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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전쟁과 한국의 식민지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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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전쟁과 한국의 식민지역사박물관

익명 (미확인) | 월, 2017/08/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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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역사전쟁 중

‘사회는 없다.’ 1979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가 내건 구호다. ‘왜 당신 아버지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말로 바꾸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를 지탱하던 이념과 사회 운영 원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이 악명 높은 구호는 이후 급물살을 타고 전 세계를 휩쓸었다. 지금은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공기업의 민영화, 구조조정, 규제 철폐 또는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금융시장 자유화, 복지 축소 등의 소란스런 주장들이 바로 이 구호에 담긴 세목들이다.

1950~60년대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대는 1970년대가 되자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경기는 나쁜데 물가는 상승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고 자본의 이윤율 저하는 심화되었다. 1970년대가 지나면서 이런 경제침체는 ‘자본의 거대한 재구성’과 ‘노동의 국제 분업(화)’를 수반한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의 세계적 위기’가 도래했다. 자본은 이제 그동안 노동계급에게 양보했던 이윤을 회수해 오는 전략을 세우고 과격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정부의 실패’라는 그럴듯한 이론을 앞세워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경제를 시장에 맡기라는 ‘신자유주의’의 대두는 우승열패와 적자생존이라는 정글 속으로 인간들을 몰아넣는 구호와 다름없었다. 위로부터의 계급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처는 또 하나의 전쟁을 시작했다. 1979년 대처는 사회주의자들을 향해 ‘영국사를 구제받지 못할 운명·억압·실패의 시기로 서술하여 우리의 국가 자존심을 좀먹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리고 “모든 세대가 우리 국가의 역사를 그릇되게 이해하고 평가절하 하는 교육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학자와 저술가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진보가 이루어진 바로 그 시기를 가장 암울한 시기로 묘사했다.”고 강조했다. 영국판 역사전쟁을 알리는 신호였다.

한국식 표현대로 하자면, 영국의 역사가들은 좌파사관에 물들어 있으며, 역사교과서는 자학사관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위대하고 자랑스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 역사를 학대하는 교과서는 폐기되어야 한다며 역사교과서를 공격했다.

기존 역사교육을 ‘자학사관’으로 몰아붙인 이 주장은 영국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역시 로널드 레이건이 정권을 잡자 위로부터의 계급전쟁과 역사전쟁이 동시에 일어났다. 독일에서는 지배계급의 역사전쟁이 ‘역사수정주의’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진행되었다. 역사수정주의의 핵심은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을 부정하거나 상대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1985년의 ‘비트부르크 사건’은 독일의 과거, 즉 나치에 대한 기억을 변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85년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 방문 때 일반 독일군인 뿐만 아니라 무장친위대도 묻혀 있는 비트부르크 묘지를 방문해 헌화했다. 이 방문을 두고 미국과 독일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레이건은 결국 유대인 강제수용소에도 헌화하는 형식으로 논란을 무마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거친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 젊은이들 또한 나치의 희생자입니다. …… 그들도 강제수용소의 희생자와 똑같은 희생자입니다.” 무장친위대를 일반 독일병사와 같이 취급한 것을 넘어 희생자로 다루었다. 가해의 상대화를 넘어 희생자로 둔갑시킨 이 발언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수정주의 견해나 보수세력의 역사공격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다.

구미 보수세력의 역사교과서 공격과 역사전쟁은 10년 후 대양을 건너 일본에서도 같은 양상을 띠고 벌어졌다. 세계화라는 물결과 더불어 역사전쟁도 세계화의 흐름을 탄 것일까. 이른바 ‘자유주의사관론자’들이라 불리는 일본판 뉴라이트는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으면서 역사전쟁을 집요하게 벌였다.

기존 역사교과서를 자학사관으로 공격 → 권력을 이용한 정책 개악(정책 변경) → 극우 교과서 제작
→ 교사의 교재 채택권 박탈과 권력을 동원하여 학생들에게 강요(채택 과정)

