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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지역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익명 (미확인) | 월, 2017/08/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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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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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용산’ 종점과 ‘신용산’ 종점이 구분되어 있는 전차정류장일람도의 일부(『경성번창기 』,1915)

흔히 용산(龍山)이라고 하면 용산역 앞이거나 미군기지 일대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원래 용산은 마포 바로 상류에 위치한 포구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단위의 하나인 ‘방(坊)’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용산방’은 청파역, 공덕리, 마포나루 등에 걸쳐 있으며 대개 만초천(蔓草川)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해가 쉽다. 이 물길의 동쪽에 해당하는 구역으로는 한강 모래펄에 자리한 사촌리와 신촌리 등이 살짝 포함된 것이 전부이다.

애당초 용산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1899년 12월 ‘용산행’ 전차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의 종착점이 지금의 원효로 끝자락인 한강변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와는 달리 용산역 방향으로 전차선로가 부설된 것은 1910년 7월에 가서야 이뤄진 일이며, 그나마도 이곳에는 종전의 용산과 구분하기 위해 ‘신용산(新龍山)’ 종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인철도 개통 당시 만초천 물길의 동쪽 지역에 ‘용산정거장’이 개설되면서 위치관념이 약간 변경된 탓도 없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용산 주변의 지리적 위상관계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러일전쟁 직후 일본군 병영지의 건설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 당시 일제가 이른바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1904년 2월 23일)’에 근거하여 서울지역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한 대상지로 정한 곳은 갈월리, 이태원, 둔지미, 서빙고 일대였는데, 이곳은 원래 ‘둔지방(屯芝坊)’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편의상 ‘용산군영지’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일본군영지는 곧 ‘용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한국주둔(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의 편제 변동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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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용산보병연대 일대의 전경사진 가까운 쪽이 보병 제78연대, 먼 쪽이 보병 제79연대

당초 이 지역을 대상으로 일본 측이 징발을 요구한 면적은 무려 300만 평에 달하였다. 이 가운데 철도용지와 중복되는 51만 평은 제외되고 과다하게 설정된 후보지 134만 평이 한국정부에 환부됨에 따라 실제 군용지 건설에 소요된 땅은 115만 평 규모로 최종 낙착되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에 되돌려졌다고 알려진 곳 역시 상당수는 일본인들에게 불하처리되면서 일본군영지의 배후공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용산 일대의 징발지에서 군영지 건설공사가 개시된 시점은 1906년 4월이다. 사격장(1907.4), 매장지와 화장장(1907.7), 군용도로 (1908.3), 연병장(1908.5)과 같은 기반시설이 우선 건설되었고, 보병연대 본부 및 병영(1908.6)과 더불어 군사령부 청사(1908.7)가 속속 완공됨에 따라 1908년 10월에는 필동군영지(지금의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가 용산으로 자리를 옮겨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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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에서 창설된 제19사단사령부의 개청식 광경 『조선사단창설기념호(조선사진화보특별호)』,1916년11월

이와 함께 오포대(1908.9), 위수병원(1908.9),사단장숙사(1908.10),병기지창(1908.10), 육군창고(1908.11),사단사령부 청사(1908.12), 군악대 청사(1909.4), 기병중대 병사(1909.9), 야포병중대병사(1909.9),위수감옥(1909.9),군사령관숙사(1910.4) 등이 곳곳에 건립되었고 1913년 11월에는 기타의 부속건물이 모두 완공됨에 따라 용산 신군영지는 하나의 거대한 군사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이 가운데 군사령관 숙사는 1912년 5월에 조선총독부가 새로 지은 건물과 맞교환되어 용산총독관저(龍山總督官邸)로 변신하였는데, 이로써 용산은 공간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용산 일대의 군영지 건설공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었다. 1915년 6월에 종래의 주차군(駐箚軍; 일본 본토에 주둔지를 둔 사단병력을 주기적으로 교대하여 파견하는 방식) 체제를 바꿔 조선 내에 2개 사단을 증설하여 상주군(常駐軍)으로 전환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270여만 평(여의도연습장 138만 평 포함)의 땅이 추가되어 다시 대규모의 기지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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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주둔 일본군 사단 배비표 (『소화8년조선요람』,1932)

이때 용산 주둔지에는 사단장 숙사(1916.12), 여단장 숙사(1918.3), 79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기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야포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4), 공병대대 본부 및 병영(1920.3), 사격장(1921.12), 연병장(1921.12), 매장지와 화장장(1922.3) 등의 증설 또는 이전이 속속 이뤄졌다.

