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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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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익명 (미확인) | 목, 2017/09/14- 13:34

 ◎ 2부 [인터뷰 제 1 공장]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 이준식 관장 (근현대사기념관)

김어준 :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이죠. 그런데 이 날이 아니라 이번주 일요일 9월 17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대정부 질의에서도 국무총리 상대로 이 질문이 나왔었는데, 국군의 날 변경을 주장하시는 분입니다.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준식 : 예, 안녕하세요.

김어준 : 9월 17일이 무슨 날입니까?

이준식 : 예, 임시정부 산하 국군인 한국광복군이 창군된 날입니다.

김어준 : 광복군 창군날이다. 그러니까 국군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하던 광복군이 처음 만들어진 날이 국군의날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네요, 한마디로. 그 말을 듣자마자 설득되려고 하는데 그게 그러면 언제입니까?

이준식 :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충칭에서 광복군이 창군되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임시정부는 그 전부터 있었지 않습니까?

이준식 : 예, 임시정부는 1919년에 출범했는데요.

김어준 : 그래서 그걸 건국으로 봐야 된다. 뭐 이렇게.

이준식 : 요즘 그런 얘기도 나오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건국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마는, 1919년 중국에서 임시정부가 출범했는데 임시정부가 1920년에 바로 독립전쟁 원년이라는 것을 선포합니다. 1920년에 우리가 일제에게 전쟁에서 져서 국권을 빼앗겼으니까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시 일본과 전쟁을 해야 된다. 그래서 독립전쟁이라고 하고 1920년이 독립전쟁 첫 해다. 전쟁을 하려면 군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임시정부 산하의 국군을 만들겠다는 구상에 착수를 하는데, 당시 중국이 남의 땅이니까요. 남의 땅에서 군대를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어준 : 다른 나라, 그 나라가 인정해 줄 리가 없지요.

이준식 : 예, 인정해 줄 리가 없어요. 군대를 만들기가 쉽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하고 연계해서 국군을 활용하겠다.

김어준 : 임시정부하고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던 독립군들을.

이준식 : 만주독립군을 임시정부 산하로 편입시켜서 국군을 만들겠다는 그런 구상을 갖기도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국군을 만든다는 게 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의 오랜 꿈이었는데요, 그 꿈이 1940년에 실현이 된 겁니다. 그래서 임시정부 산하 국군으로 한국광복군을 창건하게 되죠. 정식으로 군대를 만듭니다.

김어준 : 사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모든 망명정부가, 그 나라에서 정부를 두지 못하고 망명하게 되는 망명정부가 결국은 자기들 원래 땅을 점령하고 있는 식민본국이든, 또는 그 순간 침략해 온 나라든 간에 상대해서 이런 군대를 만들려고 하죠. 군대가 없으면 싸워서 다시 되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1940년에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공식적으로 창군하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실제 그때 부대라고 할 만한 인원도 있었습니까?

이준식 : 처음에는 주로 사령부 중심의 군대였습니다. 장교가 더 많았던. 사병보다 장교가 더 많았던, 어쩔 수 없죠. 왜냐하면 당시 중국 안에 사병이 될 수 있는 우리 동포수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김어준 : 동포 수가 있다 하더라도 몰래 사병이 돼야 하는 거니까.

이준식 : 그리고 대개 독립운동하시는 분이 나이가 많으니까 사병은 상대적으로 적었죠. 그러면서도 한국광복군이 계속 사병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요. 그래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그래도 꽤 많은 병사들을 확보하는 성공을 했고요.

김어준 :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 땅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창군됐다고 주장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실체가 적더라도 생겨버리기 시작하면 가만두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준식 : 많이 알려지기로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견제를 많이 했습니다. 왜냐면 자기 땅에서 군대 만들겠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엔 견제를 많이 했습니다. 견제하는 방법이 한국광복군을 만들되 중국 국민당 군의 통제 아래에 두겠다. 요즘 말로 하면 통수권, 작전권이죠. 통수권을 중국 정부가 갖는다는 조건으로 한국 광복군을 승인하려고 하니까.

김어준 : 굉장히 뭔가 서글픈데요. 왜냐하면 지금도 한국은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임시정부가 창군할 때부터 중국이 또 작전권을 행사하겠다고.

