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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야 탈핵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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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워야 탈핵 된다

익명 (미확인) | 화, 2017/08/08- 14:22

지금까지 가시화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전력 생산에서 핵에너지와 석탄에너지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방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간 경제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기조로 에너지 정책을 운용해 온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안(案) 정도도 급진적이거나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최근 논쟁의 초점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맞춰지고 있다. 이 공론화위원회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수단의 일부일 뿐이지만 다른 많은 논의를 이끌어내고 향후 에너지 정책의 향방을 좌우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관심은 자연스럽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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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첫 회의가 열리고 있다. 왼쪽 세번째가 김지형 위원장.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의미와 전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 에너지 정책과 거버넌스의 역사와 성격을 더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정책 논의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국회

최근 신고리 5,6호기의 법적 위상과 권한에 대한 논박이 오가면서 특히 야당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은 이러한 중요한 국가 정책에 대한 결정은 국회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 수긍할만한 주장이고 요구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정이 진척될수록 매몰비용이 늘어나고 이 때문에 공사 진행과 중단 또는 백지화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에 야당과 한수원 측이 동의한다면, 공사를 잠정 중단한 가운데 현재의 공론화위원회 활동 시한인 3개월이 대신에 1년 또는 몇 년 동안이라도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게 된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국회 내로 국한되어야 할 이유는 없으며, 더 많은 이해관계자와 이른바 일반 시민들도 함께 하는 논의와 결정 과정으로 만들 방법이 여럿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환기할 한 가지 사실은 이제까지 주요한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더 좁혀 말해서 핵발전 정책에 대해서 한국의 국회는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국회 스스로도 이에 대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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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너지 정책결정과정에서 국회는 철저히 소외됐다는 점에서 에너지정책만큼 행정부 주도로 이뤄진 정책도 드물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정책연구와 입법 등을 추진하기 위해 출범한 국회 신재생에너지 포럼 창립대회 모습. (사진출처: 이원욱 의원실)

예를 들어 20년 이상의 에너지 수급의 큰 정책 방향과 기본적인 에너지믹스까지 결정하는 최상위 법정 계획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인데, 이것의 수립 절차는 국가에너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그리고 국무회의의 3단계 심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회에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공청회 정도 말고는 의무적으로 부여된 역할이 없다.

전기사업법에 근거하여 핵발전과 석탄화력을 포함하는 발전소의 종류와 설비용량까지 포함하여 2년 단위로 작성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도 국회에는 수립 과정에서 산업위원회에 보고하는 절차가 있을 뿐, 공식적 의결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즉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여부를 국회에 맡겨달라고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획할 때에도 국회의 공식적 역할은 없었다. 노후 핵발전소의 연장 가동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의결 사항일 뿐 국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한편, 2013년 여름 밀양 고압송전탑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국회 산업위가 중재하는 40일간 시한의 전문가협의체가 모처럼 구성되었지만 한국전력 측의 보이코트에 가까운 태도에 대해 국회는 무력했고 문제 해결에도 실패했다.

2014년에는 삼척에서 그리고 2015년 영덕에서 주민들이 자체 주민투표를 진행하여 압도적인 반대의사를 확인했지만 정부는 이 사업들이 국가사무이기 때문에 주민투표 사안이 될 수 없다고 고집했고, 역시 국회는 끼어들 곳도 없고 끼어들지도 않았다.

물론 기존 법률에 적시된 권한이 없더라도 특별한 에너지 사안에 대해 국회는 언제든 공청회를 하든 특별결의를 하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제껏 국회의원들은 그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국회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은 그 역시도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에서도 보이듯, 국회가 에너지 정책에서 어떤 역할을 주장하려면 오히려 지난 시기 무력과 안일함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핵발전 밀집도를 갖게 되고 인근 대도시 시민들이 불안에 떨게 하고, 송전탑으로 인해 힘없는 농민들이 피해를 입고,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바닥을 기게 만드는 데에 국회가 했던 일과 하지 않았던 일을 먼저 자기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에너지 정책에서 국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역할과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보완입법을 논의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일이다.

