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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평화를 꿈꾸는 시민운동의 산실을 찾아

지역

동아시아의 평화를 꿈꾸는 시민운동의 산실을 찾아

익명 (미확인) | 월, 2017/08/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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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平和資料館・草の家)
–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넘어 저항의 시민연대를 기록하고 실천하는 평화운동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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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노이에 전경

일본의 시코쿠(四国)섬 고치(高知)현에 있는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는 평화와 교육, 환경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박물관이다. 이 작은 박물관은 다음 세대에 전쟁의 실상과 평화의 귀중함을 올바로 전하는 것을 목표로 1989년 11월에 만들어졌다. 쿠사노이에(草の家)라는 이름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인공인 민중, 시민들이 모이는 집을 의미하는데, 풀이 자라 언젠가는 숲이 되듯이 평화운동이 이곳을 통해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1978년 5월 오랫동안 평화운동에 힘써온 교사 니시모리 시게오(西森茂夫)는 뉴욕에서 열린 유엔군축회의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주위 사람들을 모아 다음 해부터 고치에서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는 자료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전하여 평화의 귀중함을 알리자고 뜻을 모은 시민들은 고치공습이 있었던 매년 7월 4일을 전후로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전쟁 당시의 실물자료-공습 당시 투하된 소이탄, 방공두건, 천인침, 피로 물든 군복, 철모 등-들을 모아 전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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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노이에 설립자 故 니시모리 시게오 씨

자유민권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한 고치에서 지자체가 자유민권기념관을 세울 때 니시모리를 비롯한 시민들은 일제 침략의 역사를 전시하라고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매년 전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반납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자료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시민들은 ‘평화박물관’을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지자체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시민들이 벌인 자발적인 모금운동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자 니시모리는 자신이 살던 집을 부수고 자신의 명예퇴직금을 종자돈으로 내놓아 4층 건물을 세웠다. 1층은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의 전시장, 2층은 도서실과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3, 4층의 원룸들은 임대를 하여 쿠사노이에의 운영에 보태고 있다.

1층에 자리한 20평 남짓한 전시장은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조명시설을 갖춘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회의실과 교육장으로 활용될 뿐 아니라 콘서트 및 영화상영, 연극 공연 등도 열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 쪽 벽면 위를 길게 둘러싸고 니시모리가 손 글씨로 직접 쓴 일제의 아시아 침략연표가 눈에 들어온다. 그 연표는 일제의 침략을 흔히들 말하듯 ‘15년전쟁’(1931년 만주사변~1945년 패망)이라고 언급하지 않고, 1894년 청일전쟁부터 아시아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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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사노이에 전시장

전시내용을 보면 앞서 언급한 전쟁의 피해뿐만 아니라 침략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학살과 잔혹행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관한 내용 등 가해의 역사도 전시하고 있다. 쿠사노이에 회원들은 1991년부터 중국으로 평화기행을 떠났는데, 당시 고치대학에 주둔하고 있던 고치 제44보병연대가 침략전쟁 당시 이동한 경로를 따라 중국의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고치의 부대가 과거에 저지른 전쟁의 참상을 접한 회원들은 이를 기록하여 책으로 펴내고 전시에 반영하였다.

또한 ‘피해’와 ‘가해’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고 ‘저항’의 역사도 전시하고 있는 것이 쿠사노이에의 특징이라 하겠다. 대표적으로는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반전 시인 마키무라 코(槇村浩)(1912~1938)에 대한 전시를 들 수 있다. 마키무라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조선인들의 항일 게릴라 투쟁과 3·1혁명에 대해 연대를 표현한 서사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1932년 프롤레타리아문학에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치에 주둔한 부대에 ‘병사여, 적을 착각하지 마라’는 반전 전단을 뿌리기도 했다. 그 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고 전향을 거부하여 출옥한 뒤 고문 후유증으로 불과 26세의 나이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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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 시인 마키무라 코