이준식 : 그래서 임시정부가 단안을 내립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광복군을 창군하는 거죠. 근데 창군을 했다고 하더라도 활동을 하려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중국 국민당 정부가 지원하기는커녕 계속 견제를 하니까요, 방해를 하니까요. 할 수 없이 광복군의 통수권을 중국 국민당에게 넘겨줍니다. 굴욕적인거죠. 사실 따져보면.

김어준 : 이해갑니다, 저는. 그렇지 않을 방법이, 도리가 별로 없을 것 같으니까요.

이준식 : 그래서 한 2-3년에 걸쳐서 임시정부하고 광복군이 통수권을 되찾기 위해서 굉장히 애를 많이 씁니다.

김어준 : 지금 역사의 복사판이네요.

이준식 : 네, 1944년에 드디어 통수권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1944년에 정말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되는 거죠.

김어준 : 선배들이 훨씬 낫네요, 4년 만에 찾았으면.

이준식 : 네, 4년 만에 찾았으니까 굉장한 성과죠.

김어준 : 저희는 지금 육십 몇 년 동안 못 찾고 있는데. 어쨌든 지금 우리 국군이 미군에게 작전통제권을 넘기고, 전작권을 넘기고 아직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는 오리지널 버전이 광복군 창군 때도 있었다.

이준식 : 한국광복군이 의미가 있는 것은 임시정부 산하의 자주적인 군대가 되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고, 또 그것을 실현했다는 겁니다.

김어준 : 그게 싫어서 일본의 소위 강점이 싫어서 거기까지 가서 군대를 만들어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또 중국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체질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어쨌든 4년 만에 또 되찾았다. 그러면 실제 중국군, 당시 인민군하고 같이 작전을 했다든가. 그러니까 중국이 당신들은 별개의 군대라고 인정을 해야 같이 작전을 할 것 아닙니까? 그런 연대작전을 했다는 기록은 있습니까?

이준식 : 1944년에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군사협정을 맺고요.

김어준 : 군사협정을 맺었다. 확실하게 인정한 거네요. 협정을 맺었다면.

이준식 : 중국이 독자적인 군대로 인정을 한 거죠. 그리고 1943년, 1944년 무렵부터는 다른 연합국 군대인 영국군, 미국군과의 공동작전도 추진해서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는 유명한 한국광복군의 독수리작전이라는 게 미군과 공동으로 추진이 됩니다.

김어준 : 이건 뭐 부인할 수 없는 독자적인 작전권을 가지고 있었던 군대가 확실한데, 그럼 지금 국군의 날은 10월 1일은 뭘 기념하기 위해서 된 겁니까?

이준식 :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1950년, 그러니까 6?25전쟁 와중이죠. 6?25 전쟁 때 육군 제 3사단이 38선을 처음 돌파해서 북진에 성공한 날이다. 그래서 그 날을 기리기 위해서 10월1일을, 1956년 이승만 정부 땝니다. 이승만 정부 때 10월 1일을 국군의날로 지정했다는 얘기가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1954년인가요, 1953년인가요?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는데 이게 10월 1일입니다. 그래서 10월 1일이 어쨌거나 의미 있는 날이다. 그래서 1956년에 처음으로 국군의날로 지정을 했습니다.

김어준 : 38선 돌파한 것도 의미는 있지 않습니까?

이준식 : 38선돌파도 의미가 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것도 의미가 있긴 하죠. 그런데 그런 날이기 때문에 국군의날로 지정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어준 : 사실 국군의날 하면. 보통 무슨 날, 한글 창제 했던 날을 한글날이라고 하는 거죠. 제헌절하면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이것도 국군의날 하면 당연히 막연히 국군이 창설된 날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준식 : 국군이 창설되거나 아니면 국군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 : 38선을 돌파한 날이군요, 이게.

이준식 : 그래서 국군이 역사가 시작된 날을 찾다보니까 그래도 광복군 창건일이 가장 어울린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김어준 : 당연히 그런 데 있어서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 같거든요? 애초에 광복군이 1940년에 창설이 되고 중국과 군사협정도 맺었고 미군과 당시 공동작전도 했다면 규모는 작더라도 국군의 뿌리가 확실하니까. 한글도 지금 한글하고 똑같지는 않거든요, 되돌아가면. 문자도 달라요. 어법도 다르고. 하지만 그 때 창설, 만들어진 게 확실하니까. 그런데 보수진영에서는 반대한다고 하는데 왜 반대하는 겁니까?