교과서 공격과 정책 변경, 극우 교과서 제작과 배포, 어디서 많이 본 경로와 방식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 뉴라이트와 보수세력이 벌였던 역사전쟁, 그것과 판박이다. 십 수 년간 일본의 뉴라이트가 밟았던 과정을 우리의 보수세력이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대표적인 공격 대상은 일본군‘위안부’와 난징대학살 기술이었다.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와 마찬가지로 일본 뉴라이트는 처음에는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했다. 김학순 할머니가 역사의 증인으로 ‘커밍아웃’하자 이제는 매춘이라 몰아붙였으며, 교육에 부적절함을 내세워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들의 요구는 성공했고, 역사교과서에 대한 권력의 간섭은 더 커졌다. 일본사회가 우경화되는 만큼 교과서 서술도 후퇴했다. 일본의 한 비평가는 이들의 역사관을 ‘구린내 나는 것에 뚜껑을 덮고 좋은 점만을 가르치는 신황국사관’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역사전쟁과 파국 그리고 식민지역사박물관

이번엔 한국 차례이다. 2003년 집권한 노무현정부가 ‘포괄적인 과거청산’ 정책을 추진하자 보수세력과 뉴라이트는 반격에 나섰다. 그들의 반격은 정치권력에 이어 사회문화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공식 기억마저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작가 이문열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자식들’과 경제사학자 이영훈의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들’이라는 비난을 시작으로 보수세력은 연일 ‘자학사관’, ‘종북좌파사관’이라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공격은 크게 두 영역에서 벌어졌다. 하나는 과거사 위원회를 때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근현대 역사교과서를 공격하는 일이었다. 과거사 위원회들은 세금을 낭비한다느니 과거를 들춰내서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등의 이데올로기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공세를 부담스러워한 위원회들은 가능하면 조용하게 진상규명에 전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용한 진상규명’은 위원회가 사회와 소통하며 과거청산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소극적으로 임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한편 교과서 때리기는 주로 검정 교과서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금성사 교과서에 집중되었다. 공격의 이유는 금성사 교과서가 종북좌파사관에 빠져 있고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학대하고 있는 이른바 ‘자학사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권력을 이용한 보수세력의 역사공격이 노골화되었다. 한시적인 국가기구였던 위원회들은 정해진 시한이 끝나자마자 연장 논의도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 기간이 남았던 위원회도 위원들을 보수주의자들로 바꿔 위원회 설립 취지를 훼손시키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일을 벌였다. 위원회가 권고한 과거청산 후속조치들은 거의 대부분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국가 권력에 의한 과거청산의 중단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역사교과서 내용에 직접 개입하고, 집필지침을 개악시켰다. 여기에 B급 뉴라이트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를 보급하려고 했다. 시민사회는 강력하게 반대했고, 교학사 교과서는 시장에서 참패했다. 교과서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인데다 이승만, 박정희 등 특정인물을 미화하기 위한 책이었기 때문에 권력의 뒷배를 받고서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뒤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의 역사정책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내 마음대로’였다.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반대하고, 교육부장관, 국사편찬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조차 검정제로도 충분히 역사교과서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국정제를 강행할 필요도 실익도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대다수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국정화 추진은 유신시대로의 회귀를 바라는 퇴행적인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문제 이전에 그동안 한국사회가 성취한 민주적 가치나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폭정이었다. 아버지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복권시키기 위해서,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대통령이라는 공권력을 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한 것이다. 반민주적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박근혜 개인의 아집과 독선이 빚어낸 일탈이자 병적 행위이다. 여기에 한국판 역사전쟁의 특징이 있다. 0828-13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전쟁은 과거 자신들이 누렸던 권력과 지배를 미화하고 정당화함으로써 현재의 지배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현실의 모순에 눈을 감게 하여 불평등과 부정의가 자연스런 현상이며 현재가 최상의 상태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려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도 담겨 있다. 이 점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박근혜의 고집은 거기에서 훨씬 더 나갔다. 교과서 국정화는 그렇게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개인의 독선에서 나온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은 종료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의 역사전쟁은 파국으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일종의 착시다. 국정화가 폐기되었어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그동안 집필지침의 강제와 수정 요구의 확대로 교과서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침해받았고 내용은 더 나빠졌다. 이걸 다시 정상화시키고 민주적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보수세력이 벌인 역사전쟁터가 또 한군데 있다. 바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자학사관’에 대응하는 ‘자긍사관’을 심어주고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홍보하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건립되었다. 보수 정부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만든 목적이나 과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미국 역사학자 마이클 월러스가 이야기한 내용을 떠올린다.

