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寄友人(기우인)
草屋梅花發(초옥매화발)
南窓寄友人(남창기우인)
君吾爲李杜(군오위이두)
共醉詠芳春(공취영방춘)
벗님에게 띄우는 글
草屋에도 고운 매화 활짝 피니
남쪽 窓에서 벗님께 글 띄우네
그대와 나 李白과 杜甫가 되어
함께 취해 아름다운 봄을 읊세.
<時調로 改譯>
草屋에도 매화 피니 南窓에서 글 띄우네
그대는 李白이 되고 나는야 杜甫가 되어
둘이서 함께 취하여 아름다운 봄을 읊세.
*友人: 벗 *南窓: 남쪽으로 난 窓 *李杜: 李白과 杜甫 *芳春: 꽃 피는 아름다운 봄.
<2019.4.1, 이우식 지음>

)
홍용덕
전국2팀 선임기자
인천공항에서 중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이면 산둥반도의 웨이하이에 닿을 수 있다. 125년 전 한반도에 큰 영향을 끼친 청일전쟁(1894~1895·중국은 갑오전쟁, 일본은 일청전쟁으로 부름)의 승패가 결정된 곳이다. 일본군이 랴오둥반도에 이어 청나라 해군의 주력기지인 이곳 웨이하이의 류궁다오(유공도)를 점령하자, 청은 실권자인 리훙장(이홍장)을 일본에 보내 강화에 나선다.
류궁다오는 웨이하이에서 배로 15분 거리다. 중국은 1985년 이 섬에 청일전쟁을 기억하는 ‘중국갑오전쟁박물관’을 지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크기로 청일전쟁 관련 유물 1천여점을 전시하는데, 패전기념관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잠자는 중국의 천년 꿈을 깨운 것은 갑오전쟁”이라는 문구가 들어온다. 청의 사상가 량치차오(양계초)의 글이다. 병자호란 때 조선을 침입해 인조를 무릎 꿇게 한 청의 기세등등함이 이 박물관에는 없다.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돼 평양과 황해에서의 패전, 뤼순(여순)대학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열강의 반식민지가 된 늙은 제국의 고통만이 손에 닿을 듯 펼쳐진다.
21세기 미-중 패권경쟁에 나선 중국이 왜 부끄러운 과거 역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을까. 궁금함이 풀린 것은 기념관 출구에 적힌 ‘물망국치 원몽중화’란 글을 보면서다. ‘국가의 치욕을 기억해 중국의 꿈을 이루자’는 그 말은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이른바 ‘국뽕’ 냄새가 다분하지만, 국가의 수치를 미래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간절함만은 전해진다.
일본으로 건너간 리훙장이 도착한 곳은 부산 맞은쪽의 시모노세키다. 이곳에서 육순의 노인은 랴오둥반도와 대만을 일본에 내주는 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고, 일본은 당시 협상장이던 산기슭에 ‘일청강화기념관’을 세웠다.

▲ 중국갑오전쟁박물관.
무심코 지나쳤다 찾은 단층 건물의 전시실에는 1895년 조약 협상이 이뤄진 협상장이 복원돼 있다. 패자의 웅대한 박물관에 견줘, 승자의 기념관은 내용이나 규모에서 초라하다. 일본이 시모노세키조약을 맺고 15년 뒤 한반도를 강제병합하며 군국주의 국가로 나아가 아시아를 피로 물들인 출발점이 청일전쟁이었음을 감추고 싶은 속내가 보이는 듯도 하다.
부끄러운 역사를 치열하게 되새김하는 중국, 이를 축소하고 숨기는 일본 사이에 낀 우리는 어떤가.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앞 골목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일제 침략과 독립운동사를 보여주는 전문 박물관이다. 5층 건물 중 2층 상설전시장에는 400여점의 자료가 전시 중인데 ‘친일과 항일’의 흔적을 담기에는 그 공간(240㎡)이 비좁아 보인다. 수장고에는 10만여점의 자료가 묻혀 있다.
