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지역

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익명 (미확인) | 목, 2017/09/14- 13:34

 ◎ 2부 [인터뷰 제 1 공장]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 이준식 관장 (근현대사기념관)

김어준 :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이죠. 그런데 이 날이 아니라 이번주 일요일 9월 17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대정부 질의에서도 국무총리 상대로 이 질문이 나왔었는데, 국군의 날 변경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식 : 예, 안녕하세요.

김어준 : 9월 17일이 무슨 날입니까?

이준식 : 예, 임시정부 산하 국군인 한국광복군이 창군된 날입니다.

김어준 : 광복군 창군날이다. 그러니까 국군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던 광복군이 처음 만들어진 날이 국군의날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네요, 한마디로. 그 말을 듣자마자 설득되려고 하는데 그게 그러면 언제입니까?

이준식 :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군되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임시정부는 그 전부터 있었지 않습니까?

이준식 : 예, 임시정부는 1919년에 출범했는데요.

김어준 : 그래서 그걸 건국으로 봐야 된다. 뭐 이렇게.

이준식 : 요즘 그런 얘기도 나오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건국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마는, 1919년 중국에서 임시정부가 출범했는데 임시정부가 1920년에 바로 독립전쟁 원년이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1920년에 우리가 일제에게 전쟁에서 져서 국권을 빼앗겼으니까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일본과 전쟁을 해야 된다. 그래서 독립전쟁이라고 하고 1920년이 독립전쟁 첫 해다. 전쟁을 하려면 군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임시정부 산하의 국군을 만들겠다는 구상에 착수를 하는데, 당시 중국이 남의 땅이니까요. 남의 땅에서 군대를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어준 : 다른 나라, 그 나라가 인정해 줄 리가 없지요.

이준식 : 예, 인정해 줄 리가 없어요. 군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하고 연계해서 국군을 활용하겠다.

김어준 : 임시정부하고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던 독립군들을.

이준식 : 만주독립군을 임시정부 산하로 편입시켜서 국군을 만들겠다는 그런 구상을 갖기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국군을 만든다는 게 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의 오랜 꿈이었는데요, 그 꿈이 1940년에 실현이 된 겁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산하 국군으로 한국광복군을 창건하게 되죠. 정식으로 군대를 만듭니다.

김어준 : 사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모든 망명정부가, 그 나라에서 정부를 두지 못하고 망명하게 되는 망명정부가 결국은 자기들 원래 땅을 점령하고 있는 식민본국이든, 또는 그 순간 침략해 온 나라든 간에 상대해서 이런 군대를 만들려고 하죠. 군대가 없으면 싸워서 다시 되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1940년에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공식적으로 창군하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실제 그때 부대라고 할 만한 인원도 있었습니까?

이준식 : 처음에는 주로 사령부 중심의 군대였습니다. 장교가 더 많았던. 사병보다 장교가 더 많았던, 어쩔 수 없죠. 왜냐하면 당시 중국 안에 사병이 될 수 있는 우리 동포수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김어준 : 동포 수가 있다 하더라도 몰래 사병이 돼야 하는 거니까.

이준식 : 그리고 대개 독립운동하시는 분이 나이가 많으니까 사병은 상대적으로 적었죠. 그러면서도 한국광복군이 계속 사병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요. 그래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그래도 꽤 많은 병사들을 확보하는 성공을 했고요.

김어준 :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땅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창군됐다고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실체가 적더라도 생겨버리기 시작하면 가만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준식 : 많이 알려지기로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견제를 많이 했습니다. 왜냐면 자기 땅에서 군대 만들겠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엔 견제를 많이 했습니다. 견제하는 방법이 한국광복군을 만들되 중국 국민당 군의 통제 아래에 두겠다. 요즘 말로 하면 통수권, 작전권이죠. 통수권을 중국 정부가 갖는다는 조건으로 한국 광복군을 승인하려고 하니까.

김어준 : 굉장히 뭔가 서글픈데요. 왜냐하면 지금도 한국은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임시정부가 창군할 때부터 중국이 또 작전권을 행사하겠다고.