마키무라는 쿠사노이에가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제6소학교를 졸업했다. 전시장에는 당시 천재 소년으로 불린 그가 쓴 시가 실린 소학교 문집과 ‘간도 빨치산의 노래’가 실린 프롤레타리아문학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쿠사노이에는 마키무라 관련 도서의 발간, 시비의 건립, 묘소의 정비 등 마키무라에 대한 추모사업을 통해 그의 저항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평화를 위한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정신을 이 사업을 통해 이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쿠사노이에는 “자연은 평화의 가장 좋은 모델”이라는 말처럼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연과 공생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평화헌법 9조의 정신을 지키고 인공수림으로 변질된 본래 숲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일본국헌법의 103개 조문과 같은 103종류의 재래종 나무를 심은 ‘헌법의 숲’을 가꾸고 있다.

쿠사노이에는 평화박물관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운동의 중심적인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 반전행동으로 시작된 반전평화 거리 선전활동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평화를 위한 모든 집회와 시위현장에서 쿠사노이에의 회원들을 항상 만날 수 있다. 또한 평화를 주제로 한 세미나, 강연회, 평화콘서트, 영화상영, 한글교실, 문화교류모임 등이 쿠사노이에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평화자료관 쿠사노이에는 과거의 유물만을 전시하는데 머무는 ‘박물관’이 아니라, 지역에 굳건히 발 딛고 평화의 목소리를 세계로 발신하는 평화운동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비록 그 규모는 아주 작지만 그곳에서 전해 오는 평화의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2. 사사노보효(笹の墓標) 전시관
–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발굴과 봉환운동을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꿈꾸는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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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노보효 전시관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 호로카나이(幌加内)정 슈마리나이(朱掬内)의 깊은 산 속에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노동을 주제로 한 사사노보효 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사사노보효’라는 의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에서 이곳 슈마리나이로 강제동원되어 댐 건설과 철도 건설현장에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들이 사사(笹-복조리를 만드는 데 쓰이는 얇은 대나무의 일종인 조릿대)라는 대나무 숲 밑에 묻혀 있었는데 이들 희생자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유족들에게 돌려주는 운동이 이 전시관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시관에는 당시의 강제노동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강제노동 자료관으로서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평화운동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강제동원된 약 3천 명의 조선인과 수천 명의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들이 댐과 철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슈마리나이는 이제는 150여명의 사람들 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1976년 가을, 신도가 줄어 문을 닫은 슈마리나이의 댐 근처의 절 ‘고겐지(光顕寺)’에서 수십 개의 위패가 발견되었다. 절의 본당에서 발견된 위패에는 돌아가신 분의 법명, 속명, 나이, 사망한 날짜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위패의 이름을 보니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의 이름 같은 것도 여러 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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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 희생자의 묘표

왜 이런 오지의 절에 조선 사람의 위패가 있을까? 당시 마을의 할머니로부터 위패의 사연을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 ‘소라치민중사강좌(空知民衆史講座)’ 대표는 이 위패들의 사연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듣고 지자체 호로카나이쵸(幌加内町)의 사무소에서 당시 사망자의 매·화장인허가증을 조사해보니,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와 고겐지 근처의 우류댐(雨竜ダム)과 심메이선(深名線) 철도 공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밝혀졌다. 당시 공사 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고겐지(光顕寺)로 운반되어 그 절에 하룻밤 안치된 후에 근처의 슈마리나이 공동묘지 주변의 대나무 숲에 묻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고겐지에 있는 위패의 주인들은 바로 절 근처의 댐 공사와 철도 공사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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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

지금까지 소라치 민중사 강좌가 밝혀 낸 바에 따르면, 전체 희생자는 210여명, 그 가운데 조선 사람이 40명, 일본 사람이 170여명에 이른다.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많은 강제노동의 현장에서 조선인들뿐만이 아니라 전쟁에 반대하여 정치범으로 쫓기거나 빚에 팔려온 일본인 타코베야 노동자들이 일했다.

