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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지역

이방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땅, 용산

익명 (미확인) | 월, 2017/08/2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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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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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용산’ 종점과 ‘신용산’ 종점이 구분되어 있는 전차정류장일람도의 일부(『경성번창기 』,1915)

흔히 용산(龍山)이라고 하면 용산역 앞이거나 미군기지 일대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원래 용산은 마포 바로 상류에 위치한 포구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단위의 하나인 ‘방(坊)’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용산방’은 청파역, 공덕리, 마포나루 등에 걸쳐 있으며 대개 만초천(蔓草川)을 경계로 서쪽 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이해가 쉽다. 이 물길의 동쪽에 해당하는 구역으로는 한강 모래펄에 자리한 사촌리와 신촌리 등이 살짝 포함된 것이 전부이다.

애당초 용산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는 1899년 12월 ‘용산행’ 전차가 처음 개통되었을 때의 종착점이 지금의 원효로 끝자락인 한강변에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와는 달리 용산역 방향으로 전차선로가 부설된 것은 1910년 7월에 가서야 이뤄진 일이며, 그나마도 이곳에는 종전의 용산과 구분하기 위해 ‘신용산(新龍山)’ 종점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경인철도 개통 당시 만초천 물길의 동쪽 지역에 ‘용산정거장’이 개설되면서 위치관념이 약간 변경된 탓도 없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용산 주변의 지리적 위상관계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러일전쟁 직후 일본군 병영지의 건설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이 당시 일제가 이른바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1904년 2월 23일)’에 근거하여 서울지역에서 일본군 주둔을 위한 대상지로 정한 곳은 갈월리, 이태원, 둔지미, 서빙고 일대였는데, 이곳은 원래 ‘둔지방(屯芝坊)’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편의상 ‘용산군영지’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로부터 일본군영지는 곧 ‘용산’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한국주둔(조선주둔) 일본군사령부의 편제 변동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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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방향에서 담아낸 용산보병연대 일대의 전경사진 가까운 쪽이 보병 제78연대, 먼 쪽이 보병 제79연대

당초 이 지역을 대상으로 일본 측이 징발을 요구한 면적은 무려 300만 평에 달하였다. 이 가운데 철도용지와 중복되는 51만 평은 제외되고 과다하게 설정된 후보지 134만 평이 한국정부에 환부됨에 따라 실제 군용지 건설에 소요된 땅은 115만 평 규모로 최종 낙착되었다. 하지만 한국정부에 되돌려졌다고 알려진 곳 역시 상당수는 일본인들에게 불하처리되면서 일본군영지의 배후공간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용산 일대의 징발지에서 군영지 건설공사가 개시된 시점은 1906년 4월이다. 사격장(1907.4), 매장지와 화장장(1907.7), 군용도로 (1908.3), 연병장(1908.5)과 같은 기반시설이 우선 건설되었고, 보병연대 본부 및 병영(1908.6)과 더불어 군사령부 청사(1908.7)가 속속 완공됨에 따라 1908년 10월에는 필동군영지(지금의 남산골 한옥마을 자리)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韓國駐箚軍司令部)가 용산으로 자리를 옮겨오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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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에서 창설된 제19사단사령부의 개청식 광경 『조선사단창설기념호(조선사진화보특별호)』,1916년11월

이와 함께 오포대(1908.9), 위수병원(1908.9),사단장숙사(1908.10),병기지창(1908.10), 육군창고(1908.11),사단사령부 청사(1908.12), 군악대 청사(1909.4), 기병중대 병사(1909.9), 야포병중대병사(1909.9),위수감옥(1909.9),군사령관숙사(1910.4) 등이 곳곳에 건립되었고 1913년 11월에는 기타의 부속건물이 모두 완공됨에 따라 용산 신군영지는 하나의 거대한 군사도시로 탈바꿈하였다. 이 가운데 군사령관 숙사는 1912년 5월에 조선총독부가 새로 지은 건물과 맞교환되어 용산총독관저(龍山總督官邸)로 변신하였는데, 이로써 용산은 공간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식민통치권력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용산 일대의 군영지 건설공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었다. 1915년 6월에 종래의 주차군(駐箚軍; 일본 본토에 주둔지를 둔 사단병력을 주기적으로 교대하여 파견하는 방식) 체제를 바꿔 조선 내에 2개 사단을 증설하여 상주군(常駐軍)으로 전환하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270여만 평(여의도연습장 138만 평 포함)의 땅이 추가되어 다시 대규모의 기지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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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주둔 일본군 사단 배비표 (『소화8년조선요람』,1932)

이때 용산 주둔지에는 사단장 숙사(1916.12), 여단장 숙사(1918.3), 79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기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3), 야포병연대 본부 및 병영(1920.4), 공병대대 본부 및 병영(1920.3), 사격장(1921.12), 연병장(1921.12), 매장지와 화장장(1922.3) 등의 증설 또는 이전이 속속 이뤄졌다.