박물관들은 자본가의 역사적 사명을 정당화하고, 자본가의 권위에 일종의 자연주의불가피성을 보태주는 상투적인 역사 파악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마도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박물관들이 역사를 은폐하는 방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원과 발전을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역사적 기록에서 착취·인종차별·성차별 그리고 계급투쟁을 지워버림으로써, 광범위한 기반을 갖고 있는 대항적 전통과 민중문화를 은폐함으로써,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역사의 형성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함으로써 박물관들은 관람객이 과거나 미래의 대안적 사회체제들을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도록 했다.”(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박물관의 본질을 명쾌하게 지적한 글이 또 있을까. 물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시민사회의 격렬한 반대와 비판을 받아 애초의 박물관 전시 구성에 다소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 위주의 역사, 발전 중심의 전시, 너무나 진부한 성공한 이야기들, 그리고 구색 갖추기에 동원된 약자들의 땀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운 사람들의 피가 무덤덤하게 배치되어 있다. 여기서 과연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규범과 가치를 꿈꿀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온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해 낼 수 있을까. 지금의 역사교과서가 그렇듯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박제화된 과거의 기억 창고 이상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은 먼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운영과 구성부터 바꾸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전시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야 비로소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들이 살아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원은 받지만 운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 그나마 제 이름에 맞는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를 존중하며 민주적으로 성숙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사회가 어떻게 과거를 기억하고 박물관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한, 역사교과서가 국가의 검정을 받는 한 국가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박물관과 교과서로 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 사회가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것은 근본적인 한계이자 인간 조건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소외받고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 소수자들의 목소리,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수많은 ‘난쟁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약자들의 연대와 불의에 저항한 시민들과 그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광장, 보수세력의 집요한 역사전쟁을 막아내고 더 많은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희망하는 보루, 여러분과 나의 이야기가 역사로 재현되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가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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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오후 6시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하 ‘역사재단’) 주최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에서 강만길저작집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강만길 고려대명예교수의 의사에 따라 직접 논문 지도를 받은 제자들만 참여하는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신용옥 역사재단 상임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식에서 저작집 간행위원회 대표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의 인사말이 있었고, 이어 신용옥 이사가 저작집 출간 경위
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제자인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의 감사인사, 저작집을 펴낸 창비 기획편집위원장인 백영서 교수 및 임헌영 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강교수는 답사에서 “이번 저작집 역시 학자로서 치열하게 살고자 한 삶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며 “앞으로 후학들이 나를 넘어서는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기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만길저작집은, 역사재단이 2010년부터 기획한 것으로 역사재단과 창비사의 2년간의 노력 끝에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올 12월에 간행된 것이다. 강교수의 첫 저작인 〈조선후기 상업자본의 발달〉을 시작으로 초판 출간 연도에 맞춰 19권의 저서를 순서대로 배치하고 2010년에 나온 〈역사가의 시간〉은 자서전이라는 성격을 고려해 저작집의 마지막 권으로 했으며 미출간 원고도 한 권의 단행본으로 엮었다. 특히 제자 20명이 각 저서에 대한 사학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해제를 실어 그 의의를 더했다.
• 편집부

수, 2019/01/0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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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9/01/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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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2/3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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再寄金正恩

 

壓制連三代(압제연삼대)

衆言未久亡(중언미구망)

民飢君飽喫(민기군포끽)

共産若豺狼(공산약시랑)

 

김정은에게 거듭 띄우는 글

 

압제하는 정치가 三代를 이으니

뭇사람 未久에 망한다고 말하네

백성은 굶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공산주의란 승냥이와 이리 같네.

 

<時調로 改譯>

 

壓制三代 이으니 未久에 망한다 하네

백성은 굶고 있는데 임금은 배부르니

오호라! 공산주의란 豺狼과도 같다네.

 

*壓制: 권력이나 폭력으로  남을  꼼짝 못 하게  강제로  누름 *三代: 아버지, 아들,

손자의  대. ≒삼세(三世)  *衆言: 많은  사람의  말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飽喫: 배부르게 먹음. 포식(飽食). 포복(飽腹) *共産: 공산주의(共産主義).

을 공동(共同)으로  관리하고  소유함  *豺狼: 승냥이와 이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2019.1.4, 이우식 지음>

금, 2019/01/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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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급식이 아닌 학교 다닐쩍에 도시락 처먹던 세대들은 잘 알게야. 

점심시간에 애들끼리 도시락 먹으면 당연 서로 같이 싸온 반찬 나눠먹고 하는게 올바른 것이며 국가간 외교로 따지면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국제적 참다운 교류인게다. 

그런데 꼭 도시락은 안 싸오고 거지새끼 처럼 염치도 없이 애들한테 밥이나 얻어 처먹고 반찬이나 축내면서 왔다갔다하는 얄미운 새끼들 있지? 