▲ 친일인명사전. 한겨레
이 작은 공간 하나를 여는 데도 긴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11년 시민 모금에 나섰고 박물관 건립에 7년이 걸렸다. 시민의 힘으로 세운 이 박물관은 방문객을 위한 주차 공간은 고사하고 건물을 사느라 빌린 20억여원의 이자를 다달이 내는 일도 버겁다.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려는 시민들만의 노력은 여전히 힘겹다. 국가의 친일청산 노력은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출범하며 사라졌다. 정부가 처음으로 반민족행위자 1007명을 선정했으나, 추가조사는 물론 당시 확인된 반민족행위조차 국민에게 교육하고 알리는 일도 흐지부지됐다. 반민족적 행위로 얻은 재산을 조사할 친일재산조사위원회도 사라졌다. 국가의 친일청산 시계는 10년 전에 멈춰 서 있다.
오는 11일이면 상하이(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돌이다. 중국 대륙 수만리 피난길에서도 독립된 나라, 정의로운 나라를 꿈꾼 선열들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지금도 제1야당 원내대표가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로 국론이 분열됐다”고 버젓이 말하는 ‘망언의 시대’를 살고 있다. 멈춰 선 시계를 다시 돌려야 할 때다. [email protected]
<2019-03-31> 한겨레
☞기사원문: [한겨레 프리즘] 멈춰선 시계를 돌리자 / 홍용덕
懇請北韓諸人民軍隊總蹶起
正恩家運盡(정은가운진)
不可逆天心(불가역천심)
極限人民苦(극한인민고)
哀哉淚滿襟(애재루만금)
북한의 모든 인민 군대에게 총궐기할 것을 간청함
김정은의 집안 運 이제 다했으니
하늘의 마음은 거스를 수 없다네
인민의 괴롬 궁극 한계에 이르러
슬프다! 눈물이 옷깃에 가득하네.
<時調로 改譯>
김정은 運 다했으니 저 하늘 뜻이라네
인민들의 그 괴롬 궁극 한계에 이르러
슬프다! 눈물이 흘러 옷깃에 가득하네.
*懇請: 간절히 청함. 또는 그런 청(請) *總蹶起: 모두 참여해 힘차게 일어남. 또는
그런 행위 *家運: 집안 운수 *不可逆: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일. 비가역(非可逆) *天心: 하늘의 뜻. 천의(天意). 눈에 뵈는 하늘 한가운
데 *極限: 궁극의 한계. 사물이 진행해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단계나 지점을 이름.
<2019.4.1, 이우식 지음>
告朝家(고조가)
自派無高傑(자파무고걸)
非人作長官(비인작장관)
民心離叛甚(민심이반심)
未久味辛酸(미구미신산)
朝廷에 告함
자기 쪽의 系派에는 인물 없으니
사람답지 못한 者도 長官이 되네
백성들 마음 떠나 배반함 심하니
未久에 괴로움, 쓰라림 맛보리라.
<時調로 改譯>
自派엔 無高傑이니 폐인도 長官 되네
백성들의 마음 떠나 배반함이 심하니
未久에 괴롬과 쓰림 맛보게끔 되리라.
*朝家: 조정(朝廷). 조당(朝堂).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거나 집행하
는 곳. 또는 그런 기구 *自派: 자기 쪽의 계파(系派)나 유파(流派) *高傑: 고상하고
걸출한 인물 *非人: 사람답지 못한 사람. 폐인(廢人) *民心: 백성의 마음. 민정(民情)
*離叛: 人心이 떠나서 배반함 *辛酸: 맵고 심. 괴로움과 쓰라림. 고생. 고초(苦楚).
<2019.4.2, 이우식 지음>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가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입니다. 이를 철회하려고 하남시청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친일부역자의 생가터와 추모비를 철회시키려고 하는데 힘이 되어주실 수 있는 분들은 힘이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원의 한사람으로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촉망받을 만한 인물이던데
왜 여기에서 미꾸라지 행태를 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지요
시민운동에 한계를 느끼고 정치에 입문
잘 안되니 다시 시민운동가로 변신
이제 촛불시민의 대표자로 둔갑하여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고 있더군요
촛불혁명 때 무엇을 했는지요 ㅎㅎ
정치나 하시고 이제 회원직도 내려 놓으심이 좋을 듯 합니다
여인철씨
경기도 하남시 향토유적 제10호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유진오의 생가터와 추모비입니다.