그 사이에 1916년 4월 제19사단이 용산에서 창설되었고 부대편성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자 1918년 6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주차군사령부는 ‘조선군사령부(朝鮮軍司令部)’로 개칭되었다. 곧이어 1919년 4월에는 제20사단을 용산에서 새로 창설하는 동시에 먼저 생긴 제19사단은 함경북도 나남(羅南, 지금의 청진)으로 이동 배치하였다.

용산과 나남 등지에 터를 잡은 조선주둔 일본군대는 일제의 무력통치를 뒷받침하는 힘의 근원인 동시에 식민지배에 맞선 일체의 민족적 저항을 압살하는 직접적인 주체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른바 ‘시베리아출병’을 비롯하여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침략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선봉 노릇을 자처하였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촉발된 이후에는 전황이 길어질 조짐이 일자 방향을 바꿔 남방전선으로도 속속 투입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지원병제도와 징병제 실시를 통해 다수의 조선인들도 현역병으로 징집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투지원을 위한 노무인력으로 강제 동원되는 등의 고초를 겪게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당시 제20사단(용산) 병력이 우선 뉴기니아 방면(1942.12)으로 이동하였고, 계속하여 제30사단(1943년 8월에 평양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필리핀 민다나오섬(1944.5)으로, 제49사단(1944년 2월에 용산에서 신규 편성) 병력이 버마 전선(1944.6)으로, 제19사단(나남) 병력 또한 필리핀 전선(1944.11)으로 추가로 재배치되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1945년 2월에는 종래의 조선군사령부가 폐지되고 조선군관구사령부(朝鮮軍管區司令部)와 제17방면군사령부(第17方面軍司令部)의 편제가 생겨났으나, 오래지 않아 일제는 패망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해방과 더불어 일제의 속박이 종결되고 용산군영지도 당연히 이방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이러한 바람은 그대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전승국 미국(제24군단)에 의한 미군정 실시와 더불어 옛 일본군 주둔지들은 그대로 미군의 수중으로 접수되었기 때문이었다. 1949년 6월 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소규모의 주한미군사고문단(KMAG)만 잔류한 시절도 있었으나 불과 1년 이후에 발생한 6.25전쟁은 모든 것을 예전 상태로 되돌려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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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주둔 일본군대가 침략전쟁 때마다 이른바 ‘출정’과 ‘귀환’ 통로로 사용한 용산역 구내의 전경

용산기지는 이제 미군이 주역인 상태로 전환되어 미8군사령부(1953년 9월 동숭동에서 이전), 유엔군사령부(1957년 7월 일본 동경에서 이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7월 창설), 한미연합군사령부(1978년 11월 창설)가 터를 잡는 공간으로 변모되었다.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그리고 냉전과 남북분단의 산물로 남아 용산기지 일대는 무려 한 세기가 넘도록 여전히 이방인이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땅으로 남게 된 셈이었다.

그나마 지난 2004년에 이르러 간신히 한국정부와 미국정부 사이에 용산기지 반환협정이 체결되는 단계가 되었고, 2009년에는 법률 제9600호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마련됨에 따라 약간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당초 협정문안에서 2008년 말로 명기된 반환시한은 무려 10년 가까이 넘기고도 언제 반환절차가 종결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장차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타날 용산미군기지 내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옛 일본군 병영의 흔적들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용산병영지 외곽에 자리한 배후 시가지에도 군사도시의 기능을 가늠케 하는 여러 가지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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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침략의 총본산인 용산군영지와 배후 시가지 일대가 잘 포착되어 있는 항공촬영사진 『사단대항연습사진첩 』,1930

해방촌을 끼고 있는 남산 자락에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분사라고 할 수 있는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 터가 있고, 청파동 철길 옆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 터(신광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일본군대의 관병식(觀兵式)이 벌어지던 용산연병장 자리는 그 일부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변해있고, 용산고등학교, 삼광초등학교, 수도여고 터, 용산초등학교, 선린상고 등 옛 일본인 학교들은 여전히 용산군영지를 감싼 듯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 때마다 대규모 병력이 ‘출정’과 ‘귀환’을 반복했던 용산역도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 그대로이다.

