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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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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익명 (미확인) | 월, 2017/08/21- 13:12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대통령이 일하는 곳, 청와대를 보러 온 관람객들입니다.


<인터뷰> 홍영수(경기도 고양시) : “주말에는 6개월 치가 다 예약이 마감돼 있었고,(이것도 방학이라서) 평일 날은 좀 어려웠어요. 간신히 했어요.”


1시간 반가량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는 관람 코스.


제한된 장소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후원엔 관람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가 한 점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인터뷰> 신상빈(경기도 용인시) : “못 봤어요. 아예 못 봤어요. 코스에 없나 본데.”


<인터뷰> 홍순(인천시 서구) : “저희는 가족들이 놀러 다니면서 이런 불상도 많이 보는데 여기서는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이 불상은 최근 한 시민단체가 원래 위치로 되돌려 달라는 진성서를 청와대에 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불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통일신라 불상이 왜, 언제부터, 청와대 안에 있게 된 걸까?


청와대 직원들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에 있다는 불상.


직접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청와대 불상에 얽힌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청와대 후원 숲 속, 보호각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16m.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보물급 문화재로 꼽힙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양어깨가 딱 벌어지고 가슴이 볼륨이 있고 그다음 무르팍이 아주 크게 웅장하게 되어 있어서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불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빼어난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상은 관람이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 관저에서 가까워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화면 역시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찍은 것으로,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촬영 허가가 난 적이 없습니다.


취재진이 청와대에 불상을 직접 찍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보안 문제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최근에 불상을 직접 본 사람은 없을까?


수소문 끝에 취재진은 문화유산 답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강대철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 씨가 청와대에서 불상을 직접 본 때는 2015년 11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불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사진도 찍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불상의 옆 모습과 뒷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보존 상태가 좋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강대철(옛문화답사회 대표) : “딱 보니까 석굴암의 본존불 생각이 딱 나더라고요. 당당한 자세라든가 또는 조각기법, 그다음에 전체적인 느낌 같은 것이 상당히 가치 있는 문화재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좋은 작품이 좀 더 대중들한테 보여졌으면 좋겠는데 외롭게 여기 계신가 하는 생각이 좀 많이 들었죠.”


통일신라 불상이 청와대에 있게 된 이유는 뭘까?


불상 앞에 놓인 돌에는 경주 남산 절터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옮겨온 거라고 적혀 있습니다.


불상이 처음 있었던 자리를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시내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논밭을 지나 마을 뒷산 쪽으로 걸어 올라가자, 산 아래 탁 트인 지형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신라시대에 ‘이거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1,000년이 훌쩍 넘는 세월에 무너져 내린 석탑만 황량한 절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청와대 불상의 고향을 이곳으로 보는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

는 1939년에 작성된 조선총독부 문서.


당시 일본인이 남긴 경주 출장 보고서를 보면, 이 불상은 본래 경주군 내동면 ‘도지리’의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온 거라고 돼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이곳에선 도지마을, 도지동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근거는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 조를 보면, 737년에 왕이 돌아가시자 ‘이거사’ 남쪽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성덕왕릉의 북쪽에 이거사가 있다는 건데 북쪽에 절터는 이곳이 거의 유일한 절 터이기 때문에 이거사가 정확한 걸로 보고, 이곳에서 청와대에 있는 미남 불상을 옮겨갔다, 이렇게 보고 있죠.”


이 불상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한일병합 늑약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이 된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2년 말 경주를 방문한 데라우치는 한 일본인의 집 정원에서 잘생긴 불상 한 점을 만납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조선총독부 문서를 보면, 데라우치 총독이 불상을 거듭 되돌아보며 유심히 살피자, 집 주인이 총독의 의중을 눈치채고 불상을 즉시 경성(서울)의 총독관저로 보냈다고 기록했습니다.


총독 진상품 신세가 된 불상이 경주를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은 서울 남산의 총독 관저.


남산 북쪽 길을 따라 남산공원 방향으로 오르다가, 지난해 새롭게 조성된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안으로 발을 들여 놓으면,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통감 관저, 훗날 총독 관저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 터 옆을 자세히 보면 절벽 아래 깎아지른 바위가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불상이 옮겨졌던 장소입니다.


1913년 2월 데라우치는 자신의 일기에, 불상을 절벽 바위 아래 안치하고, 개안식을 열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한 장의 사진.


일본 관리들 사이에 불상의 얼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그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래서 그 당시 위치는 사진 자료도 있습니다만 일단 총독관저 이웃한 절벽 아래쪽에 있다고 그랬거든요. 큰 나무면서 절벽 아래니까 저기 바로 보이는 저 위치라고 보실 수가 있는 거죠.”