이해관계자 철저히 소외…밀실 행정이 주도한 취약한 에너지 거버넌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계기로 비로소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와 에너지 거버넌스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에너지야말로 거버넌스의 원리가 진작에 적용되어야 할 영역이었다. 에너지 문제는 다른 환경 문제와 마찬가지로 통제되지 않는 외재적 요인들을 포함하는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가지며, 비교적 긴 시간 과정과 직간접적인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결부되어 있으며, 인프라 구축과 운영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때문에 에너지 문제는 경제와 밀접히 관련되는 동시에, 환경문제이기도 하고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여러 주체와 영역 간의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되며, 관련 주체들의 상호 학습과정을 통해 이를 반영하는 정책 결정과 시행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바로 거버넌스의 필요 이유이며 작동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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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의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소수 관료와 전문가들의 밀실 결정에 의존해왔으며, 이는 에너지 정책을 보수적으로 만들고 작성 과정에서 기후변화와 사회적 형평성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거나 사후적으로 덧붙이는 방식으로 해결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해왔다.

에너지원 중에서도 핵발전은 사고가 날 경우 오염 범위가 광범위하고 피해가 불가역적이며 출력이 크고 조절이 어렵다는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발전원과의 관계에서 복잡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거버넌스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함에도, 핵발전 독재나 ‘핵마피아’ 같은 표현들이 반증하듯 가장 거버넌스와 거리가 먼 에너지원이 되어왔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1960-70년대에 권위주의 정부가 ‘정치적 기업가’로서 산업화를 직접 주도하면서 그 수단으로 전력 등 에너지산업을 전략 부문으로 배치하고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조직과 전문가 집단을 활용해 온 역사가 있다.

산업 부흥과 단기적 경제 효율성을 중심으로 정책 기조가 짜여지면서 실제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는 것은 산업담당 부서였고, 정부와 에너지산업, 그리고 에너지다소비산업이 바라는 대로 에너지수요 전망이 수립되고 에너지가격도 정해졌다.

따라서 한국의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에서 중앙정부 이외의 주체는 하위파트너로서의 역할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사정은 전력산업의 분할 이후에도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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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왔지만, 이 과정에서 행정부 외에는 어떤 이해관계자도 이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유의미한 거버넌스가 사실상 부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동아일보)

최근에 대기업들이 민자 발전과 해외 에너지 개발 사업에 뛰어들면서 민간 기업의 목소리가 커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는 하다.

결국 한국 에너지 정책의 일방성과 폐쇄성은 문제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구조의 결과이기도 했다.

형식적인 공청회, 지역 주민 사이의 이해다툼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에너지시설 입지 방식, 거수기가 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국회, 전력산업의 분할 민영화 방침에 파업으로 저항했던 발전노조, 밀양과 청도의 송전탑 갈등 등은 한국의 취약한 에너지 거버넌스가 봉착한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들이었다.

최근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에서 민간 워킹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으로 에너지 정책 결정 과정이 개방되기도 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시민사회 인사들이 일부 참여하는 것처럼 에너지 거버넌스가 진전되는 모습들이 보이지만, 에너지 정책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아직 너무도 작고 느린 변화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논쟁도 이러한 한국 에너지 거버넌스에 대한 평가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시민참여 공론화 사례: 2004년 전력정책 시민합의회의

그런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에너지 정책에 시민 참여를 시도하는 최초의 사례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유사한 선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2004년의 전력정책 시민합의회의는 방식과 결과 모두 지금의 공론화위원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아 간단히 소개한다.

2003년 7월 부안군의 작은 섬 위도에 부안군수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를 신청하면서 잘 알려진 ‘부안항쟁’이 시작되었고, 주민과 지역사회과 두 편으로 갈라지고 흡사 계엄 상태에 가까운 장면이 연출되는 등 부안은 큰 홍역을 겪었다.

부안 주민들은 자체 찬반투표를 진행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결국 방폐장은 정부가 제시한 거액의 지원금을 걸고 벌인 유치 찬성 주민투표 레이스에서 이긴 경주에 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부안의 항쟁이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진지한 시도가 있었으니 이것이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 합의회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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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부안 사태 이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가 에너저정책을 논의할 시민참여 공론장이 만들어졌다. 2004년 만들어진 전력정책 시민합의회의는 지금의 신고리 공론화위의 전신이 될 만한 시도로서, 공론화위가 크게 참고할 만하다. 사진은 2004년 10월 3박 4일의 강행군 끝에 시민패널들이 지속가능한 전력정책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 출처: 참여연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외국의 정책 시민배심원 제도를 모델로 하여 에너지 정책의 공론화 모델을 시험해 본 것인데, 핵발전 정책과 핵산업의 이해와 무관한 다양한 연령대의 ‘보통시민’ 18명이 10대 1의 경쟁률 속에 시민패널로 모집되었고, 이들은 3개월 동안 예비모임과 본 모임을 통해 핵 발전에 대해 찬반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과 환경단체들로부터 정보와 의견을 청취하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토론을 거듭하며 시민패널들은 ‘원자력 박사’가 되어갔다. 학계와 업계의 전문가들은 이 비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아 불편해 했고, 향후 40-50년간 원자력에 대한 대안은 없다며 시민패널들에게 하소연했다.