지자체의 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는 매·화장인허가증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출생년월일, 사망년월일, 사망원인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본적지가 적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유족들은 아직도 희생자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락을 할 방법이 있을까. 어쩌면 희생자의 본적지에 아직도 가족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족들에게 편지를 띄우자’

당시 소라치민중사강좌의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자신도 강제연행을 당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홋카이도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 1세 채만진(蔡晩鎮) 씨의 도움으로 한국의 본적지 주소로 편지를 띄웠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연행을 당한 희생자가 슈마리나이에서 강제노동 끝에 돌아가셨고, 위패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으니 혹시 유족께서 이 편지를 받으시면 답장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본적지의 주소는 알지만 유족들의 이름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받는 사람은 슈마리나이에서 돌아가신 희생자의 이름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편지는 한글로 적어야 했기에 당시 홋카이도 조선고급학교에 다니던 채만진 씨의 아들 채홍철(蔡鴻哲, 현재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포럼 공동대표)이 유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이후 몇 명의 유족들로부터 답장이 왔고, 고겐지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던 유골 가운데 유족이 확인된 일부는 한국과 일본의 유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매·화장인허가증에 기록된 희생자 가운데 슈마리나이 공동묘지 주변에 매장된 사람은 87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는 유족들에게 보내진 유골도 있지만, 많은 희생자의 유골은 해방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슈마리나이 공동묘지 주변의 대나무 숲에 아직도 방치된 채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도 확실해졌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소라치민중사강좌의 회원들, 슈마리나이 지역주민들, 재일조선인, 홋카이도의 선주민인 아이누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모두 4차례의 유골발굴이 이루어졌다. 희생자들이 묻혀 있다는 아무런 표식도 없지만,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슈마리나이 공동묘지의 대나무 숲에서 움푹 들어간 구덩이를 중심으로 발굴 작업을 벌인 결과 희생자들의 유골 16구가 발굴되었다. 강제노동의 끝에 억울하게 죽어가 대나무 숲 아래의 암흑 속에 묻혀있던 사람들이 1945년 해방이 된 이후 실로 35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유골 발굴 작업은 방대한 노력과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의 작은 시민단체의 힘만으로 매년 발굴을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도 대나무 숲에 잠들어 있는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지만, 언젠가 다시 발굴을 재개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일단 발굴 작업은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유골 발굴도 어려운 작업이지만 한국의 유족을 만나고 돌려주는 과정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운동의 초기인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걸쳐 도노히라 요시히코가 한국의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 한국은 군사독재 시대였다. 도노히라 일행이 김포공항에 내려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정보기관의 요원들이 줄곧 미행을 했다. 도노히라 일행은 도쿄의 하네다(羽田)공항으로 무사히 돌아와 다시는 한국에 가지 못하겠다고 두려움에 떨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한편, 어렵사리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가 만난 희생자의 유족들은 강제동원된 채로 소식이 없던 가족의 소식을 알고 일본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보상을 요구하거나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과 슬픔을 쏟아내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민지 시대에 일본군으로 그리고 강제연행으로 끌려간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맺힌 한을 풀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고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어 처음으로 만난 일본 사람에게 자신들의 설움과 억울함을 쏟아내는 한국의 유족들을 대면하고, 소라치민중사강좌 일행은 식민지 시대가 남긴 깊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983년의 마지막 유골 발굴 작업으로부터 14년이 지난 1997년, 소라치민중사강좌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89년 도노히라 요시히코 대표와 한양대학교 정병호 교수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한국과 일본, 재일조선인, 아이누의 젊은이들의 공동작업으로 슈마리나이에서 강제연행·강제노동 희생자의 유골 발굴이 재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1997년 7월, ‘과거를 마음에 새기고, 현재를 몸으로 체험하며, 미래를 함께 열어간다’는 구호로 슈마리나이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한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이후 2001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으로 바뀜)이 열렸다. 충북대학교 박선주 교수의 지도아래 재개된 열흘 동안의 발굴 작업으로 모두 4구의 희생자의 유골이 발굴되었다. 이후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은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유해발굴을 계속하였다.지난 2015년 해방 70년을 맞아 그동안 발굴되거나 사찰의 납골당에 있던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115구가 ‘70년만의 귀향’이라는 행사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홋카이도에서 도쿄,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부산, 서울로 희생자들이 끌려간 길을 거슬러 돌아오는 열흘간의 긴 여정의 끝에 서울광장에서의 추모식을 거쳐 파주시에 위치한 서울시립묘지에 마련된 ‘70년만의 귀향’ 묘역에 안치되었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동아시아공동워크숍의 무대가 된 사사노보효 전시관에서는 식민지 조선에서 홋카이도의 깊은 산 속까지 끌려와 억울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이 맺어준 만남이 내일의 동아시아의 평화를 꿈꾸고 실현하는 만남으로 이어져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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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4번째 요청서 제출
일본 정부 “한국 정부 구체적 제안 있으면” 일관
한국 관련 예산 없어…상황 진척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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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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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문대통령이 우리 최고의 무역흑자국인데 사드로 무역마찰중인 중국을 방문 힘든 외교협상 끝에