이후 1927년 총독 관저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새로 지어지면서 불상도 함께 옮겨진 겁니다.


그 뒤 193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불상에 관한 기사가 실립니다.


불상을 ‘미남석불’이라 부르고, “오래전 자취를 감췄던 경주의 보물”이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뒤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까맣게 잊혔던 불상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건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기자인 이구열 소장.


1973년에 초판을 펴낸 <한국문화재 수난사>란 책에 통일신라 불상의 기구한 사연을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이구열(미술사학자) : “우리로선 문화재 수난의 참 하나의 사례죠.근데 어쨌든 그렇게 됐던 건데 그게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경주에 있다가 서울에 와서 지금 청와대에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에요. 그때 많은 것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많거든.”


다시 세월이 흘러 청와대 불상이 세간의 이목을 끈 때는 지난 1994년.


구포역 열차 전복부터,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충주호 유람선 화재까지…


갖가지 대형참사가 잇달아 터지며 민심이 흉흉해지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불상을 치워버린 게 화근이 됐다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습니다.


급기야 청와대가 출입기자단에 불상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집니다.


해방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식민지 시대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청와대 통일신라 불상.


그동안 제자리로 되돌려달라는 숱한 요구가 있었지만, 아직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인터뷰>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 “(불상이 청와대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전혀 없죠, 당연히. 그것은 뭐냐면 불상 자체는 워낙에 우리가 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죠. 그런데 우리 한국을 강제 병합했던 바로 그 당사자인 데라우치 총독의 손을 거쳐서 그 불상이 지금 총독관저에 옮겨지게 됐고, 바로 그다음에 총독관저 옮겨지는 거에 따라서 청와대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거는 전형적인 일제잔재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광복 72주년을 맞은 올해 시민단체가 또다시 문제 제기에 나섰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불상을 원래 자리인 경주로 돌려보내 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낸 겁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과거사에 대한 청산,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대 청와대의 모습에서 탈피하고 적폐청산을 강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서 청와대 불상이 원래 제자리로 돌아간다면 과거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의 청와대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고 굳게 닫혀 있던 청와대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약속한 새 정부.


여기에 맞춰 청와대 불상도 과연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김석기자 ([email protected])


<2017-08-20> KBS

☞기사원문: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관련기사

KBS: ‘아픈 역사’ 청와대 석조불상…경주로 이전?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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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월 25일자 게시물에서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극단의 표현을 써가며 싸우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저의 고민을 밝히고, 더 이상 방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시작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구의 잘못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조 총장님께 전화로 문의하고 개략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쌍방의 주장을 상세히 알아봐야 했고, 그래서 총장님께 여인철 전 위원장 등을 통해서도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이 와중에 운영위원회가 입장을 밝혔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고 게시물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청했습니다.
1.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이 언제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했습니까?
2. <정관 개정안 주요 내용>의 제안 및 논의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위 두 가지 요청은 작금의 사태를 파악하는 극히 일부의 사항이고, 제가 궁금해 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가 게시물을 통해 다시 밝혔습니다.

“이제 살짝 화가 나려고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화가 난다는 것입니까?

연구소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아니면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한 것에 화가 나신 겁니까?

논쟁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을 예단이나 편견 없이 듣는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을 자신의 입장이나 이해에 따라 들을 경우 상대의 말은 왜곡되어 전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1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청자는 1차 왜곡된 말을 판단하는데 당연히 왜곡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자에 의한 2차 왜곡이라고 합니다.

김재운 운영위원님은 제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도 모릅니다.
운영위원회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에 화가 나신 겁니다.

저는 현재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오로지 현재 문제의 원인과 배경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월, 2018/04/3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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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정관개정에 관해서도 설명했고

운영위원회 입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저의 주장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 충분히, 더 잘 설명 못한 것은 저의 한계일 수는 있습니다.

그동안의 대화로 충분히 판단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무튼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건승하십시오

 

월, 2018/04/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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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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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5/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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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_입헌공화국을 꿈꾸다”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 히스토리 “친일파가 그린 충무공 표준영정”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2회 “파이팅은 일제 잔재인가”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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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수, 2018/05/0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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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3회 “경복궁 수난사 – 조선물산공진회”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목, 2018/05/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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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_최초의 비밀결사 신민회 1편

민족문제연구소 만드는 역사 전문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화요일은 ‘역사를 전하는 수다방_”역전다방”‘이 방송되고

목요일은 ‘미리 식민지 역사박물관에 가다 : 미식가’ 가 방송됩니다.