일본군영지를 조성할 당시 군사도로로 만들어진 길은 한강리(漢江里, 현 한남동)를 밀어내고 ‘한강’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채 ‘한강통(漢江通, 현 한강로)’이 되었고, 그 길의 중간 쯤에 일제가 만들어낸 ‘삼각지(三角地)’라는 지명은 지금도 버젓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또한 일본군대의 연병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연병정(練兵町)’은 ‘남영동(南營洞)’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채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지 오래다.

오랜 세월 외국군대의 주둔지로 각인되어 있는 용산 지역에는 군영지 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일대가 온통 일제침탈과 분단시대의 유적지로 가득 찬 셈이다. 이러한 잔존물들은 그 자체가 일제침략의 유력한 증거품이자 식민지배의 고난을 상기시켜주는 역사교육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식민지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담아내고 또한 해방 이후의 치유과정을 그려내기에 적합한 곳을 찾는다면 그 으뜸은 마땅히 용산지역의 몫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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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봉 아산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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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낯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산시 조 아무개 시의원의 소개로 전화하게 됐다며 자신을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아산 유족회장이라고 밝힌 뒤 유해발굴의 어려움을 말하며 아산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내용을 알기에 도와드리겠다고는 했지만 정작 아산지회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을 공동체에서 상영한 것,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충남 합동추모제에 참석한 것, 홍성유해발굴에 몇 번 참석, 한국전쟁기 아산지역 학살지를 유족과 증언해 주실 분을 모셔다 다시 확인하고 증언들을 추가로 수집한 것 등이 전부다.
그러던 중 아산지역 유해발굴에 필요한 조례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성, 진주에 이어서 마침내 이곳 아산에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시의 예산을 지원 받아 배방읍 폐금광 학살지를 발굴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발굴공동조사단으로부터 유해발굴계획을 듣고 아산대책위를 별도로 구성하고 우리 연구소 아산지회가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유해발굴작업에 들어갔다.
2017년 11월 16일 많은 시민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제를 올린 뒤 시굴의 첫 삽을 떴다. 첫 삽을 뜬 이곳은 그때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학살현장을 직접 목격한 자리라고 증언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유해가 나오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평범한 노인의 무덤이었다. 당시를 증언해주시던 분들은 그때 너무 어렸고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을 틀렸을지 모른다는 말씀이 전부였다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모두가 불안해하며 여기저기 산을 파고 뒤지다가 3일을 모두 보내고 말았다. 논의 끝에 하루를 더 찾아보자고 했던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해를 찾지 못하던 우리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작해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였다.
시굴 마지막 날이다. 오후 들어 마지막 한 군데만 더 파보고 없으면 철수하기로 하고 굴삭기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참을 파던 중 ‘중지’라는 외침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검은 흙이 보이고 무언가가 있었다. 잠시 살피다가 누군가 “사람 뼈예요” “유해입니다”라고 외쳤다. 그 순간, 우연일까? 하늘에서 하얀 꽃가루 같은 눈이 하얗게 내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가. 68년의 어둠이 빛을 만나는 이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도 없이 하얀 눈이 한참을 내렸다. 이렇듯 어렵사리 학살당한 피해자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2018년 2월 22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애타게 기다리던 유해들이 어둠속에서 밖으로 한 구 두 구 나오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여 얽히고 일그러진 불탄 유해 앞에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아이였다. 열 살도 안 된 코흘리개가 어떻게 인민군에 부역을 했단 말인가. 어미의 등에 업힌 젖도 못 뗀 갓난아기는 대체 무엇 때문에, 치아가 모두 닳아버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는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어떻게 이리도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두 눈으로, 두 손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는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거늘 이곳 저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했던 바로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3월 31일 40여 일을 발굴한 끝에 바닥에 맨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발굴 종료를 선언했다. 마지막 유해를 수습한 뒤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유족이 함께한 가운데 제를 올렸다. 어느 유족이 술을 따르다 마침내 오열하였다. “아버지… 아버지… 왜… 왜 여기에 계신 거예요. 무엇 때문에… 아버지.” 제를 지내던 발굴터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버지를 68년 동안이나 참혹한 어둠 속에 있게 한 것도 모자라 빨갱이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자기 자식에게조차 숨긴 채 한평생 한을 품고 살아오다 이렇게 처참하고도 허망한 유골로 만났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설화산 산기슭 골짜기에 천년을 두고 울어줄 한맺힌 절규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유족과 함께 어려운 시간을 내서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자원봉사자들, 열일 제쳐놓고 발굴에 매달린 발굴공동조사단, 산으로 점심을 준비해 날라주던 아산대책위, 발굴이 끝날 쯤 발굴장비 철수와 감식장으로 유해를 옮기는 힘든 순간에 기꺼이 달려왔던 연구소 천안지회 회원들과 멀리 부천지회 회원들, 본부 상근자들, 심지어 카메라 대신 삽과 곡괭이를 들었던 영상팀과 기자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40여 일을 함께했기에 유해발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직 아산에는 학살지가 여러 곳이 더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산의 모든 학살지가 발굴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하고 발굴이 마무리되면 추모관을 건립하여 아산의 아픈 흑역사를 잊지 않도록 알리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산의 민간인 학살사건은 전쟁으로 인한 불가피한 희생이 아니라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규정하여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전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진달래 피는 봄이 남녘과 북녘에 함께 왔다. 그토록 그리던 봄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해발굴사업이 우리를 옥죄던 이념의 깊디깊은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함께 치유하는 시작점이 되어 우리 민족의 진정한 봄을 맞이하기를 손 모아 기다린다.