이준식 : 보수진영에서 반대하는 건 건국절 논란하고 직결이 되는데요, 보수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역사가 1948년 8월15일부터 시작됐다고 얘기하지 않습니까?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은 무관하다고 얘기하니까요. 그러니까 국군의 날도 광복군 창건일로 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김어준 : 당연하네요. 그걸 인정하는 순간 48년이 아니라 40년대부터 군대가 있다고 해야 되니까요.

이준식 : 예. 거슬러 올라가면 광복군이 창건되기 이전에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인정을 해야 되고 그게 싫은 거죠.

김어준 :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인정하기 싫은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보수진영에서.

이준식 : 대한민국 건국은 독립운동과 무관하다고 보는 겁니다. 독립운동 때문에 대한민국이 건국된 게 아니라, 흔히 말하는 건국세력이라고 그러죠. 건국세력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주장을 하고 싶은데 그 건국세력이라는 게 내용을 보면 두 부류입니다. 하나는 친일파고 하나는 정치깡패입니다.

김어준 : 아, 그랬습니까? 정치깡패 얘기도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이준식 : 정치깡패가 이른바 건국과정의 반공반탁 운동을 주도한 세력 중에 하나거든요. 우리는 정치깡패라고 하지만 그쪽에서는 애국세력이라고 하겠죠. 애국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건국이 가능했다.

김어준 : 지금 가스판 들고 아스팔트에 나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었잖아요? 프로판 가스통 들고. 그걸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한쪽에서는 그분들이 애국세력인 것이고 무관한 제삼자가 보기에는 정치깡패 아니냐. 그런 세력과 친일파가 소위 이승만 정권의 탄생에 핵심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 많이 하죠. 우리 보수진영의 뿌리가 친일파에 맞닿아있는 거 아니냐.

이준식 : 친일파라는 말을 하기 싫으니까 건국세력이라는 말로 미화하는 거죠.

김어준 : 실제 친일파라고 불릴만한 세력이 이승만 정권의 주축을 이뤘습니까?

이준식 : 예를 들어 군만 얘기하자면요, 이른바 국군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1960년까지 국군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육군참모총장을 보면 모두 다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었습니다. 60년까지 그랬습니다.

김어준 : 박정희 전 대통령도 뭐 일본 장교 출신 아닙니까.

이준식 :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지는 않았으니까. 육군참모총장 명단만 놓고 보면 십 몇 년 동안 만주군 내지 일본군 출신이 육군참모총장을 지냈고. 결국 육군의 주류가 일본군 출신이라는 얘기죠.

김어준 : 만주군이라는 게 독립군 때려잡던 군이거든요, 정반대로.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게 아니에요, 만주군은.

이준식 :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군의 국군이죠.

김어준 : 그 역할이 독립군 때려잡는 것 아니에요.

이준식 : 예, 독립군 때려 잡는. 항일세력 때려잡는 게 만주군이 하는 일이었죠.

김어준 : 다른 나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보통은 초기 건국세력들이 대부분 이런 역사를 거친, 터키도 그렇고. 대부분 독립운동하던 쪽에서 초기 대통령을 내놓거나.

이준식 : 군도 독립군 출신들이 주도권을 잡는 게 정상적인 거죠.

김어준 : 너무 당연한 건데 우리는 독립군을 때려잡던 쪽에서 군을 장악했었다, 초기에.

이준식 : 그러니까 국군의 뿌리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게 된 거죠.

김어준 :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신 걸로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추천받았는데, 선생님을. 왜 이렇게 관심을 가지시게 된 겁니까?

이준식 : 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고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까 당연히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요.

김어준 : 그리고 부모님한테 얘기를 들으셨겠군요, 쭉.

이준식 :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독립운동사를 공부를 했고요. 독립운동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독립운동사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김어준 : 그럼 혹시 부모님도 광복군 출신이셨나요?

이준식 : 어머니가 광복군 출신이셨습니다.

김어준 : 어머님이요? 아버님이 아니고요? 그럼 혹시 어머님의 아버님 외할아버지가 혹시.

이준식 : 외할아버지도 광복군이셨고요.

김어준 : 그쪽 핏줄이시군요. 우리는, 저도 어릴 때 독립군에 대해서 별로 안 배웠어요. 그냥 독립운동을 조금 했다. 그게 어마어마하게 긴 장이어야 할 것 같은데. 한 두 페이지 배웠던 것 같아요.