시민들과의 대화와 설득에 다소 부진한 환경단체들의 태도도 비판적으로 지적되었다.

그해 10월, 3박4일 간의 집중토론을 거치면서 보고서가 정리되었는데, 향후 핵발전 정책에 대해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거한 핵발전소 추가 건설(1안),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제한적 추가건설 허용(2안), 신규건설 중지(3안)라는 세 개의 선택지가 투표에 붙여졌다.

그 결과, 3안이 12명, 2안이 4명의 찬성을 얻었다. 핵발전을 당장 다른 전력원으로 대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회의적이지만 현재와 같은 핵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을 이어나가는 한 핵발전을 대체할 대안을 찾기는 더 힘들어진다는 것에 다수의 시민패널이 공감했던 것이었다.

보고서는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면서 재생에너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였다

그러나 시민합의회의의 결과는 이후 정부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다. 당시 합의회의의 진행과 핵발전소 추가 건설에 대한 반대라는 시민합의 결과에 대해 청와대(시민사회수석실)와 산업자원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무총리실에서 관심을 보였고, 향후 정부의 전력정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시민합의회의의 결과가 보도되면서, 관련 업계는 긴장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는 소식도 들렸으나, 시민합의회의는 이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시민합의회의는 예산과 인력에서 제약이 있었고 경험도 일천했음에도 시민의 참여와 공론화를 통한 에너지 정책 결정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역시 2004년 시민합의회의의 복기를 통해 많은 해답을 얻고 더 좋은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공론화위에 대한 우려

정부가 제시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론화 진행 방식은 시민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신고리 5·6호기 공사 여부에 관해 1차 조사를 하고, 1차 조사 응답자 가운데 5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토론 등 숙의 절차에 참여시킨다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중도이탈자 등을 고려하면 500명 가운데 실제 숙의 과정에 참여할 인원은 350명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약 350명에 대해 법적 위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 ‘시민배심원단’이라는 명칭 대신에 ‘시민대표참여단’이라 부르고, 이들이 신고리 5,6호기의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결론을 참고하여 정부가 최종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에게 찬반 양측이 준비할 자료집 등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참여단은 원전입지 주민 등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토론회 등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이로서 법률적 시비 거리는 줄어들었지만, 시민 대표의 권한과 공론화의 무게감도 함께 줄어들게 된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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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공론화위의 활동은 원전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쟁점은 남는다. 시민참여단이 최종 표결로 결론을 낼 경우 이를 정부가 그대로 수용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찬성과 반대가 박빙일 경우 어느 한쪽이 승복하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찬반의 대립이 더욱 극단화되는 것은 애초에 공론화라는 방식이 의도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될 것인데, 이럴 경우 정부는 탈핵 정책뿐 아니라 다른 주요 정책의 추진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공론화위원회가 진행하는 숙의 과정에서 시민참여단 안팎으로부터 신고리 5,6호기 중단 또는 재개가 아닌 제 3의 선택지들이 제안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논의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논의가 이렇게 복잡해지면 3개월의 시한을 지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고 참여하는 시민과 지켜보는 국민들은 길어지는 갈등과 논박 속에 피로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향후 핵발전 설비 용량에서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2호기라는 의제가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되는 것도 우려되는 것 중 하나다.

공론화위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에너지 시민의 성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공론화위원회에 우려와 아쉬움 보다 더 많은 기대와 바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첫째, 비록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문제로 의제를 제한한다고 하지만 더욱 많은 의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가장 큰 기대다.

그동안 이른바 전문가와 일부 언론에서만 다루어졌던 한국 핵발전소의 안전성, 경제성, 대체 가능성, 사용후핵연료 처분장과 재처리의 곤란, 국제적 동향과 추세 같은 갖가지 이슈와 관련 데이터들이 집중적으로 공개되고 공론화위원회의 바깥으로까지 논의와 검증이 확산되는 것 자체가 전례 없는 성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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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론화위의 활동을 계기로 한국에도 에너지시민과 에너지 거버넌스가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금처럼 행정부 주도의 일방적 정책 결정이 더 이상 불가능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에너지정책처럼 중요한 정책을 일부 관료와 전문가만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복잡하고 어려운 큰 국가 사업의 정책 결정과 집행 방식에도 중요한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부터 4대강 사업 같이 엄청난 국고를 사용하고 논쟁과 갈등을 유발한 이른바 국책사업들이 있었지만,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시민 참여와 검증이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국가지도자의 뜻이라는 이유로 강행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기대다.