금, 2018/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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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마당

김판수회원

 

망국의 수난 그 피해자 안점순님 이승을 떠나시다

북상한다는 벚꽃은 오는 길이 더디지만
그래도 개나리는 노랑 치맛자락으로 기찻길 치렁치렁 치장하였네
아직은 이른 봄날 3월 30일
서둘러 떠나시는 님 붙잡지 못하는 우리 서러운 봄날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짐이 필연이라지만
끝까지 풀지 못한 매듭이 있어
떠나고 보냄은 너무 아쉬운 작별입니다.
“가해자 전범국 일본은 나에게 잘못했다 말하라”
이승을 지키는 우리가 님을 기억하고 풀겠습니다.
편하게 가시고 편안하게 쉬세요.
일본제국 침략전쟁범죄 일본군 강제연행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안점순, 나라 없는 백성이라
납치와 강제연행, 감금과 폭행으로 목숨보다 소중한 정절을 짓밟히어
여성의 순결을 상실하고 인간의 존엄까지 박살났네
망국의 수난사를 온몸에다 새기고 천신만고 찾아오니
그리던 살붙이도 손사래치고 정다운 이웃들도 외면했네
전사는 죽어도 훈장이라도 남지만
살아 돌아온 ‘위안부’는 손가락질 따돌림이라
끌려가고 짓밟히고 버려지고 외면해도
죽지 못해 사는 질긴 목숨은 웬수보다 더 미운 네 팔자였네
아―! 누가 나보다 더 서러운 사람 있겠는가!
그토록 힘든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내신 안점순 님의 숭고한 삶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이승을 지키는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정직한 과거청산 정의로운 역사화해를 위하여

한일양국은 뗄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다. 한일양국의 선린우호는 서로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동양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일본제국이 멀지 않은 과거에 불의한 침략전쟁을 벌여 이웃나라에 고통을 주었던 전범국가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범국 일본은 피침략국이 당한 수난과 고통, 상처와 아픔, 수모와 치욕을 함께 기억하고 선린우호가 회복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제국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악한 착상으로 피식민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로 연행하여 감금 폭행한 반인륜적 반인권적 전쟁범죄를 국가가 주도하여 실행하였다.
패전 70년 만에 분명하고 성의있는 사죄도 없이 20만 피해자 1인당 5만원 정도 되는 10억 엔이란 돈을 내놓고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끝났다고 우기고 있으니 어찌 그들이 야만적 전쟁범죄를 반성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슬그머니 일본 시마네현에 불법 편입시켜 놓고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을 강행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과거 불법 침략이 전쟁범죄로 판명났음에도 아직도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교과서로 차세대에게 왜곡된 역사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것은 선린우호를 저해하고 분쟁을 야기하려는 오만무례한 행위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
침략야욕을 버리지 않는 것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일 양국의 정직한 과거청산과 정의로운 역사화해로 평화공존의 길을 함께 가면서 소중한 동반자로 동행하기를 기대한다.

2018.3.31
여럿이 함께 손잡고 ‘평화의 길’ 김판수 두손모음

금, 2018/04/2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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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기능에 문제가 생겨 글쓰기 버튼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조속히 원상 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연구소에 적대적인 일부 인사가 일시적인 기술적 사고를 왜곡하여 연구소를 비방하는 데 악용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무국.