이준식 : 지금은 많이 가르치죠. 왜 그러냐 하면 1987년 헌법이 개정되지 않습니까? 우리 현행 헌법인데, 현행 헌법 전문에 뭐라고 되어 있냐면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 후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을 완수해야 될 사명을 갖고 있다’고 적어놨거든요. 거기서 독립운동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헌법 전문에 나와 있으니까 적어도 80년대 후반 이후에 한국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지금은 독립운동사를 많이 가르칩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중간에 제가 잠깐 말씀드리면 만주군 출신 쪽의 반론권도 저희가 보장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얘기를 중간중간 많이 하는데 반론으로 연락 오는 적이 사실 거의 없어요. 거의 없긴 한데, 자, 이래서 10월1일이 국군의날이면 당연히 국군이 창설된 날이어야 하는 게 맞고, 논리적으로. 다른 날들은 다 그러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따져보니 있다실제로, 광복군이 창건된 것이. 그리고 주변국에 의해서 독립된 군대로 인정도 받았고 협정을 맺은 기록도 있고 공동작전의 기록도 있다. 게다가 국군이 38선을 통과한 날이 의미가 있으나 실제 그 국군이 소위 이승만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한 걸로 보여지는, 그런 국군의 구성이 일본군이었지 않느냐. 일본군 출신, 혹은 만주군 출신이었지 않느냐. 그러니 법통을 따지자면 당연히 9월 17일로 옮기는 게 맞다. 이 정도로 요약하면 되는 거죠?

이준식 : 예, 정확하게 요약하셨습니다.

김어준 : 제가 요약은 잘 해요. 깊이는 없는데. 그런데 이런 반론도 제가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이게 왜 이렇게 연결되는지 논리적으로 머릿속에 구성은 안 되는데, 국군의날을 그렇게 바꾸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사실이, 그 사실의 의미가 퇴색된다. 왜 퇴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게 주장합니다.

이준식 :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런 주장을 하더라고요

김어준 : 그러면서 북한에 정통성을 주게 된다. 이것도 모르겠는데. 북한에 정통성을 주는 것은 오히려 지금 국군의날 아닌가요? 북한에서는 지금 독립운동을 자기들이 주로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준식 : 예, 그건 사실이에요. 북한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강조하는 독립운동이거든요. 1919년에 대한민국이 출범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김어준 : 인민군 창설되기 전에 무슨 소리냐 지금 광복군이 있었는데.

이준식 : 광복군이 창건됐다고 하는 게 훨씬 더 정통성 문제에서 유리한 거죠. 그런데 왜 스스로 불리한 쪽을 택하려고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김어준 : 지금 주장은 불리해요. 왜냐하면 친일파가 합참, 군을 통솔했던 군대를 가지고 정통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거니까요. 북한에서는 어쨌든 독립운동을 하던 쪽이, 북한 쪽 사이드에서는 군의 기본창설 단위가 됐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불리하죠. 바꿔야 되는 거였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의미를 퇴색시킨다. 이게 무슨 주장입니까? 어떻게 이해하셨어요?

이준식 : 보수세력에서 흔히 그렇게 얘기하는데요, 해방되고 난 다음에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유엔에서 결의를 합니다. 한반도에서 총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해라. 원래 유엔 결의안에서는 한반도 전체에서 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게 잘 안됩니다. 북쪽에서 선거를 거부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유엔에서 그러면 선거가 가능한 남쪽에서만 총선거를 해서 정부를 구성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유엔 결의안에 보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 이렇게 돼 있습니다.

김어준 :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

이준식 :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라, 그런데 보수세력에서는 그걸 자꾸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고 해석을 하는 건데요. 정확하게 문구가 어떻게 되냐면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유일한 합법정부. 그리고 영어 표현에 주목을 하면요 정부입니다. government입니다. 국가가 아니라. 그러니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일부로서의 대한민국 정부. 이렇게 되는 거죠.

김어준 : 이해했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준식 관장님이었습니다.