셋째, 에너지는 생산과 소비의 네트워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일이라는 의식을 갖고 에너지 정책에 직접 참여하거나 스스로 에너지의 생산과 관리에 나서려는 ‘에너지 시민’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시민들은 에너지 정책을 전문가와 관료들에게만 맡겨두지 않을 것이며, 에너지 시민들의 목소리가 여러 경로로 정부와 국회를 압박할 때 정치인들과 기업들의 태도와 관행도 변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에너지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잘 작동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3개월이 풍부한 내용을 생산하면서 이렇게 에너지 시민이 성장하고 에너지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면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자체의 재개나 백지화, 또는 탈핵의 궁극적 시점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좌충우돌하고 진짜뉴스와 가짜뉴스가 난무할 3개월의 과정이 혹여나 바라지 않는 결론이 나올까봐 조바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시끄러운 만큼 탈핵은 가까워지고 시끄러운 만큼 더 단단한 탈핵과 에너지전환이 오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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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행보가 시작됐다.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신고리 5호기, 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했다.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원전 건설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며 탈핵을 공론화했다. 지금 한국은 탈핵을 둘러싼 가장 치열한 공방이 진행 중이다.

뉴스포차 스물 여덟 번째 손님은 반핵과 찬핵을 대표하는 두 인사다. 10여 년 간 탈핵운동을 해온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와 탈핵 반대 성명에 동참해온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를 모셨다.

3개월이란 한시적 공론화 기간이 너무도 짧다는데 견해를 같이 한 두 전문가는 일본 후쿠시마의 위험 진단부터 한국 원전의 안전성, 경제성까지 모든 사항마다 입장을 달리했다. 특히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시각 차는 컸다.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토론을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무편집본을 공개한다.

첫 번째 안주! 탈원전 정책에 대한 기본입장
두 번째 안주! 핵피아가 아닌 국민의 손으로
세 번째 안주! 일본산 수산물 300년간 먹지 말라?
네 번째 안주! 후쿠시마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다섯 번째 안주! 지진, 우리는 안전할까?
여섯 번째 안주! 원전은 경제적일까?
일곱 번째 안주! 재생에너지, 대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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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7/1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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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본격 탈원전 종합편성채널 탈핵TV 개국!

탈핵TV는 매주 수요일 저녁 업로드 됩니다! 많이 시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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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8/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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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3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신대 이일영 교수는 필자가 제안해 온 ‘한반도 양국체제론’이 오랜만에 제기되는 ‘국가 대전략 논의’라고 환영했다. 고마운 일이다. 필자 역시 이 논의가 진지하고 생산적인 ‘플러스 알파’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양국체제론이 나온 국제적 배경에 대한 이교수의 이해는 다소의 보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이일영 교수의 글은 아래 첨부)

양국체제란 한반도와 동북아에 점증하고 있는 위기를 근원에서 해결할 방안이다. 동북아 당사국 모두의 이익과 세계사 전환의 방향에 부합한다. 이교수가 칼럼에서 대안으로 제기한 동아시아 ‘지역-국가 네트워크 체제’도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돼야 본격화될 수 있다. 지면 제약 상 충분히 말할 수는 없다. 거두절미를 양해 바란다.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는 1994년 6월 이후 최고 수위에 이르고 있다. 94년 미 국방부의 전쟁 시나리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국력과 전력(戰力)이 극저점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번 전쟁은 그보다 훨씬 큰 사상자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위기도 94년처럼 요행히 봉합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태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일까? 북의 호전성일까? 북미 간의 치유불가능한 적대감일까? 혹자는 북미간의 협상에 한국은 끼어들어갈 틈이 없다고 말한다. ‘코리아 패싱’을 자인하는 말이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었던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이 빠졌던 건 전쟁에서 한국이 흘린 피가 적어서가 결코 아니다. 휴전 협상을 거부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을 뿐이다.

북이 미국과만 협상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북은 미국의 군사력보다 한국의 발전상이 체제 유지에 더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열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욱 호전적으로 나온다. 양국체제란 북의 이러한 불신과 불안을 근원에서 해결하는 방안이다.