이준식 : 그래서 임시정부가 단안을 내립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광복군을 창군하는 거죠. 근데 창군을 했다고 하더라도 활동을 하려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중국 국민당 정부가 지원하기는커녕 계속 견제를 하니까요, 방해를 하니까요. 할 수 없이 광복군의 통수권을 중국 국민당에게 넘겨줍니다. 굴욕적인거죠. 사실 따져보면.

김어준 : 이해갑니다, 저는. 그렇지 않을 방법이, 도리가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준식 : 그래서 한 2-3년에 걸쳐서 임시정부하고 광복군이 통수권을 되찾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많이 씁니다.

김어준 : 지금 역사의 복사판이네요.

이준식 : 네, 1944년에 드디어 통수권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1944년에 정말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되는 거죠.

김어준 : 선배들이 훨씬 낫네요, 4년 만에 찾았으면.

이준식 : 네, 4년 만에 찾았으니까 굉장한 성과죠.

김어준 : 저희는 지금 육십 몇 년 동안 못 찾고 있는데. 어쨌든 지금 우리 국군이 미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넘기고, 전작권을 넘기고 아직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오리지널 버전이 광복군 창군 때도 있었다.

이준식 : 한국광복군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임시정부 산하의 자주적인 군대가 되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고, 또 그것을 실현했다는 겁니다.

김어준 : 그게 싫어서 일본의 소위 강점이 싫어서 거기까지 가서 군대를 만들어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또 중국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체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어쨌든 4년 만에 또 되찾았다. 그러면 실제 중국군, 당시 인민군하고 같이 작전을 했다든가. 그러니까 중국이 당신들은 별개의 군대라고 인정을 해야 같이 작전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런 연대작전을 했다는 기록은 있습니까?

이준식 : 1944년에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군사협정을 맺고요.

김어준 : 군사협정을 맺었다. 확실하게 인정한 거네요. 협정을 맺었다면.

이준식 : 중국이 독자적인 군대로 인정을 한 거죠. 그리고 1943년, 1944년 무렵부터는 다른 연합국 군대인 영국군, 미국군과의 공동작전도 추진해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는 유명한 한국광복군의 독수리작전이라는 게 미군과 공동으로 추진이 됩니다.

김어준 : 이건 뭐 부인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군대가 확실한데, 그럼 지금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은 뭘 기념하기 위해서 된 겁니까?

이준식 :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1950년, 그러니까 6?25전쟁 와중이죠. 6?25 전쟁 때 육군 제 3사단이 38선을 처음 돌파해서 북진에 성공한 날이다. 그래서 그 날을 기리기 위해서 10월1일을, 1956년 이승만 정부 땝니다. 이승만 정부 때 10월 1일을 국군의날로 지정했다는 얘기가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1954년인가요, 1953년인가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는데 이게 10월 1일입니다. 그래서 10월 1일이 어쨌거나 의미 있는 날이다. 그래서 1956년에 처음으로 국군의날로 지정을 했습니다.

김어준 : 38선 돌파한 것도 의미는 있지 않습니까?

이준식 : 38선돌파도 의미가 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것도 의미가 있긴 하죠. 그런데 그런 날이기 때문에 국군의날로 지정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어준 : 사실 국군의날 하면. 보통 무슨 날, 한글 창제 했던 날을 한글날이라고 하는 거죠. 제헌절하면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이것도 국군의날 하면 당연히 막연히 국군이 창설된 날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준식 : 국군이 창설되거나 아니면 국군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 : 38선을 돌파한 날이군요, 이게.

이준식 : 그래서 국군이 역사가 시작된 날을 찾다보니까 그래도 광복군 창건일이 가장 어울린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김어준 : 당연히 그런 데 있어서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거든요? 애초에 광복군이 1940년에 창설이 되고 중국과 군사협정도 맺었고 미군과 당시 공동작전도 했다면 규모는 작더라도 국군의 뿌리가 확실하니까. 한글도 지금 한글하고 똑같지는 않거든요, 되돌아가면. 문자도 달라요. 어법도 다르고. 하지만 그 때 창설, 만들어진 게 확실하니까. 그런데 보수진영에서는 반대한다고 하는데 왜 반대하는 겁니까?