우리헌법에도 민족간 전쟁을 만들수있는 행위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적시해놓았듯이

한반도 평화를 지켜야한다는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는 큰성과를 받아왔고 대중무역도 원상태로 돌아가며

 

이명박그네가 망쳐논 남북관계를 다시 평화적 한반도로 바꿔놓고있는데 친일매국노 후예당인 한국당등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잡고

북한역시 핵무기는 미국견제용이지 한국공격용이 아니라고 밝혀도 올림픽까지 북풍조작 안보팔며 이념조작하는데

 

요번 아이스하키 단일팀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로 평화통일을 이룬 독일이 자기들 하키팀 출전못하더라도

평화로운 한반도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의 평화통일위한 한국의 남북단일팀 결성위해 양보한것인데도

친일매국노가 만든 한국당등 친일파가 변신한 가짜우익 가짜보수들이라 평화통일 방해위한 반국가 반민족 매국행위하는것으로

 

자기민족을 아끼는 민족주의와 자기국가를 최고로 사랑하고 타국을 배척하는 국수주의가 진짜 우익보수정신인데

친일파가 변신한것들이라 일본에 충성하다 미국에 충성하며 미국일본편들어 조국강제분단을 돕고 애국국민을 학살한것으로

 

우릴침략해 36년간 우리민족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아녀자 수십만명을 위안부로 끌고가 학살했으며

강제동원과 엄청난 우리재산 약탈하고도 피해배상도 않하고 진정한 사과도 없이 우리땅인 독도를 넘보듯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이 세계에도 로비하여 독도를 일본땅이라 동해를 일본해라고 세계인을 속이는것이며

미국과 짜고 올림픽주관사인 미국NBC가 한국을 일본식민지로 근대화됐다고 세계에 거짓방송케하듯이

한국내 뉴라이트에게 간첩처럼 지원금주며 매국노를 양성해 일베나 뉴라이트교수나 선생 또 정치언론인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그것들이 일본침략을 한국의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미화한 역사책도 만들고

미국 역시 북한이나 중국등지서 죄짓고 도망온 탈북자등 돈주면 동원되는 가짜보수들에게 돈주고 냉전조작시키니

미국일본서 돈받고 냉전조작과 데모하는 것들도 미국 일본 간첩혐의로 처벌해야할것인데 그 간첩같은 매국노들이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잘한짓이라고 거짓말하며 평등한 동맹관계가 아닌데도 한미동맹이 최고라고 떠들고있지만

 

미국지시가 있어도 한미일 삼국군사동맹을 반대한다는 역사적인 문대통령의 발언으로 중국도 감동시켜 한중관계가 좋아지는데

야당대표란것이 아베에게 찾아가 머리조아리며 굴욕적 위안부나 군사협정을 일본편드는 친일파 변신 더러운것들로

요번 일본의 내정간섭이나 한반도기에 독도표기 항의와 미국NBC 망언방송에 조용하고 북한단일팀이나 북한응원단 흠집잡기에 혈안이며

뉴라이트 이명박그네에 충성하던 친일파가 만든 조중동과 문화와 연합 경제신문등등 쓰레기언론과 기레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과거 미국옆 쿠바가 쏘련미사일기지를 설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돼었는데도