양국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없는 걸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남북은 이미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유엔헌장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과 영토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이미 당시에 양국체제가 절반은 성립한 셈이다. 당시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했다면 남북의 수교도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남은 190개국, 북은 160개국과 수교 중이고, 그 중 157개국은 남북 모두와 수교상태다(외교부 『2016 외교백서).

왜 그 길로 가지 못했을까? 그 길로 갔다면 현재와 같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부영 선생이 어디선가 지적한 데로 평양에 한국, 미국, 일본의 대사관 또는 대표부가 존재하여 상시 교류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긴장 고조와 핵개발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양국체제=동아시아 평화공존체제가 완성되지 못하여 현재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탓을 이제 누구에게 돌릴까? 우린 국제 문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우리가 외교의 주동차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문제 국제관계에서 주동적 움직임, 이니셔티브를 쥐어 본 경험이, 쥐어볼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87년에서 91년에 이르는 기간 대한민국에는 대단히 큰 힘이 존재했다. 87년 민주화의 동력이다. 그 동력을 온전히 모아냈다면 양국체제로 가는 길은 그때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열된 민주세력은 이 길로 힘을 모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87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주동력이 되살아났다. 촛불혁명이다. 촛불이 진정 ‘혁명’이 되려 하면 ‘체제전환’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체제전환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촛불은 4.19, 87년에 이은 30년의 민주분출의 세 번째의 거대한 파고다. 이번에 양국체제로의 전환에 실패하다면, 이 분출조차 그 이전의 두 번의 분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어두움 속으로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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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1972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왼쪽)와 에곤 바르 특임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제 묻고자 한다. 과연 누가 한반도의 빌리 브란트가 될 것인가?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 평화공존을 이룩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독일형 복지국가, 사회국가(Sozialstaat)를 건설할 수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통일을 앞세우지 않았다. 거꾸로 “통일을 원할수록 통일을 말하지 말자”고 했다. 1991년 동독의 흡수통일은 우연의 결과였을 뿐, 동방정책의 목표가 아니었다. 동방정책의 목표는 오히려 무리한 통일을 배격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통해 상호 번영하는 데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요체는 양국체제론과 같다.

브란트 동방정책은 총리 재임 중의 정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사회국가 노선은 서독의 새로운 국시(國是)가 되었다. 슈미트 총리가 충실히 이었고 이후 기민련의 콜 수상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브란트가 만든 평화와 복지의 양두마차가 없었다면 오늘의 독일은 없다.

다시 묻는다. 이 시점에 누가 한반도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첫 해빙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완으로 그쳤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완수해 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우리는 이 두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너무 조심스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 최소한 30년은 존속할 체제다. 우리는 이 정도의 호흡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 동안 남북 서로의 불신을 줄이고 교류와 협력의 폭을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두 나라로 공존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남북수교와 북미·북일수교는 멀지 않다. 이로써 1991년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양국체제는 정착된다. 브란트 당시 동서독 화해에 주변 강대국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역사적 이유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했던 남북 두 당사자가 적대를 눅이고 화해와 공존의 주역으로 나설 때 주변국이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세계인의 보편적 여망과 다르지 않다. 칸트 ‘영구평화론’의 핵심은 국가 간 적대의 소멸에 있었다. 지독한 전쟁을 했던 한 민족 두 국가가 상호적대를 소멸시켜 간다면 이는 칸트의 꿈이 한반도에서부터 실현되어 가는 일이다.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반도체 경기는 뜨겁고 비트코인 투기는 광풍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김정은이 영하 22도의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보도사진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올해 많은 일을 겪어냈고, 나라 분위기도 얼마간은 수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들 찜찜해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지인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은 물음이다. “우리 내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회 전체가 위기에 둔감하다. 불안의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체념상태가 만연해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그때그때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국가와 사회의 중장기 의제는 부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단지 정부나 정치권에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시민사회와 지식사회에서 국가 대전략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지난 12월7일 민간 싱크탱크인 (사)다른백년에서 김상준 교수는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고 ‘한반도 양국체제’의 해법을 주장했다. 반가운 일이다. 오랜만의 대전략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양국체제란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비상국가체제’가 남북 모두를 지배해 왔다. 이는 기존 분단체제론과 인식을 함께한다. 단 분단체제론은 세계체제론과 연결되지만, 양국체제론은 이를 비판한다. 둘째,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에 출구전략이 없거나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 중간과정·출구전략을 양국체제로 제시한다. 그리고 양국체제를 남북통일로 가는 중간역으로 못 박지 않는다. 

