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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육청소년위원회입니다 -김영준 교육청소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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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육청소년위원회입니다 -김영준 교육청소년위원장

익명 (미확인) | 금, 2017/09/01- 13:40

인터뷰-표지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준 변호사라고 합니다, 민변 활동은 올해가 딱 10년째네요. 공부모임을 비롯해서 민변 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에 저와 가까운 교사가 해직되면서 교육 관련 활동을 시작했는데,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 오랫동안 간사변호사로 활동하다 이렇게 위원장이 된 지 3년째가 되었네요.

교육청소년위원회는 2007년 송병춘 변호사님이 처음 만드셔서 위원장을 역임하시고, 김기현 변호사님, 이명춘 변호사님이 위원장을 맡으셨어요. 제가 4대 위원장이네요.

교육, 중요하잖아요?

학부모라고 한다면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죠. 한 개인으로서도 계속 교육을 받아왔고, 또 평생교육 시대에 앞으로도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하고요. 그런 점에서 교육은 누구나 접점이 있는 분야예요. 그러다 보니 교육청소년위원회는 정말 사건이 끊이지 않는 곳이죠.

교육위가 맡는 사건들은 정말 다양해요. 교육기관이나 교육주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분야마다 사건마다 각기 다 다르죠. 크게는 고등교육 문제와 초중등교육 문제로 나눠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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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판결을 끌어냈던 비리사학 대응 활동

우선 비리사학의 전횡에 법적으로 대응하는 활동이 있겠네요. 비리사학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의 학교 운영 참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수원대학교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소송 승소 같은 의미 있는 판결이 많이 나왔어요.

원주에 있는 상지대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비리사학의 대명사로 불렸어요. 상지대 구 재단의 김문기 씨는 학교의 설립자는 아닌데 재단 이사장으로 많은 비리를 저질렀죠.

사립학교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임시이사 선임과 해임, 임시이사를 선임한 학교의 정상화 추진에 필요한 사항을 심의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라는 기구가 있어요. 그런데 사분위가 김문기 씨 측을 복귀시키는 결정을 했고, 교수들과 교직원, 학생들은 반대했죠. 교수들과 학생들이 싸운 결과 2015년 대법원에서 교직원과 학생 역시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이 권리는 학교 법인이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 후 다시 파견된 임시이사가 모호한 태도를 취해 문제가 됐지만 최근 사분위가 다시 임시이사를 파견했는데, 이 중에 민변 김호철 부회장님도 있습니다. 비리 재단과 오랫동안 싸워오셨던 상지대 정대화 교수님은 지금 총장 직무대행이 되셨죠. 상지대는 지금 정상화 되는 기로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원대도 교육위가 비리 재단과 싸우는 분들에게 오랫동안 법률적인 도움을 드렸던 학교예요. 총장이 여러 비리와 전횡을 저지르면서 “교수들 무릎을 꿇렸다”는 소문까지 나왔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교육여건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어요. 교육비 환원율이 누가 봐도 비정상일 정도로 낮았어요. 결국 교육위가 학생들과 함께 등록금 환불 소송을 제기해서 학생들이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지금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 두 학교의 법적 다툼에는 이영기, 하주희, 손영실 변호사님이 교수님, 학생들과 함께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학교를 점거한 학생들, 학생들에게도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최근에는 상지대 학생들처럼 학교의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학생들의 요구가 높아요. 학생들도 학교의 구성원인 만큼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있는데 학생들의 참여권은 제도적으로 잘 보장되지 않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학교 운영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대학평의원회 하나예요. 그런데 교수, 교직원, 동문, 이사회 등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 위원 열 명 중에 학생은 한두 명 포함될까말까 해요. 게다가 대학평의원회 결정에 구속력도 없어요. 예를 들면 2013년 중앙대에서 학교가 대학평의원회의 보류결정을 무시하고 학과구조조정을 밀어붙이자 학생들이 구조조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중앙지방법원이 받아들여주지 않았죠.

또 총장 선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학교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신대에서는 교수와 학생들이 투표를 거쳐 총장 후보를 뽑았는데, 정작 이사회에서는 1순위, 2순위 후보를 제껴두고 3순위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했어요. 대학의 중요한 정책들이 당장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 수업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학교가 의사결정을 일방적으로 하는 거죠.

이렇게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싸우는 일도 많아졌어요. 한동안 떠들썩했던 이화여대도 있고, 동국대에서도 논문을 표절한 총장과 그 총장을 임명한 이사장을 비판하면서 점거농성을 했었어요. 서울대는 시흥캠퍼스 문제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했고, 한신대도 총장 선출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본관점거 농성을 했어요. 이런 과정에서 학생들이 징계나 재판까지 받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학생들을 변론하는 일도 교육위의 활동 중 하나예요.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같은 권리가 좀 제도적으로 정비되어서 더 이상 징계나 재판을 받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에 지원된 그 돈들은 투명하게 쓰였을까

이렇게 각 학교에서 비리사학과의 법적 분쟁을 지원하거나 학교와 분쟁을 겪은 학생들을 변론하는 활동도 있지만 대학 정책 분야에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대학 구조조정과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해 토론회도 하고, 제안서도 제출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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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운동이 거둔 성과 중 하나가 2011년에 도입된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예요. 물가상승률과 연동해 일정비율 이상을 인상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그동안 계속 등록금을 올려왔던 사립대학들이 전처럼 등록금을 인상할 수 없어졌죠. 교비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들이 재원이 쪼들리는 상황이 되자 교육부가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모사업을 시행하고 있어요.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던 코어 사업, 프라임사업, 평생교육 단과대학 같은 공모사업이 교육부의 대학 재정 지원사업들이에요. 그런데 이 지원사업의 지원대상 선정과 운영과정이 불투명해요. 국정농단 특검 수사 결과 프라임사업 지원 대상 선정 과정에서 이대가 부당한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들어났잖아요.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동시에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들어 대학구조조정도 추진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학구조조정이 진행되면 결국 대학이 취업률 같은 눈에 보이는 지표만 강조하게 돼요. 예술, 인문학, 사회학, 기초학문은 고사하는 거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재점검이 필요해요. 이런 취지에서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대학 재정지원사업의 개편과 정책감사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어요. 이 토론회 논의를 바탕으로 민교협, 교수노조 같은 교수단체와 함께 교육부에 기존의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정책감사를 제안해놓은 상태입니다.