이준식 : 예, 고맙습니다.■

<2017-09-13> tbs

☞기사원문: <김어준의 뉴스공장> 이준식 “‘광복군 창설일’이 국군의날이 되어야…”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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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1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목, 2017/08/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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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판사가 역사에 무식..즉각 항소할 것”

 

정미홍 전 아나운서. 2017.3.8/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血書)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58)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는 31일 한국 근현대사 비영리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아나운서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전직 아나운서로 대중의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에 명예훼손글을 무분별하게 실은 경우 통상에 비해 높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용한 링크글의 논지가 분명하지 않고 전파가능성도 낮은 점을 감안해 벌금 30만원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트위터로 글을 단순히 리트윗한 것이라 해도 타인의 글이 명예훼손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며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바, 증거도 없이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했다고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신문을 내세우기 전 과거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삼았지만 만주일보에 박 전 대통령의 혈서 기사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기에 박정희 혈서설은 조작됐다는 취지”라고 밝히고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해왔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아나운서는 선고 중 판사를 향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방송에 나와 만주일보에 (박정희 혈서설)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며 “위증죄로 증인을 고소한 건이 현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고 판사에게도 증거로 제출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선고 후 기자와 만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기에 저에 대해 인신공격 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판사가 링크글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무식하기 때문으로, 역사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39년 3월 31자 만주신문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라’라는 혈서를 썼다고 2009년 밝혔다.

정 전 아나운서는 2013년 2월 ‘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혈서 기사 조작’이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인용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글은 ‘지난 5년간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고 주장했으나 만주일보는 1908년 폐간된 신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7월 강용석 변호사와 정 전 아나운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각각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강 변호사가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고,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원심을 확정했다.

 

<2017-08-31> 뉴스1

☞기사원문: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 1심서 벌금 30만원

※관련기사

☞ 연합뉴스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원

☞ SBS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 원

☞ 머니투데이 :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씨, 1심서 벌금 30만원

목, 2017/08/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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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 모독하는
박성진 장관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1.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야심차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활력 제고와 균형 있는 성장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후보자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지명함으로써, 정작 당사자인 중소상인들로부터 “이럴 거면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는 항의와 함께 지명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2. 박성진 후보자는 이승만 독재를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새마을운동을 “국민의 정신개조 운동,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 평가했고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긴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삶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일 프레임, 편협한 민족주의, 과도한 민주주의, 갑을 논쟁” 등 “계층적 분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를 승계한 것이 된다.

3.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때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초청해 ‘건국 세미나’를 벌인 인물을 중기부 장관후보로 지명하는 자기모순을 범하였다.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박성진은 생활 보수일 뿐이며…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인재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였다. 인사검증이 허술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 청와대가 ‘이승만-박정희 신도’인 박성진 중기부 장관 지명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자 새롭게 집권한 민주정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포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촛불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박성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끝>


2017년 9월 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금, 2017/09/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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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의 날’을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날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경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현재 경찰의날은 1945년 해방 후 당시 미군정이 미군정청에 경무국을 창설한 10월21일이다. 1957년 11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날로 지정했고, 1973년 제정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 주관 기념일로 확정됐다.

이재정 의원의 개정안은 1919년 11월5일에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관제’에 따라 설치된 경무국 창시일을 경찰의 날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초대 경무국장을 역임해 경무국이 임시정부 청사를 경비하고 임시정부 주요 인물들을 경호하게 했다”라며 “일제의 정탐을 방지하고 밀정을 찾아내는 등 경찰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를 두고 “헌법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돼 있다”라며 “11월5일로 변경해 경찰의 효시가 일제 강점기 이후 미군정기의 과도기적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경무국에 있음을 명확히 해 경찰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11월5일을 경찰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당시 “현재 경찰의 날인 10월21일은 한국 정부 수립 전인 1945년 미군정 시기에 경무국이 창설된 날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경찰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날을 변경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된 헌법정신과 식민잔재 청산 의미에 부합한다”고 했다.

2009년 5월 당시 민주당 김희철 의원도 같은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 날을 11월5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경찰 내부망에 일선 경찰관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경찰관은 “해방 이후 ‘친일 경찰’ 재등용은 경찰의 가장 가슴 아픈 실책”이라며 “경찰의 첫 시작을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삼고 독립과 친일파 처단 등의 역할을 한 선배 경찰들을 찾아 기리는 등 임시정부 경무국의 역사를 경찰사로 편입한다”고 썼다. 또 “그래야 ‘친일 경찰’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 경찰이 되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특히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든 경찰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안은 경찰개혁위원회 내부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당시 경무국 창설일을 ‘경찰의 날’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이 외에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문제 등 다른 여러 기념일 변경도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09-01>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경찰의 날’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 법안 추진···경찰 내부에서도 의견 나와