양국체제론이 지닌 오해와 약점은 향후 수정·보완될 것으로 본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국가 대전략의 골격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조언하고 싶다. 양국체제론에서는 세계체제와 별도로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분단체제 출구전략으로서의 양국체제 성립 가능성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양국체제론의 첫 고리는 남측이 먼저 북측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헌법의 영토조항도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북핵 위기나 남북관계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북의 핵개발은 거의 완성에 가까운 단계에 와 있다. 지금은 남북의 군사적 역관계가 역동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는 남북이 각각 적대·위협 관계를 체제작동의 원리로 삼고 있는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남북의 국가체제, 동아시아 지역체제, 세계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 남북 각각의 정치·군사·경제체제는 동아시아 지역체제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국가모델의 일종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와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1980년대 말에는 고강도·저강도의 열전 속에서 급진적 산업화가 진행되었다(동아시아모델 1.0). 1980년대 말~2010년경까지는 동아시아 네트워크가 북한을 구조적 공백으로 남겨놓고 발전했다(동아시아모델 2.0). 북의 핵개발은 북을 제외한 네트워크화의 귀결이다. 2010년경 이후는 뉴노멀의 대전환 시대에 들어섰다. 미·중 간 세력전이, 저강도 공황, 4차 산업혁명 등이 진행 중이고, 북한은 이에 대응하는 생존방식으로 핵무기를 체제화하고 있다. 

과연 한국을 중심에 놓는 일국적 접근방식으로 양국체제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체제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남북의 국가 간 대결관계는 네트워크관계로, 남북 내부의 권위적·명령적 국가체제는 분권적·수평적 네트워크 체제로 혁신해야 한다. 분단체제를 혁신하는 대안모델은 ‘네트워크형 국가·지역’이다.

그런데 당장 북·미 간 대결과 북핵 위기가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전쟁 위기와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중·일 간의 안보협력 대화를 실무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각적·지역적 안보협력 체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잡아내야 한다. 속초·강릉 일원과 서해안 연평도 일대를 글로벌 평화공원 지역으로 개발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정부·지자체·민간·국제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대북 제재 조건에서도 ‘평화 공유재’가 될 수 있다.

남북 양국체제는 현실에서 바로 작동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이다. 분단체제 이후의 길은 국가·시장·네트워크가 혼합된 다양한 혁신의 방식으로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화, 2017/12/2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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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표현 중에서 필자가 유독 좋아하는 것이 있다. 유사하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다른 점을 찾고, 다르게 보이는 것들 중에서 유사한 점을 찾는다. 어디서 읽은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 꽤나 멋있게 들렸던지 중학교 시절부터 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말이다.

이는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영국의 캠브리지에서 열렸던 다윈페스티벌의 캐치프레이즈(See things differently!)가 말하는 것과 의미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고과정이다. 해외의 선진제도를 도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다르게 바라보기’ 이전에 우선 해당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창의적인 발상이 아니라,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혹은 섣부른 ‘모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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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근로자이사제 조례 제정 기념 토크콘서트가 끝난 뒤 패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조례 제정으로 서울시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서울연구원에 근로자이사를 임명했다. 그리고 12개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도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모방한 근로자이사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사회에 이미 도입되었거나 또는 소개되고 있는 해외의 제도들 중에서, 특히 독일의 사례 몇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노동이사제, 노동회의소, 그리고 직업교육의 이원제도가 떠 오른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노사협의회를 대체할 종업원대표제로서 독일의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 제도의 도입 또한 논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지면을 빌려 독일 제도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략하게나마 필자의 견해를 보태고자 한다.

그 첫번째 주제로서 노동이사제는 서울시에서 도입했고(근로자이사제), 또한 지난 대선 국면에서 여러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긴 내용을 짧게, 핵심적인 부분만 간추려보자.

독일의 기업은 두 개의 이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회사의 일상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경영이사회(Vorstand)와 그 경영이사회를 관리감독하고,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을 임면하는 권한을 가지며, 회사의 장기전략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감독이사회(Aufsichtsrat)가 그것이다.

우리와 다른 이러한 시스템을 이원적 이사회제도(Two-tier Board System)라고 부르는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네덜란드가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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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동결정제도 및 이원적 이사회제도 개념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 차원과 사업장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기업의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구성을 노사동수(또는 1/3 대 2/3)로 강제하고 있는 독특한 제도인데, 몬탄공동결정법(1951년), 공동결정법(1976년) 그리고 1/3-참가법(2004년)으로 규율되고 있다.