이준식 : 보수진영에서 반대하는 건 건국절 논란하고 직결이 되는데요, 보수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역사가 1948년 8월15일부터 시작됐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은 무관하다고 얘기하니까요. 그러니까 국군의 날도 광복군 창건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김어준 : 당연하네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48년이 아니라 40년대부터 군대가 있다고 해야 되니까요.

이준식 : 예. 거슬러 올라가면 광복군이 창건되기 이전에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인정을 해야 되고 그게 싫은 거죠.

김어준 :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보수진영에서.

이준식 : 대한민국 건국은 독립운동과 무관하다고 보는 겁니다. 독립운동 때문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건국세력이라고 그러죠. 건국세력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을 하고 싶은데 그 건국세력이라는 게 내용을 보면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친일파고 하나는 정치깡패입니다.

김어준 : 아, 그랬습니까? 정치깡패 얘기도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이준식 : 정치깡패가 이른바 건국과정의 반공반탁 운동을 주도한 세력 중에 하나거든요. 우리는 정치깡패라고 하지만 그쪽에서는 애국세력이라고 하겠죠. 애국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이 가능했다.

김어준 : 지금 가스판 들고 아스팔트에 나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었잖아요? 프로판 가스통 들고. 그걸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한쪽에서는 그분들이 애국세력인 것이고 무관한 제삼자가 보기에는 정치깡패 아니냐. 그런 세력과 친일파가 소위 이승만 정권의 탄생에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 많이 하죠. 우리 보수진영의 뿌리가 친일파에 맞닿아있는 거 아니냐.

이준식 : 친일파라는 말을 하기 싫으니까 건국세력이라는 말로 미화하는 거죠.

김어준 : 실제 친일파라고 불릴만한 세력이 이승만 정권의 주축을 이뤘습니까?

이준식 : 예를 들어 군만 얘기하자면요, 이른바 국군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1960년까지 국군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육군참모총장을 보면 모두 다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었습니다. 60년까지 그랬습니다.

김어준 : 박정희 전 대통령도 뭐 일본 장교 출신 아닙니까.

이준식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지는 않았으니까. 육군참모총장 명단만 놓고 보면 십 몇 년 동안 만주군 내지 일본군 출신이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결국 육군의 주류가 일본군 출신이라는 얘기죠.

김어준 : 만주군이라는 게 독립군 때려잡던 군이거든요, 정반대로.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게 아니에요, 만주군은.

이준식 :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군의 국군이죠.

김어준 : 그 역할이 독립군 때려잡는 것 아니에요.

이준식 : 예, 독립군 때려 잡는. 항일세력 때려잡는 게 만주군이 하는 일이었죠.

김어준 : 다른 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보통은 초기 건국세력들이 대부분 이런 역사를 거친, 터키도 그렇고. 대부분 독립운동하던 쪽에서 초기 대통령을 내놓거나.

이준식 : 군도 독립군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는 게 정상적인 거죠.

김어준 : 너무 당연한 건데 우리는 독립군을 때려잡던 쪽에서 군을 장악했었다, 초기에.

이준식 : 그러니까 국군의 뿌리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게 된 거죠.

김어준 :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신 걸로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추천받았는데, 선생님을.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시게 된 겁니까?

이준식 : 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까 당연히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요.

김어준 : 그리고 부모님한테 얘기를 들으셨겠군요, 쭉.

이준식 :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독립운동사를 공부를 했고요. 독립운동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사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김어준 : 그럼 혹시 부모님도 광복군 출신이셨나요?

이준식 : 어머니가 광복군 출신이셨습니다.

김어준 : 어머님이요? 아버님이 아니고요? 그럼 혹시 어머님의 아버님 외할아버지가 혹시.

