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는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적 지향’ 등 7가지 차별 금지 항목을 삭제하겠다는 후퇴에 맞서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반차별공동행동’으로 출발한 연대체다. 2011년 ‘반차별공동행동’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 전환했고, 올해 조기 대선 국면에서 1백7개 단체로 확대개편해 재출범했다.
노동자연대는 2007년부터 (‘성적지향’ 등이 포함된) 후퇴 없는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고, 올해 3월 차제연이 확대·개편될 때 가입해 능동적인 일부로 참가해 왔다. 노동자연대는 차제연 소속 1백7개 단체 가운데 가장 열의 있게 활동하는(또는 하려는) 17개 집행위 단체 가운데 하나다. 또한 일부 기독교 우익들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 항목을 주요 고리로 차별금지법을 공격하고 민주당이 여기에 타협해 온 지난 10년 동안, 이를 비판하고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2. 그런데 지난 8월 16일, 그동안 차제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을 적극 해 온 노동자연대에게 차제연 소속 9개 단체가 터무니없는 오명을 씌우며 부당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동자연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함께 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성폭력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가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연서명을 발의했다.
이 단체들은 자칭 “노동자연대·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라는 H의 일방적 주장에 따라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가해 행위를 한 것으로 전제하고 “모든 가해 행위 중단”과 “사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을 더 이상 함께하기 어렵다”며 노동자연대 추방 협박까지 하고 있다.
3. 그러나 이 요구 자체가 연대체 운영 원리에 심각하게 위배된다. 차제연은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제한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목적에 동의하는 단체와 개인이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차제연은 소속단체 가입을 받을 때 차별금지법 제정 동의 여부와 무관한 어떠한 정치적 견해 통일을 요구한 바 없다.(그래서도 안 된다.) 그리고 노동자연대는 지금까지 차제연 가입과 활동에 어떠한 결격사유도 없었고, 그 활동에 함께해 왔다.
따라서 차제연 활동 목적과 관련 없는 사안으로 그간 차제연 활동에 헌신해 온 단체(그것도 집행위 단체)를 추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 출발점부터 부당하다.
4. 이들의 제기는 지난 5월 9일 H가 차제연에 메일을 보내 노동자연대를 쫓아내라고 요구한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H의 제기는 기각됐다. 차제연 내에서 무려 두 달 반의 논의를 거쳐 H의 요구를 다루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차제연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모인 연대체이기에 그와 관련 없는 사안에 대해 차제연 소속단체들이 시시비비를 가려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연서명 발의 단체들은 (그들 자신이 차제연 소속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차제연이 오랜 고심과 민주적 토론 끝에 내린 결론을 완전히 무시한 채 기각된 안건을 사실상 재차 제기하며 노동자연대 추방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연서명 발의 단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반차별 운동에 어떤 역효과를 낳을지도 돌아봐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냉담한 문재인 정부 하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한 반차별 운동의 힘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그와 무관한 사안으로 연대체 내에서 좌파 단체 추방을 시도하며 쓰디쓴 반목을 조장해서야 되겠는가.
5.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가해”를 해 왔다는 주장도 터무니없는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우선, 노동자연대는 여성에 대한 모든 종류의 폭력에 반대하며, 성폭력에 맞서 피해자의 편에 선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견지해 왔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호소가 진중하게 다뤄지지 않고 오히려 부당한 의심과 비난에 노출되는 현실을 비판해 왔다. 그래서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여성의 피해 호소가 무시되거나 부당한 비난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개혁 조처들을 요구해 왔다.
동시에 노동자연대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 중에는 매우 극소수이지만 허위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복잡한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문제를 다룰 때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이 그 이해할 만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반성폭력 운동의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연서명 발의 단체들의 연서명 제안 설명에는 H가 노동자연대의 “피해자”라고 전제돼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언급하는 “최초 사건”은 노동자연대 회원이 아닌 남학생이 H에게 1분 미만의 이른바 “야한 동영상”을 보여 준 사건으로서, “성폭력 사건”도 아니고 “노동자연대” 사건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H는 이 일을 “노동자연대 성폭력 사건”이라고 오랫동안 부르면서 노동자연대를 일방적으로 비방해 왔다. H의 주장이 근거 없는 비방일 뿐이라는 점은 논란이 된 “최초 사건”의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노동자연대의 입증, 그리고 H를 지지하려고 모였던 지지모임 성원들조차 H를 믿지 못해 떠나간 사실 등을 통해 드러났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노동자연대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를 바로잡습니다’를 참고하시오.)