목, 2018/05/03-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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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한 새 집필기준 마련, 당연하다

1. 교육부가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을 공개하면서, 향후 교육과정심의회 심의·자문 결과, 역사학계의 중론 등을 고려하고,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실시 등을 거쳐,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을 상반기 중 최종 확정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화 전도사’라 불리는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역사교과서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초안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자유민주주의’라고 썼던 용어를 ‘민주주의’로 수정하는 새 집필 기준안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헌법에 명시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대한민국 헌법정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2. 1974년 박정희 정부의 첫 국정교과서 이래로 역대 국정교과서는 일관되게 ‘민주주의’라고 서술하였다.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이다. 그 해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도록 요청함에 따라,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바뀌게 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민주적절차도 무시하였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사회, 도덕(윤리), 정치, 경제 등 과목에서는 민주주의라고 쓰는 반면 유독 역사과목에서만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은 과목간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반발하였다.

3. 학계의 비판에 직면하자, 이명박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근거로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적 이념이라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가 헌법 전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72년 12월 27일에 7차 개정된 이른바 유신헌법에서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헌법 전문을 근거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쓸 경우, 1972년 이전의 민주주의 역사는 설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라, 독일 기본법에서 말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를 의미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인 것이다.

4. 수구-냉전세력은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이른바 ‘인민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이념이라며, 이를 사용해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일 뿐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현대 사회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보다 확대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5.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사회국가원리를 수용하여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을 아울러 달성하려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주의를 넘어 사회국가 즉 복지국가의 이념인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새 교육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환원’한 것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은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6.국정교과서 소동으로 늦춰진 새로운 역사교과서 적용년도는 2020년이다. 불과 2년도 남지 않았다. 국정교과서 제작에 부역하였던 교육부가 국민 앞에 속죄하는 길은 오류를 최소화한 다양한 역사 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수구-냉전 세력의 근거 없는 선동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친일-독재-분단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제작하려 했던 실패를 되새겨, 헌법이념인 독립운동-민주주의-평화통일의 가치를 담은 검정교과서가 제작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끝>

2018년 5월 3일
역사정의실천연대

목, 2018/05/0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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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한국구술사학회,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공동 주최 춘계 학술대회  

대회 주제: 구술사와 공동체 아카이브: 구술, 기록, 지역의 만남

일시: 2018526() 오전 10오후 630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Minerva Complex 지하 2층 국제회의장  

대회 일정  

9:30 ~             등록 및 개회사       사회자 : 김수영(한국구술사학회 총무이사)

9:30 ~ 10:00    축사 : 노명환(한국기록과정보·문화학회 회장)

                                  이해영(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윤택림(한국구술사학회 회장)  

10:00 ~ 12:00   1 세션 지역과 아카이브       사회자 : 김종애(경기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1 주제 : 지역구술기록관리의 현황과 과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발표자 : 배은희(빨간집(기록조사기획사))

                  토론자 : 정연경(이화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2 주제 : 지역 디지털 아카이브 경기도메모리구축과 운영

                  발표자 : 신정아(경기도사이버도서관)

                  토론자 : 이호신(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제 3 주제 : 지역의 정체(停滯)와 변화(變化)에 대한 주민의 기억

                    발표자 : 손동유(아카이브네트워크)

                   토론자 : 윤은하(전북대학교 대학원 기록관리학과)

13:00 ~ 15:40   2 세션 구술사와 지역사      사회자 : 안승택(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제 1 주제 : 구술사와 연극, 지역에서 만나다

                        발표자 : 김영미(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토론자 : 이하나(연세대학교 사학과)  

            제 2 주제 : 장소 기억과 기록 그리고 로컬리티: 대구 달성의 장소 아카이브와 장소성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발표자 : 정유진(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토론자 : 추명희(한국구술사연구소)

      3 주제 : 성남 제 1공단 빠이롯트 공장 구술채록을 통해 본 산업문화사적 의미

                        발표자 : 이정훈(전북대학교 무형문화연구소)

                      토론자 : 장미현(한국학중앙연구원)  

            제 4 주제 : 수복지역민의 반공·재건 서사와 지역사 연구   

                        발표자 : 한모니까(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토론자 : 김아람(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5:40 ~ 16:00   휴 식 

16:00 ~ 17:20   3 세션 구술과 기록 연구     사회자 : 오명진(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제 1 주제 : 대학기록관에서의 구술채록 수집 활동 

                      발표자 : 조용성(한국외대 역사기록관)

                     토론자 : 조석연(한국학지식정보센터)  

           제 2 주제 : 기록의 이면: 구술을 통해 바라본 코트라맨들의 경험

                               발표자 : 김명훈(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

                      토론자 : 이세진(한국외대 사학과)  