박근혜가 전쟁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탄두를 한국인 죽어도 한국상공서 터트린다고 사드미사일기지를 한국에 들여와

중국이 사드 레이다로 중국 감시와 미사일로 중국을 폭격할수있다고 반대하고 러시아도 반대해

 

전쟁시 중국 러시아가 폭격 일순위가 사드기지라했고 무역거래와 관광객 끊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것도 문통이 해결해 칭찬은 못해줄망정 가짜우익 보수당과 종편과 신문이 문대통령 까대기에 총력기울이며

이명박 똘마니인 간철수는 본색을 드러내며 보수당과 통합한다고 호남을 배반하며 이명박 지시로 문대통령을 비난하듯이
이명박그네가 감옥안가려고 마지막 발악으로 세금도둑질한 돈풀어 한국당등에 정치자금주니

정치보복이라 선동하며  세금도둑을 편드는 더러운 정치꾼들이며

이것들이 평화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며 미국의 선제공격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만약 미국이 선제공격하면 핵무기말고도 휴전선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공격으로  6.25때도 삼백만명이 숨졌지만

지금은 수천만명이 숨지거나 멸망할 한반도 전쟁을 부추기는 반국가 반민족 매국노들이란걸 잘나타내준 작태이므로
이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과 요즘 북한핵사태와 애국애족심이 투철한 외국과 다르게 미국 일본에 충성하는 한국의 가짜우익 가짜보수들과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평화통일보다는 남북간 이간질시키며 친일파가 만든 한국당등 수구세력이용 냉전조장하는 이유도 집중 조명해보자

 

1994년 제네바에서 영변핵발전소로 핵무기 만들수있다하여 가동중단 대신 미국일본이 중유발전소 지어주고 중유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이 영변핵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핑계를 대고 제네바협정을 깨트린후 북한에 선제공격 위협하여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짓고 핵무기만들게 유도한게 음흉한 미국과 일본으로

북한핵만드니 미국은 한반도서 전쟁날것처럼 위협하며 한국에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많이 팔아먹었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인 한국주둔비용도 더뜯어갔으며 서해미군기지와 일본서 쫏겨나는 해군기지도 우리세금으로 짓고
일본은 전범국가라 군대도 못갖고 전쟁도 할수없는 나라인데 미국과 짜고 북한핵 핑계대고 침략할수있게 바꾸는중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 짜고 구상중인 한미일 삼국 연합군사동맹이 과거에 비슷한 매국적인 전략협상이 있었는데

박정희가 1963년 불법쿠테타 성공후 일본가서 만주총통으로 직속상관이었던 전범 기시 수상에게 경례하며

우리땅이던 독도 앞바다를 일본요구대로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현재 독도분쟁 만든 최악질 매국노로

당시 미군과 일본군 또 한국군이 북한을 침략후 한반도를 일본식민지로 넘긴다는 비밀협정에 서명했으니

음흉한 미국도 참여해 미국무부 비밀문서에 미쓰야[63]협정으로 기록해 현재까지 기밀보관중이며

[부르스 커밍스교수 증언]

 

만약 중국과 쏘련이 참여 북한을 정복못하게 불리하면 남북한에 핵을 쏟아부어 생명체가 못살게 파괴하려한것으로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안될 귀태라한것이며 일본사회당등 반대로 무산된 협정인데

지금 기시 손자인 아베가 할얘비 뜻에따라 매국노 박정희 딸 박근혜와 한국인들 반대에도 한일군사협정 맺어

한국전쟁나면 자국보호란 핑계로 한반도 재침략 발판을 마련한것으로 위안부 굴욕협정처럼 박근혜의 매국행위이며

이렇게 한국인 생명 무시하는 미국이 1905년에도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만드는데 적극 협조한 더러운 미국으로
해방후 독일처럼 전범일본을 갈라야하는데 731부대 살상무기정보를 준 살인마 731부대장도 전범처리 않하듯이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를 뇌물로 미국에주고 부탁 일왕도 전범처리않고 조선을 일본대신 강제분단시켜

당시 독립군과 애국국민과 제주도민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이승만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구출후
정부와 군경 요직에 기용 강제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와 애국국민과 제주도민