그 사이에 1916년 4월 제19사단이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부대편성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자 1918년 6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주차군사령부는 ‘조선군사령부(朝鮮軍司令部)’로 개칭되었다. 곧이어 1919년 4월에는 제20사단을 용산에서 새로 창설하는 동시에 먼저 생긴 제19사단은 함경북도 나남(羅南, 지금의 청진)으로 이동 배치하였다.

용산과 나남 등지에 터를 잡은 조선주둔 일본군대는 일제의 무력통치를 뒷받침하는 힘의 근원인 동시에 식민지배에 맞선 일체의 민족적 저항을 압살하는 직접적인 주체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른바 ‘시베리아출병’을 비롯하여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침략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선봉 노릇을 자처하였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촉발된 이후에는 전황이 길어질 조짐이 일자 방향을 바꿔 남방전선으로도 속속 투입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지원병제도와 징병제 실시를 통해 다수의 조선인들도 현역병으로 징집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투지원을 위한 노무인력으로 강제 동원되는 등의 고초를 겪게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당시 제20사단(용산) 병력이 우선 뉴기니아 방면(1942.12)으로 이동하였고, 계속하여 제30사단(1943년 8월에 평양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필리핀 민다나오섬(1944.5)으로, 제49사단(1944년 2월에 용산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버마 전선(1944.6)으로, 제19사단(나남) 병력 또한 필리핀 전선(1944.11)으로 추가로 재배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1945년 2월에는 종래의 조선군사령부가 폐지되고 조선군관구사령부(朝鮮軍管區司令部)와 제17방면군사령부(第17方面軍司令部)의 편제가 생겨났으나, 오래지 않아 일제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해방과 더불어 일제의 속박이 종결되고 용산군영지도 당연히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이러한 바람은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전승국 미국(제24군단)에 의한 미군정 실시와 더불어 옛 일본군 주둔지들은 그대로 미군의 수중으로 접수되었기 때문이었다. 1949년 6월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소규모의 주한미군사고문단(KMAG)만 잔류한 시절도 있었으나 불과 1년 이후에 발생한 6.25전쟁은 모든 것을 예전 상태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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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주둔 일본군대가 침략전쟁 때마다 이른바 ‘출정’과 ‘귀환’ 통로로 사용한 용산역 구내의 전경

용산기지는 이제 미군이 주역인 상태로 전환되어 미8군사령부(1953년 9월 동숭동에서 이전), 유엔군사령부(1957년 7월 일본 동경에서 이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7월 창설), 한미연합군사령부(1978년 11월 창설)가 터를 잡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그리고 냉전과 남북분단의 산물로 남아 용산기지 일대는 무려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이방인이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땅으로 남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지난 2004년에 이르러 간신히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용산기지 반환협정이 체결되는 단계가 되었고, 2009년에는 법률 제9600호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약간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당초 협정문안에서 2008년 말로 명기된 반환시한은 무려 10년 가까이 넘기고도 언제 반환절차가 종결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장차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날 용산미군기지 내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옛 일본군 병영의 흔적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용산병영지 외곽에 자리한 배후 시가지에도 군사도시의 기능을 가늠케 하는 여러 가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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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침략의 총본산인 용산군영지와 배후 시가지 일대가 잘 포착되어 있는 항공촬영사진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0

해방촌을 끼고 있는 남산 자락에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분사라고 할 수 있는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터가 있고, 청파동 철길 옆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신광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군대의 관병식(觀兵式)이 벌어지던 용산연병장 자리는 그 일부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해있고, 용산고등학교, 삼광초등학교, 수도여고 터, 용산초등학교, 선린상고 등 옛 일본인 학교들은 여전히 용산군영지를 감싼 듯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이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용산역도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 그대로이다.

일본군영지를 조성할 당시 군사도로로 만들어진 길은 한강리(漢江里, 현 한남동)를 밀어내고 ‘한강’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채 ‘한강통(漢江通, 현 한강로)’이 되었고, 그 길의 중간 쯤에 일제가 만들어낸 ‘삼각지(三角地)’라는 지명은 지금도 버젓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또한 일본군대의 연병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연병정(練兵町)’은 ‘남영동(南營洞)’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채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지 오래다.