교육분야 대표 적폐, 국정 역사교과서

이제 초중등교육 분야를 얘기해볼까요?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교육 분야의 대표적인 적폐였죠.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았고, “획일적인 역사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안 된다, 헌법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라는 생각에서 민변에서 TF를 꾸려 활동했습니다.

TF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기 위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도 제기했어요. 마지막에는 교육부가 꼼수를 써서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를 지정하고 연구학교에서는 국정교과서를 배울 수 있게 하겠다’고 했죠. 워낙 반대여론이 높아서 경북의 문명고만 연구학교 지정을 신청했습니다. 이것도 저와 이영기 변호사님이 소송을 해서 연구학교 지정 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정부가 새로 바뀌고 문재인 정부 1호 명령으로 국정교과서 문제를 해결했어요. 민변도 뭐 국정교과서 저지 네트워크에 참여해서 열심히 싸웠고, 다행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한 셈이죠.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소모적이잖아요, 반역사적이고요.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도 문제가 많아요. 예비비를 무리하게 편성해서 그 예비비 중 상당액을 국정교과서를 홍보하는 홍보비로, 쉽게 말해 신문 광고하는데 써버렸거든요. 또 국정교과서 집필자를 공개하지 않아서 ‘복면집필’이란 얘기도 나올 정도로 불투명하게 진행됐는데 원고료조차 이전의 교과서 편찬사업에 비해 상당히 고액을 지급했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지난주에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접수시켰고, 현재 감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잘 해결되겠죠?

전교조의 교원노조 지위도 회복되어야죠. 국민의 정부 때 교원노조가 합법화된 후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내내 탄압이 이어졌어요. 이명박 정부 때는 일제고사와 전교조 시국선언을 이유로 교사들이 수십 명 해고됐어요. 국회의원이 전교조 명단을 공개해버렸던 사건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희가 소송으로 다퉈 전부 이겼어요.

전교조 명단 공개 사건은 제가 했어요. 저한테는 평소 잘 알고 지냈던 해직 교사를 변론한 것과 이 사건이 교육위 활동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아예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를 했죠. 전체 조합원 중에서 9명이 해직 후 재판에서도 패소하면서 더는 교사가 아니게 되었는데, 그 분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한 거예요. 사실 이건 노동법의 원리에도 반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명박 정부에서는 법원이 보루 같은 역할도 했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니까 이기는 판결도 적어지더라고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둘 것인지 말 것인지는 노동조합의 자주권의 문제거든요. 지금 전교조는 법외노조 상태에 있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새 정부에서 잘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대법원장 되신 분이 대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하셨던 분이더라고요.

부당한 문제에 맞서는 건 오히려 쉬워요

최근에는 교원 임용절벽 문제도 심각해요. 그동안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인데도 교원 정원은 줄이지 않고 있었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발령이 제한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원이 3년 안에 발령을 받지 않으면 1급 정교사 자격이 만료되거든요. 이런 문제가 누적되자 더는 미룰 수 없어서, 서울시 교육청에서 올해 교원 신규 발령 인원을 확 줄여버렸어요.

그런데 동시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기간제 교사를 정교사화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죠. 일부 사립학교에서 정교사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서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면서 ‘비용절감’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임신·육아 휴직처럼 정말 대체근무자가 필요한 경우도 있거든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교사로 발령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사람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있어요. 그래서 기간제 교사 정교사화 문제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차원에서 경력이 있으면 정교사로 발령하는 것이 맞다’는 견해도 있고, ‘교사는 임용고시 등의 문제와 얽혀 복잡하기 때문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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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간제 교사 정교사화 같은 문제에 비하면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는 일은 오히려 쉬워요. 교수를 파면해임한 학교와 싸워서 이기는 것, 징계 받은 학생들을 변호하는 것, 전교조 해직 교사들에 대해 다투거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에 대해 싸우고, 국정교과서 저지를 위해 싸우는 일들 말이에요. 이런 일들은 싸워야 할 상대가 분명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기간제 교사 문제, 시간강사 처우 문제, 대입 수능 개편안 같은 정책 문제는 아직 국민도 정부도 아직 공론을 모아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여요. 저희도 공부를 더 해야 할 거 같고요.

모여서 함께 해나갈 일이 아직도 많아요

교육 분야는 계속 이슈가 제기되고 있고, 우리가 앞으로 개척해나가야 하는 분야인 것 같아요. 어디에서 조사한 결과로는 이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현 정부 정책 지지율이 대체로 60~70% 선인데 교육 분야는 이보다 훨씬 저조하다는 거예요. 교육 분야는 새로운 정책의 틀을 만들어가야 하는 단계예요.

제가 교육위 간사변호사, 위원장을 맡으면서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느낀 건데, 이른바 ‘진보진영’의 교육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도가 우리 생각만큼 높지 않아요.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에 더 익숙한 거 같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정책에 대해 더 설명하고 공감대를 넓히고,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 필요해요. 또 여러 가지 이슈가 제기되고 있어서 차근차근 공감을 모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많은 그런 곳입니다.