또 독립군을 좌파나 빨갱이로 몰아 암살과 학살한것인데 사실은 조국분단 반대자들이 진짜 우익 보수인데

 

미국과 일본과 매국노들땜 강제분단되어 분단때문에 300만명이 숨진 6.25비극과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것으로

일본은 6.25전쟁때 전쟁물자 판매로 엄청난 소득올려 지금도 남북간 전쟁을 부추기는것이며
미국은 우리세금으로 한국주둔 미국세력 확장하고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듯이 한국에 엄청난 피해준것으로

그래서 얼마전 양심적인 주한미국대사 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이

 

전쟁나서 폐허로 약소국이 안돼고 한국이 독일처럼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되면

미국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책임을 물을것이며 친일매국노 박정희 이용해 침략배상을 제대로 않한 일본이
침략배상까지 독일처럼 철저히 배상할까봐 죽어라고 한국과 북한의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더러운 미국 일본이고
60억불 부정축재한 박정희와 박근혜 서방인 최태민과 수십조 도둑질한 최순실 박근혜와

수백조원 나라돈 날리고 수십조 뇌물받은 이명박도
뉴라이트 소속이라 미국 일본 편들어 남북간 냉전만드는것으로 남북간 자유왕래와 교류를 막으려고 금강산 관광도 깨고

[이상한 관광객 한명이 잠자는 밤중에 경계선 철책을 넘어 사살됨] 업주들 이익 엄청 발생하는 개성공단도 깨고

휴전선이 불확실해 마찰이 잦아 안전위해 만든 서해평화 어업협정도 깨트린것이다

 

(박정희 불법집권기간은 저개발 아시아가 선진 서양문물 받아들일때라 동양이 다발전할때인데도

당시 장면정부가 경제개발계획 세워놓은걸 설계도 보고서 따라했으며 기업과 짜고 근로자 최저임금으로 착취후

경제살려야할 세금 60억불 박정희가 도둑질해 당시 북한 필리핀 싱가폴 버마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등등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경제 훨씬못살린거 세계경제발전도표에 다 나와있으며

 

박정희가 60억불 도둑질해 스위스계좌로 빼돌린건 기업서 돈뜯던 중앙정보부장 이후락 대신 아들이 미국 프레이져 국회청문회가서 증언했듯이

 

만주서 독립군들 많이 죽인죄로 해방후 처형이 무서워 도망다니던 박정희는 이승만이 일본장교 모집하자 국군에 입대후에

경상북도 공산당 군사부장맡아 간첩질하였고 나중에 체포되자 조사관이었던 만주 일본장교 매국노인 백선엽에게

군대내 공산조직과 자기형 친구까지 공산조직 다불고 목숨구걸하였고 백선엽이 목숨살려주고 군대 복직까지 시켜

 

조카에게 마음준 김종필시켜 불법쿠테타 계획후 본인은 실패하면 튀려고 육군본부옆 술집서 사복입고 변장후 기다리다

쿠테타 성공했다는 소식듯고 군복갈아입고 합류한 기회주의자로 덕분에 백선엽이 인천서 박정희믿고 불법을 마구 저질렀고

박근혜는 자기멋대로 북한방문해 김일성 김정일을 칭송과 선물바치고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생가에도 묵념한 진짜 빨갱이 가족이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해 전국민이 일본을 비난하고 성토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을 비난하였고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지시로 일본함정을 내쫏앗으며

 

또 세계경제인들이 한국방문하였을때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가 참석한후 한국경제발전을 망치려고 경제인들에게

“한국의 좌파정권에 경제협력이나 한국에 투자하지말라”고 이념조작하며 어이없는 매국발언까지한 가짜보수 진짜 매국노들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등 한국당 전신이 세금도둑질과 외국에 빚을 엄청만들어 IMF만든걸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살렸듯이

현재도 이명박그네가 나라빚 엄청만들고 정경유착 세금도둑질로 망쳐논 한국경제를 살리려하는데

마치 문재인정권이 경제망친것처럼 트집잡으며 사사건건 시비걸고 유언비어퍼트리며 발목잡는것이다 )

 

화, 2018/02/1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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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솔직히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북한에서 보내오는 진심이다.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사실 북한에 대한 나름의 편견과 오해가 많이 있는데, 정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관료들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하기로 한 것은 꼭 하고, 할 말 안 할말 꼭꼭 다 하고, 속이 시원하다.
특히 우리나라 같으면 강대국한테는 깨갱하는게 다반산데
북한은 오히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속이 시원할 정도로 국민들의 긍지를 높여주는 것 같다.