오랜 세월 외국군대의 주둔지로 각인되어 있는 용산 지역에는 군영지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일대가 온통 일제침탈과 분단시대의 유적지로 가득 찬 셈이다. 이러한 잔존물들은 그 자체가 일제침략의 유력한 증거품이자 식민지배의 고난을 상기시켜주는 역사교육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식민지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담아내고 또한 해방 이후의 치유과정을 그려내기에 적합한 곳을 찾는다면 그 으뜸은 마땅히 용산지역의 몫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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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25일자 게시물에서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극단의 표현을 써가며 싸우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저의 고민을 밝히고,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시작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조 총장님께 전화로 문의하고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주장을 상세히 알아봐야 했고, 그래서 총장님께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을 통해서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와중에 운영위원회가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게시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청했습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 두 가지 요청은 작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극히 일부의 사항이고, 제가 궁금해 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 게시물을 통해 다시 밝혔습니다.

“이제 살짝 화가 나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화가 난다는 것입니까?

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한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논쟁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예단이나 편견 없이 듣는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을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에 따라 들을 경우 상대의 말은 왜곡되어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1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청자는 1차 왜곡된 말을 판단하는데 당연히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2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제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도 모릅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다.

저는 현재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재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월, 2018/04/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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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정관개정에 관해서도 설명했고

운영위원회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저의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충분히, 더 잘 설명 못한 것은 저의 한계일 수는 있습니다.

그동안의 대화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월, 2018/04/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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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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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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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수, 2018/05/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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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3회 “경복궁 수난사 – 조선물산공진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목, 2018/05/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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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_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목, 2018/05/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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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1.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을 공개하면서,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결과, 역사학계의 중론 등을 고려하고,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실시 등을 거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최종 확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화 전도사’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초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썼던 용어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새 집필 기준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로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다. 그 해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요청함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절차도 무시하였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 도덕(윤리), 정치, 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유독 역사과목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과목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발하였다.

3. 학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이명박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거로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적 이념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헌법 전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2년 12월 27일에 7차 개정된 이른바 유신헌법에서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전문을 근거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쓸 경우, 1972년 이전의 민주주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를 의미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것이다.

4. 수구-냉전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이라며, 이를 사용해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현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확대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5.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의 이념인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환원’한 것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은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6.국정교과서 소동으로 늦춰진 새로운 역사교과서 적용년도는 2020년이다. 불과 2년도 남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제작에 부역하였던 교육부가 국민 앞에 속죄하는 길은 오류를 최소화한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수구-냉전 세력의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려 했던 실패를 되새겨, 헌법이념인 독립운동-민주주의-평화통일의 가치를 담은 검정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끝>

2018년 5월 3일
역사정의실천연대

목, 2018/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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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공동 주최 춘계 학술대회  

대회 주제: 구술사와 공동체 아카이브: 구술, 기록, 지역의 만남

일시: 2018526() 오전 10오후 630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Minerva Complex 지하 2층 국제회의장  

대회 일정  

9:30 ~             등록 및 개회사       사회자 : 김수영(한국구술사학회 총무이사)

9:30 ~ 10:00    축사 : 노명환(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회장)

                                  이해영(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윤택림(한국구술사학회 회장)  

10:00 ~ 12:00   1 세션 지역과 아카이브       사회자 : 김종애(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1 주제 : 지역구술기록관리의 현황과 과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발표자 : 배은희(빨간집(기록조사기획사))

                  토론자 : 정연경(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2 주제 : 지역 디지털 아카이브 경기도메모리구축과 운영

                  발표자 :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토론자 : 이호신(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3 주제 : 지역의 정체(停滯)와 변화(變化)에 대한 주민의 기억

                    발표자 : 손동유(아카이브네트워크)

                   토론자 : 윤은하(전북대학교 대학원 기록관리학과)

13:00 ~ 15:40   2 세션 구술사와 지역사      사회자 : 안승택(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제 1 주제 : 구술사와 연극, 지역에서 만나다

                        발표자 : 김영미(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토론자 : 이하나(연세대학교 사학과)  

            제 2 주제 : 장소 기억과 기록 그리고 로컬리티: 대구 달성의 장소 아카이브와 장소성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자 : 정유진(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토론자 : 추명희(한국구술사연구소)

      3 주제 : 성남 제 1공단 빠이롯트 공장 구술채록을 통해 본 산업문화사적 의미

                        발표자 : 이정훈(전북대학교 무형문화연구소)

                      토론자 : 장미현(한국학중앙연구원)  

            제 4 주제 : 수복지역민의 반공·재건 서사와 지역사 연구   

                        발표자 : 한모니까(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토론자 : 김아람(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5:40 ~ 16:00   휴 식 