금, 2018/04/20-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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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ㅇ경씨와 3년간에 걸친 재판 끝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최종승리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12일, 조희대 대법관을 재판장으로 한 대법관 4명의 전원일치된 의견으로 방ㅇ경씨의 상고에 대해 기각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내려진 “500만원을 민족문제연구소에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이 확정되었다.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과 3심까지 모두 연구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퇴본(문재인정권 퇴진촉구 애국의병혁명본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방ㅇ경씨는 2014년 8월경부터 인터넷에 널리 유포된 박정희 합성사진을 연구소가 조작했다며 4년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소를 음해해왔다.

▲ 박정희 사진조작설을 유포하고 있는 방ㅇ경씨의 트윗

이에 연구소는 2016년 3월 방ㅇ경씨를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방ㅇ경씨는 소송대리인으로 서석구 변호사(전 박근혜 변호인)를 선임했다. 그들은 재판과정에서 연구소를 종북단체라고 부르며 “방ㅇ경씨의 행동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적 결단”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1심에서 패소한 그들은 2심에서도 여전히 색깔론을 펼쳤지만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을 유지했다. 이후 대법원에 보낸 상고이유서도 연구소에 대해 “대한민국에 적대하고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과 궤를 같이 하여 역사를 왜곡날조하는 단체에 불과” 하다고 주장하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최종판결에 따라 방ㅇ경씨는 500만원을 연구소에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한 형사소송은 현재 진행중이며 5월에 첫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방ㅇ경씨는 얼마전 가수 겸 작곡가인 윤상씨를 비난하는 트위터를 날렸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방모씨는 “문보궐정권은 반 대한민국 세력들과 한편 먹는데 남북실무접촉 남수석대표로 윤상씨라면 김일성찬양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간첩 윤이상, 5·18광주폭동 핵심으로 보상금 받고 월북한 대동고출신 윤기권, 김일성이 북한에서 만든 5.18영화의 주인공 윤상원 이들 중 누구와 가까운 집안입니까”라는 비난성 트위터를 날렸으나 윤상씨 본명이 이윤상 이란 것이 알려지며 역대급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금, 2018/04/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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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부터 자유게시판 왼쪽 아래에 있던 글쓰기 버튼이 삭제되어 기능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홈페이지 유지보수업체로부터 방금 원상 복구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원인은 해킹 또는 프로그램오류로 추정되나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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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일, 2018/04/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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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雩南李承晩崇仰輩

 

雩南臨政敵(우남임정적)

國父可當耶(국부가당야)

問罪過完用(문죄과완용)

多功或莫誇(다공혹막과)

 

雩南 이승만을 崇仰하는 무리에게 고함

 

이승만은 임시 정부 敵이었느니

國父라 일컬음이 可當키나 한가

罪를 물은즉 이완용보다 더하니

功이 많다, 或 자랑 따위는 말라.

 

<時調로 改譯>

 

臨政의 敵이었느니 國父 호칭 可當한가

그의 罪를 물은 바, 저 이완용도 넘으니

공적이 多大하다며 혹 자랑하지는 말라.

 

*雩南: 이승만의 號 *崇仰: 공경하여 우러러봄 *臨政: ‘임시 정부’를 줄여

이르는 말  *國父: 나라의 아버지란 뜻으로, ‘임금’을 이르는 말.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많아 국민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를 이르는 말

*可當: 대체로 사리에 맞음 *問罪: 죄(罪)를 캐내어 물음.

 