교육위의 이슈나 사건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교육위 위원마다 담당 분야를 정했거든요. 예를 들면 대학 분야는 하주희, 이영기 변호사님이, 사립학교법은 저와 이영기 변호사님, 초중등교육은 강영구, 탁경국 변호사님이 주로 맡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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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교육위 변호사님들이 인원은 많지 않지만 민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공익인권변론센터 송상교 소장도 교육위에서 활동하고 있고, 하주희 변호사는 지금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이시고, 이영기 변호사님도 환경보건위원회 위원장님이셨죠.

사실 교육 사건들은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좀 있는 거 같아요. 교육 사건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사대를 나오셨거나,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자녀를 키우면서 교육에 관심이 커졌다든가. 교육 분야는 새롭게 만들어나갈 부분이 많은 분야입니다. 새 정부에서 새로운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펼치는 과정에서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가 해야 할 역할도 많이 있으니까. 많이 오셔서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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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9/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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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단체소개

 

 

민변에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더 나은 판결을 이끌어 내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까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권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공익단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공감’에서부터, 최근 경제적 약자 권리보호를 위해 활동을 시작한 ‘벗’ 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활약하고 계신 회원님들의 모습. 한번 살펴볼까요?

 

1.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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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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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소리 없는 아우성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장애인과 난민, 이주여성과 성소수자, 청소노동자와 홈리스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함께해 주기를 오늘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법은 테두리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법이 해야 할 일입니다. 테두리 밖에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법의 테두리를 넓혀야 합니다.

한편 저희 공감은 공익소송 뿐 아니라 찾아가는 법률교육, 공익단체 법률지원, 법제도개선 및 연구조사, 공익활동 프로그램 개발 및 중계활동을 통해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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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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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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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 처음 광주에서 공익인권전업변호사가 일하는 비영리단체를 만드는 무모한(?) 계획을 시도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말렸던 생각이 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냥 지금처럼 부업으로 할 수도 있지 않나?”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려 해?” “광주가 얼마나 후원이 박한 동네인데”……

반상근 활동가 등이 그만 두는 등으로 해서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2년이 지난 지금은 원로 김용채 변호사님을 대표로 모셨고 상근변호사도 2명(이소아, 김춘호)이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회원 수 200여명에 이르는 비영리민간‘단체’가 되었다.

연수원을 수료할 때 즈음(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년 전이라니…)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을 찾아 뵙고 공감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여 황 변호사님으로부터 집중 면접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황변호사님께 “공감도 지역 분사무소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요?”라는 비슷한 말씀을 드렸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이 말은 그저 공감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신입변호사의 치기어린 질문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광주 전남 지역에서 동행의 상근변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것은, 지역에도 정말 공감 같은 공익전업변호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지역에도 해야할 일들이 많다. 오히려 지역이기에 더 많다. 문제는 지역에는 ‘아름다운 재단’과 같은 공익전업변호사를 위한 펀딩이나 인큐베이팅을 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

동행이 내는 모든 목소리, 서면은 200명이 넘는 후원자분들의 관심과 응원을 바탕으로 한다. 동행의 활동은 단순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구체적 개인의 인권을 실현해나가는 ‘모두’의 문제이다. 여러분의 관심과 후원이 인권의 경계를 허물어나가는 바탕이 된다는 점을 기억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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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희망을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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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망법

2012년 2월 창립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약칭 희망법)은

인권침해적이고 차별적 법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나가는 비영리, 풀뿌리 후원 기반

전업 공익인권변호사 단체입니다.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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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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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about

 

인종차별적인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이주민, 그 가운데서도 특히 취약한 사람들인 난민, 무국적자, 구금된 이주민, 인신매매 피해자이고, 다국적 기업이 세계화 시대에는 잠재적 인권 침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국적 기업이 법의 지배를 받고, 취약한 이주민들이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별소송 뿐 아니라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일까지 나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위해 어필은 소송과 신청, 연구와 입법운동, 교육과 홍보, 국내외 단체와의 연대, 국제인권메커니즘 활용 등을 통해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의 인권을 옹호하고 다국적 기업의 인권 침해를 감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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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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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주 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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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꼭지’라고 들어보셨나요?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 집안에서 딸 좀 그만 낳자고 붙여준 이름이랍니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어머니, 할머니들의 슬픈이름이었지요. 지금도 많은 ‘꼭지’들이 있습니다. 언제 잘릴지 불안한 계약직 노동자, “이놈저놈”, “빨리빨리”를 제일 먼저 배운다는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도 언감생심인 장애인 노동자, 달면 삼키고 쓰면 버려지면 흔하디흔한 우리 노동자들. 청주노동인권센터는 아직도 흔한, ‘꼭지’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좋은 벗이 되려고 합니다.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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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주민센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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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주민센터 친구>는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외국인들과 함께하는 비영리단체 입니다. <친구>는 “평화/인권/공존” 의 철학으로 1) 이주민 인권·법률지원활동, 2) 이주민 네트워크 구성 및 자립지원활동, 3) 이주민 문화예술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인권/법률지원활동 : 상근 변호사를 비롯한 20여명의 법률전문가들이 대표적 법률취약계층인 이주/외국인들이 머무는 곳을 직접 찾아가 법률 상담을 하고, 소송을 비롯하여 권리구제에 필요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형편이지만 <친구>자체적으로 소송 구조기금을 적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이주민들의 소송비용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매주 화/목/금요일에는 대림동 친구센터에서 상시 법률상담을 진행하고, 매주 목요일에는 서울시 외국인 생활지원 기관인 서울글로벌센터에서 공익/인권분야 법률상담을 격주 진행합니다. 매주 일요일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 혜화동 라파엘클리닉에서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생들과 함께 무료 법률/인권상담을 4년 동안 해오고 있습니다.