이를 철회하기 위해서 도와달라도 민족문제 연구서
자유게시판에 올렸더니 연락이 오셔서
근시일내에 만나뵙고 조언을 듣고 도움도 받기로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남시SNS시민기자단장 심윤석
答問(답문)
問難吾豈答(문난오기답)
未免白頭童(미면백두동)
半識無爲道(반식무위도)
時時或可通(시시혹가통)
물음에 답하다
어려운 걸 물으니 내 어찌 답하랴
머리 허연 어린애 아직 못 면했소
저 無爲의 道에 대해 반쯤 아는데
때때로 혹 가히 통할 수도 있다오.
<時調로 改譯>
難問題 어찌 답하랴 白頭童 못 면했소
無爲의 道에 대하여 내 반쯤은 아는데
때때로 어쩌면 가히 통할 수도 있다오.
*答問: 물음에 대답함 *問難: 어려운 것을 물음 *白頭: 백수(白首). 허옇게 센 머리.
<2019.4.3, 이우식 지음>
贈大富牧師
惡者蒙仁化(악자몽인화)
焉無欲報恩(언무욕보은)
餘錢方喜捨(여전방희사)
亦救我靈魂(역구아영혼)
큰 富者 목사에게 지어 주다
악인이 어진 德의 감화를 입었는데
어찌 은혜 갚고자 함이 없겠습니까
남은 돈 바야흐로 기꺼이 내놓으니
또한 저의 영혼도 구하여 주옵소서.
<時調로 改譯>
仁化를 입었는데 왜 報恩 없겠습니까
남은 돈 바야흐로 기꺼이 내놓사오니
원컨대 저의 영혼도 구하여 주옵소서.
*大富: 큰 富者 *惡者: 악한 사람 *仁化: 인덕(仁德)의 감화 *報恩: 은혜를 갚음. 수은
(酬恩) *餘錢: 쓰고 남은 돈 *喜捨: 어떤 목적을 위하여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음.
<2019.4.3, 이우식 지음>
謹次成三問先生絶命詩韻
僅僅新生國(근근신생국)
何爲殆半斜(하위태반사)
北狂南腐爛(북광남부란)
難復本來家(난복본래가)
삼가 成三問 선생의 絶命詩에 次韻하다
겨우 독립해 새로 생긴 나라인데
어찌하여 거의 반쯤 기울게 됐나
北은 미쳤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 쉽지 않으리라.
<時調로 改譯>
겨우 생긴 나라인데 왜 반쯤 기울었나
北은 미쳐 버렸고 南은 썩어 버렸으니
본래 집 회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次韻: 남이 지은 詩의 운자(韻字)를 따서 詩를 지음. 또는 그런 방법 *成三問: 조선
세종 때의 文臣(1418~1456). 字는 근보(謹甫). 號는 매죽헌(梅竹軒). 집현전 학사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세조 元年에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해 처형됨. 저서에 ≪성근보집(成謹甫集)≫이 있다 *僅僅:
겨우 *新生國: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 독립한 국가 *腐爛: 썩어서 문드러짐.
<2019.4.4, 이우식 지음>
4.3 유족 김연옥 할머니의 손녀가 전한 사연

▲ 제71주년 4.3 추념식장을 울음바다로 만든 4.3유족 사연의 주인공인 김연옥 할머니(78)가 자신의 기구했던 4.3 경험담을 추념식장에서 발표한 손녀 정향신 씨의 손을 붙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1948년 일곱살이었던 아이는 부모님 손을 잡고 불타는 마을을 떠나 매일 밤마다 이 굴 저 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린 터라 맨발이 참 시렸습니다. 끝내 잡혀간 곳은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 수용소였습니다. 주먹밥을 하나 먹었을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랑 애기였던 남동생까지 군인들이 다 끌고 나갔는데, 마지막 끌려가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발로 밟히고 몽둥이에 맞는 걸 본 아이는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요. 순간 누군가가 확 잡아챘고, 아이는 그만 돌담에 머리를 부딪쳐서 기절을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혼자 깨어나 살아남은 그 아이의 이름은 김·연·옥.입니다.”