<2016.9.26, 이우식 지음>

월, 2018/04/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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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이 러브, NK Goodbye My Love, North Korea 연출 김소영│2017│Documentary│89min 38sec│HD│Color│16:9│stereo 언어 : 러시아어/한국어|자막 : 한국어, 영어 배급: (주)시네마달 SYNOPSIS 8명의 북한 청년들이 한국 전쟁 당시 모스크바 국립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나, 김일성 체제 비판 후 유라시아로 망명해 디아스포라 영화 감독 등으로 다른 세상과 만난다 8명의 북한 청년들이 ..
월, 2018/04/23-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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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10기운영위원회(위원장 이민우) 김순흥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 2017년 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운영위원회 내규 개정. 정관개정안 심의 이사회에 회부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개정 이유〉
1) 분기별(년 4회)로 열리는 운영위원회가 일상 업무를 심의 의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소장과 운영위원장 사무총장 운영위부위원장 5인과 실국장 5인으로 구성되는 집행위원회를 매월 개최하여 그 공백을 메우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회부해 결정한다는 취지이다. 이는 집행부의 권한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운영위원회의 의사결정 참여를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담보하는 내용인 것이다.
2) 임원은 이사장 소장 이사 감사 등이다. 그런데 ‘임원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는 운영위원회 조항을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이 마치 위원회의 배타적 독점적 권한인양 고집함에 따라 이사장 이사들의 임원추천권을 부인하는 결과가 빚어졌다. 이는 상급 기구인 이사회의 재량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법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에 통례에 준해 임원은 이사장 이사 운영위 등 여러 단위에서 추천하고 이사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총회에서 인준하는 과정이 합리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3) 지부사업 중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 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지부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치는 것으로 하였다. 지부총회의 주요안건은 예결산 및 사업계획 수립과 지부장 선출이다. 지부장은 운영위 인준과 이사장 임명을 거쳐야하므로 당연히 운영위원회 승인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목적사업 외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이유는 강세형 전 전남동부지부장의 사례와 같이 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전혀 다른 정치적 사업에만 집착하여 지부를 형해화하고 회원들의 이탈을 조장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조문을 구체화함으로써, 연구소 본연의 과제를 방기하거나 지지자 몇 사람으로 총회를 열고 그 결과를 회원의 총의로 분식하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소결〉
정관개정은 2016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개정소위에서 마련한 초안을 여러 차례 운영위에서 논의를 하고 제출된 의견을 수렴하여 개정소위에서 재검토한 뒤 다시 운영위 심의를 거쳐(만장일치 통과) 이사회에서 의결하고 총회에서 인준되었다. 정관 개정은 업무의 효율성 및 운영위와 집행부의 소통을 위한 것이며 무엇보다도 불합리한 조항을 상식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운영위원회가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논의해온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여인철 전임위원장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외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개정 정관으로 인해 사무총장의 1인지배체제가 되었다는 소설에 가까운 망상은 동정이 갈 정도로 평가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지금이라도 여인철 씨는 정관 개정의 본의를 왜곡하고 회원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해 둔다. 

화, 2018/04/2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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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정기총회를 전후한 사태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의 입장

여인철 씨 등의 반조직적 반민주적 행태를 규탄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제10기 운영위원회 운영위원 일동은 지난 324일 열린 2018년도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를 전후하여 여인철 전 운영위원장 등이 저지른 반민주적 반조직적 폭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여인철 씨는 201612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치러진 경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패배하여 운영위원장 연임에 실패하였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본인의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리더십에 기인한바 컸습니다. 그간 여인철 씨가 보여준 수준 이하의 낯부끄러운 행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조직의 체면을 감안하여 가능하면 내부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여인철 씨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건을 인터넷상에 반복하여 무차별적으로 유포하고 총회장에서 배포함으로써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먼저 여인철 씨가 수차례에 걸쳐 수정해가며 전파한 이른바 민족문제연구소의 적폐청산과 바로세우기를 위한 성명서는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음해임을 말씀드립니다. 

정관 개정 작업은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인 2016년 시작되었으며, 개정 소위원회가 기초한 초안을 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총회의 인준을 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운영위원회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으며 거기에는 여인철 씨가 강변하는 운영위원회와 집행부의 결탁이니 묵계와 거래등 어떤 사술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시각이야말로 여인철 씨의 음모적 속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증거라 할 것입니다. 정관 개정과정에는 하등의 절차적 문제도 없었으며 총회와 이사회 운영위의 권한이 충돌하지 않게 상식선의 조정을 한 것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붙임 신구정관 대비 해설 참조) 