-활동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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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센터 친구 문화체험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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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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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를 클릭하시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소개글 

현재 우리사회는 심화되는 빈부격차 속에서, 부의 분배 과정 역시 매우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의 불균등과 불공정한 시장구조에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계층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등 이른바 경제적 약자들입니다.

한편, 이들에게 법적・제도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 회계사, 가맹거래사, 교수 등 이른바 전문가 그룹은 시장경쟁의 심화와 장기적인 불황으로 인해 안정적이고 높은 보수를 지급할 수 있는 대기업 등 이른바 경제적 강자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는 경제적 약자가 경제활동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에 대해, 이들의 편에 서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단체나 전문가의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경제적 약자들을 부당하고 불공정한 횡포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의 권리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지원하는 한편, 장기적으론 이들을 직접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경제적 약자들이 더 이상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데 시민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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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소개

1.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률자문 및 소송 수행 변호사에 대한 지원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등 경제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법률상담, 자문, 소송 등을 수행하는 변호사에 대한 지원사업을 전개합니다.

2.사회문화 및 제도 등의 개선방안을 연구하는 전문가에 대한 지원
 경제적 약자의 권리증진을 위한 사회문화 및 제도 등의 개선․발전을 연구하는 전문가에 대해 개별 프로젝트별로 지원합니다.

3.좋은 법안 선정 및 소개
사단법인 벗은 법을 읽어주는 친절한 도우미 머니투데이 더엘(the L)과 함께 매주 경제적 약자들을 부당하고 불공정한 횡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좋은 법안’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경제적 약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의 주요 내용과 의미를 소개합니다. ‘좋은 법안’시리즈 연재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이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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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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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는 아시아 곳곳의 분쟁 및 재난, 인권침해 지역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현장 활동가와 피해자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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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미 프로젝트 소개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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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북노동인권센터

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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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북노동인권센터는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인권의 관점에서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면서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센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센터는 지역 현안 문제들에 대해 적극 참여하고 연대하는 활동을 기본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상담과 소송등 다양한 법적 지원 활동을 함께 진행하고자 합니다. 차별과 배제를 넘어 정의롭고 평등한 경북을 만들어 가는 데에 함께 해주십시오.

 

-경북노동인권센터 창립대회 영상(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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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11/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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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4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와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세은 변호사를 만났다. 로스쿨 졸업 후 재판연구원으로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거사 사건을 처리할 기회가 많았다는 그는 제주 4.3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청구를 맡고 있다.

“과거사 관련 서류들을 열심히 읽어보고 검토하다보면, 가슴이 너무 먹먹한 거예요. 과거사 사건들 대부분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고민도 들었고… 이유도 모르고 당시에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 연로해 돌아가시는 걸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아요.”

제주 4.3사건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기지촌 위안부 관련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국가범죄의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포기하지 않는 우직함이 원칙이라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세은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급하게 인터뷰 요청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김세은입니다. 저는 2014년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요, 그 후 재판연구원으로 2년 간 근무를 해 실질적으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해마루 자체가 민변 활동을 장려하는 분위기라 좋은 분위기에서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민변에서는 과거사청산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대응 TF 간사를 맡고 있어요. 이 외에도 저희 사무실 임재성 변호사와 함께 제주 4.3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사건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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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겪은 소수자로서의 경험, 변호사의 꿈을 갖게 하다.]

변호사님 프로필을 보면 러시아로 교환학생도 다녀오시고 국제통상학 전공을 하셨던데,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솔직히 말하면 대학 입학 후 국제통상이라는 전공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었는데, 살면서 처음으로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어딜 가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목받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분명히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유학생활 중 우연히 고려인 할머니 한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픈 역사 속에서 강제 이주되어 힘들게 사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내 의지에 따라 유학을 와서 받는 차별도 이렇게 서러운데,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 이주를 당해 힘들게 생활하시는 것을 보니까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귀국 후에 학교를 다니는데, 헌법 교수님께서 제 꼼꼼한 성격과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로스쿨 진학을 추천해주시더라고요.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모여 법조인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변호사가 된 지금,

유학 당시 겪었던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변호사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나요?

저는 민변에서 국가의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입은 분들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물론 유학 당시 저에게 울림을 줬던 일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활동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직접적으로 러시아와 관련된 일을 한다거나, 고려인 분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가의 작용에 의해 피해를 받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일을 하는 것에는 유학 시절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제가 관여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제주4.3군법회의에 관한 소송이 모두 국가의 공권력이 개인의 삶에 큰 피해를 입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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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기지촌 위안부 사건으로 시작한 변호사 활동]

현재 민변에서는 과거사청산위원회와 여성인권위원회 소속에서 활동하신다고 하셨는데,

각 위원회에서 중점적으로 맡고 있는 사건에는 어떠한 것이 있나요?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는 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이후 정보공개 청구도하고, 헌법소원도 하고, 일본국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 대한민국을 상대로 하는 국가배상청구 소송,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 형사사건 대응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성인권위원회에서는 미군 기지촌 위안부 사건의 공동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특히 미군 기지촌 위안부 사건은 제가 변호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맡은 사건이라서 개인적으로는 더 특별한 감이 있죠.