이처럼 지난 5년간 H 주장의 신빙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돼 왔기에 이 사건을 이유로 노동자연대가 연대체에서 추방되는 일은 벌어진 적이 없다. 노동자연대가 차제연에 가입할 당시에도 H는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H 주장을 이유로 노동자연대의 가입을 반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와 새삼스럽게 이 사건을 들고 나와 노동자연대를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느닷없고 정당성이 없다. 가입 때는 문제 되지 않던 일이 왜 이제 와서 연대체에서 추방까지 해야 할 문제로 격상됐는지 연서명 발의단체들은 자신들의 입장 돌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한 바 없다.
6. 연서명 발의 단체들은 “최초 사건”의 진실은 “다루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도 H는 무조건 “피해자”이고, H 주장을 반박한 노동자연대는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 무관하게) “가해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이미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최초 사건”의 진위 여부를 따져보지도 않고 가/피해 여부를 단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결국 이 말은 H 주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문도 제기해선 안 된다는 독단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독단적인 ‘피해자 중심주의’는 반성폭력 운동 내에서 합의된 원칙조차 아니다.
또한 연서명 발의 단체들은 “노동자연대가 혐의를 부인할 권리는 있”다고 하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노동자연대의 주장과 노력은 “가해 행위”라는 앞뒤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결국 이 말 역시 사실상 노동자연대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성폭력 가해 혐의를 인정하라는 것 아닌가.
사실 노동자연대는 H의 메일이 차제연에서 논의될 때부터 이 메일을 차제연이 다루려면 사건의 진실이 철저히 조사돼야 하고 당사자 단체인 노동자연대도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설명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어야만 H 주장의 진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이 사건 자체를 논의하지 않기로 하면서 설명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만약 연서명 제안자들이 노동자연대가 성폭력 “가해 단체”라는 이유로 추방하려 한다면 적어도 “최초 사건”과 그 이후 노동자연대의 대응에 대한 H 주장의 진위 여부를 분명한 근거를 들어 밝혀야만 할 것이다. 이때 노동자연대가 제출한 증거들에 대해서도 답해야 할 것이다.
7. 한편, 연서명 발의 단체들은 노동자연대가 5월 31일 차제연 공집장회의에 대해 공개 입장표명을 통해 항의한 것도 추방 사유로 들고 있다.(이 성명은 그 회의의 특정 안건 처리 방식에 국한한 문제제기였으므로, 쟁점이 소멸된 뒤에는 노동자연대 웹사이트에서 내렸다.)
하지만 차제연에서 H의 메일 관련 안건을 처음으로 논의하는 자리에 당사자 단체이자 소속단체가 직접 참여해 상세히 설명하겠다고 요청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자연스러운 요청을 공집장단이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회의를 강행했으므로 이에 공개적으로 항변한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로, 그것도 차제연에서 노동자연대의 객관적 활동이 아닌 “태도”와 같은 주관적인 판단을 근거로 연대체에서 추방하겠다는 전혀 합당하지 않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막무가내 찍어내기와 다름없을 것이다.
8. 연대체의 목적과 무관한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소속 단체를 솎아내는 것은 반차별운동의 대의와 무관하고 오히려 건강한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아 운동의 힘을 약화시킬 뿐이다. 특히,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으로 동료 단체를 비방해선 안 될 것이다. 노동자연대는 서로의 정치적 이견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면서도 차별에 맞서서는 함께 협력하는 것만이 운동을 진정 강화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노동자연대는 앞으로도 차제연 활동에 능동적 일부로 참가하며 차별반대 운동의 전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운동 내 토론과 연대를 가로막는 종파적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공론화해 운동 내 민주주의가 강화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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