이런 면은 문재인 대통령님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적폐놈들 땜시롱 어렵겠는 부분도 있겠는데, 가끔 실망할때가 많이 있으니!)

북한에선 이미 남한의 평창올림픽을 마치 자신의 행사인듯 온갖정성과 진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언론보도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심지어 종편이나 조중동 쓰레기 언론에서도 그런 상황이 보인다.

우리도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에 많이 많이 참가하면 어떨까?
북한에서 이번에 300명이 덜 왔는데, 우리는 300명이상 방북을 하면 정말 보기 좋겠다!

이번처럼 찌질하게 비용문제 처리 같은 얘기는 안나오게…(아휴 쪽팔려…독도 표기도 못하면서…)

아무튼 인정할 것은 인정~!! 김정은 위원장 겁나 멋찌다~!!

화, 2018/02/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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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네~외세는 물러가라~

화, 2018/02/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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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우리민족 역사에 우리가 이렇게 강대한적이 있었던가!!
북한에서 온갖 모진세월을 겪으면서 만들어낸 핵무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좋게 사용된다는 것을 평창올림픽을 통해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솔직히 북한에서 핵무력은 남한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미국과의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진정성 있게 생각된다.

실제 아베와 펜스가 평창에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에서
주권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이지만 정말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남과북이 하나로 뭉치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대한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북한에서 만들어낸 핵무력이 우리민족의 핵으로 될 수 있게
남과 북이 계속해서 힘을 합치길 소원해본다.

왜적을 목숨으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켜냈던 수많은 선조들과 이름난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 장군들도 하늘에서나마 크게 웃고 계시지 않을까?

화, 2018/02/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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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 징병 찬양 글 쓰고 징병제 감사대회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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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촌 김성수. [사진 위키피디아]

대법원에서 친일행위가 인정된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서훈이 박탈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인촌이 1962년 받은 건국공로훈장 복장(複章·지금의 대통령장)의 취소를 의결했다. 1962년 서훈을 받은지 56년만이다.

이는 대법원이 작년 4월 인촌의 친일행위를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과 재단법인 인촌기념회가 행정자치부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같은 대법원 판결로 친일행위가 인정되면서, 정부는 허위 공적으로 받은 서훈은 취소해야 하는 상훈법에 따라 국가보훈처 요청으로 서훈 취소 절차를 밟아 이날 서훈을 박탈하기에 이르렀다.

인촌의 서훈이 취소되면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명의 서훈 박탈은 모두 마무리됐다.

당시 진상규명위는 인촌이 전국 일간지에 징병, 학병을 찬양하며 선전·선동하는 글을 여러 편 기고하고 징병제 실시 감사축하대회에 참석하는 등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김재호 사장과 인촌기념회 등은 2010년 “인촌의 활동에 관한 당시 신문기사를 믿을 수 없고, 일제가 조직한 단체에 이름을 올리거나 행사에 참석한 것은 강제 동원된 것일 뿐”이라며 소송을 냈으나, 1, 2심은 “오로지 일제의 강요에 의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친일 행위가 맞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2018-02-13> 뷰스앤뉴스

기사원문: ‘친일’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서훈 박탈

※관련기사

☞한겨레: ‘친일행위’ 동아일보 김성수, 건국공로훈장 서훈 박탈

☞뉴스1: ‘친일행위’ 인촌 김성수 56년만에 건국훈장 박탈

☞경향신문: 인촌 김성수, 서훈 56년 만에 박탈

☞한국일보: 인촌 김성수 훈장 56년 만에 박탈

☞서울경제: ‘친일 행위 인정’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

※참고기사

한겨레21: 김성수 서훈은 치탈될 것인가 (2005.07.01)