16:00 ~ 17:20   3 세션 구술과 기록 연구     사회자 : 오명진(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제 1 주제 : 대학기록관에서의 구술채록 수집 활동 

                      발표자 : 조용성(한국외대 역사기록관)

                     토론자 : 조석연(한국학지식정보센터)  

           제 2 주제 : 기록의 이면: 구술을 통해 바라본 코트라맨들의 경험

                               발표자 : 김명훈(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토론자 : 이세진(한국외대 사학과)  

17:20 ~ 18:30   종합토론      좌장 :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월, 2018/05/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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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4회 “망국의 굴욕, 헌상품”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5/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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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북간 냉전상태에서 평화무드로 바뀌어가려는 중요한 시기에
전범독일처럼 갈려야할 전범일본이 우리의 평화통일 방해하듯이
미국서도 볼튼같은 쓰레기 발언과 한반도 주변에 B52 핵폭격기를 띄우며
북한을 자극해 남북간 평화무드와 비핵화협상에 찬물끼얹는데 

 

물론 북한이 나쁜의도로 한국을 먼저 침략하면 우리도 가만히 당할수없고 전쟁이라도 해야하지만
전범국 독일도 평화통일이뤄 잘살듯이
아무죄도없이 강제로 분단된 한반도도 한민족간 평화통일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리 후손에 물려줘야할 유산이기때문에 이글을 올린다

미국의 강경파와 일본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이유가있다
그동안 친일매국노가 한국서 집권해 반공논리로 속였던 우리민족의 강제분단 속사정은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 독일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와 평화교류로 평화통일이뤘는데
전범일본이 갈려야할걸 다른나라에서 약탈한 금괴등 뇌물을 일본이 미국에 주고
핵폭탄 투하로 기세등등 유엔을 장악한 미국이 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시켜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건데

강제분단 당시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제주도민등
수많은 한국인이 전범일본을 갈라야지 죄없는 조선을 왜가르냐고 미국에 항의하자
미국과 앞잡이 이승만이 독립군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경비서던 독립군을 죽이고 구출후 정부요직과 군경간부로 임명후
조국분단 반대하던 애국자와 독립군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빨갱이로 속이고 암살과 학살을 저지른것으로

김구 김규식 여운형선생등 암살도 북한서 친일파를 처벌하자
남한으로 도망온 친일파들이 만든 서북청년단의 총무 안두희를
포병장교로 둔갑시켜 김구선생님을 암살하듯이 벌인짓들이었고
제주도민 학살도 제주도 책임지던 대대장이 죄없는 제주도민 죽일수없다하자
그 대대장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고 서북청년단과 친일파 군경을 투입시켜 제주도민을 학살한것이며

그 친일매국노들이 집권하여 그 후예들이 매국한 댓가로 돈이많아 재벌도있고
조중동등 언론사도 차리고 학교도 만들어 교수도 있으며 정치권도 장악해 경상북도에 터전을 만들곤
지금 남북간 비핵화 평화협정을 방해하며 자기들이 저지른 군,경,국정원까지 동원하고 컴퓨터 개표조작등
부정선거는 입다물고 똥묻은 개가 재묻은 사람 나무란다고 민간인인 드루킹인가 검찰발표로 거짓말한게 나타나듯
거짓말 협잡꾼의 사기발언과 편지에 조선일보와 같이 짜고 협잡하며 사사건건 꼬투리잡고 물고늘어지듯이

미국과 일본이 짜고 저지른 조선강제분단을 일본에 충성하듯 미국에 충성하며 일본의 금괴 뇌물상납은 숨기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을 공산주의 국가가 안되게 분단시킨것이라며 역사까지 미국을 미화하며 조작하였고
그 친일매국노들이 집권해 반공논리와 역사조작으로 국민을 속여왔지만 이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수없고

얼마전 미국대사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한반도 분단 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
미국과 일본도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될 한국에 솔찍하게 사죄하여야 할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한반도 평화통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 말아야한다

추신 김구선생님 암살범 안두희는 감옥에 잠시들어갔다 곧풀어주곤 군부대 납품업하며 떵떵거리고살다가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종적을 감춘걸 고 권중희 선생이 끝까지 추적해 위치파악후
제자이며 나랑 친분있는 박기서 열사가 너같은놈을 그냥 죽게 만들수없다고 직접만든 정의봉으로 패죽인것이다
박기서씨도 애국적인 행동으로 곧 풀려나 국민들 도움으로 개인택시하며 잘살고있다

 

일, 2018/05/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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