17:20 ~ 18:30   종합토론      좌장 : 허영란(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월, 2018/05/21-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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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사진 등 주요 자료가 화면에 표시됩니다.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시기, 민초들의 삶의 모습을 중심으로 일제 식민통치의 실상, 당시의 제도와 문화를 생동감있게 풀어내고 오늘 우리의 모습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미식가 4회 “망국의 굴욕, 헌상품”

출연 : 이순우, 김영환, 강동민

연출 : 임선화

월, 2018/05/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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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남북간 냉전상태에서 평화무드로 바뀌어가려는 중요한 시기에
전범독일처럼 갈려야할 전범일본이 우리의 평화통일 방해하듯이
미국서도 볼튼같은 쓰레기 발언과 한반도 주변에 B52 핵폭격기를 띄우며
북한을 자극해 남북간 평화무드와 비핵화협상에 찬물끼얹는데 

 

물론 북한이 나쁜의도로 한국을 먼저 침략하면 우리도 가만히 당할수없고 전쟁이라도 해야하지만
전범국 독일도 평화통일이뤄 잘살듯이
아무죄도없이 강제로 분단된 한반도도 한민족간 평화통일 노력을 해야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우리 후손에 물려줘야할 유산이기때문에 이글을 올린다

미국의 강경파와 일본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이유가있다
그동안 친일매국노가 한국서 집권해 반공논리로 속였던 우리민족의 강제분단 속사정은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 독일도 동서베를린 자유왕래와 평화교류로 평화통일이뤘는데
전범일본이 갈려야할걸 다른나라에서 약탈한 금괴등 뇌물을 일본이 미국에 주고
핵폭탄 투하로 기세등등 유엔을 장악한 미국이 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시켜 현재까지 분단고통만든건데

강제분단 당시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애국지사와 독립군과 제주도민등
수많은 한국인이 전범일본을 갈라야지 죄없는 조선을 왜가르냐고 미국에 항의하자
미국과 앞잡이 이승만이 독립군이 처벌하려던 친일매국노를
경비서던 독립군을 죽이고 구출후 정부요직과 군경간부로 임명후
조국분단 반대하던 애국자와 독립군 제주도민등 애국국민을 빨갱이로 속이고 암살과 학살을 저지른것으로

김구 김규식 여운형선생등 암살도 북한서 친일파를 처벌하자
남한으로 도망온 친일파들이 만든 서북청년단의 총무 안두희를
포병장교로 둔갑시켜 김구선생님을 암살하듯이 벌인짓들이었고
제주도민 학살도 제주도 책임지던 대대장이 죄없는 제주도민 죽일수없다하자
그 대대장도 빨갱이로 몰아 사형시키고 서북청년단과 친일파 군경을 투입시켜 제주도민을 학살한것이며

그 친일매국노들이 집권하여 그 후예들이 매국한 댓가로 돈이많아 재벌도있고
조중동등 언론사도 차리고 학교도 만들어 교수도 있으며 정치권도 장악해 경상북도에 터전을 만들곤
지금 남북간 비핵화 평화협정을 방해하며 자기들이 저지른 군,경,국정원까지 동원하고 컴퓨터 개표조작등
부정선거는 입다물고 똥묻은 개가 재묻은 사람 나무란다고 민간인인 드루킹인가 검찰발표로 거짓말한게 나타나듯
거짓말 협잡꾼의 사기발언과 편지에 조선일보와 같이 짜고 협잡하며 사사건건 꼬투리잡고 물고늘어지듯이

미국과 일본이 짜고 저지른 조선강제분단을 일본에 충성하듯 미국에 충성하며 일본의 금괴 뇌물상납은 숨기고
미국의 강제분단정책을 공산주의 국가가 안되게 분단시킨것이라며 역사까지 미국을 미화하며 조작하였고
그 친일매국노들이 집권해 반공논리와 역사조작으로 국민을 속여왔지만 이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수없고

얼마전 미국대사지낸분이 한국서 무릎꿇고 “미국의 한반도 분단 정책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줬다”고 사죄하듯
미국과 일본도 평화통일되어 강대국이 될 한국에 솔찍하게 사죄하여야 할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한반도 평화통일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 말아야한다

추신 김구선생님 암살범 안두희는 감옥에 잠시들어갔다 곧풀어주곤 군부대 납품업하며 떵떵거리고살다가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종적을 감춘걸 고 권중희 선생이 끝까지 추적해 위치파악후
제자이며 나랑 친분있는 박기서 열사가 너같은놈을 그냥 죽게 만들수없다고 직접만든 정의봉으로 패죽인것이다
박기서씨도 애국적인 행동으로 곧 풀려나 국민들 도움으로 개인택시하며 잘살고있다

 

일, 2018/05/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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