적을 알리는 ‘가수 반야월의 일제하 협력행위’ 단죄판을 세워 일제강점기 반야월 작가가의 친일행적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있다.

이 단죄판은 반야월 작가가의 후손이 철거를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email protected]

<2017-09-19> 뉴시스

☞기사원문: “이게 왜 여기에 서 있죠?”···일제잔재 제대로 알려야

※관련기사

☞충북일보: “‘충절의 고장 충주’ 친일 공적비 웬 말이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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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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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내역사’ 시즌2 – 1회 미식가 “식목일의 기원”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4/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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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가 봄개편을 했습니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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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총회개회와 인사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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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회 개회와 인사말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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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 업무 감사보고 (감사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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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사업보고 (공동대표 이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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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2018년도 정기총회가 4월 6일 민족문제연구소 5층 교육장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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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원소개 (부회장 박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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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쳘폐소송 보고 (민족문제연구소 대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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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스쿠니 합사철폐소송 보고 (원고 이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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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자. 해태상(해치상)이 원래의 위치인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안쪽 구석에 옮겨져 거적때기에 둘러쌓인채 방치되고 있다는 기사다.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동이고 허리를 매어… 궁궐 한편 모퉁이에 결박 당하고 거적 쓴 채로 참혹하게 드러누웠더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경복궁을 지키고 서있던 해치가 궁궐 한편에 쳐박혀있는 몰골을 전한 동아일보 1923년 10월 4일 기사다.

조선부업품공진회 개막에 발맞춰 개통된 전차와 관람객의 동선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광화문 앞의 해치가 철거·이전된 것이다. 거적때기에 쌓여 궁궐 안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초라한 몰골은 식민지 조선의 딱한 처지를 웅변해주었다.

궁궐의 입출구를 구분짓는 월대 앞에 놓인 해치는 일종의 하마비 역할도 했다. 지금부터 궁궐권역이니 말에서 내리라는 표시였다. “1870년(고종 7년)대궐 문에 해치를 세워 한계로 삼았고…조정 신하들은 그 안에서 말을 탈 수 없다”(<고종실록>)는 기사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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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발표한 광화문 앞 공간 복원 계획도. 월대와 해치를 복원한 역사광장과 시민들의 공간인 시민광장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 공간 사이에 ㄷ 형태의 도로가 예정돼있다.

1924년 10월 조선총독부 정동 분실에서 일어난 불의 원인이 ‘해치상을 치워버린 탓’이라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것이 찜찜했던지 일제는 쳐박아두었던 해치상을 조선총독부(중앙청) 뜰 앞에 옮겨놓았다. 지금 광화문 담장 밑에 바짝 붙은 채로 서있는 옹색한 해치상은 1968년 12월 광화문 복원 때 재이전한 것이다. 물론 제자리가 아니다. 광화문 해치는 흔히 ‘불(火)의 산인 관악산의 화기를 막으려고 궁문 앞에 세워놓은 흰돌의 물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이규경(1788~?)이 “해치는 화수(火獸), 즉 불을 먹고 사는 짐승”(<오주연문장전산고>)이라 한데서 유래한 속설일 가능성이 크다.

해치는 또 예부터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수(神獸)로 알려져 왔다. 후한의 왕충(27~97?)은 “해치는 옥사를 다스릴 때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 들이받는 속성이 있다”(<논형>)고 기록했다.

역시 후한의 양부가 지은 <이물지>는 “외뿔 짐승인 해치는 싸움이 일어날 때 부정직한 자를 들이받고, 바르지 않는 자를 깨물었다”면서 “전국시대 초나라 법관들은 해치관을 법복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후 동양에서 법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해치관(冠)이나 해치문양의 관복을 의무적으로 입었다.

요즘의 검찰·감사원에 해당되는 조선시대 사헌부 관리들은 마찬가지였다.

“1796년(정조 20년)사헌부 지평(정 5품)이 해치관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직됐다”(<정조실록>)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다.

해치를 궁궐 앞에 세워둔 까닭은 자명하다. 출퇴근하는 관리들은 해치의 꼬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 속 먼지를 털어내고 공명정대한 정사를 다짐하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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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6~1907년 사이 촬영된 광화문 앞. 해치상과 월대가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10일 맺은 광화문 역사광장 조성 업무협약의 주요내용이 바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해치상의 제자리 찾기’이다.

물론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언급처럼 역사광장(월대·해치)과 시민광장이 ㄷ자형 도로로 양분되는 등의 새로운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 앞 공간을 반드시 광장으로 꾸며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나온다. 깊이있는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시대마다, 정권마다 제각각의 복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두 일리있는 지적이다.

다만 어떤 경우라도 월대와 해치는 제자리에서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해치의 꼬리를 매만지면서 스스로 마음을 단속하고 시비곡직을 다짐하는 통과의례가 요즘처럼 절실한 때가 또 어디 있는가.<참고자료>

이순우, <광화문 육조 앞길-근대서울의 역사문화공간>, 하늘재, 2012
<테라우치, 조선의 꽃이 되다>, 하늘재, 2004
김언종, ‘해태고’, <한국한문학연구> 제42권 42호, 한국한문학회, 2008
이성준, ‘경복궁 근정전 월대 난간석주상 연구’, <미술사학연구> 272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2018-04-12> 경향신문

☞기사원문: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목, 2018/04/1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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