바로 이런 새끼들이 지금 북괴 빨갱이같은 새끼인게다. 

남한한테 얻어먹고 퍼가고 바라는건 졸라리 많으면서 정작 남한한테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해만되고 말썽이나 부리는 애물딴지 개버러지 새끼들 

바로 북괴 빨갱이거지10새끼들인게다.

금, 2019/01/0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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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시빌

팔용동

목장원

주소는

창원 의창구  팔용로 494-20

박상규윤항기의 경상5회 갑짱들아!

진영당감 일세

ㅍㅏ이브

손소리통  목장원:256-6205

합천봉산똥대지가

생각나는  오마고  창원 경상고 다섯기  정기총회에서

ㅂㅗ고픈 칠팔칠구팔공의  경상고5기

황금도야지해  에는 희비 제대로 내고

경조사 스님에게  찾아 배야 대는데,

기해와기회

올겐 진짜  너거 한테 비찐거 가파야 대는데,

0110모교일  19:00에 봄세

금, 2019/01/04-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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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筆强於刀諺

 

日本霜刀國(일본상도국)

朝鮮久筆邦(조선구필방)

如何其結果(여하기결과)

誤信正無雙(오신정무쌍)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속담을 비웃다

 

일본은 시퍼런 칼의 나라였고

조선은 오래 붓의 나라였지만

그 결과는 마침내 어떠했던가

잘못된 믿음 참으로 무쌍했네.

 

<時調로 改譯>

 

일본은 서슬도 푸른 칼의 나라였었고

조선은 오랜 세월 붓의 나라였었지만

그 결과 어떠했던가 誤信 무쌍하였네.

 

*霜刀: 서릿발같이  푸르고  날카롭게  서슬이      *如何:   형편이나 정도가

어떤가의  뜻을  나타내는 *結果: 어떠한 원인으로 결말생김. 그런 결말의

상태 *誤信: 잘못 믿음 *無雙: 서로 견줄 만한 게 없을 정도로 뛰어나거나 심함.

 

<2019.1.5, 이우식 지음>

토, 2019/01/0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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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를 소망하며

새해 우리 사회를 향한 나의 소망 두 개.

하나는 우리 사회가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엄정함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패거리 짓기, 같은편 편들기와 봐주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친일연구를 하다가 알게 된 아버지의 친일행적까지도, 대학 은사 유진오 등 많은 인연 닿는 인사들까지도 “그런 저런 사정은 일체 눈을 감기로 작정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라고 쓴 임종국 선생의 엄정함이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불러와 기려야 할 시대정신이다.

동문이니까, 동향 사람이니까, 같은 편이니까…등등의 부족사회 수준의 감성으로 잘못된 것에 눈감고 침묵하고 봐주는 사회 분위기,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양심회복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썩지 않은 구석이 없다.” 이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가 유학에서 돌아와 인사차 찾아뵌 교수님이 1991년에 하신 말씀이다.  그 후 한 세대 가량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아니다.  세상 곳곳이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얼룩져있다.

아예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무감각하거나 무관심하다.  처벌도 죄질에 비하면 솜방망이다.  앞에서 말한 엄정함이 부족한 때문이다.  그러니 어물쩍 넘어가고, 비리와 부정부패는 계속된다.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그냥 넘기는 사람들이나, 양심과 엄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 낮은 사회 분위기가 2019년에는 사라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2019. 1. 4
민족문제연구소 제명자, 회원
여인철

토, 2019/01/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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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변호인단 “강제징용 기업 한국 자산 압류해달라” 강제집행 신청
아베 주장하는 ‘국제법‘ 뭐냐 질문에… 법조계 “나도 물어보고 싶다”
법조계 “‘국제법 위반했다’ 국내외 향한 ‘여론전’… 그 이상 이하도 아냐”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두고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제(6일) 아베 신조 총리가 뭐라고 입장을 밝힌 모양인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아베 총리가 어제 NHK ‘일요토론’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받은 전범기업 신일본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 압류 신청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반도 출신 노동자’와 관련해서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다”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부처에 지시했다”는 것이 아베 총리의 워딩입니다.

아베 총리는 그러면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앵커] 아베 총리가 “매우 유감이다”고 한 전범기업에 대한 자산 압류 신청,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기자] 네, 지난 연말 우리 강제징용 피해자들 변호인단이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일본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며 강제집행을 신청했는데요.