 

미군 기지촌 위안부라는 말이 조금 생소한데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나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테니 미군 기지촌 위안부에 대해서만 간략히 설명 드릴게요. 1954년 미군의 한국 주둔이 결정된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미군기지 근처에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지역을 조성하고 성매매를 조직적으로 관리, 조장했는데요. 정부에서 작성한 공문서에는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한 사람들이 ‘위안부’라고 적혀있어요. 세상에는 ‘양공주’, ‘양색시’라는 멸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와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양쪽의 체계가 너무나도 유사해요. 포주가 있었다는 점, 일부 돈을 지급 받았지만 빚이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점, 구금 상태이거나 감시받고 있어서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다는 점, 매일 강제로 성매매를 해야했다는 점 등 그들이 성노예의 삶을 살았다는 측면에서 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에 대해 ‘자발적으로 돈을 벌러 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설령 자발적으로 기지촌에 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오고 싶을 때 자유롭게 나올 수 없었다면 자유가 억압된 상태라고 보아야 해요.

 

이러한 구조적인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차이점이 있지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반면 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그러한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미군기지촌 위안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계신 듯해서 안타까워요. 이 때문에 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 대부분이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평화운동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과는 조금 대조적이지요. 우리 사회의 미군 위안부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서 이들에 대한 시선이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어요.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파기대신 진정한 사과를 촉구한다는 의사를 표했어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법률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스스로 국제보편 기준에 따라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를 할 것을 기대한다는 뉘앙스였거든요. 이게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는 유의미할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 일본이 알아서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은 “우리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느껴졌어요.

 

·일 위안부 합의가 반드시 파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정부는 이 합의가 국가 간 신의로서 지켜야 하는 약속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합의도 합의이기 때문에 ‘국가 간의 합의’라는 형식이 남아있는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행사에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일본 정부는 앞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있었으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고, 이는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되죠.

 

물론 문재인 정부가 한 발언에 대해 이 합의가 실질적으로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진정한 파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합의에 근거해 이루어진 모든 외관들을 제거해 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정부에서 받은 돈을 다시 일본 측에 돌려주고 화해치유 재단을 해산시키는 것이 이러한 외관을 없애주는 작업에 속한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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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군법회의 재심 청구가 가지는 의의]

변호사님께서는 제주 4.3 군법회의 재심청구에 참여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참여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주 4.3 도민연대’라고 4.3 사건 이후 생존하신 수형자분들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단체가 있어요. 도민연대에서 해마루의 장완익 변호사님께 재심 청구나 관련 소송을 진행해달라고 의뢰를 하셨고, 어요. 2015년부터 법률검토를 하는 등 준비를 시작했고 2017년에 재심청구를 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작년에 해마루에 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건에 투입되었습니다.

 

70년 전에 있었던 제주 4.3 군법회의에 대해 재심 청구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저희가 2017년에 재심 청구를 하긴 했지만, 그전부터 이 소송을 재심의 방식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재판부존재 확인 소송을 통한 국가배상청구를 할 것인지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재심 청구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국가배상청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경우 돈은 받을 수 있지만 전과기록이 삭제되지 않거든요. 만약 재심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무죄인 것이 확인 되면 피해자 분들이 형사보상도 받으실 수 있고, 전과기록이 단번에 삭제된다는 이점이 있어요.

 

또 4.3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는 것은, 피해자분들이 재판다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드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형사 재판의 모습은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된 나의 죄를 알려주고, 변호인이나 스스로가 이에 대해 변론을 할 수 있고, 판사가 어떠한 법에 따라 유죄다 무죄다 판단을 해 주는 형식이잖아요? 그런데 당시 군사재판을 받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당에 수백 명을 모아놓고 군인이 뭐라 뭐라 하더니 끝났다는 거예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것도 없고, 발언권은 당연히 없었고, 심지어는 이름조차 호명된 적 없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이처럼 형식조차 갖추지 못한 위법한 재판 때문에 옥살이를 하신 분들이 제대로 된 재판을 다시 받게 되면서 위로를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법정에 있는 사람들이 본인의 발언에 경청해주고, 판사는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주고..이런 당연한 절차들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심을 통해 피해자분들이 무죄를 입증하는 것 외에 입법을 통해 4.3 군사재판을 무효화하자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의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재심 청구를 통해 피해자분들의 무죄를 확인 받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소송을 통한 권리구제는 가장 낮은 수준의 보상 방식이에요. 국가 입장에서는 가장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는 것이거든요. 이에 반해 소송을 청구하는 개인은 본인의 피해 사실에 대해 입증해야하고, 이에 대해 공개 법정에서 발언도 해야 해요.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 행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었으면 국가가 나서서 좀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 피해를 구제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를 입은 개인이 권리 구제를 받기 위해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하는 상황인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입법을 통해 당시의 군사재판이 무효화 된다면, 피해자분들이 굳이 재심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권리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적극적인 방식이죠. 예전부터 이런 법안이 발의되어 왔고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어요. 피해자 분들 입장에서는 나이를 고려할 때 마냥 법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 재심을 청구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고요.

 

재심청구를 하시면서 힘든 점은 뭐였나요?

우선, 당시 행해진 군사재판에서 명확한 판결이 있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만약 재판 절차가 ‘적당히’ 위법하면 손쉽게 재심절차를 밟아 권리를 완벽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데, 제주 4.3사건 당시 이루어진 군사재판처럼 ‘너무나’ 위법하게 이루어진 재판이어서 ‘과연 판결이 존재하는가’하는 점이 쟁점이 되고 있어요. 유죄의 확정판결만이 재심의 대상이 될 수 있거든요. 지금 생존해계신 분들의 이야기만을 가지고서는 유죄의 확정판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명확히 판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7월쯤에는 재심 개시여부가 판단될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생존자 분들이 법정에서 직접 피해 사실을 증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어요. 국가의 공권력 행사로 인해 피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절차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해요. 이 분들 중 실제로 공산당 활동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당시 행해진 군사재판이 적법한 것이 아니냐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재심 청구의 핵심은 이 분들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아니라, 우리 법이 정하고 있는 절차가 지켜졌느냐 예요. 설상 간첩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서 정한 영장주의나 재판 절차를 다 무시하고 형무소로 보낼 수 없죠. 우리가 헌법에서 정한 절차들을 준수함으로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이 훼손되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당 활동을 과거에 했든 안했든, 절차가 지켜지지 않다는 것에는 명백히 문제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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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는 우직함을 원칙으로]

이런 공익인권관련 활동을 하다보면 지치는 순간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순간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동력이 따로 있나요?

