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팟캐스트 ‘역적’ 13화 1부 –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7편 – 박정희 신화의 허구 ④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13화 1부 –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7편 – 박정희 신화의 허구 ④”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13화 1부 – “뉴라이트 역사 쿠데타 7편 – 박정희 신화의 허구 ④”
過寒露寄友人
霜降丹楓落(상강단풍락)
還鄕與我吟(환향여아음)
爲君新釀酒(위군신양주)
共醉臥空林(공취와공림)
寒露를 지나 벗님에게 띄우는 글
서리 오고 우수수 단풍도 지면
고향에 돌아와 나와 詩를 읊세
그대 위해 새로 술도 빚었으니
함께 취해 空林에 누워도 보세.
<時調로 改譯>
霜降에 단풍도 지면 還鄕하여 詩를 읊세
그대 벗님을 위하여 새로 술도 빚었으니
둘이서 함께 취하여 空林에 누워도 보세.
*友人: 벗 *霜降: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
에 들며, 아침과 저녁의 기온이 내려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10월
23일경이다 *還鄕: 고향(故鄕)으로 돌아옴 *釀酒: 술을 빚어서 담금. 온양(醞釀)
*空林: 나뭇잎이 떨어져 공허한 숲. 또는 인가(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숲.
<2018.10.12, 이우식 지음>
[앵커]
일본 오키나와에서 조선인 묘표가 확인됐다는 소식 어제(15일) 전해드렸는데요.
오키나와 곳곳에 조선인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의 유해가 발굴돼 국내로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유해 반환에 대한 논의도 답보 상탭니다.
윤봄이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키나와 본섬의 최남단.
패전을 앞둔 일본군이 후퇴해 주둔했던 숲입니다.
미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곳인데, 조선인으로 구성된 특설수상근무대도 이 일대에 주둔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유해 발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렇게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와 발굴 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손을 놓은 사이, 유해 발굴을 계속 하고 있는 건 자원봉사자 대여섯 명입니다.
[“(뭐가 나왔나요?) 손가락뼈. 아마도 이 부위인가? 손인지, 발인지 아직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발굴된 유해는 오키나와 현에서 임시 보관하고 있는데, 대부분 DNA 확인도 못했습니다.
[구지켄 다카마츠/유해 발굴 자원봉사자 : “지금까지 발견된 유골 중에 조선인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발굴 현장 인근엔 유골 3만 5천구가 묻혔다는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전쟁 직후 농부들이 밭을 갈 때마다 유해가 쏟아져 나와, 이를 한 번에 묻고 탑을 세운 겁니다.
[오키모토 후키코/강제 동원 조선인 연구자 : “(조선인 부대가) 이곳에서 전멸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인들의 유골도 이 혼백의 탑 아래에 들어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미군이 일본군 포로 7천 명을 감시했다는 수용소 자리.
이 해안가엔 지금 마을이 들어섰고 포로수용소 터를 표시하는 비만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한 단체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확인한 매장자 명단.
조선인으로 보이는 이름도 여럿 확인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산속부터 해안까지, 오키나와에서 숨지거나 행방불명된 조선인은 최소 7백여 명.
조선인 유해가 발굴돼 반환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정부 차원의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 “일본 정부와 유해 반환 교섭에서 어떤 내용을 요구했고, 이후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희가 수차례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외교적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
오키나와 외에도 소재가 파악된 한국인 유골은 2천 8백 위에 달하지만, 정부 차원의 유해 반환은 2010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KBS 뉴스 윤봄이입니다.
<2018-08-16> KBS
민주당 민주연구원 국립현충원 이장 추진
“친일인사와 함께 모실 수 없다” 반대 거세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열사 7위선열의 사당인 의열사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제공)2017.3.25/뉴스1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복무하며 독립투사 소탕에 앞장섰던 김창룡(1902~1956)은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다. 바로 맞은편 묘역에는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모친 곽낙원 여사(1858~1939)와 장남 김인(1917~1945)이 잠들어 있다. 친일논란 대상인데다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받는 인물과 독립투사의 유족이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김구 선생의 묘소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한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비슷한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효창공원에 안장된 김구 선생과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를 국립현충원으로 이장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8월15일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직접 찾아 참배해 임정 법통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인사는 서울에 37명, 대전에 26명이다.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규정된 인물 중에는 서울에 7명, 대전에 4명이 묻혔다. 이 때문에 친일인사의 이장을 위해 국립묘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여당이 임시정부 주석을 예우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건 일리가 있다”면서도 “김창룡을 비롯해 친일인사들이 국립현충원에 남아있는데 그곳에 백범을 모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박 실장은 “역사적폐 청산 차원에서도 친일독재를 반대한 민족인사를 반민족인사와 함께 모신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이장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구 선생은 생전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 독립운동 동지들 곁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 외에도 항일투쟁 중 순국한 윤봉길(1908~1932), 이봉창(1901~1932), 백정기(1896~1934) 3의사의 묘소와 유해를 찾지못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가묘도 설치됐다. 이동녕(1869~1940), 조성환(1875~1948), 차이석(1881~1945)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의 묘소도 있다. 이는 모두 김구 선생이 해방 후 직접 조성해 의미가 크다.
이장보다는 현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게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합당한 예우라는 지적도 있다. 친일인사가 섞여있는 현충원보다 독립투사들만으로 조성된 효창공원이 역사적 성지로서 더욱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출입이 제한되고 일부 부지가 훼손되는 등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효창공원은 국립묘지가 아닌 사적과 근린공원의 법적 지위로 용산구가 관리 중이다.
친일문제 전문가 정운현씨는 “효창공원은 역사성이 있고 백범기념관도 함께 운영 중이라는 가치도 있다. 백범도 땅속에서 이장을 원치않을 것”이라며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nevermind@
<2018-03-01> 뉴스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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