일순간 추념식장은 어느 유족의 사연으로 온통 울음바다가 됐다. 제주에 사는 어느 여대생이 들려준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4.3 71주년 추념식장을 찾은 모든 이들의 눈과 가슴을 흥건히 적셨다. 유족이든 아니든, 제주도민이든 아니든, 귀가 열려 있고 심장이 뛰고 있기에 흘린 눈물이다.
제주 안덕면 동광리가 고향인 일곱살이던 아이는 이제 일흔 여덟.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됐다. 손녀 정향신씨가 전한 ‘4.3 광풍’에 의한 김연옥 할머니의 삶은 그야말로 통한의 세월이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가족을 잃어 고아가 되었고, 제대로 글을 배울 기회도 잃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해 몰랐던 게 너무 많았어요.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셨더라고요. 세뱃돈 봉투에 제 이름 정향신 세 글자를 써 주셨던 2년 전 그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할머니 머리에 애기주먹만한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데요. 그게 4.3 후유장애였다는 것도 작년 4월에야 알았어요. 심지어 10살 때까지 신발 한 번 못 신어본 고아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었고요.”

▲ 제주도내 대학에 재학 중인 정향신씨가 자신의 할머니가 겪었던 4.3당시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자신의 이야기를 손녀가 4.3추념식 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자 김연옥 할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할머니는 혼자 바닷가에 자주 나가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바다를 참 좋아하시는구나’라고만 생각했었죠. 차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동생이 하루 아침에, 땅도 아닌 바다에 던져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은… 당시 할머니는 고작 8살이었는데…”
무엇보다 할머니가 생선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전할 때는 자신도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남은 4.3희생자 유족들이 4.3 트라우마로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안 드세요.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 다 뜯겨 먹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참으면서 멸치 하나조차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되었죠. 할머니의 바다를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너무 미안해요, 할머니. 할머니 삶에 그런 끔찍한 시간이 있었고 멋쟁이 할머니가 그런 아픔에서 살고 계셨는지 몰랐어요.”
손녀가 대신한 김연옥 할머니의 말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는 지금도 바닷물 잘락잘락 들이쳐 가민 어멍이영 아방이 ‘우리 연옥아’ 하멍 두 팔 벌령 나한테 오는거 닮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령 바다로 들어갈뻔 해져…” (나는 지금도 바닷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연옥아’ 하면서 두 팔 벌리고 나한테 오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두팔 벌려서 바다로 들어갈뻔 하지)
고아가 된 이후 10대의 시간을 대구와 부산, 서울에서 고생고생하다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는 열여덟살. 김연옥 할머니는 이후 시신 하나 없는 ‘헛묘’를 조성해 여태껏 매년 정성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향신씨는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는 울 때보다 웃을 때가 훨씬 예뻐요. 그러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못해준 게 많다고 미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는 그 힘든 시절을 묵묵히 견뎌온 멋진 사람이에요. 할머니, 저랑 약속해요. 이제는 매일 웃기로.”
연단 맞은편 객석에서 손녀의 이야기 내내 그치지 않는 눈물이 앞을 가리던 김연옥 할머니는 통곡의 울음과 함께 허공을 향해 “어머니”를 부르짖었다. 평화대공원을 내려다보던 하늘도 함께 오열했다.

▲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에 참가한 희생자 유족들이 김옥연 할머니의 사연을 듣던 중 곳곳에서 오열했다.ⓒ 제주의소리
<2019-04-0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4.3 추념식장에서 모두를 통곡하게 만든 대학생
※관련기사
☞경향신문: “4.3때 바다에 던져진 부모님, 파도칠때마다 ‘연옥아’부르는 것 같아”
☞뉴스제주: 제주4.3 71년,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 달래야
☞파이낸셜뉴스: 제주4.3 추념식 봉행 “특별법 개정…4.3 완전 해결 첫 걸음“
☞아시아투데이: 제주4.3추념식 1만여명 참석한 가운데 거행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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