첫 번째는 간절한 마음인 것 같아요. 다들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잖아요. 운동이 운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면 간절함이 있어요.

 

그리고 함께 일하는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동력을 얻는 것 같아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덩치가 큰 사건들이 많거든요. 이런 중대한 사건들을 혼자 맡아야 한다면 너무 부담이 될 것 같은데, 함께 해주시는 선배 변호사님들이 많이 격려해주세요. 특히 민변에서 공익소송을 진행하다보면 협업이 정말 잘 이루어지는데,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해 코멘트 해주시고, 보완 해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요.

 

변호사로서 가지고 있는 나름의 원칙이 있나요?

저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끝까지 일을 진행 하는 것. 사실 제가 맡고 있는 일들은 단순히 의지만 있다고 해서 하루 빨리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은 아니에요. 물론 할머니 할아버님들의 연세가 많으시고, 매년 몇 분 씩 돌아가시고 계셔서 일이 빨리 진행되면 좋겠지만 대한민국 정부라든지, 일본 정부라든지 상대하기가 쉽지만은 않거든요. 특히 상대방의 태도가 강경할 때는 더더욱 쉽지 않죠. 어려운 길이긴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결국은 이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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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5/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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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심재섭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기호 안녕하세요, 서기호변호사입니다. 사법연수원 29기이구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예비판사 2년을 포함한 12년간 판사로 근무하던 중 2012년 2월 재임용 탈락사건을 겪었고… 12년 7월경에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 받게 되었다가 정의당으로 소속이 변경되었습니다. 국회 법사위에서 4년간 활동한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 이후 16년 7월경 변호사 개업하면서 민변에 가입하였습니다.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있긴 했는데 2년 여 동안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변호사 업무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고요. 심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최근 사법농단 TF 구성원으로서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사법위원회 회의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두 달 여전에 민변 사법위원회 김지미 위원장님으로부터 부위원장 맡아달라는 말씀을 듣고 수락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정기회의에 빠지기 어렵게 되었네요 ㅎ

2년여 동안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정리하고, 올해 8월부터 법무법인 상록에 구성원 변호사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민변 사법위원회 소속 변호사 두 분이나 계시는 법무법인 상록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개인으로 하실 때 고용변호사님도 계시지 않았나요?

서기호 개인변호사 사무실 운영할 때, 고용변호사님도 두고 운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의뢰인분들이, 억울한 사연을 갖고 계시면서도 증거부족 등으로 이기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사무실 유지가 쉽지 않았어요. 전반적으로 수임료가 낮은 편으로. 그래서 올해 초부터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들과 사법위원회 활동으로 친분도 있었고, 사무실도 바로 옆 건물이다보니 점심식사를 자주 같이 하면서 포섭되었다고나 할까요?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포털에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변호사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판사 시절 이전은 잘 안보이더라고요. 학생 때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서기호 학생 때 평범하고 공부만 주로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중고 동창생들이 가끔 저에게 학생 때랑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대학시절에 학생운동(가톨릭학생회 소속)에 깊이 관여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제 안에 지킬과 하이드 같은 양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 자신에 대해 헷갈릴 때가 있어요.

심재섭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나요.

서기호 세례명은 베네딕토인데요, 2012년 이후 어려운 상황들을 많이 겪으면서 바쁘기도 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기도 해서 신앙생활에 소홀한 상황이고요. 현재는 냉담자입니다.

2016년 2월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시간적으로 3개월 여유가 생겨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35일 정도 다녀왔는데요. 그때 하루종일 걸으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과연 신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의문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아직까지 냉담 중입니다.

심재섭 ‘가카빅엿’ 사건과 이후 판사 재임용 탈락 뉴스로 일약 대중의 시선에 들어온 것으로 압니다. 재임용 탈락이라는 상황에 대해 당시 소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서기호 너무 길게 이야기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짧게 넘어갈 수도 없는 질문이네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와서 어리둥절하기도 했고,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법원행정처에서는 당시 저에게 10년 간 ‘하’등급 다섯 번 받았다는 이유를 제시했지만, 그 중 2009년 이후 3년 연속 받은 ‘하’등급은 신영철 대법관 촛불집회재판 개입 당시 제가 판사회의 주도하고 법원게시판에 신영철 대법관 사퇴 주장하는 글 등을 올려서 보복성 ‘하’등급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 객관적 통계 3년치 자료에 따르더라도 평균 정도였지 결코 최하등급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법원장 1인에 의한 주관적 자의적 근무평점 시스템 때문에 부당하게 3년 연속 ‘하’등급을 받으면서 재임용 탈락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그러한 점들에 관해 법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판사들에게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지요.
그런 점들 때문인지 몰라도 저에 대한 재임용탈락처분 이후 판사들이 2주 연속 전국적으로 판사회의를 열어서 판사 근무평점 제도 및 재임용심사 제도의 개선책을 요구하는 판사회의 의결이 잇따랐습니다. 이처럼 법원행정처의 재임용탈락 사유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에 많은 국민들께서는 그건 법원의 핑계에 불과하고 약 두 달 전 제가 SNS에 ‘가카의 빗엿’이라는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때문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재섭 재임용 안 됐다라는 소식을 듣고 얼마 있다가 출근 못하게 되신 건가요?