그런데 여인철 씨는 이를 빌미 삼아 마치 운영위원회가 집행부의 하수인이라도 된 듯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았습니다. 운영위원들은 상근자들이 열악한 여건 아래서도 오랜 기간 연구소에 헌신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렇다고 집행부의 잘못을 방관할 정도로 맹목적인 지지는 보내지 않습니다. 격려와 비판 어느 한쪽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운영위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집행부는 각기 그 소임에 충실하게 연구소를 위해 열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현재 민족문제연구소의 구성원 그 누구도 패권을 추구한다든지 전횡을 일삼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인철 씨는 상습적으로 연구소 집행부를 박근혜 정권이나 최순실 유신체제에 비유함으로써 마치 연구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듯이 주변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무책임한 독선적 행동은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에서 나온 망발로 이사장님과 각급 기구의 구성원 모두를 허수아비로 규정한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연구소는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성원을 받들어 실천하는 조직이지 권력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이해관계로 보일지 몰라도 저희들이 보기에 연구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은 한결 같이 역사정의실현이라는 대의에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인철 씨는 회원들의 분별력을 흐리기 위해 회원이 주인이라는 당위론적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그러한 명분 아래 자신의 야욕을 관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회원들을 대변하는 투사인양 포장하면서, 현 운영위원회와 상근자들이 야합하여 회원을 무시하고 있는 듯이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 스스로 연구소를 위해 큰 희생이라도 치른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인철 씨가 운영위원장으로 재임하던 2년 내내 여인철 씨가 한 일은 소장 사무총장 사무국장 등 주요 책임자에 대한 사퇴 요구와 자신의 권한 강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역사관 건립 등 시급한 현안은 도외시하고 권력 장악에만 매달렸습니다. 고압적이고 본말이 전도된 회의 진행으로 운영위원회를 갈등과 분열의 장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오죽하면 전임자들이 별 무리 없이 모두 연임한 것과 달리, 본인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위원장 경선에서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여인철 씨는 자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지난 정기총회에서 감사와 현 운영위원장 그리고 다수 운영위원들의 사퇴까지 강박하는 망동을 부렸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여인철 씨가 연구소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러한 횡포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직의 체면만 생각하여 쉬쉬하고 끝없이 끌려다니기만 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운영위원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운영위원들은 지난 47일 긴급 임시운영위원회를 열고 여인철 씨 등에 대한 중징계를 이사회에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회원 여러분! 우리 연구소는 그간 온갖 탄압과 역경을 뚫고 역사왜곡에 맞서 싸우며 역사전쟁의 최일선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왔습니다. 연구소는 우리의 자랑이며 역사전쟁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지금 이런 연구소에 대해 여인철 씨 등과 회원도 아닌 극소수 파괴분자들이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퍼트리고 음해와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운영위원회는 연구소를 보위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갈 것입니다. 기만적인 언설로 연구소를 와해시키려는 여인철 씨 등의 책동을 저지하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십시오. 여러 가지로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상황인 점을 백번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8. 4. 24.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이민우 운영위원장/인천지부장
권위상 부위원장
김순흥 부위원장/광주지부장
김희원 부위원장/경기동북지부장
박동규 부위원장
이순옥 부위원장
조승현 부위원장
고장오 경기군포안양지부장
권희용 충남지부장
김방원 서울서부지부장
김재운 운영위원
김재호 전북지부장
박건 서울강서양천지부장
박종선 경기부천지부장
박해룡 대전지부장
서승의 고양파주지부장
손영주 서울강남서초지부장
송승호 제주지부장
심우일 경기안산시흥지부장
이달호 경기수원지부장
이영국 서울남서지부장
이희주 경기북부지부장
임승관 전남동부지부장
장재영 서울동부지부장
최창옥 경북북부지부장
홍석경 경기과천의왕지부장

화, 2018/04/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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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민문연에 가입한 새내기입니다.

친일청산과 이승만 박정희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치고 용기 있게 발표한 민문연에 평소에 품고 있던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뒤늦게나마 후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서 보인 민문연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민족 자존의 대의를 위하여 일한다는 분들의 회의 진행 모습은 전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참가한 회원들 중 많은 분들도 전혀 민주적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총회에서 받은 충격과, 그리고 반대자들을 제명하겠다는 후속조치에 대단히 실망하였습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판하는 자들이, 이곳에서 저들과 똑같이 독재를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미약한 힘이나마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 회비 감축을 하고자 합니다. 최소 회비인 월 1만원으로 감축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켜 보겠습니다. 민문연이 촛불시민의 수준으로 민주화가 되었을 때에, 타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다시 증액하고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민족의 등불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대전 김영수

 

 

화, 2018/04/2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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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오디오) 내역사 시즌2 – 역전다방

임시정부와 3.1혁명 4편; 임시정부의 활동과 좌절 그리고 이승만의 패악질’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구요
목요일은 ‘미리 가는 식민지 역사박물관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화, 2018/04/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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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댓글 달기 기능은

일부러 뺀 것입니까?

일부러 뺐을 리는 없겠지요?

연구소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을테니까요

저는 민족문제연구소는 우리 1만여 회원들만의 연구소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미 훌쩍 커버렸고 또 정말 어려울 때 3000원 5000원 후원했으며, 혹 금전적 후원을 못해도 마음으로 성원하고 사랑하며 지지한 많은 국민 또는 시민들의 연구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홈페이지에 회원들을 위한 열린게시판에서 게시된 사안과 의견에 대하여 당연히 읽은 이의 의견을 달거나 의문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홈페이지는 댓글 다는 기능이 없습니다.