관련해서 변호인단은 지난해 두 차례 신일철주금 본사를 직접 방문해 협의를 요청했지만 신일철주금 측이 면담조차 거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국 내 자산 압류를 신청한 것입니다.

여기다가 배상 판결을 받은 또 다른 전범기업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압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인데요. 이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아베 총리 워딩을 보니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등 ‘국제법’을 많이 언급하고 있던데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다는 건가요.

[기자] 네, 안 그래도 궁금해서 강제징용 손배소송을 수행한 김세은 변호사에게 “국제법이 어떻게 돼 있어서 아베 총리가 그러는 거냐” 라고 물어봤는데요. 돌아온 답변이 걸작이었습니다.

“그 국제법이 도대체 뭔지 나도 물어보고 싶다”는 답변이었는데요. 직접 들어 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아, 저희도 사실 그게 궁금한데요. 일본 측에 좀 물어봐 주셔야 될 거 같은데. 어느 국제법, 계속 아베 총리나 고노 외무상 워딩이 그래요. 국제법 위반이다, 국제법에 근거해서 조치를 취하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어느 국제법인지 사실 국제법이라는 건 없어요.”

[앵커] “국제법이 없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기자] 네, 통상 ‘국제법을 어겼다’고 할 때는 김세은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어떤 국제 조약, 또는 어떤 국제 협약, 몇 조 몇 조, 이걸 위반한 거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워딩은 이런 게 없이 그냥 거두절미하고 “국제법 위반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는 건데요. 국내외를 향한 ‘여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 김세은 변호사의 말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김세은 변호사 / 법무법인 해마루]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호하게 그냥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엄청 ‘국제법 위반이다’ 라고 이야기 하면 우리가 되게 큰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떤 걸 위반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주장이고요”

일본 정부 일부 각료가 ‘한국에 대한 트럼프식 관세 보복’ 등을 언급하는 것도 다 이런 여론전, 보수우익 결집 등 정치적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재판을 받는 건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재판처럼 어느 일방이 제소를 한다고 해서 바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양 국 정부가 모두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기로 동의를 해야 재판 관할권이 국제사법재판소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미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새삼 국제 분쟁화 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은 옵션이 못 된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는 저렇게 강경하게 나오는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요, 그러면.

[기자] 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업무가 종료됐다는 일본과 그건 정부 차원의 일이고 민간 차원은 다른 문제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인데요.

일단 외교 경로를 통해 풀어보고 안 되면 별도의 중재위원회를 구성한다든다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말을 한 번 들어보시죠.

[조시현 /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국 외교부가 지금 오늘 반응이 나왔잖아요. ‘비우호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 단계에서 한국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말한 것은 아닌가. 아베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할 것은 뭐냐면 협의를 해야죠. 언론 선전전을 할 것이 아니고…”

[앵커] 일본은 총리까지 나서 여론전을 펼치는데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될 것 같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2019-01-07>법률방송뉴스 

☞기사원문: 아베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 강제징용 변호사 “아베가 말하는 ‘국제법’은 없다”

화, 2019/01/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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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충북지부전체회원모임에서 임헌영 소장님은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사무국에 요청을 하라고 하셨고, 지난 3월 24일 정기총회에서도 의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사무국에 연락을하여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2018. 12. 14. 서울시교육청은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행정처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운영에 있어서 법률 또는 행정처분 기준을 위반했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 회원들이 공유하여야 할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영업상 경영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비공개했던 총회 의사록을 교육청을 통해 입수해 확인해 본 결과
2002년 1월에도 동부교육청이 법인실태 조사후 고발 및 시정시시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은 민문연 집행부에서 어떻게 연구소를 운영했으면 고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이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또 서울시교육청이 현장 실사를 하고, 행정처분을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행정처분한 공문을 제공해주시고, 회원에게 공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화, 2019/01/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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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의 조서 기록 –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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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받는 사람의 실루엣
테이블
서류뭉텅이들

전등

1919년 3월 1일

100년 전 그 날은 몇몇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총독부 순사로 보초를 서던 곳에서, 농촌의 민가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뛰쳐 나왔던 모든 사람들의 걸음이다.

일제는 3·1운동 참여자들을 취조한 신문조서를 2000여건이나 남겼다.

참여자 200만명, 사망 7500여명, 피검자 4만7000여명이라는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당시 참여했던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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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신문조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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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다함께 만들어온 세상 100년
그대는 어째서 독립만세를 불렀는가
100년전 3.1 운동 그날의 신문기록







화, 2019/01/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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