서기호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은 후 일주일 뒤에 바로 법원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2년간 판사생활 정리하기엔 1주일이란 기간이 굉장히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었습니다. 1주일동안 굉장히 많은 기자분들이 북부지방법원에 찾아와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고, 그동안 정들었던 분들과의 이별을 맞이하는 등, 그로인해 당시 진행되던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후임 판사님께 떠넘기게 되어서 당사자분들에게도 너무 죄송했습니다.

심재섭 ‘하’등급을 받아왔던 것은 알고 계신 거였나요?

서기호 법원에서는 판사들의 매년 근무평정을 모두 비밀로 하고 있어서 당사자에게도 전혀 통지를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2012년 2월 초 어느 날 행정처 심의관으로부터 재임용심사 대상이라는 전화 통보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도 5년간‘하’등급 받았다라는 점만 알려줄 뿐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설명 받은 바 없습니다. 그러면서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소명할 기회 있는데 참석하겠느냐 물어보길래 당연히 참석하겠다고 답변하였고 법관인사위원회에 소명자료를 충분히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법관인사위원회에 참석해 보니 위원들 사이에 이미 결론은 정해져 있었고, 인사위원들 1 ~ 2명 정도가 형식적으로 몇 마디 물어보고서 끝내버리더군요. 제가 제출한 소명자료에 대하여는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안 읽어보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행정소송으로 재임용탈락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을 때도 재판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구체적 통계자료, 서술형 평가 등 세부 근무평정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피고인 법원행정처에서는 비밀이라면서 별 도움 안 되는 몇 가지 자료 외에 핵심적인 자료들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1심 재판장도 문서제출 명령 신청을 기각하고, 항고, 재항고심에서도 기각해버리더군요.

심재섭 그런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셨나요?

서기호 판사들 사이에서는 그 전까지도 재임용 심사는 형식적이라고 내부에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판사로서 직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거나 사건해결 능력이 부족하다고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둑이 제 발 저리는지 법원행정처에서 구체적인 자료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황당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당시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하러 왔을 때 기자분들 하시는 말씀이, 자기들도 언론사에서 근무평정을 받는데 그 결과를 공개해줘서 알고 있고. 이의제기할 기회도 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가장 투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법원에서 오히려 비밀스럽게 근무평정이 진행된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고들 하였습니다.

심재섭 판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이 되십니다. 통합진보당에 입당을 하는데 비례대표 14번을 받으시지요. 이 숫자가, 국회를 가겠다고 마음먹으셨는지 아니어도 상관 없다였는지 애매한데, 어떠신가요? 정치를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치권에 들어가게 된 것은, 재임용탈락 이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가 sns에 가카빅엿 글을 올릴 때에도 정치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걸 이유로 해서 재임용 탈락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저는 스스로 제 자신이 정치에 맞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정치하려고 사직한 것도 아니죠.
그런데 막상 재임용에 탈락되고 보니, 주변에서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기 위해 비례대표직을 알아보는 게 어떠냐라는 권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 쪽으로 계속 나가라는 것보다는 사법개혁이라는 이슈로 비례대표을 알아보라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재임용 탈락 사태는 대법원과 맞서는 것이라서 그냥 평범한 변호사가 된 뒤에는 이 상황을 뒤집거나 지속적으로 이슈화시키기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변호사 한 명의 권한은 거의 없기에 결국 묻힐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제가 정치권에 뛰어든 것은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서 특별히 정치권과 인적 관계를 쌓아둔 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오로지 단 하나,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의 대학시절 개인적 친분(대학 1년 선배)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정치권의 동향을 전혀 몰랐고 통합진보당 내부의 정치 세력 간 갈등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이 전 대표의 진정성 하나만을 믿고 들어갔던 것인데, 뜻밖에도 통합진보당 내부의 분열 사태 등 이후 전개되었고,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는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었던 심상정, 노회찬 의원 등 정의당 분들과 4년간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4년간의 국회의원 생활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법사위 활동은 제가 아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나았지만, 정의당 소속으로서의 활동 부분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심재섭 진보정당에서는 판사출신 의원이 없던 걸로 아는데. 민주당에서의 제안은 없었나요?

서기호 당시 민주당에서의 비례대표직 제안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는 2012년 2월 하순경으로서 4월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던 상황이라서 이미 자리가 차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판사출신이 진보정당에 맞느냐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당시 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등 3개 주체가 통합을 한다고 하니 그렇게 진보정당이 커지는 흐름에 제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한계, 특히 현행 소선구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외연이 확대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는 잘 몰랐는데, 4년간의 경험을 통해 특히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면서 장벽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심재섭 14번이면 당선되기 힘든 번호였을텐데 안 되도 된다의 마인드였나요?

서기호 원래는 6번 제안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을 거치면서 14번을 받고서라도 백의종군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로서는 일단 사법개혁을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심정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마당인지라,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구요. 어찌보면 바보 같은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을 비웠기에 2012년 7월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비례대표직을 승계 받는 기회를 하늘이 내려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재섭 5시간의 필리버스터까지 한 뒤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에, 진짜 만약에 다시 정치를 하게 된다면 스스로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 하겠다고 막연하게나마 설정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서기호 근본적으로는 돈과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구 선거를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현실정치의 높은 장벽을 실감했다고나 할까요. 또한 체력적인 문제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준비부족, 한계를 느끼면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비례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체력과 그리고 재력,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이 있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다 갖춰지려면 20 ~ 30년 걸릴까요. (웃음) 어쨌든 지금 돌이켜보면 판사생활만 하다가 갑자기 곧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굉장히 무리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심재섭 2000년 연수원 수료 이후 공직생활 16년을 지나고 변호사가 되었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전관 개업, 인지도 좋고, 전관은 아닌데.. 어려움, 아쉬움?