금, 2017/09/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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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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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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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9강 식민통치 마케팅 – 박람회와 기념축전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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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금, 2017/09/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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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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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금, 2017/09/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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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직원이 ‘제국과 유신의 검찰’이라는 서적을 펴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권력은  일본 제국주의 법률조항  표절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관예우는 일본 제국주의 황실 법령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법치에 반하는 검사실에서의 조서작성 관행(검사대신  참여직원이 신문)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검사가 조선인을 불령선인 취급하던 업무 방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책에는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이를 옹호하거나 본분을 다하지 못한 학자, 정치인, 법조인, 검사, 판사, 공무원, 교육자, 언론인 등 지식인, 공직자, 지도층 사람들이 매우 화가나거나 부끄러워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토록 저주하였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토, 2017/09/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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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 혁명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청산의 의무가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가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책임자 조사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광주학살은 돌발사건이 아니었다. 군은 제주 4·3사건,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다시 제암리 사건,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해방 이후 군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들이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역대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었다. 제주 4·3사건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니 광주학살의 진상 규명은 더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이어져야 한다. 군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본군 잔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독립군의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28일 언급한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립운동의 정점은 무장투쟁이다.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인 1920년에 이미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군’을 창설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17일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다. 광복군이 있었기에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국군의 창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잇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친일군인들이 장악한 군은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에서 1956년에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육군 제3사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한 1950년 10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적혀 있다. 북진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 국시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북진을 기념하는 날로서 국군의 날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게다가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사단장은 친일군인이던 정일권과 이종찬이었다. 제3사단은 백색테러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사단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제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친일파와 정치깡패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던 이승만정권다운 일이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립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로 삼아야 하며 그 일환으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령으로 정해지는 기념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가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국경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 부처 차원에서 기념하는 ‘각종 기념일’이다. 각종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국군의 날은 각종 기념일에 속한다. 그러니 대통령령만 고치면 국군의 날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쾌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7-09-04>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9월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 이준식

화, 2017/09/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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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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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로 되고 있다.
8월 전쟁위기설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북한의 최첨단 핵무기들이 하나 둘씩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6차 핵실험이 진행되었고, 이것은 지난 괌 타격 유보를 이제는 집행할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9월 9일은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일 중의 하나로,
광인 트럼프의 막말대잔치와 미국의 뒷구녕을 핥아대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 대북제재 망발에 대한 응징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주요 해외 언론의 동향은 괌 타격이 9월 9일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목, 2017/09/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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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가족 철수!! 목동 원어민 강사들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주한미군 가족철수 훈련을 진행한 일이 있었고, 올해에도 유사하게 진행된 북한 공격시 대피훈련이 4월, 6월 연일 계속되고, 이제는 민간인 영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목동, 대치동 등에서 돼지엄마들의 입소문이 대박이다.
주한미군 가족뿐만 아니라 실제 원어민 강사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데, 난리도 아니라는 것. 실제 전쟁공포로 원어민 강사들의 요청으로 심리치료사 소개를 해준 일도 있다는 것.

[관련기사]
주한미군 가족, 北 공격 대비 대피 훈련
입력 2017.06.06 (21:07) | 수정 2017.06.06 (22:12) 뉴스 9

<앵커 멘트>
주한미군이, 유사시 미군 가족들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지난해 7년만에 재개한 데 이어, 올해도 또 실시했습니다. 배경이 무엇인지, 우한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배낭을 짊어진 미국인들이, 공군 수송 헬기로 향합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일행은 헬기에서 버스로 다시 수송기로 갈아탑니다. 배낭에는 비상식량이 담겼고, 이동 때마다 신원 확인을 거칩니다. 유사시 만7천명에 이르는 미군 가족 등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훈련입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족들을 주일 미군 기지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훈련에 자원한 미군 가족 150명은 어제부터 서울에서 평택, 대구를 거쳐, 주일 미군기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내 미군 가족 대피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전략 무기 전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미군은 최근 동해 상에 항공모함 두 척을 전개한 데 이어, 오늘(6일)은 핵 잠수함 샤이엔 함을 부산항에 입항시켰습니다.

<녹취> 신종우(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 “미군의 화기에 의해서 미국인이 피해를 볼 수 있잖아요. 훈련을 통해서도 미국인을 소개시키고 한반도에 전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근 며칠간 북한 지역에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의 움직임이 관측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군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목, 2017/09/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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