아니면 실수로 빠뜨린 것입니까?

자칭? 완벽에 가깝다는 연구소가

어느 연구소보다 능력이 뛰어난

그리고 헌신적인 전문 상근 담당자들이 홈페이지를 새로 개편하면서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면 삼척동자도 웃겠지요?

이 글을 읽는 즉시 빼야만 했던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기능을 추가해 주세요

그리고

1만여명이 넘는 회원들이 찾아와서

전 국민이 찾아와서

각자 연구소에 대한 칭찬도 격려도 비판도 생각도 말하고 공유하는 연구소가 되고 회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한시바삐 댓글달기 기능을 살려 주세요

수, 2018/04/25-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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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賀全琫準將軍之銅像建立

 

腐邦東學起(부방동학기)

義血大男兒(의혈대남아)

亂政今綿歷(난정금면력)

民號立像碑(민호입상비)

 

전봉준 장군의 銅像 건립을 삼가 賀禮하며

 

푹 썩은 나라에 東學이 일어났으니

정의의 피를 흘리신 큰 男兒였도다

어지러운 정치 지금도 죽 이어지니

民은 부르짖으며 銅像과 碑 세운다.

 

*全琫準: 조선 후기  東學  농민 운동의 지도자(1855~1895).  初名ㆍ字는  명숙

(明叔). 號는 해몽(海夢). 고부 군수 趙秉甲의 수탈에 항거하여 농민 운동

일으켜 猛威를 떨쳤으나, 官軍과 일본군에게 패하여 이듬해에  처형되었다.

*義血: 정의를  위하여 흘린 피 *亂政: 어지러운  정치 *綿歷: 쉬지  않고  계속됨.

 

<2018.4.24, 이우식 지음>

수, 2018/04/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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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김점구입니다

지난 총회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연구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개 회원인 제가 상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쌍방의 주장을 듣고 있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판단은 보류하고 있습니다.
쌍방의 주장을 보면 
서로 극단에 서 있고, 서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이고,
그동안 들리는 소문을 무관심하게 지나쳐 버린 저를 탓하며, 회원으로서 현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작금의 극단적 상황이 2018년 3월 24일 총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몇 년에 걸친 대립과 갈등이 커져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잘못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판단 보류입니다.

총회에 대한 소감은 이전에 밝혔으므로 생략하고
4월 24일 자로 운영위원회 명의로 게시한 <신구 정관 개정조문 대비와 해설> 건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이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정관에서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크게 축소했다는 것입니다.
운영위원회가 게시한 글에 따르면 정관 개정 건이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부터 논의되었습니다.
———
〈운영위원회의 정관개정 논의 과정〉
– 2016년 9기 운영위원회(위원장 여인철) 정한봄지부장을 소위원장으로 하는 규정개정소위 구성, 초안 논의
——–

2017년 제10기 제4분기 운영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여 이사회에 회부했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1) 연구소의 일상업무를 심의 의결한다. → 집행위원회에서 제안한 사업에 대하여 심의 의결한다.
2) 임원 선출에 있어 추천권을 갖는다. → 임원을 추천할 수 있다.
3) 지부 사업은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지부에서 정관이 규정하는 목적사업 외의 사업을 추진할 경우와 총회 결과는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은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총회에서 승인된 〈정관 개정안 주요내용〉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가 이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여인철  전 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었던 당시(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 위와 같은 내용으로 제안되거나 의견이 모아졌다면, 현재 여인철 전 위원장의 주장 또는 의혹제기는 터무니없고 절대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인철 위원장 자신이 책임자로서 관여했던 규정개정소위를 부정하는 작태이고, 자신이 시작한 일을 남에게 탓을 돌리려는 비겁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2016년 제9기 운영위원회에서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에 대하여 제안 또는 논의가 없었다면 굳이 여인철 전 위원장을 개정 과정에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관 개정의 연혁을 소개한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난 과정을 모르는 회원의 입장에서는 여인철 전 위원장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소개인지 아니면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의도했다면 현 운영위원의 도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의 및 요청입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8/04/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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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와 10기 규정개정 소위 모두 참여한 김재운입니다

두차례 소위에 다 참여한 사람은 저밖에 없네요

개정 경과에 대한 설명은 제가 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한데 제가 대전 출장중이라

내일 정도에 간략하게라도 정리해 올리지요

수, 2018/04/25-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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