1/3-참가에 관한 사항은, 사업장기본법(1952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2004년에 1/3-참가법(Drittelbeteiligungsgesetz)이라는 명칭으로 분리되어 별도로 제정된 것이다.

사업장 차원의 공동결정제도는 사업장에서 사업장협의회(Betriebsrat)를 구성하여 노동자의 경여참여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사업장기본법(1952)으로 규율된다.

달리 말하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대표적으로) 공동결정법(Mitbestimmungsgesetz)에 따라 노동자측 이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감독이사회를 통해서, 그리고 사업장기본법(Betriebsverfassungsgesetz)에 따라 경영참여권을 보장받은 사업장협의회라는 두 축을 통해서 실현되는 제도라고 압축해서 말할 수 있겠다.

노사 동수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 선임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감독이사회의 구성에 관해서 살펴보자. 먼저 각각의 법이 적용되는 대상 기업이 다르다는 점을 언급해야 겠다.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제철 및 광산채굴업을 주로 영위하는 상시 근로자 1,001명 이상의 주식회사와 유한회사이고, 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2,001명 이상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협동조합이다(참고로, 1/3-참가법의 대상 기업은 상시 근로자 501명 이상, 2,000명 이하의 주식회사, 주식합자회사, 유한회사, 상호보험조합 및 협동조합이다).

독일 기업의 감독이사회는 이 두 법에 따라 노사 동수로 그 구성이 강제된다(이때 노동자측의 몫으로 배분된 감독이사회의 구성원을 노동이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필요적 상설기관)에 노와 사가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것이다(상시 근로자가 501명 ~ 2000명인 경우, 1/3-참가법에 따라 노측 감독이사회 구성원은 1/2이 아니라, 1/3이 배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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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노동의 경영참여가 제도화돼 있다. 감독이사회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며, 여기서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를 선임한다. (사진 출처: https://www.onetz.de/)

이 감독이사회에서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를 선임하는데, 위 두 법은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후술한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해 둔다. 경영이사회에 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경영학에서는 주로 종업원이란 용어를, 노동법에서는 근로자 또는 노동자란 용어를 쓴다. 이 글에서는 그때그때 혼용해서 쓴다) 수가 1,000명을 초과하는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구성원(이사)의 수가 11명인데, 이 중 5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5명은 노동자측 이사,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중립적 인사가 선임된다.

그리고 5명의 노동자측 이사 중에서 2명은 해당 기업의 종업원 중에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선출하며, 해당 기업이 속한 (산별)노조 및 그 상급단체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확정되고, 나머지 3명은 (산별)노조의 상급단체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역시 사업장협의회가 비밀투표를 통해서 정하게 된다.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납입자본의 크기에 따라 15명, 21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상시 종업원 수가 2,000명을 초과하는 (10,000명 미만의) 대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멤버(이사)의 수가 12명인데, 이 중 6명은 주총에서 선임되는 주주측 이사들이고, 나머지 6명은 (산별)노조 추천의 2명과 해당 기업내 종업원 중에서 4명이 선임된다.

종업원 수가 많아짐에 따라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수는 16명, 2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몬탄공동결정법(1951)에서는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Arbeitsdirektor)는 감독이사회의 노동자측 이사의 과반수가 반대하면 선임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이 적용되는 기업에서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이 적용되는 회사의 노동이사와는 달리 종업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부과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몬탄공동결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에 따르면, 노동이사는 감독이사회의 노측 이사가 표결로서 선임한다. 따라서 몬탄공동결정법에 따른 노동이사는 산별노조(또는 사업장협의회)가 추천하고, 사업장협의회(또는 산별노조)가 동의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다.

공동결정법(1976)이 규정하고 있는 노동이사의 선임절차는 좀 더 까다롭다. 1차 표결에서 부결되면 감독이사회의 의장, 부의장, 노측 이사 1인 그리고 사측 이사 1인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에서 재차 표결하고, 다시 가부동수일 경우에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결정한다.