이준식 : 외할아버지도 광복군이셨고요.

김어준 : 그쪽 핏줄이시군요. 우리는, 저도 어릴 때 독립군에 대해서 별로 안 배웠어요. 그냥 독립운동을 조금 했다. 그게 어마어마하게 긴 장이어야 할 것 같은데. 한 두 페이지 배웠던 것 같아요.

이준식 : 지금은 많이 가르치죠. 왜 그러냐 하면 1987년 헌법이 개정되지 않습니까? 우리 현행 헌법인데, 현행 헌법 전문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 후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완수해야 될 사명을 갖고 있다’고 적어놨거든요. 거기서 독립운동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헌법 전문에 나와 있으니까 적어도 80년대 후반 이후에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지금은 독립운동사를 많이 가르칩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중간에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만주군 출신 쪽의 반론권도 저희가 보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얘기를 중간중간 많이 하는데 반론으로 연락 오는 적이 사실 거의 없어요. 거의 없긴 한데, 자, 이래서 10월1일이 국군의날이면 당연히 국군이 창설된 날이어야 하는 게 맞고, 논리적으로. 다른 날들은 다 그러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따져보니 있다실제로, 광복군이 창건된 것이. 그리고 주변국에 의해서 독립된 군대로 인정도 받았고 협정을 맺은 기록도 있고 공동작전의 기록도 있다. 게다가 국군이 38선을 통과한 날이 의미가 있으나 실제 그 국군이 소위 이승만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한 걸로 보여지는, 그런 국군의 구성이 일본군이었지 않느냐. 일본군 출신, 혹은 만주군 출신이었지 않느냐. 그러니 법통을 따지자면 당연히 9월 17일로 옮기는 게 맞다. 이 정도로 요약하면 되는 거죠?

이준식 : 예, 정확하게 요약하셨습니다.

김어준 : 제가 요약은 잘 해요. 깊이는 없는데. 그런데 이런 반론도 제가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게 왜 이렇게 연결되는지 논리적으로 머릿속에 구성은 안 되는데, 국군의날을 그렇게 바꾸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사실이, 그 사실의 의미가 퇴색된다. 왜 퇴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주장합니다.

이준식 :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런 주장을 하더라고요

김어준 : 그러면서 북한에 정통성을 주게 된다. 이것도 모르겠는데. 북한에 정통성을 주는 것은 오히려 지금 국군의날 아닌가요? 북한에서는 지금 독립운동을 자기들이 주로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준식 : 예, 그건 사실이에요. 북한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강조하는 독립운동이거든요. 1919년에 대한민국이 출범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김어준 : 인민군 창설되기 전에 무슨 소리냐 지금 광복군이 있었는데.

이준식 : 광복군이 창건됐다고 하는 게 훨씬 더 정통성 문제에서 유리한 거죠. 그런데 왜 스스로 불리한 쪽을 택하려고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어준 : 지금 주장은 불리해요. 왜냐하면 친일파가 합참, 군을 통솔했던 군대를 가지고 정통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북한에서는 어쨌든 독립운동을 하던 쪽이, 북한 쪽 사이드에서는 군의 기본창설 단위가 됐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불리하죠. 바꿔야 되는 거였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의미를 퇴색시킨다. 이게 무슨 주장입니까? 어떻게 이해하셨어요?

이준식 : 보수세력에서 흔히 그렇게 얘기하는데요, 해방되고 난 다음에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유엔에서 결의를 합니다.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해라. 원래 유엔 결의안에서는 한반도 전체에서 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게 잘 안됩니다. 북쪽에서 선거를 거부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유엔에서 그러면 선거가 가능한 남쪽에서만 총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유엔 결의안에 보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 이렇게 돼 있습니다.

김어준 :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

이준식 :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 그런데 보수세력에서는 그걸 자꾸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고 해석을 하는 건데요. 정확하게 문구가 어떻게 되냐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 그리고 영어 표현에 주목을 하면요 정부입니다. government입니다. 국가가 아니라. 그러니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일부로서의 대한민국 정부. 이렇게 되는 거죠.