서기호 판사로 12년 근무를 했다고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적어도 적응기간이 1년 ~ 2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판사는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이지만, 변호사는 처음부터 의뢰인과 만들어가는 역할이라서 매우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사자에 동화될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기에 그 사이에 균형을 잡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심재섭 예상과 다른 결과가 많이 있던 때도 있었나요?

서기호 그렇죠. 가장 많은 사례가 처분문서가 있는 사건에서 저는 주로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의 의뢰를 받은 적이 많습니다. 물론 제가 판사였다면 당연히 처분문서에 반하는 주장을 배척하고 의심해서 판결을 선고했을 것 같은데, 막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대변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처분문서 대로 판결을 선고하는 법원의 경향이 과연 맞는건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3자 위치의 판사는 증거에 의해 판단해야 하니 객관적 서면, 처분문서의 내용을 중시할 수밖에 없겠지만, 실제 그것이 과연 진실에 부합할 것인가라는 점은 의문이 자꾸 들게 되더군요.

심재섭 민변 활동에 열심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변에 가입하게 된 동기 내지는 민변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입니까.

서기호 사법위원회 소속으로 가입했는데요. 사법위원회는 사법개혁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저의 핵심 관심분야기도 하고 국회의원 시절에도 2 ~ 3 차례 사법위 회의에 참석하기도 해서 친숙한 편입니다. 그리고 사법위 소속이신 장주영 변호사님은 목포고 선배이고, 민경한 변호사님은 국회의원시절 민변 사법위 회의에 참석했을 때 저에게 좋은 격려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민변활동에 적극적이신 분들과 친분이 있고 사무실도 같이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되는 거 같습니다.

또 한 가지 계기는 몇 달 전 최영도 변호사님 추모행사에 참석했을 때였습니다. 유신정권 시절 부당한 재임용 탈락 사건을 겪으셨으면서도 그 이후 민변 참여연대 활동을 열심히 하셨더라구요. 그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판사출신 중에 민변 회원으로 가입한 분들은 좀 있지만 적극 활동하시는 분들은 별로 없잖아요. 성창익, 오지원 변호사 같은 예외적인 분도 계시지만, 아무래도 판사로 근무했던 기간이 오래될수록 민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무튼 최영도 변호사님이 걸어오신 길은 그런 점에서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심재섭 최근 사법농단 TF에서 활약이 눈부십니다. 사법농단 대응이 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서기호 활약이 눈부시다는 과찬이시구요. 단지 제가 관심이 가장 많이 가는 분야이고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함께 참여하시는 다른 민변 회원님들과의 여러 차례 회의 등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고 조직적 대응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그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심재섭 변호사님 사건도 같이 대응하기로 했지요.

서기호 최근 사법농단 TF 회의에서 저의 재임용탈락 취소소송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재판개입 사건도 함께 다루어서 이슈페이퍼 만들고 고발하는 등 다른 사법농단 피해자들 사건과 함께 포함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볼 때 제 사건이 기존 긴급조치, 강제징용 피해자분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반대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신 분들이고 직접적으로 재판거래에 활용된 사건이고. 하지만 저는 그런 차원은 아닌데다 앞의 피해자분들의 아픔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 사건에 우선적으로 집중해도 바쁘고 모자랄 판인데, 제 사건까지 포함시키기에 죄송한 측면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뒤에 여러 분들로부터 제 사건이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다수의 다른 판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예방적 성격도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함께 다루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의견을 주시는데 혼자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서 조직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이 점은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그동안 제 스스로도 혼자만의 활동에 초점을 맞췄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여러 경험을 통해 보니 12년 재임용 탈락사태 이후 거대한 사법권력에 맞서서 모순점들을 풀어나가려면 혼자 힘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의견이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재섭 이번에 법원 앞 1인시위에서 첫 주자를 하셨습니다. 과거 근무지, 혹은 동료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을 때의 그 느낌을 전해주셔요.

서기호 처음 1인시위 이야기가 TF 회의에서 나온 뒤에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 부분이 현 단계에서 무척 중요하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더기 영장 기각 사태를 통해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서 수사방해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가 극에 달하는 상황입니다.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대폭 받을 수 있는 1인 시위이고, 말없는 다수의 판사들조차도 속으로는 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단지 동료 판사들의 재판에 관한 영역이라 비판적인 말을 못할 뿐이지요.

그런데 마침 첫 주자인인 김호철 회장님이 예정했던 시간에 급한 일정이 생기셨다고 해서, 이때다 하고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1인시위를 하는 동안 알고 지냈던 동료 판사, 직원들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어떤 분은 격려를 해 주고, 어떤 분은 그냥 못 본 척 지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지나간 판사들도 속으로는 부끄럽고 뜨끔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1인시위에 많은 분들이 참여해서, 잘못된 영장 재판을 바로잡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재섭 나중에라도 법원에서 일하실 것인가요?

서기호 기본적으로는 법원조직이 소위 법적안정성이라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향후 사법농단이 바로 잡힌다 해도 제가 판사로 복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주시는 분도 있지만, 제게 주어진 소명을 감안하여 볼 때 법원 밖에서 할 일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설령 복직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현재로서는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법원 밖에서 민변활동과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님 등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The post [회원인터뷰] 연대의 힘을 깨닫다 – 서기호 변호사 인터뷰 appeared first on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 민변.

금, 2018/09/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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