(참고로, 감독이사회에서의 통상적인 사안의 결의는 1차로 단순과반수로 표결하고, 가부동수일 경우 재차 표결하며, 이 또한 가부동수일 경우 의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여 최종 결정을 한다. 이처럼 독일 대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서는 노동자측의 목소리가 주주측의 목소리와 동일하게 반영되지만, 감독이사회의 의장에게는 첨예한 의사결정의 경우에 발생 가능한 노사간 가부동수의 상황에서 2개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법에 규정함으로써, 굳이 따지면 주주측의 목소리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 소속…노무인사 업무 전담

경영이사회도 감독이사회와 마찬가지로 필요적 상설기관으로서 합의체(kollegiale Führung; board)이다. 경영이사회에서의 (보통)결의는 단순과반수로서 행해진다.

위에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은 감독이사회에서 선임된다고 하였다. 노동이사(Arbeitsdirektor; worker director)는 위에서 언급한 몬탄공동결정법과 공동결정법에 따라 감독이사회가 임명하는 이사로서, 경영이사회의 여러 이사들 중의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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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2625.html)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이사는 경영이사회의 멤버이기 때문에 회사의 경영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선관의무 등). 경영이사회의 이사는 분기별로 최소한 1회 이상 개최되는 감독이사회에 출석하여 자신이 경영관리의 책임을 맡은 소관영역에 대한 보고를 함으로써 관리감독을 받고, 감독이사회 이사와 함께 정기주총에서 해당연도의 경영활동에 대하여 면책(책임해제)을 받음으로써 한 회계연도를 마무리하게 된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별 경영관리 영역에 대해서는 주식회사 정관의 임의적 기재사항인 경영이사회 이사의 업무분담규정(Geschäftsordnung)에 따라 나누어진다.

따라서 경영이사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인 노동이사는 노동자의 이해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경영이사회의 이사로서 감독이사회에 대하여 의무와 책임을 부담하기 때문이다.

종업원의 이해와 고충을 대변하면서 동시에 회사가 정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업원을 독려하기도 해야 한다. 회사가 종업원에게 요구하는 것과 종업원이 회사에 요구하는 것을 최적의 조합으로 조율하는 역할과 함께, 이사회에서 인사노무관리에 관한 전문가로서 다른 경영이사회 멤버들에게 자문역할을 하면서 인사노무에 관한 전략을 기업 전체의 전략에 정렬하여 수립 및 운용해야 한다.

 위에서 보듯이, 노조 친화적인 노동이사는 몬탄공동결정법의 적용 대상 기업에서 그렇고,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는 회사의 노동이사는 더 이상 노동친화적인 요인이 노동이사 선임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인사노무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이 결정기준이 된다. 광산업 및 제철업의 퇴조로 몬탄공동결정법의 대상 기업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현재 대다수의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1976)의 적용을 받는 기업의 노동이사들이며, 주로 직함도 인사담당임원(Personalvorstand; CHRO)이다.

참고로, 1990년대에 국영기업이었던 철도, 우체국(텔레콤)이 주식회사 형태로 민영화되면서 공동결정법의 적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 회사들의 노동이사는 대부분 친노조 성향의 인사들로 구성된 바 있다.

단순한 제도 모방 우려…실질적 노사관계 진전 계기 돼야

긴 내용을 짧게 간추린다고 했는데, 조금 길어졌다. 요약보다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고, 독일의 제도라는 것이 한 방(放)으로 정리되는 단순한 구성이 아니라는 것도 한 이유이다.

최근 서울시가 도입한 근로자이사제가 경영이사회의 노동이사를 모델로 한 것인지(용어만 보면 그렇다), 아니면 노동자측 대표에 의한 감독이사회의 구성을 모델로 한 것인지(노동자대표 이사제), 혹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전체를 모델로 한 것인지(종업원대표제에 대한 논의가 없다) 분명치 않다.

어쨌든 기타(Guitar/공동결정법)도 없이 피크(Pick; 속어로는 삐꾸/노동이사제)만 가지고 기타연주(공동결정제도)를 하겠다는 격은 아닌지, 말하자면 삐꾸(非俱)가 아닌지 의구심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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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sedaily.com/NewsView/1KW9DOPF3D)

정체가 불분명한 어정쩡한 발명 또는 섣부른 모방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노동자의 실질적인 경영참가를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착시키기 위한 중간단계로서, 다분히 절충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이해해 본다.

정부도 노동이사제가 한국의 현실에 맞지 않다고 단칼에 잘라버리지 말고, 새로운 노사관계를 위한 창의적 발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노사관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정부가 모두 너나없이 나서서 회사(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우리만의 여러가지 노사 관련 제도를 창의적인 발상을 통해 만들 것을 이 지면을 빌려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관계 선진국들의 관련 제도에 관해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는 점을 사족으로 붙인다.

월, 2017/07/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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