김어준 : 이해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준식 관장님이었습니다.

이준식 : 예, 고맙습니다.■

<2017-09-13> tbs

☞기사원문: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회원마당

박창봉 아산지회 회원

 

20

4년 전 낯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산시 조 아무개 시의원의 소개로 전화하게 됐다며 자신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아산 유족회장이라고 밝힌 뒤 유해발굴의 어려움을 말하며 아산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용을 알기에 도와드리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산지회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을 공동체에서 상영한 것,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충남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것, 홍성유해발굴에 몇 번 참석, 한국전쟁기 아산지역 학살지를 유족과 증언해 주실 분을 모셔다 다시 확인하고 증언들을 추가로 수집한 것 등이 전부다.
그러던 중 아산지역 유해발굴에 필요한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성, 진주에 이어서 마침내 이곳 아산에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의 예산을 지원 받아 배방읍 폐금광 학살지를 발굴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발굴공동조사단으로부터 유해발굴계획을 듣고 아산대책위를 별도로 구성하고 우리 연구소 아산지회가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유해발굴작업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16일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제를 올린 뒤 시굴의 첫 삽을 떴다. 첫 삽을 뜬 이곳은 그때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학살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리라고 증언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유해가 나오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노인의 무덤이었다. 당시를 증언해주시던 분들은 그때 너무 어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을 틀렸을지 모른다는 말씀이 전부였다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불안해하며 여기저기 산을 파고 뒤지다가 3일을 모두 보내고 말았다. 논의 끝에 하루를 더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해를 찾지 못하던 우리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작해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였다.
시굴 마지막 날이다. 오후 들어 마지막 한 군데만 더 파보고 없으면 철수하기로 하고 굴삭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던 중 ‘중지’라는 외침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검은 흙이 보이고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살피다가 누군가 “사람 뼈예요” “유해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 우연일까? 하늘에서 하얀 꽃가루 같은 눈이 하얗게 내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가. 68년의 어둠이 빛을 만나는 이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도 없이 하얀 눈이 한참을 내렸다. 이렇듯 어렵사리 학살당한 피해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2018년 2월 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유해들이 어둠속에서 밖으로 한 구 두 구 나오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 얽히고 일그러진 불탄 유해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열 살도 안 된 코흘리개가 어떻게 인민군에 부역을 했단 말인가. 어미의 등에 업힌 젖도 못 뗀 갓난아기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치아가 모두 닳아버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어떻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두 눈으로, 두 손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늘 이곳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바로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월 31일 40여 일을 발굴한 끝에 바닥에 맨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발굴 종료를 선언했다. 마지막 유해를 수습한 뒤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유족이 함께한 가운데 제를 올렸다. 어느 유족이 술을 따르다 마침내 오열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왜… 왜 여기에 계신 거예요. 무엇 때문에… 아버지.” 제를 지내던 발굴터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버지를 68년 동안이나 참혹한 어둠 속에 있게 한 것도 모자라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자식에게조차 숨긴 채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오다 이렇게 처참하고도 허망한 유골로 만났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설화산 산기슭 골짜기에 천년을 두고 울어줄 한맺힌 절규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유족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내서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 열일 제쳐놓고 발굴에 매달린 발굴공동조사단, 산으로 점심을 준비해 날라주던 아산대책위, 발굴이 끝날 쯤 발굴장비 철수와 감식장으로 유해를 옮기는 힘든 순간에 기꺼이 달려왔던 연구소 천안지회 회원들과 멀리 부천지회 회원들, 본부 상근자들, 심지어 카메라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영상팀과 기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40여 일을 함께했기에 유해발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아산에는 학살지가 여러 곳이 더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산의 모든 학살지가 발굴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발굴이 마무리되면 추모관을 건립하여 아산의 아픈 흑역사를 잊지 않도록 알리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이 아니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전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진달래 피는 봄이 남녘과 북녘에 함께 왔다. 그토록 그리던 봄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이 우리를 옥죄던 이념의 깊디깊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함께 치유하는 시작점이 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를 손 모아 기다린다.