화, 2018/02/1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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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화성=연합뉴스) 경기 화성시는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만든 독립운동 자료집 ‘나의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말하다’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자료집. 2018.2.12 [화성시 제공=연합뉴스] [email protected]

228페이지 분량의 이 자료집은 화성시가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독립운동콘텐츠발굴 사업에 의해 만든 것으로, , 시로부터 위탁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3년부터 3년간 화성지역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11명을 인터뷰해 4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송산 지역 3.1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홍면옥 선생의 후손 고(故) 홍진후씨, 오산노농학원 적화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른 변기재 선생의 후손 변주현·변순용씨, 장안·우정지역 3.1운동의 선두에서 면사무소 파괴와 가와바다 순사 처단에 앞장섰던 차경규 선생의 후손 차진모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나, 아직 서훈을 받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홍면옥 선생의 출옥기념 사진, 변기재 선생의 친필엽서 등 독립운동 자료 사진도 다수 발굴됐다.

화성시는 자료집을 전국 국공립대학의 도서관·박물관·연구소, 화성시 관내 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고, 화성지역 독립운동 인물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인터뷰 자료로 2권의 자료집을 추가로 발간할 예정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이날 접견실에서 자료집에 참여한 후손들과 안소헌 광복회 화성시지회장,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노고가 잊히지 않고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그분들의 공훈을 선양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8-02-12> 연합뉴스

☞기사원문: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 인터뷰 자료집 발간

※관련기사

☞세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신문: 화성시, 미서훈독립운동가 후손 이야기 책 ‘아버지를 말하다’ 발간

☞아시아투데이: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 담은 자료집 발간

☞서울뉴스통신: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아시아타임즈: 화성시, 미서훈 독립운동가 후손들 사연담은 자료집 발간

화, 2018/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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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수원시

연화장

측백실

전달자호영

총무국장 심재욱

수원시 영통구 하동 25

자료사진은 경남민언련

사랑의하모니!

수, 2018/02/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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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에 위반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출마자들이 친일세력 후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데…

알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목, 2018/02/15-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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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임실호국원으로 이사가심을   위로 드림니다.

이수미!

김인순!

명곡을  생각하며,

총동문화체육대회에서는

ㄴㅓ의 입상  볼수 익게째.

(너거한테신세만지고   마산의료원의  그국장동상 오마이 한테도  몬디다 바따.)

 

 

일, 2018/02/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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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 5차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벌인바 있다. 시굴조사 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이번 5차 발굴조사지역인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없이 희생되었고, 특히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조사단이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한 2014년경부터 많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들의 위령사업 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제정되어 왔다. 특히 이번 5차 발굴조사 예정지인 아산시 역시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전쟁 당시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임을 당한 뒤, 지하 광산이나 이름 모를 산속에 수 십 년 동안 버려진 채 방치되어 왔다. 그나마 진실화해위원회가 일부 유해와 유품을 수습해 충북대학교에 임시 안치하였다가 2016년 세종시 추모의집으로 옮겨 모셨으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뤄내 인권국가로 발돋음하기 위해서는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분들의 진상규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유해발굴 공동조사는 노무현 정부 이후 중단된 과거청산 작업의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발굴·안치하는데 있다. 또한 실질적인 과거청산에 필요한 법과 제도가 구비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을 모아내는 한편, 이후 민간 차원에서 과거청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20대 국회는 “장준하사건등진상규명과정의실현을위한과거사청산특별법안”을 비롯하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개정안” 등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되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중에 있다. 국회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

【붙임】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자료집. 끝.

월, 2018/02/1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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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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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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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2/1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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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youtu.be/UaxKw9Ndq34

화, 2018/02/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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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ehfv…

화, 2018/02/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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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역적’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국민TV가 함께합니다.

국민TV 채널에서는 팟캐스트 역적을 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국민TV : https://www.youtube.com/watch?v=R5OEl…

화, 2018/02/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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