금, 2018/04/20- 14:50
47
0

회원마당

김판수회원

 

망국의 수난 그 피해자 안점순님 이승을 떠나시다

북상한다는 벚꽃은 오는 길이 더디지만
그래도 개나리는 노랑 치맛자락으로 기찻길 치렁치렁 치장하였네
아직은 이른 봄날 3월 30일
서둘러 떠나시는 님 붙잡지 못하는 우리 서러운 봄날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짐이 필연이라지만
끝까지 풀지 못한 매듭이 있어
떠나고 보냄은 너무 아쉬운 작별입니다.
“가해자 전범국 일본은 나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이승을 지키는 우리가 님을 기억하고 풀겠습니다.
편하게 가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일본제국 침략전쟁범죄 일본군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나라 없는 백성이라
납치와 강제연행, 감금과 폭행으로 목숨보다 소중한 정절을 짓밟히어
여성의 순결을 상실하고 인간의 존엄까지 박살났네
망국의 수난사를 온몸에다 새기고 천신만고 찾아오니
그리던 살붙이도 손사래치고 정다운 이웃들도 외면했네
전사는 죽어도 훈장이라도 남지만
살아 돌아온 ‘위안부’는 손가락질 따돌림이라
끌려가고 짓밟히고 버려지고 외면해도
죽지 못해 사는 질긴 목숨은 웬수보다 더 미운 네 팔자였네
아―! 누가 나보다 더 서러운 사람 있겠는가!
그토록 힘든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신 안점순 님의 숭고한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이승을 지키는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정직한 과거청산 정의로운 역사화해를 위하여

한일양국은 뗄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다. 한일양국의 선린우호는 서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일본제국이 멀지 않은 과거에 불의한 침략전쟁을 벌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주었던 전범국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범국 일본은 피침략국이 당한 수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 수모와 치욕을 함께 기억하고 선린우호가 회복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악한 착상으로 피식민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연행하여 감금 폭행한 반인륜적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국가가 주도하여 실행하였다.
패전 70년 만에 분명하고 성의있는 사죄도 없이 20만 피해자 1인당 5만원 정도 되는 10억 엔이란 돈을 내놓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우기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야만적 전쟁범죄를 반성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슬그머니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시켜 놓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강행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과거 불법 침략이 전쟁범죄로 판명났음에도 아직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교과서로 차세대에게 왜곡된 역사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선린우호를 저해하고 분쟁을 야기하려는 오만무례한 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침략야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일 양국의 정직한 과거청산과 정의로운 역사화해로 평화공존의 길을 함께 가면서 소중한 동반자로 동행하기를 기대한다.

2018.3.31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 길’ 김판수 두손모음

금, 2018/04/20- 14:53
44
0

[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금, 2018/04/20- 22:37
79
0

방ㅇ경씨와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최종승리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12일, 조희대 대법관을 재판장으로 한 대법관 4명의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방ㅇ경씨의 상고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내려진 “5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과 3심까지 모두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ㅇ경씨는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방ㅇ경씨의 트윗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ㅇ경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ㅇ경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전 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ㅇ경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이후 대법원에 보낸 상고이유서도 연구소에 대해 “대한민국에 적대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과 궤를 같이 하여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단체에 불과” 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라 방ㅇ경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은 현재 진행중이며 5월에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방ㅇ경씨는 얼마전 가수 겸 작곡가인 윤상씨를 비난하는 트위터를 날렸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방모씨는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라는 비난성 트위터를 날렸으나 윤상씨 본명이 이윤상 이란 것이 알려지며 역대급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금, 2018/04/20- 17:41
34
0

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사무국

일, 2018/04/22- 15:08
57
0

告雩南李承晩崇仰輩

 

雩南臨政敵(우남임정적)

國父可當耶(국부가당야)

問罪過完用(문죄과완용)

多功或莫誇(다공혹막과)

 

雩南 이승만을 崇仰하는 무리에게 고함

 

이승만은 임시 정부 敵이었느니

國父라 일컬음이 可當키나 한가

罪를 물은즉 이완용보다 더하니

功이 많다, 或 자랑 따위는 말라.

 

<時調로 改譯>

 

臨政의 敵이었느니 國父 호칭 可當한가

그의 罪를 물은 바, 저 이완용도 넘으니

공적이 多大하다며 혹 자랑하지는 말라.

 

*雩南: 이승만의 號 *崇仰: 공경하여 우러러봄 *臨政: ‘임시 정부’를 줄여

이르는 말  *國父: 나라의 아버지란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

*可當: 대체로 사리에 맞음 *問罪: 죄(罪)를 캐내어 물음.

 

<2016.9.26, 이우식 지음>

월, 2018/04/23- 12:58
13
0
굿바이 마이 러브, NK Goodbye My Love, North Korea 연출 김소영│2017│Documentary│89min 38sec│HD│Color│16:9│stereo 언어 : 러시아어/한국어|자막 : 한국어, 영어 배급: (주)시네마달 SYNOPSIS 8명의 북한 청년들이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김일성 체제 비판 후 유라시아로 망명해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 등으로 다른 세상과 만난다 8명의 북한 청년들이 ..
월, 2018/04/23- 17:10
261
0

〈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10기운영위원회(위원장 이민우) 김순흥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 2017년 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 정관개정안 심의 이사회에 회부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개정 이유〉
1) 분기별(년 4회)로 열리는 운영위원회가 일상 업무를 심의 의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장과 운영위원장 사무총장 운영위부위원장 5인과 실국장 5인으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매월 개최하여 그 공백을 메우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해 결정한다는 취지이다. 이는 집행부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참여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담보하는 내용인 것이다.
2) 임원은 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 등이다. 그런데 ‘임원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는 운영위원회 조항을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이 마치 위원회의 배타적 독점적 권한인양 고집함에 따라 이사장 이사들의 임원추천권을 부인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는 상급 기구인 이사회의 재량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법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에 통례에 준해 임원은 이사장 이사 운영위 등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총회에서 인준하는 과정이 합리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3) 지부사업 중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 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지부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것으로 하였다. 지부총회의 주요안건은 예결산 및 사업계획 수립과 지부장 선출이다. 지부장은 운영위 인준과 이사장 임명을 거쳐야하므로 당연히 운영위원회 승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목적사업 외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유는 강세형 전 전남동부지부장의 사례와 같이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전혀 다른 정치적 사업에만 집착하여 지부를 형해화하고 회원들의 이탈을 조장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문을 구체화함으로써, 연구소 본연의 과제를 방기하거나 지지자 몇 사람으로 총회를 열고 그 결과를 회원의 총의로 분식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소결〉
정관개정은 2016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개정소위에서 마련한 초안을 여러 차례 운영위에서 논의를 하고 제출된 의견을 수렴하여 개정소위에서 재검토한 뒤 다시 운영위 심의를 거쳐(만장일치 통과)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정관 개정은 업무의 효율성 및 운영위와 집행부의 소통을 위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운영위원회가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논의해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여인철 전임위원장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외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개정 정관으로 인해 사무총장의 1인지배체제가 되었다는 소설에 가까운 망상은 동정이 갈 정도로 평가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여인철 씨는 정관 개정의 본의를 왜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해 둔다. 

화, 2018/04/24- 16:03
54
0

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4/24- 16:04
115
0

작년 가을에 민문연에 가입한 새내기입니다.

친일청산과 이승만 박정희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용기 있게 발표한 민문연에 평소에 품고 있던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뒤늦게나마 후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보인 민문연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민족 자존의 대의를 위하여 일한다는 분들의 회의 진행 모습은 전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참가한 회원들 중 많은 분들도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총회에서 받은 충격과, 그리고 반대자들을 제명하겠다는 후속조치에 대단히 실망하였습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곳에서 저들과 똑같이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나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 회비 감축을 하고자 합니다. 최소 회비인 월 1만원으로 감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민문연이 촛불시민의 수준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때에, 타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다시 증액하고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민족의 등불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전 김영수

 

 

화, 2018/04/24- 14:48
19
0

(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4편; 임시정부의 활동과 좌절 그리고 이승만의 패악질’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구요
목요일은 ‘미리 가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화, 2018/04/24- 16:59
25
0

자유게시판에 댓글 달기 기능은

일부러 뺀 것입니까?

일부러 뺐을 리는 없겠지요?

연구소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테니까요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1만여 회원들만의 연구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고 또 정말 어려울 때 3000원 5000원 후원했으며, 혹 금전적 후원을 못해도 마음으로 성원하고 사랑하며 지지한 많은 국민 또는 시민들의 연구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위한 열린게시판에서 게시된 사안과 의견에 대하여 당연히 읽은 이의 의견을 달거나 의문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홈페이지는 댓글 다는 기능이 없습니다.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입니까?

자칭? 완벽에 가깝다는 연구소가

어느 연구소보다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헌신적인 전문 상근 담당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면서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웃겠지요?

이 글을 읽는 즉시 빼야만 했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기능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1만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찾아와서

전 국민이 찾아와서

각자 연구소에 대한 칭찬도 격려도 비판도 생각도 말하고 공유하는 연구소가 되고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한시바삐 댓글달기 기능을 살려 주세요

수, 2018/04/25- 00:58
84
0

奉賀全琫準將軍之銅像建立

 

腐邦東學起(부방동학기)

義血大男兒(의혈대남아)

亂政今綿歷(난정금면력)

民號立像碑(민호입상비)

 

전봉준 장군의 銅像 건립을 삼가 賀禮하며

 

푹 썩은 나라에 東學이 일어났으니

정의의 피를 흘리신 큰 男兒였도다

어지러운 정치 지금도 죽 이어지니

民은 부르짖으며 銅像과 碑 세운다.

 

*全琫準: 조선 후기  東學  농민 운동의 지도자(1855~1895).  初名ㆍ字는  명숙

(明叔). 號는 해몽(海夢). 고부 군수 趙秉甲의 수탈에 항거하여 농민 운동

일으켜 猛威를 떨쳤으나, 官軍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義血: 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 *亂政: 어지러운  정치 *綿歷: 쉬지  않고  계속됨.

 

<2018.4.24, 이우식 지음>

수, 2018/04/25- 09:25
49
0

회원 김점구입니다

지난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개 회원인 제가 상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쌍방의 주장을 듣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판단은 보류하고 있습니다.
쌍방의 주장을 보면 
서로 극단에 서 있고, 서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동안 들리는 소문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 저를 탓하며, 회원으로서 현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극단적 상황이 2018년 3월 24일 총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몇 년에 걸친 대립과 갈등이 커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판단 보류입니다.

총회에 대한 소감은 이전에 밝혔으므로 생략하고
4월 24일 자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 건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관에서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크게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운영위원회가 게시한 글에 따르면 정관 개정 건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부터 논의되었습니다.
———
〈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제10기 제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여 이사회에 회부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은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가 이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인철  전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당시(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제안되거나 의견이 모아졌다면,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 또는 의혹제기는 터무니없고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인철 위원장 자신이 책임자로서 관여했던 규정개정소위를 부정하는 작태이고, 자신이 시작한 일을 남에게 탓을 돌리려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하여 제안 또는 논의가 없었다면 굳이 여인철 전 위원장을 개정 과정에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관 개정의 연혁을 소개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과정을 모르는 회원의 입장에서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소개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의도했다면 현 운영위원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8/04/25- 14:28
11
0

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두차례 소위에 다 참여한 사람은 저밖에 없네요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한데 제가 대전 출장중이라

내일 정도에 간략하게라도 정리해 올리지요

수, 2018/04/25- 15:24
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